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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땅끝기맥(호남·완)

땅끝기맥 제3구간 돈밧재에서 밤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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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영암군의 땅끝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11월 01일과 02일 (토요 무박 일요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엔 가을비가 내리고 오전까지 짙은 안개 후 오후에 맑게 갠 종잡을 수 없었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6도에서 영상 15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땅끝기맥 종주대 총 39명과 함께

산행코스 : 돈밧재(835번 지방도로)-330봉-김해김씨 묘지지대-비포장 임도-불티재(13번 지방도로)-누릿재(220미터)-이동통신탑-도상 누릿재와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및 이정표(하치마을1.4 Km, 천황사주차장2.4 Km)-비포장 임도-산죽지대-거북바위-전망바위-사자봉 양면불상 

                   갈림삼거리-암릉구간-사자봉 갈림 삼거리-경포대능선 삼거리 이정표(천황봉 0.4 Km, 구름다리 1.3 Km 그리고 경포대 2.5 Km)-통천문 삼거리 

                   이정표(천황봉 0.3 Km, 바람폭포 1.1 Km, 천황주차장 2.7 Km)-나무계단-월출산 천황봉 (809봉)-소원바위-돼지바위 설명판-남근바위-

                   전망데크-바람재 삼거리 이정표(구정봉 0.5 Km와 천황봉 1.1 Km)-구정봉의 장군바위 유래판-경포대 갈림 삼거리 이정표 (도갑사 4.2 Km, 

                   경포대 2.8 Km, 구정봉 0.2 Km와 마애여래좌상 0.7 Km)-베틀굴-구정봉과 마애여래좌상 설명판-구정봉-바람재 복귀-천황봉 갈림삼거리 

                   이정표(구정봉 0.1 Km, 천황봉1.5 Km및 도갑사4.1 Km)-이정표(천황봉 1.9 Km와 구정봉0.5 Km, 도갑사 3.7 Km)-이정표(천황봉 2.2 Km와 

                   구정봉0.8 Km, 도갑사 3.4 Km와 억새밭 0.6 Km)-이정표(천황봉 2.3 Km와 구정봉0.9 Km, 억새밭 0.5 Km)-이정표(구정봉 1.1 Km, 

                   도갑사 3.1 Km와 억새밭 0.3 Km)-전망바위-헬기장-억새군락전경과 깃대종 설명판-억새밭 (미왕재) 이정표(도갑사 2.7 Km, 경포대 4.3 Km와 

                   천황봉 2.9 Km)-출입금지 목책-억새지대-십자안부-500봉-도갑산(401봉)-도갑재(320미터)-386봉-주지봉 갈림 삼거리봉-뫼봉 갈림 삼거리봉-

                   묵동재-월각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월각산정상 0.3 Km, 대월마을 3.4 Km, 땅끝기맥 월출산)-월각산(456봉)-삼거리 복귀-383봉-307봉 

                   대월마을 갈림 삼거리 이정표(월각산정상 1.3 Km, 대월마을 2.4 Km, 밤재 땅끝기맥 2.6 Km)-전망바위-출입금지 목책-묘지지대-비포장 임도-

                   밤재(2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82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우중에 어렵게 월출산 지나 미왕재부터 속도를 내 빠르게 진행하여 10시간 51분 (04시 41분부터 15시 33분까지)

교통편 : 땅끝기맥 40인승 전용 버스 이용 

땅끝기맥이란 ???

호남정맥의 바람봉 분기점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육지의 최남단인 땅끝까지 내려가는 도상거리 123 Km쯤 되는 산줄기다.
일부는 영산강의 남쪽 울타리가 되며 일부는 탐진강의 서쪽 울타리가 된다.
길이나 높이에 비해 월출산과 첨봉에서 오소재, 두륜산에서 달마산 지나 도솔봉등 암릉구간이많은 옹골찬 산줄기고 월출산, 두륜산, 달마산등 유명산을 지난다.
지나는 산은 계천산, 국사봉, 활성산, 월출산, 도갑산, 월각산, 별뫼산, 서기산, 첨봉, 두륜산, 대둔산, 달마산, 도솔봉등이다.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던 월출산에서의 조망을 월각산에서 짧게 보상 받았던 안타까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시작을 했으니 잘 마무리를 해야하는 것도 맞지만 일기예보에는 산행일인 일요일 산행지에 비가 내린다고 예보가 되어 있고 기암괴석이 많아 조망은 좋지만 암릉 마루금을 이루고 있는 월출산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산행 시간에 대한 걱정이 늘어나는 시간이다.

그래도 열정적으로 참여 신청을 해 주시는 땅끝기맥 종주대들의 성원에 힘입어 가능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을 해 보지만 너무나 많은 산우님들과 기획.테마 산행팀까지 나누고 나니 마음 한구석엔 고민들도 조금씩 늘어난다.


더욱이 월출산 전후로는 비법정 등로를 타고 진행해야 하는 마루금인데 국립공원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문자까지 보내 와 비법정 등로는 출입금지 구역이고 그곳으로 진행하면 벌금을 물린다고 알려오니 더욱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진행하다 도저히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억새밭인 미왕재에서 도갑사로 내려가기로 탈출로까지 정해 놓고 출발을 하니 무거웠던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죽전과 신갈을 거쳐 안성에서 마지막 종주대 한명을 태우고 내려가다 보니 생각지도 못하게 여산휴게소에서 잠시 정차 후 비몽사몽간에 눈을 감았다 떠 보니 종주대를 태운 버스는 마지막 고속도로 휴게소를 지나쳐 광주를 지나고 있다.


어렵게 광주쪽 24시 편의점 앞에서 정차해 간단하게 음료수를 구매하고 간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후 다시 출발하니 생각보다 늦은 새벽 4시 20여분에 산행 들머리인 돈밧재에 도착해 아직 내리지 않는 비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기획.테마팀을 버스에 남긴 채 스트레칭도 못하고 급하게 산행 들머리로 들어 간다.

제발 산행 중 비가 내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내딛는 첫발이 예전과 달리 무겁기만 하다.

오늘도 처음 시작은 중간에서 시작해 월출산 정상쯤에서 아침 식사 후 제일 후미를 모시고 진행하려 했지만 결국 내리는 비로 인해 산행은 뒤죽박죽이 되어 후미를 맡아 고생한 후미대장님이 종주를 못하고 도갑사로 하산하는 안타까운 상황은 두고 두고 미안한 시간이 되었다.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엔 하늘에 초롱초롱한 별들이 떠 있어 오늘만큼은 제발 일기예보가 틀리기를 바래보지만 역시나 도상에 표기된 누릿재를 지나면서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암릉을 오르는 시간에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강한 빗줄기와 함께 자욱한 안개가 밀려 와 조망 하나 구경하지 못하고 추위에 아침상도 펴지 못한 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어렵게 월출산 천황봉에 올라 간단히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아름다운 월출산의 기암괴석은 마음속으로만 그리면서 억새밭인 미왕재 직전 전망바위에 도착하니 내리던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자욱했던 안개가 지나온 땅끝기맥 마루금을 넘어 춤을 추고 그 춤사위 사이로 지나온 월출산 마루금이 처음으로 희미하게 다가온다.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 서서 깊은 탄성을 지르며 많은 사진을 남기다 보니 다시 한기가 느껴지고 아쉬움을 뒤로 남긴채 미왕재로 향한다.

그래도 그 마지막 암봉에서 아름다운 땅끝기맥 마루금을 보여주는 월출산의 모습에서 어렵게 진행하는 맥 잇기 산행의 묘미를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4시 20분경 산행 들머리인 83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돈밧재에 도착해 지난 구간 후미와 함께 내려오며 만나지 못했던 이정석 앞에서 사진 한장 남기는 시간은 참으로 소중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해발고도 276미터인 돈밧재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다양한 유래들이 보인다.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옴천면의 경계에 있는 돈밧재는 835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로서 옛날엔 한적하고 높은 고개여서 사람들이 재를 넘을 때 산적들이 돈을 받았다고 하여 불렀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다른 유래들도 보인다.

그 첫째가 이곳 돈밧재에서 온천이 나와 언젠가는 돈밭이 되리라는 유래와 함께 예전에 어느 부자가 가파른 고개를 넘기위해 닷냥의 돈을 주고 업혀서 넘었다고 하여 닷돈재라고 불렀다는 설이 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로 인해 산행 들머리에서 스트레칭도 못하고 인원 확인 후 기획.테마팀을 버스에 남겨 두고 도로 우측으로 나 있는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타고 곧바로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4시 40여분을 막 지나고 있다.

오늘도 중간 산우님들을 모시고 오르며 안전하게 밤재까지 걸어 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파른 급경사를 치고 오르니 이곳 역시 잡목이 우거져 있어 등로 찾기에 어려움이 가중되지만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들이 길을 터주고 있기에 진행하기에는 큰 무리가 없다.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는 평탄하게 이어지지만 잡목의 저항은 갈수록 심해지는 마루금으로 변하고 있다.

따르는 종주대를 기다리다 진행하기를 몇번인가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347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도착을 하고 선답자들의 띠지 몇장을 확인하면서 정상적인 산행을 진행하고 있음을 안내받고 있다.


다시 나즈막한 봉우리를 넘어 잡목을 헤치며 진행하니 분간도 하기 힘들 작은 봉우리들을 넘어 338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올라 잠시 긴 호흡을 하며 종주대를 기다려 본다.

어둠이 온 세상을 집어 삼키고 있기에 머리에 달고 있는 작은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해 준비한 지도를 살피며 현위치를 찾아 보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기에 GPX로 이용하고 있는 스마트 폰을 꺼내 고도를 확인하며 진행한다.

몇명의 종주대와 함께 다시 마루금을 타고 어둠을 헤치니 갑자기 등로엔 등로를 막고 있는 산죽들이 나타나고 저 멀리 앞에서는 선두가 알바를 했다며 종주대의 갈길을 알려주고 있다.


산죽밭을 지나 계속 전진하니 등로 위에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한동안 걸어가니 등로는 우측 사면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375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낭떨어지 사면 등로로 이용하고 있는 듯 보였다.

계속 진행하며 작은 돌에 새겨진 330봉을 찾아 보지만 어느새 그 작은 이정석도 사라졌는지 찾지 못하고 선답자들의 띠지만으로 330봉이라 생각되는 곳을 넘는다.

그곳을 넘으니 송전탑이 보이고 곧이어 글씨가 희미해 한참을 들여다 본 한규석님의 비석을 지나 김해김씨 묘지지대를 만난다.

그 묘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짧은 편백나무 숲을 지나 비포장 임도를 만나고 그 임도를 따라 내려가다 큰 바위 하나가 가운데에 보이는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임도를 따르니 금새 13번과 827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풀치재에 도착을 한다.

풀치재에는 낡은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한쪽에는 작천과 영암을 이어주는 도로임을 알려주는 사자상이 서 있다.

  

풀치재에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도로 건너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는 시멘트 옹벽을 넘어 미필적 고의로 범법자 신세가 된다.

이곳 풀치재는 영암군 영암읍에서 강진군 작천면을 잇는 고개로 13번 국도와 829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지도상에는 불티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으며 일제시대에 도로가 개통된 이 도로는 한때 교통의 요충지였으나 10여년 전 이 고개 아래에 13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터널이 생기면서 산행을 즐기는 산객들이나 임산물을 채취하기 위한 마을 사람들만이 찾아 오르는 한가한 고갯마루로 변하였다.

이 고갯마루의 이름은 터널이 생기기전까지만 해도 풀치재와 불티재 그리고 풋치재등 다양하게 불리워졌으나 터널이름을 짓기 위해 지자체와 국토관리청이 최종적으로 풀치재로 하기로 한 이후 풀치재로 굳어 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개이기도 하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다시 대나무 가림막이 서치된 곳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보이고 그곳을 우측으로 우회해 통과하여 계속 오름짓을 이어가니 주능선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가 잠시 사라져 정상 등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중간 그룹 후미에서 제일 후미 그룹을 기다리다 된비알 타고 오르니 중간 선두팀들이 주능선에 도착한 후 정상 마루금을 찾지 못해 잠시 우왕좌왕 하는듯 하더니 금새 우측으로 크게 꺾이는 마루금을 따라 일렬로 길게 잘 진행하고 있다.

주능선에서 우측으로 꺾여 몇발자국 진행하니 그곳에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나풀거리고 그 띠지 밑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고 꾸준하게 오르막을 오른다.

아직까지는 비가 내리고 있지 않지만 새벽에 봤던 별들은 사라진지 오래고 조만간 비가 내릴듯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하며 오늘 하루의 일출은 구름속에 숨어 버린다.

 

다시 꾸준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종주대 뒤를 따르니 벌써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며 머리에 차고 있던 헤드렌턴 불빛이 없어도 진행에 큰 지장이 없을듯 하여배낭 내려 헤드렌턴을 넣는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해 오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정상에도 선답자들의 띠지 두어장이 매달려 이 산객을 반겨 준다.

잠시 산행지도를 펴 살펴보니 345봉쯤 되어 보이는 봉우리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고 GPX에도 비슷한 고도가 표기되어 있어 믿어 본다.

이제 다시 정상에서 약간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여유롭게 걸어가니 하늘에선 금방이라도 비가 솟아질듯 어둠속에 먹구름이 밀려오는 느낌이 다가온다.

종주대원들과 이야기 나누며 진행하니 금새 잡목 사이로 안부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안부 건너편 오르막 등로 옆에 해발고도 220미터의 누릿재라 적혀있는 종이 코팅지가 반짝인다.

이 산객도 잘 알고 있는 홀대모 회원인 반더의자유님이 붙여 놓은 누릿재 코팅지로 이 블방 친구의 근황이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전라남도 영암군의 영암읍 개신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노릿재와 누룻재 또는 황치라고도 불리졌던 곳이다

노루재(누릿재)라는 이름은 고개가 황사출림(누런 뱀이 숲속에서 나오는 형상) 형의 명당이라는 것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영암읍 개신리에는 누릿재 폭포 있고 옛날에 죽은 송장이 이 폭포 물을 맞고 살아났고 꼽추가 정상인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폭포이다.

하지만 도상 누릿재는 조금 더 진행한 후 만나게 되는데 이 산객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이곳이 누릿재가 맞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누릿재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걸어 진행하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잠시 후 최근에 설치된 듯한 이동 통신탑이 보인다.

IT  국가답게 전국 어디를 가나 이런 다양한 형태의 이동 통신탑이 보이는 것 역시 세태의 변화를 실감하는 인공 구조물이 되어 버렸다.

그 이동통신탑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어둠속에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곳에는 이정표와 타자 및 벤취 그리고 출입을 제한하는 목책과 안내판이 붙어 있다.

한쪽에 붙어 있는 누릿재라는 글을 읽어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누릿재는 황토고개로 불리었었고 한자로는 황치라고도 합니다

예로부터 강진과 해남 등 남쪽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 등 시험을 보러 가기 위해 이 고개를 넘었고 많은 정치적 탄압을 받은 선비들이 이 고개를 넘어 남도나 제주도 등으로 귀양하는 길목으로 추사 김정희 및 다산 정약용 선생 등이 이 고개를 넘어가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지금도 군데군데 옛사람들의 주막터가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또 삼남의 교통 요충지로 강진 해남 사람들이 영암으로 장을 보러 다녔고 특히 남해안의 풍부한 해산물과 영암과 나주의 쌀과 보리로 물물교환하기 위해서 이 고갯마루를 넘어가곤 했답니다라고 적혀 있다.

천황사주차장에서 올라오면 거리상 2.4 Km 란 이정표와 함께 반대방향으로 하치마을까지 1.4 Km란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또 그 옆에는 삼남대로를 따라가는 정약용의 남도 유배길이란 안내판이 보이고 그 유배길을 조성해 놓은 약도도 보인다.

이곳에서부터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어렵게 금지 목책을 넘어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몸으로 깨우치는 시간이다.

신누릿재의 공터를 떠나 조금 더 오르니 다시 대나무로 만들어 세워 놓은 금지 목책이 보이고 우측으로 돌아 통과하니 이제부터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 한동안 그 임도를 따라 암봉 전망대로 오른다.

잠시 오르다 비가 굵어져 배낭 카버를 씌운 후 오르니 잠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뒤돌아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는 호사도 누린다.

누릿재가 내려가 보이고 345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 우측 저 멀리 불티재 지나 330봉도 보이는듯 한데 확실치는 않다.

  

굵은 빗줄기가 내리기 전 저 멀리 지나온 마루금도 둘러 본 후 본격적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등줄기에 땀방울 흘려 본다.

고도를 높힐수록 비포장 임도가 좁아지더니 금새 키 작은 산죽 등로로 변하면서 이제부터 본격적인 가을비가 대지를 적시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올라 선답자들이 좋은 조망을 즐겼다고 하는 장소에 도착을 하지만 오늘은 가랑비와 짙은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으니 다시 진행을 한다.

잠시 후 비에 젖은 우거진 산죽이 산객의 키 보다 더 웃자라 길을 막고 온몸을 물기에 흥건히 적신 후에야 보내줄 기세이다.

그 보이지 않는 등로를 뚫고 진행하다 보니 어느덧 온몸은 비옷을 입으나 입지 않으나 결과는 같은 뒤죽박죽의 산행이 되어 간다.


산죽을 헤치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작은 소로가 보이고 그 바로 앞에는 암봉이 희미하게 나타나길래 올라 봤더니 암봉 조망처 같은데 짙은 안개로 인해 보이는 것이 하나도 없어 다시 뒤돌아 내려 와 정상 마루금을 타고 진행을 서두른다.

잠시 뒤 작은 너럭바위 같은 암릉을 오르는데 그곳에서의 조망 역시 아름답다는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읽었기에 둘러보지만 보이는 것은 하얀 안개가 전부이다.

또 발걸음 재촉해 진행하니 555봉에 묘지는 없고 묘비만 있는 금강거사 해주최공 비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거북을 닮은 바위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잠시 쉬는 시간에도 벌써 한기가 돌기 시작하고 뒤따르던 종주대가 도착하자 마자 곧바로 다시 마루금을 따라 온몸에 열기를 채워보는 시간이다.


거북바위를 지나자 마자 녹슨 철판 위에 양면불상이라 적혀 있는 안내판이 나타나지만 추위와 안개로 인해 들려볼 생각도 못하고 다시 계속 발걸음만 움직이는데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아쉬움만 남는 시간이다.

이 양면불상에 관한 자료를 무등일보에서 찾아 올려 본다 

양면석불 사자봉삼층석탑은 월출산 천황봉 동남쪽 1천 300미터 거리의 해발고도 550미터의 산 정상에 천연적으로 조성된 100평 가량의 평탄한 지형에 자리해 있는데 이곳은 산등성이와 하늘이 맞닿는 공제선에 해당하여 멀리서도 석탑의 형태가 쉽게 확인되는 곳이다.
실제로 이곳은 8 Km 밖에 있는 영암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에서 식별이 가능하며 맑은 날에는 수십 킬로미터 거리의 나주시 금성산에서도 탑의 형태를 가늠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현재 탑은 무너져 땅 속에 반쯤 묻혀 있는 상태로 존재해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으며 탑은 영암 방면에서 바라봤을 때 바위로 이루어진 월출산 천황봉과 사자봉을 지나 완만한 토산으로 흐르는 지점에 위치한다.
마치 월출산의 수없이 솟아있는 바위봉우리를 동쪽으로 이끄는 형국을 이루고 있다라고 적혀있다.

보여야 할 달구봉과 사자봉 그리고 월출산의 기암괴석은 안개속에 숨어 버려 보여주질 않으니 아쉬움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나타나는 암릉을 타고 오르며 눈에 보이는 풍경만이 전부인듯 담아 보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짙게 남아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월출산 국립공원으로 들어서며 기암괴석의 수석전시장을 만날 시간이지만 내리는 빗줄기와 안개로 인해 그저 등로 주위의 풍경만 바라 볼 뿐이다.

암릉을 지나 진행하니 많은 바위들이 등로 좌우측을 가득 메우고 그 한가운데로 골짜기를 이루며 좁은 등로를 열어 놓고 있다.

초반부터 짧은 로프구간을 힘들게 올라 미끄러운 바위를 따라 조심 조심 올라가 본다.

 

힘겹게 로프 구간을 올라 바위와 키 작은 산죽을 따라 골짜기 치기를 하니 잠시 안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 바위 사이에 자라고 있는 몇 그루의 단풍나무에 곱게 피어 있는 올해 마지막 단풍이 될지도 모를 사진을 담아 본다.

참으로 안타까운 시간이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는 월출산의 기암괴석이기에 조만간 좋은 날을 잡아 다시 한번 내려와야 되겠다는 생각 뿐이다.

 

그 단풍나무를 지나 다시 바위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쉬며 주위를 둘러 보지만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이는 것도 없이 한기만 느끼다 보니 어느덧 아침 먹을 시간이지만 비가 내리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아침 먹을 장소 물색하기도 힘이 든다.

다시 조망 하나 구경하지 못하고 바로 옆에 있을 달구봉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그 전망바위를 내려 와 다시 계속 마루금을 타고 진행하니 더욱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는 시간이다.


암봉을 내려 와 계속 어렵게 진행하니 드디어 목책이 설치된 우측 사자봉 갈림 등로에 도착을 해 도둑고양이처럼 마음 졸이며 지나온 비법정 등로를 탈출하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으로 나란히 서 있는 아름다운 사자봉과 매봉 그리고 연실봉을 찾아 보지만 바로 앞에 솟아 있는 바위조차 분간하기 힘든 안개속이라 포기하고 걸음만 재촉한다. 

여기에서 잠시 영암이란 마을 이름을 유래시킨 자료를 찾아 본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이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굴려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한다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월출산 아래의 고을 이름도 영암이라 하였다고 전한다는 전설이 있는 월출산이다.

사자봉에 관한 자료는 백과사전을 통해 알아 본다.

사자봉은 천황봉의 동남쪽에 있는 봉우리로 해발 408 미터인데 사자봉이라는 명칭은 암봉의 모양이 수사자의 갈기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고도 하고 건너편의 바람폭포에서 바라본 모양이 사자가 앞발을 구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기괴한 모양의 암봉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데 월출산에 소금강산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 봉우리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월출산 봉우리 가운데 산세가 가장 험난한 구간으로서 리지등반(암릉등반) 명소로 알려져 있다고 알려진 사자봉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진행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사자봉 갈림 삼거리를 지낮 마자 천황사 주차장 방향에서 올라오는 일반 등산객들의 모습이 제법 많이 보이고 그 등산객들과 뒤섞여 천천히 진행한다.

눈 앞에 나타나는 철계단을 올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월출산 천황봉을 살펴 보지만 마음속으로만 그 아름다운 기암괴석을 보고 있을 뿐 현실에서는 하얀 안개 세상이다.

그 철계단을 지나 조금은 비어 있는 공터에서 아침상을 펴 보지만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과 흩날리는 가을비로 인해 밥을 먹고 있는지 아니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다.

자리가 좁아 상을 피다말고 이 산객은 다시 좁은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진행하기로 한다.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봉우리가 보이고 그곳 한적한 곳에 간단히 상을 펴고 빠르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철난간이 설치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경포대능선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눈 앞에 펼쳐진 대문을 지나 이정표를 카메라에 담으며 잠시 월출산의 금릉경포대를 생각해 본다.



대문을 지나자 마자 좁은 공터의 우측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해발고도 675미터의 경포대능선삼거리라 적혀 있다.

이곳 금릉경포대는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한 계곡으로 이름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월출산 금릉경포대 계곡은 천황봉과 구정봉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내리는 골짜기로 길이 2 Km 정도에 이르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사이를 맑은 물이 굽이치며 곡류와 폭포수를 빚어내고 있는 곳으로 그 뜻은 다음과 같다.

금릉경포대는 금릉과 경포대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금릉이란 1172년 고려시대 때부터 부르던 명칭으로 그 뜻의 유래가 들판에 위치한 성벽이라는 뜻과 중국 초나라 위왕이 왕의 기운이 있다하여 땅속에다 금덩이를 묻어놓고서 금릉이라 불렀다는 뜻의 2가지 유래가 있다.

경포대란 동해안 강릉의 경포대와 이름이 같지만 가운데 한자의 강포(강이나 항구가 드나드는 곳)가 아닌 베포(천을 넓게 펴다)를 써서 월출산에서 흐르는 물줄기의 모습이 무병베를 길게 늘어놓은 것처럼 보인다하여 경포대라 불렀고 비가 자주와서 풍년이 들기를 바라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참고로 강원도 강릉의 경포대 유래는 호수의 물이 거울처럼 맑아서 불려지게 된 명칭을 의미한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철 난간을 타고 천황봉 방향으로 걸어 올라간다.


철 난간을 타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오르니 통천문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이정표 우측으로는 구름다리와 경포대 그리고 천황사주차장 하산 갈림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그 이정표 옆에는 통천문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고 눈 앞으로는 철계단 위 저 멀리 우측으로 통천문이 안개속에 희미하게 드러나 있다.

통천문에 대한 설명을 읽어 보니 이 문은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미터 아래에 있다.

천황사쪽에서 바람폭포 또는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쪽으로 오를 때 만나는 마지막 관문의 바위로서 이 굴을 지나야 천황봉으로 오를 수 있다.

천황봉에 이르는 문의 역활 때문에 통천문이란 이름이 생긴 것인데 이는 월출산 최고봉을 지나 하늘로 통하는 높은 문이라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 바위굴에 들어서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월출산의 북서쪽 능선이 펼쳐지며 멀리 내려다 보이는 영암고을과 영산강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 온다.

하지만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야 할 영암마을과 영산강은 그저 마음속에서나 만나야 하는 들판이 되어 버렸다.

아쉬움을 달래며 철 계단을 올라 통천문을 통과한 후 월출산 최고봉인 천황봉으로 진행해 본다.


하지만 다시 철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넓은 공터에서 우측으로 돌아 더 올라야만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을 만나야 하니 하늘금을 긋고 있는 정상 가는 길이 쉽지만은 않다는생각이다.

공터에는 천황봉까지 1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 좌측으로 멋진 암봉이 서 있지만 그 모습조차 짙은 안개속에 희미하게 실루엣으로 다가 올 뿐이다.

이곳 좁은 공터의 이정표에서 다시 계단을 타고 마지막 발걸음에 힘을 주며 월출산 천황봉으로 이동해 본다.


이제 빗방울이 많이도 가늘어져 있지만 아직도 가랑비가 흩뿌리고 있다.

어렵게 정상으로 오르니 제법 많은 등산객들로 붐비고 어렵게 차례를 기다렸다 비옷 입고 오랫만에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월출산은 국내에서 규모가 제일 작은 국립공원으로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수석 전시장을 연상케하는데 남성적인 웅장함을 갖춘 북쪽의 가파른 돌산과 여성적인 섬세함을 갖춘 완만한 남쪽산이 조화를 이뤄 지리산, 변산, 천관산, 내장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꼽히고 있다. 

신라시대에는 월나산, 고려시대에는 월생산 그리고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고 불리어졌다.

천황봉은 물론이고 향로봉, 양자봉, 시루봉, 문필봉(월각산) 등 주요 봉우리들이 모두 돌로 되었고 불꽃처럼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는 월출산은 일반적인 산에서 볼 수 있는 나무는 보이지 않고 산죽이나 덤불이 먼지처럼 얹혀 희미한 푸른기를 띠고있을 뿐이다. 

풍수에서 말하는 이른바 석화성 즉 정상부가 돌로 된 것을 넘어 예리함의 상징 화성까지 띠었다.
나무보다 많고 별보다도 많은 바위는 저마다 무언가를 닮았는데 음굴, 남근바위, 통천문 등 동서로 기암이 늘어서 있어 바위 전시장을 이룬다. 

미왕재 등성이에는 억새밭이 이채롭고 무위사, 도갑사, 월남사지, 구림리 자락 사방의 즐비한 문화유적은 남도답사 1번지를 이룬다. 

이제 네번째 정상에 서 보는 월출산 천황봉이지만 오늘이 가장 가슴속 깊이 그 큰 울림으로 저장되고 있다.

그렇게 종주대와 등산객들 모두 한데 뒤엉켜 사진과 추억 몇장 남기고 다시 수정봉과 도갑사 방향의 방향 표시 이정표를 따라 철계단을 내려간다.

하지만 날씨만 좋았다면 지나온 등로와 이제부터 걸어야 할 바람재와 구정봉 그리고 저 멀리 월각산이 보이겠지만 오늘은 안개속에 숨어 얼굴 한번 보여주질 않으니 이것 역시 하늘의 뜻이라 생각을 하지만 아쉽기는 어쩔 수 없다.

등로 옆 작은 흔들바위를 닮아 있는 바위를 지나 삼장법사를 닮아 있는 바위 위 암봉도 담아 보지만 여전히 멋진 조망이 없음을 한탄해 보는 시간이다.


안개속에 희미한 실루엣으로 다가오는 바위를 두고 계단을 내려가니 또 다른 암봉 위에 삼각점을 닮아 있는 바위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날씨가 좋았다면 눈길 한번 받기 힘들었을 바위이지만 오늘만큼은 이 월출산 정상부의 주인이 되어 아쉬운 발길을 옮기는 종주대의 가슴에 위안을 주고 있다.

그 바위를 지나 계속 내려가니 천황봉에서 벌써 300미터 내려 왔다는 이정표가 반긴다.


삼각점인지 팽이를 닮은 바위를 지나 잠시 철 난간을 타고 걸어가니 비는 가늘어졌지만 안개는 더욱 짙어지며 세상 분간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가파른 내리막 철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타고 걸어 내려가니 계단 좌측으로는 거대한 암벽이 보이지만 짙은 안개로 인해 제대로 분간조차 하기 힘들다.

내려가며 앞을 보니 앞이 툭 트여 날씨가 좋았다면 진행해야 할 땅끝기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을 것 같은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 안타까운 시간만 흐른다.

안개속에 뾰족한 탑봉을 바라보며 잠시 무심으로 걸어가는 시간이다.


다시 그 바위지대를 지나자 등로 좌우측으로 갈색으로 변해버린 키 작은 억새가 가을비에 젖어 쓸쓸함을 더하고 ㅏㅁ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짧게 따르니 이제 월출산 천황봉에서 600미터 내려왔다는 이정표를 만난다.

등로 좌측으로 묘하게 생긴 바위 하나를 사진기에 담고 진행하니 이제 바위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양쪽에 바위지대를 두고 계속 진행하니 등로 우측의 작은 공터에 비닐천막을 치고 늦은 아침식사를 즐기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이고 잠시 웃음을 지어 본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 옆에 돼지바위 설명판이 서 있는데 들려진 코와 힘찬 모습이 마치 수컷돼지를 닮았다하여 그렇게 불려진다는 내용이다.

안개속에 보이지 않으니 그저 상상만으로 수컷돼지를 생각해 보는 순간이다.


돼지바위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진행하니 금새 쇠 난간들이 둘러쳐진 전망바위에 도착을 하지만 여전히 월출산은 그 존재를 알리지 않으련듯 짙은 안개속에 숨어 있다.

잠시 긴 숨한번 몰아 쉬고 이어지는 철 계단을 타고 앞에 우뚝 솟아 보이는 바위지대로 오른다.

잠시 그 바위지대로 오르니 앞이 정체를 일으켜 진행하지 못하고 잠시 기다리며 살펴보니 등로 옆에 남근바위 설명판이 보인다.

설명판에는 이 탐방로를 따라 도갑사 방향으로 10여미터 가시면 하늘을 향해 우뚝 서 있는 남근바위를 만날 수 있는데 이 남근바위를 만지거나 껴안으면 젊어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설명판이다.

베틀굴과 함께 음양을 상징한다는 설명도 곁들여 있다.

많은 등산객들과 뒤섞여 진행하기에 간단하게 사진 한장 남기고 빠르게 통과한다.


남근바위 앞에는 또 다른 바위들인 사랑바위, 장군바위(큰바위얼굴)과 베틀굴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함께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나무 전망데크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니 목책과 로프가 설치된 평이한 등로를 따르고 곧이어 바람재삼거리 안부에 도착을 한다.

두어번 들렸을 때 이곳에서 바라 본 월출산의 조망과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었다고 기억을 해 보지만 오늘은 그 주인공이 아니기에 다음을 기약해 본다.

경포대 하산 갈림길이 있는 바람재는 월출산 등로에서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로 내려가는 갈림길로 바람재 안부에는 이정표와 월출산 탐방안내도 그리고 바람을 측정하는 풍향계가 설치되어 있다.

바람폭포 바로 위 바람재는 월출산의 진면목을 바라볼 수 있는 최고의 전망 포인트로 왼쪽 밑에 구름다리가 아슬하게 걸려 있는 모습이 보이고 금방이라도 떨어질듯한 바위들이 벼랑 끝에 얹혀 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수석 전시장이라 할만한 풍경들이 모두 보이는 곳이다.

 

바람재삼거리를 지나 걸어 진행하니 여전히 한치 앞도 보이지 않지만 등로 주위에 서 있는 바위들만 희미한 실루엣으로 다가온다.

비에 젖은 바위 암릉들을 사진에 담으며 조금은 여유있게 진행을 하지만 이곳에서부터 조금씩 완주에 대한 걱정과 국립공원 직원들과의 숨바꼭질이 생각나 마음이 편치 못한 시간이 되어 버린다.

후미는 이제사 월출산 천황봉 정상에 도착해 있다는 무전기에서 흘러 나오는 소식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위지대를 지나 약간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낙엽진 잡목 사이 저 멀리 등산객들이 모여있는 안부가 보이고 그 안부로 오르니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늦은 아침상을 펴놓고 크게 떠들고 있다.

그 옆에는 구정봉의 장군바위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어 한번 읽어 본다.

전방 약 200미터 지점에 우락부락한 사람 얼굴을 한 바위가 있는데 이목구비의 형태와 머리위의 투구 모양이 뚜렷하여 마치 월출산을 지켜주는 장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바위이다.

또한 이 바위를 큰바위 얼굴이라고도 부른다.

그곳에서 잠시 좌측 땅끝기맥 마루금을 버리고 우측 베틀굴과 구정봉 방향으로 틀어 들어가니 베틀굴이 보인다.

이 굴은 임진왜란 때 이곳으로 피란한 여인들이 베를 짠 곳이라 전해지는데 굴속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여성의 음부 형상의 바위가 적나라한 나신을 드러낸다. 그래서 음수굴 또는 음혈이라고도 부르고 앞서 만났던 남근바위와 짝을 이뤄 음양의 조화를 맞춘 바위라 하겠다.


베틀굴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구정봉과 마애여래좌상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는데 마애여래좌상은 산행을 리딩하는 입장이다 보니 한번 들려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자료만 찾아 읽어 본다.

통일신라 후기 또는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월출산 정상 가까운 고지에 있는 암벽에 감실을 만들고 높이가 8.6 미터인 거대한 여래좌상을 부조로 새겼는데 근엄한 얼굴에 어깨가 당당하고 가슴이 풍만하며 옷주름은 가늘게 표현되었다. 

전체적인 느낌이 웅장하면서도 섬세하고 치밀한 조각 수법이 뛰어난 작품이지만 무표정한 얼굴이나 신체 각부의 표현은 형식화가 진전된 고려시대 거불들의 양식을 보인다.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 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 미터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는데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 Cm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있는 느낌을 주며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흘러 내리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주름과 양감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데 광배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

다음에 다시 월출산을 오르는 날 반드시 들려 확인하고 사진 한장 남기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통과한다.


그 설명판을 지나 바위 사이로 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출입금지 안내판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니 구정봉 30미터 안내 화살표도 보인다.

어렵게 바위 사이로 나 있는 좁은 등로를 타고 구정봉 정상부로 오르니 가랑비가 내리는 안개속에 바람이 강해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고 물이 고여있는 웅덩이 수만 세고 다시 구정봉 갈림 삼거리로 뒤돌아 나온다.

전남평야를 가로질러 천산만봉을 이룬 이 산의 최고봉은 천황봉이고 그 아래 서북쪽 738고지를 이룬 구정봉이 있다. 

이 구정봉은 30 미터 이상의 암반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 넓이는 장정 50여명이 앉을 수 있다. 

직경 2에서 3미터 안팎의 웅덩이가 패여 물이 항상 괴어 있는데 이 웅덩이를 일러 정이라 하고 이 정상의 암반을 신령암이라고도 하며 삼동석 이라고도 한다. 

이 우물은 옛날 동차진이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사 벼락을 맞아 죽을 때 생긴 것이라 전해오며 동차진은 구림에 유배되어 내려와 살던 어느 장군의 유복자로 태어났다.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능선을 따라 약 1 Km 지점에 있는 구정봉(743미터)은 월출산의 제2봉으로 금수굴을 지나 올라가는데 산정은 평탄한 암반으로 되어 있으며 9개의 웅덩이가 있어 구정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아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높이 4미터에 폭 2미터 그리고 길이 8미터의 암굴은 캠프장으로 이용된다. 

월출산계곡은 구정봉 남쪽에 있으며 이곳에 명소인 금릉경포대가 있다.

참으로 멋진 암봉 위에 놓여진 9개의 웅덩이로서 그 이름과 유래가 사람들 이목을 끌기에 충분해 보이는 구정봉이다.


구정봉에서 강한 바람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곧바로 내려 와 헬기장 안부로 되돌아 나온다.

이제 억새밭 1.1 Km 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올려다 보이는 향로봉은 비에 젖고 조망이 없어 통과하고 그 우측 우회 등로를 이용해 계속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간간이 나타나는 단풍나무 아래 파란 산죽밭이 펼쳐져 있고 안개가 만든 몽환적인 풍경이 어려운 산행길에 산객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 준다.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의 알록달록한 등산복이 산중에 피어 있는 단풍보다 더 곱게 빛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계속 향로봉 우측 우회 산죽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이제 구정봉에서 500미터 진행해 왔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그 이정표를 지나 걸어가니 암반 바위길이 나타나는가 싶더니바위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내려가는듯 싶던 등로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막 등로로 진행하니 저 멀리 양쪽에 바위를 둔 안부가 올려다 보인다.

그 안부에는 이제 억새밭까지 6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안부를 지나 계속 진행하니 등로 옆으로 큰 바위 몇개를 지나 다시 멋진 산죽밭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조금 더 멋진 단풍나무들이 마지막 가는 가을을 아쉬워하는듯 잔바람에서 나풀거리며 지나가는 산객을 반겨주는듯 하다.

등로 우측으로 통천문을 닮은 바위가 있어 담은 후 억새밭까지 5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뒤 저 멀리 방금 전 지나온 향로봉이 희미하게 다가온다.

사진 한장 남기고 전진하니 등로 옆으로도 멋진 암봉들이 나타나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다.

저 멀리 부처님을 닮은듯 보이는 바위 하나가 눈길을 사로 잡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나무데크로 이뤄진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방금 전 지나온 등로가 조금은 약해진 안개속으로 제 모습을 드러내고 그 모습에 취해 잠시 발걸음을 멈춰 본다.

이제 억새밭까지 3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암릉 위로 오르니 짙었던 안개가 조금씩 벗어지며 지나온 향로봉 능선이 너무나 아름답게 춤추는 안개와 멋진 조화를이루고 있다.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많은 사진을 남기는 시간이 너무나 짧고 소중하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월출산을 완전히 벗어나기 전 그 아름다운 암봉을 조금 보여주는 자연에 감사한 마음을 전해본다.


오랫동안 그 암봉에 머물 수 없기에 다시 내려 와 정상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구정봉에서 1.1 Km 지나왔다는 이정목이 보이고 잠시 잡목과 억새 등로를 따라 여유를 가져 본다.

그렇게 작은 고갯마루를 넘으니 등로 우측으로 넓은 헬기장이 보이고 등로는 좌측 넓은 등로에 목책이 설치되어 있다.

그 목가적인 등로 위에 엷게 드리워진 안개를 음미하며 헬기장을 넘는다.

 

억새밭 사이로 나 있는 등로 양쪽으로 목책이 설치된 등로를 따르니 저 멀리 미왕재가 내려다 보이는 곳 우측으로 전망데크가 보여 잠시 들려 본다.

그곳에는 넓은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고 한쪽에는 억새군락전경 사진과 깃대종 설명판 그리고 월출산국립공원 안내도가 보인다.

그 아래 저 멀리 보이는 억새밭 지나 미왕재에는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우측 도갑사로 내려갈지 아니면 땅끝기맥 종주를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는듯 보인다.


이제 전망데크를 나와 다시 나무목책이 설치된 목가적인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저 아래 미왕재 안부가 눈에 선명하게 다가온다.

몇명의 종주대와 사진 몇장 남기고 고민하는 사이 여산우님들을 우측 도갑사로 내려 보내고 종주대원 몇명만이 땅끝기맥 종주를 위해 잠시 또 범법자 신세가 되기로 한다.

현재 시간 10시 50여분, 진행 거리로 보면 아직 반도 진행을 못했는데 산행시간은 6시간 이상 걸렸고 앞으로 남아 있는 산행거리는 약 13 Km인데 서울로 출발하는 시간을 늦어도 오후 6시 이전이라 생각하면 날머리에 도착 시간은 늦어도 오후 3시 30여분까지 도착을 해야 하기에 아쉽지만 몇명의 여산우님들을 이곳 도갑사로 하산 시킨 것이다.


여산우님들을 우측 도갑사로 하산 시키고 땅끝기맥 종주대는 직진을 해 목책으로 가로막은 출입금지 지역을 지나 본격적인 땅끝기맥 산행을 진행해 본다.

넓은 너럭바위 위를 지나 목책을 넘으니 생각했던 공단 직원의 제지가 없어 다행이지만 산행거리가 많이 남아 날머리 도착 시간이 조금은 걱정이 되는 시점이다.

그래도 기분 좋게 금지목책을 무사히 통과해 진행할 수 있음에 가을비와 안개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시간이었을지도 모를 순간이다.


미왕재 일명 억새밭에 세워진 금지 목책을 조심스럽게 넘어 들어가니 빛바랜 억새밭이 펼쳐져 있고 그 한가운데로 나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등로 우측으로 보여야 할 노적봉은 역시 안개로 인해 전혀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 더 지나 500봉을 넘으니 묘지 한기를 지나 제법 키가 큰 산죽밭이 이어진다.

그 산죽밭을 지나 진행하니 대나무 목책이 앞길을 막지만 중단할 수 없는 맥 잇기 산행이기에 숨을 죽이고 다시 그 대나무 목책 옆으로 돌아 산죽밭을 오른다.

대나무 목책 안부를 지나 오르니 더욱 선명한 산죽과 칼라풀한 가을 단풍이 안개속에 또 다른 매력을 뽐내고 있다.

 

잠시 등로 우측으로 가깝게 벗어지고 있는 안개속으로 가을 단풍을 살펴보지만 아직은 시간이 아니란듯 제대로 된 모습은 아니다.

그렇게 지루하게 진행될쯤 등로 우측으로 안개가 살짝 사라지며 도갑리쪽 도갑사 자락과 도갑저수지가 내려다 보이지만 저 도갑저수지 위로 보여야 할 주지봉은 아직도 안개속에 묻혀있다.

참으로 멀리도 내려 와 왜 이렇게 맥 잇기 산행에 매진을 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제부터 조금은 날씨가 개이는지 안개의 농도가 엷어지고 있다.


잠시 등로 좌측이 확 트인 전망대에 올라 주위를 살펴 보지만 시야는 아주 제한적이다

그래도 방금 전 지나온 500봉이 안개의 춤사위에 희미하게 보이고 좌측으로 강진땅이 내려다 보이니 그마나 살 것 같다는 느낌은 이 산객만의 느낌일련지

잠시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등로 옆을 지키고 있는 좋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나즈막한 두어개의 봉우리를 넘어 지독한 산죽밭을 통과한다.

내린 빗방울이 아직 남아 있어 지나갈 때마다 차가운 물방울이 살갗을 파고드는 느낌이다.


다시 산죽밭을 타고 진행하니 알아 볼 수 없는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봉우리 하나를 오르는데 처음에는 그곳이 도갑산이라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이곳은 아직 도갑산이 아닌 전위봉이다.

전위봉에서는 큰 높낮이 없이 계속 이어지는 산죽밭을 따르니 드디어 정상에 약간의 공터 형태를 하고 있고 주위엔 온통 산죽밭으로 이뤄진 도갑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오늘은 그 정상 한쪽에 고운 단풍잎을 피우고 있는 단풍나무 두어그루가 눈길을 잡는다.

도갑산에 관한 자료는 많지 않아 찾기 어려웠지만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으로 선답자가붙여 놓은 정상표시가 있다고 알았는데 오늘 올라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그저 평이한 작은 공터의 모습 그대로이다.

조금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사진 두어장 남기고 곧바로 도갑산을 출발한다.


도갑산을 넘으니 산죽보다는 빛바랜 잡목과 울긋불긋 마지막 가을을 아쉬워하는 단풍들 그리고 등로 옆에는 웃자란 억새가 또 다른 풍경을 만들며 산객의 발걸음에 힘을 실어 준다.

예쁜 단풍을 따라 나즈막한 봉우리를 올랐다 내려가니 아무 표식도 없는 도갑재를 지나는데 무심코 지나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잡목이 우거진 안부이다.

다시 산죽밭을 따라 큰 어려움 없이 이어지는 마루금을 걸어 본다.


잠시 등로가 키 큰 활엽수의 멋진 마루금으로 변하는가 싶더니 등로 우측으로 안개가 사라지며 도갑저수지와 도갑사 그리고 그 뒤로 시원하게 올려다 보이는 주지봉이 아름답다.

주지봉 우측 저 멀리에는 지나온 월출산의 암봉이 희미하게 눈에 밟힐듯 다가온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금을 타고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니 예쁜 단풍이 발걸음도 멈추게 만들고 그렇게 속도를 내 보는 시간이다.

잠시 잡목 사이로 환하게 나타난 월출산도 뒤돌아 보고 진행하다 보니 등로 우측 저 멀리 물이 말라버린 학파제1저수지라 생각되는 저수지가 아름답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목포와 바다를 찾아 보지만 아직은 그곳까지 보여 줄 날씨는 아닌듯 하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잡목 사이로 멋진 주지봉과 뾰족한 암봉의 문필봉이 보이지만 사진으로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나즈막한 봉우리에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주지봉과 문필봉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지만 이곳 역시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곳이지만 주지봉 방향으로 생각보다 많은 띠지들이 보인다.

이제 등로는 남서쪽에서 남동쪽으로 꺽여 진행되는데 생각보다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남동쪽으로 틀어 진행하니 좌측 저 멀리 안개속에 숨어 있던 월출산의 암릉이 조금씩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고 방금 전 지나 온 땅끝기맥 마루금 넘어 멋진 주지봉과 문필봉이 고개를 내밀고 헤어지는 아쉬움을 표한다.


이제 조금씩 날씨가 좋아지며 짙었던 안개도 엷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으로 강진군의 성전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방금 전 지나온 월출산 줄기를 따라 남쪽으로 흘러가는 산줄기가 참으로 아름답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서울 가까이에 있는 산에는 만산홍엽이 되어 온산이 울긋불긋 단풍이 한창인데 이곳은 아직도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한듯 푸르름이 대세이다.


성전 저수지 좌측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도갑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땅끝기맥 마루금 넘어 희미하지만 제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월출산이 길게 줄지어 암봉의 위력을 실감나게 만들고 있다.

그 아름다움에 다시 발걸음 멈추고 잠시 조망을 즐겨 보는 여유도 가져 본다.

시간을 보니 이제 12시 30여분이 지나고 있어 약속된 시간내에는 날머리인 밤재에 충분히 도착이 가능하리란 생각이다.


다시 전망 좋은 곳을 지나 나즈막한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폐헬기장이 나타나지만 이곳 역시 주의깊게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소이다.

다시 이어지는 산죽밭을 따라 잠시 느긋한 발걸음을 옮겨보니 저 멀리 너무나도 고운 단풍이 이제 만개한 꽃처럼 다가온다.

함께 진행하는 종줃 몇명을 그 고운 단풍 아래 세우고 몇장의 사진을 담아 드리는 여유로운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도갑사로 내려간 기획.테마팀과 탈출을 한 종주대들은 거의 다 도갑사 주차장에 모여 인원 확인만 남아 있다는 무전기속 전언을 들으니 잠시 잊고 진행하던 걱정 하나가 사라지는 느낌이다.


이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고 조금 더 걸어가니 있는듯 없는듯 묵동치가 나타나지만 이곳 역시 뚜렷한 흔적조차 사라지고 없다.

묵동치 지나 평편한 곳에서 잠시 쉬며 배낭속에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쉬고 있으니 한무리의 등산객들이 월각산을 넘어 거꾸로 진행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묵동치는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죽동마을과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의 경계에 있는 안부로서 고개의 지명은 우측 아래에 있는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에서 따온듯 하다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는 옛부터 먹을 만드는 곳이라 하여 묵동 혹은 먹뱅이라고 하였다는 설과 마을 북쪽에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어 옥녀가 글을 쓰려는데 붓과 벼루는 있는데 먹이 없어서 마을 이름을 먹뱅이라 하였다는 설도 있다.

하나 하나 모두 소중한 우리 국토의 지명이자 전설들인데 이제 교통이 발달되고 빠름만 찾다 보니 그 소중한 가치들이 모두 사라지는 듯 해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묵동치 지난 좁은 공터에서 제법 많은 종주대들과 한동안 쉬며 간식으로 허기를 면한 후 곧바로 된비알을 타고 월각산으로 오르는 등로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한동안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갈림 삼거리쯤 올랐을 때 잠시 뒤돌아 보니 이제 지나온 땅끝기맥 마루금 뒤 저 멀리 문필봉과 주지봉 그리고 월출산 자락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다시 조금 더 힘을 내 이마에도 굵은 땀방울이 맺힐쯤 드디어 월각산 갈림 삼거리 이정표에 도착해 긴 한숨을 토해내곤 곧바로 좌측 등로를 타고 월각산으로 향한다.

월각산 정상까지 300미터 거리이고 대월마을까지 3.6 Km란 거리가 표기되어 있지만 방금 전 올라 온 방향으로 땅끝기맥 월출산 방향은 거리 표시가 없다.

배낭을 등로에 버리듯 내팽개치고 월각산 오르는 시간 역시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역시 체력적으로 힘이 들고 날머리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에 정신적으로 지쳐가는 시간처럼 느껴진다.


어렵게 진행해 드디어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월각산에 도착을 해 사진 몇장 남기고 함께 오른 종주대의 사진들도 담아 드린다.

월각산(456봉)은 영암 월출산에서 구정봉을 거쳐 도갑산으로 진행하면 주지봉 갈림길에서 갈라져 별매산으로 이어지는 구간에 자리한 산이지만 아직까지는 찾는이가 그리 많지 않아 산행시 이정표를 따라 주의하여야 한다. 

주로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지봉과 문필봉으로 산행을 이어갈 수가 있으며 산행은 주로 2번 국도상의 월평교차로나 대월마을에서 시작하는것이 좋다. 

아기자기한 암봉들로 구성되여진 월각산은 월출산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조망처이다.

주지봉과 문필봉을 비롯한 월출산의 빼어난 자태를 한껏 품어볼 수 있으며 또한 장흥의 수인산과 재암산 그리고 사자산으로 이어지는 산세가 조망되고 가까이에 별매산에서 가학산과 흑석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주지봉을 비켜나가서 문필봉에 오른 후 다시 되돌아 주지봉과 죽순봉을 거쳐 주지골로 내려서서 왕인박사 기념공원으로 하산하면 된다.

생각보다 멋진 조망처이기에 많은 시간 이곳 월각산 정상에서 쉬며 오늘 하루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을 가슴속 깊이 숨겨 놓고 내려오는 시간이 되었다.


먼저 월각산 이정석 넘어 북쪽을 바라보니 파란 하늘엔 하얀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그 아래 월출산 천황봉을 가운데 두고 동서방향으로 아름다운 암릉이 길게 펼쳐져 있다.

좌측으로 지나온 향로봉과 구정봉이 보이고 그 우측 한가운데에 높고 늠름한 천황봉이 우뚝 솟아 있다.

우측 저 멀리에는 사자봉이 얼굴만 내민채 만나지 못하고 지나감을 아쉬워하는 듯 하다.

오랫만에 만나는 너무나 아름다운 마루금에 소름이 돋을만큼 여운이 남아 있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월각산 정상에서 그리운 월출산 천황봉을 조망한 후 잠시 월각산 아래로 내려가니 그곳에 또 다른 전망바위가 보이고 그곳에서는 동쪽방향으로 강진군 작천면 방향의 나즈막한 산줄기와 황금들녘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작은 송월제가 내려다 보인다.

작천이란 이름은 이곳을 흐르는 강의 이름으로 현종년도에 편찬한 동국여지승람에 작천은 일명 송계니 월출산에서 발원하여 강진현 북쪽 고도강(성전면 수양리)을 지나 장흥부로 흐른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옛날 우리 선조들이 까치내라고 불러오던 하천의 이름을 한자로 옮겨 기록한 것을 취하여 3면을 합하면서 작천면이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진행 방향인 남쪽으로는 잡목 사이로 밤재로 이어지는 오늘 걸어야 할 땅끝기맥 마루금이 숨어 있고 그 밤재 넘어 다음 구간에 올라야 할 별뫼산이 우뚝하고 그곳에서 땅끝기맥은 좌측으로 흐르지만 우측으로 아름다운 흑석지맥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언젠가는 꼭 한번 올라야 할 흑석지맥이기에 가슴속 깊이 그 풍경을 남겨두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지나온 월출산과 가야 할 별뫼산 방향의 조망을 즐긴 후 월각산 갈림 삼거리로 내려오니 늦게 올라오는 마지막 후미 종주대 2명이 어렵게 월각산으로 오르고 있다.

잠시 갈림 삼거리에서 버스에 연락을 하니 밤재에서 공단직원의 순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연락이 와 이제부터 한그룹이 되어 조심스럽게 마지막 날머리를 통과하기로 한다.

마지막 종주대를 만나 조금 더 밤재 방향으로 진행하니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가 기다렸다 이제 10여명이 넘는 종주대를 이루며 마지막 날머리인 밤재로 향한다.

잠시 더 내려가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보이는 바위 위에서 방금 전 다녀 온 월각산의 풍경을 사진에 담고 등로 좌측 아래를 내려다 보니 강진군 성전면 들녘이 보인다.

강진군 성전면은 전라남도 강진군의 북서쪽에 위치한 면으로 동쪽에 수암산이 있고 서쪽에 월각산이 있으며 북쪽은 월출산국립공원에 속한다. 

월출산에서 발원한 금강이 남쪽으로 흘러 성전리 일대에서 넓은 평지를 이루다가 월산천을 합류하며 동쪽으로 흐르고 수양리 일대에서 성전천을 합류한다. 

호구총수에서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는 고읍면, 안주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가 1914년 이 두 면이 합쳐져서 성전면이 되었다. 

본래 고읍면의 성 밖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해서 성밖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성밭이 되고 한자로 표기하여 성전이 되었다고 한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과 조선지형도에서 처음으로 지명을 살펴볼 수 있는데 현재 11개 법정리를 관할하고 있는 행정구역 면이다.


지금부터 가야 할 땅끝기맥 마루금 좌측으로는 멋진 암봉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지도에는 나와있지 않은 무명봉처럼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진행해 383봉을 넘어 다시 안부로 내려갔다 오르니 월각산에서 1.3 Km 지나왔고 좌측으로는 대월마을까지 2.4 Km 남아 있으며 오늘 목적지인 밤재까지 2.6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그곳에서 잠시 지도를 살펴보니 방금 전 봤던 땅끝기맥 좌측 능선은 420봉 암봉을 지나 장군바위와 악어바위를 지나 대월리 사무소로 내려가는 산줄기가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다녀온 월각산의 뾰족봉이 벌써 저 멀리 잡목 사이로 멀어지고 있다.


대월마을 갈림 삼거리에는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데 마침 좌측 대월마을과 방금 전 지나온 월각산 방향의 거리와 방향 표시는 잘 보이지만 우측 밤재로 이어지는 땅끝기맥방향과 거리 표시는 떨어져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언젠가는 이 떨어진 이정표도 사라지게 되면 후답자들이 고생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괜시리 걱정이 앞서는 것은 무엇인지...

이제 날머리인 밤재까지는 30여분 남아 있다는 생각으로 발걸음도 가볍게 진행하는 시간이다.


우측 밤재 방향으로 틀어 진행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에는 다시 파란 키 작은 산죽밭이 이어지고 그렇게 평이한 가을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등로를 따르니 눈 앞에 갑자기 조망이 펼쳐지며 마루금은 우측으로 꺾여 내려가고 있다.

짧은 급경사 내리막 직전의 조망 좋은 전망처에서 지금부터 걸어야 할 땅끝기맥과 밤재 그리고 다음구간에 올라야 할 별뫼산 우측 저 멀리 흑석지맥이 부르고 있다.

오늘 이 마음이라면 조만간 다시 내려 와 저 흑석지맥 마루금을 타고 오늘 걸었던 땅끝기맥을 추억할 시간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진행할 방향 뿐만 아니라 잡목 저 멀리 오늘 걸었던 땅끝기맥 마루금 역시 환상의 모습으로 멀어지는 이 산객을 배웅하고 있다.

지나 온 땅끝기맥 좌측 저 멀리 우뚝 솟아 있는 암봉의 문필봉과 그 우측으로 주지봉이 반갑고 바로 앞 월각산을 경계로 그 뒤 우측으로 월출산 천황봉과 이어진 암릉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아무리 갈길이 바빠도 놓치고 그냥 갈 수 없어 몇장의 사진을 더 담은 후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를 따라 빠르게 발걸음을 옮겨 본다.


그렇게 멋진 조망을 감상한 후 다시 마루금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강진의 월평제가 가깝게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돌아 별뫼산과 흑석지맥의 산줄기가 반갑게 반긴다.

그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 다시 단풍이 고운 등로가 이어지면서 평이하게 변하고 있다.

한동안 정신없이 걷다보니 낙엽 등로가 나타나고 파란 동백나무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름도 없는 낙엽 안부가 보인다.

이제 282봉 지나 밤재로 향하는 마지막 마루금이 아닐까 생각되는 지점이다.


그 낙엽 안부를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그곳에도 어김없이 대나무로 엮은 목책이 등로를 가로막으며 범법자가 되어 있음을 실감시켜 주고 있다.

옆으로 돌아 그 대나무 목책을 벗어나며 범법자의 신세는 면했지만 밤재에서 지키고 있을지도 모를 공단직원의 동태를 확인하기 위해 버스와 연락을 해 보니 아직까지는 별 특이한 동향은 없는 것 같아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지금까지 많은 산행을 해 보지만 순수하게 산행을 위해 산에 드는 산객들로 인한 자연 파괴는 거의 보지 못했지만 약초나 버섯등을 채취하기 위한 사람들에 의한 자연 훼손은 심각한 수준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 대나무 목책을 지나니 이제 등로 주위에는 많은 묘지지대들이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 함양박씨 묘지지대를 지나니 다시 묘 한기가 나타나고 묘비가 없는 묘지들이 연달아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몇군데의 묘지지대를 통과해 걸어가니 드디어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며 조금은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바로 발아래에 2번 4차선 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그 건너편에 다음구간 산행 들머리인 강성철강과 채석장 건물들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꺾이는 임도를 타고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2번 지방도로를 좌측에 두고 곧이러 그 2번 국도로 내려서며 오늘 하루 어렵게 땅끝기맥 제3구간을 마무리 한다.

바로 앞에는 넓은 공터가 보이고 그 앞에 SK  주유소가 있으며 그 한쪽에 우리가 타고 가야 할 버스가 정차되어 있다.

어렵게 하루를 마감하며 영암군에서 밤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본다.

밤재는 영암군 학산면 묵동리와 강진군 성전면 월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목포와 부산을 잇는 2번 국도가 지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재와 관련된 옛 기록을 영암군 자료에서 살펴보면 율치 또는 율현으로 기재되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율현은 군의 서남쪽 25리에 있다라고 기재되어 있다.

대동지지에는 율치로 기록되어 있고 호남지도에는 가학치 동쪽의 고개로서 율치가 기록되어 있으며 또한 1872년 지방지도에는 율치 해동지도와 해동 여지도에는 율현으로 기록되어 있는 고갯마루이다.


이렇게 또 한구간 어렵게 완성하고 버스를 이용해 영암으로 이동한 후 지난 구간 이용했던 서울온천탕에서 땀방울을 씻어 낸 후 삼학식당으로 들어가 짱뚱어탕과 돼지고개 두루치기로 하루의 피로를 풀어 본다.

단풍철이라 서울 귀경이 걱정이 되었지만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밤 11시에 사당에 무사히 도착해 귀가를 서두르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로 인해 다음 구간부터는 겨울 산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다음 구간부터는 조금 더 함께하며 종주대 상호간에 믿고 신뢰 할 수 있는 산행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월출산에서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가슴에 묻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