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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해룡지맥(독조·완)

해룡지맥 제1구간 큰바래기산 분기점에서 아미사거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6. 3.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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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기도 이천시 해룡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6년 03월 01일 (화요일 삼일절 휴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등로에 많은 눈이 쌓여 있었지만 하루 종일 맑고 약간 추웠던 산행 날씨

산행온도 영하 06도에서 영상 04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고은터널 앞 하노버 승마장-하노버 승마장 건물-비포장 임도-능선진입-묘지2기-독조지맥 마루금 합류-바위봉-붉은 우체통봉-해룡지맥

                 분기점(큰바래기산, 414.1봉)-강아지바위-마국산(445봉, 마옥산, 오운봉)-두미리 갈림 이정표-바위 암릉구간-돌탑봉(현위치 1.4 헬기장중간)-

                 벤취쉼터2봉(바위와 소나무)-헬기장(산내리 갈림 이정표)-벤취 쉼터 2-두미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무명안부-바위 암릉에 벤취쉼터 2개-

                 권균묘역 갈림 삼거리 이정표-259.5봉-250.3봉-무명안부-두미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와 벤취 쉼터2-265 통나무 벤취봉-마오산(275봉)

                 이정표와 벤취쉼터 2-무명안부-소고3갈림 삼거리 이정표-235 벤취 쉼터2봉-ㄱ자 벤취 쉼터 2-돈님이고개-바위 위 돌탑봉-264.4 돌탑봉-

                 무명안부-253무명봉-매봉재고개-모산(258.3봉, 매봉재, 헬기장 위 삼각점)-무명안부-안성이씨 가족 납골묘지-큰고개(2차선 포장도로) 이정표-

                 (주)동양, 명성타워와 명성물류-383번 합류 도로표지판-산내리(산안) 삼거리(산내리입구 버스정류장)-모가면 사무소 갈림 삼거리(329번 2차선

                 포장도로 따라 종합운동장 방향)-진가리 갈림 도로 표지판-진가2리 이정석-호정기업-유니가구갤러리-진가리와 양평리 갈림 사거리 도로-

                 양평리(장수마을) 이정석-이천 방향 329번 갈림 도로 표지판-이천과 남이천 IC갈림 삼거리-자채방아마을 3.5 Km 이정판-평화철강과 세림강업

                 이정판-효자요산리선생묘소입구 이정석-호성산업과 서진 이정판-흥일가구-미리내 이천수도원농장 이정석-엠코리아씨스템-양평리(구은들)

                 이정판-(주)주형-군량2리 도로 표지판-이천마이다스GC 도로입구-파란로지스와 기호가설산업-젖소농장-소사리 갈림 도로 표지판-비전

                 폐차장-상원목장과 상원농장-신광자원-양무리마을과 양무리교회 이정판-두레영농조합법인(345번 2차선 포장도로와 이별하고 시멘트

                 포장도로) 이정판-밭 경작지와 마국산 조망-인삼포-두레영농조합법인(배누리작목반 미생물발효장)-흥일농원-젖소목장-과수원-KL

                 젖소목장(진상미로)-비포장 임도-파란물통 2-넓은 밭 경작지-시멘트 포장도로-육군항공작전사령부 철조망(좌측)-철조망 농로-크레모아

                 이정판-시멘트 포장도로-다리통과(시냇물)-소고공공하수처리장-소고1리 버스정류장(383번 2차선 포장도로)-소고리 갈림 삼거리 도로표지판-

                 민속토종닭 간판-소고교-제2850부대 표지판-하늘공원 이정석-부대앞 버스정류장-코리아 오일뱅크 주유소-남도아크릴-오리온 이천공장-

                 대포동석조여래입상-금강 오일뱅크 주유소-항공작전사령부 도로입구-이천 테르메덴 온천리조트 1.5 Km 이정판-70번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

                 (천주교 어농성지)-대포삼거리 버스정류장-신갈리(갈미) 이정석-농업테마공원 4 Km 이정판-시멘트 포장도로(70번 포장도로와 이별)-삼부텍

                 갈림 삼거리-콘크리트 다리-심정 건물-밭 경작지-능선진입-진천송공 묘지지대-비포장 임도-능선진입-묘지지대-정명정 합류등로-잡목지대-

                 항공작전사령부 철조망-정명산(정오산, 168.1봉, 군부대 건물)-무명안부-잡목지대-무명안부-143 무명봉-벌목지대-벌목후 소나무 식재지-

                 점심식사-우주건설 킹스타운 분양 사무소 건물들-갈림 삼거리(우)-녹색 철조망지대-공터(우아미가구 공단지대)-만석고개(2차선 포장도로)-

                 원형 개인벙커-LG실트론 갈림 삼거리-무명안부-171.8 무명봉-무명안부-원통산 갈림 삼거리 안내판-삼육요양원-메타세콰이어 등로-철조망

                 등로-178 벤취 쉼터 2봉-벤취 쉼터2와 족구장-약수터와 고담저수지 이정표-나무계단-교통호-해룡산절터 갈림 이정표-벤취쉼터3과 탁자-

                 해룡산(201봉, 헬기장)-대흥리 갈림 이정표(절터골 방향)-이정표(대흥리 1.6 Km)-작은 돌탑봉-171 벤취쉼터봉-바위등로-아파트 단지와 벤취

                 쉼터2-벤취쉼터1-통나무계단-해룡산 등산로 안내판-이정표(대흥리와 소터골)-3번 2차선 포장도로(SK 하이닉스 사원 아파트 공사중)-능선

                 진입-SK 하이닉스 사원아파트 공사담장-녹색철조망-112.4 무명봉-무명안부-113 무명 삼각점봉-무명안부-현대 I PARK 아파트 후문-현대

                 I PARK 아파트 정문-현대사원아파트 버스정류장(80번 종점)-영동고속도로 통과 육교-SK 하이닉스 사원 주차장-현대사원아파트 버스정류장-

                 현대아파트-현대3차 아파트 버스정류장-아미사거리(지맥산행종료)-현대엘리베이터공장-SK 하이닉스 버스정류장-아미타운삼거리-3번 6차선

                 포장도로 통과-SK 하이닉스 버스정류장-행종료

산행거리 : 약 25.48 Km (해룡지맥 산행 약 25.00 Km와 아미사거리에서 SK 하이닉스 버스정류장까지 접속구간 00.4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많은 눈과 눈이 녹아 미끄러운 등로를 타고 추운 날씨에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여 07간 37분 (07시 10부터 14 47분까)

교통편 : 대중교통을 이용해 무탈하게 진행하였음

             남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백암행 06:10 탑승 4,500.-원

             백암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로 고은터널 앞 하노버 승마장 입구에서 하차 8,000.-원 (8,400.- 나왔으나 400원 DC)

             SK 하이닉스 버스정류장에서 동서울 버스행 15:00 탑승 4,400.-원

             동서울시외버스 터미널에서 2호선 지하철로 귀가

산행횟수와 총 산행거리 : 2016-11, 197.94 Km

해룡지맥이란 ???

해룡지맥 한남정맥 문수봉(403.2미터)에서 북동쪽으로 분기한 앵자지맥이 곱등고개를 지나 5.5 Km 지점의 용실봉에서 다시 동쪽으로 e독조지맥을 가지치고 그 독조지맥은 독조봉(434미터)을 지나 약 22.6 Km를 동남진하여 큰바래가산(414미터)에서 다시 북쪽으로 한가지를 친다.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는 미국산(마옥산/445.4미터), 마오산(272미터), 모산(258.3미터), 정오산(168.1미터), 해룡산(201.2미터), 정산(131미터), 기관산(111미터)을 지나 복하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여주군 홍천면 상배리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37.4 Km에 달하는 산줄기를 해룡지맥이라 부르며 복하천의 좌측 분수령이 된다.





도심화 되어버린 비산비야의 또 다른 마루금을 찾아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몸소 체험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2월 마지막 주말에 홀로 오갑지맥으로 내려가 무탈하게 마무리한 후 옆지기와 잠시 바람이라도 쐬고 싶어 여행을 제안하지만 무엇이 그리 바쁜지 아들이 휴가를 나왔다 들어가는 3월 중순까지는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는 소식이다.

월요일 하루 일을 하고 화요일은 다시 삼일절 휴일이기에 어디를 갈까 고민하다 그나마 눈이 많이 내렸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던 이천으로 내려가 해룡지맥 한구간을 걸어 보기로 한다.

처음 진행하는 마국산을 제외하면 제대로 된 산도 없는 도로를 걸어가는 시간이 많아 고생이지만 어짜피 한번은 걸어야 할 마루금이기에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마무리 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산행 준비를 해 본다.


근래 들어 자주 이용하는 시외버스를 이용하여 다녀 오기로 하고 자료를 찾아 보니 남부터미널에서 백암으로 가 택시를 이용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경제적으로도 가장 합리적이란 생각에 산행 준비 후 새벽 일찍 집을 나서는데 옆지기가 남부터미널까지 배웅을 해 준다기에 그저 감사한 마음 뿐이다.

새벽 6시 30분 버스를 예상했다가 첫차인 6시 10분 버스로 편안하게 백암으로 이동을 하고 집에서 아침까지 챙겨 먹었기에 곧바로 택시를 이용해 고은터널 앞 하노버승마장 입구에 내리니 택시비가 8,400.-원인데 400.-원을 깍아 8,000.-원만 받는다.

큰 금액은 아니지만 택시 기사님의 마음씀이에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이었다.

다만 산행 준비 후 고은터널 우측의 눈 덮힌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는 시간은 생각보다 춥고 강한 바람이 불어 와 눈길 산행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하고 있어 약간은 고민도 해 보는 시간이었다.


생각보다 많이 쌓여있는 눈길을 헤치며 추위를 이기려 홀로 빠르게 진행하다 보니 해룡산 정상에 도착을 했는데도 시간은 이제 오후 1시 40여분을 지나고 있다.

추위와 바람으로 고생은 했지만 그렇기에 일망무제로 펼쳐진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사진에 담고 어렵게 셀카 놀이를 하면서 증명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하니 오늘 산행도 그 날머리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는 시간이다.

처음에는 발목까지 빠지던 눈들이 점점 더 깊어져 어느 순간 무릎 가까이 덮어오고 그래도 꾸준하게 걷다 보니 정오산 지나서 부터는 눈의 양도 적어지고 올라간 기온으로 인해 눈이 녹으면서 질척이는 등로로 변했기에 고생은 하였지만 진행에는 크게 어려움이 없이 빠르게 걸었나 보다.

얼굴은 햇살과 눈에 반사된 빛으로 완전히 붉게 그을렸고 특히나 강한 바람으로 산행의 어려움을 그대로 노출 시키는 듯 보인다.


새벽 6시 10분에 남부터미널을 출발한 버스가 백암버스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시간은 이제 아침 7시가 가까워진 시간으로 50여분만에 백암에 도착을 하였다.

오늘은 집을 나서기 전 옆지기가 준비해 준 누룽지를 먹고 남부터미널까지 배웅을 받다 보니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하였고 백암에서도 택시를 이용해 고은터널 앞 하노버승마장 입구에 도착을 해 작은 금액이지만 택시비를 깍아 준 택시기사님으로 인해 더욱 기분 좋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하노버 승마장은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 은석마을에 있는 마곡산 중턱에 위치하여 쾌적한 자연환경을 자랑하고 있으며 외승로와 30m x 70m 크기의 대형실내마장과 승마를 처음 접하는 초급단계부터 국내 및 국제 승마경기 출전을 준비하는 고급단계까지의 모든 단계별 회원과 선수 또는 말교육이 가능한 승마장이다.
또한 승마와 더불어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오토캠핑장이 준비되어 있다.

고은터널 우측으로 나 있는 하노버승마장 올라가는 화살표 방향으로 오르니 금새 318번 2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하여 안성승마오토 캠핑장으로 갈 수 있는 육교를 만나 그 우측으로 보이는 하노버승마장 건물 방향으로 오르니 승마장 건물로 가기 직전 좌측 능선 방향으로 넓은 길이 잘 나 있어 그 등로를 따라 능선 방향으로 오른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옆으로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지 위에 많은 눈들이 쌓여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오르니 겨울이 지나면 말들을 방목시킬 수 있는 방책들이 나타난다.

그곳 넓은 임도에서 잠시 머물며 지나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올라오기 시작한 고은터널 앞 318번 도로와 육교가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얼마 전 걸어 완주를 한 독조지맥 마루금이 방금 떠 오른 아침 햇살을 받아 너무나 깨끗하게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을 남겨 보는 시간이다.

그 독조지맥과 고은터널 사이에는 고은리 마을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있다.

고은리는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에 있는 마을로서 들이 넓은데 고은리의 지명은 1914년 행정구역 폐합 당시 병합된 여러 지역 중 고목과 은석의 이름을 따서 고은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은석마을, 고목마을, 거운마을이 있는데 은석마을의 지명은 마을 뒷산인 마옥산에서 은과 같은 흰 돌이 많이 나온다 해서 은석이라 하였다.
고목마을에는 약 500여년 묵은 향나무 고목이 있어서 이 마을을 고목동이라 부르게 되었고 거운마을은 여러번 이사한 끝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고 해서 게운이와 거우니라 하다 거운이라 이름 붙여졌다.
영창대군 묘지
조선 선조의 14명 아들 중 유일하게 정비인 인목왕후가 낳은 아들로 선조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던 영창대군의 묘이다.
유영경등 소북파의 지지로 이미 세자로 책봉된 광해군 대신에 세차에 책봉될 가능성도 있었으나 선조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실현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즉위 후 이이첨 등 대북파에 의해 왕위에 위협을 주는 인물로 미움을 받았다.
박응서 등 7명의 서출들이 역모를 꾸몄다는 7서의 옥이 일어났는데 이들로 하여금 영창대군 추대 음모를 거짓 진술케 하였다.
이 결과 영창대군은 서인으로 강등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강화부사가 방안에 가두고 장작불을 지펴 그 열기로 죽게 하였다.
1623년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반정으로 관작이 복구되었다.
조선 시대 왕실의 무덤은 능과 원 및 묘로 구별되는데 묘란 일반적인 무덤을 가리키는 말로 왕의 자손이나 후궁 또는 왕의 아버지인 대원군 등의 무덤을 뜻한다.
영창대군 묘소는 원래 광주군 남한선성 아래에 있었는데 성남시 개발계획에 따라 1971년 8월에 현 위치인 안성시 일죽면 고은리로 이장되었다.


한동안 그 고은터널 위에서 지나온 독조지맥과 고은리 방향을 조망한 후 다시 깊은 눈이 덮혀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그 임도 우측으로 드넓은 초지지대라 생각되는 공터가 나타난다.

다시 눈길을 걸어 가파르게 오르니 갑자기 눈 앞에 상석이 있는 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위로 올라 묘지 아래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 가지 위를 살펴보니 환상의 풍경이 그곳에 남아 있다.

다시 희미하게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헤치며 오르니 얼마 전 어렵게 걸었던 독조지맥 마루금에 도착을 하는데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의 눈은 더욱 깊어져 이곳에서 스패츠와 체인젠을 착용하고 그 독조지맥 마루금을 타고 좌측 큰바래기산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독조지맥은 칠장산에서 김포 보구곳리로 이어지던 한남정맥은 용인시 문수봉에서 남으로 이어가고 북쪽으로 또 하나의 산줄기 앵자지맥이 분기한다.
앵자지맥을 이어가면 용실봉에서 앵자지맥은 앵자봉으로 향하고 또 하나의 산줄기가 분기하여 독조봉(423 미터), 건진산(410 미터), 소학산(309 미터), 봉의산(331 미터), 대덕산(315 미터), 마국산(445 미터), 노성산(269 미터), 돌박지산(166 미터), 철갑산(225 미터), 신통산(279 미터), 소무산(247 미터), 달걀봉, 중군이봉(223 미터)을 거쳐 남한강과 청미천 두물머리 여주시 장안리에서 맥을 다하는 63.1 Km되는  산줄기를 독조지맥이라 한다.


스패츠와 체인젠을 착용하고 분기봉으로 완만하게 오르니 진행이 훨씬 용이하다.

잠시 더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북서풍으로 실려 와 나뭇가지에 쌓여있는 눈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기온이 내려가 추워서 그런지 또한 너무나 깨끗한 공기가 폐부를 돌아 나오며 세척을 해 주는 느낌이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얼마 전 거꾸로 진행을 했던 독조지맥 산행에 대한 추억이 솟아나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바위봉을 지나쳐 올라 빨간 우체통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오늘은 그 빨간 우체통을 자세히 살펴보니 좋은광고를 만드는 에드굿이란 회사에서 설치를 해 놓은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 작은 우체통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을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 위 저 멀리 잡목 사이로 올라야 할 마국산이 빼꼼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독조지맥 산행 시 올랐다 아무것도 없는 것을 확인한 등로 우측에 큰바래기산이라 지도에 나와있는 봉우리를 좌측 우회 등로로 걸어 통과하니 또 다른 우체통들이 널부러져 있는 큰바래기산인 해룡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사진 몇 장 남겨 본다.

하얀 눈이 등로 위에 깊게 쌓여있고 그 위에 아무 발자국도 없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풍경이 오늘 새롭게 시작하는 해룡지맥 산행에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이자 시간이다.

그 하얀 눈 위에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며 해룡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은 황홀하기까지 하다.


해룡지맥 분기점인 큰바래기산을 지나 내려가니 등로 위에 쌓여있는 눈은 점점 더 깊어지고 때로는 무릎까지 빠지고 있다.

특히나 바람과 눈과 온도가 만들어 놓은 환상의 눈 기둥이 능선에 그대로 쌓여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다 보니 올해 들어 처음 만나는 눈 기둥이 아닐까 생각되는 풍경이다.

지난 달 독조지맥 산행 시 잠시 들렸던 마국산이기에 눈에 익고 잠시 더 걸어 안부를 지나니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강아지 바위가 다시 만난 산객을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있다.


그 강아지 바위를 지나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오르니 금새 마국산 정상에 도착을 해 드넓은 헬기장에 배낭을 놓고 그 위에 셀카를 장착해 사진 한장 남겨보려 노력해 보는데 카메라를 설치 후 정상석 사이로 뛰어 올라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아 사진 한장 남기기도 어렵다.

마국산(445봉)은 경기도 이천시의 남쪽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445미터로서 모가면과 설성면 및 안성시에 걸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오음산은 부 남쪽 25리 되는 곳에 있다고 하여 관련 기록이 처음 등장하는데 마국산은 조선 시대 지리지나 지도에 등장하는 오음산의 다른 이름으로 마한의 산이라는 뜻으로 마국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불우 항목에는 안양사가 오음산에 있다고 했는데 폐사된 지 오래되어 지금은 그 정확한 위치조차 알 수 없는 대신 해동지도에는 오음산 동쪽 가까이에 마옥사라는 사찰이 표현되어 있고 1872년지방지도에서 산 아래에 마곡사라는 사찰이 확인되는데 오음산의 다른 이름인 마옥산이나 마곡산이란 지명은 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고 전한다.
산자락에 굴바위, 병풍바위, 말바위, 구모바위 등 유서 깊은 전설을 간직한 기암괴석들이 산재해 있고 남쪽에는 영창대군의 능묘가 있다.

이곳 마국산은 또한 마옥산(445봉)이라고도 부르는데 마옥산은 높이는 445미터로 안성시에서는 마한의 산이라는 뜻으로 마국산이라고도 하는데 인근에 마오산(275봉)이 소재하여 두 산을 혼동하기 쉽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고 인파도 붐비지 않는 호젓한 산으로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까지 산상에 검은색 말 동상이 있었는데 산신제를 그 앞에서 지냈다고 하며 광복 후에 산상에다 헬리콥터 비행장을 닦을 때 흙으로 만든 망아지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영창대군의 능묘가 있는 능선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산 속에 두 칸 짜리 빈집이 있는데 이 곳에서 식수를 준비하고 집 뒤편 능선을 오르면 400봉에 닿는데 여기에서 안부로 내려갔다가 정상으로 다시 오르게 된다.
정상은 넓은 광장으로 되어 있으며 삼각점과 정상표석이 세워져 있으며 산행 후 이천온천에서 온천욕으로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낼 수 있다.


어렵게 정상석에서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 와 주위 풍경을 살펴보니 한달 전 독조지맥 산행을 하면서 들렸던 때보다 더욱 멋진 조망과 풍경이 펼쳐져 있다.

먼저 헬기장 좌측으로 가 북서쪽을 살펴보니 독조지맥의 수많은 골프장들이 하얀 눈속에 더욱 뚜렷히 드러나 있고 그 풍경을 살펴보며 왜 독조지맥을 한겨울 눈이 내리는 계절에 올라야 하는지 알 수 있는 사진이다.

그 독조지맥 넘어로는 몇 년전 홀로 걸었던 앵자지맥과 한남정맥 마루금이 옛 추억을 이야기하며 잠시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북서쪽을 구경한 후 이제 헬기장 우측인 남동쪽을 살펴보니 큰박골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우측으로 독조지맥과 한남금북정맥 그리고 부용지맥 마루금이 또한 옛 추억을 꺼내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을 걸어 온다.

그 나즈막한 산줄기 사이로 피어 오르는 안개가 또한 가슴속 깊이 고운 추억으로 남아 오랫동안 기억 될 것 같다.

한달 전 만났던 풍경이지만 또 다른 풍경이 황홀하게 펼쳐진듯한 착각에 오늘도 한동안 이곳 마국산 헬기장에 머물며 환상의 추억을 만들어 본다.


그렇게 한동안 그 마국산 정상의 헬기장에서 많은 추억을 남기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서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내려가자 마자 등로 좌측으로 두미리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옆으로 큰 바위와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의 산내리 방향으로 걸어가며 진행을 한다.

두미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시밋골, 건너말, 미륵댕이 등이 있는데 시밋골은 시무굴 또는 시미동이라고도 하며 예전에 효자가 시묘살이를 했다 하여 생긴 지명이다.
건너말은 시밋골 건너편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며 미륵댕이는 마을에 미륵당이 있다하여 생긴 지명이다.


두미리 갈림 삼거리를 지나 바위 암릉들이 보이는 등로를 타고 조심하며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 무명봉을 우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워 좌측 무명봉으로 오르니 정상에는 키 작은 돌탑 하나가 서 있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표시도 없는 무명봉이다.

케른을 사진에 남기고 그 무명봉을 내려오니 사각 이정목에 현위치 1.4란 표시에 헬기장중간이란 단어가 보이고 마옥산에서 200미터 진행해온 거리라는 표시도 눈에 들어 온다.


그 케른 하나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다시 깊은 눈이 쌓여 있는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위에 누군가 한명의 선답자가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만들어 놓고 내려간 풍경이 눈에 들어 온다.

눈과 바람이 만들어 놓은 멋진 풍경을 바라보며 여유있게 걸어가니 잠시 후 벤취 쉼터 2개가 서 있는 멋진 소나무와 바위 등로가 나타나 잠시 쉬어 간다.

그 소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황홀한 풍경이 또한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고 잠시 더 쉬어가라 재촉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멋진 소나무 등로를 지나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키 작은 잡목 가지에 붙어 있는 눈송이들이 또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이 산객을 유혹하고 있다.

몇장의 사진을 다시 더 남긴 후 조금 더 걸어가니 넓은 헬기장이 나타나고 해룡지맥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우측 끝자락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어 다가가 살펴보니 이제 우측으로 산내리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이다.

이곳 헬기장에서 좌측 두미리 방향이 해룡지맥 마루금이다.

산내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산안, 웃말 등이 있는데 산안은 산내라고도 하며 마옥산 안쪽에 있다는 데서 유래한 지명이고 웃말은 산내 위쪽에 있는 마을로서 향토유적 제16호인 충성공묘가 있다.


산내리 갈림길이 있는 넓은 헬기장에서 좌측 두미리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니 곧바로 벤취 쉼터 2개가 놓여있고 그곳에서 등로 앞을 살펴보니 잡목 가지 사이로 진행해야 할 비산비야로 이뤄진 해룡지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제법 굵은 소나무와 바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는데 그 안부 옆 바위에도 누군가 몇개의 작은 바위로 케른을 만들어 놨다.

그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두미리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다.

그러고 보니 이곳 해룡지맥 마루금의 좌측은 두미리이고 우측은 산내리인데 등로는 그 두 마을 사이의 능선을 타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는것 같다.


그 두미리 갈림 이정표를 지나 걸어 진행을 하니 다시 등로 양쪽으로 잡목 가지에 쌓여있는 눈꽃들이 산객의 발목을 붙잡아 산행 속도가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구경하며 진행을 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일직선으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이루고 너무나 편안하게 그 눈 위를 걸어 가 본다.

그렇게 한동안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나즈막한 무명 안부를 지나 평이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발목을 지나 무릎까지 빠지는 깊은 눈길을 헤치며 걸어가니 다시 무명안부를 지나 등로 우측으로 잠시 잡목이 사라지며 산내리 마을이 잠시 나타난다.

그 마을에도 온통 하얀 눈이 쌓여 눈 천지가 된 듯한 세상으로 변해 버렸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바위 암릉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그 바위지대를 넘으니 벤취 쉼터 2개가 다시 산객을 붙잡지만 이번에는 눈길 한번 주고 출발한다.

그 벤취 쉼터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권균묘역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권균의 묘지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 안동 권씨 합동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의 문신 권균의 묘로서 1998년 2월 이천시 향토유적 제16호로 지정되었다.
산내리 마국산(마옥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안동 권씨 합동묘역 하단에 2명의 부인 정경부인 안씨, 김씨의 묘와 함께 3기의 봉분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는데 가운데가 권균의 묘인데 봉분은 모두 원형이며 묘역에 상석, 향로석, 혼유석, 망주석 2기, 문인석 2기, 장명등, 묘표 2기 등 여러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묘표는 하나의 화강암으로 제작하였으며 높이는 150cm 정도로서 상부에 둥근 모양의 이수를 전면 중앙에는 만월을 뒷면 중앙에는 초승달을 조각하였다.
묘역 입구의 신도비는 1529년(중종 23)에 건립한 것으로 귀부와 이수가 섬세하게 조각된 훌륭한 작품으로 이곳의 석물은 모두 조선시대 전기의 석물 양식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권균(1464~1526)은 동부승지, 도승지 겸 응방제조, 공조판서, 좌참찬, 형조판서, 좌찬성, 판의금부사 등을 거쳐 우의정에 올랐으며 영창부원군에 봉해졌다.


권균묘역으로 갈 수 있는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본다.

앞서 걸었던 선답자 한명의 발자국은 여전히 이 산객의 길라잡이가 되어 주고 있어 조금은 편안하게 걸어 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의 나즈막한 봉우리를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도록 되어 있는 등로가 나타나 그 좌측 봉우리로 올라가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259.5봉으로서 스틱을 세워 놓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빠르게 평이한 등로로 내려가며 이어간다.


제법 많은 눈이 쌓여있지만 아침까지는 기온이 낮아 습설이 아니기에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쭉 뻗어 있는 활엽수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등로에는 바람이 몰고온 눈들이 높게 쌓여있어 어떤 곳은 무릎까지 눈이 빠지기도 하지만 아직 진행에는 어려움 없이 걸어 본다.

계속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가 우측 아래로 급하게 휘어지는 곳 좌측으로 250.3봉이 나타나고 이곳에서도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250.3봉을 지나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굴곡이 심한 등로로 이어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평이하게 걸어가니 또 다른 깊은 안부가 나타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도를 꺼내 확인하지만 이곳 역시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 안부이다.

그 안부를 지나 오르니 생각지도 못한 전봇대 하나가 서 있어 생소하게 생각돠는 풍경이기도 하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벤취 쉼터 2개가 나타나고 두미갈림길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두미갈림길에서 앞서 진행했던 선답자 한명의 발자국은 사라지고 없는데 살펴보니 그 선답자는 좌측 두미리 방향으로 하산한 듯 보였다.

하얀 백설 위에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눈 자국이 나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거대한 활엽수 넘어 통나무 벤취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265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이곳도 지도에는 아무 표식이 없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를 한다.


그 통나무봉을 지나 걸어가니 눈이 덮혀있는 칼날 등로가 이어지고 안부 같지 않은 안부를 지나 오르니 벤취 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마오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벤취 쉼터 넘어에는 마오산이란 이정표도 서 있다.

마국산 정상에서 2.3 Km 지나 왔다는 거리 표시에 좌우측으로 마을들로 내려갈 수 있는 하산 표시들도 보인다.

마오산(275봉)은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와 두미리 및 소고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봉우리보다는 능선의 작은 봉우리처럼 보이는 정상이다.
정상에는 벤취 쉼터 2개와 이정표가 있고 좌측으로는 소고리의 농업테마공원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여 자칫 잘못하며 그쪽 방향으로 알바하기 쉽운 등로인데 이곳 마오산은 마국산에서 뻗어내린 한 봉우리인데도 독립봉으로 대우한다.
마오산의 유래는 이곳이 옛날에 마한의 땅이었기에 생겼다는 설과 삼신할미가 옥으로 만든 퉁소를 불었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는 또 다른 설도 있는데 어찌 되었던 이런 전설까지 생길만큼 중요한 봉우리였던 것 같다.


마오산 정상에서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굴곡이 심한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굴곡진 등로를 지나니 다시 등로는 평이한 눈 덮힌 등로로 바뀌고 한동안 칼등 능선을 따르니 소고3갈림길 이정표가 보인다.

지도를 보니 지도에는 이곳을 돈님이 고개로 표기해 뒀는데 돈님이고개는 경기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와 소고리를 연결해 주던 고갯마루이다.

또한 이정표에 보이는 소고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소고지,밤나뭇골 등이 있는데 소고지는 작은 곶으로 되었으므로 불린 지명으로 소고리라고도 하며 밤나뭇골은 밤나무가 있던 곳으로 경기유형문화재 제119호인 소고리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소고3리 갈림길을 지나 다시 평이한 눈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으로 벤취 쉼터 2개가 보이고 곧이어 완만하게 내려가면 기억자로 설치된 벤취 쉼터 2개가 더 보이고 그 벤취들을 지나자 마자 안부가 나타난다.

혹시 이곳이 바로 앞서 지났던 돈님이고개가 아닐까 생각하며 유심히 살펴보지만 잘 구분이 되질 않는다.

그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그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에 큰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위에는 작은 돌탑이 세워져 있다.

그곳을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데 그 오르막 정상에는 큰 소나무 몇그루와 그 한가운데에 작은 케른 하나가 서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264.4봉의 무명봉으로서 누군가가 작은 돌탑을 세워 그 봉으리를 구별해 놓고 있다.


돌탑봉을 지나 걸어가니 다시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는데 그 바위 위에도 여전히 작은 돌탑 하나가 서 있다.

그곳을 지나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우측 잡목 사이로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에는 올랐다 내려 온 마국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매봉재고개라 생각되는 안부를 통과하게 되는데 잠시 후 만나는 헬기장 정상의 이정표에도 매봉재라 적혀 있어 헷깔리기만 하다.

하지만 이곳을 왜 매봉재고개라 하였는지 많은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어 아쉬움만 남긴다.


매봉재고개라 생각되는 안부를 지나 조금은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높은 철막대 하나와 안내판을 세웠던 사각 철봉 넘어 드넓은 헬기장에 도착을 한다.

그 헬기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니 그 끝자락에 현위치 매봉재(259.3미터)란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앞 헬기장에 눈속에 파묻혀 있는 삼각점이 보인다.

그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주위를 살펴보니 진행 방향의 마루금 우측 나뭇가지 속에 모산(258.3미터)이라는 정상판이 달려있다.

다만 매봉재와 모산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왜 이런 이름들이 붙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그 헬기장에서 이정표와 정상 이정판을사진에 담고 진행 방향 좌측의 북쪽을 살펴보니 눈 닾힌 모가면 들판 넘어 저 멀리 비산비야를 이루고 있는 해룡지맥 마루금이 나즈막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모가면은 경기도 이천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으로 진가리, 어농리, 원두리, 서경리 등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본래 가마동면과 모산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모면과 가면을 중심으로 대면과 음죽군 원북면 일부를 합쳐 모면과 가면의 첫 글자를 따서 모가면으로 하고 11개 동리로 개편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지도서와 호구총수에는 가마동면과 모산면에 속한 동리들과 관으로부터의 거리 및 편호, 남녀 인구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가마동면은 조선지도에 가마면으로도 표기되는데 호구총수와 1871년에 편찬된 이천부읍지에는 갈마동면으로 대동지지에는 갈마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모산면의 경우도 조선지도, 팔도군현지도, 대동지지 등에서는 모산면이라 하여 한자 표기를 달리하고 있는데 현재의 면 소재지인 진가리는 예전에 갈매울과 진내를 합친 이름으로 특히 진내는 마을 주변의 토성 흔적과 관련해 군사들이 진을 쳤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전 면소재지였던 소고리는 옛날 도인이 이 마을을 지나다가 마을이 소욕형이라 이름을 소고라고 하면 소원이 성취될 것이라 하여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그렇게 드넓은 헬기장 위에 서 있는 매봉재 또는 모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배낭을 둘러메고 다시 빠르게 내리막 등로를 내려가니 무명안부들도 통과를 한다.

다시 조금 더 걸어 안부를 지나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무명묘지 2기가 있는 곳에 올라 조금 더 시원한 모가면 풍경을 살펴 본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깊은 눈길을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안성이씨 가족 납골묘지도 보인다.


그 가족 납골 묘지를 지나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를 통해 마국산에서 4.9 Km 지나왔고 도로 우측으로 서경저수지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지도를 살펴보니 345번의 2차선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큰고개에 도착을 한 것이다.

큰고개(345번 2차선 포장도로)는 이천시 모가면 산내리에 있는 고개로 산내리고개라고도 부르며 맞은편에는 동성교회 동산이 있다.

이곳 큰고개에서 이제부터 345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며 해룡지맥 산행을 이어가는데 먼 거리를 이런 도로를 따라 걸어가야 하니 마음을 비우고 걸어 보는 시간이다.


잠시 그 345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콘크리트 옹벽이 보이고 그 입구에는 동성교회동산이란 이정석이 서 있다.

주 등로가 그곳 도로 우측 옆 능선임ㅇㄹ 알기에 그곳으로 올라가 보려고 콘크리트 옹벽을 기어 오르지만 오르기가 쉽지 않아 포기하고 그냥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다 능선에서 도로로 다시 내려오는 곳에서 뒤돌아 보니 능선 위로는 멋진 소나무들이 자라고 그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올려다 보인다.

한동안 그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진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바로 아래에는 오래 전 불이 났던 공장 건물이 흉물스럽게 내려다 보인다.


그 진가리 넘어 저 멀리에는 모가면 민가들이 빼곡하게 들어 찬 모습도 내려다 보며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동양과 명성타워 및 명성물류라는 이정판도 보인다.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300미터 전방에 383번 도로와 만나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우측에 거대한 공장 건물을 지나 과수원도 통과하니 방금 전 만났던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해 이제부터 383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돌아 걸어간다.

그 좌측 코너에는 산내리(산안)라는 이정석이 서 있다.

이곳이 산내리(산안) 이정석 삼거리로서 산내리는 조선 중종조에 우의정을 지낸 권균이 별세하여 산속에 묘지를 잡고 묘를 쓴 후 묘지기의 집이 생긴후 점차 호수가 늘어감에 따라 산속에 마을을 이루었으니 한자를 따서 산내리로 불리우고 있다.

산산내리 산안은 법정 지명리의 산내리와 같은 유래로써 산속에 마을이 있다 하여 산안이라 불리우고 있다.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산내리입구 버스정류장과 그 옆에 월드베스트침대 안내판이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모가면 가는 방향과 이 도로가 329번 도로로서 계속 직진을 하면 이천과 영동고속도로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는데 그 표지판 위에는 직진으로 종합운동장 방향도 표기가 되어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이천자채방아마을이라는 안내판도 서 있다.

그곳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 몇개의 식당 건물들이 보이고 그 가운데에 진가2리라는 작은 이정석도 서 있다.

진가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진가리, 중말 등이 있는데 진가리는 진내와 가동을 병합하여 생긴 지명이고 중말은 진가리의 가운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진가2리(진안)는 한자로는 진안이라 쓰고 마을 주변에 축년성대가 밝혀지지 않은 토성의 흔적이 지금도 일부 남아 있다.
이 토성의 존재로 미루어 한때 많은 군사들이 진을 치고 머물렀던 지역이었음이 틀림없고 진안이란 지명은 병영안과 같은 의미로 군사들이 진을 쳤던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본다.


식당 건물들이 있는 진가2리 이정석을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 호정기업 입간판이 서 있고 도로 우측으로는 유니가구갤러리라는 커다란 입간판도 서 있다.

다시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짬뽕전문점이란 간판이 보이고 우측에는 좌측으로 진가리와 우측으로 양평리를 갈 수 있다는 사거리 표시가 되어 있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그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우측으로 인삼포가 보이는데 그 앞에 양평리(장수마을)란 이정석도 서 있다.

양평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뒷말천 서쪽 평야지대에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양평리, 군들 등이 있는데 양평리는 군량과 평촌을 병합하여 생긴 지명이고 군들은 양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이다.
양평리는 약 150년 전에 선비가 그 마을은 들이 평야이니 양평리라 칭하면 부자가 많이 생길 것이라하여 양평리라 불리우게 되었다.
구은들은 마을 위 산등성이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은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하며 해마다 풍년을 비는 뜻에서 구은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양평리 이정석을 지나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150미터 전방에 좌측으로 이천과 남이천IC 방향이 보이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도로 좌측을 바라보니 방금 전 지나 온 해룡지맥 마루금이 올려다 보이는데 제법 많은 눈이 내렸음을 알 수 있는 풍경들이다.

다시 계속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으로는 329번 도로가 갈라지고 그곳으로는 이천과 남이천IC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이제 등로는 직진의 337번 종합운동장과 사동리 방향으로 걸어가야 한다.

갈림 삼거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자채방아마을까지 3.5 Km 거리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서 있다.

자체방아마을은 이천에 위치한 자채방아마을은 농촌의 실상을 꾸밈없이 피부로 전해주는데 자채대장군과 방아여장군 장승이 마을초입에 우뚝서 마을을 지키며 방문객을 맞는 것부터가 이 마을의 심상치 않음을 짐작케한다.
마을의 담장에는 어느 농촌에서도 볼 수 없었던 벽화가 앙증맞게 그려져 있고 마을회관 처마 밑에서는 갓 알에서 부화한 제비 새끼들의 지저귐과 쉴새없이 먹이를 나르는 어미제비의 분주함이 농촌 같지않은 농촌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이한 마을 이름은 벼품종에서 유래했는데 자채는 붉은색이 감도는 벼품종의 이름으로 밥을 지으면 푸른 색을 띠며 기름진 밥맛이 너무 좋아 임금님께 진상됐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이천쌀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이 마을의 테마는 쌀로 정했고 그 쌀을 만드는 방아가 붙어 자채방아란 마을이름이 지어졌다.
쌀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만큼 농촌체험에 대한 자존심도 만만치 않다.
도시민을 위한 화장실 개조 등의 꾸밈을 지양하고 농촌의 실상을 그대로 체험시켜 잊혀져가는 우리의 삶을 맛보도록 프로그램을 갖춰놓고 있다.


자체방아마을 안내판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과수원이 내려다 보이고 그 과수원 한가운데엔 최근에 건설된 듯한 공장 건물들이 들어 서 있다.

계속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우측에서 합류하는 도로가 있는 갈림 삼거리를 만나는데 그 도로 우측에는 평화철강과 세림강업이란 이정판이 서 있다.

도로 좌측으로는 지나온 해룡지맥 마루금이 계속 올려다 보이고 잠시 뒤 도로 우측으로 효자요산리선생묘소입구라는 이정석이 서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호성산업과 서진 및 이피케이로 들어갈 수 있는 시멘트 도로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도 지난다.

다시 도로 좌측으로 흥일가구를 지나 초원환경 건물을 통과하면 곧바로 미리내 천주성삼 성직 수도회 이천수도원농장이란 커다란 이정석이 서 있다.

 

계속 이어지는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는 엠코리아씨스템 공장 건물이 서 있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양평리 구은들 가는 이정판이 서 있다.

양평리 구은들은 마을 위 산등성이에 거북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구은이라 불렀던 데서 유래된 명칭이라고 하며 해마다 풍년을 비는 뜻에서 구은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곳 양평리 가는 이정판을 지나 도로 우측에 (주)주형 건물도 지난다.


주형 이정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녹색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안에는 몇동의 공장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군량2리 가는 이정판이 서 있는데 군량리는 이 산객의 고향에도 있는 마을이기에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마을 이름이다.

군량리는 지금은 형체가 없으나 군내에서 제일 큰 돌다리가 있었다 하여 군량리라 불리우고 있으며 군량1리는 아랫마을이라 하군량리(아랫군들), 2리는 상군량리 또는 안골, 3리는 새로 생긴 뒷 마을이라 하여 새말, 뒷말이라 불린다.


군량2리 이정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이천마이다스GC 들어가는 포장도로가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삼거리를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 파란로지스와 기호가설산업 이정판도 보인다.

도로 좌측 아래로는 젖소 농장이 보이고 그 축사건물을 지나니 도로 좌측 저 멀리 오늘 걸어 온 해룡지맥 마루금이 하얀 눈을 덮어 쓴채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곳을 지나니 좌측으로 소사리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직진하면 337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장호원과 이천으로 갈 수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보인다.

 소사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작은말, 큰말 등이 있는데 작은말은 소사리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큰말은 소사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다시 계속 그 337번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비전 폐차장과 주만장로교회 입간판이 서 있고 그 바로 앞에는 상원목장과 상원농장이란 이정석도 서 있다.

계속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신광자원이 보이고 보성공업이 나타나는데 그곳을 지나자마자 도로 좌측으로 꺽어 들어가야 할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옆에는 두레영농조합법인이란 간판도 서 있다.

그곳 두레영농조합법인으로 들어가기 전 도로 우측에는 양무리마을과 양무리교회로 들어갈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와 그 입구에 입간판도 서 있다.

이제 한동안 걸어 왔던 337번 2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소사리 방향으로 걸어 들어간다.


한동안 걸어 왔던 337번 2차선 포장도로와 헤어져 좌측 두레영농조합법인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이곳은 눈이 얼어 붙어 도로가 반질거리며 여간 미끄럽지 않아 조심하며 걸어 간다.

도로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포장도로를 따라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드넓은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밭 경작지 넘어 저 멀리 마국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마국산 좌우측으로 지난 달 ㅁ무리를 했던 독조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우측 저 멀리에는 독조지맥 마루금을 가르며 흩어져 있는 많은 골프장이 하얀 눈을 덮고 드러나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그렇게 한동안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며 드넓은 밭 경작지와 마국산 그리고 독조지맥 마루금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도로는 여전히 얼어 붙어 있어 미끄럽기에 조심하며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도로 양쪽으로 키 큰 나무들이 자라는 등로를 따르니 잠시 후 멋진 소나무들이 나타나고 그 소나무 가지 위에는 하얀 눈들이 쌓여있어 또 다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다.

그 소나무 등로를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는 드넓은 인삼포가 나타나는데 이제 날씨 변화로 인해 작물 재배지도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음을 몸으로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인삼포 넘어로는 여전히 마국산과 독조지맥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가까이에는 복숭아라고 생각되는 과수원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인삼포를 지나 계속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금새 두레영농조합법인 안내판이 보이고 도로 앞으로는 새로 신축한 건물이 보이는데 그 건물 우측으로 많은 축사 건물처럼 보이는 건물들이 보인다.

이곳에서 시골스런 냄새가 나 살펴보니 도로 옆 건물 앞에 미생물발효장이란 간판이 붙어 있어 축산 배기물을 발효하는 동안 나는 냄새가 아닐까 생각되는 시간이다.


그 두레영농조합법인 건물을 지나 계속 포장도로를 걸어가니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부분에 흥일농원이 나타나고 곧이어 도로 좌측으로 거대한 젖소 축사들이 나타난다.

한겨울 추운 날씨에도 시골 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한여름에는 어떨까 심히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축사 건물을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는 다시 과수원이 나타나고 곧이어 드넓은 밭 경작지 가운데로 도로가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소나무 마루금을 걸어 본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과수원이 보이고 잠시 후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삼거리 한가운데엔 축사 건물이 서 있다.

직진의 포장도로를 보내고 그 축사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90도 꺽어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이곳이 진상미로 1458번길이란 도로 이정판이 보인다.

이제 도로 좌우측으로 거대한 밭 경작지를 두고 들판 한가운데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따라 걷게 되는데 임도 우측 앞 저 멀리 오늘 산행 날머리에 높게 서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공장의 거대한 탑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직진 거리로는 가깝게 보이지만 돌고 돌아 도착을 해야 하기에 거리상으로는 이제 반 정도 진행한듯 보인다.


이제 드넓은 밭 경작지 한가운데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하얀 눈이 덮혀있는 밭 경작지에 고라니 두마리가 숲에서 뛰어 나와 달려가고 있는 풍경이 이채롭게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유럽을 다녀오며 자주 만났던 풍경인데 오늘 이곳 해룡지맥 마루금에서 고란이가 뛰어 노는 풍경을 보니 세월이 많이도 변하면서 우리나라도 자연 회복이 많이 되고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밭 경작지 저 멀리 오늘 날머리에 높게 서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공장의 주탑이 보이기에 줌으로 당겨 본다.


다시 밭 경작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눈 덮힌 비포장 농로길을 따라 걸어가니 농로길 옆 키 작은 잡목 사이에 숨어 있던 참새들이 날아가며 새소리를 내는 풍경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 오르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농로 좌측으로 민가 두채가 보이는데 그 민가 뜰에는 많은 염소들이 보이는 염소 농장이다.

그 염소농장을 하는 민가를 지나 걸어가니 농로 우측으로 파헤쳐진 밭 경작지 한쪽에 남아 있는 능선 위에 파란 물통 2개가 보인다.

그 물통을 지나 계속 걸어가니 소나무와 전봇대를 지나 이제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밭 경작지가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로 마루금이 나 있다.


그 밭 경작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민가가 보이고 그 민가를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농로길을 지나니 이제 눈 앞 저 멀리 군부대와 그 군부대 안의 하얀 지휘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드넓은 밭 경작지 한가운데를 지나는 전봇대가 인상적이고 그 전봇대를 따라 나 있는 농로가 마루금을 대신하는 풍경이 참으로 황홀하기만 하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언덕으로 오르니 이제 가야 할 해룡지맥 마루금을 가로막고 있는 항공작전부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부대를 좌측으로 돌고 돌아 진행해야 할 등로 역시 까마득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등로 앞으로는 항공작전사령부를 좌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을 해야 할 우회 등로를 그리고 우측 앞으로는 오늘 날머리인 현대엘리베이터 공장의 거대한 주탑을 바라보며 무심으로 걸어가니 갑자기 넓은 밭 경작지 한가운데로 고라니 한마리가 뛰어가며 이 산객의 눈길을 잡는다.

어렵게 그 고라니가 뛰어가는 모습을 사진에 담는 시간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시간이다.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따뜻한 세상이길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힘들게 진행하는 맥 잇기 산행중에도 평화로운 자연을 만끽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드넓게 펼쳐진 이국적인 풍경을 살펴보며 여유롭게 천천히 걸어가니 그 밭 경작지 한가운데로 나 있는 농로가 끝이나고 비포장 임도로 변하는데 그 임도 양쪽으로는 다시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다시 임도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민가 한채를 지나 눈 앞에 펼쳐진 군부대를 살펴보며 걸어가니 군부대 담장 안으로 많은 헬기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드디어 원형 철조망이 2중으로 쳐져 있는 군부대 담장을 만나 더 이상 마루금을 따르지 못하고 그 군부대 담장을 우측에 두고 담장 따라 좌측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길게 우회를 시작한다.


한동안 군부대 담장을 따라 걸어가니 담자 안에 초소가 보이는데 그 초소에는 보초를 서고 있는 초병들이 보이지만 큰 마찰없이 진행을 한다.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군부대 담장을 좌측으로는 과수원을 두고 진행되고 곧이어 시멘트 포장도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군부대 담장을 따라 걸어가니 담장 좌측으로는 고물상 같은 공장지대가 보인다.

한동안 잡풀들이 자랐다 죽어있는 군부대 담장을 따라 걸어가니 크레모아라고 적혀있는 이정판을 지나 군부대 철조망은 작은 개울 지나 우측으로 올라가고 등로는 직진으로 진행하여 다시 나타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간다.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 우측으로는 작은 개울 건너 군부대 철조망이 계속 이어지고 도로 좌측으로는 드넓은 논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이제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도로 좌측 논 경작지 넘어로는 여전히 마국산과 독조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있다.

한동안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시멘트 포장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나가고 직진으로는 밭 경작지를 지나 원두천을 만나는데 도저히 그 원두천을 건널 수가 없어 다시 논 둑을 타고 좌측으로 걸어 나와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만나는 다리 방향으로 걸어 나온다.


즉 군부대 철조망을 타고 걸어 오다 만나는 갈림 삼거리에서 직진의 밭 경작지가 아닌 좌측으로 휘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와 보이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 곳이기도하다.

원두교를 건널 수 있는 다리를 지나 다시 우측에 원두천을 두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소고공공하수처리사업장 건물이 보이고 곧이어 329번 2차선 포장도로로 나오는데 그곳에는 소고1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도로 건너편에는 소고2리 버스정류장 입간판이 서 있다.

소고1리는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소고지,밤나뭇골 등이 있는데 소고지는 작은 곶으로 되었으므로 불린 지명으로 소고리라고도 하며 밤나뭇골은 밤나무가 있던 곳으로 경기유형문화재 제119호인 소고리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이제 그 329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며 어렵게 이어가는 해룡지맥 마루금이다.

잠시 그 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민속토종닭이란 식당 입간판이 보이고 곧이어 소고교를 통해 방금 전 건넜던 원두천을 건넌다.

군부대가 마루금을 차지하고 있어 우회하다 보니 원두천을 두번이나 건너며 산자분수령을 어기게 되는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소고교를 건너니 도로 우측으로 제2850부대와 비승대체력단련장이란 입간판이 보이는데 방금 전 만났던 군부대를 표기하는 듯 보인다.


도로 좌측으로는 대포리마애여래좌상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이 서 있다.

군부대 내에는 하늘공원이 있는지 군부대 입구에는 하늘공원이란 이정석도 서 있다.

잠시 그 군부대 들어가는 도로를 건너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군부대 버스정류장이 서 있고 곧이어 코리아 오일뱅크 주유소와 남도 아크릴 공장 입간판도 지난다.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오리온 이천공장도 보이고 잠시 후 300미터 전방에 좌측으로 35번 도로와 갈라지는 갈림 삼거리 도로 표지판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 도로 표지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대포동석조여래입상이 서 있어 안내판도 읽어 본 후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대포리석조여래입상은 단월동 지나 행죽 방면의 도로변에 위치한 이 불상은 화강암 1석으로 조성한 여래의 상으로 밭가에 남향으로 직립해 있으며 엉치 부분이 훍속에 묻혀 있어 실재의 높이는 4미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나 돌출되어 있는 현재의 높이는 2.39미터에 어깨 폭은 0.96미터이다.
머리는 소발로 육계는 큰 편이며 상호는 원만하나 양볼이 약간 비대하여 고려불상의 특색을 지니고 있다.
이마에는 큼직한 백호공이 있어 보주를 박았던 흔적이 역연하고 두 귀는 떨어져 나갔으며 양미간, 비량, 구진  그리고 양볼과 턱등에 걸쳐 심한 파손을 입고 있다.
시멘트로 보강한 목에는 3도가 있고 법의는 통견으로 양 팔에 걸쳐 의문이 밑으로 흐르면서 약간씩 펴져 있고 허리 부위에는 요대를 둘렀는데 그 복판을 묶은 결대의 조각이 주목된다.
수인은 오른손을 가슴에 들어 손바닥을 외향하게 하여 엄지와 검지를 마주 대었으며 손바닥에 뚜렷이 새겨 놓은 손금이 재미있고 왼손은 직하하여 옆에 대었다.
불상의 조성년대는 대체로 고려중기로 추정된다.


대포리석조여래입상을 본 후 다시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금강 오일뱅크 주유소를 지나 항공작전사령부 갈림 삼거리도 지난다.

항공작전사령부 불사조(Aviation Operations Command, 이하 항작사)는 육군 항공대에 대한 통합 지휘 및 관리를 전담하는 육군 본부 예하의 기능 사령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전쟁이 재개되었을때 조선인민군 육군의 기계화 군단의 예상 진입로를 탐색 및 매목하여 타격하고 조선인민군의 진격이 멈출 경우 대규모 반격인 결정적 공격작전에 따라 예상 퇴각로를 찾아내어 최대한의 피해를 주는 근접항공지원과 특수 작전 등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1999년 4월 20일 항공 작전의 지휘 통제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각 부대에 분산 편성되어 있던 항공대를 통합하여 창설하였으며 같은 해 같은 달에 제203특공여단이 항공작전사령부로 배속되어 제1공중강습여단으로 개편되었으나 2005년 다시 제2작전사령부 예하 제203특공여단으로 되돌려졌다.
2001년 5월 29일 올림픽대교에서 조형물을 설치하고 귀환하려던 중에 CH-47 치누크의 블레이더가 조형물과 부딪혀 인도 옆의 난간 위로 추락하여 탑승자 3명(전홍엽 준위, 남인호 준위, 김우수 중사(추서계급))가 사망하였다.
2007년 11월 5일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현리에서 호국훈련 도중 13항공단 책임 지역에서 공중 강습 훈련을 하던 2항공여단 소속의 UH-60 블랙호크 2기가 지상 5미터에서 전방 회전 날개와 후방 회전 날개가 부딪혀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왕태기 중령(추서계급)이 사망하고 탑승자 21명이 다쳤다.
항작사 예하부대가 아닌 항공단은 제1026부대에서 전담하고 있으며 각 항공단은 야전군과 군단에 배속되어 요청에 따라 근접항공지원을 제공한다.

도로 좌측에는 이천 테르메덴 온천리조트까지 1.5 Km 거리라는 도로 표지판도 보이는 곳을 지나 70번 도로가 갈리는 갈림 삼거리 도로 표지판을 만나는데 그곳에는 좌측으로 농업테마공원과 천주교 어농성지 가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잠시 후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대포삼거리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도로 좌측으로는 신갈리 갈미까지 1 Km거리라는 이정석도 만나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대포동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대포동 삼거리가 있는 대포동은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법정동으로 행정은 중리동이 관할하며 문화유적으로 대포동 석조여래입상이 있다.
동쪽으로 대월면과 서쪽으로 호법면과 남서쪽으로 모가면과 북쪽으로 단월동과 접하는데 서쪽 대월면과 경계에 정오산(167.3봉)이 솟아 있다.
고려시대에는 영창현으로 조선시대에는 이천현과 이천도호부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충주부 이천군 관할을 거쳐 이듬해 경기도 이천군 관할이 되었다.
1914년 일제가 행정구역을 통폐합 할 때 이천군 읍내면 대포리가 된 뒤 1938년 읍내면이 읍으로 승격하면서 이천읍 관할이 되었다가 1996년 3월 이천군 전역이 도농복합형 시로 승격하면서 행정동인 중리동의 법정동이 되었다.
대포동의 원래 지명은 대포천리였다가 뒤에 천자가 없어졌는데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자연마을로는 삼정개, 소도니, 새말, 황그네 등이 있는데 삼정개는 냇가에 자리잡은 망태처럼 불룩하게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고 소도니는 쇠도니라고도 하는데 마을 뒤에 있는 소도니봉이 뾰족하게 생겨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말은 조선시대 중엽에 생긴 마을로 남양홍씨가 많이 살아 홍촌이라고도 하는데 마지막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인 황그네는 내 건너 마을이라는 뜻의 한건내-한개내를 거쳐 황그네로 변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대포동 석조여래입상이 있는데 실제 높이는 4미터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돌출되어 있는 부분의 높이는 2.39미터에 어깨 폭은 0.96미터로서 고려 중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이곳 대포삼거리에서 지금까지 걸어 왔던 329번 2차선 포장도로를 직진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 대포동으로 들어가는 좁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정오산(정명산)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대포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넓은 논 경작지가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걸어 들어가니 좌측 논 경작지 지나 저 멀리 (주)삼부팩이란 건물이 보이고 도로 앞쪽으로는 대포동 마을 우측 저 멀리 이제부터 올라야 할 정오산(정명산) 정상이 빤히 올려다 보인다.

한동안 덜어 오르니 도로 우측 냇가를 건널 수 있는 콘크리트 다리를 지나 두번째 다리도 통과를 한다.

세번째 다리에서 우측 다리를 통해 그 시냇가를 건너 정오산 방향으로 걸어 진행을 하는데 만나고 싶었던 정오정은 다리를 건너지 말고 조금 더 걸어 올라야 만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 나타나는 갈림 삼거리에서 좌측 임도를 따르니 임도 좌측에 심정공사개요란 안내판이 붙어있는 작은 건물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갈림 삼거리에서 직진의 밭 경작지를 버리고 좌측의 파란 물통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니 금새 우측 능선으로 이어진다.

그 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진천송씨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잡목들이 자라는 능선으로 오르니 금새 비포장 임도가 가로지르는 안부에 도착을 한다.

그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안부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니 또 다른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위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대포동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대포동의 원래 지명은 대포천리였다가 뒤에 천자가 없어졌는데 지명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자연마을로는 삼정개, 소도니, 새말, 황그네 등이 있는데 삼정개는 냇가에 자리잡은 망태처럼 불룩하게 생긴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고 소도니는 쇠도니라고도 하는데 마을 뒤에 있는 소도니봉이 뾰족하게 생겨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새말은 조선시대 중엽에 생긴 마을로 남양홍씨가 많이 살아 홍촌이라고도 하는데 마지막으로 영천이씨 집성촌인 황그네는 내 건너 마을이라는 뜻의 한건내-한개내를 거쳐 황그네로 변음된 것으로 보고 있다.


눈 덮힌 묘지 위에서 지나온 포장도로와 시냇가 그리고 드넓은 들판과 그 들판 넘어 대포동 마을을 살펴 본 후 그 묘지지대 위로 오르다 등로 좌측을 보니 저 아래 정오정이 내려다 보이고 그 정오정에서 이곳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도 내려다 보인다.

정오정에 붙어 있는 현판을 보면 이 정자가 정명정이고 산의 이름이 정명산임을 알 수 있는데 한자를 보면 울명자와 흐느낄오자가 비슷하고 뜻도 거의 같아 일맥상통하는 이름으로 판단되지만 정오산의 오자는 명자의 잘못된 한자 오기처럼 보인다.
뜻은 솥단지가 우는 정자와 산이란 의미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그 능선을 타고 잡목 사이로 오르니 눈에 묻힌 우거진 능선이 나타나고 그 능선을 타고 정오산(정명산) 정상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잠시 오르니 군부대 철조망을 다시 만나 그 철조망을 타고 좌측으로 오르니 철조망 안에 초소가 보이고 그 초소에는 사명 2명이 보초를 서고 있는데 관등성명을 물어 본다.

잠시 이야기 나눈 후 다시 벗었던 스패츠와 체인젠을 신고 그 철조망을 타고 오르니 금새 정오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군부대 안에서 장교가 나와 인사를 건네고 강렬히 짖어대는 군견을 제지하고 있다.

군부대를 담지 못하고 그 정오산 정상에서 진행방향의 등로를 담는 것으로 대신하는 시간이 아쉽기만 하다.

정명산(167.3봉, 정오산)은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포동과 도리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육군 항공작전사령부가 산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서 민간인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곳인데 산줄기 잇기 산행을 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정상에 오르게 된다.
정명정 정자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정명산의 뜻은 솥단지가 우는 정자와 산이란 의미인데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군 장교의 걱정스런 인사를 뒤로 하고 그곳 군부대 철조망이 있는 정오산 정상을 좌측으로 내려가니 눈의 깊이는 엷어졌지만 아직도 제법 많은 눈들이 쌓여있어 발목을 덮고 있다.

잠시 내려가니 무명안부를 지나고 잡목들이 우거진 눈길을 걸어 진행을 하니 또 다른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그 안부를 지나니 언덕같은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143 무명봉이다.

143 무명봉을 지나니 좌측의 소도니에서 우측의 흥성농장으로 이어지는 소도니 고갯마루도 지난다.

소도니(쇠도니)고개라 불려지는 소도니 혹은 쇠도니는 마을 뒤에 있는 뾰족한 산봉우리의 명칭인 소도니봉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보는데 삼한시대에 천신을 제사하던 지역을 소도라고 했다.
각 고을에 있는 이 지역에 신단을 베풀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매단 큰 장대를 세우고 제사를 올렸고 소도는 우리말의 솟대나 혹은 높은 터를 의미하는 솟터에서 유래되었을 것이라고 하는데 소도니봉의 한자명이 정명산(정오산)이어서 쇠돌이봉으로도 풀이되며 이것은 솟대 끝에 매단 쇠방울이 딸랑딸랑 울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소도니 혹은 쇠도니라는 지명은 솟대나 쇠돌이가 그 어원이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그 143 무명봉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는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잠시 후 넓은 비포장 임도를 만나 편안하게 걸어가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벌목 후 소나무를 식재한 장소가 펼쳐져 있는데 그 소나무 식재 구간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올랐다 내려 온 군부대 정상의 정오산과 군부대 통신탑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해룡지맥의 마국산에서 정오산까지 이어진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곳 양지 바른 곳에서 점심상을 펴고 맛난 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넓은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눈의 높이도 낮아져 있고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며 눈이 녹아 질퍽이기 시작해 체인젠을 벗고 출발을 하니 한결 수월하다.

잠시 더 평이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갑자기 민가 같은 건물이 나타나고 그 건물 위로 올라가니 몇사람들이 보여 확인해 보니 우주건설 킹스타운 분양 사무실이다.

그 분양 사무실을 지나 걸어가니 넓은 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는 우측 도로를 타고 걸어 들어간다.


하지만 그 우측 도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니 갑자기 등로는 녹색 철조망이 가로 막고 있어 더 이상 진행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그 철조망 옆으로 선답자들이 지나간 희미한 흔적들이 있어 그 흔적을 따라 가 본다.

잠시 따라가니 녹색 철조망 옆으로 수로가 보이고 그 수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가파른 절개지 아래 커다란 공장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 온다.

어렵게 그 녹색 철조망을 우측에 두고 걸어가니 다시 우거진 잡목 지대가 나타나고 어렵게 그 잡목을 뚫고 걸어 가 본다.


잠시 더 걸어가니 녹색 철조망은 직진으로 이어지고 등로는 좌측 아래로 공사장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넓은 공터가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공사 후 키 작은 소나무들을 식재한 장소가 보이고 방금 전 녹색 철조망을 타고 걸어오먀 좌측으로 보였던 건물들을 살펴보니 그 건물들은 (주)우아미가구 공장들이었다.

그 공터를 가로질러 걸어가니 잠시 후 한국 생산성본부가 있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만석고개에 도착을 한다.

좌측으로는 지나온 대포동이 우측으로는 대대리로 가는 길목의 고갯마루인데 왜 만석고개인지는 알 수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대대리는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양화천과 원두천 사이에 있는 평야지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한터, 아래한터 등이 있는데 한터는 대대라고도 불리며 대월면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고 아래한터는 한터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만석고개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서 좌측 대포동 방향으로 조금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 능선으로 오를 수 있는 넓은 비포장 임도가 보인다.

그 임도를 따라 오르니 절개지 정상부에서 등로는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잠시 더 소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몇개의 원형 개인 참호들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등로를 지나 낙엽진 활엽수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에 짧은 녹색 철조망이 쳐져 있고 그 옆으로는 LG 실트론에서 세운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출입금ㅂ지 안내판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멋진 활엽수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완만하게 올라 우측으로 진행이 된다.

눈이 깔려있는 등로를 타고 평이하게 걸어가니 봉우리 같지 않은 능선상에 171.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봉우리인지도 모르게 통과할 수 있는 그런 봉우리를 지나 다시 평이하게 걸어 본다.


그 봉우리를 지나 무명안부를 통과하니 또 다른 무명봉이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 우측으로 삼육요양원 건물이 보이는 원통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안내판이 서 있다.

그 안내판을 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좌측 원통산 방향으로 짧은 알바를 한 후 다시 뒤돌아 와 이제 진행 방향의 좌측 직진의 원통산 방향을 버리고 우측 삼육요양원 건물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원통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원통산은 해발193미터의 산으로 삼양농원 터에 옛 절이 있었는데 손님이 들끓어 이를 귀찮아하던 스님이 절 앞에 있는 노적봉 산맥을 끊어 내자 오던 손님이 안 오고 절이 망하므로 후회하고 원통해 하였다는 것이 주요 줄거리이다.


잠시 원통산 방향으로 알바를 한 후 곧바로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와 이제 우측 삼육요양원 방향으로 내려가니 잠깐 희미한 등로를 지나 요양원 건물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넓은 등로가 뚜렷히 다시 나타난다.

잠시 넓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 올라야 할 해룡산이 저 멀리 잡목 사이로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앞으로 보이는 해룡산을 바라보며 걸어가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에는 멋진 메타세콰이어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메타세콰이어 등로가 끝이나는 지점에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쳐져 있고 바로 앞으로 동네 아주머니 두명이 산책을 나온듯 가볍게 걸어가고 있다.

이곳이 지도상 나타나 있는 공시울고개처럼 보이는데 공시울에 관한 자료도 찾을 수 없고 주위에 공시울과 관계된 지명도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잠시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이제 오늘 산행 날머리인 이천시내가 잡목 사이로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벤취 쉼터들이 있는 178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벤취 쉼터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내려가니 또 다른 벤취 쉼터 2개가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왠 족구장 2곳이 나타난다.

그곳을 지나 우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하니 좌측으로 고담저수지와 우측으로는 약수터로 내려갈 수 있는 사거리 갈림 이정표가 보인다.

이제 해룡산 정상까지 35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가운데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이 공시울고개가 아닐까 생각되는 안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앞서 진행하던 아주머니 두분은 좌측 고담저수지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고 이제 이 산객 홀로 다시 해룡산 정상 방향으로 걸어 올라 본다.


고담저수지와 약수터 갈림 사거리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진행을 한다.

그 계단을 지나 오르니 무명봉에 오르는데 그 무명봉 정상에는 여러 방향으로 뻗어 있는 교통호가 어지럽게 펼쳐져 있다.

그 교통호 위에 놓여있는 다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해룡산 정상까지 50여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그곳 무명봉 정상의 교통호를 지나 이제 해룡산 정상을 향해 출발을 서두른다.


교통호가 있는 무명봉을 지나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넓은 헬기장이 보이는 해룡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 정상 우측 아래에는 벤취 쉼터도 보이고 동네 아주머니 두분이 담소를 나누고 있다.

셀카로 어렵게 추억 한장 남기고 정상석을 사진에 담아 본다.

해룡산(201봉)은 경기도 이천시의 동쪽 대월면에 위치한 산으로 해발고도는 201미터인데 해룡은 단순히 바다의 용(해신)만이 아니라 사해(사해)의 용이란 말로 결국 온 세상을 통치하는 임금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조선 시대 임금이 신하와 백성들을 모아 일정한 곳에서 함께 사냥하며 무예를 닦던 강무 행사와 또 가물 때 기우제를 올리던 곳이 해룡산이었다.
포천의 해룡산이 대표적인데 국조보감에 해룡산에서 강무하였다. 앞으로는 경기 외의 강무는 절대로 실시하지 말게 하라. 임실, 태안, 해주에서 강무를 행했던 일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고 하는 기록이 있다.
이와 관련해 기록으로 확인되지는 않으나 여주의 해룡산도 임금과 관련된 어떤 공식적 행사가 있었거나 아니면 여러 동리 차원의 기우제나 산신제가 이루어졌던 것이 계기가 되어 불리게 된 것으로 짐작된다.


그 해룡산 정상석에서 추억을 남기고 정상 우측의 헬기장 끝자락으로 가니 이천시 대월면의 들판과 도시가 하얀 눈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대월면은 경기도 이천시 중부에 있는 면으로 면소재지는 백양로로서 대체로 200미터 이하의 저평한 산지를 이루며 동부의 양화천 유역과 서부의 면계를 흐르는 복하천 유역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했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쌀, 땅콩, 채소 등이 생산되고 옛날 진상품이었던 자채쌀의 생산지로 유명하며 지역 특산물이었던 게걸무는 일부 농가에서만 재배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식품, 섬유, 화학 등 각종 제조업체가 들어서고 있다.
망월대, 효자박공성윤효행비 등을 비롯한 유물·유적이 많으며 영동고속도로가 면의 북부를 지나고 부발읍과의 경계에 이천 인터체인지가 있다.
초지, 도리, 구시, 군량, 송라, 장평, 부필, 사동, 대대, 대흥 등 14개 동리가 있다.


해룡지맥이란 이름을 만들어 준 그곳 해룡산 정상에서 멋진 추억을 남기고 헬기장을 지나 걸어가니 대흥리와 절터골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우측 아래 비닐하우스 방향으로 내려가는 절터골 방향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대흥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대흥리는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평야지대에 자리한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에는 범흥이와 큰골 등이 있는데 범흥이는 대흥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이고 큰골은 대곡이라고도 부르며 해룡산 밑 골짜기에 있다 하여 유래된 지명이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작은 키른 하나가 등로 옆에 보이고 굴곡진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등로를 따라 벤취 쉼터 하나가 설치되어 있는 171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을 지나 다시 눈이 제법 쌓여있는 안부를 지나니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나즈막하게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다 보니 또 다른 바위 하나를 통과한다.

그 바위를 지나자 마자 등로 좌측 앞으로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벤취 쉼터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크게 휘어져 아파트와 멀어지고 있다.


아파트와 멀어지는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또 다시 바위 암릉 구간이 나타난다.

그 바위 암릉지대를 지나니 등로 옆에 벤취 쉼터 하나가 보이고 곧이어 내리막 등로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그 나무 계단을 타고 계속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해룡산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고 대흥리와 소터골 갈림 삼거리 이정표도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건물 하나가 보이는데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주능선의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 넓은 비포장 임도를 따라 2차선 포장도로로 걸어가기로 한다.


우측 주 등로에는 잣나무인지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그 아래에는 잡목들이 보인다.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민가들과 공장 건물들이 보이고 잠시 후 소덕골이 있는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이곳 역시 도로 건너에는 SK 하이닉스 직원 사택을 짓고 있는 거대한 공사 현장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진행을 할 수가 없어 2차선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조금 걸어 내려간 후 도로 우측의 전봇대가 있는 곳에서 우측 공사현장 방향의 능선으로 올라가며 산행을 어렵게 이어가 본다.


잠시 소나무가 자라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거대한 공사장을 막고 있는 높은 담벼락을 만나 그 담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걸어 올라간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으로는 높은 담장 대신 녹색 철조망이 대신하고 그 녹색 철조망을 타고 올라가니 정상이 반 이상 잘려져 나간 112.4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등로 우측의 공사장과 그 뒤로 보이는 지나온 해룡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해룡산이 멀어지고 방금 전 지나온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그 112.4봉 정상에서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빠르게 내려가니 키 작은 잣나무들이 보이고 잠시 후 무명 안부를 통과한다.

그 안부를 지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무명봉으로 오르는데 그곳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무명 삼각점이 박혀 있다.

살펴보니 113 무명봉으로서 그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다시 눈이 쌓여 있는 굴곡진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걸어가니 이제 눈이 점점 사라지고 깊은 낙엽이 대신하는데 내렸던 눈이 녹으면서 비가 내린듯한 습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안부를 지나 다시 계속 이어지는 굴곡진 등로를 따르니 눈 앞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잡목 사이로 보이고 곧이어 그 아파트 아래 거대한 콘크리트 담장 아래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아파트 단지로 올라 갈 수 없어 그 높은 콘크리트 담장을 타고 우측으로 걸어가 아파트 단지 후문으로 걸어가 본다.


콘크리트 담장을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밭 경작지가 보이고 그 뒤로 지나온 마루금도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아파트로 이어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오르니 I PARK 아파트 111동과 107동이 보이고 곧이어 차량 통제 바리게이트가 설치된 아파트 후문을 통해 아파트 단지로 들어간다.

그 아파트 단지를 통해 걸어가니 아파트 정문이 나타나고 그 정문을 통해 I PARK 아파트와 헤어진다.


그 I PARK 아파트 정문을 통해 걸어 나가니 8번 시내버스 종점이 보이고 그곳에는 몇대의 버스가 대기중인데 버스 정류장에는 현대사원아파트라 적혀있다.

그 8번 버스 종점을 지나니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통과 할 수 있는 육교가 나타나고 그 육교 위에서 내려다 보는 영동고속도로가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영동고속도로 육교 위에서 바라보는 영동고속도로는 서울과 강릉을 잇는 영동고속도로는 1971년 12월 신갈에서 새말 구간을 개통하면서 동서횡단의 골격을 이뤘다가 잔여구간인 새말에서 강릉간 97 Km와 강릉에서 동해간 30 Km는 1974년 3월에 착공하여 이듬해 10월에 개통한 3년 6개월에 걸친 대공사였다.
멀게만 여겨졌던 서울과 강릉 사이가 자동차로 불과 세 시간대 거리로 단축됐는데 영동고속도로의 개통은 물류비용 절약, 국토 균형발전 등 경제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서울 등 수도권 주민들의 여가생활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매년 여름 휴양지로 설악산과 동해안이 1순위로 선정됐고 주말이면 고속도로는 극심한 정체로 몸살을 앓았다. 올 5월 말 착공되는 제2영동고속도로가 2014년 개통하면 지체와 정체 해소와 수도권 물류비 절감 및 지역 균형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영동고속도로를 육교를 통해 통과하니 도로 좌측으로 SK 하이닉스 공장 건물들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으로는 사원 주차장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하이닉스 반도체는 1949년 10월 15일 국도건설(주)로 설립한 뒤 1983년 2월 현대전자산업(주)으로 상호를 변경하였고 1984년 10월 반도체 1공장을 준공하였다.
1995년 1월 현대테크시스템과 현대미디어시스템을 합병하고 6월에 미국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에 참여하였으며 9월에 386CPU 칩을 개발하였고 같은 해 10월 256M SDRAM을 개발하여 한국 10대 제조업체로 진입하였다.
1996년 8월 인도의 위성통신 서비스 사업에 이어 9월에는 타이완 위성통신 서비스 사업에 참여하였고 12월에 증권거래소에 주식을 상장하였으며 1999년 10월 LG반도체(주)를 흡수합병하였고 2000년 전장사업부와 모터사업부를 각각 (주)현대오토넷과 현대이미지퀘스트로 분사하였다.
2001년 3월 (주)하이닉스반도체로 상호를 변경하고 8월에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하였다.
2002년 12월 그래픽 메모리용 초고속 128메가 DDR SDRAM과 메인 및 그래픽 메모리용 초고속 256메가 DDR SDRAM을 출시하였고 2003년 1월 333Mbps급 초고속 512메가 DDR SDRAM이 미국 인텔사(社)의 제품 인증을 획득하였다.
2005년 최고속·최대용량의 그래픽 메모리 512Mb GDDR DRAM을 개발하였고 2007년에는 최고속·최소형 1Gb 모바일 DRAM 개발에 이어 1Gb GDDR5를 개발하였다.
2009년 11월 중국에 후공정 합작공장 하이테크(HITECH)를 설립하여 2010년 6월에 준공하였으며 2012년 2월 SK텔레콤(주)이 최대주주가 된 뒤 3월에 지금의 상호로 변경하였다.
주요 사업은 DRAM, 낸드플래시메모리 및 MCP(Multi-chip Package) 등 메모리 반도체 제품의 생산과 수출, 시스템 LSI 분야인 CIS(CMOS 이미지 센서) 사업 등이다.
SK그룹의 계열회사이며 연결대상 종속회사로 에스케이하이이엔지(주), 에스케이하이스텍(주), 아미파워(주)와 미국, 영국, 싱가포르, 인도, 홍콩, 일본, 이탈리아, 타이완, 중국 등지의 해외 현지법인이 있다.


그 SK 하이닉스 반도체 건물과 주차장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타고 계속 걸어 내려가니 현대사원아파트 버스정류장을 지나 아파트 단지 옆으로 걸어 본다.

현대3차 아파트 버스정류장도 지나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아미사거리에 도착을 해 오늘 해룡지맥 제1구간 산행을 마무리 한다.

살펴보니 일 때문에 자주 다녔던 아미사거리이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몰랐던 시간이다.

아미 사거리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에 위치한 마을로서 양화천과 복하천 사이의 평야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마을에는 고실, 큰말 등이 있는데 고실은 나재울과 뒷고실 두 부락이 있으며 아미리 북동쪽 골짜기에 있다하여 생긴 지명이고 본말은 아미리의 원 마을로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해룡지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이제 3번 6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현대엘리베이터 공장을 지나 동서울행 버스를 탑승할 수 있는 SK하이닉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간다.

잠시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현대엘리베이터 공장 건물과 그 안에 거대한 탑이 보인다.밭 경작지를 지나올 때부터 보였던 거대한 탑을 드디어 날머리에 서서 바라보는 마음은 참으로 따뜻하기만 하다.

현대엘리베이터는 대한민국의 기업으로 현대그룹의 계열사로서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무빙워크(자동길), 주차설비 및 물류시스템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승강기 제조를 하고 있다.
2012년 기준 종업원 수 1186명이며 2011년 기준 매출액 8720여억 원에 영업이익 286억 원의 실적을 낸 회사로서 본사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 산136-1번지에 있다.


드디어 3번 6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SK하이닉스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왔다.

제법 긴 거리를 걸었는데 시간은 채 8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3번 도로를 건너 SK하이닉스 버스정류장에서 오후 3시에 출발하는 동서울행 버스에 탑승하여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벌써 서울에 다 도착을 했는데 생각보다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 정체가 없어 채 50여분도 걸리지 않아 강변역에 도착을 한다.

2호선 지하철을 이용해 편안하게 집으로 복귀해 샤워 후 정리를 하다 보니 또 하루가 지나고 있다.


나머지 구간은 거리도 짧고 높은 산도 없이 비산비야를 걸어 진행을 해야 되기에 마음 편히 내려 와 완주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