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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태행지맥(서봉·완)

태행지맥 마지막 제2구간 은장고개에서 서해바다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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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화성시 태행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6년 03월 06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던 산행하기 좋았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상 03도에서 영상 07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은장고개(322번 4차선 포장도로)-쌍송1리입구 버스정류장-경기목재-은장교차로-화성장례식장-주)소래-솔티고개(솔치고개, 선진테크)-

                 에이엠텍-장모님 밥상-이엔에스 주식회사-마도배수지 축조사업 부지내 유적 발굴조사장-은장공단 조망-갈림삼거리-무안산(106.7봉, 삼각점)-

                 갈림삼거리 복귀-지독한 잡목과 고사목지대-쌍송공단 조망-상사김공묘지-75.1봉-지독한 잡목과 고사목지대-소나무 등로-절개지-넓은 공터-

                 다락고개(318번 2차선 포장도로)-조은자동차학원-박석공단 입구 이정표-Q 마트-평택시흥간 고속도로 통과-시멘트 포장도로(우진 케미칼)-

                 잡목과 가시능선-시멘트 포장도로-동문공단-지엔텔 마도물류센타-주)디엠티-해치코리아-주)한엔코-능선진입-사철나무와 소나무 등로-소나무

                 등로-시멘트 포장도로-과수원-57.9봉(소나무 조림지)-28번과 58번 송전탑-상주박공 묘지들-비포장 임도-시멘트 포장도로-초지와 목장지대-

                 청원4리(막산공원) 버스정류장 사거리-비포장 임도-밭 경작지-공사장 공터-시멘트 포장도로-하늘교회-전주이공과 부인 합장묘-청원초교 후문-

                 53번 2차선 포장도로-318번 2차선 포장도로-남양방공 신도비-청원초등학교 정문-명륜마트-청원초등학교(명륜마트 앞) 버스정류장-

                 성목재(성복재, 318번 2차선 포장도로)-청원건설과 청원자동차정비센터-청준옥 식당-청원교회-장미부페식당-주)포스벨-우주콘테이너와

                 산정정밀-거현산업과 현대알루미늄-청원교회 버스정류장-금당2리 적개 이정석-코리아 테크-비포장 임도-밭 경작지-비포장 임도-금당공단

                 조망-안부 사거리-송전탑 34와 64번-김해김공 묘지-진주유공 묘지들-잡목 능선-남양홍공 묘지들-엄나무 지대-파평윤공 묘지들-43 무명봉-

                 포도 과수원-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금당정미소-엄나무공원-진선제2농장-소고지 마을-갈림 삼거리-이정표(금당리와 등산로, 금당1리)-

                 갈림 삼거리 복귀-전주이공 묘지지대-비포장 임도-웃소고지 마을-시멘트 포장도로-소나무 비포장 임도-135.8 삼각점봉-포도마을 코스코 벨리

                 아파트-남아월드와이드(BOMAG)-305번 2차선 포장도로-선진종합가스-헐몬산 기도의 집 이정판-시멘트 포장도로-원룸 2동-비포장 임도-비닐

                 포도 과수원-송전탑-인삼포와 비닐 포도 과수원-야외 포도 과수원-밤나무 과수원-89 콘크리트 말뚝과 녹슨 철조망(살고지 방향 마루금 갈림

                 삼거리)-당성터널(굴터널, 305번 4차선 포장도로 통과)-밤나무 과수원-잡목지대-폐 콘테이너 민가-103 콘크리트 말뚝봉-비포장 임도-안부

                 사거리-능선진입-당성(산성)-당성 등로-구봉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당성북문지, 당성 0.3 Km와 신흥산 0.7 Km, 육일리 1.2 Km)-

                 구봉산(158.6봉, 망해루지 추정, 조망)-갈림 삼거리 복귀-벤취 쉼터2개-무명안부-송전탑 47번과 77번-무명안부-129.4봉-절개지-대한피에스

                 공장 건물 마당-칠곡리옻골마을 이정석(2차선 포장도로)-능선진입(목초지와 목장)-비포장 임도-포도 과수원-묘지지대(빵으로 점심식사)-

                 바위 무명봉-송전탑 50번과 80번-86.9봉-인삼포-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비포장 임도(포도 과수원)-송전탑 51번과 81번-나무 식재지-

                 벌목 공사장-소나무 등로-비포장 임도-송전탑 53번과 83번-74 잡목 절개지봉-호두나무 식재지-지독한 잡목지대-시멘트 포장도로-주)디컴-

                 필텍코리아-밀레니엄 엔터프라이즈-신창산업-그위스 모텔-아지미고개(322번 2차선 포장도로)-중송1리 이정석-안양목장-목장 철조망 따라

                 능선진입-목초지대-묘지지대-지독한 잡목지대-78 무명봉-개성옥공묘지-지독한 잡목과 잡풀지대-묘지지대-절개지-한남정밀과 영진유리-

                 송산로 2차선 포장도로-인애농원 버스정류장-인애농원 입구-중송2리 뒷골 이정석-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배나무 과수원-57.7봉-

                 배나무 과수원-송산로 2차선 포장도로-각골입구 버스정류장-천등산목장-비포장 임도-콘테이너 박스-벌목지대-매화 과수원-나무 조림지-

                 59 무명봉-지독한 잡목지대-76.6 무명봉-엄나무 등로-남양홍공 묘지지대-322번 2차선 포장도로-마산1리 포도마을 이정석-마산1리 버스

                 정류장-갈림 삼거리 도로(형제자원)-태경데크-장문마을 이정석-우성이엔지-시멘트 포장도로-포도 과수원-능선진입-47 잡목봉-밭 경작지-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 임도(비닐 포도 과수원)-포도 과수원-시멘트 포장도로-장문(황해농원) 버스정류장-22.7봉(포도 과수원, 사라짐)-

                 옹진농원-갈림삼거리 우-갈림삼거리 우-비포장 임도-송산그린시티사업 개발계획(토취장) 안내판-마루금 복귀-무명안부-이봉산(105.7봉,

                 삼각점)-지독한 잡목지대-초계정공 묘지-비포장 임도-지화리 버스정류장(2차선 포장도로)-엠케이티 공장 입구-능선진입-승학산(109.7봉)-

                 소나무 등로-묘지지대-2차선 포장도로-화랑교회 버스정류장-화랑감리교회-지화2리 꽃다리마을-지화2리 버스정류장-지화2리 마을회관-

                 지화2리입구 버스정류장-비포장 임도-녹색 철조망 우측-비포장 임도-소나무 조림지-와룡산(107.8봉, 묘지)-소나무 조림지-남경성-지독한

                 잡목지대-녹슨 철조망-2차선 포장도로-태행지맥 산행종료-전곡1교-현석산업개발(석산입구) 이정판-318번 4차선 포장도로-한주건영-

                 셔틀버스 임시정류장-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60 Km (태행지맥 산행 약 22.45 Km와 왕림휴게소에서 태행지맥 분기점까지 접속구간 01.15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잘리고 파헤쳐져 사라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어렵게 찾아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07간 31분 (10시 09부터 17시 41분까)

교통편 :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탈하게 진행하였음

             봉천역에서 지하철 2호선으로 사당역

             사당역에서 1002번 버스로 남양사거리 정류장까지 이동

             남양사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330번 버스로 은장고개(쌍송리입구)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

             한주 건영 앞 셔틀버스 임시 정류장에서 트럭 히치에 성공해 장외리의 장외리 앞 버스정류장까지 이동

             장외리 앞  버스정류장에서 330번번 버스를 타고 남양사거리 하차

             남양사거리 버스 정류장에서 1002번 버스로 사당역 도착

             사당역에서 지하철 2호선에 탑승하여 귀가

산행횟수와 총 산행거리 : 2016-13, 248.35 Km

태행지맥이란 ???

태행지맥은 한남정맥 감투봉(185봉)에서 아산만으로 가는 서봉지맥의 화성시 봉담읍 장안대뒤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화성시 송산면 와룡산(107.8봉)에서 선감도를 바라보며 그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1.4 Km되는 산줄기다.

지나는 곳은 삼봉산(271봉), 태행산(268봉), 염티고개, 성고개, 다락고개, 굴고개, 구봉산(159봉), 매봉산(109봉), 아지미고개, 천등산(146봉), 이봉산(106봉), 승학산(110봉), 와룡산(107.8봉)을 지나 서해바다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이다.





공단과 공장지대로 변하며 사라지는 비산비야의 마루금을 찾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무겁게 걸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나이들어 새로움에 적응을 해야된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게 도전한다는 것 역시 즐길 수만 있다면 최상이란 생각으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갑자기 바빠진 생활로 인해 정신적으로 많이 힘이 드는 시간들이다.

그래도 이렇게 하고 싶은 산행을 즐기며 그 바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을 마무리하는 순간은 그 무엇에 비교할 수 없는 큰 희열을 안겨주고 있다.

산행할 때 느끼는 큰 고통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 무엇이라도 극복하고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역시 산행에서 얻는 큰 수확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오늘은 여유롭게 집을 나서 어제 첫구간의 역순으로 들머리까지 간다.

2호선 지하철로 사당역까지 간 후 그곳에서 1002번 버스를 타고 남양사거리까지 가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리는 아니다.

그곳 사거리에서 은장고개 가는 버스는 상당히 많은 편이라 금새 330번 제부도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은장고개 일명 쌍송리입구 정류장에 내리니 오전 10시를 막 넘기고 있다.

어제 조금은 길게 산행을 했기에 쉬려고 했는데 태행지맥 마루금은 그리 멀지도 않고 고도차이가 높지 않아 진행하다 어려우면 쉬어 가기로 하니 마음만은 편안하다.


군포시의 한남정맥 상 감투봉에서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의 계두봉으로 이어지는 서봉지맥이 장안대학을 지난 능선 분기점(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와 상리의 경계점)에서 이어지는 태행지맥은 삼봉산, 태행산, 구봉산까지는 같이 진행하고 구봉산에서 날머리까지는 서로 다른 산줄기 세개로 갈라지는데 그 어느 산줄기를 타고 진행을 한다해도 정답이 없기에 다양하게 진행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첫번째 산줄기는 삼봉산, 태행산, 구봉산, 무안산, 청명산, 해운산을 지나 화성시 서신면 궁평리 궁평항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있고 두번째는 신산경표에 표기된 삼봉산, 태행산, 구봉산, 이봉산, 승학산, 와룡산 지나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송교리 옷감뿌리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있으며 마지막으로는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 분천리와 상리의 경계점에서 서쪽으로 갈라져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송교리 살곶지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로 여기에는 삼봉산, 태행산, 구봉산, 봉화산, 함경산을 만나는 산줄기이다.

어느 산줄기를 따라 진행을 해도 정답은 없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에 명기된 산줄기인 이봉산과 승학산 그리고 와룡산을 지나 옷감뿌리에서 끝이 나는 산줄기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잘리고 파헤쳐진 마루금을 찾아 공단지대를 넘어 걸어가는 시간은 참으로 한심하면서도 왜 이런 산행을 해야 되는지 많은 고민들이 밀려오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기에 더욱 그 산줄기를 찾아 명맥을 이어 놓고 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큰 감명을 받는 시간이다.

그렇게 비산비야를 걷고 때로는 공장 절개지를 오르고 내리면서 많은 생각을 하지만 역시나 무심으로 걷다보면 높은 산줄기나 나즈막한 산줄기나 그 흐름은 모두 같음을 인식하고 피식 웃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제법 걸어 오늘 산행의 반정도를 진행하니 드디어 구봉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오늘 걸어 온 마루금 뿐만이 아니라 지난 주 걸었던 태행지맥 분기점 부근의 산줄기와 그 뒤로 서봉지맥 마루금까지 시원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많은 고통을 느끼다가도 이런 환상적인 풍경과 조망을 즐길 수 있음에 그 고통들을 모두 쉽게 잊을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은장고개 일명 쌍송리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니 오전 10시를 막 넘기고 있고 그곳 버스 정류장 안에서 산행 준비 후 지난 구간 올라 온 고갯마루로 가 남양 방향을 살펴보니 그곳 풍경은 지난주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이제 마도 방향으로 뒤돌아 가다 문득 도로 좌측을 보니 높은 절개지가 보이는데 그곳이 원마루금이기에 아쉬운 마음 가득하다.

다시 뒤돌아 와 이제는 그 은장고개 일명 쌍송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경기목재와 예림 간판이 보이고 도로 건너에는 좌측 진행 방향으로 쌍송리란 글자와 함께 화살표가 보이고 그 바로 뒤에는 은장교차로란 도로 표지판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이제 마도 방향의 직진으로 이어지는 322번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쌍송리 방향으로 겅어가며 마지막 구간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이곳 은장고개는 화성시 남양읍 남양동과 마도면 쌍송리와 두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은장고개란 버스 정류장이 있고 322번 4차선 도로가 지나가는 도로로서 원 태행지맥 마루금이 무참하게 잘려진 곳이기도 하다.

이제 322번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쌍송리 방향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경기목재 담벼락이 그리고 우측 앞으로는 화성장례식장 건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좁은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차량 통행이 많아 깜짝 놀라기도 하는 시간이다.

등로는 이제 남양리를 지나 두곡리로 들어가며 진행이 되고 있다.

두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북동부에 위치하며 여사위 방죽이 있는 농촌마을인데 본래 남양군 쌍수리면의 지역으로서 두일 또는 두곡이라 한데서 두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고잔말, 구리골, 쉰돌, 중리 등이 있는데 고잔말은 곶으로 되어 붙은 이름이고 쉰돌은 흰 돌이 있으므로 붙은 이름이며 중리는 두곡과 송정리의 중간이 된다하여 붙은 이름이다.


화성 장례식장을 우측에 두고 걸어 내려가니 바로 옆에 주)소래 건물이 크게 보이고 저 멀리 앞으로 솔티고개가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되는 좁은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경기목재 건물이 끝이나며 원래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사람들의 출입이 없어서 그런지 잡목이 심해 오르기 어려워 보인다.

그렇게 계속 걸어 남쪽으로 진행을 하니 도로 좌측에 신성석기와 극동 판넬이란 간판이 보이고 도로 건너 남쪽으로는 거대한 선진테크 건물이 보이는 솔치고개 일명 솔티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는 이곳에서 지금까지 걸어 온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며 진행을 해야 한다.

솔치고개(솔티고개)는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에 있는 고개로서 솔티고개라 불려지는 이곳은 혹시 송치고개로서 송치마을은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아무리 자료를 찾아 봐도 솔치나 솔티고개로 불려질만한 장소가 아니기에 쌍송리를 찾아 보니 송치라는 마을이 보였기 때문이다.


솔치고개 일명 솔티고개에서 직진으로 가는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꺽어 오르니 장모님 밥상이란 입간판이 보이고 그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 본다.

잠시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거대한 이엔에스란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녹색 철망이 가로막는데 그 철망 한쪽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무사히 통과를 한다.

이제 공사중인 비포장 임도를 따라 잠시 더 걸어가니 능선 앞에 마도배수지 축조사업 부지 내 유적 시. 발굴조사란 플랭카드와 함께 발굴현장 안전수칙이란 플랭카드가 눈에 들어 온다.

완전히 벌목되어 있는 능선으로 오르니 한쪽에선 포크레인이 작업을 하고 있고 또 한쪽에는 사람들 몇명이 유적지 발굴을 하는지 조심하며 흙을 파내고 있다.


그곳 배수지 작업을 하다 발굴된 유적지를 발굴하고 있는 능선 정상에 도착을 하니 일망무제로 조망이 열려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멋진 조망과 풍경을 살펴보고 출발하기로 한다.

제일 먼저 지나온 방향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잘리고 파헤쳐져 명맥만 남아있는 원 마루금이 절개지를 이루고 있고 그 좌측으로 이 산객이 걸어 온 도로가 보이고 있는데 그 뒤 저 멀리에는 지난 구간 어렵게 통과한 거대한 공사장 현장도 한눈에 들어 오고 있다.

바로 발 아래에는 새로 조성된 많은 공장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 서 있어 조만간 남아있던 등로조차 찾기 힘든 태행지맥 줄기나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우측인 서쪽으로는 마도면쪽 마을들과 공단들 그리고 저 멀리 잠시 후 건너야 할 평택시흥간 고속도로도 보인다.


그렇게 마도 배수지 공사장이자 유적지 발굴조사 현장에서 잠시 풍경을 즐긴 후 남쪽으로 걸어가니 쓰러진 나무들이 가로막고 잡모글이 자라면서 진행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나무토막을 타고 넘고 고개를 숙여 어렵게 통과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나 있는데 우측으로 106.7미터인 무안산 정상의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어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하지만 이곳 무안산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왜 무안산일까 궁금해하며 잡목 사이로 보이는 맨발님의 정상 이정판과 그 아래 커다란 삼각점만 사진에 담은 후 뒤돌아 갈림 삼거리로 내려 온다.


무안산이란 106.7봉을 지나 이제 남쪽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이곳 역시 지독한 잡목들과 가시나무들이 등로를 막아 진행에 큰 어려움을 느끼고 잠시 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의 등로가 워낙 뚜렷해 선답자들의 띠지가 없었으면 우측 잡목 사이로 나 있는 희미한 정상 마루금ㄴ을 놓치기 쉬운 장소에 도착을 한다.

우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여전히 잡목지대가 이어지고 나즈막한 무명봉과 안부를 교대로 통과하니 상사김공묘지가 보이고 그 아래 또 하나의 묘지를 지나 지독한 가시나무 등로를 어렵게 통과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는 좌측에 새로 조성된 쌍송공단의 거대한 공장 건물들을 두고 절개지를 따라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쌍송리는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동부에 위치하며 해광염전과 화남염전, 경기염전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거석, 송치, 쌍봉, 해광 등이 있는데 거석은 쌍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송치는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쌍봉과 송치의 이름을 따서 쌍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 절개지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걸어가니 절개지 바로 좌측 아래로는 파란 지붕을 한 거대한 공장 건물이 바로 내려다 보이고 그넘어 저 멀리에는 마도면 공장지대와 화성의 드넓은 들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공단지대 그리고 그 뒤로 수원의 마을들과 나즈막한 산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곳 공장 절개지를 지나 능선으로 다시 오르니 이곳 역시 쓰러진 나무들과 널부러진 고사목들 그리고 가시나무와 잡목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다.

이리 피하고 저리 피하면서 어렵게 걸어 진행을 하니 지도상 75.1봉에 도착을 한다.


지도상 75.1봉을 지나면서도 여전히 쓰러진 나무들과 잡목들의 저항이 심하고 이리 저리 갈지자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힘들게 걸어가니 하늘금따라 백두산가네라는 새로운 띠지를 만나는데 살펴보니 오래 전 걸어 놓은 신경수님과 송영희님의 띠지이다.

한번도 뵙지는 못하였지만 산꾼들에게는 전설처럼 알려진 분들이기에 띠지를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잡목지대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잠시 평이한 등로를 지나 눈 앞에 거대한 건물들이 나타나고 발 아래로는 절벽에 가까운 절개지가 나타난다.

생긴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건물들로 그 건물들 사이로는 넓은 공터도 보이는데 그 공터쪽으로 내려가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으나 그곳에도 건물이 들어서면 마루금은 또 어떻게 변해갈지 걱정도 되는 현장이다.


발 아래로 이어지는 낭떨어지 절개지를 타고 조심하며 힘들게 내려가니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도 조만간 건물이 들어서면 또 어디로 걸어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 시간이다.

공터를 지나 걸어가니 가림막 좌측 끝자락에 통과할 수 있는 곳이 보이고 그곳을 통해 나가니 곧바로 31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다락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우측에 조은자동차 학원 간판과 건물이 보인다.

다락고개는 화성시 마도면 쌍송리와 청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바로 앞 좌측에는 박석공단가는 이정판과 우측에는 Q 마트가 있으며 그곳을 지나자 마자 평택시흥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박석공단 방향을 알려주는 입간판 앞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진행하다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오르자 마자 새로 생긴 평택시흥간 고속도로가 지나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다시 방금 전 헤어진 318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내려 와 그 도로를 타고 고속도로를 통과한다.


낙엽이 깔려 있는 능선으로 올라 바라 본 새로운 평택시흥간 고속도로를 내려다 보니 4차선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고 그 위를 달리는 차량들도 생각보다 많다는 생각이다.

이 평택시흥 고속도로는 또한 제2서해안고속도로 불리고 있는데 그 고속도로 건너편으로는 이제부터 올라야 할 절개지 위로 독야청정하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도 눈에 들어 온다.


능선에서 내려 와 3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평택시흥 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주)우진 케미칼이란 이정판이 서 있는 곳 좌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우측 사무실에서 한명이 나와 출입을 막고 있다가 위에 묘지를 간다고 하니 웃으며 잘 다녀가라고 인사까지 한다.

그 도로를 타고 오르니 방금 전 올려다 봤던 소나무 한그루를 지나 지독한 잡목지대를 통과하는데 등로 우측 아래를 살펴보니 그곳에는 위험물 저장 장소로 이용되는 듯 많은 위험물 드럼통들이 쌓여있다.

이제서야 왜 이곳으로 오르는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는지 이해가 되는 시간이다.

나즈막한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묘지들이 보이는데 그 묘지를 간다고 이해를 하고 출입을 통제하던 아저씨가 순순히 보내준 것을 이해하고는 홀로 웃어 보는 시간이다.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이곳도 역시 가파른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새로 생긴 듯한 많은 공장 건물들이 들어 서 있는 동문공단 내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주)지엔텔 마도물류센타 공장이 보이고 우측 앞쪽으로는 주)디엠티란 커다란 입간판도 보인다.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 아래로 HAECHI KOREA라는 커다란 공장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그 동문공단 때문에 잘려진 절개지가 드러난 원마루금을 좌측에 두고 걸어가 보는 시간이다.

그 절개지 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아래로 주)한엔코라는 건물이 보이는 곳 우측으로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능선이 보이고 그곳으로 올라 지맥 산행을 이어가니 잡목지대를 지나 멋지게 꾸며 놓은 사철나무와 소나무 조림지가 나타난다.

  

등로 좌측으로는 인삼포와 공장 건물들이 간간히 보이지만 등로 우측으로는 동문공단 내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 차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등로 바로 아래까지 거대한 공장 건물들이 들어 와 있다.

잠시 후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 전봇대와 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와 만나는데 그곳에서는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앞에 보이는 과수원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등로는 이제 쌍송리에서 청원리로 바뀌어 진행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매화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과수원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키 작은 소나무와 잣나무들ㅇ이 식재되어 있는 조림 등로가 나타난다.

그 등로를 따라 오르니 저 멀리 송전탑이 올려다 보이고 계속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는 많은 묘지들이 내려다 보이는 57.9봉에 도착을 한다.

정상에는 여전히 멋진 소나무들이 차지하고 있고 그 옆에는 하나의 송전탑에 두개의 번호인 28번과 58번이 달려있는 높은 송전탑이 서 있다.


송전탑과 소나무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57.9봉을 내려오니 등로 좌측으로 상주박공 묘지들이 보이고 잠시 후 비포장 임도로 내려선다.

그 비포장 임도에서 우측으로 올라가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지고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도로 좌측으로는 청원리의 막산리 마을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청원공단이 보이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넓은 초지가 보이고 그 초지 옆으로는 지난해 만들어 놓은 볏짚 포장들이 많이 보이는데 큰 목장이 있는지 목장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다.


도로 좌우측을 구경하며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 앞으로 이제부터 올라야 할 밭 경작지로 이뤄진 등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청원4리(막산공원) 버스정류장이 보이는 청원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 오거리에 도착을 한다.

청원리는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중남부에 위치하며 누에 머리처럼 생겨 눼머리라 부르는 산과 앵봉산, 직밋산이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막산, 상원, 송대, 수루지 등이 있는데 상원은 막산 위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송대는 상원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수루지는 바닷물이 마을까지 올라왔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청산과 상원의 이름을 따서 청원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막산공원은 청원리에 있는 막산마을에 있는 공원이라 붙은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곳이기도 하다.


그 막산공원 오거리를 지나 직진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그 시멘트 포장도로는 금새 비포장 임도로 바뀌며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등로 우측으로 묘지들이 보이고 곧이어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자라는 능선 위로 올라서는데 등로 우측으로는 밭 경작지 아래로 청원공단이 드넓게 내려다 보인다.

잠시 후 등로는 완만하게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곳에는 얼마전까지 공사를 했는지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진행해야 할 교회와 도로 지나 나즈막한 능선들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올려다 보인다.


공사장을 내려가니 또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저 멀리 진행해야 할 교회 위 십자가가 보인다.

그 십자가가 보이는 교회 건물을 목표로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 저 멀리 거대한 공장 건물이 보여 줌으로 당겨보니 주)포스벨로서 잠시 후 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그 입구도 통과를 해야 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묘지들이 보이고 건물 한채가 보이는 곳 우측 저 멀리 교회 십자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눈에 들어 온다.


잠시 후 하늘교회 앞에서 지도를 살펴보니 원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을 해야 되는데 그곳에 청원초등학교가 세워져 있어 그 초등학교 좌우측 어느쪽으로 진행을 해도 될듯 싶어 이 산객은 하늘교회 앞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약간 내려간다.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전주이공과 그 배우자의 합장묘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진행을 하니 청원초교 운동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그 앞에는 목책이 세워져 있어 운동장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에 운동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소로를 따르니 해운로라는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며 성북재 일명 성목재로 향한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좌으로 남양방공 신도비가 세워져 있고 우측으로는 청원초등학교 정문이 나타난다.

사진 한장 남기고 게속 위로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명륜마트가 나타나고 이제부터 그 명륜마트를 좌측에 두고 3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게 된다.

성목재(또는 성북재)는 마도면 서쪽의 송산과 서신을 동쪽의 남양과 이어즈는 고개로서 예전에 서쪽 주민들이 수원 등을 갈려면 이 고개를 넘어야 했으나 남동쪽의 우정면과는 말투가 틀릴 정도로 교류가 없었으며 이곳에서 우정으로 가려면 수원의 오목천을 거쳐 우회해야 하므로 실제보다 서로 훨씬 떨어져 있고 또한 과거에 서신이 남양부 관할인데 반해 우정은 수원에 속해 있어 다른 마을처럼 살아 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제 3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인 서쪽으로 걸어가니 곧비로 청원초등학교(명륜마트 앞)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곧이어 청원건설과 청원자동차정비센터 입간판도 보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청준옥이란 식당이 보이고 도로 건너편에는 청원교회도 보인다.

계속 그 3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건너 장미부페식당을 지나 몇심분 전 건너편 마루금에서 봤던 주)포스벨 들어가는 정문 입간판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거현산업과 도로 건너 우주컨테이너 입간판이 보이는 곳 바로 위에 금당2리 이정석이 보인다.

금당리는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중심에 위치하며 산아래 골짜기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신당이 있으므로 금당골, 금당 또는 금당곡, 금달이라 한데서 금당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금달, 대촌, 소고지 등이 있는데 대촌은 금당골 동쪽에 있는 큰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소고지는 곶으로 되어 붙은 이름이다.


금당2리 이정석을 지나니 청원교회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코리아데크라는 커다란 공장 입구를 지나 도로 우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 있는데 이곳에서 직진의 3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도로 들어가며 맥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넓은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잠시 후 등로는 밭 경작지 한가운데로 나 있다.

이제 그 밭 경작지를 통해 걸어가니 동네 아주머니 한분이 무엇인가를 캐는데 살펴보니 키작은 엄나무를 캐고 있어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다시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측 잡목 넘어 커다란 공장 건물이 보이고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로 뚜렷하게 나 있다.

잠시 더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안부가 나타나는데 그 안부 주위에는 많은 콘테이너 박스들과 널부러진 많은 트럭과 포크레인들이 지저분하게 널부러져 있다.

그 안부를 지나며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금당공단의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인다.


그 지저분한 안부를 지나 오르니 금새 34번과 64번의 두개의 번호가 달려있는 송전탑을 지나 많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잡목과 간벌된 많은 나뭇가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넘는데 간간히 가시가 많이 달려있는 엄나무가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 무명봉을 넘어 완만하게 내려가니 남양홍씨 묘지지대와 엄나무 지대를 지나 파평윤씨 묘지지대가 다시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 낙엽 등로를 걸어가니 나즈막한 무명봉을 넘고 금새 드넓은 포도 과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과수원을 타고 걸어가니 일반 포도 과수원에서 만났던 풍경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의 포도 과수원인데 혹시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는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 포도 과수원 우측 능선을 타고 걸어가니 포도 과수원이 끝이나고 드넓은 밭 경작지에는 검정 비닐이 덮혀있는데 작년에 작물을 심은 후 수확한 밭처럼 보인다.


그 밭 경작지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저 멀리 길게 이어져 있고 바로 앞으로는 비포장 임도를 지나 건물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밭 가장자리를 따라 내려가니 우측 임도 건너편으로는 밤나무인지 무슨 과수원이 또 펼쳐져 있고 그 뒤 우측으로는 채석장에서 막 캐낸듯한 채석들도 보이는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


이제 그 밭에서 우측 포장도로로 내려 와 그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 좌측 위로는 비닐을 덮은 포도 과수원이 다시 나타나는데 이제서야 이곳 송산 포도가 유명하다는 것을 깨닭게 된다.

그렇게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인 금해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몇발자국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 있는데 그 옆 전봇대에는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 방향으로 금해로 45번길이란 방향 표시거 되어 있는 도로 표지판이 걸려있다.

그곳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금새 눈 앞으로 금당정미소 건물이 나타난다.


그 금당정미소 건물 방향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시골 방앗간이 나타나는데 그 마당에는 고찰을 실어 나르는 트럭 한대가 서서 많은 고철들을 실고 있는 작업 현장이 보이는데 작업을 하던 두분이 배낭을 메고 지나가는 이 산객을 보며 이상하다는 듯 바라본다.

그곳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엄나무공원 화장실과 잠시 후 갈림 삼거리를 지나 사각 정자도 보인다.

이곳은 금당리 소고지 마을로서 소고지는 곶으로 되어 붙은 이름이다.


엄나무 공원과 사각정자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진선제2농장이라는 거대한 건물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농장모다는 목장같은 곳이었다.

이제 도로 우측으로 진선농장에서 설치한 함석 펜스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직진으로 10여미터 전방에 이정표가 보여 잠시 다녀 오기로 한다.

가서 살펴보니 우측으로 금당1리 그리고 좌측 위로는 금당리와 등산로 이정표가 보인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와 이제 진행 방향의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로 오르니 강아지 두마리가 핏대를 올리며 울부짖는다.


잠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전주이씨 묘지들이다.

그 묘지에서 뒤돌아 보니 금당리 마을이 그림처럼 내려다 보인다.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고 이제부터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멋진 소나무 등로를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정상 등로는 우측으로 이어지지만 좌측으로 진행을 해도 조만간 만날 것이기에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기로 한다.


좌측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백곡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한동안 그 백곡리의 소곡리(웃소고지) 마을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살펴보니 비포장 임도와 갈리는 갈림 사거리 안부이다.

백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마도면에 있는 마을로서 본면의 서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본래 남양군 마도면의 지역으로 향기실, 이피실, 구리개를 병합하여 백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향기실, 이피실, 구리개 등이 있는데 향기실은 백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고 이피실은 향기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전에는 배가 드나들어서 배를 매는 표석이 있었다 하여 입표곡, 이태굴, 잎피굴이라고도 부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가 갈리는 사거리에서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반대편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생각지도 못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올려다 보인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오르막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점점 소나무가 사라지고 활엽수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금새 135.8미터인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겨 본다.

주위에는 잡목이 우거져 조망은 전혀 없기에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좌측인 서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타고 그 135.8봉을 출발한다.


다시 이어지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또 다시 소나무 등로가 나타나고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더 내려가다 살펴보니 등로 우측의 아파트 단지들은 포스코 밸리 아파트이다.

다시 나타나는 잡목과 잡풀지대를 지나 예쁜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니 남아월드와이드라는 회사 앞마당으로 이어지고 그 건물을 지나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이제 좌측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지났던 회사의 거대한 입간판이 서 있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2차선 포장도로에서 지나온 방향을 보니 방금 전 봤던 아파트는 포도마을 내 포스코 밸리 아파트이고 그 뒤로 지나온 아파트 옆으로 절개지도 올려다 보인다.

이제 그 도로에서 좌측으로 조금 걸어 가 도로 좌측에 선진종합가스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곳 도로 우측으로 헐몬산 기도의 집으로 가는 화살표가 있는 이정판이 보이고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간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이곳에서는 우측 건물 두동이 올려다 보이는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계속 걸어 오르니 원룸 2동이 서 있는데 이 산객이 걸어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는 바로 이 원룸으로 이어지는 도로였다.

그 원룸으로 들어가도 높은 콘크리트 옹벽 때문에 그 뒤로 보이는 능선으로 진입이 어려울 것 같아 그 원룸 두동 앞에서 우측 잡목과 잡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곳으로 걸어 들어 간다.

원룸 두동을 좌측에 두고 우측 잡풀지대로 걸어가니 나즈막한 능선 하나를 넘어 드넓은 비닐 하우스가 펼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포도 과수원들이다.


그 포도 과수원으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온통 포도밭인데 일부는 비닐하우스 내 포도밭이고 일부는 노천 포도밭이다.

잠시 후 갈림 삼거리 임도에서 우측 직진의 비포장 임도를 타고 잠시 걸어가니 마루금 좌측으로는 인삼포가 우측으로는 비닐 포도 과수원이 있는 길을 타고 걸어가는데 좌측 임삼포 아래에는 높은 송전탑 하나가 서 있다.

그 인삼포와 비닐 하우스 포도 과수원을 지나니 노천 포도 과수원이 나타나는데 잡풀들이 무성했다 말라 죽은 모습이 아쉽기만 하다.

그 포도 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낙엽이 깊게 깔려있고 잠시 후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밤나무 과수원에 콘크리트 말뚝과 녹슨 철조망이 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곳에서 직진의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가면 청명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로서 이곳으로도 진행하는 산님들이 있는 듯 보인다.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이제 우측으로 크게 틀어 완만하게 북서쪽으로 내려가니 밤나무 과수원이 이어지고 있다.

잠시 내려가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보이고 저 멀리 당성 지나 구봉산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마루금도 좌측으로 이어지고 있다.

굴고개 지나 좌측으로는 상안리 마을이 305번 4차선 도로를 타고 이어져 있고 그 바로 근처에는 당성터널도 보인다.

굴고개와 당성터널이 있는 육일리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구봉산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육교동, 북일동, 창말 등이 있는데 육교동은 육일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조선 때 6 교리가 났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북일동은 창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창말은 사창이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며 육교동과 북일동의 이름을 따서 육일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했던 당성터널을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밤나무 과수원이 이어지고 그 끝자락에는 그물망이 쳐져 있다.

조심해 그 그물망을 넘어 능선으로 오르니 몇그루의 소나무 지대를 지나 잡목이 무성한 등로를 따른다.

등로 우측으로 지나온 마루금이 살짝 보여 잠시 발걸음 멈추고 쉬어도 가는 시간이다.

다시 천천히 걸어 오르니 예전에 멋진 꿈을 꾸며 만들었을 조립식 멋진 민가 한채가 이제는 폐가가 되어 덩그런히 남아 있어 마음이 아파오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폐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파란 물통이 나타나고 그 물통을 지나 잡목과 가시지대를 헤치고 오르니 짧은 절개위 103봉에 도착을 해 잡목 사이로 주위 풍경을 살펴 본다.

진행 방향으로 드넓은 잔디 밭 위로 당성과 구봉산이 지척으로 올려다 보이고 이제 그 봉우리를 조심해 내려 와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또 다시 지나온 등로와 아파트 지나 저 멀리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스라히 추억으로 남겨지고 있다.


그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는 밭 경작지가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출입을 막고 있는 그물망이 쳐져 있다.

임도 좌측으로는 드넓은 초지지대를 지나 당성과 구봉산이 아름답게 올려다 보인다.

이제 비포장 임도는 좌측으로 꺽여 구봉산 갈림 삼거리 방향으로 이어지고 그곳에도 우측으로 파란 그물망이 쳐져 있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그 비포장 임도 끝자락에는 지독한 잡목지대가 나타나는데 여름철엔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는 곳 한쪽에 작은 등로가 열리고 그곳을 통해 낙엽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오늘 처음으로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최근에 바위로 쌓은 듯한 드높은 당성이 나타나는데 도저히 오를수가 없어 그 당성을 타고 우측으로 오르니 이제 막 공사를 하고 있는 지점에 도착해 이제부터 그 당성 위 등로를 타고 갈림삼거리로 올라가 본다.

당성 주위에는 벌목된 등로가 잘 열려있어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올라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화성 당성은 삼국시대에 축성된 대규모 산성으로 둘레 약 1200미터에 높이 3미터 규모로 백제시대에 축조된 뒤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하자 이중 외성의 복합식 산성으로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성지와 고려시대의 망해루로 추정되는 건물터에 초석들이 남아 있는데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의 화성시로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중요한 교통로 구실을 했다.
또 신라 후기에는 이곳에 당성진을 설치해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중요한 근거지였던 곳이다.


넓은 당성 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당성산성을 정비하기 위한 작업이 한창 진행중인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새 구봉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는데 이정표가 땅바닥에 떨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언젠가는 다시 한번 더 올라 등로 좌측의 구봉산을 지나 살고지로 가는 등로를 따라 걸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보지만 언제 가능할지 기약이 없기에 잠시 구봉산 정상만 다녀 오기로 한다.


구봉산 정상 방향으로 걸어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금새 구봉산 정상부에 도착을 해 등로 우측 방향의 풍경과 조망을 즐겨 본다.

바로 발 아래 송산면 칠곡리 마을 뒤로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태행지맥 마루금인 이봉산과 와룡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가 한눈에 들어 오고 그 좌측 끝자락에 서해바다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많이 걸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오늘 산행의 반 정도를 걸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본 후 구봉산 정상부를 사진에 담아 본다.

나뭇가지 위에 158.6미터의 구봉산 정상 이정판이 붙어 있고 그 아래에는 벤취 쉼터와 망해루지(추정) 설명판도 보이고 그 앞으로는 기왓장들이 쌓여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구봉산(158.6봉)은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전곡리 및 칠곡리와 송산면 육일리에 걸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158.6미터로서 삼국 시대 성곽인 당성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자세한 내력이 기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고구려 영유왕 때 당나라로부터 8학사가 왔는데  그 가운데 홍씨 성을 가진 학사가 이곳에 살아서 당성후가 되고 이후 당성 홍씨(나중에 남양홍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또 고려 초에 성을 쌓았는데 조선 성종 때에 과수원으로 바뀌어 장원서 관할에 두었으나 이후에 과수원은 폐지되고 성도 거의 폐허로 변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이곳에는 또한 화성 당성이 있는데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남양반도의 서신, 송산, 마도면의 경계가 교차되는 중심부 가까이에 위치한 해발 165.7미터인 구봉산 정상부와 동향한 계곡 및 서남쪽 능선에 성벽이 구축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북서쪽으로 화량진성, 북쪽으로 해운산봉수, 서남쪽으로 염불산봉수, 남쪽으로는 백곡리산성, 청명산성 등 넓은 지역이 조망된다.
성벽은 축성시기를 달리하는 2중의 성벽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중 가장 먼저 축성된 성벽은 구봉산의 정상부에서 봉화산으로 뻗는 남서능선을 따라 테뫼식으로 축조된 삼국시대 성벽으로 둘레는 363미터이며 외벽높이는 4에서 5미터이고 상면에는 2네서 3.5미터의 회곽도가 조성되어 있다.
최근의 발굴조사에서는 북쪽에서 동쪽으로 꺾어지는 부분이 확인되었는데 장방형의 화강편마암 성돌로 쌓아올렸으며 기단외면에 보축을 하여 성벽의 안정성을 도모하였다.
성내에서는 단각고배류와 토기 등 6에서 8세기대의 유물들이 주로 출토되었다.
두 번째 성벽은 이 성벽의 중간부를 관통하며 구봉산 동북쪽 능선을 따라가다가 동남방향의 산복부를 감싸안은 장방형의 포곡식성벽으로 지금까지 이 성벽이 내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발굴조사 결과 정상부의 테뫼식 산성의 협소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통일신라 말기에 신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동북쪽 능선과 서북쪽, 서남쪽 능선을 따라가며 작은 외성이 설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며 서남쪽 외성에서는 남양장성이라 불리우는 토루가 연결되고 있으나 정확한 축조시기는 알 수 없다.


이곳 태행지맥은 신산경표에 보이는 오늘 이 산객이 진행할 전곡항 방향이 있고 이곳 구봉산을 지나 살고지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또 하나 존재하며 굴고개 지나기 전 진행되는 세가지 마루금이 있기에 언제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을 하지만 기약이 없기에 이곳 구봉산에 잠시 들렸다 가기로 한다.

그곳 구봉산에서 이제 출발하려고 내려가다 갈림삼거리 방향을 살펴보니 그 삼거리 뒤 저 멀리 육일리 마을과 안산쪽 마을도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송산면 마을 뒤로 이제부터 걸어 가야 할 태행지맥 마루금이 끊어질 듯 이어져 가는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제대로 된 산은 보이지 않고 구릉같은 풍경들만 이어져 있다.

그래도 그 나즈막한 산줄기를 따라 이어져 저 멀리 서해바다로 그 맥이 잠기는 풍경은 언제 어느곳에서 봐도 아름답고 희열이 샘솟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많은 구경을 했으니 그곳 구봉산 정상을 출발해 갈림삼거리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내려가다 등로 우측 앞을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의 아파트와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렇게 풍경을 즐기며 걸어 내려 와 갈림삼거리에서 이제 우측 올라온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마루금을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지나 온 구봉산 정상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본 후 당성 좌측으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갈림삼거리를 내려가니 다시 뚜렷한 평이한 등로가 열리고 금새 벤취 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곳도 지난다.

그곳을 지나 등로 좌측 묘지들 넘어 보이는 태행지맥 마지막 마루금을 살펴 본 후 걸어가니 잠시 후 무명안부를 통과한다.


무명안부를 지나 오르니 비포장 임도같은 넓은 낙엽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47번과 77번의 송전탑을 통과한다.

그 송전탑을 지나 걸어가니 또 다른 무명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니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129.4미터 봉에 도착을 한다.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그 129.4봉을 지나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걸어가니 소나무와 활엽수가 섞여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후 벌목된 등로로 내려가는데 살펴보니 이곳 역시 최근에 등로를 잘라 공장 건물들을 세운 풍경들이 나타난다.

발 아래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 지나 진행방향의 마루금도 살펴보니 생각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벌목되어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랐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콘크리트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를 타고 내려가니 최근에 생긴듯한 새로운 공장 건물 마당으로 내려서고 그 마당을 지나 걸어가니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포장도로 옆에는 방금 전 지나온 공장건물이 대한피에스라는 입간판과 그 도로 건너편에 이곳이 칠곡리 옻골마을임을 알리는 이정석이 보인다.

칠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인데 옻나무가 많았으므로 옷골이라 부른데서 칠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양지말, 속말, 응짓말, 큰말 등이 있는데 양지말은 산을 등지고 정남향으로 되어 있어 온종일 햇볕이 드는 따뜻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속말은 옻골 동쪽 속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큰말은 옻골의 큰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 칠곡리 이정석이 있는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타고 올라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어렵게 내려 온 절개지와 대한피에스 건물 그리고 그 앞으로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잠시 옥수수 밭을 지나 걸어가니 나무 능선 우측으로 검정천이 쳐진 풍경이 눈에 들어 오는데 그곳 능선을 따라 잡목을 헤치고 걸어가니 금새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고 있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포도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포도밭 사이로 보이는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며 등로 우측을 내려다 보니 포도 과수원 넘어 육일리 마을이 아름답고 평화롭게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송산면 마을들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기 직전 우측으로 많은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잠시 그곳으로 가 준비한 빵과 과일로 간단한 점심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점심식사 후 등로 우측의 송산면 마을을 내려다 보이는데 송산면은 충청남도 당진군의 북부에 위치하며 남양만과 접하고 있는 면인데 조선 시대 면천군 지역으로 1914년 송산면, 감천면, 창택면을 통합하면서 송산면으로 정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면사무소가 있는 상거리를 비롯하여 가곡리, 매곡리, 유곡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송산 지명은 상거리, 매곡리, 삼월리에 걸쳐 있는 높이 50미터 정도의 솔 모양으로 생긴 소타뫼(송산)의 이름에서 유래한다고 전하며 여지도서에 의하면 송산면은 소산리, 초택리, 거산리 등 5개 리와 감천면은 곶내리, 창택리, 산북리의 3개 리를 관할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북창, 선박처, 어장, 창택봉대, 목장 등이 1872년지방지도에는 오도, 포소, 창택산, 북사창 등이 묘사되어 있다.
방리 지명 중 상거리는 긔미 위쪽이 되어 윗그미 즉 상거리라 하였고 무수리는 신당이 있어 무시울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
금암리는 검고 아름다운 바위가 있으므로 검바위라고 하던 것이 변해서 금바위가 된 것이고 가곡리는 마을의 지형이 가사처럼 생겼으므로 가삿골이 되었다고 한다.
매곡리는 매전리와 은곡리를, 명산리는 명성리와 산북리를 통합한 이름이고 송산산업단지, 송산회화나무 등에서 관련 지명을 엿볼 수 있다.


간단한 점심식사 후 배낭을 둘러메고 그 묘지지대를 지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니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는 봉우리가 나타나고 곧이어 50번과 80번의 송전탑을 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 아카시아 나무와 엄나무 가시가 자라고 있는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가니 잡목이 우거져 있는 86.9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등로를 찾아 주의하며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니 금새 넓은 인삼포가 나타나고 그 인삼포 우측으로는 진행해야 할 안부 지나 능선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멋지게 펼쳐져 있다.


인삼포 우측 가장자리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콘크리트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은 중송리 웃말마을이다.

중송리 웃말마을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바닷가에 인접하였으나 시화방조제 준공으로 내륙지역이 되었다.
마을 주변에 노송이 우거져 소나무 가운데 있는 마을이라 하여 중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뒷골, 솔뫼, 못골 등이 있는데 뒷골은 마을의 지형이 소가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하고 특히 이 마을이 소의 꼬리 부분에 위치해 있다 하여 뒷꼬리라 부르다가 붙은 이름이고 솔뫼는 소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그 시멘트 안부를 지나 오르니 다시 포도 과수원이 나타나고 그 과수원 좌측 가장자리를 타고 걸어가니 금새 또 다른 51번과 81번의 송전탑을 지난다.

송전탑을 지나니 얼마전 식재된 듯한 나무들이 보이고 벌목된 장소를 타고 앞에 보이는 능선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진행을 한다.


공사중인 벌목지대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진행해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잠시 후 참나무가 보이는 78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키 작은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본다.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새로 생긴듯한 많은 공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한동안 그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잠시 후 53번과 83번 송전탑이 서 있고 묘지지대를 지나 절개지 위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절개지 위 무명봉에서 정상 마루금을 타고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등로 좌측의 발목 후 호두나무를 식재해 놓은 과수원을 타고 내려가니 등로 우측 능선 방향으로 잡목이 사라지고 그곳을 통해 정상 마루금 방향으로 걸어간다.

쓰러진 나무와 잡목들을 헤치고 어렵게 걸어가니 선답자의 띠지 하나가 반갑게 걸려 있고 곧이어 거대한 공장 건물 안 마당으로 들어가는데 그 마당을 나와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다 공장 건물을 보니 이곳은 디컴이란 회사이다.


그 디컴이란 회사를 나와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필텍코리아라는 회사 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밀레니엄 엔터프라이즈 공장 앞에서 우측으로 꺽어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반대쪽에 신창산업이 나타나고 좌측으로 꺽어 내려가니 스위스 모텔 간판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내려가니 두영금화피엘이라는 공장 건물이 서 있는 322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아미지고개에 도착을 한다.

아지미고개(322번 포장도로)는 사강리에 있는데 사강리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전에는 이 곳까지 조수가 드나들었으나 시화방조제 준공으로 내륙지역이 되었다.
마을 앞 까지 조수가 출입하고 바다와 연결된 강에는 모래가 많았다 하여 사강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안사강, 바깥사강, 정도, 저구말 등이 있는데 사강은 마을이 산등성이를 두고 남북으로 갈라져 있어 사강 안에 생긴 마을을 안사강, 밖에 생긴 마을을 바깥 사강으로 나누어 불렀다.
정도는 조선 때 양반에게 불손한 상민은 볼기를 맞고 정을 쳤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고 저구말은 전에 갯물이 드나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 아미지고개를 지나 322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중송1리라는 이정석과 안내판이 보이고 이곳에서 도로를 건너 앞에 보이는 굳게 닫혀 있는 철대문 앞으로 가니 그곳에는 송산면 사강리와 안양목장 이정판이 걸려 있다.

그곳 안양목장으로 들어가니 도강아지 한마리가 격하게 환영을 해 안양목장이 아닌 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우회 도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안양목장 방향으로는 출입을 금지하는 철망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안양목장을 좌측에 두고 우측 우회 등로를 찾아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지도상에 69.9 삼각점 표시가 되어 있어 찾아 보지만 찾지 못하고 그 무명봉을 내려간다.

내려가니 눈 앞에 거대한 초지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그 초지 좌측으로는 지나온 안양목장 건물이 우측으로는 거대한 젖소목장 건물이 보인다.

그 초지지대를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오르니 많은 묘지들이 보이고 그 묘지를 지나 우측으로 진행을 하니 고사목과 잡목이 우거진 등로가 이어진다.

어렵게 그 잡목과 고사목을 피해 오르니 다시 지독한 잡목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74봉에 도착을 한다.


그 74 무명봉을 지나 우측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등로를 어렵게 찾아 내려가니 개성옥공묘지가 보이고 곧이어 여름철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죽은 잡풀이 무성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방금 전 봤던 거대한 젖소 목장 건물들이 내려다 보이고 다시 묘지지대를 지나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또 다른 공장 마당으로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다.


플라스틱 수로를 타고 키 작은 소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 절개지를 타고 내려가 공장 마당으로 내려가니 그 마당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이어지고 있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진행을 하니 한남정밀과영진유리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이곳은 송산로이다.

그 송산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니 인애농원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도로 건너 인애농장 들어가는 시멘트 포장도로 입구도 보인다.


인애농원 앞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도로 좌측에 중송2리 뒷골이란 이정석이 서 있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 농장쪽으로 걸어 오르며 이제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걷게 된다.

잠시 걸어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는 비포장 임도로 변하고 등로 좌측으로 배와 포도를 재배하는 승명농원 입간판과 건물 그리고 과수원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보이지 않는 인애농원이 존재한다.


과수원 우측 등로를 타고 오르니 그물망이 나타나고 그 그물망을 통과해 오르니 콘크리트 말뚝들이 널부러져 있는 57.7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그 57.7봉 정상을 출발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드넓은 포도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그 포도 과수원 우측 가장자리를 따라 산행을 이어가 본다.

잠시 내려가다 앞을 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태행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다시 한동안 그 포도 과수원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이제 등로는 포도 과수원 한가운데로 나 있고 잠시 후 인애농원에서 헤어졌던 2차선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이제는 우측으로 그 도로를 따라 걸어 본다.

잠시 걸어가다 보니 등로 우측으로도 많은 비닐하우스가 보이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 비닐하웃 역시 포도 과수원이다.

그렇게 주위를 구경하며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갑골꿀포도농원 입간판을 만나고 바로 각골입구 버스정류장을 만난다.


각골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좌측으로 비포장 임도가 보이는데 이제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그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본다.

비포장 임도로 들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포도 과수원이 보이고 그 과수원 건너편에 천등산목장이 내려다 보인다.

잠시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오르니 콘테이너 박스를 지나 드넓은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한쪽에는 매화라 생각되는 과수원이 나타난다.


그 벌목지대를 타고 걸어 오르니 매화 식재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고 곧이어 제법 굵은 자작나무 조림지로 이어진다.

한동안 그 자작나무 조림지를 따라 오르니 잡목이 우거진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55 무명봉으로서 이제 이곳에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하게 된다.

그 55봉을 지나 진행을 하니 지독한 잡모과 가시나무 지대가 펼쳐지고 어렵게 그 등로를 통과항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시나무 지대를 지나니 지독한 잡목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곳으로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우측 건물 위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잡풀이 무성했다 말라죽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 커다란 공장 건물이 보이고 그 뒤로 마산리 마을이 멋지게 다가온다.

그 넘어로는 서해바다와 안산쪽 산줄기도 보이기 시작하며 새로운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다시 그 커다란 건물 뒤를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지독한 잡목 등로가 열리는데 누군가 등로를 만들어 놨기에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살펴보니 지독한 잡목속에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지도상 76.6봉 정상이다.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엄나무 가시 등로를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키 작은 잡목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많은 묘지들이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이제 앞으로 진행 예정인 태행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져 있다.

살펴보니 남양홍씨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고 금새 322번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그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 본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마산1리 포도마을이란 이정석이 서 있고 찾아보니 마산리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서해안과 인접하여 삼면이 바다와 인접하였으나 시화방조제 준공으로 내륙지역이 되었으며 산의 형세가 말의 모습 같다 하여 마산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갓마루, 도말, 장문 등이 있는데 갓마루는 마산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지형이 마치 갓을 쓴 것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도말은 마을의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물이 깨끗하여 선비들이 몸과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이 곳을 자주 찾았다는 데서 붙은 이름이다.
장문은 옛날에 서신면 전곡리 앞 바다에서 이곳까지 좁고 긴 갯골이 나고 또한 포구가 있어 배가 자주 드나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마산2리 포도마을이란 이정석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마산1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좌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제 우측 직진으로 가는 322번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좌측으로 걸어 들어가니 들어가자 마자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한가운데에 우측으로 장문마을 가는 방향 표시와 함께 이정석이 서 있다.

그곳 우측으로는 태경테크라는 커다란 공장 건물이 있는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간다.

잠시 더 걸어가니 태경테크 좌측으로 우성이엔지 공장이 보이고 곧이어 나타나는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보이는 갈림 삼거리에서는 우측 오르막 도로를 타고 걸어간다.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파란 물통이 서 있고 바로 위에는 포도 과수원을 만들고 있는 농부 한분이 일을 하다가 배낭을 메고 지나는 이 산객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 마지막 포도 과수원을 지나 나타나는 전봇대 앞에서 좌측 잡풀이 자랐다 말라죽은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보이고 곧이어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는데 금새 43 무명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그 43 무명봉에서 좌측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잠시 낙엽진 멋진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그물망 등로로 바뀐다.

등로 우측으로는 낡은 지붕을 하고 있는 축사라 생각되는 건물들도 내려다 보이는 나즈막한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간벌된 잡목 더미들이 몇군데 쌓여 있어 진행에는 튼 어려움이 없다.

다시 이어지는 멋진 낙엽 등로를 따르니 금새 등로 좌측에 민가들이 보이는 고추를 심었던 밭 위로 떨어지는데 그곳에서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이봉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고추밭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이곳 역시 온통 비닐하우스로 되어 있는 포도 과수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민가 뒤 1차선 포장도로 위로 걸어 가 녹색 철망을 우측에 두고 조금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 직진으로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간다.

잠시 걸어가니 밭 한가운데에 비닐하우스 포도 과수원이 펼쳐져 있고 그 사이의 고랑을 통해 진행을 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를 만난다.

이제 좌측에 비닐하우스 포도 과수원을 두고 우측에는 나즈막한 야산을 두고 앞에 보이는 비닐하우스 포도 과수원 방향으로 걸어 내려간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임도 우측에서 합류하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이제부터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본다.

도로 좌측으로 드넓은 비닐하우스 포도 과수원과 우측으로 민가를 두고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갈림 삼거리에는 우측으로 황해농원 가는 이정판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장문(황해농원) 버스정류장이 서 있다.

살펴보니 마산리 장문 마을로서 지도 우측으로 22.7 삼각점봉이 나타나 있기에 잠시 그 삼각점을 만나보고 출발하기로 한다.


직진의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의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츠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잘 가꿔진 포도 과수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포도 과수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니 그 포도 과수원 한가운데가 22.7봉으로 삼각점이 있어야 하지만 이미 오래전 포도 과수원으로 변하면서 삼각점도 사라지고 22.7봉이란 의미도 사라진 듯 보인다.

다시 포도밭 사진 한장 남기고 장문 버스정류장 방향으로 뒤돌아 나간다.


다시 장문 버스정류장으로 뒤돌아 나오는데 그 갈림 삼거리 직전 우측으로 조원농산이란 이정석도 서 있다.

이제 그 장문 갈림삼거리로 나와 이제는 우측으로 꺽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본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제법 큰 창고 건물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옹진농원 이정판도 보인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마산리 장문마을의 민가들 사이로 걸어가니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원 마루금은 좌측으로 올라 나즈막한 능선을 타고 걸어가야 하지만 큰 의미가 없어 보이기에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기로 한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공사장이 그리고 직진 앞으로는 올라야 할 이봉산이 올려다 보인다.

도로 좌측 공사장 위로는 잡목이 우거진 원 마루금이 지나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오는데 아쉬움보다는 큰 의미가 없음으로 위안을 삼아 보는 시간이다.

이제 도로 우측으로는 잡풀이 자랐다 말라있는 공터를 지나 마산리 들판과 마을들이 평화롭게 내려다 보인다.

지나 온 방향 옆으로는 거대한 농장인지 목장 건물들도 보이고 그렇게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걸어가니 또 다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가운데에는 비닐하우스가 보인다.


이곳에서도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야 하지만 큰 의미가 없기에 우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기로 한다.

이제 임도 좌측으로는 원 마루금이 바로 근처로 와 있고 약간의 잡목과 잡풀들이 자라고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공터를 지나 원 마루금과 만나는 나즈막한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이제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니 불법행위 근절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안내판 좌측 비포장 임도를 타고 이봉산 정상부로 향한다.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임도는 능선 우측 밭 경작지 가장자리로 이어지고 등로는 직진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이어질 듯 한데 들어가는 흔적이 없어 계속 비포장 임도를 따르니 금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좌측 능선 방향의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한다.

안부를 지나 계속 오르니 금새 이봉산(105.7봉, 삼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맨발님의 정상판과 그 아래 삼각점이 보인다.

이봉산(삼봉산, 105.7봉)은 원래 마산이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이유는 이 이봉산 동쪽 아래 동네인 마산리에서 봤을 때 산의 형세가 말의 모습과 같다고 하여 생긴 명칭이다.
여러 지도에는 삼봉산이라 표시된 곳도 많지만 화성시의 거리명이나 국토지리정보원 자료에는 이봉산으로 표기되어 있으니 이 산객도 이봉산이라 부르기로 한다.

오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셀카 놀이를 하면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곳에서 남아 있는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하기로 한다.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좌측으로 급하게 휘어지며 내려가는데 잡목이 우거져 있고 쓰러진 나무들이 많아 진행에 큰 어려움을 느낀다.

이리 찔리고 저리 찢겨지며 너무나 힘들게 내려가니 초계정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곳부터는 조금 넓은 뚜렷한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간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다시 2차선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그 도로 옆에는 지화리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지화리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포구가 있던 곳이었으나 시화방조제 준공으로 내륙지역이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거지, 화량, 방죽머리 등이 있는데 거지는 지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인근 마을 중 가장 먼저 부락이 형성되었던 곳으로 구한말 때는 거지동으로 불렸다.
화량은 화량진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방죽머리는 마을 앞에 방죽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거지와 화량의 이름을 따서 지화라는 명칭이 생겼다.


그 2차선 포장도로에서 도로를 건너 반대쪽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를 찾아 보니 찾을 수 없어 잠시 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오르는 능선을 확인해 본다.

도로 우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엠케이티라는 공장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도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 철망이 나타나는데 그 철망 옆으로 희미한 등로가 열려있다.

그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넓고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등로를 지나 나무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109.7미터의 승학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승학산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이곳 역시 준.희님의 정상 이정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내려간다.


승학산을 출발해 완만하게 내려가니 소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잡목등로가 나타난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마산리 지나 서해바다가 보이고 그 넘어로는 제부도도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잡목과 가시나무를 헤치며 걸어 내려가니 묘지 한기를 지나 진행 방향의 도로로 이어지는 태행지맥 마루금과 그 좌측으로 마지막 봉우리인 와룡산이 빼꼼히 올려다 보인다.


진행 방향을 조망한 후 내려가니 금새 다시 헤어졌던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송산블루베리 농장으로 가는 안내판이 서 있고 그 옆으로는 화랑교회 버스정류장이 서 있다.

그곳 버스정류장을 지나 걸어가니 도로 위 저 멀리 화랑감리교회가 올려다 보이고 그 교회를 향해 걸어 본다.


완만하게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고 이제 도로 우측으로는 화랑감리교회가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며 앞을 보니 도로 좌측 앞으로 오늘 올라야 할 마지막 봉우리인 와룡산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콘테이너가 보이는데 그곳에는 지화2리 꽃다리마을이란 이정표도 보여 이곳이 지화리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지화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지화2리 마을화관을 통과하니 지화2리입구 버스정류장이 나타나고 곧이어 저 멀리 와룡산으로 이어지는 등로와 그 우측으로 민가들 그리고 그 뒤로 와룡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등로 우측으로는 사화간척지와 탄도호 넘어 제부도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데 저 제부도는 몇번 들려 그곳에 있는 산들을 모두 올라 봤기에 그때의 추억에 젖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 민가들이 있는 곳에서 포장도로도 끝이나고 이제부터 비포장 임도를 따라 와룡산 방향으로 걸어 오르게 된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고갯마루 정상부에 녹색 철망과 철문이 잠겨져 있는 갈림사거리인데 이곳에서 우측 등로를 타고 와룡산으로 향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오르다 뒤돌아 보니 그곳에도 포도 과수원이 보이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그 공터를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일반 숲 능선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벌목 후 소나무들이 식재된 등로로 변하고 있다.

이제 오늘 산행도 막바지에 들고 있음을 직감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태행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와룡산 오르막 벌목 소나무 식재지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송산면 칠곡리 들판 뒤 저 멀리 오늘 걸었던 중앙부의 구봉산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온다.

칠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에 있는 마을로서 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인데 옻나무가 많았으므로 옷골이라 부른데서 칠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양지말, 속말, 응짓말, 큰말 등이 있는데 양지말은 산을 등지고 정남향으로 되어 있어 온종일 햇볕이 드는 따뜻한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속말은 옻골 동쪽 속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큰말은 옻골의 큰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 구봉산 우측으로는 살곶이로 향하는 또 다른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데 저 산줄기를 따라 다시 한번 걸어 볼 기회가 있을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에 한동안 그 풍경을 가슴속에 남겨 본다.


칠곡리에 펼쳐진 많은 염전지대 좌측으로는 저 멀리 수원쪽 마을과 서봉지맥 마루금이 가물거리고 그 좌측으로 돌아 이곳으로 이어지는 태행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바로 앞으로는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승학산이 우뚝 솟아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마지막 힘을 내 그 벌목 후 소나무 식재지를 타고 걸어 오른다.


잠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주능선에서 와룡산은 우측 잡목사이로 올라야 하고 어렵게 그 잡목을 헤치고 오르니 잡풀이 무성한 묘지를 지나 곧이어 태행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와룡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107.8봉의 와룡산 정상에는 준.희님이 붙여 놓은 정상 이정판이 보이고 그 아래에는 깨진 삼각점이 보인다.

이곳 와룡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 봉우리이다.

이곳 역시 잡목이 우거져 보이는 것이 없기에 곧바로 와룡산 정상을 출발한다.


이제 태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와룡산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벌목 후 소나무 식재지가 펼쳐져 있어 조망하기 좋은 등로가 되어 있다.

잠시 내려가다 등로 좌측 뒤를 살펴보니 방금 전 와룡산을 향해 올라 온 마루금과 그 뒤로 승학산과 이봉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휘돌아 가며 비산비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그 승학산 우측 저 멀리에는 수원쪽 아파트 촌들도 보이는데 참으로 많이도 걸어 왔다는 생각이다.


다시 천천히 걸어가며 이제 앞으로 걸어 내려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태행지맥 마지막 산줄기가 보이고 그 넘어 시화간척지와 살곶이로 향하는 또 다른 산줄기 그리고 우측으로 서해바다와 전곡항 및 궁평항이 아스라히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추억을 남겼던 곳들이기에 그 옛 추억을 더듬으며 좋은 시간으로 되돌아 가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등로 좌측 구봉산으로부터 반 원형을 그리며 이곳 와룡산으로 이어지는 태행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고 앞으로는 서해바다가 멋진 시간에 마지막 날머리를 향해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더 내려가니 소나무 식재지가 끝이나고 낙엽이 깔린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는데 곧이어 토성 위로 오르게 된다.

그 토성 위에 올라 진행 방향인 우측을 살펴보니 바로 아래에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방향타 구실을 하고 있다.


이제부터 한동안 화량진성(남경성)을 타고 걸어가야 하기에 그곳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곳에서 등로 우측을 살펴보니 넓은 시화간척지 위에 많은 염전들이 보이고 그 뒤로 탄도호를 지나 제부도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제부도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리에 속하는 섬으로 제부도는 송교리 해안으로부터 서쪽으로 1.8 Km 지점에 있다. 해안선 길이는 5.3 Km이며 모세의 기적으로 잘 알려진 바닷길이 하루에 2번 열리는데 지금은 포장공사를 하여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고 썰물 때는 갯벌이 드러나 맛조개나 낙지를 잡을 수 있으며 서울에서도 가까워 연중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제부도는 예부터 육지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섬이라는 뜻에서 저비섬 또는 접비섬으로 불리어졌으나 조선조 중엽 이후 송교리와 제부도를 연결하는 갯벌 고랑을 어린아이는 업고 노인은 부축해서 건넌다는 의미에서 제약부경이라는 말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이 제약부경의 제자와 부자를 따와 제부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또한 옛날 옛적에 나라가 어지러워 국왕이 중국으로 이동하던 도중 배를 타기 위해서 제부도 선착장에 들렸다가 한 여인으로부터 우물에서 물을 받아 마시고 그 맛이 좋아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도 제부도는 육지에서 떨어져 있는 섬이지만 지하수가 맛이 좋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제부도의 바다갈라짐 현상은 바닷물이 빠져나갈 때(썰물) 주위보다 높은 해저지형이 수면 위로 자연스레 노출되어 마치 바다를 양쪽으로 갈라놓은 것처럼 보이는 자연현상으로 우리나라와 같이 조차가 크고 해저지형이 복잡한 곳에서 볼 수 있다.
제부도 지역은 매일 1에서 3미터 깊이의 바닷물이 빠져나가면서 갯벌을 가르는 탄탄한 포장길이 드러나는데 자동차로도 출입이 가능해 주말이면 많은 인파가 찾는 곳이다.
조개줍기, 갯벌체험 등 많은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풍성하여 여행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다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나즈막한 봉우리 넘어 넓은 채석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살곶이 방향으로 걸어 갈 수 있는 또 다른 산줄기가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토상 위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평이한 등로로 바뀌고 잠시 후 토성을 버리고 우측 낙엽 능선으로 바뀌며 토성과 헤어진다.

화량진성(남경성)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지화리에 있는 고려시대 성곽으로 돌로 쌓은 포곡식(성 내부에 계곡을 포용하고 있는 형태) 건축물로 흙으로 쌓았던 남벽은 소실됐다.
성벽의 밑 부분에는 높이 15㎝ 정도의 큰 돌을 쓰고 윗부분에는 높이 12, 9, 10㎝ 정도의 비교적 얄팍한 돌을 사용하였다.
현재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에서 살펴볼 때 11겹으로 쌓여 있는데, 29×20×6㎝, 21×14×6㎝, 63×17×13㎝ 정도의 다듬지 않은 막돌을 사용하였다.
북벽으로부터 11미터 떨어진 곳에 폭 2.2미터의 해자가 있고 해자 밖으로 상단부의 폭이 1.8미터인 망루가 있으며 성 내부에서는 우물 1곳에 발견되었다.
발견된 유물로는 특히 기왓조각이 많으며 자기류도 있는데 기왓조각은 투박한 조선시대의 것들이 많고 조선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백상감의 마상배 청자조각도 발견된다.
발견된 유물을 통해 고려말 이후의 산성으로 추정된다.


이제 그 통성과 헤어져 우측으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녹슨 철조망을 만나는데 이리 저리 살펴보니 그 한쪽에 개구멍이 보인다.

어렵게 그 개구멍을 통해 그 녹슨 철조망을 통과한 후 지독한 잡목지대를 뚫고 내려가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해 길고도 멀었던 비산비야를 타고 태행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그 2차선 포장도로 건너편으로는 시화간척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서해바다도 보이는데 이제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가 본다.


잠시 더 그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비포장 신작로가 나타나고 그 신작로를 타고 우측으로 들어가니 다시 신작로는 좌측으로 꺽여 전곡1교 방향으로 이어진다.

잠시 더 우측에 큰 개울을 두고 걸어가니 전곡1교가 나타나는데 그 다리를 건너 진행하니 그곳에는 차량 통행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다.


전곡1교를 지나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방금 전 봤던 거대한 채석장 방향으로 석산입구, 현석산업개발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대형 트럭들이 통행하며 먼지를 날리고 잠시 후 포장도로를 만나 걸어 가 본다.

다시 한동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전곡1교를 건널 수 있는 우회 도로로 통하는 우회도로가 보이고 그곳에는 산을 품은집과 애니랜드 하하숲체험파크 안내판도 서 있다.


계속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제부도가 보이고 바로 눈잎으로는 301번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곳 도로를 건너니 한주건영이라는 건물이 보이고 그 앞에는 셔틀버스 임시정류장이라는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이곳 전곡리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마을로서 구봉산 앞 골짜기에 있는 마을인데 산 앞 골짜기에 있다하여 앞실이라 한데서 전곡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노가리, 무두리, 은쟁이 등이 있는데 노가리는 갈대꽃이 많이 피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고 무두리는 갯물이 드나들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은쟁이는 산이 둘러싸서 숨은 것같은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이곳에서 한동안 버스를 기다려 보지만 언제 버스가 올지 몰라 지나가는 차량을 히치 하이킹해 보기로 하는데 역시나 쉽지 않다.

그래도 트럭 한대가 세워주고 어렵게 그 트럭에 올라 장외리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잠시 후 버스를 이용해 남양사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젋은 트럭 운전사의 도움으로 전곡리에서 장외리로 이동한 후 장외리앞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리니 금새 330번 버스가 도착을 하고 그 버스에 올라 쉽게 남양사거리로 이동을 한다.

장외리는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에 있는 마을로서 마을 바깥쪽으로 낮은 산이 둘러져 있다.
지형이 담처럼 생겼으므로 담밖 이라 한데서 장외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계골말, 수풀안, 오얏골 등이 있는데 수풀안은 마을 앞에 숲이 많아 붙은 이름이고 오얏골은 오얏나무가 있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그곳 남양사거리에서 지난 번 이용했던 1002번 버스를 타고 사당으로 와 지하철을 이용해 편안하게 집으로 복귀한다.

이렇게 겨울이 아니라면 진행이 어려워 보이는 태행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조만간 근처를 지나는 한남오두지맥 마루금을 타고 걸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겨울이기에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나즈막한 산줄기로 이루워진 마루금을 따라 많은 맥 잇기 산행을 마치고 무더워지는 여름철엔 고도가 높은 강원도와 경상도쪽 산줄기로 향하기로 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