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경기도 연천군의 왕재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7년 10월 21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고 화창한 전형적인 가을 산행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9도에서 영상 22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연천군청-6번 2차선 포장도로-읍내리고개(사각정자, 망곡산둘레길과 군자산둘레길 표지판) 이정표군자산 둘레길 정자 2.5 Km와 성황당 3.9 Km,
군자산 둘레길 선곡리 논골연못 3.2 Km와 부처골 5.4 Km, 읍내리마을 0.6 Km와 차탄리마을 2.0 Km, 망곡산공원 둘레길 1.5 Km와 상리 약수터
둘레길 4.0 Km)-시멘트 포장도로-군자산 둘레길 안내판-군자산 둘레길 종합안내도와 벤취 쉼터 및 이정표-비포장 임도 사거리(우측 교회)-
1차선 포장도로-군자산둘레길 안내판에서 능선진입-옥계배수지 뒤 능선-160미터 삼각점-출입금지 안내판-군자산 둘레길 안내판과 이정표-
인삼포(등로 우측)-192미터 벤취쉼터2와 이정표(읍내리고개 0.9 Km, 군자산 둘레길 정자 1.6 Km와 성황당 3.0 Km)-비포장임도-콘테이너 박스-
읍내리 샘고개(군자산 둘레길 안내판) 이정표-계단과 교통호-벤취 쉼터1-산나물 약초 채취금지 경고판-벤취 쉼터1-잡목구간-비포장 임도-옛
군부대 철문-군자산 갈림삼거리(246미터)-비포장 임도-군부대 철문 통과-군부대초소와 산불감시초소-조망처-탄약고-조망-군부대 철문 통과-
헬기장-시멘트 포장도로(조망)-능선진입(적사함과 반사경 및 전봇대)-쇠사슬 안부-비포장 임도-성황당 안부-반남박씨 세장산-밭 경작지-
232.12 삼각점봉(녹슨 철구조물과 띠지들)-잡목구간-비포장 임도-전주이공 묘지들-시멘트 포장도로-부처고개(동물이동통로, 사각정자와
벤취쉼터)-비포장 임도-벌목 후 조림지 능선-잡목구간-벙커-207 웅덩이 무명봉-웅덩이 무명봉2-경주최공 묘지 위 조망-칡넝쿨지대-녹슨
철조망-잡풀 비포장 임도-159 무명봉(지독한 칡넝쿨봉)-진은로 2차선 포장도로(왕림리 한국베데스다)-시멘트 포장도로 후 비포장 임도-군 훈련
안내판-능선진입-154 삼각점봉(336 FOB)-공로비-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우측)-146 무명봉-비포장 갈림사거리-군 훈련 안내판-149
콘테이너 박스와 새 묘지2기-비포장 임도-콘크리트 벙커-거대 인삼포-149 웅덩이 무명봉(삼각점 망실)-능선진입-159 삼각점봉과 산불감시
초소-군남리 2차선 포장도로(주영케미칼과 정주물류)-군남배수지공사현장-능선진입-130 소나무 무명봉-군부대 철조망-군부대 철조망과 이별-
교통호-강릉김씨 가족묘-137.5봉-파란 철조망-139 무명봉-153 벽돌 구조물봉-2차선 포장도로(대전차 방어벽)-에스유농원입구-시멘트
포장도로-민가-철조망 우회-철조망-이정표(제1,2,3 등산로 표시)-황지리 생활권 숲길 안내도와 이정표-138.2 철조망봉-황계정 육각정자-
급경사 내리막 등로-경주이공묘지 조망-제1등산로입구 이정표-비포장 임도-황지리 생활권 숲길 안내도-시멘트 포장도로-민가-논 경작지-
남계1리 표지석과 버스정류장(2차선 포장도로)-남계1리 마을 통과-남계로-남계1리 문화복지회관-꽃벵이 킹팜(굼벵이 농장)-정미소-두리
농산물 입간판-남계2리 도로표지판(신설 4차선 포장도로 통과)-한반도 통일미래제단-2차선 포장도로-축사-남계2리 통과-합수머리꼭지길
이정표-은혜수양관과 GMI 선교사훈련원 이정석-제주고공 묘지-장독대 농장-한탄강 주상절리길 종합안내도-한탄강과 남계대교 도로 표지판-
도감포 이정판-축사-남계대교 통과-도감포 합수점-지맥산행 종료-남계리 지나 황지리 버스정류장까지 이동-산행종료
산행거리 : 대부분 비포장 임도와 포장도로를 따라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하여 18.8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왕재지맥 산행 읍내리고개에서 도감포 합수점까지 17.27 Km
접속구간 총 01.60 Km (연천군청에서 읍내리고개까지, 단 도감포에서 황지리 버스정류장까지 04.43 Km는 제외)
산행트랙 : 20171021 왕재지맥제3구간 읍내리고개-도감포.gpx
산행시간 : 산행하기 좋은 가을날씨에 뚜렷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여 05시간 14분 (06시 30분에서 11시 45분까지)
도감포 합수점에서 황지리 버스 정류장까지 42분은 제외 (황지리 버스정류장까지 12시 27분까지)
교통편 : 애마와 대중교통을 이용해 다녀 옴
갈때 - 애마를 이용해 연천군청 주차장까지 이동
연천군청에서 읍내리고개까지 도보로 이동
올때 - 도감포 합수점에서 황지리 버스정류장까지 도보와 히치 하이킹으로 이동
황지리 버스 정류장에서 58번 연천 공영버스로 전곡 버스터미널까지 이동
전곡 버스 터미널에서 39-2번 연천 공영버스로 연천군청까지 이동
연천군청에서 애마 회수해 빠른 귀가
왕재지맥이란 ???
왕재지맥은 한북정맥 장암산(1063봉)에서 분기하여 임진강과 한탄강 경계를 이루며 휴전선을 넘어 한탄강이 임진강에 합수하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 도감포에서 감악지맥과 마주보며 끝나는 도상거리 99.4 Km되는 산줄기인데 장암산 분기봉에서 보개지맥이 분기하는 소이산(362봉)까지 55 Km는 이북 또는 군사분계선부근이라 갈 수 없고 나머지 44.4 Km중 야월산(485.9봉)분기점 아래 고개부터 천덕산(476.7봉) 지나 376번도로 부령고개까지는 출입금지구역이라 갈 수 없으니 실제로 갈 수 있는 구간은 39.5 Km 정도된다.
왕재지맥에서 분기하는 지맥은 고성지맥(68.8 Km.이북)과 보개지맥(31.2 Km)이 있다.
현재 남한 산경도에서 전구간을 완주할 수 없는 산줄기는 백두대간 향로봉(1287.4봉) 북쪽 943.2 Km, 한북정맥 수피령 북쪽 73.2 Km, 도솔지맥 돌산령 북쪽 35.3 Km, 향로지맥 전구간(46.1 Km), 왕재지맥 소이산(362봉) 북쪽 55 Km, 적근지맥 분기점에서 1056.1미터봉까지 16 Km가 되겠다.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따라 빠르게 진행하여 도감포에서 마무리를 하였지만 많은 아쉬움도 함께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늘도 또 새롭게 시작한 민통선 인근의 왕재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시간이지만 오늘 저녁에 다시 경북 의성으로 내려 가 보현지맥 산행을 이어가야 하기 때문에 교통편으로 약간의 고민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선답자의 산행후기를 살펴보니 정상적으로 진행하여 7시간 전후로 걸렸고 여름철 칡넝쿨 때문에 고생하면 약 10시간 이상도 예상이 되기 때문에 홀로 빠르게 진행한다 해도 약 7시간 정도를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가고 오는 교통편까지 계산을 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밤에 출발하는 산악회 버스에 탑승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일단 새벽 일찍 집에서 출발해 애마를 이용하여 산행 들머리인 연천군청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일출 전 산행을 시작하여 도감포에서 산행이 마무리되는 시간을 봐 가면서 가능하면 도보로 버스 정류장까지 되돌아 나와 버스로 연천군청까지 이동하여 애마를 회수한 후 귀가를 하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일 것 같아 일단 애마로 연천군청까지 가 보기로 한다.
새벽 4시 30여분에 집에서 출발하여 동두천시내의 신촌설렁탕 식당에서 설렁탕 한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연천군청 주차장으로 들어가니 토요일 새벽이라 그런지 주차장도 텅텅 비어있다.
애마를 주차시키고 산행 준비를 하여 연천군청 앞 주차장을 출발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6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는 시간인데 이제서야 여명이 밝아오고 주위 사물들이 분간될 정도로 하루의 시작이 많이 늦어지고 있는 계절이다
생각보다 편안하게 잘 정리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군부대 철조망 문이 굳게 닫혀있는 시멘트 포장도로 끝자락에 도착을 해 선답자들이 진행하였던 철조망 문 좌측을 살펴보니 한여름보다는 기세가 조금 꺽인듯 보이지만 여전히 뚫고 진행하기에는 큰 부담으로 다가와 잠시 고민하다 굳게 닫혀있는 군부대 철조망 문을 흔들어 확인해 보니 닫혀있는 두 문 사이로 틈이 벌어지고 그 틈 사이로 몸을 밀어 넣으니 들어 갈 수 잇을 것 같아 일단 스틱과 배낭을 먼저 군부대 내부로 넣어 놓고 두 문 사이를 최대한 벌려 몸을 넣으니 힘은 들지만 들어간다.
기분 좋게 그 철조망 문을 통과 해 우측 계단을 타고 교통호와 벙커있는 곳으로 올라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내려 와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그 임도 좌측으로 또 다시 방금 전 즐겼던 풍경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해 마음 놓고 한동안 조망을 즐기고 출발한다.
바로 눈 앞에 설치된 군부대 철조망 위로는 지독한 칡넝쿨과 잡목들이 우거져 잇고 그 아래 이름 없는 나즈막한 봉우리들 넘어 차탄천에서 올라 온 새벽 안개가 엷게 드리워져 있는 보개지맥 마루금 뒤로 오래전 추억을 쌓았던 종자산과 그 우측인 남쪽으로 명성지맥 끝자락쪽에 위치한 보장산이 아른 거린다.
생각지도 못했던 아름다운 아침 풍경과 조망에 이곳이 군부대 철조망 안으로서 그 군부대를 무단 출입한 민간인임을 잠기 망각하는 시간도 가져 본다.
그렇게 아쉽지만 기대하지 못했던 환상의 조망을 즐기며 생각보다 잘 정비된 마루금을 따라 빠르게 진행을 하니 232.12 삼각점봉과 부처고개 그리고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도 통과를 하는데 시간을 보니 예상했던 시간의 절반 정도 밖에 소요되지 않고 있어 두 눈을 의심하는 시간이다.
다시 비포장 임도의 군 훈련 이정판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해 154 삼각점봉을 넘고 159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 지점 확인 후 잠시 잡목 사이로 지나 온 등로를 살펴보니 저 멀리 아직도 어렵게 통과한 군자산 정상부의 군부대가 일출 후 약간의 박무속에 이제 이별을 준비하며 인사를 건네고 있다.
분단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저 군자산 정상부에 위치한 군부대 때문에 정상은 다녀오지 못했지만 선답자들이 악몽 같았다는 좌측 철조망 아래 지독한 칡넝쿨 지대를 피해 전신주가 설치된 편안한 비포장 임도를 따라 무탈하게 지나온 군자산을 이제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아쉬운 마음을 담아 잠시 줌으로 당겨 살펴보는 시간은 아쉬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다시 군남리 배수지 공사가 한창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진행을 하고 조심스럽게 철조망 능선을 따라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대전차 방어벽이 설치되어 있는 2차선 포장도로도 통과를 한다.
군부대 시설물들이 즐비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등로 우측으로 민가 두채가 보이는 군부대 철조망이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나오셔서 그쪽 마루금 방향으로는 등로가 없다고 하면서 올라 온 방향으로 뒤돌아 내려가야 한다고 말씀을 하신다.
다른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고 하니 그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지나간 흔적이라며 길이 없다며 그곳은 약초를 심어 논 곳이라 들어가면 안된다고 한다.
사정 이야기를 하고 우측 끝자락으로 철조망이 사라진 지점 좌측 능선으로 내려가 안부를 지나 어렵게 군부대 철조망으로 복귀를 해 군부대 내에 보이는 137.5봉을 넘어 진행을 하니 드디어 황계정이라는 육각정자를 지나 내려가다 만나는 왕재지맥 마지막으로 이어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이 산객의 작은 가슴을 울리고 있다.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시멘트 포장도로와 일반 포장도로를 따라 발바닥이 아플 정도로 걸어 진행을 하니 남계1리와 2리를 가르는 새로 건설된 4차로 포장도로를 지나 드디어 왕재지맥 바지막 구간 지점인 도감포에 도착을 해 우측 임진강과 좌측의 한탄강이 합치는 두물머리에 도착을 해 3구간으로 나눠 진행된 왕재지맥 마루금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는 시간이다.
상당 부분이 이북에 있고 또 일부는 민통선 안으로 이어져 제대로 된 마루금 잇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최북단에 위치한 군부대와 근부대 시설물들로 가득한 마루금을 찾아 걸었던 시간들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고 가슴속 깊이 남겨질 것 같은 그런 느낌으로 걸었던 시간들이었다.
남계대교 아래에서 한탄강과 임진강 물이 합쳐 하나의 물줄기를 만들어 유유히 흐르는 저 멀리 보이는 동이대교를 마지막으로 왕재지맥 산행을 마치고 다시 걸어 왔던 남계1리 쪽으로 걸어 오르며 연천에서의 시간을 갈무리 해 본다.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간에 드디어 연천군청 안 주차장에 도착을 하고 잠시 산랭 준비 후 군ㅌ청 정문을 나서 며 뒤돌아 서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오래 전 젊었던 시절 이곳 연천에서 군대 생활을 했기에 연천이란 이름은 귓전에 낯익는데 군청이 있는 이곳 연천읍에는 이번 왕재지맥 산행을 위해 들렸던 것이 처음일 정도로 자주 올 수 잇는 곳이 아니었다.
연천읍은 경기도 연천군의 동부에 위치한 읍으로 차탄리, 현가리, 읍내리 등 모두 10개의 법정리를 관할하는데 현재의 연천읍 일대는 고려 시대에 연주 또는 연천이라 불리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연천현 현내면에 해당하던 지역으로 당시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시대에 연천현 현내면은 끝이 20리이다라고 하였고 여지도서에서는 당시 현내면에 속하였던 자연마을의 위치가 수록되어 있는데 가장 먼 무수동리가 관문으로부터 동쪽으로 30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현내면을 군내면으로 개칭하였고 1914년의 행정구역 개편시에 연천군 동면을 편입하였으며 1938년에 연천군 군내면이 연천군 연천면으로 변경되었고 1979년에 연천군 연천읍으로 승격하였다.
1989년에 포천군 관인면의 부곡리를 새로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연천읍은 동쪽으로는 포천군 관인면, 남쪽으로는 전곡읍과 청산면 및 포천군 창수면, 서쪽으로는 군남면과 중면 그리고 북쪽으로는 신서면과 경계를 형성하고 있는 연천군 행정의 중심지역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38선 이북에 속하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에 수복되었으며 경원선의 연천역, 연천향교, 연천중학교, 연천고등학교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몇 시에 되돌아 와 애마를 회수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길 바라면서 왕재지맥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연천군청을 나와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고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읍내리고개 방향으로 걸어 들어간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보면 이곳에서 연천택시를 이용해 읍내리고개로 가면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게 도착할 수 있지만 지난 주 천천히 걸어 내려오니 거리도 채 2 Km 가 되지 않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기에 오늘고 천천히 걸어 오르며 상쾌한 아침 시골 공기를 마음껏 마셔 보기로 한다.
무인 철도 건널목을 지나 우측으로 벼 수확이 끝난 들판 넘어 올라야 할 읍내리고개 방향을 살펴보며 오르는 시간이 상쾌하면서도 즐거운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SUV 한대가 오고 있어 큰 기대감 없이 히치 하이킹을 시도하니 세워주며 타라고 하시는데 아저씨 두분이 어느 공사 현장을 가신다며 산행 차림의 이 산객이 이상했던지 이것저것 물어 온다.
잠시 후 산행 들머리가 있는 읍내리고개에 도착을 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내려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고마우신 아저씨 덕분에 새벽부터 약 15분 정도 절약을 하고 보니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를 느껴보지만 여전히 긴장감까지 내려 놓을 수는 없는 순간이기도 하다.
읍내리고개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과 군남면 옥계리를 이어주는 6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이다.
6번 2차선 포장도로인 이곳 군자산 입구가 있는 읍내리는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은 본래 연천현 현내면의 지역으로 조선시대 연천현의 관아가 있어 읍내가 되므로 읍내리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현내면이 군내면으로 개칭되면서 군내면 읍내리가 되었으나 1945년 8·15 광복 직후에 3·8선 북쪽에 위치하여 공산 치하에 놓였다가 6· 25가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 임시 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오늘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2개 반, 1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주 내려 온 마루금과 오늘 진행해야 될 시멘트 포장도로 그리고 이정표와 도로 표지판 및 사각정자를 사진에 담고 앞에 보이는 도로 우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또 다른 미지의 길을 찾아 떠나 본다.
잠시 산행 준비 후 군자산 둘레길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그 입구에는 읍내리와 차탄리 마을까지 방향 표시와 함께 거ㅏ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천천히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휘어진 철관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군자산둘레길이란 작은 이정판도 보이는데 그곳에서 잠시 도로 좌측을 살펴보니 진행하다 잠시 중단된 보개지맥 뒤 향로봉 능선 위로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잠시 더 기다렸다 일출을 보고 출발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바쁘다 보니 일출은 포기하고 산행 마무리만 생각하며 곧바로 출발을 한다.
잠시 더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그 공터 우측으로는 군자산 둘레길 종합안내도와 이정표 그리고 벤취 쉼터들이 보인다.
사진 몇장 더 남기고 군자산 둘레길 정자와 성황당 방향의 이정표를 따라 다시 출발을 해 본다.
공터를 지나 내려가니 갈림사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선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교회 십자가가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직진 방향의 산양산삼 재배지로서 출입을 금지한다는 플랭카드가 걸여 있고 차량 통제 철사줄이 설치되어 있는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임도는 다시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다.
도로 우측으로 군남면 선곡리 마을을 살펴보며 오르니 도로 좌측에 군자산 둘레길 안내판이 서 있고 정면 방향으로는 철문이 굳게 닫혀있는 붉은 건물이 올려다 보이는데 바로 옥계배수지 건물이다.
선곡리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있는 리로서 본래 연천현 남면의 갈묘리 지역으로 자연마을로는 가니골(세곡동), 갈묘동, 개무더미(견묘동), 뱀바리(사족동), 선유동 등이 있으며 가니골은 가는 골짜기로 6·25전쟁 전에는 동래 정씨가 마을을 이루며 살던 곳이었다.
갈묘동은 고려시대에 갈씨의 묘가 많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하고 개무더미는 뱀바리 동쪽에 있는 선곡리의 중심 마을로 임진왜란(혹은 병자호란) 때 부근의 전투에서 전사한 적군의 시체를 모아 큰 돌무덤을 만들었던 곳이라 하는데 당시에는 왜를 개에 비유했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나 무덤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뱀바리는 원등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옥녀봉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뱀의 발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하고 선유동은 전설에 의하면 군자산에서 신선이 내려와 바둑을 두며 노닐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약간의 안개가 드리워진 마을 풍경들이 마치 예술 작품처럼 내려다 보인다.
옥계배수지 직전 도로 좌측에 서 있는 군자산 둘레길 안내판 옆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다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작은 군자산 둘레길 이정판을 지나 오늘 처음으로 160 삼각점봉을 만난다.
경기 335번이라는 조금은 특이한 명칭과 번호를 부여 받은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 아래 철조망 넘어로 붉은 건물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방금 전 능선으로 오르기 전 만났던 옥계배수지 건물이다.
옥계배수지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능선을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잘 벌초가 되어 있는 묘지를 지나고 떨어진 낙엽들이 제법 쌓여 있는 등로를 따르니 또 다시 나타나는 묘지 뒤로 등로는 이어지고 있있는데 그 옆으로는 연천군에서 세운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이는데 주된 이유는 지정된 숲길 진행과 임산물 체취 금지가 그 주된 이유이다.
잠시 후 자작나무 지대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곳에는 군자산 둘레길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다.
군자산 둘레길 안내판과 이정표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르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잘 나 있어 현재까지는 진행에 큰 무리가 전혀 없었다.
잠시 후 군자산 둘레길이라는 이정판을 지나 잡풀이 자라고 있는 둔덕으로 오르니 커다란 아카시아 나무들이 보이고 나무 벤취 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192 공터봉에 도착을 해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오늘은 생각보다 덥지 않아 물 마시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 들어 배낭 무게만 그대로 유지가 되고 있다.
공터를 지나 이정표를 만나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뚜렷한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다시 무명 묘지 아래 잡풀이 자라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곳을 지나며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안개가 드리워진 선곡리 마을에는 역시 민가의 자취조차 찾기가 어려운 전방임을 알려주고 있다.
남쪽 지방 같았으면 가까운 곳에 논 경작지도 내려다 보이고 많은 민가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민가 한두채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어 고향 의 향수를 자극하지만 이곳은 그저 침묵 그것이 전부인듯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이번에는 등로 좌측으로 보개지맥 마루금들이 붉게 변해오는 하늘 아래 아름다운 능선을 만들며 조만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쳐진 임도를 따르니 U자형 비포장 임도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을 하고 잠시 후 2층으로 쌓아 둔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읍내리샘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도 역시 군자산둘레길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 연천군 읍내리와 우측 군남면 옥계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인데 샘고개라는 유래는 찾지 못하였지만 아마도 이 근처 어딘가에 샘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유추를 해 본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읍내리 샘고개를 가로질러 다시 이정표 옆 게단을 타고 오르니 등로는 우측으로 이엊다 금새 다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진다.
교통호가 보이는 곳에도 역시 군자산 둘레길 이정판이 서 있고 잠시 오르니 벤취 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에 담고 오르니 산나물 약초 채취금지 경고판이 나뭇가지에 붙어 있는 능선에 도착을 한다.
잠시 가을빛이 완연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나무벤취 쉼터 하나와 산불금지 경고판이 서 있는 공터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을 하고 출발한다.
자료를 찾아 보니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곳을 아지봉(215미터)이라 표기한 자료가 있어 정리를 해 보면 아지봉은 읍내리 서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옛 연천현의 진산인 군자산의 북쪽에 있는 산이며 군자산에 비하여 작은 봉우리라 하여 작은 또는 낮은의 뜻을 가진 옛말의 아지에서
음을 취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그 공터 무명봉을 지나니 갑자기 등로는 잡목과 잡풀이 우거진 마루금으로 변하고 이리 저리 잡풀을 헤치고 진행하다 거미줄까지 진행을 방해하고 있어 좌측 발 아래로 보이는 비포장 임도로 내려가 그 임도 따라 우측으로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오르니 비포장 임도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잠시 후 차량 통제 바리게이트가 보이는데 오랫동안 방치되어 열려져 있는 상태이다.
그곳을 지나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임도 우측으로는 군자산 정상부에 잇는 군부대로 향하는 임도이고 좌측이 왕재지맥 마루금이다.
군자산(328미터)은 연천읍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군남면과 연천읍의 경계를 이루고 멀리 임진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산의 모양은 예부터 웅대한 곰의
형상으로 비유되어 고구려에서는 공목달현 웅섬산이라고 하였고 그 후에는 당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 당산을 중심으로 연천의 문화는 발전되어 왔다.
이 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이 산의 꼭대기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이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깊이를 재 보려고 그 우물에 명주 꾸리를 계속 풀어 넣었더니 실
끈이 임진강으로 흘러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의 정기는 임진강과 이어져 더욱 영험 하게 믿어져 왔다.
옛 사람들은 이 산 위의 우물가에 제당을 짓고 매년 길일을 택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술을 빚어 하늘에 소망을 기원하거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를 올렸는 바 이 날을 온 고을의 축제일로 삼아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결속을 다졌다.
그 후로 이 같은 제사 의식은 조금씩 간소화되기는 하였으나 8·15 해방 후까지도 산 위에는 신당이 있었고 마을 사람들에 의하여 봄과 가을로 제사가 올려져 액운을 막아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우측 군자산 정상은 군부대 때문에 어짜피 오를 수 없어 아쉬운 마음만 남기고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연천읍 읍내리와 차탄리를 지나 솟아 있는 보개지맥 마루금이 이제 막 떠 오른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금새 굳게 닫혀있는 군부대 철조망 문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직감적으로 이곳에서 선답자들이 군부대를 통하지 못해 좌측 철조망쪽으로 우회하며 지독한 칡넝쿨 지대에서 무척 고생을 하였다는 산행후기를 읽었기에 굳게 닫혀있는 철조망 문을 흔드니 그 문이 앞쪽으로 약간 당겨지며 그 두 문 사이로 간격이 벌어져 잘 하면 그 두개의 문 사이로 통과도 될것 같다는 생각으로 시도를 해 보니 어려웠지만 충분히 가능해 그 문을 통해 군부대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정상을 오르지 못하는 군자산(327.8미터)은 선곡리와 삼거리 및 연천읍 차탄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327.8미터로서 군자산은 연천읍 서북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이 군남면과 연천읍의 경계를 이루고 멀리 임진강을 굽어보고 있으며 우측으로는 주라이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불형 너머 고대산까지 이어진다.
산의 모양은 예부터 웅대한 곰의 형상으로 비유되어 고구려에서는 공목달현 웅섬산이라고 하였고 그 후에는 당산이라고 불리게 되었는데 이 당산을 중심으로 연천의 문화는 발전되어 왔다.
이 산의 정상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물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어떤 사람이 깊이를 재 보려고 그 우물에 명주 꾸리를 계속 풀어 넣었더니 실 끈이 임진강으로 흘러 나왔다고 하고 그래서 이 산의 정기는 임진강과 이어져 더욱 영험하게 믿어져 왔다.
옛 사람들은 이 산 위의 우물가에 제당을 짓고 매년 길일을 택하여 음식을 장만하고 술을 빚어 하늘에 소망을 기원하거나 은혜에 감사하는 제사를 올렸는 바 이 날을 온 고을의 축제일로 삼아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결속을 다졌다.
그 후로 8·15
해방 후까지도 산 위에는 신당이 있었고 봄·가을로
제사가 올려졌다 한다.
부대 안으로 들어가니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군용트럭과 초소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정면으로는 철조망을 따라 경계 교통호가 보이는데 그 교통호를 타고 잠시 올라 뒤돌아 보니 등로 좌측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어 한동안 이곳이 일반인 출입금지인 군부대 내부임도 잊은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천읍내 방향이 엷은 안개속에 파묻혀있고 그 위로 보개지맥 마루금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으며 그 보개지맥 마루금 위로는 방금 전 떠오른 태양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세상을 굽어 보고 있는 듯 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환상의 풍경과 조망에 많은 시간동안 많은 사진을 남기고 그 교통호를 내려 와 진행 방향의 좌측인 군용 트럭 옆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군자산에는 또한 군자산성이 보이는데 산성은 군자산의 9부 능선을 따라 돌아가며 쌓은 테뫼식의 석축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표주박형에 가깝고 전체적인 지형은 동고서저이며 둘레는 약 600미터정도이다.
동쪽으로는 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흐르는 차탄천변 주변으로 넓은 충적대지가 형성되어 있고 서쪽도 임진강변으로 넓은 퇴적지가 이루어져 있다.
성벽은 심하게 파손되어 거의 무너져 내렸으나 군데군데 성벽이 일부 잔존해 있고 동벽은 경사가 급한 자연절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흔적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외 삼면의 성벽은 능선의 굴곡을 따라 많은 양의 자연석으로 견고하게 축성했던 흔적이 완연하게 남아 있다.
특히 성을 일주하기 위해 개설된 군사용 도로에서 10미터 아래의 능선을 따라 쌓은 서벽에서는 6~8미터 가량의 붕괴된 성돌이 성의 남벽과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서벽은 약 200미터 가량 잔존해 있다.
산성의 주변에서 방사되는 유물은 삼국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종류의 와편, 토기편, 자기편 등이 있으나 이 가운데 신라계통의 선조문이 타날된
와편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잠시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금연지역 경고판이 서 있고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연천읍과 그 뒤로 보개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조망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 전봇대 옆으로 군초소가 보이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여전히 아름다운 연천읍과 보개지맥 그리고 저 멀리 그 보개지맥 넘어 종자산과 우측 멀리에는 희미하게 왕방지맥 산줄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너무나 운 좋게 군부대 내부로 들어가 생각지도 못한 황홀한 조망과 풍경을 홀로 즐긴다는 사실이 미안할 정도로 신비감이 감도는 모습들이다.
그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인 좌측 조망을 즐기며 발걸음이 느려질 쯤 다시 군부대 외부로 통하는 검정천막이 씌워진 철조망 문을 만나는데 이곳 통과가 또한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떻게 통과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그 바로 앞 시멘트 포장도로를 통해 SUV 한대가 지나가는데 혹시 군인이 아닐까 긴장을 하면서 그 검정천막이 가려진 철조망 문 뒤에서 잠시 숨어 있다 어렵게 그 두개의 문 사이 틈을 벌려 어렵게 통과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좌측 위로는 군용 헬기장이 보인다.
그곳에서 마루금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야 되지만 우측으로도 멋진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풍경을 감사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잠시 후 내려가 만나 올라야 할 마루금 상 봉우리처럼 보이는데 어느 봉우리인지 감이 전혀 잡히질 않는다.
그 뒤로 비산비야를 이루고 도감포로 향하는 왕재지맥 마루금도 보일 것이지만 오늘은 이것이 한계인 듯 전혀 마루금을 가늠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저 멀리 끝자락에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 하얀 안개를 생산해 덮고 있는 신비한 풍경만큼은 오늘 오랫동안 이 산객의 가슴속에 남아 기억될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 그곳 군부대 밖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보낸 후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곳 우측으로 전봇대와 적사함이 있는 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내려가며 희미한 등로를 찾아 본다.
잠시 내려가니 잔디가 죽어 가는 무명 묘지 한기를 지나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를 통과하는데 안부 좌측으로는 차량을 통제하는 철쇠사슬이 설치되어 있다.
이제부터 다시 편안한 비포장 임도를 만나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SUV 차량 한대가 내려오는데 아주머니가 운전을 하면서 개 두마리를 몰고 내려오고 있다.
깜짝 놀라 임도 가장자리로 비켜주니 아주머니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자기는 바로 아래에 살고 있어 차량을 이용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주고 내려가 버린다.
천천히 놀란 가슴 진정시키며 내려가니 임도 좌측으로 성황당이 보이는데 최근에 굿을 했는지 많은 음식들과 술병들이 보이고 성황당 특유의 풍경도 보인다.
이곳 성황당고개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삼거리 당골에서 선곡리의 갈묘동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로서 고개 정상에 돌 서낭당이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성황당은 서낭당의 다른 말로서 서낭신을 모신 당집이나 제단을 말하는데 지방에 따라 할미당, 천황당, 국사당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낭신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 최근까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보통 신수에 잡석을 쌓은 돌무더기나 신수에 당집이 복합되어 있는 형태로 고개 마루, 길옆, 부락입구, 사찰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서낭당은 서낭신의 봉안처인 동시에 거소가 되며 이 신은 천신과 산신의 복합체로 보여지는데 서낭신의 신앙에는 내세관이나 인간 정신세계의 이상 같은 것이 없고 현실적인 일상생활의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액, 질병, 재해, 호환 등을 막아주는 부락수호와 인간의 현실적인 생계문제 해결에 목적이 있고 신수에는 아이들의 장수를 위해 걸어 놓는 헝겊조각, 상인의 장사를 잘되게 해 달라고 걸어 놓는 짚 신짝, 신랑신부가 새살림을 차릴 때 부모 계의 가신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신부가 자기 옷을 찢어서 걸어 놓는 색 헝겊 조각 등이 있다.
또 통행인이 길을 안전하게 가기 위해 돌을 주워서 돌무더기 위에 던지거나 침을 뱉는데 이는 길가에 배회하는 악령의 피해를 막기 위함이다.
이처럼 서낭당은 현실적인 문제를 기원하는 곳이며 정초에는 부인들이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가정의 평안을 빌기도 하는데 동해안 별신굿이나 강릉 단오제는 규모가 큰 서낭제의 일종이다.
성황당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데 이미 가을걷이가 끝난 상태이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진행을 하였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을 우측 밭 경작지 위로 나 있는 편안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다 보니 잠시 후 약간의 문제를 가지고 진행을 하게 된다.
조금 더 걸어 가니 임도 좌측으로 반남박씨 세장묘가 보이고 계속 그 임도를 타고 걸어가다 우측 밭 경작지 넘어 살펴보니 방금 전 고생하며 넘어 온 군자산 정상부의 군부대가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올라가 보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지만 반겨주는 사람은 없고 오지 말라는 군인들만 정상을 지키고 있으니 이렇게나마 멀리서 그 정상부를 보는 것으로 대신해 본다.
언제나 마음 놓고 많은 이야기가 있는 저 군자산 정상부를 오를 수 있을지 기약없는 시간의 흐름속에 한숨만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밭 경작지 위 끝나는 지점까지 걸어가니 고갯마루 안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좌측 능선 위로 나 있어 다시 능선으로 잠시 걸어 오르니 녹슨 사각 구조물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 있는 232.12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은 일명 봉화봉이라 불려지는 봉우리로서 삼각점이 있다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삼각점을 발견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봉화봉(232.12봉)은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와 군남면 삼거리 및 왕림리의 3개리에 걸쳐 있는 군자산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예전에 이 봉우리 정상에서 봉화를 올렸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봉화봉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아마도 녹슨 철 구조물은 봉화를 올릴 때 사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해 보는데 산행 후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확인해 보니 확실한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어느곳에 있었는지 아직도 미스테리하다.
역시나 맥 잇기 산행을 하면서 요령을 피우면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직접 몸으로 확인하고 그 봉화봉을 출발하니 지금과는 달리 등로 찾기가 애매해 여간 신경 쓰이지 않는다.
방향만 확인하고 희미한 등로를 찾아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가을빛이 완연하게 물들어 가고 있다.
잠시 후 군벙커가 있고 커다란 참나무에 군 훈련용 종이 코팅지가 붙어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 갈림삼거리를 만나 우측으로 계속되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간다.
잠시 후 비포장 임도 우측으로 상당히 많은 전주이공 묘지들을 만나고 그곳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는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면서 저 아래쪽으로 갈림사거리가 있고 동물이동통로가 있는 부처고개에 도착을 한다.
부처고개(불현, 덕녕이고개)는 한쪽에 사각정자가 있는 동물이동통로로서 부처골에서 연천읍 차탄리의 덕녕이로 넘어 다니던 고개인데 정상 부근에 미륵불이 있었다 하여 불리워지는 이름이다.
부처고개 아래로는 새롭게 뚫린 4차선 포장도로가 시원스럽게 지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부처고개를 넘어 이어지는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는데 갑자기 진행 방향에서 SUV 한대가 내려 와 깜짝 놀라는데 차량 운전자도 에상을 못했는지 움찔하고 내려간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끝자락까지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 온 부처고개가 바로 발 아래로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오늘 산행 내내 등대 역활을 하고 있는 군자산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내려다 보고 있다.
그 군자산 우측 능선을 따라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왕재지맥 마루금이 길게 펼쳐져 있기도 하다.
시멘트 포장도로 끝자락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르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벌목지대가 펼쳐져 있어 방금 전 군자산 군부대를 탈출하여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내려다 볼 때 우뚝 솟아 있던 봉우리가 바로 이곳 207봉이었음을 이제서야 인지하게 되었다.
능선으로 오르니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어 진행이 어려워 우측 벌목지대로 이동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어 그 임도를 타고 올라 본다.
등로 우측으로 서쪽을 살펴보니 두리산과 고왕산이 보이는데 앞으로 오를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아 가슴속 깊이 그 모습을 담아 보고 다시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벙커를 지나 커다란 웅덩이가 보이는 20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두개의 커다란 웅덩이봉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큰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잘 조성된 넓은 묘지지대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을 살펴보니 걸어가야 할 왕재지맥 마루금이 이어져 있지만 저 아래 한탄강 쪽으로 내려가면서 하얀 안개가 덮혀있어 마루금 찾기가 쉽지 않다.
잠시 그 묘지를 우측에 두고 내려가다 살펴보니 경주최공 묘지로서 묘지가 상당히 넓고 관리도 잘 되고 있는 듯 보였다.
경주최공 묘지에서 조망을 즐기고 편안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갑자기 지독한 잡목과 칡넝쿨로 뒤덮혀 있어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느낀다.
정상 마루금을 벗어나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잠시 진행을 하니 잡목과 칡넝쿨이 사라져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하고 참나무 등로를 만나 잠시 더 걸어가니 녹슨 군부대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아 그 철보망을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녹슨 철조망을 타고 걸어가니 매쾌한 축사 분뇨 냄새가 코를 자극하기 시작하고 그 지독한 냄새는 한동안 지속되는데 아마도 이 근처에 거대한 축사가 있는 듯 보이는데 잡목으로 가려져 직접 축사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잠시 더 철조망을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 최근에 세워진 듯한 멋진 건물 몇동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그곳이 축사라 생각을 하였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깨끗하다.
군남면 삼거리와 진상리 지역으로 그 경계쯤 되어 보이는데 진상리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의 리로서 임진강 옆에 펼쳐져 있는 충적평야의 토질이 질고 습기가 많아 진사랭이라 불려 오다가 한자로 지명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진상리 또는 다른 한자의 진상리로 표기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가피우개(소직동, 작은피우개), 검바위(검암) 오구미(오금동), 신촌방, 정문거리, 제추울(차곡동), 진상동, 큰피우개(대직동) 등이 있는데 검바위는 제추울 동쪽에 있던 마을로 칼날같은 큰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고 이 칼바위 틈에 돌을 끼워 놓으면 마을 아낙들이 바람난다는 전설이 있다. 오구미는 외딸고 으슥하고 궁벽한 곳이라는 뜻의 외진구미의 준말로서 진상리 내에서도 북쪽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었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한자어로는 오금이 되었다.
다시 잡풀들이 자라고 있다 계절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가는 비포장 임도를 만나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원 등로는 임도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지만 특이할 것도 없이 잡목과 잡풀에 이슬만 가득 머금고 있어 조금은 편안한 비포장 임도를 따르지만 그 비포장 임도도 금새 원 마루금과 만나기에 그냥 진행을 한다.
잠시 후 우측 능선으로 올라 진행을 하니 갑자기 거대한 칡넝쿨 지대가 앞을 가로막는데 트랙을 확인해 보니 정상적으로 진행을 한 곳으로 이곳 봉우리는 159 무명봉인데 워낙 사람들의 출입이 없다보니 거대한 칡밭으로 변해 버렸다.
선답자들의 트랙도 역시 원 마루그이 이곳이 아닌 좌측의 능선을 따라 약간 우회한 듯 보이는 트랙들이 많이 보인다.
그 지독한 칡넝쿨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159 무명봉을 사진에 담고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갑자기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옆으로는 민가 한채도 보이는데 그곳에 있는 강아지 세마리가 강렬하게 짖어대기 시작한다.
연천군 군남면 왕림리와 산거리를 이어주는 도로로서 옛날 78번 2차선 도로처럼 보이는데 인근에 부처고개 아래로 4차선 신설 도로가 생기면서 많이 사용하지 않는 도로가 된 듯 싶은 곳이다.
그 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 왕림리 한국베데스다 가는 오석과 진은로라는 도로 표지판이 잇는 곳에서 우측으로 들어 사용하지 않는 벌통들을 쌓아 둔 곳 우측 능선으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능선 방향으로 들어가니 옛날에 사용하다 이제는 묵은 밭이 되어 잡풀들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을 어렵게 헤치고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 옆으로는 적 경계지대 극복이라는 군사 훈련용 입간판들이 줄줄이 서 있다.
이곳은 아마도 군사 훈련용으로 개설된 군사 도로처럼 보이는 곳인데 덕분에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계속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거ㅗ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임도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지점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푹신한 낙엽이 깔려있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목표확보 후 행동이라는 군사 훈련용 입간판 뒤에 336FOB라는 군용 삼각점이 박혀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트랙을 확인해 보니 이곳 높이는 151미터이고 이제부터 넓은 비포장 임도에도 제법 거칠은 잡초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주의가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 잡초지대를 지나 진행을 하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가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묘지들을 지나 공덕비 하나가 서 있는데 누구를 위한 공덕비인지는 전혀 적혀있지 않다.
그 공덕비를 지나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화살표 표시가 되어 있는 우측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고 잠시 후 커다란 소나무가 뒷편에 서 있는 묘지지대를 지나 146 무명봉을 지나는데 봉우리라기 보다는 비포장 임도상 나즈막한 능선처럼 보이는 곳이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하니 진행 방향으로 군사용으로 생각되는 화살표가 표기되어 있는 종이 코팅지가 계속 안내를 해 주고 있다.
다시 만나는 갈림사거리에서는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따르고 잠시 뒤 훈련용 이정판을 지나니 임도 좌측으로 안부에 작은 다리를 설치해 놔 눈길을 잡는다.
이 산중에 아마도 군사 훈련용으로 만든 작은 다리가 아닐까 생각이 되는데 무슨 용도일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 작은 다리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지나 온 군자산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왕재지맥 마루금이 잡목 사이로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집결지 점령이라는 이정판을 지나 토지지신이란 비석도 지난다.
잠시 후 최근에 만들어진 듯한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는 묘지 두기를 좌측 아래에 두고 걸어가니 임도 우측 위로 콘테이너 박스 하나가 보이는 149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다 시간을 보니 너무나 빨리 진행되는 산행에 눈을 의심하게 되는데 지나온 트랙을 확인해 봐도 크게 잘못 진행된 곳이 없어 그대로 진행을 이어가 본다.
한동안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콘크리트 벙커가 나타나고 잠시 후 포크레인이 임도를 막고 있는데 누군가 작업을 하다 토요일이라 쉬고 있는지 오늘은 작업을 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 포크레인을 통과해 조금 더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생각보다 드넓은 인삼포가 펼쳐져 있는데 이 산객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인삼포이기에 조금은 당황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거대 인삼포를 내려다 보고 계속 임도를 따르니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고 욱군 콘크리트 말뚝이 있는 웅덩이 봉에 도착을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삼각점을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이곳은 왕림리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있는 리로서 조선 태종과 이양소의 고사에 의해 왕림 또는 왕림동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댕골(대장동), 새터(신대), 샛지루개(문지곡동), 아랫도리개(하석현동), 서산, 윗댕골(상대양동), 윗도리개(상석현동), 죽터골(죽대동), 지루개(지곡동), 큰왕림(왕림동) 등이 있는데 샛지루개는 왕림리 충혼탑 북쪽에 있던 마을로 지루개와 서산 사이에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서산은 조선시대에 유학과 실학 사상가들이 배출된 곳으로 학문 교류의 중심이었던 양주군의 서산과 견줄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죽터골은 강신봉 남쪽에 있던 마을로, 옛날 어떤 임금이 이곳을 지나다 말에게 여물을 먹였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역시 지명 이름에 왕자가 들어가 다르게 생각을 했는데 조선 태종과 관련된 고사가 전하는 동네가 맞는 듯 하다.
삼각점을 찾지 못하고 149 무명봉을 지나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로 진행이 되는데 임도 한복판에 삼각형을 닮아 있는 사각 금강석이 박혀있어 조금은 궁금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임도 좌측으로 거대하게 펼쳐진 축사단지를 내려다 보고 다시 우측 능선으로 들어가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위장막을 한 벙커도 보이는 159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잡목 사이로 지나 온 북쪽을 살펴보니 여전히 군자산 정상부의 군부대는 박무로 흐릿하지만 그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줌으로 당겨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
그 삼각점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159봉을 지나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내려가니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를 다시 만나 내려가고 금새 군남배수지 공사가 한창인 군남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폐쇄된 주영케미칼과 정주물류 건물들이 굳게 닫힌 문 안으로 보인다.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 금남배수지 공사가 한창인 공사장으로 들어가 좌측 능선을 보고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공사장을 지나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올라 능선으로 들기 전에 자시 뒤돌아 보니 군남 2차선 포장도로를 가운데 두고 좌우측으로 이어지는 왕재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보인다.
군남면은 연천군 중부에 있는 면으로 면의 서쪽 경계는 임진강이고 남쪽 경계는 한탄강으로 북위 38°선과 접하며 남동부 경계는 한탄강의 지류인 차탄천이다.
기반암은 주로 현무암과 결정편암으로 이루어졌고 북동부와 중앙부는 산지가 높고 험하며 군자산(328미터)이 가장 높은 산이다.
하천의 연변에 형성된 넓은 충적지는 경작지로 이용되며 남부 남계리에는 넓은 충적지가 전개되어 있고 남계리 남쪽의 한탄강과 임진강 연안에는 하안단구상 지형이 나타난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 및 콩 등이며 야채류는 군납관계로 성황을 이루며 전곡리와 연결되는 지방도로는 중요한 교통로이다.
오래 전 군대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인가 지나간 기억이 있는 곳이기에 다시 그 추억을 들추는 시간은 참으로 아련하기만 하다.
절개지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커다란 소나무가 반겨주는 130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능선에서 우측 능선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잡목 구간이 이어지고 그 잡목과 잡초들을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그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걸어가 본다.
한동안 그 검정 천막이 쳐진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진행해야 할 왕재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갈지자로 이어지는 등로가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육군 콘크리트 막뚝을 만나고 등로 우측으로 거대한 소 축사가 내려다 보이는데 선답자들이 이곳 군부대 처ㅏㄹ조망을 따라 진행하며 고생을 하였다는데 오늘은 철조망을 따라 잡목과 잡풀을 제거한 자업이 진행되어 생각보다 아주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였다.
잠시 후 지금까지 한동안 동행했던 군부대 철조망은 좌측으로 돌아가며 헤어지고 우측으로 약간의 잡목과 잡초들이 자라고 있는 등로를 따라 빠르게 진행을 한다.
잠시 나타나는 교통호를 따르고 다시 낙엽이 떨어져 쌓여가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걸어 전진하니 강릉김씨 가족묘지를 지나 그 뒷편 능선으로 걸어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옛 벙커 흔적이 있는 좁은 공터봉에 도착을 해 잠시 배낭 내려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을 해 본다.
해발고도 137미터의 무명 공터봉으로서 오늘 제대로 된 물은 처음으로 마시다 보니 이제까지 채 500미리도 마시지 않아 식수는 충분하고도 많이 남을 듯 하다.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그 공터봉을 출발하니 식재된 듯한 소나무가 자라면서 진행에 약간의 방해를 주지만 큰 어려움 없이 걸어가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두리산 방향을 조망도 해 본다.
그렇게 조망을 하면서 약간의 잡목을 헤치며 걸어 전진하니 등로 옆으로 군부대 훈련용 콘크리트 옹벽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지나 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고 참나무가 가득한 산책로 같은 등로를 따라 가을을 느끼며 걸어 전진하니 무명 안부도 만나 통과한다.
다시 낙엽이 가득 깔린 등로를 따르니 노란 단풍이 지면서 이곳도 곧 가을이 지나 겨울을 준비하듯 그렇게 계절은 변하고 있다.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멋진 참나무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빨라도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가을을 느끼며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파란 철조망이 나타나고 그 철조망을 타고 걸어가니 철조망 위에는 검정 천막이 둘러쳐져 있다.
그 철조망을 따라 계속 전진하니 작은 돌무덤과 웅덩이가 있는 139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무명봉을 지나 계속 철조망을 따르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높지 않은 봉우리로 오르는데 그곳 정상에는 검정 천막이 쳐져 있는 콘크리트 설치물 위에 녹슨 철봉이 올려져 있는 15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잠시 심호흡 한번 하고 출발한다.
그 콘크리트와 녹슨 철봉 구조물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눈 앞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잘 모르고 진행하다 내려가니 그것은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대전차 방어벽으로 설치된 구조물이었다.
왕림리와 황지리를 이어주는 고갯마루에 있는 대전차 벙어벽이 설치되어 있는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 내려가면 출입금지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에스유농원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을 이어가 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고갯마루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으로 민가가 보인다.
그 민가 앞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철통같은 철조망이 가로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어떻게 진행을 해야할지 고민하고 잇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나와 그쪽 마루금 방향으로는 길이 없다며 도저히 진행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전해 준다.
선답자들이 지나간 흔적이 있다고 하니 그분들은 막무가내로 진행을 한 것으로 산약초를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다며 올라온 도로를 따라 내려가야 한다기에 조심해 진행하겠다고 이야기하고 그 민가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철조망이 끝이나고 능선으로 길이 열려있어 낙엽을 헤치고 완만하게 내려 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는 없지만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기에 내려가 안부를 넘고 다시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타고 오르니 최근에 설치된 듯한 튼튼한 군부대 철조망 위에 원형 철조망으로 이중 차단된 철조망을 만나 그 철조망을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철조망 바깥 부분도 진행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등로가 확보되어 있어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보지만 역시나 왕재지맥 마지막 높은 봉우리인 138.2봉을 오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지역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낚시터인지 작은 연못이 내려다 보이고 민가들과 커다란 창고 건물같은 것들도 내려다 보인다.
지도를 보니 황지리마을로서 황지리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있는 리로서 본래 마전군 화진면의 지역으로 흙빛이 누렇다 하여 황지리 또는 황지대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문리를 병합하여 군남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금계골(금계곡, 음지말), 달안이(달원리), 마탄동, 새점(신점), 석문동, 양지말, 오리골(오류동) 등이 있는데 금계골은 양지말 동쪽에 있던 마을로 골짜기 안에 있는 산의 형태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달안이(달원리)는 빗접산 동쪽에 있던 골짜기 마을로 윗달안이와 아랫달안이로 나뉘는데 넓은 들 안쪽에 위치한 산골짜기 마을이란 뜻을 지닌 지명이다.
마탄동은 양지말 남쪽에 있던 마을로 임진강에 있는 말여울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그렇게 황지리 마을을 조망하며 잠시 철조망을 벗어 나 우측 능선 등로를 따르니 제1,2 등산로와 제3등산로 방향 표시와 가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를 만나 의아한 생각을 해 본다.
그 이정표를 지나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 우측으로 황지리 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여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진행을 한다.
그렇게 황지리 마을을 조망하며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가을빛이 완연한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 진행이 되고 만남의 쉼터라는 이정표가 서 있고 옆에는 황지리 생활권 숲길 안내도가 보이는 곳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잠시 심호흡을 해 본다.
그곳을 지나 전진하니 드디어 군부대 철조망과 헤어지는데 그 아래에는 황계정이라는 육각정자가 보인다.
그 황계정에 올라보니 잡목들로 인해 조망도 없기에 다시 내려 와 마루금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안전철봉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곳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눈 앞 저 멀리 비닐하우스들이 보이고 그 뒤로 전곡쪽 나즈막한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니 등로 우측으로 경주이공 묘지가 보이는데 그곳으로 올라가 진행 방향의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비산비야로 이뤄진 마루금이 보이는데 그 마루금은 잘 드러나 있지 않지만 그 우측으로 높게 보이는 동이대교가 마루금을 가늠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있다.
그 묘지에서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내려가니 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는데 그 갈림삼거리에는 제1등산로입구라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에서 우측 황지리 마을도로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게 되는데 이제부터는 비포장 임도와 시멘트 포장도로 그리고 일반 포장도로를 따라 왕재지맥 마지막 합수점인 도감ㅍ포까지 걸어가야 되기에 모자를 꺼내 머리에 쓰고 걷기 시작해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황지리 생활권 숲길 안내도가 서 있고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다.
그곳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커다란 창고같은 건물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는 인공수로가 좌측으로는 벼 수확이 끝난 드넓은 황지리 들판이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계속 민가들이 보이고 잠시 후 갈림사거리에서는 좌측으로 꺽어 드넓은 논 경작지 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도로 양쪽으로 거의 다 수확이 끝난 논 경작지를 살펴보며 걸어 내려가니 민가들이 보이고 잠시 후 남계1리농촌건강장수마을이란 이정석과 남계리와 제일상회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남계리 372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도로를 건너 남계1리 농촌건강장수마을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 본다.
남계1리 마을의 민가들 사이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남계로와 청정로로 갈리는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좌측 남계로 62번길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한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는 우측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남계1리 문화복지회관과 경로당 건물이 나타난다.
남계1리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있는 리로서 조선 중엽 남계라는 호를 가진 영동 이씨의 묘가 있다 하여 남계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계림동, 단풍동, 도감포, 벌말, 신복동, 포촌음터 등이 있는데 계림동은 도감포 북쪽 임진강 옆에 있던 마을이고 단풍동은 도감포 북쪽에 있는 마을로 6·25전쟁 전까지도 단풍나무 고목 세 그루가 있었다고 한다.
남계1리 문화복지회관 건물을 지나 게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다시 반사경이 있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372번 2차선 포장도로에서 갈려져 나온 도로로서 이제부터 그 도로를 따라 도감포까지 걸어가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 도로를 따라 한동안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우측으로 꽃벵이킹팜이라는 굼벵이를 키우는 농장을 만나 잠시 살펴보고 진행을 이어가 본다.
굼벵이 농장을 지나 드넓게 펼쳐진 논 경작지 가운데를 따라 나 있는 도로를 따르니 진행 할 도로 우측 저 멀리 새로 건설된 동이대교의 주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논을 살펴보니 벼 수확을 한지 오래되었는지 파릇한 벼 새싹들이 논에서 다시 자라면서 모내기를 한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정미소가 나타나는데 어릴적 시골에서 살면서 만들었던 많은 추억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두리농산물 입간판이 서 있고 그렇게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 앞으로 동이대교가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다시 뜨거운 아스팔트 열기를 받으며 걸어가니 최근에 새로 개통된 4차선 포장도로 아래로 마루금 도로가 이어지는데 우측 동이댸교 방향으로는 문산과 적성 방향이 좌측으로는 의정부와 포천 방향이 표시되어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남계2리가 표기되어 있다.
새롭게 건설된 4차선 포장도로를 지하도를 통해 통과하고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계2리 방향으로 걸어가니 한반도통일미래센터 입간판이 서 있다.
임진강매운탕이라는 식당 홍보 입간판을 지나고 우측으로 동이대교를 바라보며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민가 한채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 우측을 살펴보니 동이대교 주탑이 드높게 얼려다 보인다.
오늘 산행 후 귀가 시 지나야 되는 동이대교이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판 넘어 그 풍경을 사진에 담아 본다.
남계2리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에 있는 리로서 조선 중엽 남계라는 호를 가진 영동 이씨의 묘가 있다 하여 남계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계림동, 단풍동, 도감포, 벌말, 신복동, 포촌음터 등이 있다.
도감포는 남계리 남쪽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던 포구마을로서 항아리 형태의 지형 안에 있는 포구란 뜻으로 한자로 지명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여러 한자어로 펴현되었다.
잠시 후 커다란 축사를 지나고 민가도 지나는데 민가 한채는 비어있는 듯 보인다.
이제 도로 옆으로는 김장 채소를 키우는 밭 경작지들도 보이고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논 경작지도 혼재되어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합수머리꼭지길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합수머리공원까지 1.6 Km거리라는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도감포까지를 말하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도로 우측으로는 인진교라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이는 합수머리꼭지길 이정표를 지나 계속 2차선 포장도로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GMI선교사훈련원과 은혜수양관 들어가는 이정석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많은 묘지들과 비석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모두 다른 성씨를 가진 묘지들이다.
그곳 묘지들을 지나니 장독대라는 조각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공원이 보이고 잠시 후 도로 우측 앞으로 한탄강과 남계대교 도로표시판이 서 있다.
그곳 갈림삼거리에는 종합안내판이 서 있는데 우측의 남계대교 방향의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도감포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마지막 합수점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우측 축사 방향으로 들어가니 축사를 지나 남계대교 아래를 통해 도감포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의 한탄강과 우측의 임진강이 만나는 도감포 합수점이 내려다 보이는 밭 끝자락에 서서 잠시 내려다 본다.
드디어 밭 둑을 내려가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합수점 앞에 서서 아쉬운 추억 한장 남기는 것으로 왕재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나오는데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모두 함께 사용하는 장소이니만큼 깨끗하게 사용하였으면 하는 바램으로 합수점을 뒤돌아 나온다.
도감포는 남계리 남쪽 즉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곳에 있던 포구 마을로서 옛 지리지나 여러 기행문에는 이곳 합수머리에서 임진강을 따라 전곡읍 마포리 지역에 넓게 펼쳐진 꽃답벌과 미산면 동이리 썩은소 앞의 강폭이 좁아지는 지점까지의 지형이 항아리의 형태와 닮았다 하여 독안이(대내) 또는 호구협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워졌다고 한다.
그러므로 항아리와 닮았다고 하는 지형 안에 있는 도감포의 원래 의미는 항아리 형태의 지형 안에 있는 포구란 뜻으로‘독안개(대내포) 또는 독안이로 불리던 것이 도감 또는 독암으로 음이 변하여 한자로 지명을 옮겨 쓰는 과정에서 도감포 외에 여러 한자 명칭으로 표현되었다.
이 곳은 일제강점기 때까지도 임진강을 따라 올라온 새우젓과 소금 배들이 정박하며 연천 지역에서 생산되었던 곡물과 땔감 및 도자기 등을 물물교환하던 큰 장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국전쟁 전에는 제주 고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다.
언제 다시 이곳 도감포로 다시 내려 와 합수점에서 강물에 손을 담궈볼 기회나 있을지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그렇게 왕재지맥 마루금 잇기 산행을 한탄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도감포 합수점에서 마무리하고 다시 뒤돌아 나와 시간을 보니 이제 12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전곡 택시를 부르지 않고 걸어 나가 연천군청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로 한다.
남계2리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계1리와 2리를 경계 짓는 신설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걸어 나가는데 마침 트럭 한대가 나오고 있어 히치하이킹을 시도하니 태워줘 황지리 버스 정류장이 있는 갈림사거리까지 태워준다.
그곳에서 잠시 배낭 정리하고 기다리며 시간을 보니 이제 12시 30여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여유를 부리며 모바일 폰을 살펴보니 이곳 황지리 버스정류장을 지나는 모든 버스를 이용하여 전곡으로 이동을 할 수 있어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을 하고 그 버스로 전곡버스 터미널로 이동을 한다.
전곡버스터미널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39-2번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후 도착하는 버스를 타고 연천군청 앞에 내려 무탈하게 애마를 회수해 출발하는 시간이 채 오후 2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라 약간 막히는 도로를 타고 5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무사히 귀가를 하였다.
사진 정리하고 오늘 저녁에 내려 가야 할 보현지맥 제6구간 산행 정보를 확인하다 보니 오늘 하루도 의미있게 긴 하루가 지나고 있다.
이제 진행하다 중단한 보개지맥과 대득지맥을 홀로 진행을 하고 다가오는 11월에는 금곡님과 일정을 맞춰 성골지맥을 완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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