산행지 : 경기도 용인시와 안성시의 쌍령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12월 21일 (목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산행 전날 내린 눈을 밟으며 오랫만에 눈 산행을 하였지만 생각보다 바람이 불어 춥고 맑았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8도에서 영상 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묵리 장촌1교차로사거리(318번 2차선 포장도로, 장촌 버스정류장)-카페 테라스-이원로-참좋은교회-해와달 펜션과 가든-석포모델숲종합안내도-녹색철조망-차량통제 바리게이트-비포장 임도 이정표(바사리고개 1.2 Km, 석포숲기념공원 0.7 Km)-능선진입-바사리고개-비포장 임도(등산로 안내판)-계단-쌍령지맥 분기점(397미터, 사각정자, 이정판, 한남정맥 이정표)-비포장 임도-바사리고개-능선진입 이정표(미리내 성지 2.43 Km, 학일리 2.00 Km, 은이성지 8.13 Km)-송전탑-395.9봉 갈림삼거리 이정표(미리내성지 2.12 Km, 석포숲기념공원 0.88 Km, 은이성지 8.44 Km)-문수산터널 위-시궁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미리내성지 1.61 Km와 쌍령산 3.02 Km, 석포숲기념공원 1.39 Km와 은이성지 8.95 Km, 애덕고개)-산너울2길 이정판-407.9 삼각점봉(상원봉)-이정표(미리내성지 2.86 Km와 쌍령산 2.22 Km, 석포숲기념공원 2.19 Km와 은이성지 9.75 Km)-393 벗나무 무명봉-375 돌탑 안부 이정표(쌍령산 2.06 Km, 석포숲기념공원 2.35 Km와 은이성지 9.91 Km)-375 고사목 무명봉-안전목책과 로프구간-396.6봉-402 무명봉-403 무명봉-17번 송전탑-이정표(미리내성지 1.97 Km와 쌍령산 1.33 Km, 석포숲기념공원 3.08 Km와 은이성지 10.64 Km)-16번 송전탑과 배내미약수터 이정판-안전목책과 로프 계단 등로-457.7 돌탑봉과 이정표(배내미약수터, 거북바위)-459 돌탑봉-미리내성지 갈림삼거리 이정표(쌍령산 0.80 Km, 석포숲기념공원 3.61 Km와 은이성지 11.17 Km, 미리내성지 1.44 Km)-안전목책과 로프구간-바위암릉구간-쌍령산(502.5 미터, 정상석, 벤취쉼터, 헬기장)-430.6 고사목봉-426 헬기장-예지촌 갈림삼거리 이정표(쌍령, 정상과 헬기장, 예지촌)-390 무명봉-바위암릉구간-381 무명봉-쌍영산(377.5 삼각점봉)-361 전망바위-안전로프구간-297 무명봉-287 쌍령 갈림삼거리 이정표(정동과 봉지곡, 정상과 헬기장, 쌍령)-벤취쉼터들과 이정표(염티마을과 고삼면, 쌍령산 정상, 염티마을 1.65 Km)-정동과 봉지곡 갈림삼거리 이정표(염티와 봉지곡, 정상과 쌍령, 정동과 봉지곡)-안전철봉과 로프구간-268.5봉(고사목들)-255 이정표(사거리 미리내와 염티 및 봉지곡 그리고 가유리, 정상과 쌍령)-238 이정표(염티와 봉지곡, 정상과 쌍령)-송전탑-임도 안부 이정표(월동과 가유리, 정상과 쌍령, 봉지곡, 염티)-210 부러진 고사목-잣나무 등로-258.4봉(금병산 234.5봉 갈림삼거리)-잣나무 등로-송전탑-송전탑-192 바위무명봉-162 삼각점봉-마에스트로CC-마에스트로 클럽하우스-마에스트로 호텔-마에스트로 카드포장도로-능선진입-138 무명봉-삼영푸드(주)-방고개(구 82번 2차선 포장도로)-82번 4차선 포장도로(맛집 맛국수)-시멘트 계단-절개지 상부-183 무명봉 송전탑-잡목지대-비포장 임도 삼거리-신안CC-4홀 파3-클럽하우스 화장실-능선진입-181 잡목 무명봉-무명안부-196.3봉(송전탑)-비포장 임도-송전탑-봉황산 갈림삼거리(233 무명봉)-파인크리크CC-잡목 능선진입-성터-214 이동통신탑과 굴뚝봉-시멘트 포장공터-256.2 삼각점봉-188 무명봉-골프코스-능선진입-31번 송전탑-160 묘지봉-32번 송전탑-비포장임도 안부-129 묘지봉-묘지지대-비포장임도 안부-134.3봉-비포장임도-비포장임도 사거리-배티마을 조망-공사장-절개지-45번 4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지엠아이(주)-거원페이퍼-뱃고개(양성로 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세방전지 녹색철조망-88 무명봉-120 무명봉-98 공장지대 절개지-118 무명봉-묘지와 잡풀지대-153 무명봉-180 무명봉(안전로프)-183.6봉-무명안부-212 무명봉-벤취쉼터4-278 통나무 벤취봉-286.1봉 이정표(산림욕로와 등산로, 피크닉장)-양성산림욕장 안내판 안부-261 고사목봉-벤취쉼터 안부 이정표(등산로와 등산로, 산림욕장과 피크닉장)-헬기장-314 Y형 소나무-322.3봉(신선봉)-289 무명봉-312 무명봉-무명안부-부대장 경고문과 군사기지보호구역 콘크리트 말뚝-지뢰위험지대 안내판-원형철조망-지뢰매설지역 안내문-군부대 철조망-천덕산(335.5봉) 부대정문-포장도로-성은리고개(23번 2차선 포장도로와 만세터널)-지맥산행 종료-23번 2차선 포장도로-약수터 포장마차-안성3.1운동기념관-안성3.1운동기념관 버스정류장(만세고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4.4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지맥산행 : 21.52 Km (쌍령지맥 분기점에서 성은이고개까지)
접속구간 : 02.91 Km (묵리 창촌에서 쌍령지맥 분기점까지 02.20 Km와 성은이고개에서 안성3.1운동기념관 버스정류장까지 00.71 Km)
산행시간 : 눈과 추위로 인해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꾸준하게 진행하여 07시간 58분 (08시 10분부터 16시 09분까지)
산행트랙 :
교통편 : 갈때 - 05:41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탑승 후 교대역에서 환승하여 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동
06:30 강남고속버스 터미널 발 용인행 고속버스 탑승 (2,900.- 원)
07:10 용인공용버스터미널 도착
07:30 용인공용버스터미널 발 22번 군내버스로 묵리 창촌까지 이동한 후 산행 시작
올때 - 16:20 안성3.1운동기념관 앞 버스정류장에서 8번 버스로 평택역까지 이동
17:10 평택역에서 지하철을 이용해 신도림역에서 환승 후 귀가
한남정맥 쌍령지맥이란 ???
쌍령지맥이란 한남정맥상에서 용인지역에 있는 문수봉에서 가지를 치는데 북쪽으로 앵자지맥을 분기하고 조금 더 진행하여 독조지맥을 분기한다.
문수봉에서 남서쪽으로 진행하다가 남쪽으로 쌍령지맥을 분기하는데 지나는 산군은 쌍령산(502 미터), 봉황산(259.3 미터), 천덕산(322.3 미터), 백련봉(235.2 미터), 덕암산(164 미터), 불악산(149.4 미터)들이고 도상거리로는 약 43.6km이다.
이 산줄기에서 우측으로는 진위천으로 흐르고 좌측은 한천과 안성천으로 흘러 들어 간다.
하얀 눈 속에 걱정했던 골프장은 아무 마찰없이 무탈하게 통과하였지만 군부대로 인해 오르지 못하고 바라만 보며 진행했던 천덕산에서의 아쉬움이 남았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개인적으로 올 한해는 참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새로운 제2 인생을 설계하며 조금은 힘든 시기였지만 얼마 전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사업적 파트너를 구할 수 있어 내년부터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평생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 본다.
지금까지 30여년 간 한 직장에서 일을 하다 새로운 인생을 계획하다 보니 약간의 시행착오도 있었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해 왔던 일과 그곳에서 열심히 살았는지 도와주려는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어 얼마 전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업적 파트너를 만나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산에 들 수 있었다.
이번 주말에는 동서들과 송년회가 예정되어 있고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있어 주말이 되기 이틀 전에 지금까지 고생한 자신에게 힐링하는 휴가를 주기로 하고 목요일 새벽 일찍 일어나 골프 시즌에는 진행이 거의 불가능한 쌍령지맥을 대중교통을 이용해 진행하기로 한다.
다만 몇 군데 난해한 곳이 있고 특히나 고덕단지는 삼성 반도체 단지가 들어서며 지맥 등로가 완전히 사라져 또 어떻게 진행을 해야 될지 답이 없기에 직접 몸으로 부딪혀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 어떤 예측도 불가능한 시간이다.
또한 동지가 가까운 시기에 오르다 보니 낮의 시간이 제일 짧아 일몰 전에 제대로 산행 후 하산이나 가능할지 그것 또한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이기에 헤드렌턴과 뜨거운 물을 조금 더 준비하며 추위와 어둠에 대비한 배낭을 꾸려 새벽 같이 집을 나서 본다.
이번 주 이곳 쌍령지맥 산행이 마무리되면 곧바로 다음주 주중에는 여수로 내려가 두 구간을 마무리하고 내년 초 다시 한번 더 내려가 나머지 두 구간을 마무리하면 계획된 산행은 차질없이 진행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새벽 일찍 집을 나서 첫 지하철로 강남고속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하고 첫 버스를 이용해 용인에 도착해 잠시 더 기다렸다 군내버스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에 도착을 하니 아침 8시가 넘어가고 있는데 전날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어 올해 들어 제대로 된 첫 눈 산행에 대한 기대감이 커진다.
생각보다 많이 내린 눈을 밟으며 너무나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를 친구삼아 여유를 부려보지만 역시나 산행 시간과 낮이 짧아 날머리에서의 시간에 대한 고민으로 발걸음은 자꾸만 빨라지고 있다.
그렇게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생각보다 쉽게 제대로 된 땀방울 한번 흘리지 못하고 쌍령지맥이라 이름을 부여받게 만든 쌍령산 정상에 도착을 해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면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무엇이 좋아 이리도 밤잠을 설치며 달려 오는지 정확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홀로 치열하면서도 처절하게 하나 둘 완주하면서 느끼는 희열이 크기에 또 어둠속에 몸을 맡기도 이렇게 정상에 서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행처럼 살아가는 삶에서도 부끄럽지 않게 즐기며 살아가는 인생이길 바라면서 오늘 하루도 무탈한 산행을 빌어 본 시간이다.
전날 내린 하얀 눈이 등로 옆 잡목과 관목에 쌓여 너무나 아름다운 눈꽃을 만들고 있어 바쁜 시간이지만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을 남겨 본다.
오늘도 역시 춥기는 하지만 바람이 심하게 불지 않아 견딜만하고 특히나 잡목 가지에 쌓여 있던 눈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너무나 환상의 눈꽃을 만들고 있기에 진행을 하면서 외롭거나 심심하지는 않은 시간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인에서의 멋진 시간을 보내고 아침이 지나자 내린 눈의 양이 현저히 줄어 들면서 아름다운 눈꽃은 자취를 감추고 낙엽 위에 흩뿌려진 눈들로 인해 진행에 상당한 미끄러운 등로만 이어지고 있다.
오랫만에 여유를 가지고 추억 몇장 남겼던 눈꽃이기에 이 겨울이 지나기 전 잠시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멈추고 몇 군데 겨울산에 올라 황홀한 상고대를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참고하여 인터넷을 이용해 대중교통 편을 확인하여 진행을 하니 큰 어려움 없이 용인공용버스 터미널에서 22번 시내버스로 산행 들머리인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 묵리 장촌마을에 도착을 해 한쪽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에서 산행 준비를 해 본다.
묵리 장촌마을은 장씨가 많이 살아 생겨난 지명 이름으로서 묵리는 경기도 용인시 이동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굴암, 묵동, 염티, 장촌 마을 등이 있는데 굴암 마을은 굴암산 밑에 위치하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묵동 마을은 먹을 만들던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염티 마을은 염티고개 끝에 위치한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장촌 마을은 장씨가 많이 살았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일출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이곳은 아직 햇살이 들어오지 않아 약간의 바람에도 한기가 느껴지는 매우 추운 산행 들머리이다.
산행 준비를 하는동안 타고 온 22번 버스는 이곳에서 회차해 돌아 나가고 잠시 후 326번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작은 도랑 위에 놇여 있는 다리를 지나는데 옆에는 길성이 누룽지백숙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고 눈 앞에는 카페테라스 건물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그 앞에서 우측 작은 개울 옆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이원로라는 이름이 붙어 있는 등로를 따라 우측으로 돌아 진행을 하니 작은 개울 넘어 318번 도로 옆에는 문수산터널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문수산터널과 쌍령산 방향으로는 안개인지 구름이 덮혀 하얀 도화지를 이루고 있어 잠시 살펴보고 다시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는 다리와 해와달이라는 펜션과 식당을 알리는 작은 입간판이 앙증맞게 서 있어 그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 걸어 전진해 본다.
잠시 후 참좋은 입간판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더 올라가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제 좌측 방향으로 해와달 입간판이 보여 그 입간판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곧이어 석포모델숲종합안내도가 서 있고 살펴보고 다시 전진하니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는데 임도 좌측으로는 녹색철망이 쳐져 있다.
이제 작은 개울을 좌측에 두고 계속 이어지는 하얀 눈 밭을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번에는 우측으로 차량통제용 바리게이트가 보여 통과하니 또 다른 비포장임도와 만나는데 그곳에는 좌측으로 바사리고개까지 1.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반갑기만 하다.
석포모델숲이 궁금해 찾아보니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몇년 전 독립가 손창근님이 1000억원 때의 산지를 국가에 기부를 해 그 산지에 자라고 있는 수종들을 가꾸고 손질하는 사업을 말하는 듯 보였다.
차량통제용 바리게이트와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비포장임도를 타고 좌측 바사리고개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하얀 설원 위에는 아무도 가지 않은 순백의 흰 도화지가 펼쳐져 있다.
잠시 걸어 오르니 고라니라 생각되는 날짐승 발자국 하나가 이 산객을 안내해 주고 그 발자국을 따라 주위 설국을 구경하며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 좌측 앞으로 지금부터 걸어 올라야 할 바사리고개와 쌍령지맥 분기봉쪽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좌측 앞 봉우리 정상부에 따스한 아침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드디어 임도 우측 게곡 방향으로 산행 들머리가 보인다.
그리 가파르지도 않고 길지도 않기에 잡목을 헤치고 직등으로 올라 한남정맥 마루금에 붙으려고 임도가 좌측으로 휘돌아 가는 곳 우측 계곡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하얀 눈을 밟으며 잡목의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조심해 오르니 금새 한남정맥의 마루금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바사리고개로 등로 우측으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따라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 바사리고개는 이동면 묵리에서 원삼면 학일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김대건 신부 유해가 숨어 넘던 천주교의 박해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개이기도 하는데 지금은 삼덕의길이란 순례의 길이 조성되어 있다.
묵리는 위에서 설명을 했기에 학일리를 찾아보니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대부분의 지대가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서부는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 마을로는 학일, 가운데, 기와집, 새터 마을 등이 있는데 학일 마을은 학이 많이 모인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가운데 마을은 학일리의 가운데에 위치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기와집 마을은 기와집이 있었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새터 마을은 새로 이룩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잠시 능선을 따르지만 잡목으로 진행이 어려워 우측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그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우측 옆으로는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는 곳에서 우측 앞으로 보이는 계단을 타고 쌍령지맥 분기점으로 올라 본다.
오르막 계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부드럽게 이어지고 잠시 그 눈에 덮혀 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저 멀리 사각정자와 벤취쉼터들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한남정맥 상 쌍령지맥 분기점인 397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리고 주위 풍경을 살펴보고 새롭게 시작하는 쌍령지맥에서도 무탈한 안전 산행을 빌어보는 혼자만의 의식을 행해 본다.
잠시 문수봉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조망이 없고 또한 하루 해가 가장 짧은 계절에 걸어야 할 거리가 제법 길기에 문수봉은 앵자지맥 산행 때 오른 것으로 대신하고 곧바로 추억 한장 남기고 올라 왔던 등로를 타고 바사리고개 방향으로 빠르게 걸어 내려가며 이틀간 길고도 먼 쌍령지맥 산행을 새롭게 시작해 본다.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잠시 발걸음을 멈췄던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하고 우측 잡목이 보이는 능선을 버리고 좌측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잠시 후 바사리고개에 도착을 해 장촌 방향에서 올라 온 등로를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 좌측 앞으로 하얀 운해속에 아름다운 무명봉이 얼굴을 내밀며 막 떠 오른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다.
아름다운 눈 세상을 구경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저 멀리 앞으로 비포장 임도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 앞에 미리내성지 방향의 이정표가 서 있다.
이제부터 능선으로 진입하며 오르며 미리내성지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등로 주위에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높은 송전탑이 보이는데 남쪽 방향에 붙어 있는 송전탑 번호는 볼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송전탑 아래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부드러운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곳 쌍령지맥 등로는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고 그곳 정상에서 우측으로 석포숲기념공원으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우측으로 395.9봉이 보이지만 특이한 것도 없이 그저 국토지리원 지도에 표기된 높이이기에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좌측으로 크게 휘어지며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을 타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석포숲기념공원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미지의 설원을 걸어본다.
잠시 후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뒤덮고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시 아무도 지나지 않은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 내려가 보는 시간은 나만을 위한 힐링시간처럼 되었다.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해 주위를 살펴보니 갑자기 연무가 밀려 들어오며 황홀한 세상을 만들고 있어 바쁜 시간이지만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으로 남겨 본다.
평이한 눈 길을 따라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사람 키만큼 자란 소나무 위에 하얀 눈이 내려 쌓이면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어 놨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리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멋진 설경을 감상하며 진행하다 지도를 꺼내 확인해 보니 이곳이 바로 문수산터널 위로서 오늘 아침 산행을 시작하며 만났던 31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도로 위 터널이다.
그 문수산터널을 지나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애덕고개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표시이다.
또한 이곳 이정표에 표기된 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 그리고 애덕고개는 모두 김대건신부와 연관이 있는 지명으로서 자료를 찾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신망애 고개는 천주교 은이성지에서 시작되어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구간 내에 있는 신덕고개, 망덕고개, 애덕고개를 하나로 부르는 이름으로 은이성지는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있고 미리내성지는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에 있다.
은이성지는 우리나라역사상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성장한 곳이자 사제서품후 사목 활동을 하던 곳이고 미리내성지는 김대건 신부 사후 유해가 안장된 곳으로 두 지역 사이에는 크고 작은 천주교 박해시대의 교우촌이 산재해 있으며 은이와 미리내를 잇는 마을과 계곡 및 능선을 따라 연결되는 길목에 있는 고개를 천주교의 신덕, 망덕, 애덕의 의미를 살려 명명하였다.
미리내성지는 1972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역화되고 은이성지는 1996년경부터 성역화가 시작되었고 이후 미리내성지와 은이성지는 천주교신자들 뿐만 아니라 국내외적으로 이름나게 되었으며 김대건 신부가 생전에 사목활동을 했던 길인 동시에 순교후에 신부의 유해가 지난 길을 따르며 김대건 신부의 신앙 열정과 순교 정신을 본받고자 하는 신자들의 순례의 발길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은이성지에서 미리내성지에 이르기까지 넘어야 할 세 고개를 신덕고개(은이 고개), 망덕고개(해실이 고개, 장촌고개), 애덕고개(오두재 고개)라 이름 지어 부르며 김대건 신부의 정신을 기리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치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 632-1번지 은이성지에서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 147번지 미리내성지에 이르는 약 9 Km의 도보순례길 위에 있다.
은이성지에서 남쪽으로 산길을 오르면 처음 만나는 고개가 은이고개인데 고갯마루에 신덕고개라는 비석이 있고 남쪽으로 산을 내려오면 열반종의 총본산인 와우정사가 있다.
와우정사 앞에서 별미마을과 해실이마을을 지나 영산과 재주봉사이에 있는 망덕고개를 넘으면 이동면 묵리 장촌마을이 나오는데 장촌마을에서 거문정이를 거쳐 애덕고개로 이름 붙여진 오두재를 넘으면 미리내성지에 다다르게 된다.
이곳은 계곡과 능선을 잇는 오솔길로서 등산객이나 순례객이 지나기에는 불편함이 없고 신덕과 망덕, 애덕고개 정상에는 오석제 비신에 관석을 올리고 고개이름을 새겨 놓은 비석이 있다.
신덕, 망덕, 애덕의 삼덕고개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신부이자 성인으로 이름나 있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한국 역사상 최초의 한국인 사제로 사목활동을 펼치던 곳이다.
또 새남터에서 순교한 후 용인의 젊은 신자인 이원식 빈첸시오에 의해 수습된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지나간 길목이기도 해서 김대건 신부의 생전과 사후에 모두 연관을 가지고 있는 곳으로 김대건 신부의 신앙정신과 순교열정을 본받으려는 신자들과 일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용인의 정신적 명소이다.
오래 전 한남정맥을 진행하면서 잠시 김대건 신부와 관련된 지명과 지역들을 살펴 봤던 기억이 있어 찾아보고 또한 앵자지맥 산행을 하면서도 잠시 자료를 보았던 기억이 있어 오늘도 또한 그 자료들을 한번 더 읽어 보는 시간이다.
무교인 이 산객에게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 내용들도 있지만 처음으로 천주교를 소개하며 받았던 고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더 깊어진 눈을 밟으며 진행하니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나무들이 계속 반겨주고 잠시 후 산너울2길이라는 이정판을 지나 특이한 것이 없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금새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 있는 407.9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지도에는 이곳을 상원봉이라는 명칭을 부여해 놨지만 자료에는 보이지 않아 의구심만 커지는 이름이다.
멋진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보이는 그 407.9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약간의 눈보라가 치고 눈 앞은 뿌연 박무속에 갇힌 듯 보이기 시작한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약간 올라 평이하게 진행되는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주위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쌍령산까지 2.2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38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이정표에도 은이성지와 미리내성지라는 글자가 보여 김대건 신부를 한번 더 생각을 해 보는 시간이다.
이곳은 삼덕의길이라고 해서 김대건 신부가 죽어 이 길을 통해 지나갔기에 후세에 사체가 지나간 길을 정비해 순례의 길처럼 만들어 놨다.
서양귀신을 섬기는 천주학을 공부하고 서양 오랑캐들과 접촉한 사실을 반역죄로 처벌한다는 중신들의 의견을 받아 왕명으로 양력 1846년 9월 16일 사학괴수 김대건 안드레아의 군문효수형이 새남터에서 결행된다.
김대건 신부의 복사로 김대건 신부를 흠모하여 사제가 될 것을 결심했던 골배마실의 청년 이민식 빈첸시오는 김대건 신부 처형 소식을 듣자 시신을 거두기로 작정하고 열세 명의 신자들과 함께 새남터로 향하였지만 엄한 경계로 인해 모두 돌아가고 혼자 남아 기회를 엿보다 김대건 신부가 처형당한 지 40일째 되는 10월 26일 저녁에 파수 군졸들이 저녁을 먹으러 가 삼엄한 감시가 잠시 소홀해진 틈을 이용하여 매달린 머리를 끌어내려 수의에 싸 가슴에 품고 모래밭에서 파낸 몸을 수의와 가마니로 싸 지게에 짊어진 이민식은 나룻배로 어두운 한강을 건너 우여곡절 끝에 시신과 함께 무사히 오두재를 내려온 이민식 빈첸시오는 새남터를 떠난 지 닷새만인 10월 30일 새벽에 김대건 신부 시신을 안성 미리내의 선산에 모실 수 있었다.
뒷날 신도들이 김대건 신부의 고귀한 순교를 기리며 고개마다 기념비를 세우고 어은이를 신덕고개로 부르고 해실이를 망덕고개로 부르며 오두재를 애덕고개로 불러 삼덕의길로 명명한다.
즉 삼덕의길은 천주교인들에게 고난의 길로서 순례의 의미가 잇는 듯 보이는 길이었다.
미리내는 은하수의 순수 우리말로서 신유박해 이후에 크고 작은 박해를 거치면서 경기도와 충청도의 천주교도들이 미리내 인근의 시궁산(515미터, 신선봉)과 쌍령산 골짜기로 숨어 들었는데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실개천 주변에서 밤이면 흘러나오는 호롱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맑은 실개천에 어우러져 반짝이는 것이 마치 은하수 같다고 해서 붙여진 아름다운 지명이 바로 미리내이다.
이정표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에는 또 다시 간벌된 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후 등로는 평이한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벗나무가 자라고 있는 38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작은 돌탑이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쪽에는 원삼성당에서 적어 놓은 미리내성지라는 이정판도 보인다.
오늘은 한동안 천주교와 김대건 신부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지맥 산행이 되고 있다.
이제 쌍령산까지 2.0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오르막인지도 모를 정도로 평이하게 진행이 되고 있다.
여전히 아름다운 설원을 살펴보며 걸어 전진하니 고사목 한그루가 서 있는 37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넘자마자 길게 이어지는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그 안점목책과 로프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고 금새 396.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부터는 다시 날짐승 발자국 하나가 선명하게 찍혀 있어 외롭지 않게 그 등로를 따라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활엽수가 서 있는 40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 전진하니 북사면에 하얀 눈이 많이도 쌓여 있는 나무가 누워있는 40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차갑고 상쾌한 아침공기가 폐부 깊숙히 들어 와 묵어 있던 공기를 정화시켜 주는 듯한 착각을 하면서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번호가 인식되지 않는 송전탑을 만나는데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17번 송전탑이었다.
송전탑 번호는 대부분 남쪽 방향에 붙어 있는데 그 남쪽으로 가 번호를 확인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어 직접 확인은 못해 본 송전탑이다.
그 17번 송전탑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키 작은 관목들과 소나무들이 간신히 등로만 열어 놓고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안부로 이어진다.
그렇게 걸어 전진하니 키 작은 잣나무와 소나무들이 등로 주위에 자라고 있는데 그 위에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이면서 또 다른 크리스마스 트리 세상을 만들어 놓고 있다.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이다 보니 더욱 그 하얀 크리스마스 트리가 눈에 잘 들어 오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쌍령산까지 1.3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철조망이 둘러쳐진 16번 송전탑을 통과하고 가파른 절개지 우측 옆으로 설치된 안전목책과 로프를 따라 나무 계단을 오르니 금새 작은 돌탑과 이정표가 서 있는 457.7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우측 90미터 전방에 거북바위가 있다는 글씨가 보이지만 포기하고 마루금에 충실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맨발님이 붙여 놓은 457.7봉 이정판을 사진에 담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커다란 참나무 옆으로 작은 돌탑봉이 나타나는데 트랙 상 457 무명봉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빠르게 통과해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미리내성지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고 그 미리내성지 하산 등로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이제 쌍령산까지는 8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기도 하다.
미리내 성지는 경기도 안성에서 북쪽으로 40리쯤 떨어져 은하수라는 뜻의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리우고 있는 미리내는 한국 최초의 사제 김대건 신부의 묘소와 그의 어머니 우르술라, 김신부에게 사제품을 준 조선 교구 제3대 교구장 페레올 주교 그리고 김 신부의 시신을 이곳에 안장했던 이민식 빈첸시오의 묘가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고요하면서도 편안함이 가슴에 와 닿아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성지를 둘러보면 가슴이 깨끗해짐은 느낄 수 있다.
이곳이 미리내로 불리게 된 것은 천주교신자들이 신유박해(1801년)와 기해박해(1839년)를 피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교우촌을 형성하면서 밤이면 집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달빛 아래 비치는 냇물과 어우러져 마치 은하수처럼 보였다고 하여 붙여졌다.
본래 미리내는 경기도 광주, 시흥, 용인, 양평, 화성, 안성 일대 등 초기 천주교 선교지역을 이루었던 곳의 하나로서 김 신부가 미리내에 묻힌 지 50년 후인 1896년 비로소 본당이 설정될 때 이곳에는 이미 1천6백여명의 신자가 있었다.
26세의 나이에 처형당한 김대건 신부는 조정에서 장례마저 치루지 못하게 하여 처형당한 지 40일이 지난 다음에야 이민식 빈체시오가 간신히 시신을 빼내어 남의 눈을 피하며 일주일을 등에 지고 이곳 미리내로 옮겨와 안장할 수 있었다.
미리내는 1972년부터 본격적인 성역화 작업이 시작되고 1989년에 웅장한 103위 성인 기념 대성전이 완성되었는데 성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성지 한 가운데 웅장하게 서있는 기념성당으로서 이 성당은 천주교 103위의 시성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고 기념성당 뒤쪽으로 난 십자가의 길에는 예수가 로마병사에게 붙잡혀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받고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기까지의 과정이 담겨져 있는 청동조각 15점이 서 있다.
김대건 신부의 무덤과 하악골(아래턱뼈)이 모셔져 있는 미리내성당, 김신부의 동상, 성모성당, 게쎄마니 동산(여기저기 나뒹구는 바위를 자연 그대로 이용한 동산)등을 돌아보는데 2~3시간이 소요된다.
미리내성지 가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무명봉을 넘어 다시 잠시 내려갔다 완만하게 올라 커다란 바위들이 늘어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해 본다.
그곳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금새 벤취쉼터들이 보이는 쌍령산 정상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잠시 쉬어 간다.
쌍령산(502.5미터)은 경기도 용인시의 원삼면과 안성시 고삼면과 양성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502미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양지현 편에 성륜산은 옛날 양지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데 성륜산은 쌍령산의 옛 이름으로 여기서 성륜이란 성스러운 바퀴 즉 불교에서의 법륜을 뜻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법륜은 불교에서 전륜왕의 금륜이 산과 바위를 부수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것에 비유하여 부처의 교법을 이르는 말이며 따라서 성륜산이란 마야산이나 반야산 및 문수산처럼 불교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 중반 이후의 해동지도, 여지도, 양지현읍지 등의 고지도나 지리지들에서는 성륜산 외에도 쌍령산이란 지명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것은 성륜산에 있던 쌍령사라는 사찰명과 관련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미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 항목에도 쌍령사는 성륜산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조선 후기 편찬되는 지리지나 고지도에서는 쌍령사를 확인할 수 없으며 단지 쌍령산 남쪽에 고려 때 백운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는 쌍운암 터가 쌍령사가 있던 자리로 추측될 뿐이다.
따라서 쌍령사라는 절이 있던 산의 이름이 본래 성륜산이었는데 적어도 조선 후기 이후부터 사찰은 사라지고 산 이름만 성륜산에서 쌍령산으로 변화된 것이 아닌가 추측되며 쌍령은 커다란 산봉우리 두 개가 서로 마주하고 있다고 하여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양지현읍지에는 쌍령산이 고동면 쌍령리에 있다고 했는데 쌍령 마을은 쌍령산과 관련된 지명으로 보인다.
쌍령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출발하니 잡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헬기장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기고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눈 쌓인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 평이하게 진행을 하니 등로 옆에 피어난 눈꽃과 상고대가 산객의 발목을 잡으며 조금은 더 여유롭게 걸어 보라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하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커다란 고사목 한그루가 보이는 430.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환상의 눈꽃 세상이 열려 있다.
잠시 눈꽃 세상에서 맥 잇기 산행을 잊고 즐기다 보니 가끔은 목적없이 이렇게 즐겨보는 시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 본다.
고사목봉에서 잠시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출발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등로 옆으로 보이는 관목 가지마다 하얀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나 산행의 즐거움은 배가 되지만 시간은 자꾸만 늘어나고 있다는 느낌이다.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긴 후 걸어 진행을 하니 억새와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죽은 헬기장에 도착을 하는데 이제는 그 기능이 상실되어 가는 느낌이다.
잠시 억새꽃을 살펴보며 옛 추억에 잠겼다 깨어나 빠르게 그 헬기장을 통과하니 그곳에도 역시 멋진 눈꽃과 상고대가 피어 있어 갈길 바쁜 이 산객의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너무나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가 이 산객의 눈길을 붙잡아 잠시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을 더 남겨 본다.
오랫만에 어릴적 동심으로 돌아가 자연과 눈을 즐기다 보니 잠시 잊고 지냈던 그리운 얼굴들이 떠 올라 눈시울이 붉어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시 정신 차리고 빠르게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여전히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 큰 어려움이 없고 그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는 아름다운 상고대와 눈꽃이 반겨주고 있다.
한동안 그렇게 아름다운 눈 세상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예지촌가는 갈림삼거리에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에 있는 너와 기와을 지붕으로 얹은 예지촌 민속마을로 들어서면 아이들은 탄성을 자아내며 눈을 반짝이게 된다.
1997년 봄에 문을 연 예지촌은 초가집, 너와집, 기와집 등 모든 주거 형태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장소이자 건물들이 지그재그로 놓여 그 사이사이 작은 공간들을 활용해 쉼터와 볼거리들이 마련된 작은 마당이 있다.
예지촌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눈꽃 세상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운무까지 드리워져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있어 갈길 바쁜 발걸음이지만 잠시 더 그 멋진 풍경을 즐겨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봉우리같지 않은 390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해 본다.
출발하니 그곳에는 또 다른 동화같은 눈 세상이 열려있고 동화속 주인공이 되어 올 겨울을 마음껏 즐기며 홀로 힐링도 해 보는 시간이다.
늘 시간에 쫒겨 정신없이 달렸던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갈길이 바쁜데도 자꾸만 발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는 시간이 늘어만 가고 있어 왠일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육체적인 고통보다 정신적인 평온을 되찾아 이렇게 여유를 가지게 된 일인지도 모르겟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길 바래도 보는 시간이었다.
잠시 후 눈 덮힌 바위지대를 통과하고 계속 걸어 전진하니 잡목속에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군계일학으로 서 있는 38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무명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환상의 눈꽃 세상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평이하면서도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그런 등로를 따르니 제법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나뭇가지 한쪽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377.5봉이라는 이저판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판독이 불가능해 보이는 삼각점도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을 쌍영산이라 적어 놨는데 국토지리원에는 아무 표식도 없는 삼각점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쌍영산(377.5미터)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와 양성면 미산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쌍지리의 쌍영마을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듯 보이는데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다.
정상에는 낡은 삼각점 하나만 있을 뿐 아무 표식도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산으로 방금 전 지나 온 쌍령지맥의 주봉인 쌍령산과 이름이 비슷해 헷깔리는 산이기도 하다.
쌍영산이라는 377.5 삼각점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눈꽃과 상고대가 반겨 준다.
잠시 커다란 참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밑둥이 잘려나간 고사목 하나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오늘 산행 중 처음으로 등로 좌측으로 쌍령 지나 경수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약간의 박무로 인해 아쉬움을 남기고 조금 더 걸어가니 눈 앞에 눈에 덮혀 있는 바위암릉이 나타나고 등로는 그 암릉 좌측으로 돌아 우회하도록 나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바위암릉을 좌측으로 우회해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굵은 하얀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산객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조심하며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열리는데 그곳에는 제법 큰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고 그 솔잎 위에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또 다른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누군가 앞서 걸어간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고 잠시 완만하게 걸어 올라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294 무명봉에 도착을 해 빛바랜 선답자의 띠지도 살펴본다.
무명봉을 지나 다시 사면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깊게 깔려 있는 낙엽 위에 하얀 눈이 쌓여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고 있지만 큰 어려움은 없는 등로이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좌측으로 쌍령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쌍령은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쌍지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뒷산에 높이가 비슷한 두 개의 봉우리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쌍령마을이 있는 쌍지리는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에 있는 리로서 마을 뒤로 쌍영산이 위치하며 하천의 물줄기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산문, 바디실, 절골, 풀무골, 쌍령 등이 있는데 산문은 산속에 있는 마을로, 입구에 큰 바위가 있어 마치 산으로 들어가는 문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바디실은 베를 짜는 바늘(바디)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절골은 절이 있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는 절터의 흔적만 약간 남아 있을 뿐 절의 형체는 찾아 볼 수 없다.
풀무골은 조선시대부터 광복 전까지 대장간이 있었던 곳으로 풀무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이와 같이 이름 붙여졌다.
쌍령 갈림삼거리를 지나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니 벤취쉼터들과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를 살펴보니 우측으로 염티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이다.
염티마을은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노곡리의 자연마을 중 한곳으로 소금장수가 많이 모여 살았다 하여 염티라 부르고 원노곡마을은 약 700여년 전쯤 이 곳에 많은 노인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노곡이라 했다가 500여년 전쯤에 세 개로 마을이 늘어나자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해서 이 마을을 원노곡이라 부른다.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정동과 봉지곡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또 다시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해 본다.
등로 좌측 쌍지리의 정동과 봉지곡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염티와 봉지곡 방향의 직진 등로를 따르니 가파른 내리막 경사면서 안전철봉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평이하게 이어지고 안부같지 않은 무명 안부를 통과한 후 넓은 비포장 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선답자들의 띠지를 살펴보고 조금 더 빠르게 걸어가니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268.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해 본다.
널부러진 간벌목들이 있는 봉우리를 지나 빠르게 걸어가니 사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사진에 담고 사거리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 본다.
무명안부를 지나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이곳에서 부터는 쌓여 있는 눈의 양이 현저히 줄어 들면서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245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다시 출발한다.
염티와 봉지곡이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232 무명봉를 통과하고 우측에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을 지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을 넘는다.
그곳에서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 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각기 다른 두개의 이정표가 서 있다.
우측으로는 염티마을로 좌측으로는 봉지곡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염티고개로서 염티고개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노곡리 염티마을에서 고삼면 쌍지리 봉지곡으로 넘어가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옛날에 소금장수가 많이 모여 살았다 하여 붙여진 노곡리 염티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이름이다.
염티고개가 있는 노곡리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리로서 낮은 산과 고개가 많아 골짜기가 많고 들이 넓은데 노곡리의 지명은 지형이 노루처럼 생겼다 하여 노곡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갓골, 염티, 원노곡 마을이 있으며 갓골마을의 지명은 마을에 갓(관)을 쓴 노인들이 많이 모였다고 하여 갓골이라 부르기도 하고 마을의 지형이 관의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중 튀어나온 부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갓끝이라 부르기도 한다.
염티마을은 소금장수가 많이 모여 살았다 하여 염티라 부르고 원노곡마을은 약 700여년 전쯤 이 곳에 많은 노인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노곡이라 했다가 500여년 전쯤에 세 개로 마을이 늘어나자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해서 이 마을을 원노곡이라 부른다.
넓은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염티고개를 지나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눈길을 걸어 오르니 등로 위에는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어 조심스럽게 올라 본다.
무명봉을 넘어 다시 커다란 참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무명안부로 내려갔다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는 등로이다.
잠시 후 뿌리가 통째로 뽑혀있는 커다란 참나무도 지나 꾸준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른 고사목이 꺽여 쓰러져 있는 210 무명봉을 통과해 빠르게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해 보는 시간이다.
부러진 고사목을 지나니 등로에는 발목 굵기의 잣나무 군락지가 짧게 나타나는데 등로 위에는 솔갈비가 깔려 있어 진행에 상당히 부드럽게 다가온다.
그렇게 잣나무 군락지를 따라 잠시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곧이어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258.4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등로 좌측으로 가까운 곳에 금병산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가 있는 곳이다.
금병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찾을 자료도 없고 삼각점이나 정상석도 보이지 않아 금병산은 포기하고 금병산이 있는 마을인 원향리를 찾아보니 월향리는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에 있는 리로서 고삼댐으로 인해 마을의 일부가 수몰되었으며 곳곳에 소류지가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향림, 다리골, 구면소 등이 있는데 향림은 주위에 수목이 많고 꽃이 향기로와 붙여진 이름이며 향나무가 많았던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다리골은 뒷산이 달의 형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구면소는 조선 때 양지군의 고동면사무소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높은 나뭇가지 위에 이정표를 걸어 놓은 맨발님게 묵념으로 감사함을 전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멋진 잣나무 사이로 나 있는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폐부속 깊이 상쾌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 마시고 빠르게 진행을 하니 잣나무 군락지가 끝이나며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눈 앞에 보이는 높은 송전탑을 바라보며 걸어 전진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는 그 송전탑 앞까지 께속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송전탑에 도착을 해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저 멀리 천안 아산쪽으로 몇 년 전에 홀로 걸었던 영인지맥의 영인산이라 생각되는 산군들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옛 추억을 더듬어 보고 그 송전탑을 지나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보는 시간이다.
송전탑을 지나니 잡목과 잡풀속에 등산로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뚜렷한 넓은 수레길처럼 나 있다.
잠시 커다란 잣나무를 지나 날등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또 다시 등로 옆으로 등산로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계속 넓고 뚜렷한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관목과 소나무가 적당히 혼재되어 있는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잣나무가 줄지어 늘어 선 멋진 잣나무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후 바위가 보이는 192 무명봉을 넘고 밤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위에 갑자기 삼각점이 보이는데 판독은 불가능한 삼각점인데 왜 이곳에 삼각점이 박혀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이다.
삼각점을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등로는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지나 눈 앞에 멋진 소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드넓은 필드가 펼쳐져 있는 마에스트로 골프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카트 포장도로로 내려가 한동안 그 포장도로를 타고 첫번째 골프장을 통과하는데 필드에는 하얀 눈이 덮혀 있어 골퍼는 물론 골프장 직원도 전혀 만나지 못하고 편안하게 골프장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골프장 내 카트용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저 멀리 영인지맥의 산줄기들도 같은 방향으로 뒤따라오고 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렇게 한동안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우측으로 마에스트로 골프클럽 건물이 나타나는데 아무리 살펴봐도 골퍼는 커녕 골프장 직원도 전혀 만날 수 없어 전세내듯 골프장을 활보하며 마음 놓고 통과하는 시간이다.
마에스트로 컨트리클럽은 가유리에 잇는데 가유리는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에 있는 리로서 하천이 곳곳을 흐르며 가유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유역, 무시막, 개울밭 등이 있는데 유역은 고려시대에 역마가 있었던 마을인데 역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무시막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커다란 대장간이 있었는데 일용품과 농기구는 물론 무기까지 만들어 쌓아 놓은 창고도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울밭은 마을 앞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 이웃마을 사람들도 이 개울에 와서 빨래를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에스트로 컨트리 클럽 건물을 지나 계솟 카트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호텔도 보이는데 손님이 없어 한가한 모습이다.
잠시 후 6번 홀의 얼어있는 저수지 옆을 통해 앞쪽으로 보이는 능선방향으로 걸어 이동을 하니 다시 카트용 포장도로를 건너 벗나무들이 식재되어 잇는 능선을 따라 봉우리로 올라 가 본다.
잡목이 우거진 능선을 타고 조심하며 오르니 선답자의 띠지가 반겨주고 곧이어 평이한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잡목과 쓰러진 고사목들을 피해 이리저리 조심하며 걸어 진행을 하니 오랫만에 빛 바랜 자연과송정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13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송정님을 생각도 해 본다.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절개지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그 절개지 상단부에 도착을 하는데 그 절개지 아래에는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절개지로 내려갈 수가 없어 좌측 사면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한동안 내려가며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82번 2차선과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방고개 넘어 올라야 할 절개지와 송전탑이 빤히 건너다 보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녹색철망이 보이는데 건물 벽이 있는 쪽으로 쪽문이 열려이어 가 보니 삼영푸드 건물 내로 이어지고 있어 그 삼영푸드 마당을 지나 정문을 통해 방고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곧이어 옛 도로인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COWON FIS 공장이 보이고 2차선 포장도로로 나가기 직전에 막국수 식당 입간판이 보이는데 다가가 보니 내년 2월까지 임시 휴일이다.
기대했던 막국수는 먹지 못하고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방고개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방고개(82번 2차선 포장도로)는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 가유리와 양성면 노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특별할 것 없는 고갯마루인데 마에스트로 주차장에서 도로를 타고 골프장 정문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방고개가 있는 노곡리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리로서 낮은 산과 고개가 많아 골짜기가 많고 들이 넓으며 노곡리의 지명은 지형이 노루처럼 생겼다 하여 노곡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갓골, 염티, 원노곡 마을이 있는데 갓골마을의 지명은 마을에 갓(관)을 쓴 노인들이 많이 모였다고 하여 갓골이라 부르기도 하고 마을의 지형이 관의 모양으로 생겼는데 그 중 튀어나온 부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갓끝이라 부르기도 한다.
염티마을은 소금장수가 많이 모여 살았다 하여 염티라 부르고 원노곡마을은 약 700여년 전쯤 이 곳에 많은 노인이 모여 살았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노곡이라 했다가 500여년 전쯤에 세 개로 마을이 늘어나자 그 중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이라 해서 이 마을을 원노곡이라 부른다.
맛집 막국수 입간판이 서 있는 방고개에서 어쩔 수 없이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에 앞에 보이는 4차선 차량 전용 포장도로를 무단 횡단해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아쉽고 안타까운 시간이다.
도로를 건너 앞에 보이는 시멘트 계단을 따라 절개지 상단부로 향하는데 오르다 올려다 보니 높은 송전탑 하나가 올려다 보인다.
잠시 올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사면 등로를 타고 힘들게 진행을 하니 능선으로 들기 직전 따뜻한 햇살이 들고 바람이 없는 곳에 잠시 배낭 내려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지나 온 방향의 마루금을 살펴 본다.
방금 전 지나온 삼영푸드와 다른 공장 건물이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마에스트로 컨트리클럽 그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쌍령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간식과 따뜻한 물로 허기를 면하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오르니 소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61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오르면서 봤던 송전탑이 바로 옆으로 서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싸리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지역을 넘어 잡풀과 관목들이 자라고 있는 능선을 따라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는 아직도 사람들이 통행이 가능할 정도의 안부처럼 보인다.
비포장 임도를 지나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이번에는 신안컨트리클럽 필드 옆 카드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로 내려가 또 다른 골프장을 여유있게 통과해 본다.
이곳 신안CC 역시 방금 전 통과한 마에스트로CC 처럼 골퍼는 커녕 골프장 직원도 보이지 않아 전세낸 듯 여유있게 편안히 걸어 본다.
1번과 9번 홀 사이를 지나 파3인 4번홀 옆 카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며 올라야 할 앞 봉우리를 올려다 보이 그곳 역시 절개지로 변한 풍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는데 골프 시즌에는 절대로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모습이다.
4번 홀을 지나 화장실 건물을 통과하고 2번과 3번 홀의 필드를 가로 질러 능선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필드는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백지의 도화지를 연상시키고 있다.
필드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가시나무가 자라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미끄러운 낙엽과 몸을 찌르는 가시나무를 요리조리 피하며 어렵게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잡목이 무성한 181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띠지들 중에는 돌구님 띠지도 보여 이미 다녀 가신듯 하다.
그 잡목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따라 조심하며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소나무 등로로 바뀌고 있다.
제법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편안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눈 앞에 깊은 무명 안부가 나타나 지도를 살펴보니 역시나 아무 표식도 없는 곳이다.
좌우를 살펴보니 골프장 관리를 위해 사람들이 제법 올라 다닌듯한 모습의 안부를 지나 잠시 오르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편안한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활엽수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넓은 등로를 따르니 등로 위에는 넓은 잎을 가진 활엽수 낙엽들이 발목까지 덮혀 있어 조심스럽게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끔 나타나는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며 빠르게 걸으니 눈 앞에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 앞에는 좁은 공터가 보이는데 그 공터 옆 나뭇가지에는 준.희님이 걸어 놓은 196.3봉 이정판이 반겨준다.
잠시 배낭 내려 과일을 먹고 목마름을 달랜 후 출발한다.
송전탑이 있던 196.3봉을 지나서도 등로는 여전히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푹신한 낙엽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옮기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송전탑이 보이고 곧이어 잡목들이 나타나는 좁은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234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름다운강산님의 붉은색 띠지가 보여 반갑게 인사 드리고 잠시 심호흡 한번 해 본다.
지난 홀대모 송년모임에서 잠시 인사를 드렸기에 더욱 반가운 띠지인데 이제 162지맥 산행도 조만간 마무리가 된다고 하니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곳은 또한 등로 좌측으로 봉황산(259.3미터)을 갈 수 있는 봉황산 갈림 삼거리인데 봉황산을 다녀 온다는 것이 트랙을 잘못 읽어 봉황산을 지나치고 정상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다 보니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었다.
이곳 봉황산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하고 봉황산이 있는 가유리를 찾아 보니 가유리는 경기도 안성시 고삼면에 있는 리로서 하천이 곳곳을 흐르며 가유저수지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유역, 무시막, 개울밭 등이 있는데 유역은 고려시대에 역마가 있었던 마을로서 역 주변에 버드나무가 많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고 무시막은 조선시대에 이곳에 커다란 대장간이 있었는데 일용품과 농기구는 물론 무기까지 만들어 쌓아 놓은 창고도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울밭은 마을 앞에 맑은 물이 흐르는 개울이 있어 이웃마을 사람들도 이 개울에 와서 빨래를 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다시 활엽수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어지러운 등로를 타고 잠시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른 골프장인 파인크리크CC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골프장은 카트 용 포장도로가 아닌 일반 차량 용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파인크리크 컨트리클럽 본관 건물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사진 몇장 남기는 시간에도 사람 하나 구경하지 못할 정도로 고요한 정적만 흐르고 있다.
골프 시즌이라면 상상도 못할 풍경이 눈이 내린 평일이다 보니 이 산객 홀로 전세 내 걸어 보는 시간이다.
PINE CREEK COUNTRY CLUB 본관 건물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변하고 잠시 후 레스토랑이라고 생각되는 건물 옆쪽에서 잡목이 우거진 도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가파른 잡목 등로를 헤치고 어렵게 오르니 길게 이어지는 돌담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산성터라 생각을 했는데 지도를 찾아 봐도 자료를 찾아 봐도 산성 흔적은 보이지 않아 잠시 후 확인해 보니 굴뚝들이 많이 보여 혹시 벙커를 보호하기 위한 돌담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돌담을 지나니 지독한 잡풀이 자랐다 말라버린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여러개의 굴뚝들과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그 공터를 지나 진행을 하니 등로는 다시 넓은 포장공터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 온 공터 방향으로 콘크리트 옹벽들이 보이고 그 가운데엔 철문이 굳게 닫혀 있다.
포장 공터를 지나 낙엽이 쌓여 있는 능선 등로로 들어 가 완만하게 오르니 삼각점이 박혀 있는 256.2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 옆 나뭇가지에 맨발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보인다.
그곳 정상을 지나 잡목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무명 안부를 지나고 다시 완만하게 올라 잔 고사목들이 흩어져 있는 18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하얀 눈이 조금 더 수북히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커다란 벗나무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골프장 가장자리의 카트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다 2번과 3번 그린을 건너 포장도로를 다시 만나고 그 포장도로를 건너 잡목이 우거진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힘들게 올라 본다.
나뭇가지에 찔리고 뺨때기를 맞으며 너무나 힘들게 그 잡목으로 우거진 절개지를 오르니 31번 송전탑이 보이고 곧이어 사람 키보다 조금 더 크게 자란 소나무들이 식재된 등로와 만나 걸어 보는 시간이다.
약간의 잡목들과 키 작은 소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 잡목이 보이는 잡목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낙엽이 푹신한 편안한 마루금을 따르니 멋진 식재된 듯한 소나무들이 자라는 160미터의 무명 묘지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 묘지에도 하얀 눈이 솜이불을 덮고 누워있는 듯 소복하게 쌓여 있다.
묘지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그곳에도 역시 키 작은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 소나무 잎 위에 하얀 눈이 쌓이면서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트리로 변해 있다.
잠시 후 32번 송전탑도 지나고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갈림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 안부이다.
지도를 보니 이곳은 고삼면 이현리와 양성면 난실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아직도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남아 있는 듯 보이는 고개이다.
등로 좌측으로 보이는 이현리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리로서 낮은 고개가 있다.
이현리의 지명은 뱃고개 밑에 위치한다 하여 뱃마을 또는 이현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배터마을 하나뿐이고 그 배터마을의 지명은 이 마을 입구에 배나무가 많다고 하여 배터라 부르고 있다.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잘 관리되고 있는 129 묘지봉이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돌아 오르니 수레길 같은 넓은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리끼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넓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하니 눈 앞에 길게 이어지는 묘지지대가 펴려지고 그 묘지들을 우측에 두고 좌측 뒤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용인쪽 보다는 현저하게 줄어 든 눈이 산행하기에 좋은 조건을 주고 있기에 체인젠을 벗어 보지만 미끄럽고 낙엽으로 인해 진행이 쉽지 않아 다시 체인젠을 신고 진행을 서둘러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진행하다 묘지지대 끝자락에서 지나 온 방향의 마루금도 살펴보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무명 안부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무명 안부를 지나 나타나는 소나무 사이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독도는 우리땅이란 띠지를 사용하는 선답자가 띠지에 134.3미터 봉이라 적어 놨다.
지도상 134.3봉으로 이제 뱃고개까지 그리 멀지 않았음을 느끼는 시간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거침없이 빠르게 걸어가니 진행 속도가 무척 빠르다.
잠시 후 공사중인 포크레인 소음이 강하게 들리기 시작하고 그렇게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 안부이다.
하지만 등로 우측으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이어지며 제법 사람들의 왕래가 있을 법한 고갯마루였지만 이름은 없는 곳이기도 하였다.
넓은 무명 안부를 지나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죽어있는 잡풀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잡풀등로를 지나니 낙엽송 지대를 통과해 좌측으로 이현리 마을이 보이고 등로 바로 옆으로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등로 가까이까지 올라 와 있는 풍경도 보인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눈 앞에 공사현장이 나타나고 몇대의 포크레인이 산을 깍아 무엇인가 조성하는 듯 보이는데 아마도 전원주택 단지는 아닐까 생각되는 공사장이다.
정상 마루금은 공사를 하면서 쌓아 둔 나뭇가지와 흙으로 인해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등로 우측으로 새로 조성해 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마지막 128봉은 이제 공사로 인해 사라질 듯 보이고 그 봉우리를 좌측에 두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계속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 아래로는 45번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풍경도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 45번 포장도로 지나 진행 방향의 마루금과 뱃고개를 살펴보고 조심하며 그 절개지를 우측으로 크게 우회하며 내려가니 드디어 45번 4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도로에도 역시 공사중이라 조심하며 도로 따라 좌측 주유소와 세방전지 방향으로 걸어 진행해 본다.
주유소 가기 전 좌측으로 공사중인 곳에서 차량 통행이 뜸한 시간을 골라 45번 4차선 포장도로를 무단 황단해 통과하고 지엠아이라는 입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높은 콘크리트 옹벽을 올라 비즈컨설팅이라는 커다란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잡풀 등로를 타고 어렵게 진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도로는 이현리와 장서리를 이어주는 4차선 도로로서 장서리는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에 있는 리로서 골짜기가 많은 지역인데 장서리는 약 800여년 쯤 정상준과 오복덕이란 사람이 개척한 마을로 마을의 지형이 서쪽으로 길게 뻗쳐있다 하여 장서라 이름 붙였다.
자연마을로는 상장서리와 하장서리가 있으며 상장서리는 정상준이 개척한 마을로서 위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하장서리는 오복덕이 개척한 마을로서 아래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비즈컨설팅이라는 커다란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의 잡풀지대를 따라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한여름 잡풀과 가시나무들이 자랐을 땐 거의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등로이다.
둔덕을 넘어 조금 더 걸어가니 거원페이퍼라는 공장 마당 앞으로 내려가고 그 공장 건물을 나오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뱃고개에 도착을 한다.
뱃고개는 위에서 이미 설명을 했던 이현리의 옛 지명인 뱃마을 또는 이현이 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많은 선답자들이 이곳 뱃고개에서 첫 구간을 마무리하고 세구간으로 나눠 진행을 하였지만 시간을 보니 만세고개까지 진행을 해도 충분할 것 같아 일단 성은리고개인 만세고개까지 걸어 보기로 한다.
도로를 건너 잡목이 우거진 절개지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녹색 철조망이 보이고 살펴보니 그 안쪽으로는 커다란 세방전기 공장 건물이 보인다.
조심하며 그 녹색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돌아 오르니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는지 잡목들이 우거져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 녹색 철조망이 끝나고 계속 이어지는 잡목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잡목속에 커다란 소나무 두그루가 보이는 88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지나 다시 오르니 자작나무인 듯 보이는 나무들이 빼곡하게 보이는 등로를 따라 어렵게 120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선답자들 띠지들이 보여 살펴보니 잘 일고 있는 금곡님 띠지가 빛바랜 모습으로 보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출발한다.
다시 낙엽이 깊게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 진행을 하니 여전히 잡목과 소나무가 혼재되어 잇는 등로가 나타나는데 매쾌한 냄새가 코를 자극해 조금은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에 높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앞으로는 드넓은 공단지대에 수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아마도 그 공단 건물중에서 나는 냄새인듯 싶은데 어떤 냄새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잠시 공단지역 건물들을 살펴보고 진행 방향의 절개지 좌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확인하며 걸어 진행을 이어가 본다.
공장 건물들 좌측 능선 위로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확인하고 무명봉을 출발하니 잘 관리되고 있는 묘지 한기를 지나 잠시 지나 온 마루금도 뒤돌아 보니 공장 건물을 짓기 위해 절개된 산사면이 가파르게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 놓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절개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낙엽 등로를 따르니 잡목이 우거진 짧은 등로를 통과하고 커다란 밤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11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곧바로 출발해 본다.
그 밤나무가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다시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사이로는 잡풀들이 자랐다 죽은 풀섶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를 지나 잡풀지대를 통과하니 나즈막한 무명 안부가 보이고 그 안부를 지나니 또 다른 묘지들이 보인다.
묘지 뒤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잠시 후 좌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 무명 안부 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묘지 지대가 끝나고 낙엽 깔린 능선 등로로 들어가 커다란 밤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15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이제부터 잠시 동안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등줄기에 약간의 땀방울을 흘려 본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커다란 활엽수가 서 있는 180미터의 주능선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커다란 참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83.6봉에 도착을 해 진행 방향으로 살짝 보이는 마루금을 확인해 본다.
낙엽이 깊게 깔린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바쁘게 걸어가니 앞으로 걸어 올라야 할 신선봉 쪽 마루금이 생각보다 높게 올려다 보여 조금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나즈막한 안부로 내려가니 제법 그럴듯한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자세히 보니 옛날 서낭당이 있었을 법한 그런 안부인데 지도를 보니 아무 표식도 없이 그냥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로만 표기가 되어 있다.
그 안부를 지나 다시 한번 가파르게 오르니 212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제 등로 위에는 흩뿌리듯 깔려있는 눈이 전부이고 낙엽이 미끄러워 더욱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시간이다.
평이하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가니 벤취쉼터 4개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지나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낙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 평이한 등로를 만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공터에 통나무 벤취 2개가 설치되어 있는 26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속보로 걸어가니 지도상 286.1봉에 도착을 해 잠시 뜨거운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간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피크닉장 갈림 이정표가 보이고 그 우측 나뭇가지에는 맨발님이 걸어 놓은 286.1봉 이정판이 반겨 준다.
그 봉우리를 지나 가파르게 걸어 내려가니 양성산림욕장과 자연보호헌장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오르니 고사목이 서 있는 26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고사목봉을 지나 내려가니 벤취쉼터 4개가 설치되어 있고 등로 좌측 방향으로 산림욕장과 피크닉장 가는 표시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 이정표와 벤취쉼터가 있는 안부를 지나 출발하니 등로는 다시 오르막 낙엽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진행 방향에는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이 긴 그림자를 만들기 시작하고 잠시 후 낙엽이 깊게 깔려 있는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깃대 하나가 보이는 낙엽 깔린 헬기장을 지나 다시 활엽수가 줄지어 서 있는 등로를 따르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통과하고 무명봉에 도착을 하니 두껍게 깔려 있는 낙엽 위에 엷은 하얀 눈이 내려 앉아 길라잡이를 해주고 있다.
다시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Y자 모양의 소나무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평이하게 걸어가니 322.3미터봉인 신선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 표식도 없이 선답자의 빛바랜 띠지만이 이곳이 신선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전국적으로 많은 신선봉이 있는데 유독 이곳 신선봉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쉬운 시간이기도 하였다.
신선봉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나즈막한 교통호 같은 고랑이 나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하다.
잠시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가지가 세가닥으로 뻗어 잇는 참나무가 서 있는 289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걸어 내려가니 이곳도 낙엽이 깊게 깔려 있어 주의가 필요하고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는 296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한숨을 쉬어 본다.
그 무명봉을 통과하고 평이한 낙엽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에 그림자의 길이는 자꾸만 더 길어지고 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 원형 벙커가 보이는 무명 안부를 지나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옆으로 공군부대장의 접근금지 경고판과 그 옆으로 군사기지보호구역이라는 콘크리트 말뚝이 서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군부대 안에 있어 오르지 못하는 천덕산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이번에는 지뢰매설 경고 및 안내판이 산객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그 경고판을 지나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원형 철조망이 나타나는데 선답자들이 지나간 곳으로 철조망이 열려있다.
그 원형 철조망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제 진행 방향의 잡목 사이로 짧은 하루해가 기울어져 가고 저 멀리 군부대에서는 군견의 울음 소리가 귓전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지뢰매설 경고판이 다시 서 있고 그 경고판을 지나 오르니 저 멀리 억새들을 지나 군부대 담장과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타이어 계단을 지나 오르니 군부대 담장과 철조망을 만나고 그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르니 군부대 후문을 지나 정문에 도착을 한다.
잠시 정문을 살펴보니 군부대 장교가 나와 이곳은 군사지역이라 통행이 불가능하다며 빨리 내려가라고 주의를 주는데 다시 오르라고 해도 오를 일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답변을 해 주고 정문 앞으로 나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마지막 날머리를 향해 걸어 내려가 본다.
이곳 군부대 안에는 천덕산(322.3미터)이 있는데 천덕산은 경기도 안성시의 북서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324미터이며 양성면과 원곡면에 걸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천덕산은 현 서쪽 2리에 있는데 진산이다 라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한다.
기록에서 보듯이 천덕산은 조선 시대 양성현의 진산으로 이 지역의 상징적 중심이 되는 산으로서 천덕은 모든 만물을 생성케 하는 하늘이나 임금님의 큰 덕을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부터 산행 날머리까지에는 이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은 지루하게 걸어 내려가야 한다.
한동안 그 포장도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천덕산 군부대가 올려다 보이고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걸어 내려가니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나타난다.
그곳 옆에서 배낭 내려 스틱을 접고 배낭을 새로 정리한 후 조금 더 걸어 가니 가파른 내리막 도로를 지나 23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성은리고개 일명 만세고개에 도착을 해 쌍령지맥 첫 구간을 무탈하게 에정된 시간보다 일찍 마무리를 해 본다.
만세고개(성은리고개)는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과 양성면을 잇는 만세고개는 지명 이름을 따 성은리 고개로도 불리며 1919년 기미년 음력 3월 1일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해 만세 시위가 시작된 곳으로 농민 2천여 명은 뜨거운 피를 흘리며 조국의 독립을 외쳤던 고개로 지금은 3.1운동을 기념해 만세고개로 불리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은리고개 일명 만세고개에서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그 23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우측으로는 약수터 포장마차가 보인다.
그곳으로 들어가 칼국수에 동동주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평택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모르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고 도로를 따라 계속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후 300미터 전방에 양성과 평택으로 갈리는 갈림 삼거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23번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발바닥이 불이 날 정도로 고통이 밀려 온다.
그곳을 지나 계속 2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안성3.1운동기념관까지 50미터 남아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보여 그곳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잡목을 헤치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원곡 양성 3.1독립항쟁기념탑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안성 3.1만세운동 기념관은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만세로 868번지에 있는 3.1만세운동 기념관으로 안성에서 일어났던 원곡, 양성 독립운동은 평안북도 의주군, 황해도 수안군과 함께 민족대표 33인이 재판에도 인용될 만큼 격렬했던 3.1운동 3대 실력항쟁지이다.
특히 다른 지역과 연결해 조직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닌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전 주민이 참가했던 운동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의를 두고 있다.
3.1운동의 역사를 되새기고 안성지역의 순국선열들의 희생정신과 독립정신을 기리기위한 이 지역의 성역화사업으로 안성 3.1운동기념관을 건립하였다.
이 기념관은 후손과 후학들에게 국가와 민족과 동포가 무엇인가를 일깨우고 자랑스런 선열들을 민족의 긍지로 여기며 그 분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스스로 삶의 표본으로 세우는 산교육의 장이 될 것이다.
그렇게 그곳 안성3.1운동기념관을 한바퀴 돌아보며 사진 몇장 남기고 정문으로 나가니 3.1운동기념관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그 앞으로는 45번 4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넘어로 주차장과 식당 건물들이 보인다.
최종 배낭을 정리하고 방풍 자켓을 입고 잠시 기다리니 평택 가는 8번 버스가 3분 후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뜨고 잠시 기다렸다 그 8번 버스를 이용해 평택역까지 이동하여 지하철을 이용해 손쉽게 귀가를 하였다.
생각보다 고도 차이기 크지 않았고 등로도 대체로 양호하였으며 특히나 걱정을 하였던 골프장 세군데 모두 사람 구경 한번 하지 못하고 평범하게 통과할 수 있어 예상보다 일찍 산행을 마칠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오늘 하루 일찍 귀가하여 소맥 두잔으로 피곤함을 날리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내일 하루 더 내려 와 쌍령지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이번 주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 이렇게 스스로에게 힐링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특별한 날로 기억하며 앞으로도 더 멋진 삶과 산행이 되기를 바래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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