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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두위지맥(대간·완)

두위지맥 제1구간 만항재에서 수라리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7.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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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강원도 정선군과 영월군의 두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7년 05월 26일 (금요일 당일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추웠으나 해가 뜨면서 맑고 간간히 구름이 드리워진 바람불어 산행하기 좋았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상 06도에서 영상 2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만항재(414번 2차선 포장도로)-하늘숲공원 뒤 두위지맥 분기점-만항재 회귀-1차선 포장도로-공군부대 정문-군부대 철조망

               좌측등로-1311.6봉-정암풍력14호기발전소 건설현장 절개지-능선진입-정암풍력13호기 건설현장 절개지-정암풍력발전소

               건설 임도-능선진입-1383.2봉-안부-전망바위-1378.9봉 헬기장-전망바위-1378.4봉(만항산?)-비포장 임도(정암풍력발전소

               건설임도)-정암풍력발전기 4호, 3호 건설현장-능선진입-정암풍력발전 1호기 건설현장-정암산(1452.4봉, 삼각점)-9번

               송전탑-1332.8봉 산죽지대-전망바위-바위등로-좌측 송전탑-임도삼거리 이정표(만항재 8.3 Km, 마운틴콘도 9.3 Km,

               출입금지)-임도따라 진행-능선진입-임도삼거리 전망대와 이정표(만항재 10.7 Km, 마운틴콘도 8.8 Km, 하이원호텔 &

               CC 1.1 Km)-비포장 임도-능선진입 이정표(백운산 마천봉 0.9 Km, 하이원호텔&CC 1.2 Km, 마운틴콘도 8.7 Km)-산돈퇴치

               목탁종-1350미터(마운틴탑 2.8 Km) 이정목-헬기장 이정표(백운산정상 1.0 Km, 하이원호텔 1.6 Km, 밸리콘도 4.7 Km)-

               1440미터 이정목-이정표(백운산정상 0.2 Km, 하이원호텔 2.2 Km, 밸리탑 0.3 Km)-산돈퇴치목탁종-백운산(1426.6봉,

               정상석과 삼각점 및 전망데크) 이정표(마운틴탑 2.1 Km, 하이월호텔 2.4 Km)-헬기장-해발 1410미터 이정목-이정표(마운틴

               탑 1.6 Km, 백운산 정상 0.5 Km)-이정표(마운틴탑 1.5 Km, 백운산 정상 0.6 Km)-이정표(마운틴탑 1.6 Km, 백운산

               정상 0.7 Km)-해발 1400미터 이정목-이정표(마운틴탑 0.8 Km, 백운산 정상 1.3 Km)-이정표(마운틴탑 1.7 Km, 백운산

               정상 0.4 Km)-돌탑과 이정표(마운틴탑 0.3 Km, 백운산 정상 1.8 Km)-마운틴탑-나무계단과 조형물-이정표(도롱이

               연못 1.7 Km, 백운산정상 2.1 Km)-해발 1300미터 이정목과 통나무벤취-임도 사거리 이정표(도롱이연못 0.9 Km, 마운틴

               탑 0.8 Km, 마운틴콘도 5.0 Km, 운탄고도정화시설 2.8 Km)-통나무벤취-도롱이연못 갈림사거리 임도 이정표(화절령 1.1 Km,

               아롱이연못 0.1 Km, 하이원호텔 CC 6.1 Km, 마운틴콘도 3.6 Km, 마운틴팁 1.4 Km)-1214.9봉 삼각점-잣나무 군락지-

               꽃꺼끼재(화절령)임도 삼거리 이정표(새비재 타임캡슐공원 17.8 Km, 상동 영월 15 Km, 사북 7 Km, 만항재 20.2 Km, 하이원

               호텔&CC 7.4 Km)-능선진입-이정표(화절령 0.5 Km, 주목군락지 2.8 Km와 두위봉정상 4.6 Km)-1341봉 이정표(주목

               군락지 1.8 Km와 두위봉정상 3.6 Km)-이정표(화절령 2.5 Km, 주목군락지 0.8 Km와 두위봉정상 2.6 Km)-1441.5봉 삼각점-

               바위봉 우회-이정료(화절령, 주목군락지와 두위봉)-바위 너덜지대 이정표(화절령 3.0 Km, 주목군락지 0.3 Km와 두위봉

               정상 2.1 Km)-벤취쉼터와 이정표(화절령 3.3 Km, 두위봉정상 2.0 Km)-1379.8 바위봉-1458.9 공터봉 이정표(정상 1.4 Km,

               도사곡 4.3 Km, 증산 4.7 Km)-헬기장-헬기장-폐헬기장-두위봉(1470.8봉, 삼각점)-헬기장-헬기장-이정표(정상 10 m,

               단곡계곡 4.1 Km와 자미원 4.7 Km 및 자뭇골 4.6 Km, 도사곡 5.4 Km와 증산 6.1 Km)-바위봉 (옛 두위봉 정상석)-

               이정표(자미원 4.2 Km와 자뭇골 4.5 Km, 단곡계곡 4 Km와 자미원 4.5 Km, 사곡 5.5 Km와 증산 6.2 Km)-두위봉철쭉축제

               기념비와 톨탑봉-죽렴지맥 분기점-낙엽송 지대-비포장 임도-임도 삼거리-능선진입-질운산(1173.8봉, 삼각점)-무명안부-

               새비재 이정표(고한 만항재정상 31.7 Km, 타임캡슐공원 3.3 Km와 조동리 근현대역사마을 6.6 Km)-비포장 임도-956.5봉

               임도-무명안부-983봉-922.2 삼각점봉(연모산, 설운산?)-778.7봉-748.5봉-폐헬기장-뱃재-지도상 뱃재-폐헬기장-로프

               된비알-예미산(989.6봉, 삼각점)-잣나무 군락지-968.5봉-로프구간-철조망 구간-산불감시초소-수라리재(이정석, 태백산로

               2차선 포장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31.86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트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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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멋진 조망과 만개한 철쭉을 사진에 담으며 여유있게 진행하여 13시간 14 (04시 34부터 17 49분까)

교통편 : 애마로 고한역 공영주차장 도착

             고한역에서 카지노콜택시(033-592-7979, 010-8287-3600)로 만항재까지 이동 (13,000.-)

             산행 후 수라리재에서 예미의 신동읍콜택시(033-378-0006)로 예미역까지 이동 (12,000.-)

             예미역에서 정동진행 마지막 열차(18시 54분 출발)로 고한역까지 이동 (2,600.-, 열차가 연착하여 약 10여분 지체)

             애마 회수 후 영월읍 레스트스파 찜질방(033-374-5353)에서 하룻밤 숙박 (입장료 8,000.- + 이불비 3,000.-)

두위지맥이란???

두위지맥백두대간 함백산 아래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남으로 옥동천, 북으로 지장천을 가르며 서강(평창강)이 동강(남한강)에 합류하는 영월군 영월읍 덕포리에서 주왕지맥과 마주보며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8.4 Km의 산줄기로 동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지나는 산은 백운산(1427봉), 두위봉(1471봉), 질운산(1174봉), 예미산(990봉), 망경대산(1088봉), 응봉산(1013봉), 계족산(890봉)으로 시종 1000미터대의 산들을 지나고 최고봉은 철쭉산으로  유명한 두위봉(1471봉)이다.

 

 

 

환상의 조망과 만개한 철쭉을 친구삼아 즐겼던 두위지맥 마루금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두위봉 철쭉이 만개하는 시기에 맞춰 준비하던 두위지맥이지만 출발도 하기 전에 교통편과 현지에서의 택시 그리고 숙박 등으로 인해 어렵게 진행이 되고 있던 중에 정선에 일이 생겨 계획보다 하루 먼저 산행을 하고 올라오기로 한다.

자연스럽게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던 계획은 애마로 변경이 되었고 이제 숙박과 지역 택시 이용편만 확인하면 되기에 인터넷에 들어 가 최선의 동선을 확인해 보니 고한역에 주차시키고 택시로 만항재로 올라 산행 후 수라리재에서 예미의 신동읍콜택시를 이용해 예미역으로 이동하여 오후 6시 54분 예미역에서 출발하는 마지막 기차를 이용해 고한읍으로 이동하는 것이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최선의 이동 방법처럼 보인다.

애마를 회수한 후에 영월의 찜질방으로 이동해 하룻밤 묵은 후 애마를 봉래초등학교 근처에 주차시키고 영월 택시를 이용해 수라리재로 가 산행 후 애마를 회수한다는 계획까지 세우니 시간이 무척이나 더디게 흘러가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산행을 준비하고 이동과 숙박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는 시간은 참으로 즐겁게 기다리는 시간이기에 그 지루함을 견딜 수 있나 보다.

다만 첫날 산행이 30여 Km가 넘고 최저 800미터에서 최고 1400미터 내외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계획했던 수라리재까지 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며 간다고 해도 예미역에서 마지막 기차 시간인 오후 6시 50여분까지 맞춰 내려갈 수 있을지 조금은 고민도 되는 시간이지만 지금까지의 산행경험을 살려 무탈하게 두위지맥을 마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더욱이 토요일 저녁에는 오랫만에 바쁜 공연 연출를 마치고 귀가하는 아들과 함께 가족 저녁 회식이 잡혀 있어 토요일 조금 일찍 산행을 마치고 약속된 시간에 돌아 와 즐거운 저녁식사 자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추워 어둠속에 만항재에 도착을 하니 한기가 느껴지고 두꺼운 자켓을 입고 출발해 풍력발전기를 만드는 공사 현장을 지나 성하의 계절로 달려가는 짙은 녹음을 만끽하다 보니 생각보다 빨리 백운산 마천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보니 기대했던 것보다 더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어 탄성을 금치 못하는 시간이 되었다.

제일 먼저 지나온 동쪽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활짝 핀 철쭉꽃 넘어 저 멀리 인공 구조물이 눈에 들어 오는 함백산이 보이고 그 앞쪽으로 오늘 새벽에 이 산객이 걸어 온 부드럽고 아름다운 두위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그 함백산 우측 아래 저 멀리에는 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백두대간 상의 태백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앞 옆으로는 장산이 가깝게 다가와 있다.

함백산 좌측으로는 백두대간의 금대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조만간 오르고 싶은 노목지맥 마루금이 넘실거리고 있다.

 

 

 

진행 방향인 서쪽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하이원 스키장 위쪽의 마운틴탑이 아름답게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두위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마루금이 너무나 환상의 모습으로 이 산객을 부르고 있는 듯 하다.

두위봉 우측 저 멀리에는 하얀 뭉게구름 아래 수평선을 이루고 있는 주왕지맥의 산들과 가리왕산 그리고 그 우측 앞으로 노목지맥과 그 뒤로 금대지맥 그리고 황병지맥 산군들도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감은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즐겁고 가슴 설레이는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다시 홀로 가는 산행이지만 붉게 만개한 철쭉과 원시림 같은 짙은 녹음의 등로 그리고 키 작은 산죽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을 맞추다 보니 생각보다 잘 진행되어 두위봉 정상을 넘어가니 오늘과 내일까지 걸어 완주해야 할 두위지맥이 영월땅을 가로질러 뻗어 가는 모습이 또한 이 산객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활짝 핀 철쭉 지나 저 멀리 질운산 지나 새비재 고랭지 채소밭이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예미산이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습이 아름답지만 아직도 걸어야 할 등로가 결코 만만치 않음도 확인하는 시간이다.

수라리재에서 잠시 숨을 고른 두위지맥은 다시 망경대산과 응봉산 및 계족산을 일으키고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합수점에서 그 끝맺음을 하는 모습이 어렴풋하게 모두 눈에 들어 오고 그 주위를 감싸고 있는 영월지맥과 주왕지맥 그리고 우측 멀리에는 죽렴지맥의 산군들이 겹쳐지며 첩첩산중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 듯 하다.

그 두위지맥 우측으로는 조만간 오르고 싶어 준비중인 죽렴지맥 마루금이 또한 부드러운 능선을 자랑하며 이 산객에게 속삭이고 있는 듯 다가온다.

 

 

 

전날 늦게 일을 마치고 고한역으로 가 애마를 공여주차장에 잘 주차시킨 후 그 애마에서 쪽잠을 청하니 피곤했는지 금새 잠이 들지만 추위에 일찍 눈이 떠지고 전날 밤 준비한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하고 새벽 4시 조금 넘긴 시간에 고한읍 콜택시를 불러 만항재로 올라가는데 택시가사님도 오늘 새벽이 초겨울처럼 춥다며 이 산객의 옷차림을 보며 조금은 걱정을 하신다.

오랫만에 다시 올라보는 만항재이지만 두어번 올랐던 기억이 있어 금새 눈에 익는데 다만 앞에 보이는 건물은 기억속에서 지워지고 없다.

잠시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산행 준비를 하는데 벌써 옷깃을 파고드는 한기에 온몸이 떨리며 두꺼운 자켓을 하나 더 꺼내 입는다.

만항재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과 영월군 상동읍과 태백시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고개로 남한에서 여섯 번 째로 높은 함백산(1573) 줄기가 태백산(1567)으로 흘러내려가다가 잠시 숨을 죽인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인 고개 가운데 가장 높은 지점에 위치한 고갯길로 알려져 있다.

 

해발 1330미터로 지리산 정령치(1172미터)나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선인 운두령(1089미터)보다도 높으며 태백과 정선을 잇는 두문동재에 터널이 뚫려 시간이 단축되면서 길고 험한 만항재에는 인적과 차량이 드물다.

 

만항재 아래에는 일제강점기부터 탄광 개발이 시작된 만항 마을이 있으며 고개 중턱에는 만항소공원이 마련되어 있다.

만항재 한쪽에는 차량 2대가 주차되어 있는데 그중 한대에는 사람들이 잠을 자다 일어나 사진을 담을 예정인지 야생화 공원방향으로 이동을 한다.

 

 

 

만항재에서 그냥 진행할 수가 없어 동쪽인 하늘숲공원쪽으로 들어가니 안개가 이슬이 되어 풀섶에 맺혀있고 이 산객이 지나가니 그 물방울들이 비산하며 벌써 등산화와 등산바지를 적시고 있다.

잠시 뒤 두위지맥 분기점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두위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을 발견하지 못해 한동안 서성이다 사진에 담는 것을 포기하고 선답자들의 띠지들만 사진에 담은 후 곧바로 다시 만항재로 뒤돌아 내려가 본다.

오랫만에 이마에 헤드렌턴 불빛을 달고 산행을 하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지만 금새 능숙한 일상으로 되돌아 와 편안하게 진행하는 산행이다.

 

 

 

만항재로 되돌아 내려오며 하늘숲공원의 좁은 등로에서 바라보니 바로 앞 차량 불빛이 보이는 만항재 넘어 공군부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1311.6봉이 어둠속에 어렴풋이 올려다 보인다.

조금은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왔다면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만항재의 야생화도 구경하고 주위 풍경도 둘러보며 두위지맥 분기봉이란 이정판도 만날 수 있었을텐데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지만 이것도 또 다른 산행의 일부이니 하나를 얻으며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몸소 체험하는 시간이다.

 

 

 

다시 만항재로 내려 와 이제는 건물 우측의 비포장 임도쪽에 보이는 입산통제구역과 혜선사란 입간판이 보은 방향으로 들어가지만 곧바로 좌측 능선으로 올라 나즈막한 능선을 넘어 공군부대로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한다.

처음부터 건물 좌측의 1차선 포장도로를 따랐으면 편했을 것을 처음부터 괜시리 등산화만 적시며 짧은 알바를 경험한다.

잠시 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공군부대 정문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보이는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제 날이 조금씩 밝아 오며 여명의 빛으로 헤드렌턴 불빛이 없어도 산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이지만 숲이 무성한 능선으로 들어가니 다시 어둠이 짙어지며 좁은 불빛을 의지하여 진행하게 된다.

군부대 철조망을 모두 통과한 후 울퉁불퉁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들어가니 봉우리인지도 모를 1311.6봉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어렵게 담고 다시 추위를 이기려 조금은 빠르게 출발을 한다.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를 넘어 썩은 나뭇가지들이 잡풀속에 숨어 있는 진행에 상당한 주의가 필요로 하는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눈 앞에 드넓은 공사장이 펼쳐져 있는데 한쪽에는 거대한 웅덩이 속에 콘크리트 고형물도 보인다.

그 공사장 넘어 저 멀리에는 산허리 우측으로 산판도로가 나 있는 1383.2봉이 올려다 보인다.

잠시 걸어 임도로 내려서니 공사장 좌측으로 절개지가 보이고 그 한쪽에 플랭카드가 걸려있어 그 방향으로 가 주의하며 갈펴보니 바로 정암풍력14호기 건설현장이었다.

풍력발전기란 바람으로 풍차를 회전시켜 전기를 일으키는 발전 방식으로 전력선을 공급할 수 없는 오지나 섬에서 실용되기도 하는데 풍력 발전에는 직접식과 축전식이 있다.

직접식은 교류 풍력 발전기를 직접 전력 계통에 이용하는데 풍력의 변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불편하므로 풍속에 관계없이 풍차를 일정한 속도로 회전시키기 위해 풍속에 따라 날개의 기울기를 변화시키는 등의 제어 장치를 달기도 한다.

축전식은 풍력 발전기에서 얻은 전기를 축전지에 축적한 후 이용하는데 이것은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하지만 설비비가 비싼 것이 결점이며 이밖에 디젤 발전기를 함께 설치하기도 한다.

풍력 에너지는 바람을 받는 면적이 반지름 1미터의 원일 경우 풍속이 초당 10미터이면 약 1메가옴의 전기를 얻을 수 있으며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100에서 1000메가옴 이상의 전력을 얻을 수 있는 풍력 발전기가 실용화되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친자연적인 발전기를 건설하기 위해 이렇게 광활한 지역에 우거진 자연을 파괴하며 건설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웃픈 현실이다.

 

 

 

풍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낮은 절개지 위를 타고 조심하며 진행을 하다 등로 우측 저 멀리 먼동이 터오는 하늘을 살펴보니 백두대간의 함백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그 정상부는 안개가 덮혀 전혀 모습을 볼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그 함백산 우측 넘어 아침 일출이 시작되려는데 두꺼운 구름이 주위에 퍼져있어 제대로 된 일출이나 볼 수 있을지 모르는 풍경이다.

함백산은 태백시와 정선군 사이에 우뚝 솟은 해발 1572.9미터의 산으로 정상에서는 태백산, 일월산, 백운산, 가리왕산을 조망할 수 있다.
태백은 한반도의 등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 한 가운데 위치하여 사방이 산으로 겹겹 둘러 싸인 땅으로 함백산은 태백의 진산이다.

함백산 정상에는 고산수목인 주목과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어 사진 작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새해 해맞이 관광 코스로도 많은 산행객들이 찾고 있는 곳이다.

조만간 다시 그리우면 지맥 산행중에도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고 걸어 볼 기회가 있을 것으로 그때 저곳에 올라 오늘을 추억할 수 잇기를 바래본다.

 

 

 

다시 이슬에 촉촞히 젖어있는 능선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나는데 이곳은 정암풍력13호기 건설현장이다.

그러고 보니 이 라인을 따라 정암풍력1호기부터 이곳 14호기까지 연속으로 건설되는 것처럼 보이는데 그만큼 산자락이 전부 잘리고 파헤쳐져 벌거숭이가 되어 가는 모습은 왠지 모르게 서글퍼지는 현장이기도 하다.

좌측 절개지를 따라 조심하며 진행해 공터에 도착을 하고 조금 더 밝아진 빛에 뚜렷하게 보이는 함백산과 지나 온 1311.6봉으로 이어지는 공사 현장을 살펴본다.

 

 

 

다시 나타나는 비포장 건설 임도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보이고 조금 더 올라 나타나는 공사현장은 좌측으로 크게 돌아 정상적인 마루금으로 복귀해 오랫만에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을 타고 이마에 굵은 땀방울을 흘려 본다.

잠시 오르며 살펴보니 굵은 활엽수 아래 식물들이 자라기 시작하고 잠시 후 말라 죽어가는 산죽밭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왜 산죽이 말라 죽었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그렇게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넓은 공터같은 1383.2봉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어 삼각점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정상부의 사진 한장만 남기고 곧바로 좌측으로 흘러 내려가는 등로를 타고 출발을 해 본다.

 

 

 

푸르름이 짙어가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죽은 산죽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안부를 지나 다시 살아 있는 키 작은 산죽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처음으로 나타나 잠시 들렸다 가기로 한다.

무명봉에 있는 전망바위로 오르니 생각보다 맑은 날씨에 조망도 선명하여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좌측 앞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정암산까지의 부드러운 등로가 너무나 아름답게 누워있고 그 위 파란하늘엔 구름이 덮혀 막 올라오는 하루 햇살에 빛나고 있다.

 

 

 

그 두위지맥 마루금 좌측 아래로는 깊은 골짜기에 형성된 영월군 상동읍 구래리 마을이 아름답고 그 주위를 둘러 싼 산줄기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빛을 내며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 구래리 마을 우측 뒷쪽으로는 선바위산과 그 뒤로 반짝이는 영월의 매봉산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기대하지 못했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시간 가는줄도 모르게 잠시 더 머물다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마루금에 복귀해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 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평이한 등로로 변하고 죽은 산죽들이 간간히 보이기도 하지만 그 죽은 산죽보다는 분홍빛으로 만개한 철쭉꽃이 아름다운 등로이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이제 폐허가 되어가는 헬기장에 도착을 해 활짝 만개된 철쭉과 병꽃들을 살펴보는 여유도 가져 본다.

햇살이 올라오며 풀섶에 맺혀있던 이슬들도 말라 이제는 조금 더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헬기장을 떠나 편안하게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잠시 그곳으로 올라 풍경을 살펴보니 장산이 바로 코 앞으로 다가와 있다.

아직 올라보지 못한 미답봉이기 때문에 조만간 올라 보고 싶은 산이기도 하기에 자료를 찾아 보니 장산(1408.8봉)은 상동읍 구래리와 천평리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백두대간 상의 함백산이 서쪽으로 가지를 쳐 웅장하게 솟구친 산으로 남쪽과 서쪽은 바위와 절벽지대로 이루어져 경관이 매우 수려하다.

또한 북쪽과 동쪽은 완사면으로 상동에서 태백 방면으로 가다 칠랑이골에서 좌측으로 쳐다보면 성벽처럼 위용을 자랑하는 산으로 정상에 서면 강원도 일대 산군의 파노라마를 감상할 수 있다.

그 장산 좌측으로는 백두대간 상의 명산인 태백산이 존재하지만 산 능선이 가려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하다.

 

 

 

환상의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가끔 보이는 바위들도 보이고 노거수가 보이는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말라 죽은 회색빛 산죽들과 그 사이로 크게 자란 철쭉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1378.4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산객이 이곳을 만항산이란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다.

많은 자료를 찾아 보지만 만항산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한데 이곳이 만항산이란 제목은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만항산이란 1378.4봉을 완만하게 내려 와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새로 생긴듯한 넓은 비포장 임도가 따라오고 살펴보니 바로 정암풍력발전기를 설치하며 새로 낸 산판도로였다.

무참하게 잘리고 파헤쳐진 산줄기를 내려다 보는 이 산객의 마음도 저 비포장 임도만큼이나 마음이 아파온다.

잠시 후 그 비포장 임도 쪽 가장자리에서 살펴보니 저 멀리 하이원CC의 건물들도 보이고 그 뒤로 하늘과 맞닿아 있는 첩첩산중들이 한눈에 들어 온다.

 

 

 

크게 자라고 있는 잡목을 헤치고 조금 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마루금은 곧바로 새로 생긴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이제부터는 조금 편안하게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한동안 걸어 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정암풍력5호기 건설 현장에 많은 중장비들이 보이고 한쪽에는 콘테이너 박스도 보이는데 이른 아침시간이아 그런지 작업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계속 걸어 제4호기 건설현장을 지나 임도 옆의 주목나무를 살피며 오르니 갑자기 산 전체가 하얀 안개속에 파묻히고 지금부터 올라야 할 1452.4봉의 정암산 정상부는 완전히 숨어 그 희미한 존재감조차 보이지 않는다.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다 포크레인이 있는 곳 지나자마자 좌측의 능선으로 오르니 안개가 풀섶에 맺혀 등산화와 등산복을 완전히 적시고 있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짧게 걸어 오르니 희미한 등로가 나타나고 약간의 바위 등로와 철쭉 등로를 지나 오르니 정상부 근처의 등로 우측이 방금 전 헤어졌던 비포장 임도와 이어져 있다.

풍력발전기를 위한 작업이라고는 하지만 잘리고 파헤쳐진 산자락을 바라보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걸어 오르니 진달래꽃과 철쭉꽃이 혼재되어 만개한 정상에 도착을 하고 좌측에 숨어 있는 1452.4미터의 정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삼각점을 확인한다.

이 정암산에 관한 자료는 전혀 찾을 수 없었는데 다만 이 산자락에 위치한 정암사란 절에서 이름이 유래된 것은 아닐까 유추를 해 본다.

정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인데 우리 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로서 갈래사라고도 하며 신라의 대국통 자장율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사적기에 의하면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 수다사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꿈에 이승이 나타나 내일 대송정에서 보리라라고 하여 아침에 대송정에 가니 문수보살이 내현하여 태백산 갈반지에서 만나자하고 사라졌다.

자장율사는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어느 날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이곳이 갈반지라 이르고 석남원을 지었는데 이 절이 정암사이다.

이 절에는 자장율사와 문수보살 사이에 있었던 유명한 설화가 전해지고 있는데 자장이 이곳에서 문수보살이 오기를 기다리던 어느 날 떨어진 방포를 걸친 늙은 거사가 칡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아 와서 자장을 만나러 왔다고 하였다.

시자가 스승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을 나무라자 거사는 스승에게 아뢰기만 하라고 말하였고 시자가 자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으나 미처 깨닫지 못하고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여 만나지 않겠다고 하였다.

거사는 아상을 가진 자가 어찌 나를 알아보겠는가하고 삼태기를 쏟자 죽은 강아지가 사자보좌로 바뀌었으며 그 보좌에 올라 앉아 빛을 발하면서 가 버렸다.

이 말을 들은 자장이 황급히 쫓아가 고개에 올랐으나 벌써 멀리 사라져 도저히 따를 수 없었고 자장은 그 자리에 쓰러진 채 죽었는데 뼈를 석혈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또 창건에 관한 일설에는 자장이 처음 사북리 불소 위의 산정에다 불사리탑을 세우려 하였으나 세울 때마다 붕괴되므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 세 줄기가 설상으로 뻗어 지금의 수마노탑, 적멸보궁, 사찰터에 멈추었으므로 그 자리에 탑과 법당과 본당을 세우고 이 절을 갈래사라 하고 지명을 갈래라고 했다고 전한다.

이 절은 창건에 얽힌 전설 외의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으며 절 입구에는 일주문이 세워져 있고 일주문을 들어서면 왼편에는 근년에 완공된 선불장이 있다.

오른쪽에는 고색의 적멸보궁이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수마노탑을 등에 지고 있다.

중간 도량가에 종루가 있고 선불장 옆에는 무량수전과 자장각, 삼성각이 있다.

이 중 적멸보궁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석가모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하여 건립한 것으로 수마노탑에 불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법당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이 보궁 안에는 선덕여왕이 자장율사에게 하사했다는 금란가사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며 적멸보궁 뒤쪽의 수마노탑은 보물 제4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자장율사가 643년(선덕여왕 12)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서해 용왕이 자장율사의 신심에 감화되어 마노석을 배에 싣고 동해 울진포를 지나 신력으로 갈래산에 비장해 두었다가 자장율사가 이 절을 창건할 때 이 돌로써 탑을 건조하게 했다고 하여 마노탑이라 하였다 한다.

또한 물길을 따라 이 돌이 반입되었다고 해서 수 자를 앞에 붙여 수마노탑이라고 하였다고 하며 이 탑을 세운 목적은 전란이 없고 날씨가 고르며 나라가 복되고 백성이 편안하게 살기를 염원하는 데 있다고 한다.

종교와 관계없이 다음에 올 기회가 되면 정암사에 꼭 한번 들려 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정암산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되돌아 나와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안개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고 등로에는 잡풀 대신 다시 살아있는 키 작은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죽과 예쁜 철쭉꽃이 조화를 이루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잠시 후 9번 송전탑과 은사시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완만하게 내려가 평이한 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산죽 등로를 따르니 봉우리 같지 않은 산죽 능선의 1332.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계속 이어지는 키 작은 산죽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또 다시 그 바위로 올라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환상의 산그리메를 살펴 본다.

지나 온 등로 좌측 뒤로 강렬한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장산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 돌아 성동마을 위로 선바우이산이 우뚝 솟아 있다.

그 선바위산 우측 저 멀리에는 매봉산과 단풍산이 형제산처럼 나란히 붙어 아름답지만 단풍산 정상부에는 아직도 하얀 안개가 덮고 있어 고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장산과 선바위산 뒤 절 멀리에는 희미하지만 뚜렷한 백두대간의 선달산과 소백산 자락이 하늘금을 만들며 이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성동마을을 줌으로 당겨 사진에 담고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마루금을 타고 걸어가니 약간의 바위너덜길을 지나 철쭉 등로를 만난다.

다시 나타나는 키 작은 산죽 등로를 따라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데 트랙이 없으면 알바하기 쉬운 구간처럼 보이는 등로이다.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잠시 후 이정표가 서 있는 임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도 역시 옛날 석탄을 나르기 위해 조성된 임도길로서 소위 말하는 운탄고도의 일부분이 아닐까 생각되는 산판도로이다.

 

 

이제 이곳 임도에서 진행방향을 살펴보니 백운산 마천봉으로 오르는 아름다운 등로가 환상으로 빛나고 그 우측 능선자락에는 하이원호텔이라 생각되는 멋진 건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온 방향으로는 방금 전 내려 온 송전탑과 정암산 자락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에는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그 우측 가까이로 장산이 아름답다.

참으로 많이도 올랐던 태백산이지만 그 태백산에서 이곳 백운산과 두위봉을 바라보며 그 이름을 불러주지 못했기에 아쉬운이 남아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다시 상동마을과 그 우측으로 솟아 있는 선바위산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하늘의 하얀 구름과 맞닿아 있는 백두대간의 선달산과 소백산 능선이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 사이에 어래산이 보이고 그 어래산 자락의 내리계곡에서 계곡 산행의 진수를 맛봤던 추억이 떠 올라 잠시 미소를 지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대했던 조망과 풍경보다 너무나 환상의 그림이기에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조금 더 머물며 그 풍경 하나 하나를 가슴에 담아 보는 시간이다.

 

 

그곳 임도에서 원 마루금은 능선으로 올라 진행을 해야 되지만 그 능선 좌측으로 임도가 개설되어 한동안 같이 진행되기에 이곳에서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임도 좌측으로는 계속되는 아름다운 조망으로 생각보다 진행속도가 나질 않는다.

임도 좌측의 장산과 선바위산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백두대간 마루금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그 고갯마루에서 원 마루금과 만나 좌측 능선으로 올라 진행이 된다.

그 고갯마루를 올라 살펴보니 그곳 고개를 넘어서자마자 시멘트 포장도로는 다시 비포장 임도로 바뀌면서 차량운행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가 보이고 그 넘어 저 멀리 지나 온 정암산 자락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진행하니 다시 키 작은 산죽들이 죽어가는 등로를 만나고 잠시 후 바위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산죽 등로를 따르니 다시 단풍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임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이 바로 운탄고도길이다.

운탄도로는 강원도 깊은 산속에 꼭꼭 숨어 있는데 행정구역으로 따지면 정선군과 영월군에 주로 속하고 산줄기로 말하면 두위지맥이며 산봉우리로 말하면 백운산과 두위봉 일대다.

두위지맥 산줄기의 7부 능선을 따라 단단히 다진 도로가 시원스레 나 있는데 이 길이 운탄도로로서 깊고도 높은 산속에 훤한 신작로를 뚫은 단 하나의 이유는 석탄이었다.

운탄도로는 강원도가 석탄으로 먹고살 때 석탄을 나르기 위해 건설한 도로이기 때문에 운탄도로는 탄광을 향해야 하므로 산을 후벼 파듯이 나 있고 석탄을 가득 실은 트럭이 달려야 했으므로 평평하고 널찍하다.
운탄도로는 1960에서 70년대 집중적으로 건설됐는데 강원도 탄광이 전성기를 누리던 때와 일치하며 운탄도로의 길이는 약 100 Km로 알려져 있으며 정선과 영월 일대 탄광은 물론 태백과 삼척의 탄광에도 운탄도로가 있었다.

그래서 운탄도로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지만 여느 길처럼 운탄도로도 시작과 끝은 분명하여 모든 운탄도로는 탄광에서 시작해 태백선 기차역에서 끝난다.
1989년 석탄 합리화 정책이 시행돼 탄광이 문을 닫았고 탄광촌에 빈집이 늘었으며 운탄도로의 수명도 함께 기울었는데 운탄도로에는 더 이상 탄차가 달리지 않았지만 워낙 단단히 다져 놓은 바람에 원래 모습이었던 산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해 강원도 산자락을 따라 구불구불 볼썽사나운 흉터만 남았다.
2000년 백운산 자락 아래 강원랜드(지금의 하이원리조트)가 들어섰는데 강원랜드는 카지노만 세운 게 아니라 백운산 능선을 따라 이어진 운탄도로를 하늘길이라 이름 붙이고 탐방로를 조성해 아직도 길의 모습을 잃지 않은 운탄도로가 유지되어 탐방로를 조성하는 데 딱히 공들일 것도 없었다.

곳곳에 이정표 몇 개만 세우면 될 일이었기에 마침내 운탄도로는 사람이 걷는 길이 됐다.

그곳 임도에서 좌측으로 돌아가니 전망데크가 보이고 그곳에서 살펴보는 장산과 선바위산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환상이다.

 

 

그 선바위산 우측 앞으로는 매봉산과 단풍산이 아름답게 솟아 있고 그 우측 저 멀리 보여야 할 두위지맥의 망경대산과 계족산 자락은 산자락에 숨어 버렸다.

다만 매봉산 좌측 저 멀리 검은 구름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의 능선은 백두대간의 선달산과 어래산 그리고 그 옆으로 서 있는 마대산이다.

저 선달산 오름길도 제법 힘이 들어 늘 오르면서 처음 관가에 나서는 선비가 선달 선달 걷듯 올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올랐던 추억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너무나 아름다워 다시 한동안 그 전망데크에서 쉬어 간다.

 

 

안내도를 보니 하늘길이란 단어가 나타나고 또 어떤 곳에는 운탄도로 그리고 또 다른 곳에는 화절령 꽃놀이길이란 글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모두 같은 의미의 산판도로인 듯 보인다.

그곳 전망데크에서 나와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 걸어 오르니 임도 우측으로 능선 진입로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본격적인 백운산 마천봉 오름길로 접어 든다.

 

 

백운산 마천봉까지 900미터 거리라는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나무로 만든 종이 보이는데 처음에는 무슨 용도인지 몰라 어리둥절 했지만 백운산 정상부에 또 다시 보이는 나무종을 보고서야 그것이 산돼지 퇴치용 나무 종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잘 정비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옆에는 해발고도와 백운산 정상까지 남아 있는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등로 우측의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해 잠시 조망을 즐겨 본다.

방금 전 지나 온 정암산 자락 뒤 저 멀리 함백산이 머리를 내밀고 그 우측으로 부드러운 어머니 품을 닮은 태백산과 조금 가까이에 장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헬기장에서 잠시 더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부드러운 오르막 등로를 따라 백운산 정상부로 올라 본다.

다시 약간의 바위들이 보이고 해발 1440미터라는 얼레지꽃길 이정목을 지나 벨리탑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통과하니 백운산 등산로 초입에서 만났던 나무 종이 다시 나타나는데 그 버팀목에는 산돼지퇴치용목탁종이란 글씨가 보인다.

아마도 산돼지들이 출몰하여 만나게 되면 이 종을 쳐 돼지를 퇴치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부드러운 나무 그늘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백운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간단한 아침 상을 펴 허기를 달래 본다.

 

백운산(1426.2봉)은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과 정선군 고한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426미터로서 동남쪽의 함백산(1573봉)을 비롯하여 서북쪽의 두위봉(1466봉), 북동쪽의 대덕산(1307봉)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고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산 위에 흰 구름이 늘 끼어 있어 백운산이라고 하며 남쪽 사면을 흐르는 수계는 남한강의 지류인 옥동천으로 흘러 든다.

 

또한 남쪽 사면의 상동읍 구래리에는 1923년에 개광된 남한 최대의 중석광산인 상동광산이 있고 북쪽 사면에는 고한읍이 위치하고 있으며 고한역을 중심으로 태백선 전철이 동남천 계곡을 따라 달리다가 정암터널을 통해 황지에 도달하게 된다.

 

고한 지역의 지질은 후기 고생대와 전기 트리아스기의 평안누층군이 널리 분포하는데 이 평안누층군의 구성 암석은 대부분 사암과 셰일을 비롯한 쇄설성 퇴적암이다.

 

평안누층군은 만항층, 함백산층, 고한층으로 나뉘며 상부 고생대층이 널리 분포하고 있어 많은 양의 석탄이 매장되어 있음을 드러내 주는 지형이다.

 

고한 지역은 1960년대 이후 전형적인 탄광도시로 형성되었고 인구 대부분이 석탄 산업에 종사하였으며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전체 인구 가운데 80% 정도가 석탄산업 종사자 및 가족으로 구성될 정도로 높은 비율을 보였다.

 

1960-70년대 탄광 개발기를 거쳐 1980년대 활황기를 맞다가 1989년부터 시행된 석탄산업 합리화사업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퇴보의 길을 걷게 되었고 탄광 폐광 이후 지역 경기는 일시에 공동화 현상을 빚게 되었다.

 

실제로 합리화 사업 이후 1993년까지 매년 3-4개의 탄광이 폐광절차를 밟았으며 폐광으로 인해 고한읍에서만 매년 1천여 명에 가까운 광부들이 실직상태에 처했고 폐광에 따라 정선군 고한읍과 사북읍은 한때 인구 6만을 넘어설 정도로 호황을 누리던 곳이었지만 폐광이 계속되면서 인구가 1만 5천명으로 줄어들었다.

 

폐광 지역의 경제가 쇠퇴하여 지역주민들의 생존권이 위협을 받게 되자 1995년 2월 생존권 확보를 위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고 그 결과 폐광지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한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1995년 12월 제정되었다.

 

특별법의 내용은 폐광 지역 개발촉진지구 지정 및 지원, 폐광지역 내 내국인출입 카지노 1개소를 설치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998년 6월석탄산업합리화사업단에 설치되었던 카지노리조트 사업본부를 모체로 하여 (주)강원랜드가 설립되어 2000년 10월 28일고한읍에 스몰카지노가 개장되었다.

 

강원랜드 카지노의 개장과 2006년 12월 8일 스키장이 개장 등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직간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도박중독 등 카지노 산업의 부작용도 나타나지만 주변지역 음식점, 주유소, 숙박업소의 손님이 증가하고 지가상승 및 개발에 대한 기대로 주변 지역 관광지 개발증대 등 간접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

김밥 한줄에 단무지 몇 조각이 전부이지만 이렇게 많은 땀방울을 흘린 다음에 먹는 식사는 무엇을 먹는다 해도 맛 있지 않은 음식이 있겠는가.

 

 

제일 먼저 남동쪽으로 오늘 걸어 온 두위지맥 남쪽 능선을 살펴보니 저 멀리 우뚝 솟아 잇는 태백산이 그립고 그 줄기를 따라 우측 멀리 흐르는 백두대간이 다시 이 산객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다.

그 앞쪽으로는 멋진 장산이 솟아 조만간 다시 보자 약속을 하지만 언제 만날 수 잇을지 기약을 할 수 없으니 아쉽기만 하다.

맥 잇기 산행에 빠져 저렇게 아름다운 오르고 싶은 산을 오를 수 없음이 안타까운 시간인 것이다.

 

 

북쪽을 살펴보니 가운데 중간 능선에 가을 억새로 유명한 민둥산과 조만간 오르고 싶은 노목지맥의 지억산이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하늘금에 맞닿아 있는 가리왕산과 그 좌측 바로 옆으로 주왕지맥 마루금이 하늘금을 이루며 달려오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 민둥산 우측으로는 백두대간의 두타 청옥이 옛 추억을 들추며 다시 한번 더 멋진 조우를 기대하고 있다.

몇번인가 올랐고 특히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던 두타 청옥이기에 아마도 이 산객에게는 평생의 잊지 못할 산으로 남아 있을 곳이며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될 곳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로 인해 생각보다 많은 시간 보내고 출발에 앞서 백운산 마천봉 주변을 살펴보니 다양한 야생화와 핸드 프린트가 보인다.

이제 배낭 메고 진행 방향의 마운틴탑과 두위봉 능선을 다시 한번 살펴보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능선으로 들어가니 금새 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하늘에선 먹구름이 밀려오지만 하루 종일 비 한방울 내리지 않고 구름이 햇살을 가렸다 비추기를 반복하는 산행하기 딱 좋은 날씨이다.

 

 

조망이 멋진 헬기장을 지나 다시 활엽수 그늘이 시원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는 생각보다 부드럽고 뚜렷하게 나 있고 간간히 보이는 이정판에는 하늘길 산철쭉길이란 글자도 보인다.

잠시 후 마운틴탑과 백운산 방향 및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와 이정목이 100미터 간격으로 설치가 되어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바위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 바위봉에서 바라보는 등로 좌측의 앞을 살펴보니 매봉산과 단풍산이 아름답고 그 뒤로 펼쳐진 옥석산과 선달산 자락이 하늘금을 가르고 있다.

 

 

다시 출발에 앞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마운틴탑과 그 뒤로 보이는 두위봉 능선이 환상적이다.

마운틴탑은 하이원리조트(강원랜드)의 스키장으로서 하이원리조트는 강원랜드는 백운산의 해발고도 883미터 고원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유일하게 내국인이 출입할 수 있는 카지노로서 폐광지역 발전과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 정부와 강원도가 주도한 범국가적 사업인 탄광지역개발 촉진지구 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조성되었다.

 

1994년 지역균형개발 및 지방중소기업육성에 관한 법률의 제정 및 공포 이후 1995 12월 폐광지역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 및 공포하여 내국인 출입 카지노 건설에 대한 근거를 마련하였고 1998 6월 강원랜드()를 설립하였으며 1999 9월 스몰카지노호텔을 착공하여 2000 10월 개장하였다.
2001 9월 도박중독 예방 및 도박중독 피해자에 대한 상담 및 치료의 역할을 목적으로 한국도박중독센터를 개설하였고 10월 코스닥
에 등록하였다.

 

20034월에는 메인 호텔, 카지노, 테마파크를 공식 개관하였고 9월에 코스닥 상장을 폐지하고 증권거래소에 이전 상장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폐광지역의 저소득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사업과 자활의지를 갖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복지재단을 창단하였고 2004년 아이스하키팀을 창단하였다.

 

2005년 골프장을 개장한 데 이어 2006 12월에는 하이원 스키장과 콘도를 개장하였으며 2008년에는 국내 첫 장애인 스키팀을 창단하였다.

 

2011 9월 컨벤션호텔을 개장하였고 10월에는 국내 리조트업계 최초로 다우존스 기속가능 경영지수 인증을 받고 지수에 편입되었다.
주요 사업은 카지노
, 호텔, 콘도, 골프장, 스키장, 테마파크 운영이며 게임, 그래픽 및 컨택센터 사업도 영위한다. 최대주주는 한국광해관리공단이며 계열회사로는 ()문경레저타운, ()동강시스타, ()대천리조트, ()바리오화순, ()하이원엔터테인먼트, ()하이원상동테마파크, ()하이원스위치백리조트 등이 있다.

겨울에 스키를 즐기기 위해 아이들과 몇 번 들렸던 기억이 잇기에 그리 낮설지는 않는 곳이다.

 

 

다시 이어지는 평이한 나무 그늘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옆으로는 계속 이정목이 보이고 잠시 후 무명 안부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사각 탁자가 보인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마운틴탑까지 4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고 곧이어 마운틴탑으로 이어지는 돌길이 열려있다.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는 마운틴탑과 슬로프를 바라보고 강렬한 햇살을 머리에 받아가며 오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밸리탑도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것을 만들기 위해 또 얼마나 많은 자연이 훼손 되었을까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머리 위레 강렬한 태양 빛을 받으며 천천히 오르니 마운틴탑까지 3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옆으로는 돌탑과 쉼터들이 보인다.

세계명상대전이란 핸드 프린트를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직동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단풍산과 매봉산이 보이고 직동계곡 뒤 저 멀리에는 다시 목우산과 선달산 및 어래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하이원 리조트 스키장의 마운틴탑으로 오르고 좌측 마루금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하트 모형과 그네 그리고 빨간 우체통을 살펴 본 후 나무 계단을 타고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백운산 마천봉이 부드러운 능선으로 자리를 지키고 밸리탑 좌측 저 멀리 백두대간의 금대봉과 대덕산 그리고 매봉산이 펼쳐져 잇는데 매봉산 천의봉쪽 풍력발전기도 빤히 보이기 시작한다.

저 팔랑개비 앞에서도 많은 추억을 남겼기에 그 추억을 더듬어 보니 그때 함께 했던 산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마운틴탑 뒤로 오르니 인공 구조물들이 서 있고 그 뒤 쪽문을 통해 마운틴탑을 넘어 우측 능선 방향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부드러운 능선 끝자락에 철쭉이 만개했을 두위봉 능선이 빨리 오라 손짓하며 부르고 있는 듯 다가 온다.

구름이 껴 햇살이 나왔다 숨었다를 반복하며 기온이 높지 않아 산행하기에는 좋지만 더운 날씨를 생각해 너무 많이 준비한 식수와 음료수 그리고 과일로 인해 무거워진 배낭이 산행의 최대 복병으로 다가온다.

 

 

예쁜 철쭉이 만개한 뚜렷한 등로를 따라 능선으로 들어가니 많은 등산객들이 찾았는지 넓은 등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그 등로 위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햇빛 하나 들어 오지 않아 시원하다.

예전에 나 있던 등로를 폐쇄하고 하이원리조트에서 갈지자로 새로운 등로를 만들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은 새로난 등로를 따르지만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옛 등로를 따랐는지 두갈래 등로 모두가 반질거린다.

잠시 후 통나무 쉼터가 있는 공터를 지나 내려가니 마운틴탑에서 800미터 내려왔고 도롱이연못까지 9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있는 공터에 도착을 해 산돼지 퇴치용 목탁종을 다시 만난다.

 

 

계속 이어지는 이정목을 따라 뚜렷한 등로를 걸어 진행하니 또 다시 통나무 벤취 쉼터와 산돼지퇴치용목탁종 그리고 숲에 대한 설명판이 보이는 공터에 도착을 한다.

원시림 같은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고 잠시 후 멋진 낙엽송 지대를 통과하니 현위치 도롱이연못이란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해 배낭을 주위 풀숲에 숨겨 놓고 카메라만 들고 아롱이연못과 도롱이연못을 다녀온다.

다만 GPX 트랙을 켜 놓은 스마트폰을 들고 가지 못해 트랙을 만들 수 없어 아쉬웠던 시간이다.

 

 

우측으로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두위지맥 마루금을 잠시 버리고 직진의 가까운 아롱이 연못을 먼저 가 보니 이 가뭄에도 물이 제법 보이고 주위에는 산새들이 쉬다가 이방인의 출현으로 모두 날아가 버린다.

한쪽에 있는 아롱이 연못에 대한 내용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아롱이연못은 옛날 화전을 일구어 살던 젊은이가 노부모에게 쌀밥 한번 봉양하는 것을 소원하다가 산이 논이 될 때까지 파보겠다는 일념으로 바위를 깨 내려가기를 서너 해가 지난 어느 날 새벽 지친 몸을 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웬 노인이 나타나 볍씨를 뿌리지 않고 왜 잠만 자느냐며 호통을 쳤다.

 

젊은이가 눈을 떠 보니 깨 내려가던 바위덩이는 온데간데 없고 일대가 질척질척한 논으로 변해 있었다.

 

효자설화를 뒷받침 하듯 지금도 물이 마르지 않는 산정답의 형태를 잦추고 있는 아롱이 연못은 해발 1111미터의 고지대로 보기 드문 자연 늪지이다.

 

또한 주변에 드넓은 야생화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어 생태환경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랫동안 마루지 않고 이곳에 살고 있는 야생동물들에게 귀중한 생명수로 남아 잇기를 기원해 본다.

 

 

가까운 아롱이 연못을 다녀 와 시간은 촉박하지만 이제는 다롱이연못도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도롱이연못은 1970년대 탄광 갱도가 지반 침하로 인해 생긴 생태연못으로 화절령 일대에서 살고 있던 광부의 아내들은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하기 위해서 연못에 살고 있던 도롱뇽에게 남편의 출퇴근을 무사기원 했던 것에 유래하여 도롱이 연못이라고 명명되었다.

 

연못에 살고 있는 도롱뇽이 생존하는 한 탄광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서 항시 도롱뇽의 서식여부를 확인하였고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할 때 도롱뇽을 발견하면 무사고의 징조로 알고 안심하였다고 한다.

 

연못은 노루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들의 샘터로 특히 봄철에는 도롱뇽이 알을 낳아 태고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으며 연못주변에는 사계절 야생화가 피어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이런 유래와 전설도 모두 추억속의 이야기로 남겨질 것이지만 그래도 먼 훗날 다시 찾았을 때 오늘을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롱이연못과 다롱이연못을 다녀 와 잠시 임도 주변의 탄광과 관련된 시들도 읽어 보고 하늘길에 대한 이야기도 읽어 본 후 능선으로 오르니 다시 죽어있는 키 작은 산죽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식별이 불가능한 삼각점 하나가 박혀있다.지도를 보니 1214.9봉의 삼각점이다.다행히 백두사랑산악회에서 얼마 전에 다녀갔는지 중요한 봉우리마다 이정표를 걸어 놔 두위지맥 산행을 진행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1214.9 삼각점봉을 내려오니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짧은 잣나무 군락지가 나타난다.그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새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 꽃꺼끼재(꽃꺾이재, 화절령)에 도착을 한다.

임도 넘어 이제부터 올라야 할 1341봉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이지만 그곳을 오르기 위해 또 얼마나 굵은 땀방울을 등로에 흘려야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절령(꽃꺼기재)는 백운산(1426)의 산허리를 휘감아 돌며 함백산 새비재까지 이어지는 84 Km의 비포장 길이 있는데 과거 석탄 산업이 활발하던 때 석탄을 운반하던 운탄길이다.

 

그 중에서도 영월 상동과 정선의 사북을 잇는 고개인 화절령은 봄날 산나물 뜯으러 나온 여인들이 지천으로 널린 진달래를 꺾었다 해서 꽃꺼기재라고도 불리는 길이다.
탄광이 문을 닫으며 석탄을 나르던 트럭은 사라졌지만 이름 만큼이나 예쁜 길이 남아 트레킹 코스로 각광 받고 있으며 오프로드 드라이빙을 즐기는 마니아들과 산악자전거, ATV를 즐기는 마니아들에게는 국내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소중한 길로 사랑 받고 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 일명 엽기 소나무가 서 있는 초입에 들어서면 울창한 숲과 천길 낭떠러지가 함께 있는 화절령이 시작되는데 진달래가 피는 봄과 겨울 설경을 으뜸으로 꼽는다.

 

이곳 화절령 역시 운탄도로의 일부분으로 하늘길이란 안내판이 서 있다.잠시 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으로 두위봉 임도구조개량사업이란 안내석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봉분도 사라지는 무명 묘지를 통과하는데 산행을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은 이제 묘지 문화도 바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옛날 호화찬란하게 조성된 묘지도 몇년만 관리가 안되면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며 사라지는 상황을 보면서 묘지 무용론에 한표를 던지게 되었다.그저 후손들이 찾고 싶을 때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방법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다시 완만하게 올라 화절령에서 500미터 올랐다는 이정표를 지나고 산죽 등로를 따르니 잡목과 바위가 서 있는 1341봉에 도착을 한다.
다시 봉우리를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두위봉정상까지 3.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철쭉꽃이 만개한 등로를 타고 잠시 맥 잇기 산행을 잊고 즐겨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잠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고 들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환상의 초원길을 걸으니 바위 등로를 지난다.그곳을 지나 철쭉이 만발한 등로를 지나니 두위봉 정상까지 2.6 Km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헬기장 같은 공터를 지난다.
그 이정표가 서 있는 헬기장 같은 공터를 지나니 금새 삼각점이 박혀있는 1441.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철쭉이 만개한 등로 옆 전망바위에 올라 잠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가운데 직동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 매봉산과 선바위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직동계곡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직동리에 있는 마을에 있는 계곡이라 붙여진 이름으로 직동리는 직동리는 해발 750미터의 높은 지대로 음력 9월이면 민물 김이 채취되고 조개껍질과 같은 바다생물의 화석이 발견되는 곳이다.

백운산 자락의 두메 산골인 이 마을은 민초들의 한 어린 사연이 남아 있는 곳으로 의병과 동학교도들이 관군과의 접전에서 집단으로 피살되었으며 가까이는 1949년 좌익 빨치산에 의해서 이 동네의 우익 청년단원 10여 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직동리의 유래는 수많은 의병과 동학교도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계곡 전체를 붉게 물들였으므로 피직자와 골동자를 써서 직동리 즉 핏골로 부르게 되었으며 큰마을, 찰골, 장수골, 상막동, 하막동, 한밭골 등의 자연부락이 있고 화전과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직동계곡 우측으로는 지금부터 올라야 할 부드러운 주위봉 능선이 펼쳐져 잇고 그 끝자락 좌측으로는 질운산과 예미산으로 이어지는 두위지맥 마루금이 이곳도 바라봐 달라며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그 뒤로 너울처럼 굽이쳐 흐르는 산그리메가 바쁜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놔 주질 않아 다시 또 시간만 흘러 보내고 있다.
다시 철쭉꽃이 만개한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바위 사이로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시 조망처가 나타나고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그 앞쪽으로 장산 그리고 우측으로 돌아가며 선바위산과 매봉산 자락이 환상으로 물결치고 있다.다시 조금은 빠르게 발길을 돌리니 등로 양쪽을 가득 채운 고운 빛깔의 철쭉이 자꾸만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누르게 만들고 있다.큰 바위와 고사목을 지나 바위 사이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이제 앵초가 보이기 시작하고 방향 표시만 되어 있는 이정표를 지나 철쭉 사이로 올라야 할 두위봉 능선과 그 능선자락에 곱게 피어난 철쭉 군락지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하니 곧바로 바위 너덜길이 나타나고 조심하며 그 너덜길을 통과한다.
화절령에서 벌써 3 Km 진행하였으며 두위봉까지는 이제 2.1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 이정표를 지나 바위 너덜길로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두위봉 능선이 조금 더 선명하게 다가와 있고 그 부드러운 능선에 잠시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죽렴지맥의 지억산과 민둥산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백두대간의 두타청옥도 가물거리고 있다.등로 우측 앞으로는 가리왕산과 그 주변 산들도 보이는데 오래 전 많은 추억을 남겼던 곳이기에 지금도 또렷히 기억되는 산이다.다시 너덜길이 끝나고 철쭉이 만개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우측으로 도사곡휴양지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와 벤취 쉼터가 있는 좁은 공터에 도착을 한다. 도사곡자연휴양림은 자연 청정지역인 사북 두위봉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곳으로 시원하게 트인 두위봉의 계곡 위로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통나무 형태의 방과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주방시설과 거실을 지닌 독립 별장형 통나무 집이다. 1급수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에서 훼손되지 않은 아름다운 자연 그대로를 만끽할 수 있으며 철쭉과 산나물로 유명하여 등산객들이 끊이지 않고 오르며 두위봉 자락에 위치한 도사곡휴양림 펜션에서의 하룻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될 것이다. 또한 도사곡 주변에는 화암약수, 화암동굴, 동강, 정암사 등 정선의 여러 관광명소가 인접해 있으며 도사곡 휴양림에서 휴식을 취하며 국내 최고의 카지노와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언제 한번 기회가 되면 저 도사곡자연휴양림에서도 하룻밤 묵을 수 있는 시간이 있기를 바래본다.
도사곡자연휴양림 하산 방향으로는 1400년된 제대로 된 체형으로 자라고 있는 주목에 관한 설명판도 보인다.다시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1379.8 바위봉에 도착을 하고 잠시 뒤돌아 보니 지금까지 걸어 온 두위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멀리에는 태백산과 장산도 제법 멀어진 모습으로 아쉬운 배웅을 하고 있다.
등로 좌측인 남쪽으로는 직동계곡 넘어 매봉산과 단풍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그 뒤로 너울치는 산그리메가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갈길이 바쁘지만 잠시 그곳 바위봉에 머물며 보이는 산그리메의 각 이름들을 찾아 불러보고 출발하기로 한다.매봉산 뒤쪽 저 멀리 선달산에서 어래ㅔ산과 국방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멋지게 하늘금에 붙어 잇고 우측 멀리에는 소백산이 가장 높은 마루금을 이으며 옛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그 사이에 오래 전 고운 추억을 남겼던 김삿갓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마대산이 봉긋 얼굴을 내밀고 존재감을 알리고 있다. 
사방팔방 막힘이 없는 일망무제의 바위봉에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고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조금 더 가까워진 철쭉 군락지엔 옹기종기 모여 만개한 철쭉꽃들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생각보다 부드러운 능선에 피어 있는 철쭉꽃이 이색적이면서도 멋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이제 눈 호강을 마쳤으니 발길을 돌려 두위봉으로 향한다.
바위봉을 내려가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부드럽게 진행을 하니 등로 옆 거목에는 두위봉등산로 긴급구조위치표지판이라는 긴급구조 안내판들이 붙어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찾고 있음을 실감하게 만든다.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좁은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좌측 위쪽에 만개한 철쭉꽃 몇그루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진행하면서 보였던 작은 철쭉 군락지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긴급구조위치표지판을 바라보며 오르니 돌계단이 보이고 지금까지 가장 자주 보았던 벌깨덩굴꽃들이 또 다시 지천으로 깔려있다.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넓은 헬기장 같은 공터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증산 하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증산은 옛날 민둥산 산행을 위해 이용하던 증산역으로 더 유명해진 곳인데 이제는 그 이름도 변해 민둥산역으로 개명까지 당했으니 추억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증산은 또한 정선선(증산-구절리)의 종착역인 증산을 일컬어 무릉리라 부르며 옛날의 군 소재지였다.
무릉도원은 중국의 명승지를 비유하여 이름한 것인데 냇물을 따라 떠내려오는 복숭아꽃을 보고 옛선비들이 인가가 있다고 생각하여 하천을 따라 올라가 자리잡은 이곳이 무릉리이다.
무릉리는 면내에서도 가장 넓은 지역이며 삼한시대부터 문인들이 이곳에 모여 풍류를 즐겼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무릉리는 옛 무릉군이라 칭할 때 군 소재지가 본 부락에 있었으므로 무릉리라 불리어 온다.
증산 갈림 공터 이정표를 지나 오르니 둥굴레가 지천으로 깔려 있는데 그 크기가 다른 지역보다 월등해 눈길을 잡는다.다시 나타나는 헬기장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니 안내판을 걸었던 깃대봉만 두개가 덩그런히 서 있는 곳을 지나 철쭉꽃이 만개한 또 다른 헬기장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더 남겨 본다.이제 두위봉 정상이 얼마 남지 않은 거리로 다가 와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다.

너무나 아름답게 피어난 철쭉꽃을 사진에 담고 출발하려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만개한 철쭉 사이로 이제 막 몽우리가 올라오는 철쭉들도 보이기 시작하고 그 철쭉꽃 넘어 저 멀리 매봉산 지나 장산과 태백산이 제법 멀어진 거리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 뒤로 넘실거리는 산너울을 살펴보며 환상의 노래를 부르며 다시 그 헬기장을 출발한다.

 

 

선달산에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하늘금을 살펴보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다시 부드러운 능선이 이어지고 폐헬기장을 지나 철쭉꽃들의 환영을 받으며 1470.8봉의 두위봉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이름도 산이란 이름을 받지 못하더니 정상에도 정상석 하나 없는 초라한 풍경 그대로 남아 있다.

예전에는 두위봉 정상석도 빼앗겼다가 최근에 와서야 그 정상을 되찾았지만 정상석 하나쯤 세워줘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잠시 주위 풍경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부부인듯한 등산객이 올라 와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 역시 백두사랑산악회에서 큰 이정판을 나뭇가지에 걸어 놔 위치 확인과 두위봉 정상을 확인하는데 큰 도움이 될 듯 싶다.

 

두위봉(1470.8봉)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과 사북읍 및 남면과 영월군 중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470.8미터인데 시야가 탁 트인 곳에 위치해 있고 동남쪽은 단곡계곡으로 흐르는 물이 석항천을 이루고 동북쪽은 도사계곡으로 광원휴양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초원지대의 맑은 연못과 수령이 1800년 된 주목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 등이 절경을 이룬다.
산행코스는 정선군 신동읍과 사북읍 및 남면 쪽으로 발달되어 있는데 제1코스는 남면 자미원 역에서 시작하며 산행기점인 자미원역은 태백선
열차가 지나는 곳이다.

 

오른쪽의 간이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등산로가 계곡길과 능선길로 갈리고 두 길을 1.4 Km 정도 오르면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샘터에서 다시 만나며 초입을 벗어나면 폐광터에 이르며 합수지점에서 해발 1200미터의 초원지대로 이어지고 한가운데에 맑은 물이 고인 연못이 있다.
산죽 밭을 지나 주릉에 들어서면 수만 평이 넘는 철쭉
군락지가 시작되며 철쭉군락지 샛길로 오르면 두위봉 정상에 닿는데 정상에는 네모 반듯한 자연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북쪽으로 억새풀로 유명한 민둥산이 보이며 그 뒤로 가리왕산이 시야에 들어오며 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을 이루는 함백산과 태백산도 한눈에 들어온다.
하산은 가장 산길이 확실한 자미원역으로 되돌아 내려오는 코스가 안전한데 주능선
동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전망대 근처에 이르며 능선인 안부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천길 낭떠러지 절경과 1800년된 주목을 볼 수 있으며 큰 도사골을 따라 내려가면 사북아파트 단지가 나타나는데 산행거리는 12 Km에 약8시간 가량 소요된다.
제2코스는 신동읍 방제리에서 시작하며 단곡계곡을 거쳐 정상에 도달하는데 산행거리는 4 Km이고 2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제3코스는 사북읍 도사계곡에서 출발하며 샘터를 지나면 정상에 다다르는데 산행거리는 5.5 Km 거리이고 4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제4코스는 남면 민둥산역(증산역)을 산행기점으로 하며 자뭇골과 척산골 및 샘골을 차례로 거치면 정상에 닿는데 산행거리는 6 Km이고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승용차로는 정선군 신동읍이나 남면 또는 사북읍에서 하차하며 대중교통편은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영월군에서 하차하여 신동읍, 남면, 사북읍 방면의 버스로 갈아탄다.

 

열차로는 예미역, 민둥산역, 사북역에서 하차하는데 매년 철쭉이 만발하는 6월 철쭉제와 등반대회를 개최한다.

하지만 백과사전에 나와 있는 이 두위봉에 관한 내용도 현위치가 아닌 옛날 바위봉에 정상석이 잇던 시절의 두위봉에 관한 설명이 아닐까 생각되는 아쉬움이 있다.

 

 

그곳 두위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두위지맥 분기점이 있는 동쪽으로 뒷쪽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함백산의 인공 구조물과 그 앞으로 쭉 이어져 온 두위지맥 마루금이 환상으로 빛나고 그 우측으로는 태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보내고 장산과 매봉산 자락으로 곁가지를 둔 형상이 참으로 볼만하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능선과 짙어가는 푸르름이 갈길 먼 이 산객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져 이곳에서도 잠시 더 쉬었다 출발을 해 본다.

 

 

부부인 등산객에게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출발하니 철쭉꽃이 만발한 헬기장에 도착을 해 다시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본다.

군락을 이뤄 피어있는 철쭉꽃도 예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산재되어 피어 있는 철쭉꽃이 더 좋아 이렇게 자주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보다 능선이 부드러워 진행속도는 그렇게 늦지 않게 잘 진행되고 있다.

 

 

헬기장을 넘어 푸르름이 가득한 그늘 능선을 따르니 이곳도 역시 철쭉꽃과 둥굴레가 마치 주인인듯 그렇게 지천으로 깔려있다.

잠시 무명봉으로 오르니 앞으로 진행 방향으로 예전에 두위봉 정상 대접을 받았던 암봉이 눈 앞으로 다가오고 잠시 후 또 다시 헬기장을 만나는데 이곳 헬기장도 역시 주위에 조금 더 붉은 철쭉꽃들이 피어나 산객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고 있다.

 

 

헬기장을 빠르게 통과한 후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옛날 두위봉 정상이었던 바위봉쪽으로 오르다 정상 부근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통과한 헬기장이 바로 발 밑에 보이고 저 멀리 함백산에서 이어진 두위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와 이곳에서 다시 잠시 쉬어 간다.

등로 좌측으로는 가깝게 다가왔다 멀어진 태백산과 장산 그리고 매봉산과 단풍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광활하게 하늘금을 따라 이어진 백두대간의 양백구간이 또한 이 산객의 눈길을 잡으며 다음을 기약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발길를 돌려 오르니 정상 10미터란 이정표가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좌측 정상으로 오르니 옛날 세워져 있던 바위 위 정상석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그저 바위봉 그대로의 모습만 남아 있다.

그곳 바위봉 정상에서 주위 풍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등산객 한분이 올라오고 그분과 함께 인사 나눈 후 서로가 사진 한장씩 남겨준다.

약간의 역광이 잇어 어둡지만 그래도 멋진 사진 한장 잘 건졌다는 생각이다.

 

 

두위봉 정상에서의 조망과 풍경이 거의 흡사하기에 카메라에만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곧바로 바위봉 정상에서 내려 와 철쭉비 있는 방향으로 먼저 출발을 해 본다.

아름다운 철쭉꽃의 환영을 받으며 빠르게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자못골 하산 갈림 이정표가 보이고 곧이어 금새 두위봉 철쭉비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두위봉 철쭉축제가 매년 열리는데 올해는 제26회로서 두위봉 철쭉축제가 20175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간 신동읍 단곡계곡 및 두위봉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정선군 신동읍에 위치한 두위봉은 해발 1466미터에 수만평에 이르는 철쭉 군락으로 이뤄져 있으며 축제기간 동안 두위봉 산자락에 철쭉이 만개해 연분홍 물결이 장관을 이뤄 두위봉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감탄사와 함께 행복한 산행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또 두위봉 정상에 철쭉 이외에도 자연생태가 잘 보전된 참나무, 희귀목인 아름드리 주목 등이 산재해 있어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어 또 다른 산행의 즐거움과 볼거리를 제공한다.정상 돌탑 옆에서는 나이 드신 등산객들이 탁배기를 곁들인 식사를 하고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하지만 배낭을 둘러메고 돌탑 앞에서 지나 온 두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바위 암벽과 어우러진 풍경이 새롭게 다가 와 사진 한장 더 남겨 본다.

옛날 두위봉 정상이었던 바위봉과 진짜 두위봉 지나 저 멀리 함백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환상을 노래하고 그 우측 라인을 형성하며 하늘금과 맞닿아 잇는 백두대간의 태백산과 그 앞쪽의 장산 능선이 또한 산객의 가슴을 설레이게 만들고 있다.

 

 

이제 그곳 철쭉비 정상에 있던 등산객들과 이별 인사를 나누고 혼자 빠르게 철쭉꽃이 만개한 멋진 등로를 타고 빠르게 이동을 하니 두위봉 철쭉은 이곳부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환상 그 자체이다.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진을 남기며 속도를 줄여 잠시 즐기며 완만하게 내려가니 키가 큰 철쭉지대를 지나 하늘이 열리는 등로와 만나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낮아지는 두위지맥 마루금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도 잡아 본다.

고운 철쭉꽃 넘어 이제 올라야 할 질운산과 새비재의 드넓은 고랭지채소밭 그리고 지옥과도 같은 예미산을 마지막으로 오늘 산행은 마무리한 후 내일 망경대산을 필두로 계족산까지 걸어야 할 능선이 너울쳐 흐르고 있다.

그 두위지맥 끝지점 부근에는 주왕지맥과 영월지맥 마루금도 보이고 좌측 저 멀리 희미한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다시 이 산객의 가슴에 불을 지르고 있다.

 

 

하산 등로 우측으로는 조만간 오르고 싶어 준비중인 죽렴지맥 마루금이 또한 두위지맥 못지 않은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하며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두위지맥보다 짧은 마루금이기에 주말에 내려 와 이틀간 걸으면 손쉽게 완주가 가능하겠지만 지맥 주위에 워낙 좋은 산들이 많아 잠시 들렸다 오면 두위지맥과 거의 유사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을 해 본다.

다음에 죽림지맥 산행을 위해 올라 바라보는 기분은 또 어떨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멋진 조망과 풍경 그리고 철쭉꽃을 즐기며 내려가니 금새 죽림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는데 직진 방향의 죽렴지맥 하산 방향은 등로가 뚜렷하지만 좌측으로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두위지맥은 등로 자체가 사라져 길 찾기에 애를 먹어 본다.

이곳 죽렴지맥 역시 약간의 논란이 일고 있는 지맥으로서 최종 종착지가 어디로 향하는냐 하는 문제 제기가 있어 빠른 결론이 필요할 듯 보인다.

죽렴지맥은 

백두대간 함백산 아래 만항재에서 서쪽으로 분기한 두위지맥이 두위봉을 내려서며 석항천을 사이에 두고 두 줄기로 갈라지는데 석항천 남쪽으로가는 산줄기는 두위지맥이고 석항천 북쪽으로 가며 죽렴산(1062봉), 곰봉(1016봉), 고고산(853봉), 능암덕산(813.2봉)을 지나 동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6.4 Km되는 산줄기를 통상 죽렴지맥이라 하는데 신산경표의 죽렴지맥은 능암덕산에서 북쪽 능선으로 내려가지만 최근에 답사를 다녀 온 선답자들 일부는 고고산에서 완택산을 거쳐 석항천이 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로 가기도 하고 또 일부는 능암덕산으로 가서 북쪽 진탄나루쪽이 아닌 서쪽 능선을 따라 문산교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이런 혼란의 잠재우기 위해 산경표에 의거한 정확한 해석과 결론이 하루 빨리 나기를 바래 본다.

 

 

죽렴지맥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 두위지맥 마루금을 어렵게 찾아 들어가니 간벌된 썩어가는 나뭇가지 사이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이곳 역시 곱게 피어난 철쭉꽃이 등로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는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바로 철쭉꽃이 사라지며 키 큰 활엽수와 키 작은 관목이 섞여 있고 바닥에는 이름 모를 수많은 식물들이 푸프,름을 더해가는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그렇게 내려가니 다시 키 작은 산죽 등로가 시작되고 잠시 후 일반 평이한 등로와 산죽 등로가 교대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으로 간벌된 낙엽송과 소나무 지대를 만나고 교대로 낙엽송과 소나무 군락지도 만나며 진행이 되고 있다.

 

 

특별히 볼 것도 없고 즐길 것도 없지만 복잡한 회색 도시에서 살다 내려왔기에 이런 아무것도 장식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푸르름과 휘어진 나무들이 좋아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시간이다.

한동안 이름모를 산새들의 노래소리를 들으며 하늘 높은 줄 모르게 높이 자라난 낙엽송 군락지를 보며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비포장 수레길이 나타나고 그 수레길을 따라 조금 더 편안한 산행을 즐겨 본다.

 

 

비포장 임도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금새 갈림 사거리 안부에 도착을 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으로는 지운동이 우측으로는 단곡이 보이는 고갯마루이다.

던곡은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의 마을로서 안경다리를 지나 두리봉으로 오르는 골 안쪽의 계곡을 말하나 지금은 구 방제갱 입구 위쪽에서 권양기실이 있던 곳 아래까지의 계곡을 말한다.

옛날부터 주변에 박달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계곡 양쪽으로 빼곡하던 박달나무는 함백광업소가 탄광을 개발하면서 아름드리 고목은 바둑판 장식용 응접세트 등을 만들기 위해 잘려 나가고 작은 나무들마저 곡괭이 자루 등으로 잘려 나가 지금은 계곡 이름만큼 박달나무가 흔하지는 않다.

두위봉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는 이 계곡은 해마다 여름과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영월과 정선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쯤 되어 보이는데 고개 이름은 없는 무명고개인 듯 보인다.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따라 조금 더 걸어 오른 뒤 임도가 우측으로 살짝 휘어지는 곳 좌측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며 본격적인 질운산 산행을 시작해 본다.

키 큰 활엽수와 그 밑으로 자라나는 키 작은 관목들 그리고 수많은 식물들이 성하의 게절로 달려가고 있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다시 굵은 땀방울을 등로에 흘리며 오르니 생각보다 빨리 자라 등로를 가로막는 미역줄기가 보이고 잠시 후 멋진 바위도 등로를 채우고 있다.

미역줄기를 헤치며 조금은 어렵게 오르니 생각보다 빨리 질운산 정상에 도착을 해 셀카 놀이를 하면서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질운산(직운산, 1171.8)은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과 정선군 신동읍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1171.8미터인데 일명 직운산이라고도 한다.

 

태백산맥의 중앙산맥에 속하며 북쪽에 죽렴산(1059), 서쪽에 예미산(989)과 망경대산(1088), 동남쪽에 매봉산(1267), 동쪽에 두위봉(1466) 등이 솟아 있다.

 

북쪽사면을 흐르는 계류는 남한강의 지류인 의림천으로 흘러 들어가고 남쪽사면으로 흐르는 계류는 옥동천으로 흘러가 역시 남한강으로 흘러간다.

 

북쪽사면은 정선탄전지대 중 가장 먼저 개발된 이른바 함백탄광지대로 함백탄광과 동원탄좌 등이 있으며 신동읍 조동리지역은 전형적인 광산취락으로 발달한 곳이며 함백선의 예미역과 함백역은 이 지역 무연탄수송의 중요한 거점이다.

 

철도 외에도 영월과 태백시를 잇는 국도가 예미를 지나고 예미에서 함백을 지나 문곡과 무릉리로 이어지는 지방도가 통하고 있어 교통은 편한 편이다.

 

서북쪽은 경사가 완만하여 약초, 메밀, 잎담배, 고랭지채소, 토종꿀 등의 생산이 많으며 특히 해발 500미터까지의 평탄면은 대부분 밭으로 개간되어 고랭지채소의 중요한 산지가 된다.

 

 

 

질운산 정상에서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2시 12분을 지나고 있는데 예미역에서 고한역으로 출발하는 마지막 열차가 오후 6시 54분 출발이기에 시간 계산을 다시 한번 해 본다.

계산이 나오지 않으면 질운산 아래 새비야에서 우측 타임캡슐공원으로 탈출해 내려가야 하기에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다시 한번 꼼꼼히 확인해 보니 배낭에 남아 있는 3리터의 식수를 줄인다면 에정된 시간에 1구간 날머리인 수라리재까지 가능하리란 판단이 선다.

또한 신동읍콜택시에 전화를 하니 예미에서 수라리재까지는 10여분 쯤 걸린다고 하니 오후 6시 20분쯤까지 하산할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를 해 남아 있던 식수 1리터를 버리고 배낭을 조금은 가볍게 만든 후 빠르게 질운산 정상을 내려간다.

생각보다 완만한 싸리나무 내리막 등로를 타고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을 하다 보니 산행속도가 무척 빨라지기 시작을 하였다.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잘 가꿔진 무명 묘지 한기를 통과하니 큰 소나무들이 즐비한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아라리고갯길(새비재) 임도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셔 본다.

 

새비재는 신동읍 방제리에 새비재길과 사북읍 사북리 화절령 길이란 두 개의 고갯길로 구성되어 있다.

 

새비재는 함백역 남쪽 질운산 자락에 형성된 고개로서 고개를 이룬 산의 형상이 새가 날아가는 모습과 같다 하여 새비재라는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다.

 

일설에는 6.25당시 아군 전투기가 공중에서 내려 다 보면 작은 골짜기와 능선이 겹겹으로 포 개진 모습이 새가 날개를 질러 놓은 것과 같다 하여 생긴 이름 이라고도 한다.

 

화절령은 예부터 진달래 꽃이 만발하여 절정을 이루었으며 사음 8경의 하나로 화절미인이라 칭하였는데 화절령이라 불리게 된 유래는 만발한 진달래꽃이 많아 그 꽃을 꺾으려고 각처에서 여인들이 모여들어 진달래꽃을 꺾었다 하여 꽃을 꺽는 고개라는 한자말의 화절령으로 불렀다.

 

또한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피난민들이 4-5가구씩 모여들어 화전을 이루기도 하였다고 한다.

 

새비재길과 화절령길을 잇는 새비재 고갯길은 약 28 Km12개의 고개 중 가장 긴 고갯길로서 고개를 이룬 산의 형상이 새의 모습과 비슷하다는 새비재와 꽃이 아름다워 꽃을 꺽는 고개로 불린 화절령을 한 번에 걸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사북읍 화절령에서 출발하여 영월을 경유해 신동읍 방제리까지 이어지는 새비재와 화절령은 현재 하늘길로 불리는 트래킹코스로부터 시작이 된다.

 

잘 닦여진 도로를 즐겁게 걷다 보면 길의 포장이 계속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스팔트길이 콘크리트길로 또한 콘크리트길은 다시 흙길로 변한다.

 

갑자기 나타난 시커먼 석탄길에서 근현대사의 멋스런 모습을 감상하면서 길을 걷고 탄광 길을 지나 임도를 따라 걷다 보면 두위봉의 등산로와 맞닿는다.

 

두위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주목 군락지도 함께 관광할 수 있는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겨 나무들을 동무삼아 길을 걸어가면 커다란 층층나무 군락과 함께 채수지점이라 하여 폐탄광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계곡이 위치하고 있어 생소하고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탄광지의 복구를 위해 갖가지 사업을 수행한 결과 현재는 과거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회복 되어있다.

 

산림복구지의 숲을 감상하며 발걸음을 옮기면 어느새 숲속에서 나오게 되며 숲속에서 나오는 길에는 갈림길이 많은데 이정표가 없어 헷갈리기 쉬우니 조심해야 한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 한가운데에는 갈림길 하나가 위치하고 있는데 좌측으로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나온 타임캡슐나무로 가는 길이고 우측 편에는 함백역으로 가는 길이 놓여 있다.

 

걸음을 차도로 된 길을 따라가면 타임캡슐 공원으로 넓고 개방된 지역을 볼 수 있는데 그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가 위치하고 있으며 나무 주위에는 타임캡슐을 상징하는 타원형의 타일이 수 놓아져 있고 그 가운데로 나무가 있다.

 

멀리서 연신 플레시를 터트려도 아름다운 사진이 나올 정도로 나무 주변 모든 곳이 포토라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타임캡슐 공원을 벗어나 반대방향에 있는 함백역으로 발걸음을 옮겨 조금 이동하면 잘 닦여져 있는 소나무 길이 나타난다.

 

소나무길은 임도로 사용되 있으며 MTB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하다.

 

소나무와 낙엽송을 따라가면 어느새 새비재의 종점에 다다르게 되며 종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고 조금 더 벗어나면 함백역이 있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 하다.

 

새비재는 거리가 상당히 멀기 때문에 도보로 여행하는 것은 어렵고 고갯길의 볼거리 또한 대부분이 나무와 산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개인에 따라서 호 불호가 갈릴 수도 있어 도보여행 보다는 MTB로 여행하는 것이 이상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보면 이곳 새비재에서 한구간을 끊어 우측의 드넓은 고랭지 채소밭을 통해 내려가 타임캡슐공원에서 마무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듯 보였다.

 

 

새비재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니 임도 우측으로 드넓은 고랭지채소밭이 펼쳐져 있고 그 아래에는 정선군 신동읍 방제리 마을과 타임캡술공원이 내려다 보이는데 시간이 되면 잠시 타임캡슐공원에 들렸다 가도 좋겟지만 오늘은 산행에만 집중하기로 한다.

 

방제리는 본래 평창군 동면 지역으로 고종32년 (1895년) 정선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일제가 우리땅을 수탈하기위해 실시한 행정구역 통폐합때 매화동, 원방제, 새비재를 한데 묶어 방제리라고 했다.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함백산의 연맥으로 두리봉(두위봉) 산자락에 예로부터 고목이 우거져 마치 제방림을 형성한 것 같다고 해서 방제리라 했으며 1950년초 함백광업소가 두리봉(두위봉) 일대에서 무연탄을 캐내기 전까지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하던 산간 벽지에 불과 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흑진주의 꿈을 쫓아 외래인구가 급증하면서 설령, 미륵, 역전 등의 마을이 생겨나 경기가 좋아지자 개도 돈을 물고 다닌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였으나 인생의 막장과 같은 곳에서 묵묵히 일하던 이들은 갑작스런 함백광업소의 폐광으로 또다른 삶을 살아가기 위해 뿔뿔이 떠나 방제리의 북적이던 마을 곳곳은 썰렁한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
폐광이후 행정리수도 4개리에서 3개리로 줄어들었고 146가호 407명의 주민들이 주로 밭농사 등 농업에 종사하며 살고 있다.

 

 

다시 만나는 임도 갈림 사거리에서 좌측 직진의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포크레인 한대가 트럭 위에 퇴비 적재 작업을 하고 있어 조심스럽게 통과를 한다.

우측 임도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하니 낙엽송 지대의 약간 잡목이 우거진 956.5봉에 도착을 하지만 전혀 봉우리 같지 않은 봉우리였다.

 

정선 타임캡슐공원은 국민 여가생활의 확산에 따라 자연형 휴양 공간 및 문화 감성체험 등 특별 관심 여가활동으로서 정선군민의 차별화된 상징적이고 개성적인 관광 명소로 조성하고 있다.

 

또한 2001년도 개봉되어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서 차태현과 전지현이 3년 후 다시 만날 약속을 기약하면서 타임캡슐을 소나무 밑에 묻혔던 정선군 신동읍 조동리 일명 새비재에 조성하였다

산행 후 오랫만에 다시 차태현과 전지연이 주연한 엽기적인 그녀를 보며 잠시 웃었던 기억이 떠 오른다. 

 

 

이제 별 특징이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빠르게 진행을 하니 낙엽송 지대를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한다.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만나고 간벌된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등로를 짧게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잣나무 군락지도 보인다.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가니 이번에도 전혀 봉우리 같지 않은 등로 상 983봉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을 한다.

 

 

디시 특징 없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오르락 내리락 하다 보니 멋진 잣나무와 낙엽송 지대를 지나고 잠시 후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등로에 박혀 있는 922.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보는데 선답자 한분이 이곳을 연묘산과 설운산이란 종이 코팅지를 달아 놨다.

이제 오후 3시 10여분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을 보며 에미역에서의 마지막 열차 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시간이다.

에미산 오르막 등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기에 조금은 서둘러 빠르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보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산행 시간을 단축하는 구간이 되었다.

 

 

다시 키 큰 활엽수와 관목이 어우러진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멋진 낙엽송 지대가 보이고 곧이어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는데 오래 전 집터가 아니였나 생각되는 안부였다.

그 안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 걸어 진행하니 금새 778.7봉에 도착을 하는데 별 특징 없는 능선상의 봉우리이다.

하지만 이곳부터 약간의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는데 예미산의 높이가 거의 1000미터에 육박하기에 이렇게 자꾸만 낮아지면 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정상에 도착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낙엽송 구간을 지나 숲속으로 빨려 들어오는 빛내림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가지고 진행하니 약간의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원시림 같은 편안한 등로로 걸어 본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 활엽수 2가지가 갈라진 나무 옆으로 바위가 보이는 748.5봉에 도착을 해 남아 있는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곧바로 출발을 해 본다.

 

 

바위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폐헬기장 같은 공터 안부를 지나고 잠시 후 등로 좌측의 그림같은 영월군 이목리 마을도 잠시 내려다 본다.

그리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잡목이 우거진 실제 뱃재에 도착을 하는데 뱃재를 지나자마자 우측에는 커다란 쇠전신주 2개가 보인다.

 

뱃재는 안길운 남서쪽에 있는 고개로서 옛날 재를 넘어오던 한 도사가 이곳의 산세가 이화낙지형국인 것을 보고 배나무를 심으라고 했다.

 

고개마루의 큰 돌배나무들도 이때부터 심은 것이라고 하는데 하여튼 배나무가 많아 순 우리말로 뱃재 또는 배나무재라고 한다.

 

고개가 너무 험해 넘다 보면 배가 째질 것 같다고 해 뱃재라고 농담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고개너머 영월군 중동면 이목리의 본래 지명도 뱃재였다.

 

10여년전 까지만 해도 이목리에서 뱃재를 넘어 함백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여러 명 있었다.

에전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왕래를 하였던 고개라는데 이제는 도로가 개설되고 잡목들이 우거져 오늘 이 산객처럼 산행을 하거나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살기 위한 목적으로는 오르는 사람이 없어 보이는 고갯마루가 되었다.

 

 

등로 좌측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마대산이 아주 가깝게 다가 온 풍경을 살펴 본 후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등로는 이제부터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후 영월 중동의 마을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조용히 내려다 보인다.

다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뚫고 오르니 고갯마루 같지 않은 등로에 지도상 뱃재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고개라고는 전혀 생각되지 않는 장소이다.

뱃재(이목리)는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에 있는 리로서 밭농사가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농촌인데 옛날 어느 도사가 이곳의 형국이 이화낙지형국이므로 배나무를 심으라고 하였는데 원터에 있었던 배나무도 이 때 심은 것이라고 한다.

 

이목리는 다른 지역보다 배나무가 많았으므로 순수한 우리말로 뱃재라고 불렀으나 그 후 이목리(배나무 마을)로 변하였다.

 

명이 상이목, 하이목, 횟골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큰 절이 있었다는 고장동 등의 자연 부락에서 고추, 마늘, 옥수수 등의 밭농사로 생활하고 있다.

 

창터 마을에는 전세와 대동미 등 관곡을 보관하던 20칸 짜리 동창이 있었고 녹전리와 경계가 되는 선령약수 건너편 돌서덕에는 세아름이 넘는 큰 신배나무 밑에 원터가 있었다.

 

 

    

 

지도상 뱃재를 지나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낙엽송 지대를 통과한 후 천상의 화원을 연상시키는 안개꽃 같은 야생화 등로가 짧게 펼쳐져 있어 잠시 미소를 띄워 본다.

야생화 구간을 지나니 잡목의 저항이 거칠어지고 오르막 등로도 가파라지기 시작하며 거친 숨소리가 저절로 튀어 나온다.

잠시 후 폐헬기장을 지나 안전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오르막 된비알을 치고 오르는데 너무나 힘이 들어 두어번 쉬었다 오르기를 반복하면서도 시간 확인을 위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오르다 보니 영월에 있는 모든 산들이 다른 지역과는 달리 능선이 아닌 개별 독립된 산처럼 솟아 있어 열심히 올랐다 다시 오른만큼 내려간 후 다시 올라야 하는 난코스의 산들이 많음을 절실히 깨닭는 시간이 되었다.

참으로 어렵게 도착한 예미산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앉아 남아 있던 떡과 과일 그리고 음료수로 허기를 채우며 잠시 쉬어 간다.

 

예미산(989.2)은 강원도 정선군 신동읍과 영월군 중동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989.2 미터이고 여미산이라고도 부른다.

 

북쪽 산록을 흐르는 예미천 연변에 예미리가 있고 예미천 하안 저지대를 따라 영월과 태백 사이의 국도와 태백선 철도가 지나간다.

 

북동쪽 산록에는 함백탄광이 있으며 조선지지자료에는 예미산이 신동면 노일리에 있다고 나온다.

 

예미라는 지명은 예미리를 비롯하여 예미초등학교, 예미역, 예미채석장 등에서도 보인다.

 

    

 

너무나 힘들게 오른 예미산에서 남아 잇는 간식거리로 체력을 보충한 다음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잠시 후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만나 여유를 가져 본다.

잠시 후 봉우리 같지 않은 968.5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내려가니 등로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평이하게 열려있다.

한동안 관목지대를 지나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이제부터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설치된 굵은 로프에 의지하며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게 조심하며 내려 가 본다.

 

 

다시 낙엽송 지대를 지나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 군락지를 통과하니 가파른 내리막 등로도 어느정도 온순해지기 시작하고 곧이어 좁은 공터를 지나 철조망을 만나 그 철조망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폐헬기장 같은 공터를 지나 우측 진행 방향으로 내일 올라야 할 영광산과 망경대산 쪽 높은 산줄기를 올려다 본 후 곧바로 2개의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마지막 봉우리에 안착을 해 긴 한숨을 내쉬며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시간을 보니 이제 오후 5시 40여분을 막 지난 시간이기에 에미의 신동콜택시에 연락을 하고 음료수 한모금 마신 후 그 산불감시초소를 출발해 수라리재로 향한다.

 

 

내려오기 직전 등로 좌측으로 가 지나 온 방향으로 예미산을 살펴보지만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고 등로 좌측으로 함께 진행하던 매봉산과 단풍산 자락만 저 멀리 멀어져 보인다.

소나무가 멋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주의하며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마대산이 올려다 보이는데 몇 년전 저곳을 오르면서도 왜 그리 힘이 들었던지 아직까지도 기억이 생생하다.

잠시 후 군 벙커를 지나 이동통신 안테나가 몇개씩 보이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수라리재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배낭 정리하고 있으니 택시가 도착을 하고 기사에게 부탁해 추억 한장 남겨 본다.

 

수라리재는 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화원리에서 녹전으로 넘어가는 길에 위치한 고개로서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삼척의 궁촌으로 유배될 때 이 고개에서 수라(왕이 먹는 음식)를 들었다 하여 수라리재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다.

 

공양왕은 태조 이성계에 의해서 원주군 부론면 손위실에 유배되었으나 한양과 너무 가까운 곳이라 하여 1392년에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의 수타사로 옮겨졌다가 공양왕은 삼척군 궁촌으로 세 번째로 유배되었다가 결국은 1394년(태조 3)에 죽임을 당했다.

 

 

택시를 타고 예미역으로 가니 저녁 6시 5분을 지나고 있어 시간적으로는 충분한 여유가 있지만 저녁을 먹기에는 땀냄새도 그렇고 시간적인 여유도 충분하지 않아 음료수만 두어병 사 마시고 열차를 기다려 본다.

신동읍 소재지인 예미리는 본래 평창군 동면 지역에 속해 있다가 고종 32년(1895년) 정선군에 편입되었다.
평창군에 속해 있을 당시 고성리에 내창이 있었고 지금의 예미초등학교 뒤에 외창이 있어 주민들로부터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해 두었으며 노일에는 5일장이 열리기도 했다.
예미리라는 이름은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 통폐합 작업을 하면서 노일, 납돌, 유문동을 합하여 여미산을 예미산으로 바꿔 부르면서 불렀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예미리는 오랜 옛날부터 제천에서 영월을 거쳐 정선 삼척 등지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인 까닭에 신석기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거주했음을 지금의 읍사무소 아래 고인돌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중국 당나라때 파락사로 우리나라에 왔던 사신 임의로 인해 생겨났다는 의림길 등의 지명을 통해 보더라도 오래 전부터 정선 등지의 산간 지방에서 내륙으로 통하는 관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시대에는 가사리일대의 광산 개발로 인해 많은 일본인들이 몰려들어 일본 이름을 단 술집 등이 들어섰고, 병원 등이 들어서기도 했으며 그후 해방이 되고 태백산맥 일대에서 엄청나게 많은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박정희 대통령 집권 당시인 1960년 초반 국토건설단이 들어와 철도 도로 등을 건설하면서 두메산골인 예미리는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

최근 들어서는 함백광업소가 폐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가가 깨끗하게 정비되는 등 폐광과 이농 등에 따라 침체를 보이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새롭게 발전해 가고 있다.
현재 행정 7개리에 587가호 1996명의 주민들이 상업 농업 등 비교적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청량리에서 출발하여 정동진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는 10여분 연착하여 7시가 되어서야 그 모습을 보이고 열차ㅣ에 몸을 실어 40여분 달리니 드디어 새벽 어둠속에 헤어졌던 고한역에 도착을 해 애마를 회수한다.

곧바로 영월에 있는 레스트스파 찜질방으로 가 샤워 후 시원한 맥주 한 캔에 돼지 불백으로 저녁을 해결하니 곧바로 잠이 들어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일어나 잠못 드는 밤을 지새우게 되었다.

 

내일 산행도 무탈하게 완주한 후 일찍 귀가하여 오랫만에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여 맛있는 저녁으로 외식을 할 수 있기를 바래보며 멋진 두위지맥 첫 구간에 대한 산행후기를 갈무리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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