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고 싶은 산을 정리하며,
몇 번의 백두대간 산행을 하면서 눈길로만 들렸던 부봉이 생각 나 한번 오르려고 준비를 하였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직도 미답봉으로 남아 있어 올 여름이 가기 전 한번쯤 오로고 싶은 산이 되었다.
특히나 그 부봉 옆으로는 올라야 할 신선지맥과 계명지맥 산줄기들이 있어 그 맥 잇기 산행을 진행하다 하루 쯤 시간을 내 이곳 주흘산과 부봉을 연계 해 오르며 즐기는 시간으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산행코스가 있지만 이찌되었던 애마를 이용해야 되기에 원점 회기 산행으로 주흘산과 부봉6봉은 반드시 통과하는 코스로 계획하다 보니 결국 문경새재의 제1관문인 주흘관 근처의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한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가 제일 적합하다는 결론이다.
산행예상코스는 문경새재 주차장-제1관문 주흘관-여궁폭포-대궐샘터-주흘산 주봉-주흘산 영봉-하늘재 갈림길-부봉1봉-2봉-3봉-4봉-5봉-6봉-제2관문 조곡관-제1관문 주흘관-문경새재 주차장으로 진행하면 될 듯 하지만 현지 상황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을 듯 하다.
예상 산행거리는 약 18 Km로서 예상 산행시간은 약 9시간 정도로 잡고 시작을 해 본다.
특히 이곳 주흘산과 부봉에서의 조망과 전망이 뛰어 난데 백두대간 상의 백화산, 희양산, 악휘봉, 조령산, 신선암봉, 만수봉, 포함산, 마패봉과 월악산 및 북바위산 등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문경새재는 잘 알려진 고갯길로서 새재에서 먼 한반도의 서남쪽 끝에 위치한 진도에서 부르는 진도아리랑에도 사설의 첫 대목으로 등장할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도 관련이 깊은 곳이다.
새재는 경상북도
문경읍과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에 위치한 고개로 조선시대 영남과 한양을 잇는 제1대로였던 영남대로에
위치하고 있다.
새재라는 이름의 유래는 매우 다양한데 고갯길이 워낙 높아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고갯길 주변에 새(억새)가 많아 억새풀이 우거진 고개라는 뜻이라고도 한다.
또한 하늘재(마골령)와 이우리재(이화령) 사이의 고갯길을 의미하는 새(사이)재에서 연유했다는 주장이 있고 하늘재를 버리고 새로 만든 고개라는 뜻에서 온 이름이라 고도 한다.
이처럼 새재의
어원에는 많은 유래가 있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지리학자들이 말하는 새로 낸 고갯길이다.
문경새재는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는데 선비들이 장원급제를 꿈꾸며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넘나들던 길로 문경이라는
이름과 옛 지명인 문희에서 드러나듯 경사로운 소식 또는 기쁜 소식을 듣게 된다는 의미도 과거길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연유로 문경새재는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들이 좋아했던 고갯길이어서 영남은 물론 호남의 선비들까지 굳이 먼 길을 돌아 이 길을 택하기도 했다.
택리지에도 조선 선비의 반이 영남에서 배출되었다라는 구절이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수많은 선비와 길손들이 이곳을 왕래하였음을 헤아릴 수 있다.
문경새재는 태종 13년(1413)에 개통되었는데 새재가 열리기 전까지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계립령의 하늘재가 주요 교통로였다.
백두대간의 조령산 마루를 넘는 새재는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 중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는 세 개의
관문을 따라 옛날 선비들이 다니던 길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며 약 10 Km에 이르는 구간이
명승으로 지정되어 있다.
새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초점, 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으로 기록된 길로 조선시대 충청도의 한강
유역과 경상도의 낙동강 유역을 가르는 주된 도로였다.
새재는 임진왜란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당시 영남내륙을 지나 올라오는 왜군과 맞선 신립 장군은 새재를 버리고 충주 달천에서 배수진을 쳤지만 크게 패하고 탄금대에서 투신했다.
전후 조정에서는 새재를 막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하고 이곳에 전쟁 대비 시설이 없음을 한탄했으며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서애 유성룡은 관문의 설치를 주장하였다.
그 후 선조 30년(1597) 신충원이 파수관으로 임명되자 일자형의 성을 쌓고
가운데 문을 세워 고개 아래를 내려다보는 조령산성이 축조되었다.
새재길은 자연 경관이 빼어나고 유서 깊은 유적이 많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고갯길에 얽힌 설화와 민요가 매우 다양하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이후 설치된 세 개의 관문이 사적 제147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첫째 관문은 주흘관으로 숙종 34년(1708)에 설치되었으며 세 개의 관문 중 옛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
두 번째 관문은 조곡관으로 선조 27년(1594)에 신충원이 축성하였으며 중성이라고도 하며 마지막 관문은 조령관으로 새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20세기 초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이화령 고갯길이 만들어지면서 문경새재는 폐도가 되었으나 새재에 설치된 관문과 더불어 새재 고갯길은 옛 모습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다.
새재길에는 나그네의 숙소인 원터와 임지를 떠나 새로 부임하는 신구 경상도 관찰사가 만나 관인을 주고받았다는 교귀정터가 남아 있다.
관문을 지나 오르는
옛길에는 아름다운 주변의 경치와 함께 산불을 막기 위해 세워진 한글 표석 산불묘심비(지방문화재자료 제226호)가 서 있고 정자와 주막터,
성황당 등이 있어 다양한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음미할 수 있다.
오늘날 새재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조성 및 재현되어 있는데 제2관문에서 조곡계곡을 따라 4 Km 정도 올라가면 산허리에 돌무더기를 세로로 쌓은 뒤 그 위에 작고 넓적한 돌을 얹어 마치 장승처럼 만든
곳이 있는데 이를 꽃밭너덜이라고 한다.
또한 새재길 옆에는 용추라는 폭포가 위치하고 있는데 용이 오른 곳이라고 전해지는 용추폭포는 사면과 바닥이 모두 돌로 되어 있고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
바위에는 용추라는
큰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구지정이 숙종 25년(1699)에
쓰다라고 각자되어 있으며 이 밖에도 옛날 7명의 선녀가 구름을 타고 와 목욕을 했다는 여궁폭포, 한양으로 향하던 선비와 상인들이 한잔의 술로 여독을 풀고 정분을 나누었다던 주막도 위치하고 있다.
새재길에서는 주흘산과 조령산의 다양한 식생과 옛길 주변의 계곡과 폭포 및 수림터널 등 매우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접할 수 있어서 문경시에서는
옛길 걷기체험과 과거길 재현 등의 다양한 행사를 매년 개최하여 현대인들이 조선시대 옛길 및 선비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한 제1관문 안쪽의 하천 건너에는 문경새재 오픈세트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사극을 촬영하기 위한 시설로 수십여 채의 전통한옥이
있고 관문의 풍경과 조화가 빼어나 많은 탐방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고 있다.
문경새재는 옛길의 모습을 잘 간직한 고갯길로서 옛날의 분위기를 느끼며 한번쯤 걸어볼 만한데 그 옛날 이 길을 넘던 수많은 선조들의
감흥과 애환을 떠올리며 새재를 걷는 것은 매우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줄 것이다.
문경을 지켜주는 영산인 주흘산은 조령산, 포암산, 월악산 등과 더불어 소백산맥의 중심을 이루며 산세가 아름답고 문경새재 등의 역사적 전설이 담겨 있다.
또한 예로부터 나라의 기둥이 되는 큰 산(중악)으로 우러러 매년 조정에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를 올리던 신령스런 영산으로 받들어 왔다.
문경의 진산이기도
한 주흘산은 우두머리 의연한 산이란 한자 뜻 그대로 문경새재의 주산이다.
남쪽의 중부내륙고속도로나 3번 국도를 타고 진남교반을 지나 마성면 너른 들판에 들어서면
앞쪽으로 기세 당당한 산이 하나 버티고 있는데 한눈에 비범한 산이 아님을 알 수 있으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속이 후련할 정도다.
양쪽 귀를 치켜세우고
조화롭게 균형미를 갖춘 산세에 주변의 모든 사물이 이 산의 기세에 그만 압도당하고 만다.
옛 기록에는 영남이니 교남이니 하는 명칭이 다 이 산과 관련된 것이라 적고 있다.
영남 지방이라 할 때 영남이란 충청도와 경상도를 나누는 조령을 기준으로 영의 남쪽에 있다하여 영남이라 불렀고 또한 교남이란 중악인 주흘산 남쪽의 지방을 일컬어 교남이라 불렀다.
조령과 주흘산이 큰 산줄기에 함께 위치하고 있어 영남이나 교남이나 같은 의미로 영남지방을 뜻하는 말로 보면 된다.
옛 기록에는 주흘산은
돌산이 치솟아 그 기세가 웅장하고 뛰어나며 영남의 산천은 성질이 중후하여 명현을 배출한 동방인재의 부고라고 말했다.
주흘산에는 또한 다양한 볼거리 들이 있으며 주흘산의 동쪽과 서쪽에서 물줄기가 발원하여 신북천과 조령천으로 흘러드는데 이 물줄기들은
곳곳에 폭포를 형성한다.
그중 유명한 것이 발원높이 10 미터의 여궁폭포와 파랑폭포이며 산기슭에는 혜국사가 있고 주흘산과 조령산 가운데에 난 계곡을 따라서는 문경관문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해발 520 미터에 위치하는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 8년(846) 보조국사 체징이 개창한 고찰로 고려 말 홍건적이 쳐들어왔을 때 공민왕이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었다는 일화로 유명한 절이다.
부봉은 문경새재 제2관문(조곡관) 동쪽에 우뚝 솟은 바위산으로 가마솥을 닮았다고 해서 가매바우, 가매봉이라 부르기도 하며 문경에서는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시루봉이라 부른다.
부봉 여섯 봉우리 중 제일 높은 봉우리는 제2봉이며 정상석은 백두대간 상의 제1봉에 놓여 있지만 부봉의 이름이 비롯된 제6봉(시루봉)을 주봉으로 치는데 부봉은 주흘산에 부속된 봉우리가 아닌 독립된 봉우리로 친다.
조만간에 내려 가 지맥 산행과 함께 이곳 주흘산과 부봉에도 올라 멋진 조망을 즐겨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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