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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오두지맥(태행·완)

한남오두지맥 마지막 제2구간 서근리에서 매향리 고온항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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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화성시 오두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6년 03월 2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아침에 약간의 박무 후 맑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영상 02도에서 영상 1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서근교차로(서근리 느락골 버스정류장, 310번 2차선 포장도로)-에덴농장과 Paul & Lydia Mission-시멘트 포장도로-화성 델리치 푸드-목장

                 초지-수원화성오산축산농협(정보목장)-비포장 임도-화성 젖소목장-송전탑-목장초지-송전탑-61.6 무명봉-녹색철조망-지에스씨 건물-장안

                 공단로(6차선 포장도로)-갈림사거리-대광-포레시아-덴소-갈림사거리-한국쓰리엠-포레시아-공단사거리 버스정류장-에스로지스-대원목장-

                 신화산업-수촌1육교(평택시흥간고속도로)-금성목장-주)KDC-재학농장-갈림사거리(82번 4차선 포장도로)-금의1리 버스정류장-장안플라스틱-

                 대현철강과 양지철강-비포장 임도-동진철강산업-주)케이엔에프-대현철강 공사장-밭 경작지-능선진입-80.8 무명봉-무명묘지2기-비포장 임도

                 안부-경주이공 묘지-벌목 후 조림지-32번 송전탑-평택시흥간고속도로 장안TG 절개지-지하통로(평택시흥간고속도로) 통과-절개지-80.6

                 무명봉(비상 철계단)-비강이엔비-능선진입-성지공조기술 기술연구소(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공동묘지지대-71.5 무명봉-무명안부-

                 절개지-송전탑-장안지하차도(평택시흥간고속도로 통과)-선영엠아이피-민가-시멘트 포장도로-장안로 갈림사거리(해찬솔과 시골집, 2차선

                 포장도로)-1차선 포장도로-젖소목장-엠씨아이건설-비포장 임도-장안농원-37번 송전탑-이정표(남산, 반환점)-능선진입(비포장 임도)-소남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남산 0.7 Km, 소남산, 반환점 1.1 Km)-소나무 등로-남산(107.3봉, 운동시설과 벤취쉼터) 이정표(어은리와 면사무소, 반환점과

                 약수터)-바위-이정표(배기울골 0.63 Km, 소남산정상 0.2 Km, 장안면사무소 0.49 Km)-남산유래 설명판-안전목책과 로프구간-벤취쉼터2와

                 이정표(장안면사무소 0.33 Km, 남산정상 0.15 Km)-자작나무 조림지-57 무명봉-절개지-장안면사무소-포승장안로(2차선 포장도로)-장안면

                 사무소 버스정류장-능선진입-서진산업-밭 경작지-절개지-56.8 삼각점 봉-해풍김공 묘지지대-비포장 임도-진개골길(1차선 포장도로)-갈림

                 삼거리-경성자원(파지, 고철, 비철)-사랑1리마을회관-사랑길(2차선 포장도로)-사곡리(산호아파트) 버스정류장-사곡사거리(82번 2차선 포장

                 도로)-SK 사곡주유소-미각수-SK 중앙주유소-사곡리 버스정류장-E1 조일 LPG 충전소-더부철강산업-건우기계-화산입구삼거리-SK 송림

                 에너지-장작터 버스정류장-갈림삼거리(1차선 시멘트 도로)-흥천길 154-봉화교회-공사장-봉화교차로(77번 4차선 포장도로)-절개지-비포장

                 임도-삼각점 봉(H-7649)-벌목 공터봉-봉화산(61.3봉, 삼각점)-두레자연중고교-두레어린이집-흥천육교(77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능선진입-

                 벌목지대-소나무 조림지-절개지-블로산(62.1봉)-시멘트 포장도로-티앤디 코리아-남경에스엠-석천사거리(77번 4차선 포장도로)-유토피아

                 모텔-제이앤피-동일-풍강-예다원모텔-새한산업-이화1리 덕목마을 이정석과 버스정류장-나래이앤씨-갈림삼거리-이화감리교회-64.2 돌탑봉-

                 56 벙커봉-보금산(59.7 삼각점 봉, 운동시설과 벤취쉼터)-63.9 돌탑봉-2차선 포장도로-비포장 임도와 밭경작지-비포장 임도 안부-비포장 임도

                 가드레일 등로-벌목 후 조림지대-산책로 그물망-53.1봉 왕복-예비군 훈련장-기아자동차 스포츠센타 야구장과 축구장-매향석천로(2차선 포장

                 도로)-송림정 식당-젖소목장-대한어린이집-석천리 버스정류장-갈림삼거리-석천4리 띨뿌리마을 이정석-염광교회-석천3리 이정석-매향2리

                 버스정류장-젖소목장-갈림삼거리(1차선 포장도로)-춘추관-기아자동차로(2차선 포장도로, 매향보건진료소)-매향2리(양지편) 버스정류장-매향리

                 역사기념관 종합복지관 건립예정지-30.9 묘지봉-기아자동차로 복귀-매향리 정보화마을 입간판-황가네 보신장-기아후문입구 버스정류장과

                 대지목장-매향 1,5리(고온리항) 이정석-화성 드림파크와 매향리 평화공원 조성예정지-군부대 철조망(3075부대)-매향리 둘레길 이정판-매화

                 조림지-밭 경작지-비포장 임도-군 철조망(3075부대) 통과-민가 매향요골길 42-7 통과-밭 경작지-비포장 임도-발리모텔-매향리 캠핑장-매향리

                 고온항 회센타-21.7 삼각점 봉-바다회집-고온리 방파제-등대길-바다회집-매향1리 버스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5.0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비산비야와 도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06간 35분 (07시 21부터 13시 56분까)

교통편 :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탈하게 진행하였음

             봉천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사당역

             사당역에서 8155번으로 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까지 이동

             주공아파트 버스정류장에서 발안콜택시(031-353-7000)로 산행 들머리인 서근리까지 이동 (7,700.-콜비 포함)

             매향1리 버스정류장에서 2-1번 버스로 조암버스터미날까지 이동

             조암 버스터미널에서 8155번 버스로 사당역까지 이동

             사당역에서 지하철 2호선에 탑승하여 귀가

산행횟수와 총 산행거리 : 2016-17 316.85 Km

한남오두지맥이란 ???

한남오두지맥은 한남정맥의  수리산부근 감투봉에서 분기한 서봉지맥이 화성시 봉담읍 장안대뒤에서 서쪽으로  한 가지를 쳐 태행지맥을 분기하고 태행지맥은 다시 태행산(268봉)에서 남서쪽으로  또 한 기지를 쳐 화성시 매향리 서해바다에 이르는 도상거리 31.9 Km되는 산줄기를 오두지맥이라 한다.

신산경표는 한북정맥의 긑을 산경표와는 다르게  한강봉에서 개명산, 월롱산을 지나 오두산으로  적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한북정맥의 긑을 장명산으로 적고 오두산쪽을 오두지맥으로 적고 있어 이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남오두지맥이라 적었다.

대부분이 공장지대와 도로 비산비야 지대로 독도에 어려움이 많고 산행의 묘미는 떨어지나 맥은 살이 있는 산줄기이다.





도시화 되어가는 비산비야와 도로를 타고 봄 내음을 맡으며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 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금요일 밤새 마신 이슬이와 어제 서산으로 내려가 걸었던 망일지맥 첫구간 산행으로 피곤함이 밀려 와 어제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세상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새벽 5시이다.

옆지기의 걱정스런 표정을 뒤로 하고 배낭을 준비한 후 혹시나 몰라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한 후 평상시와 동일하게 첫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사당역 4번 출구로 나가 편의점에서 음료수 2개를 사서 배낭에 넣고 하나는 마신 후 8155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추위가 밀려온다.

아침 6시 15분을 넘겨 8155번 첫차가 들어 오고 차에 올라 잠시 잠에 취했다 일어나니 해병대 사령부 근처를 지나고 있어 정신을 차린 후 지난 구간 탑승을 하였던 주공아파트에 무탈하게 내려 발안 콜택시에 전화를 하니 채 3분도 되지 않아 금새 택시가 달려 온다.

집에서 나올때만 하더라도 몸이 찌뿌둥하니 좋은 조건은 아니었는데 이곳 발안에서 택시를 불러 산행 들머리인 서근리로 가는 길은 상태가 좋아져 무탈한 완주를 생각해 보지만 생각보다 추운 아침 기온으로 약간은 걱정도 혼재되어 있는 시간이다.



아침 일찍 산행을 시작했지만 그래도 빠르게 걸었는지 오후 2시가 되기 전에 산행 날머리인 매향리 고온항 근처의 등대길에 도착을 해 더 이상 산줄기를 따라 걸어갈 수 없는 곳에 서서 서해바다와 그 바다 건너 철강공장들로 인해 상전벽해로 변해버린 당진쪽 바닷가를 바라본다.

산행 종료 후 바로 이런 환상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니 늘 산줄기가 이어지는 곳에서 시작을 해 끝이 나는 물가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고자 노력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몸이 무거워 오지만 마음만은 가벼운 새털이 되어 비산비야로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가시에 찔리고 잡목에 넘어지면서 어렵게 완주한 한남오두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이제 또 어느 산줄기에 들지 확정은 되지 않았지만 기온이 오르며 조금은 산세가 깊고 고도가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기를 기대도 해 보는 시간이다.


직행버스인 8155번을 타고 발안주공아파트에서 내려 발안 콜택시로 산행 들머리인 서건리 느락골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하니 아침 7시 20여분이 가까워진 시간이다.

간단하게 산행 준비 후 서근교차로의 서근리 버스정류장 우측인 석포리 장안 방향으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며 또 하나의 맥 잇기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출발을 하는 시간이다.

등 뒤에서는 벌써 아침 해가 붉게 떠 올라 이 산객이 외롭게 걸어가는 길을 밝게 비추고 있어 기온은 낮지만 느낌만큼은 따뜻하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걸어 오르니 고갯마루 직전에서 갈림삼거리를 만나는데 직진을 하면 서근육교를 통해 그 아래로 뚫려있는 82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데 이제 마루금은 그 직진의 서근육교 방향을 버리고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야 한다.

그 갈림 삼거리에는 에덴농장과 Paul & Lydia Mission이란 입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걸어 오르니 그 도로 좌측 아래에는 화성 델리치 푸드 공장 증축현장이 나타난다.

 

잠시 더 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바뀌고 임도 좌우측으로는 잡목과 잡풀이 우거졌다 말라버린 풍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잠시 오르니 고갯마루 위에는 낡은 콘크리트 초소가 보이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는 또 다시 드넓은 공장지대가 펼쳐져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 우측으로는 벌써 파란 초지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임도 좌측으로는 거대한 폐 축사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방치된채 남아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화성진검수련원 가는 갈림 삼거리를 지나 평이한 비포장 임도를 계속 따라 걸어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목장 임구가 나타나는데 조류인풀루엔자로 인해 방역과 소독을 했으니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그곳을 지나 임도 좌우측으로 펼쳐진 밭 경작지를 지나 오르니 예전에 있었던 정보목장이란 입간판이 쓰러져 있는데 살펴보니 지금은 폐허가 된 목장처럼 보인다.

그 부서진 목장 출입문을 지나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첫번째 갈림삼거리에서는 좌측으로 휘어지는 임도를 버리고 차량을 막는 바리게이트가 보이는 직진 임도를 따라 걸어 간다.

첫번째 갈림삼거리를 지나 내려가니 금새 다시 화성젖소목장이 나타나는데 그 임구쪽에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두번째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이곳에서는 우측에 화성목장을 두고 좌측 목장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한다.


임도 우측으로는 드넓은 화성젖소목장이 펼쳐져 있는데 임도 가까이에 몇채의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이외에는 모두 파란 초지가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 초원지대이다.

목장에 갇혀있는 젖소들도 통과하는 이방인이 이상한 듯 멀둥하게 처다보고 있다가 이 산객이 걸어가니 주인을 따라 오듯 많은 젖소들이 따라 온다.

잠시 옛 추억에 잠겨 천천히 걸어가니 이제 목장 건물들을 지나 우측으로 드넓게 펼쳐진 파란 초지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초지지대를 우측에 두고 좌측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송전탑이 보이고 그 송전탑 넘어 저 멀리 새로 건설중인 수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파란 초지지대를 우측에 두고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을 하니 목장 건물들이 저 멀리 멀어지는 곳에서 등로는 이제 목장초지와 헤어져 직진의 높은 송전탑이 올려다 보이는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던 임도를 따라 진행이 되고 있다.


약간의 잡풀과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이제는 목장 초지와 헤어져 들어가니 임도 좌측에 거대한 송전탑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절개지 사이 저멀리 진행방향으로 새로 생긴 듯한 커다란 공장건물이 내려다 보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 좌측 절개지에 선답자들의 띠지 몇개가 달려있는데 그곳이 지도상에는 61.6봉인데 새로운 공장들이 들어서고 송전탑이 생기면서 그 무명봉도 사라진 듯 보인다.


사라진 61.6봉을 지나 공장 건설 때문에 새롭게 조성된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우측의 공장 건물 방향으로는 녹색 철망이 쳐져 있다.

그 녹색 철망을 따라 내려가니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된 곳을 지나 지에스씨 공장 건물을 돌아 진행된다.

또 다른 공장 건물을 지나 조금 더 키가 큰 소나무 공터를 지나니 왕복6차선이 지나는 장안공단로에 도착을 해 이제부터 그 장안공단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 본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금의지방산업단지로서 첫번째 갈림사거리를 지나 도로 건너 대광과 좌측으로는 포레시아 공장을 두고 걸어간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덴소공장이 나타나고 다시 나타나는 갈림 사거리를 지나니 도로 건너편에는 거대한 한국쓰리엠 공장이 보인다.

다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떨어진 포레시아 공장이 나타나고 잠시 후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 갈림삼거리 옆에는 공단사거리라는 버스정류장이 서 있다.


도로를 건너 직진 같은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에스로지스라는 건물과 공터들이 보인다.

그 에스로지스를 지나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대원젖소목장이 나타나고 그곳 초지에도 파란 초지들이 자라며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고 있다.

목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신화산업이 보이는데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직진의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간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직선으로 뻗어 있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밭 경작지를 지나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평택시흥간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고 제법 많은 차량들이 달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조금 더 걸어가니 그 평택시흥간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수촌1육교가 나타나고 그 육교를 통해 걸어가다 평택시흥간고속도로의 중앙부에서 북쪽을 사진에 담아 본다.

이 고속도로 역시 참으로 자주 통행을 했던 고속도로인데 이렇게 오두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으며 바라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기에 감회가 새롭다.


그 수촌1육교를 통해 평택시흥간고속도로를 지나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금성목장 입간판이 서 있고 잠시 후 주) KDC 입간판도 보인다.

그곳 우측 갈림삼거리를 지나 직진의 좌측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에 재학농장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사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곳 갈림사거리는 3.1만세로로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고 한쪽에는 금의1리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3.1만세로 좌측으로는 평택시흥간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차도가 지나고 있다.


금의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갈림사거리를 지나 직진으로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그 입구에는 대현철강이란 커다란 이정판이 서 있고 잠시 더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에 장안프라스틱이란 공장을 지나 눈 앞에 갈림삼거리를 지나 평택시흥간고속도로 지하차도가 보이는 곳에서 이제는 직진의 좌측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 좌측에 평택시흥간고속도로와 평행하게 걸어 진행을 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양지철강과 대현철강으로 들어 갈 수 있는 입구가 나타난다.


그 양지철강과 대현철강 입구를 지나니 눈 앞에는 거대한 공사장이 펼쳐져 있어 직진으로 진행을 하지 못하고 우측에 대현철강 공장을 두고 사잇길을 따라 진행을 하니 동진철강산업이란 공장이 있는 곳에서 좌측 공사장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올라 본다.

잠시 오르니 경고판이 서 있는데 이곳은 대현철강 공사장으로서 묘지를 이장하라는 경고판이었다.

그 공사장을 지나 능선에 도착을 한 후 뒤돌아 보니 거대한 철강 공장들 뒤로 지나온 마루금이 비산비야를 이루며 끊어질듯 이어져 온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공사장 위 능선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앞으로 전진하니 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밭 경작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민가와 공장 건물들이 가깝게 위치하고 있는 이곳에도 고라니가 살아가고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밭 경작지를 타고 끝까지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낙엽 깔린 능선으로 이어지고 소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무명봉을 지나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80.8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80.8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무명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가 만나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이곳은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있는 어은리 마을로서 마을 대부분의 지형이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검누들, 독지골, 띠고개, 바람고지 마을 등이 있는데 거문들 마을은 검은 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독지골 마을은 독실한 과부가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띠고개 마을은 뒷산에 띠가 많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바람고지 마을은 곶으로 되어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안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간벌된 썩은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83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잡목과 널부러진 간벌된 나무들을 헤치며 어렵게 진행을 하니 경주이공 합장묘지가 나타나고 곧이어 식재된 밤나무지대에 도착을 하는데 관리가 되지 않아 잡목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어렵게 그 밤나무와 식재지를 지나 걸어가니 송전탑 32번이 서 있는 절개지 위에 도착을 해 바로 발 아래 펼쳐진 평택시흥간고속도로의 장안 TG를 내려다 본다.

평택시흥고속도로는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와 시흥시 월곶동 사이를 연결하는 총 길이 42.6 Km의 민자 고속도로이며 2013년 3월 28일에 개통하였다.
제2서해안고속도로라고도 하며 노선 번호는 제153호로서 경기도 평택시 청북면 고잔리를 기점으로 하고 화성시와 안산시를 경유하여 시흥시 월곶동을 종점으로 하며 총길이는 42.6 Km이다.
2008년 3월에 착공한 뒤 2013년 3월 28일에 개통하였고 서평택 분기점, 장안 요금소, 조암 나들목, 송산마도 나들목, 남안산 나들목, 서시흥 요금소, 군자 분기점, 월곶 분기점으로 연결되며 서평택과 남안산까지는 왕복 4차로로 남안산에서 월곶까지는 왕복 6차로이다.
서평택 분기점에서 서해안고속도로와 평택제천고속도로와 조암 나들목에서 77번과 82번 국도, 남안산 나들목에서 39번 국도, 군자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 월곶 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 등과 연결된다.
제2서해안고속도로(주)가 운영하며 정부에서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을 하지 않는 최초의 민자고속도로이다.
이 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시화공단과 반월공단 등이 있는 경기 서남부 지역과 인천 남동공단 등지로 접근성이 향상되고 시화도, 제부도, 대부도 등 서해안 해양 관광지로의 접근성도 향상되었다.


이제 저 평택시흥간고속도로를 통과해야 되는데 어떻게 통과를 해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어쩔 수 없이 송전탑 좌측의 절개지 옆 콘크리트 수로를 타고 천천히 내려가니 하수도용 커다란 수로가 나타나는데 말라있어 통과하는데엔 전혀 지장이 없다.

그 지하통로를 통해 평택시흥간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다시 우측 절개지 위 능선 방향으로 걸어 올라가니 고속도로 건너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송전탑과 절개지 그리고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이제 등로 우측에 평택시흥간고속도로와 장안TG를 두고 능선 절개지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그 콘크리트 도로를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 능선 방향으로 이어진다.

조금 더 걸어가니 능선 우측으로 고속도로 방향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이 놓여있는 능선 정상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80.6봉은 이미 고속도로의 장안TG를 만들면서 사라져 버렸다.


잠시 더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이제 지나온 마루금이 저 멀리 멀어지고 등로 좌측으로는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비강이앤비라는 공장도 내려다 보인다.

그 절개지 능선을 지나 걸어가니 낙엽진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고 간벌된 나무들이 널부러져 있는 진행하기 어려운 마루금으로 바뀌고 있다.

어렵게 그 널부러진 나무 등로를 지나니 무명묘지 한기를 통과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철망이 있는 성지공조기술이란 공장 건물을 두고 걸어가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포장도로에서 성지공조기술 공장 건물을 살펴본 후 우측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 가다 콘크리트 옹벽이 사라진 좌측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갑자기 많은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아마도 작은 공동묘지지대처럼 보이고 등로 우측 아래에는 납골당처럼 생긴 많은 묘지들이 비석들을 앞에 두고 서 있다.

그 작은 공동묘지지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송전탑 띠지가 걸려있는 71.5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에서 등로는 뚜렷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낙엽속에 파묻혀 희미한 등로를 타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게 된다.


등로도 보이지 않는 낙엽 등로를 찾아 어렵게 내려가니 무명 안부를 지나 다시 평이한 사면 등로가 나타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또 다시 방금 전 어렵게 통과한 평택시흥간고속도로 위 절개지에 도착을 해 등로 우측으로 빠르게 달리는 차량들을 내려다 본다.

커다란 송전탑 하나를 지나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앞으로 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장안지하차도 위 동물이동통로가 보이고 그 통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고속도로 공사 후 동물이동통로를 만들면서 나무들을 식재해 놓은 통로 위를 통해 고속도로를 통과하니 다시 짧은 절개지 위로 오르고 그곳에서 방금 전 진행해 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저 멀리 고속도로 건너 송전탑이 보인다.

잠시 더 잡목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직진 방향과 등로 우측으로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으로는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좌측 민가 한채가 보이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간다.

하지만 이방인의 출현으로 큰 강아지 한마리가 격렬하게 반겨주고 주인 아저씨의 배려로 어렵게 그 민가를 빠져 나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해찬솔이란 커다란 이정석과 시골집 간판 그리고 선영엠아이피라는 공장 안내판이 서 있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장안로에 도착을 한다.


장안로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거대한 축사가 펼쳐져 있다.

구제역과 조류 인풀루엔자 때문에 축산업을 하는 사람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 때문에 조심하며 조금은 빠르게 그 축사 지대를 통과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올라 축사지대를 완전히 통과한 후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엠씨아이건설 건물들이 보이고 등로는 이제 갈림삼거리에서 직진의 좌측 직진 등로를 버리고 우측의 엔씨아이건설 건물 앞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 본다.


우측으로는 엔씨아니건설 건물들을 두고 좌측으로는 드넓은 밭 경작지를 둔 사잇길로 걸어가다 등로 좌측 뒤를 살펴보니 저 멀리 거대한 축사 건물과 드넓은 초지가 드러나 있다.

계속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소나무들이 자라고 그 아래에는 잘 가꿔진 묘지들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더 그 멋진 임도를 타고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반이 열려있는 철문 좌측으로 커다란 장안농원이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그 장안농원 입간판을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좌측에는 매화과수원이 보이고 그곳에는 예쁜 매화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다.

그렇게 매화꽃을 구경하며 걸어 오르니 높은 37번 송전탑과 수확철에 사용했을 작은 가건물이 보이고 임도 우측으로는 남산과 반환점이란 글씨가 달려있는 이정표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이제는 완만하게 내려가는 임도를 따르니 금새 갈림삼거리 비포장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능선 방향의 좌측 임도를 따라 걸어 보는 시간이다.


갈림삼거리를 지나며 등로 우측 위를 바라보니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남산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잠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에 벤취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고 잠시 소나무 임도를 따르니 또 다른 벤취쉼터 하나가 더 보인다.

다시 뚜렷한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는 이정표가 서 있다.

좌측으로는 소남산 가는 방향이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남산까지 0.7 Km라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그리고 진행했던 방향으로는 반환점 1.1 Km라는 글씨가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우측 등로인 남산 0.7 Km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기 시작한다.


그 갈림삼거리를 지나 우측 남산 방향으로 오르니 멋진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한동안 무심하게 그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오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운동시설과 벤취들 그리고 이정표와 정상 이정판이 걸려있는 107.3봉의 남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곳 남산 정상에 관해서는 그 어떤 자료도 찾지 못하였는데 남산이 있는 마을이 어은리이기에 어은리를 찾아 본다.

어은리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대부분의 지형이 비교적 완만한 구릉성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 방향으로 하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 마을로는 검누들, 독지골, 띠고개, 바람고지 마을 등이 있는데 거문들 마을은 검은 돌이 있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독지골 마을은 독실한 과부가 살았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띠고개 마을은 뒷산에 띠가 많다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며 바람고지 마을은 곶으로 되어있다는 뜻에서 명명되었다.


한동안 그 남산에 머물며 추억을 남기고 다시 배낭 둘러메고 좌측 바위있는 등로로 내려가니 진행방향으로 장안면사무소가 우측으로 배기울골 그리고 좌측으로는 방금 전 걸어 지나온 소남산정상으로 향하는 이정표를 지나 남산유래 설명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 보고 출잘을 한다.

남산의 유래를 읽어 보니 남산은 화성시 장안면 어은리에 있는 산으로 마을의 안산이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예전 쌍부현 시절에 부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전한다.

남산 위에는 여성의 하체가 누워있는 것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마귀할멈이 변해서 된 바위라고 한다.

옛날에 마귀할멈이 마귀할아버지와 함께 한양으로 가다가 남산 꼭대기에서 쉬려고 했는데 남산의 산신령이 나타나 이곳은 내가 있는 신성한 곳이니 떠나라 했다.

마귀할멈이 하룻밤을 자고 떠나겠다고 고집을 부리니 남산의 산신령이 노하여 마귀할멈을 그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해 버렸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체가 된 하체를 그대로 드러낸 채 그 자리에서 바위로 굳어 버렸다.

마귀할아버지는 산신령과 마귀할멈이 실랑이를 하는 동안 조금 더 갔지만 할머니가 바위로 변할 때 함께 제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그래서 남산은 마귀 할멈산이고 북쪽 맞은 편에 보이는 산은 마귀할아범산이 되었다는 유래이다.


남산유래 설명판을 읽어 보고 완만하게 내려가다 우측을 살펴보니 넓은 헬기장 같은 공터가 보이고 그곳에도 운동시설과 벤취쉼터들이 보인다.

이제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위험한 등로도 아닌데 갑자기 안전목책과 로프 구간이 나타난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두개의 벤취쉼터가 설치되어 있고 그 우측으로는 지나온 방향으로 남산정상 표시가 그리고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는 정안면사무소 방향과 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지나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빼곡하게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 조림지가 나타나고 등로는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며 진행 된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자작나무 조림지와 좌측으로는 사람 키만큼 자란 멋진 잣나무가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따르니 57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절개지를 이루고 있는 능선 등로가 나타나고 진행 방향으로는 이제 장안면사무소 건물이 빤히 바라다 보인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장안면사무소 담장이 있는 곳에서 등로는 좌측 짧은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르고 곧이어 우측 장안면사무소 내로 들어가 그 장안면사무소를 통과하여 정문 방향으로 진행이 된다.

장안면은 경기도 화성시 남서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으로 팔탄면, 서쪽으로 우정면에 접하고 북쪽으로 남양만, 남쪽으로 남양호에 면한다.
동부는 편암, 서부는 화강암질 편마암 그리고 해안지대는 충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무봉산, 전통산 등 비교적 낮은 산과 구릉이 산재하고 해안과 하천지역에서는 논농사가 행해지며 내륙의 구릉지대에서는 주로 밭농사가 행해진다.
북부와 남부의 해안지대에 소규모의 염전이 산재하고 수원시로 연결되는 도로가 면을 동서로 횡단하며 수운은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
문화재로는 차병혁묘, 장소진묘, 사곡리 토총 등이 있다.


정안면사무소 내에는 한가로운 농촌 풍경과 코뿔소를 인형화해 만들어 놔 찾는 사람들이 눈여겨 볼 수 있는 구경거리로 만들어 놨다.

장안면 역혁과 지도를 만들어 놓은 이정석을 지나 정문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지게를 형상화해 놓은 구조물이 눈길을 잡는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장안면사무소 버스정류장이 서 있는 2차선 포승장안로에 도착을 한다.

도로를 건너 비닐을 씌워 놓은 밭을 통과해 주차장을 지나니 다시 낙엽진 능선이 나타나고 그 능선을 타고 완만하게 올라 본다.


낙엽이 깊게 깔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사라지고 밤나무와 잡목들이 자라고 있어 진행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래도 조심해 희미한 등로를 찾아 걸어가니 잠시 뚜렷한 등로가 나타나다가 사라지고 이제부터 지독한 잡목과 가시나무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이곳이 63.6봉 갈림삼거리인데 지독한 잡목을 헤치고 진행하다 보니 바로 옆에 있는 63.6봉도 들리지 못하고 등로 우측으로 펼쳐진 거대한 서진산업 공장을 바라본 후 진행을 한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진행 방향으로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 아래에는 초지인듯한 넓은 밭과 그 넘어 들판들 그리고 거대한 고층 아파트들이 조망되기 시작한다.

조암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마을로서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인데 큰 돌이 있으므로 아침돌, 돌래말 또는 조암, 조암동, 조원동이라 한데서 조암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말미, 숲정이, 낡은아실 등이 있는데 말미는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의 지형이 말의 꼬리처럼 생겼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숲정이는 숲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낡은아실은 옛날에 지방 관아가 있었으나 없어진 후 그곳에 마을이 생기자 옛관아가 있던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이제는 도시화 되면서 산들로 둘러싸인 마을이 아닌 고층 빌딩들이 들어 선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상전벽해로 변한 마을이 되어 있다.


그 절개지 위에서 잠시 조망과 풍경을 즐긴 후 좌측 절개지 위를 통해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지독한 잡목이 우거져 진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걸어가니 잘 정리된 넓은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아직 농작물을 심지 않아 밭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간다.

그 ㅂㅌ을 가로질러 걸어가니 잘려진 짧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가시나무가 빼곡한 절개지가 다시 나타나고 어렵게 그 절개지를 오르니 등로 좌측 뒤로 전형적인 농촌마을 풍경을 하고 있는 사곡리가 나타난다.

사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남서부에 위치하며 종만염전이 있다.
모래가 많았으므로 모래골, 모새골 또는 사곡이라 한데서 사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계룡고지, 밤밭, 장자터 등이 있는데 계룡고지는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계룡곶 또는 계룡동이라고도 부른다.
밤밭은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장자터는 장자가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봄철 농사일을 대비해 밭둑을 태우는지 아니면 묵었던 생활 쓰레기를 태우는지 몇군데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고 그 평화로운 풍경을 살펴 본 후 능선으로 오르니 짧은 잡목지대를 지나 56.8봉의 삼각점에 도착을 한다.

너무 오래되어 글자 하나 보이지 않는 삼각점이 박혀있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정상 표시나 고도 표시를 한 이정판 하나 발견하지 못해 삼각점만 사진에 남기고 뒤돌아 내려 온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56.8봉을 뒤돌아 나와 이제는 진행방향의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해풍김공의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또 다른 해풍김공 묘지들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비포장 임도와 만나 이제는 우측으로 그 임도를 따라 걸어가면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진개골길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도로 건너편에는 흰민들레 진액(환) 판매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그곳에서 이제는 그 진개골길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이곳은 사랑리로서 사랑리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고래, 구락굴 등의 골짜기가 있다. 옛날 이 마을은 바닷물이 밀려오는 맨 끝 지역으로서 모래사장의 어구가 형성되어 사랑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징곗골, 삼괴장터, 쇠판이 등이 있는데 삼괴장터는 징곗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시장이 있어 붙은 이름이고 쇠판이는 쇠를 파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 1차선 포장도로인 진개골길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가끔 지나다니는 거대한 트럭이 흙먼지를 날리며 좁은 도로를 지나 다닌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저 멀리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걸어가고 있는 중간에도 거대한 트럭이 그 갈림삼거리를 통과하고 있다.

그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도로 반대편에는 경성자원이란 플랭카드가 걸려있는데 그 경성자원은 이제부터 진행하는 도로 옆에 있는 고철회사였다.

그곳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버리고 좌측 진계골마을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좌측으로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논이 펼쳐져 있고 금새 사랑리 진개골 마을 가운데를 통과한다.

민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경성자원 함석벽이 나타나는데 파지 고철 그리고 비철 들을 모았다가 되파는 공장 같아 보였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 경성자원이 끝나는 지점 뒤에 사랑1리 경노당과 마을회관 건물이 보인다.

그 사랑1리 경노당을 지나 갈림사거리를 통과하니 저 멀리 고층 아파트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사랑길을 만나 그 사랑길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간다.


사랑길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산호아파트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아파트 입구에는 사곡리(산호아파트) 버스정류장이 서 있다.

그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사곡사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주위에는 제법 많은 식당들이 있는데 도시락을 준비해 왔기에 아쉬움이 있는 시간이다.

시간도 이른 시간이기에 그 사곡사거리를 건너 이제는 사랑길에서 기아자동차로를 따라 걸어간다.


도로를 건너니 CU가 보이고 음료수 하나 사 마신 후 걸어가니 양평해장국전문점도 보인다.

노래연습장과 카페를 지나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SK 사곡주유소가 보이고 잠시 후 꼬리곰탕 음식점도 나타난다.

그 음식점을 지나 계속 기아자동차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건너 다복감자탕을 통과하고 도로 좌측으로 가구 싱크공장 입간판이 서 있는 곳도 지난다.


계속 그 기아자동차로를 타고 걸어가니 서서히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미각수라는 공장 건물이 나타난다.

도로 건너편에는 SK 중아주유소가 보이고 그 주유소 좌측으로는 토상이라는 회사 간판도 보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옆에 사곡리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우측 진행 방향으로는 호산리와 기아자동차 표시가 되어 있다.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사곡1리 도로표지판과 그 도로 우측 옛 도로에는 조일LPG충전소가 보이는데 그곳에서도 우측 옛도로를 버리고 좌측 직진의 신도로를 타고 걸어본다.

 

도로를 따라 다시 힘을 내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더부철강산업이라는 건물과 입간판이 서 있고 건우기계를 지나니 호산입구삼거리 도로표지판이 걸려있다.

SK송림에너지를 지나 장작터라는 버스정류장을 통과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제부터 눈 앞에 보이는 봉화교차로 방향의 기아자동차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갈라지는 흥천길을 따라 봉화교회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기아자동차로인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인 흥천길을 따라 걸어 들어가니 민가 옆 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그 밭 경작지 넘어 저 멀리 봉화교회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 봉화교회 앞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직진의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을 해도 되겠지만 그러면 다시 만나는 77번 4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다시 걸어 올라와야 되기에 봉화교회 우측 좁은 등로를 따라 드넓게 펼쳐진 공사장을 통해 정상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하기로 한다.


봉화교회를 좌측에 두고 우측의 좁은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갑자기 드넓은 공사장이 펼쳐지고 그 공사장을 타고 걸어가니 금새 77번 4차선 포장도로인 포승향남로와 만난다.

차량 전용도로인지 도로 가운데에 높은 중앙분리대가 설치되어 있어 통과하기가 쉽지 않는데 주위를 살펴봐도 통과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주위를 살피며 차량이 뜸한 시간에 중앙분리대를 어렵게 넘어 77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한다.

도로 우측으로는 봉화라는 간이 버스 정류장 표시가 보인다.


어렵게 그 77번 4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짧은 절개지 위에 가시나무들이 빼곡하게 자라 오르기가 만만치 않다.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며 고통을 참고 오르니 갑자기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이 산객이 올라 온 절개지 좌측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이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올라 올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비포장 임도를 건너 낙엽 깔린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갑자기 의미를 알 수 없는 H-7649번이라 적혀있는 삼각점이 나타난다.

처음에는 이곳이 봉화산이 아닐까 생각해 주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식도 찾을 수 없고 지도를 살펴보니 봉화산은 조금 더 진행을 해야 될 것 같다.


제법 넓은 공터 한가운데에 박혀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삼각점 봉을 지나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간벌된 나무들이 등로 위에 널부러져 있는 곳을 지나 편안한 등로가 열리는데 그 등로를 따르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벌목된 제법 넓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 봐도 왜 이곳을 벌목한 후 공터로 남겨 놨는지 그 의미를 모르겠다.

간벌된 소나무 위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벌목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눈 앞에 지독한 잡풀지대가 나타나는데 잘 살펴보니 그 말라죽은 잡풀 위 정상에 삼각점 표시가 올려다 보인다.

옆으로 돌아 말라죽은 잡풀을 헤치며 조심해 올라가니 공터 가운데에 삼각점이 박혀 있고 그 삼각점 뒷쪽에 준.희님이 달아 놓은 61.3미터의 봉화산이란 이정판이 보인다.

나즈막한 이곳 봉화산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하였지만 지내산과 함께 봉화산에 관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소개를 해 본다.

임진왜란 때 갑자기 쳐들어 온 왜군에 밀려서 아군들은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을 때 왜군들은 인천 앞 바다의 팔미도에 진을 치고 남양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고 이를 방어하는 아군들은 봉화산과 지내산에 나누어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자 인근 고을의 사람들은 왜군을 피해 그리고 왜군과 싸우기 위해 모두 지네산으로 몰려 들고는 곧 산 주변에 돌로 산성을 쌓고 방어하기 시작했으며 또한 무기가 모자라 돌을 쌓아놓고 투석전을 벌일 준비까지 갖추었다.

얼마 후 왜군들이 공격해 왔는데 조총까지 앞에 둔 왜군들의 화력은 실로 막강해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아무리 군인과 주민들이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싸워도 힘이 부쳐서 밀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때 갑자기 지내산으로부터 안개가 퍼지기 시작하자 왜군들은 곧 혼란에 빠졌고 안개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을 몰라했다.

이에 지형에 익숙한 아군들은 왜군들에게 반격을 가하기 시작하자 왜군들은 엉뚱한 곳으로 총을 쏘기도 했고 방향을 못 잡아서 서로 짓밟고 난리가 났고 아군들은 안개 속에 몸을 감추며 가까운 곳까지 접근해 가서 왜군을 무찔렀다.

싸움이 끝나자마자 이상하리만큼 곧 안개가 걷혔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지내산의 지네가 독을 뿜어서 도와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즉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미물인 지네까지 힘을 보텐 것으로 지네의 독이 퍼져서 안개 같은 역할을 하였기에 쉽게 왜군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지네산을 당산으로 모시고 2년에 한 번씩은 당제를 지내기 시작했으며 이 지내산은 우정읍에 있는 오공산으로 산 중턱에는 성터가 아직 남아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런 전설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곳 지내산과 봉화산이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산이었던 것 같다.


그 봉화산을 내려 와 소나무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생각보다 등로는 뚜렷하게 잘 나 있다.

한동안 편안하게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농구장이 나타나고 그 뒤로 건물이 보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두레자연중고교 건물이다.

두레자연고교는 기독교적인 사명을 가지고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을 받들어 고등학교 보통교육을 실시하며 인재 양성을 통해 지, 덕, 체의 조화로운 인격을 갖춘 인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특성화 고등학교이다.
교육목표는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 존중(사랑), 체험을 통한 잠재력 계발(적성), 사명에 따라 일하는 보람(행복)이다.
1998년 8월 학교법인 수곡두레학원을 설립하고 같은 해 11월 설립 인가와 동시에 특성화 고등학교로 지정된 뒤 이듬해 3월 5일 20명의 신입생으로 개교하였다.

그 고등학교 건물들을 지나 정문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려니 도로 우측으로 교회가 보여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을 했는데 그 내용을 알고 나니 이해가 되는 상황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로 되어 있는 두레길이란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두레어린이집이 보이고 곧이어 우석포장이란 공장 건물을 지난다.

그 우석포장 건물을 지나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의 남양만로 방향의 도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 진행을 한다.

그곳 갈림삼거리에는 지나 온 방향으로 활빈교회와 두레자연중고교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어 두레자연중고교 안에 있던 교회가 활빈교회임을 알게 된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이어는 1차선 포장도로인 두레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니 흥천육교가 나타나고 그 흥천육교를 통해 그 아래로 뚫려있는 77번 4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한다.

이제 도로는 두레길에서 흥천길로 바뀌고 있다.

그곳 흥천육교 정상에서 바로 아래로 뻗어 있는 77번 4차선 포장도로를 내려다 보고 다시 출발한다.


그 흥천육교를 통과하자 마자 등로는 우측에 보이는 창고같은 건물 앞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소나무 등로를 지나 드넓은 벌목지대로 이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사곡리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사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남서부에 위치하며 종만염전이 있으며 모래가 많았으므로 모래골, 모새골 또는 사곡이라 한데서 사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계룡고지, 밤밭, 장자터 등이 있는데 계룡고지는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며 계룡곶 또는 계룡동이라고도 부른다.
밤밭은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장자터는 장자가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잠잠시 그 벌목지대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소나무 조림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절개지 위로 불로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발목지대에서 벌목된 나뭇가지들을 등로 우측에 쌓아 놓아 진행 방향을 찾지 못해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어렵게 그 쌓아 놓은 나무더미를 넘어 소나무가 식재된 곳으로 내려가 본다.

내려가다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흥아공장과 한라엔컴 화성사업소가 보인다.

등로 좌측에는 노진리 마을이 보이는데 노진리는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남부에 위치하며 삼우사 염전이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잔, 노정, 족다리, 진목 등이 있는데 고잔은 곶으로 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노정은 갈우물이라고도 부르며 족다리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족다리는 노진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쪽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진목은 참나무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참남기라고도 부른다.
노정과 진목의 이름을 따서 노진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 소나무 조림지를 타고 걸어가니 소나무들이 자라면서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데 특히 가끔 나타나는 가시나무들로 인해 이곳에서 손가락을 깊게 찔려 많은 피를 흘리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고통을 참으로 어렵게 그 소나무와 가시나무 조림지를 통과하니 넓은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곧이어 가파른 절개지를 만나 다시 힘들게 그 절개지를 타고 오르면 나뭇가지에 준.희님이 붙여 놓은 62.1미터의 불로산 정상 이정판이 반겨 준다.

불로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이 산에 대한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한데 하기야 100미터 높이도 되지 않는 산이기에 자료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듯 싶다.


불로산 정상에서 잠시 지나온 오두지맥 마루금을 살펴 보니 저 멀리 봉화산에서부터 걸어 온 비산비야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잠시 더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들어가니 쓰러진 고사목들이 진행을 방해하는 등로를 지나 뚜렷한 소나무 등로가 다시 나타난다.

잠시 더 걸어가니 잡목의 저항이 심해지더니 등로는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고 있다.

전봇대와 철망이 있는 사잇길을 통해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가운데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살펴보니 대웅글로벌과 티앤디코리아 공장 건물들이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눈 앞으로 남경에스엠이란 공장 건물들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잠시 후 도로는 그 공장 건물들 사이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 1차선 포장도로로 변한 도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흥천육교를 통해 통과를 했던 77번 4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잠시 후 저 멀리 석천사거리가 나타난다.

석천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마을로서 돌팍산 서쪽에 골짜기가 많은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돌파기, 가래내, 새터, 낭개 등이 있는데 돌파기는 돌팍산 밑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가래내는 석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가래(골)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새터는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낭개는 압정개 남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돌파기와 가래내의 이름을 따서 석천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 석천사거리에 있는 횡단보도를 통해 그 77번 4차선 도로를 건넌 후 나타나는 갈림삼거리에서는 우측의 석천리 방향의 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기아자동차 방향의 도로를 따라 걸어가 본다.

그 갈림삼거리 도로 건너에는 유토피아라는 모텔도 보이는 그곳에서 좌측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77번 도로가 우측으로는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나란히 하고 있다.

도로 우측으로 제이앤피라는 공장 건물을 지나고 고향순대국이란 식당도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한우골이란 식당 간판도 보인다.

동일이라는 공장 건물을 지나 풍강도 통과를 하고 오르니 도로 좌측 저 멀리 예다원이란 모텔 건물이 다시 나타난다.


그 예다원이란 모텔 입간판을 지나자 마자 도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데 그곳에서 우측 앞을 바라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오두지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보기에는 이곳에서 우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진행하면 될 듯한데 그곳에는 마루금이 이어지지 않아 조금 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새한실업이란 공장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 갈림삼거리에서는 직진의 좌측 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이화1리란 이정석과 버스정류장이 서 있는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버스정류장을 지나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나래이앤씨라는 공장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묘지와 밭 경작지들이 펼쳐지는데 그 뒤 저 멀리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이화감리교회와 64.2봉 및 고향산이 올려다 보인다.

밭 경작지 바로 한가운데에는 매화나무라 생각되는 과실수들이 보이는데 이제 막 하얀 꽃들이 막 피어나려고 몽우리를 터트리는 풍경도 눈에 들어오며 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곳 이화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마을로서 보금산 밑에 곶으로 된 마을이며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배곶, 배골 또는 이화동, 이곡동이라 한데서 이화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느즌고지, 당골, 덕묵골, 맹곶 등이 있는데 느즌고지는 배골 동쪽에 있는 마을로 곶으로 되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당골은 불로산 밑에 있는 마을로 신당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덕묵골은 배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뱅곶은 곶으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계속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CJGPL 4공장 한일튜브라는 공장 건물이 서 있고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삼거리가 다시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에는 커다란 느티나무 하나가 서 있다.

그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흐르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오르는 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가니 금새 이화감리교회 건물들이 서 있다.

등로는 그 이화감리교회 건물을 우측에 두고 좌측 능선으로 오르며 이어지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니 이화감리교회에서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데 아마도 부활절이라 많은 교인들이 와 있는 듯 보인다.

그곳 능선에서 등로를 타고 오르기 직전 뒤돌아 보니 이화감리교회 건물 뒷편으로 끊어질듯 이어져 온 오두지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펼쳐져 있다.

희미한 등로를 찾아 낙엽을 헤치며 오르니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오르니 갑자기 돌탑 하나가 서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보니 64.2 무명 돌탑봉인데 그 옆으로는 고향산이라 적혀 있어 이곳이 혹시 고향산이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 돌탑봉을 지나니 평이한 소나무 등로가 열려있고 그 소나무 등로가 끝나니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등로가 나타난다.

그 잡목 가지에는 이제 새싹이 돋아나려는지 푸릇한 빛깔이 보이기 시작해 조만간 자연의 빛깔도 변할 것 같다는 느낌이다.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방금 전 파헤쳐진 듯한 식흔을 지나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개인 벙커 2개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그 개인벙커가 있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짧게 오르니 갑자기 넓은 공터에 운동시설과 벤취쉼터들이 놓여있는 보금산 정상인데 벤취쉼터 앞에 낡아 글자도 보이지 않는 삼각점이 박혀 있어 주위를 살펴 보지만 그 어디에도 정상 이정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지도를 보니 삼각점이 박혀 있는 59.7미터 봉이다.

이곳 보금산 역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운동시설과 벤취쉼터가 설치되어 있는 보금산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통나무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을 타고 오르니 또 다른 돌탑 하나가 서 있는 돌탑봉에 도착을 한다.

지도상에는 돌탑 표시는 없고 63.9미터의 높이만 표시가 되어 있는 봉우리이다.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그 돌탑봉을 출발해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 본다.


그 돌탑봉을 출발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잡목가지 넘어 묘지가 보이고 그묘지에는 많은 가족들이 모여 묘지를 관리하고 성묘를 하고 있다.

이 야산에 제대로 된 등산복을 차려 입고 배낭까지 메고 지나가는 산객이 이상했던지 한동안 바라본다.

묵념하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도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이화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반대편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들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묘지들과 가건물이 보이는데 이곳에도 몇사람들이 모여 묘지를 관리하고 성묘를 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는데 그 입구에는 그물망이 쳐져 있다.

그렇게 잠시 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오르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좌측으로 흐르는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어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 본다.


이제 임도 우측으로는 넓은 밭 경작지를 두고 좌측으로는 능선을 보며 걸어가니 등로는 드넓은 비포장 임도의 안부를 통과해 우측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등로 양쪽으로 도로 양쪽으로 설치하는 도로 가이드 철판들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옛날에는 이곳 도로가 차량들이 통행하던 넓은 비포장 도로였는데 다른 곳에 포장도로가 생기면서 지금은 폐쇄된 묵은 비포장 임도가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잠시 더 그 도로 가이드가 설치된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 본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도로 가이드를 따라 한동안 오르며 걸어 진행을 하니 도로 가이드가 끝이나고 곧바로 벌목지대로 이어지고 있다.

벌목된 장소에는 자세히 보니 어린 밤나무 묘목들이 식재되어 있는 듯 보인다.

우측으로는 벌목지가 좌측으로는 능선 숲이 있는 그 중간 등로를 타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벌목지대를 올라 간다.


그 벌목지대를 통해 오르며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들판에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마을들 넘어 저 멀리 파란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저 서해바다 건너에는 몇번인가 더 내려가야 할 당진쪽 육지도 보일 것이다.

사진 좌측으로는 이제부터 내려가 도로를 타고 걸어가야 할 오두지맥 마지막 구간들도 보일듯 말듯 내려다 보이고 있다.


그렇게 벌목지대 우측으로 서해바다를 내려다 보며 잠시 더 걸어가니 노란 생강꽃이 피어 있는 무명 안부를 지나 올라가고 금새 그물망이 쳐져 있는 뚜렷한 등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한가운데엔 지적경계점이라 생각되는 삼각점이 박혀 있다.

지도를 보니 마루금은 좌측으로 진행을 하지만 우측으로 가까운 곳에 53.1봉이 있기에 잠시 다녀 오기로 하고 그 그물망으로 보호 받고 있는 듯한 잘 정리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잡목이 우거진 53.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뒤돌아 나온다.


잘 정리된 그물망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버려진 듯한 운동시설들이 널부러져 있고 벤취쉼터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그 그물망이 끝이나며 등로는 우측 낙엽 깔린 능선 방향으로 내려가며 이어지는데 그물망 좌측으로는 거대한 기아현대자동차 화성공장이 내려다 보인다.

그 그물망이 끝나는 지점에서 좌측 기아자동차 공장을 다시 한번 내려다 보고 우측 예비군 훈련장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뚜렷한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갑자기 큰 함성들이 들려오고 금새 절개지 위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기아자동차 스포츠 센터 위 절개지이다.

그 절개지 아래에는 야구장과 축구장이 펼쳐져 있고 많은 직원들인지 아니면 동호인들인지 모를 사람들이 모여 운둥을 하면서 질렀던 함성들이었다.

조심하며 그 절개지를 내려가 축구장과 야구장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기아자동차 스포츠센타 정문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기아자동차 스포츠 센타 정문을 나가니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매향석천로라는 도로 이름이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서 매향석천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며 마지막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농장정육식당이란 간판이 서 있고 인삼포를 구경하며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송림정이란 한정식 식당이 보인다.

그 송림정 한정식 식당을 지나니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좌측으로 거대한 목장이 보인다.

그 목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농장축산이라는 버스정류장이 서 있다.


그 농장축산이라는 버스정류장을 지나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석천광명교회가 보이고 그 옆으로 대한어린이집이 보인다.

가래길이란 도로 표지판을 보고 그 도로를 계속 걸어가니 석천리라는 버스정류장도 지난다.

석천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마을로서 돌팍산 서쪽에 골짜기가 많은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돌파기, 가래내, 새터, 낭개 등이 있는데 돌파기는 돌팍산 밑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가래내는 석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가래(골)가 많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새터는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낭개는 압정개 남쪽이 된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돌파기와 가래내의 이름을 따서 석천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 석천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제는 우측으로 갈리는 도로를 따라 걸어 간다.

살펴보니 우측으로 진행해야 할 도로 이름은 계속해서 매향석천길이고 반대쪽인 좌측길은 띨뿌리길이란 도로명이 보인다.


우측으로 계속 이어지는 매향석천로를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석천4리 띨뿌리마을이 걸어 온 도로 반대편으로 표기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 저 멀리 교회 십자가가 보이는 곳에서 도로 우측으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기아자동차 스포츠센타를 지나 비산비야의 마루금이 보인다.

다시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염광교회를 지나고 곧이어 석천3리 이정석도 서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밭 경작지에도 이제 봄이 오는지 파란 초지가 펼쳐져 있다.

매향2리라는 버스정류장을 지나 목장지대를 통과하고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진행해야 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제 지금까지 계속 걸어 왔던 매향석천로를 우측 직진 방향으로 버리고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인 기아자동차로를 따라 걸어 보는 시간이다.

좌측으로는 초록의 밭 경작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민가들이 연이어 나타나는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눈 앞에 아파트 같은 건물이 보이고 그 건물 우측 옆으로 걸어가다 살펴보니 춘추관이란 건물이다.

그 춘추관이란 건물을 지나자 마자 다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이곳 역시 기아자동차로이다.

그 도로 우측 저 멀리에는 매향교차로라는 갈림삼거리이고 좌측으로는 진행 방향의 도로가 보이는데 그 도로 건너편에는 매향보건진료소라는 입간판도 서 있다.


이제 좌측 도로를 타고 기아자동차로를 걸어가니 매향2리 양지편이란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최근에 신설된 듯한 유리 건물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 완만하게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수많은 녹슨 포탄과 실탄들이 보이는데 그것들을 보니 이곳이 바로 미군 포격 사격장이 있었던 매향리임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매향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임해마을로서 원래 고온포라 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서원과 구장이라는 두 문장가가 마을 이름을 지을 때 서원은 매자를 구장은 향자를 짚어서 매향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문말, 새말, 양지촌, 가로지 등이 있는데 문말은 문씨가 많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새말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양지촌은 매향리 양지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녹슨 포탄들을 살펴보고 도로 좌측으로 보이는 30.9봉을 다녀오기 위해 출발하는데 살펴보니 매향리 역사기념관, 종합복지관 건립예정지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눈에 들어 온다.

잠시 뒤 다시 내려 와야 되기에 그 때 조금 더 둘러 보기로 하고 도로 건너 시멘트 도로를 타고 조금 올라가니 많은 묘지들이 분포해 있는 30.9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살펴본다.

묘지 지나 남쪽으로는 거대한 기아자동차 공장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경기가 좋아져 더 많은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이길 바래 본다.


그 30.9봉에서 잠시 배낭 내려 준비한 떡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올랐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내려 와 도로를 건너 방금 전 잠시 둘러 봤던 녹슨 포탄들과 탄환피들을 둘러 본다.

몇십 년 동안 미군 사격장으로 이용되었던 매향리이기에 몇 년 전 사회 문제가 되어 방송에서 봤던 기억이 있어 마음이 편치 않았었는데 이제 잘 해결이 되었는지 미군부대도 떠났고 포갹 소리도 들리지 않으며 역사기념관도 건립을 한다니 다시 평화로운 마을이 되길 바래 본다.

그렇게 잠시 더 둘러보고 나오니 달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도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매향리 정보화 마을이란 커다란 입간판도 서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기아자동차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기아자동차 공장이 거대하게 보이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황가네 보신장과 김치찌개와 해물찌개 식당 입간판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옛날 군부대 철조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뒤 도로 좌측으로 관광버스 주차장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대지목장 입간판과 기아후문입구라는 버스정류장이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좌측으로는 기아자동차 후문이 넓게 보인다.


그 기아자동차 후문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논이 펼쳐져 있는데 그 논들을 건너면 바로 수많은 기아자동차 협력업체의 공장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자시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매향 1, 5리(고온리항) 이정석이 서 있고 우측으로 화성드림파크와 매향리 평화공원 조성예정지라는 입간판이 서 있다.

그 입간판들 우측 옆으로는 철조망이 보이는데 아마도 예전에 미군이 주둔을 했던 군부대 철조망처럼 보이는데 이제는 이전을 했는지 문이 열려있어 자유롭게 드나들수 있도록 되어 있다.


우측 군부대 철문을 지나 걸어 오르니 비포장 임도가 열리고 그 임도 우측 옆에는 매향리 둘레길 안내판도 서 있다.

군부대 방향으로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들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 임도를 버리고 좌측 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 과수가 식재되어 있는 들판 등로로 이어진다.

밭 경작지를 지나 능선 방향으로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잡목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고 또한 철조망이 가로 막아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다시 우측 비포장 임도 방향으로 내려 와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본다.

논과 밭 그리고 비닐하우스를 지나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군부대 철문이 보이고 그 철문을 타고 군부대를 벗어나 좌측 민가 방향으로 걸어가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는 민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강아지 한마리가 격하게 환영을 해준다.

주위를 살피니 민가에는 아무도 없는듯 하여 재빨리 그 민가 마당을 통해 걸어 통과를 하니 민가 좌측 저 멀리 논에서는 농부 한명이 경운기를 이용해 논을 갈고 있어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다.

그 민가 한쪽에는 매향요골길이란 도로명이 붙어 있어 사진에 담고 통과하니 짧은 능선을 지나 또 다른 민가가 보이는 마늘밭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마늘밭을 지나 걸어가니 비포장 임도가 열려있고 잠시 후 바로 눈 앞으로 물이 빠진 서해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매향리 마을의 민가들이 보인다.

그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좌측 밭 경작지의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한동안 걸어가니 그 밭 경작지를 지나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임도 좌측 저 멀리에는 연세가 든 할아버지 한분이 보이는데 잠시 후 묘지 한기 앞에 서서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바다 건너 저편에 높은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는 당진항쪽 철강공장들이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물 빠진 갯뻘 위에 작은 섬 두개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구비섬이란 이름이 보이는데 두개의 섬중에 어느것이 구비섬인지는 구분이 쉽지 않다.

그렇다면 또 하나의 섬에는 이름이 없다는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렇게 바다를 조망한 후 다시 걸어 진행을 하니 지나온 밭 경작지가 아름답고 잠시 후 밭 경작지가 펼쳐진 언덕을 넘어 발리모텔 옆 좁은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그곳으로 내려가는데 모텔 직전 좌측으로 민가인지 아니면 별장인지 모를 가옥에서 쉬고 있는 젊은 부부가 이상한 듯 바라보고 있어 괜시리 미안한 마음에 재빠르게 걸어 통과를 한다.

발리모텔 건물을 지나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 임도와 만나고 밭 경작지 가장자리를 타고 계속 걸어 본다.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임도 우측으로 매향리캠핑장이란 민가 같은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회센타 건물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는데 지도를 보니 그 회 센타 뒷쪽으로 한남오두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21.7 삼각점봉이 있어 그곳으로 진행을 한다.

회 센타 뒷편 콘크리트 마당을 타고 걸어가니 눈 앞으로 세그루의 거대한 당산나무가 서 있는 절개지 위로 언덕이 보이고 그 절개지를 타고 오르니 당산나무 위에 준.희님이 걸어 놓은 21.7미터 봉이란 정상 이정판 아래 삼각점이 박혀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그 뒤로 이어지는 밭을 통해 진행해 보려고 하지만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 해 다시 그 절개지를 타고 올라갔던 시멘트 마당으로 내려 와 그 회 센타 뒷편을 통해 마지막 서해바다 방향으로 조심하며 걸어 내려간다.


회 센타 앞 포장도로로 내려 와 이제 그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바다횟집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물 빠진 서해바다가 보이는데 텐트 2동이 바닷가에 쳐져 있어 부럽기만 하다.

그 뒤 저 멀리에는 차량이 바닷가까지 들어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수산물을 채취하는지 바닷가에 머물고 있다.

이곳이 고온항임을 알리는 경고판을 지나 만나는 갈림삼거리에서 우측 방파제를 따라 걸어가며 한남오두지맥 마지막 발걸음을 해 보는 시간이다.


바닷가 방파제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우측 바닷가 방향으로 안전 철봉이 설치되어 있어 그곳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마지막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방파제 좌측 주차장에는 가족 나들이를 나온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인명 구조함이 있는 곳에서 우측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다음에 언제가는 다시 올라야 할 당진쪽 산줄기들도 바라본다.


이제 서해바다쪽으로 나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마지막 의식을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걸었던 방파제 도로를 따라 뒤돌아 나와 이제는 파도횟집에서 좌측 도로를 버리고 직진의 도로를 따르니 많은 횟집들을 지나 매향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 배낭 정리를 하고 버스 시간표를 보니 50분마다 있다는 2번 버스를 기다려 보기로 한다.

생각보다 이른 오후 2시경 산행을 마무리하고 30여분 후 들어 온 2번 버스를 타고 조망버스 터미널로 나가며 완벽한 마무리를 해 본다.

매향리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있는 임해마을로서 원래 고온포라 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서원과 구장이라는 두 문장가가 마을 이름을 지을 때 서원은 매자를 구장은 향자를 짚어서 매향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문말, 새말, 양지촌, 가로지 등이 있는데 문말은 문씨가 많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새말은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양지촌은 매향리 양지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언제 다시 이곳을 들릴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그 풍경들을 가슴속 깊이 남겨 보는 시간이다.


약 20여분 후에 조암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해 화장실에서 손만 간단히 닦은 후 터미널 풍경을 사진에 담고 이곳이 종점인 8155번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과천쪽을 지나고 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차가 막혀 어렵게 사당에 도착하는 시간이 오후 3시 30여분이다.

그래도 무탈하게 한남오두지맥 산행을 잘 마무리하고 생각보다 빨리 귀가를 하니 하루가 무척 길게 생각되는 시간이지만 오른쪽 무릎 뒷쪽의 하지정맥이 터져 검게 멍이 든 모습이 공포스러워 이번주에는 전문 병원에 가 상담을 해야 될 것 같다.


하지정맥 치료도 잘 되리라 기대하며 다음은 어느 산줄기에 올라야 할지 잠시 고민도 되는 시간이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