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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완도지맥(섬·무·완)

완도지맥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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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남도 완도군의 완도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4년 04월 11일과 12일 (토요 무박 산행)

산행날씨 : 오전엔 구름 낀 흐린 날씨였으나 점심 때부터 맑고 화창한 초여름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8도에서 영상 22도

산행인원 : 칠갑산 포함 3450온누리 산악회 32명

산행코스 : 완도대교 13번 국도-철계단-시멘트 포장도로-철망지대-비닐하우스-능선진입-239봉 삼각점-폐 군초소-개척등로지대-교인동 2차선 포장도로-

                   지하통로-능선진입-개척등로지대-18번 송전탑-19번 송전탑-주능선 접속-등산로 이정표-업진봉(544봉)-산죽지대-대야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백운봉 0.2 Km, 숙승봉 1.8 Km, 대야리 3.6 Km)-암봉지대-철계단-백운봉(601봉)-헬기장-이정표(상황봉 2.0 Km, 백운봉 0.5 Km)-

                   제1전망대(수목원 위치도와 2층 나무 전망데크)-하느재(비포장 임도) 이정표(상황봉 1.4 Km, 백운봉 1.0 Km, 수목원정문 4.6 Km,

                   숙승봉 5.6 Km)-철계단-제2 나무 전망대 (상황봉 1.3 Km, 하느재 0.7 Km)-바위와 산죽지대-대야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상황봉(644봉,

                   정상석과 봉수대 돌탑과 이정석, 무인 산불 감시 커메라)-콘테이너 박스-암봉지대-갈림 삼거리-철계단-석문-주먹바위-철계단-바위지대-

                   철계단-대포바위-심밧재 비포장 임도(삼밭재, 이정표-상황봉과 도암리등산로 방향 표시)-462봉폐 헬기장--386봉-동백나무 군락지-

                   이정표(상황봉 1.6 Km)-염수동LPG 충전소 갈림 삼거리 이정표(상황봉 3.0 Km, 도암리 2.8 Km, 염수동 LPG  충전소 1.9 Km)-작은

                   전망바위-이정표(염수골. 도암리, 화흥임도 0.2 Km와 맑은산흙염소 0.4 Km)-간벌지대-독고재-276.3봉 삼각점-전망바위-소가용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상황봉 4.7 Km, 도암리 1.1 Km, 소가용리 3.0 Km)-화흥 비포장임도 이정표(상황봉과 도암리 등산로 그리고 편백숲 방향 표시)-

                   전망쉼터 갈림 이정표(상황봉 5.2 Km, 도암리 0.6 Km, 전망쉼터 0.25 Km)-갈림 삼거리-도암리재 이정표(상황봉 5.8 Km, 삼거리 정상 3.1 Km,

                   도암리 방향 표시)-도암리재 1차선 포장도로-통정대부 김공 묘지-177봉 갈림 삼거리-삼각점-77번 2차선 포장도로-서망산 등산로 안내판-

                   이정표(서망산 1.0 Km, 현대아파트 방향 표시)-통나무 계단-호번정 가는길 방향 표시-붉은 철쭉 꽃 등산로-운동시설과 벤취 쉼터-바위봉-

                   벤취 쉼터-호번정 8각 정자-이정표(현대아파트 0.4 Km, 체육공원 0.3 Km, 우회등산로 1.0 Km)-이정표(현대아파트 1.0 Km, 군립

                   도서관 0.7 Km)-서망산 봉수대-개척등로지대-2차선 포장도로-완도중학교-신흥사 입구 포장도로-이정표(신흥사와 남망산 방향 표시)-

                   이정표(완도중학교와 동망산 일출공원 방향 표시)-이동통신탑-남망산 봉수대와 산불감시초소-이동통신탑과 폐 군초소-동망산 갈림 삼거리-

                   망남리 2차선 포장도로-망남리 표지석-산행종료-완도시내 수협 수산시장 88호-저녁식사 후 귀경

산행거리 : 약 22.00 Km 

산행시간사진 찍으며 꾸준한 속도로 10시간 45분 (05시 00분부터 15시 45분까지)

교통편 : 경진관광 양기중 사장님의 대형 관광버스 41인승

완도지맥

섬 중앙의 상황봉(644봉)이 최고봉이며 북쪽에는 숙승봉(432봉)과 백운봉(600봉) 등 기복이 심한 산들이 솟아 있고 남동쪽에는 100m 내외의 구릉과 평지가 있다.

북부일대의 해안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간석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해안은 큰 만과 돌출부가 이어져 있으며 해식애가 발달했다.

지금까지 완도에 있는 산들을 개별적으로 오르는 경우는 많았지만 산행시간도 짧고 또 완도 섬 전체를 걸어보고픈 산꾼들의 소망이 있기에 새로 개발된 등로가 바로 남부종주와 동서종주로서 총 길이가 약 32.5 Km에 이른다.

이중 남북 종주길이가 약 25 Km이고 동서 종주길이가 약 8.5 Km이나 이번 산행에서는 3450온누리 산악회 산우님들과 함께 완도지맥과 5개봉 종주 산행으로 나눠 진행하는 산행으로 걸어 보고자 한다.

 

 

 

초여름 같은 무더운 날씨에 미완의 아쉬움과 재회를 약속했던 완도에서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오랫동안 함께 산에 오르던 산악회에서 제4기 백두대간 산행이 마무리되며 잠시 한달여의 공백이 생기게 되였다.

원래 홀로 내려가 완도지맥을 마무리하고 다음날은 남아 있는 백두대간 우듬지 산행을 종료한 후 깔끔하게 정리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지만 예전에 함께 산에 오르던 몇몇 산우님들로 부터 산행공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힘들지만 함께하는 완도지맥과 5개봉 종주 산행을 계획해 본다.

산행할 수 있는 산우님들의 인원이 제한적이다 보니 완도지맥만으로도 또한 완도의 대표적인 숙승봉에서 업진봉, 백운봉, 상황봉 그리고 심봉만을 다녀오는 산행공지만으로도 충분한 성원을 자신할 수 없었기에 함께하는 산행공지로 대신해 보는 시간이다.

특히나 이번 4월 산행 공지는 관광버스 업계의 최대 성수기로서 산행일로 부터 최소 1주일 전까지는 관광버스의 대절여부를 알려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더욱 이 산객의 마음을 압박하는 시간이기에 처음 산행 공지부터 쉽지는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또한 이 완도지맥은 남쪽 끝자락인 대구두에서 거꾸로 올라 완도대교로 산행한 산객들이 많고 그나마도 업진봉을 지나서 부터는 완도대교가 아닌 숙승봉을 거쳐 해신 촬영지가 있는 불목리 방향으로 해산한 경로와 코스가 많아 제대로 된 등로나 찾을 수 있을지 걱정도 앞서는 시간이다.

다만 이 산객이 지금까지 수많은 마루금 잇기 산행을 진행하면서 얻었던 경험과 그래도 몇몇 선답자들이 남기 산행 후기 자료를 찾아 정리하며 산행 코스를 상세히 익혔기에 산행 자체에 대한 걱정은 없지만 많은 산우님들을 모시고 오르기에 마지막 대구두까지 갈 수나 있을련지 그리고 산행 후 제대로된 완도의 맛을 풍족하게 즐기고 올라올 수 있을지와 같은 산행 외 일정으로 더욱 많은 시간을 보내는 기간이 되였다.

 

어렵게 성원이 되어 사당역을 출발하는데 오래전부터 함께 산행을 즐겼던 산우님의 갑작스런 부고소식에 정신이 혼미함을 느낀다.

늘 만나면 온화한 미소로 탁배기 한잔 나누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고 지난달에는 백두대간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를 했다며 그리도 좋아하던 산우였는데 무엇이 그리 빨리 가고 싶어 먼저 떠나야 했는지 가슴이 아파오며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시간이 되였다.

그래도 많은 산우님들이 일찍부터 성원해 주고 격려해 준 덕분에 만족하지는 못하지만 큰 후회없이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서울로 복귀할 수 있어 의미있고 즐거운 시간으로 남겨 본다. 

 

산행 초반 어둠을 뚫고 등로조차 제대로 나 있지 않은 마루금을 찾아 어렵게 잡목을 헤치며 진행을 해 정상 마루금을 찾아 진행하다 5개봉 종주를 하는 종주대와 잠시 조우한 후 빠르게 진행해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 정상에 도착해 잠시 사진 몇장 남기며 휴식을 취하며 바라 본 남동쪽의 완도지맥 마루금이 나즈막하게 이어지며 이 산객의 가슴에 강렬한 풍경으로 남겨진다.

바로 이런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보고 싶어 늘 분기봉에서 시작해 그 산줄기가 물속으로 빠지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을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저 끝자락에 빛나는 완도타워를 바라보며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내려다 보지만 오늘 산행 날머리는 그곳 방향이 아닌 우측으로 숨어 있는 산줄기로서 산행 거리로 계산을 하면 이제 계획한 완도지맥의 반 정도인 약 12 Km 정도를 걸었으니 저 끝자락까지는 아직도 13여 Km를 더 걸어야 마무리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완도의 최고봉인 644미터의 상황봉 정상에 서서 완도지맥 마지막 봉우리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내려다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다.

 

이 칠갑산을 포함해 총 32명의 산우님을 태운 대형 관광버스가 밤 11시에 사당역을 출발해 멀고도 먼 완도로 출발하니 이제서야 약간의 긴장이 풀리며 저녁에 제를 올린 어머님 모습에 잠도 들지 못하는 밤이 되어 버렸다.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정식 산행 공지를 올려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하는 무박산행을 출발하다 보니 어딘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오는 시간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게 5시간 30여분을 달려 새벽 4시 40여분에 완도대교를 건넌 산행 들머리에 도착을 하고 산행 준비 후 밖으로 나오니 바람은 조금 강하게 불고 있지만 기온은 많이도 올라 크게 춥지는 않은 밤공기이다.

총 32명의 산우님들중 정확히 절반인 16명이 이 완도지맥 산행에 동참을 하고 나머지 16명은 불목리로 가 5개산 종주 산행을 진행 할 것이기에 이곳에서 헤어져 어둠을 뚫고 도로 옆 철 계단을 타고 오르며 기대하고 기다렸던 완도지맥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정확히 새벽 5시를 가리키고 있다.

 

바람이 불어 오는 완교대교 남단에서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벌써부터 잡목과 잡풀들이 산행의 어려움을 알려주기 시작하고 그 말라있는 잡풀을 헤치며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 위에 다시 또 하나의 철계단이 나타난다.

그 두번째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시멘트 포장도로인지 아니면 비포장 임도 위에 잡목과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있는지 모를 등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등로 우측 아래로는 완도읍내로 들어가는 도로가 지나고 그 뒷쪽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완도신대교가 내려다 보이지만 삼각대도 없는 똑딱이 카메라도 그 아름다운 야경을 담지 못해 알고 있는 지인의 옛날 사진 한장을 빌려 올려 본다.

새로 완성된 완도대교가 내려다 보이고 그 대교 아랫쪽으로는 오늘 이곳 산행 들머리로 통하는 13번 2차선 포장도로도 내려다 보이지만 오늘은 그저 흔들리는 불빛이 마치 도깨비 불빛처럼 흔들려 사용하지 못함이 아쉬울 뿐이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우측에 도로를 두고 진행을 하니 어둠속에서 갑자기 도로 우측에 파란 철망이 나타나고 그 짧은 철망 구간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비닐하우스가 나타난다.

잠시 비닐하우스를 좌측에 두고 걸어가니 비닐하우스가 끝나는 지점에 좌측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도로가 나타나고 그 도로로 올라섰다 직진의 벌목된 잡목 더미를 넘어 다시 나타나는 관목속으로 들어가며 마루금 잇기를 이어가 본다.

계속 이어지는 잡목과 잡풀 등로로 인해 오늘 산행의 어려움이 가슴으로 다가오는 시간이기도 하고 또한 정상적인 시간 내에 완주나 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찾아보니 바로 이곳이 길주의 구간으로 239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직진의 고갯마루를 넘지 말고 좌측 잡목을 헤치고 능선으로 올라야 하는 지점이다.

희미한 등로가 나 있는 잡목과 잡풀을 헤치고 어렵게 능선 진입 등로를 따르니 생각보다 등로는 점점 더 뚜렷하게 나 있고 생각보다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능선으로 들어 진행을 하니 바람이 잔잔해지며 등줄기에서는 땀방울이 흐르기 시작하기에 잠시 쉬며 옷가지를 벗어 배낭에 넣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녹슨 철조망이 따라 온다.

 

한동안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스마트폰을 이용해 등로를 찾고 있는 산우님들이 원등로는 자꾸만 이 산객이 오르는 등로 우측으로 표시가 된다며 알려 오지만 경험상 이곳 등로가 선답자들이 오른 등로임을 직감했기에 그냥 치고 오른다.

한동안 오르니 넓은 바위가 정상을 차지한 전망바위에 도착을 하지만 아직도 어둠이 세상을 덮고 있기에 보이는 조망은 없다.

다시 후미까지 챙겨 조금 더 가파르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드디어 삼각점이 박혀 있는 239봉 정상에 도착해 사진 한장 남기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이곳에서 하산 등로 찾기가 쉽지 않음을 많은 선답자들로 부터 산행후기를 통해 알고 있기에 등로를 찾아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후미까지 무사히 도착한 모습을 보고 선두는 다시 그곳 239봉 삼각점을 통과해 진행을 한다.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벌목된 장소가 끝나고 잡목이 우거진 모습이 어둠속에 보이고 그곳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 등로를 찾아 보니 정식 등로는 아니지만 많은 선답자들이 내려간 듯 희미한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찍혀 있다.

잠시 내려가니 콘크리트로 된 폐 군초소같은 건물이 보이고 그곳에서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동백나무가 빽빽한 등로도 없는 산길을 헤치며 내려가니 갑자기 급경사 내리막 길로 이어진다.

어렵게 그 동백나무 숲을 뚫고 등로도 없는 산길을헤치며 내려가니 드디어 동백나무 군락지가 끝이나며 묘지가 나타난다.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교인동고개로 내려서고 그 도로 우측으로는 주 만나수양관이란 건물이 보인다.

그곳에서 잠시 후미를 기다리며 앞을 바라보니 13번 4차선 도로가 지나는 그 아래 지하통로가 보인다.

 

이곳 2차선 포장도로는 교인동고개라고도 불리는데 이 교인동고개의 유래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남아 있어 옮겨 본다.

교인리는 완도군에서 해발 180미터의 고지에 위치한 제일 높은 마을로서 원래 국도가 원동에서 출발하여 완도읍으로 가는 첫 마을이며 첨사도 완도로 행차할때는 이길을 이용했고 고인돌이 있어 쉬어간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병과 왜군이 싸울때 기점표시가 되어 군사 기밀지로도 이용하였고 총기 보관까지 했던 기밀거점의 역할도 했었다고 하는데 지도를 놓고 보면 군외면의 중앙지으로 1910년경 오석균과 김영현 등 학자들의 주선으로 군외사립 보통학교가 설립되어 마을 명칭을 교인동으로 하였고 학교 명칭은 교인학교로 하였는데 그때부터 교인동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된 듯 하다.

그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 지하통로쪽으로 가 그 지하통로를 통과한 후 곧바로 도로 좌측에 있는 전봇대가 보이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들며 다시 한번 등로도 없는 동백나무 군락지를 타고 개척 산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큰 바위들이 산 전체에 산재해 있고 수많은 고사목들이 쓸어져 산자락 이곳 저곳에 나뒹굴고 있기에 진행에 여간 어려움이 있지 않고 산행 속도 역시 나질 않는다.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불목리에 도착한 5개봉 종주 대원들도 벌써 출발해 산행을 시작했다는 전언이 들리고 몸과는 달리 마음은 바빠지지만 잡목들로 인해 산행 속도는 전혀 없다.

16명이 진행을 하지만 정식 등로가 없다 보니 조금만 진행해도 이산 가족이 되기 십상이고 그렇게 진행하다 보니 급경사 오르막을 지나 잠시 쉬어가는데 바로 앞에는 녹슨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아 옆으로 통과하며 진행을 한다.

5개봉 종주대는 벌써 숙승봉에 올라 곧 업진봉에 오를 수 있다는 전언이기에 처음 예상과는 달리 완도지맥 종주대보다 앞서 진행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다시 잡목을 헤치고 보이지도 않는 산길을 따라 주능선 방향으로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18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사진 한장 남기며 그 동안의 고통에 긴 한숨을 내 쉬어 본다.

이제 제법 뚜렷한 등로를 따라 오르다 등로 좌측을 보니 바다 건너 저 멀리 땅끝기맥의 두륜산이 우뚝 솟아 있다.

올해가 지나기 전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땅끝기맥이기에 한동안 그 풍경을 가슴에 담아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몇 번인가 올랐던 두륜산이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져 그 아름다움을 바라 본 경험은 더 오래된 기억속에 파묻혀 생각조차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다시 그 추억을 꺼집어 내어 살펴보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기만 하다.

이제 등로 좌측 앞으로는 우뚝 솟아 있는 숙승봉의 암봉이 능선 위로 고개를 내밀며 이 미물의 산객을 내려다 보고 있는데 그 정상부에 산우님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여 혹시나 하고 5개종주하는 산행 리딩대장님과 연락을 취해 보니 우리들 종주대들의 모습이기에 얼마나 반가웠던지 모른다.

다시 바위로 된 벽을 타고 오르니 금새 19번 송전탑 아래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뒤돌아 본 완도대교와 239봉 그리고 이곳까지 걸어 온 완도지맥 종주대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더욱이 연두빛으로 변해가는 산하가 이 산객의 가슴을 파고 들며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산우님들 사진을 담아 주고 다시 그 철탑을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붉게 물들었던 등로에 떨어진 동백과 아직까지 나뭇가지에 붙어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하는 동백이 산객을 맞이하며 인사를 건넌다.

다시 동백나무 군락지로 들어가니 등로 옆에 이층 바위가 자리하고 그곳에서 종주대의 익살스런 흔들바위 장난에 어려운 산행에도 웃음꽃이 활짝 피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금 더 진행하니 드디어 숙승봉에서 업진봉으로 오르는 뚜렷한 주등로를 만나 이제부터 편안하게 우측 등로를 따라 업진봉으로 향한다.

시간을 보니 아침 7시 40여분으로 산행 시작 후 2시간 40여분을 걸려 어렵게 주능선에 도착을 한 것이기에 예상 시간보다 더 걸려 앞으로의 산행이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평안한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옆에 완도군에서 세운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고 곧이어 키 작은 산죽밭이 펼쳐지며 산객의 발길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

그 산죽밭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이제 산하는 갈색의 황량함을 벗어나 연두빛과 푸른빛으로 그 빛깔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다시 등줄기와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맺힐쯤 드넓은 마당바위처럼 생긴 업진봉 정상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과 조망을 즐긴 후 정상석을 배경으로 사진 몇장을 담는 사이 허기가 밀려오고 이곳 업진봉 정상석 앞에서 작은 산상 뷔폐를 차려 본다.

옛날 어느 스님이 숙승봉의 토굴에 기거하며 수도하였고 업진봉에 이르러 업을 다하였으며 백운대에 이르러 흰구름을 벗삼고 쉼봉에 이르러 바다를 보며 잠시 숨을 고른 다음 상황봉에 이르러 부처가 되었다는 유래가 전해지는 완도 5개봉인데 완도 사람들은 이곳 5개의 봉우리 즉 상황봉, 업진봉, 숙승봉, 백운봉, 쉼봉 등 다섯 개의 봉우리가 솟았기 때문에 오봉산이라 불려지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아침 식사 후 북서쪽을 바라보니 오늘 새벽부터 지맥 종주대들이 힘들게 걸어 올라 온 마루금이 분홍빛 진달래꽃 저 멀리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남해 바다가 내려다 보이고 그 위에 길게 이어진 완도대교가 산줄기 사이에서 빛나며 숨어있는 239봉 지나 전위봉이 멋진 곡선 등로를 이어가며 이곳 업진봉으로 연결을 시켜주고 있다.

가시에 찔리고 등로도 없어 힘들게 진행할 땐 두번 다시 오기 싫은 등로였지만 지나고 뒤돌아 보면 언제 그랬냐는듯 그 아름다움에 빠져 고통은 사라지고 고운 추억만 남겨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완도지맥 저 멀리 남해바다 건너에는 두륜산에서 달마산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 마루금이 언제 다시 찾을 수 있느냐며 앙탈을 부리고 있기도 하다.

 

정북과 북동방향을 내려다 보면 정북 방향으로 5개봉 종주대가 방금 전 지나온 숙승봉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아래에는 KBS에서 방영된 해신 촬영장이 있으며 그 옆으로 오늘 산행 들머리인 영풍저수지와 바다 가운데 고마도와 우측으로 사후도도 내려다 보인다.

숙승봉의 암봉 뒷쪽과 좌측으로는 주작 덕룡산이 보이지만 박무로 인해 뚜렷하지 않아 아쉬움이 남는다.

숙승봉은 업진봉에서 바라보면 영락없이 졸고 있는 스님의 얼굴 형상이라 해서 이름 지어진 봉우리로서 커다란 바위벽과 그 형태가 인수봉과 흡사해 좋은 암벽등반 대상지처럼 보이지만 이 지역 산악인들이 조사해본 결과 조금만 힘을 줘도 홀드가 쉽게 부서져내려 등반이 어렵다고 한다.

암벽 등산의 어려움과는 달리 일반 산행객들이 쉽게 그 정상에 올라 주위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잘 알려진 완도 5개봉 중 하나이다.

 

5개 봉우리를 종주하는 종주대는 이 지맥 종주대 보다 앞서 이곳 업진봉을 통과해 백운봉 근처의 바람이 잦아든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다는 전언을 들었기에 아침 식사 후 업진봉을 떠나기 위해 배낭을 둘러멘다.

약간의 바람이 불며 생각보다 아침 바람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추워진 느낌으로 진행하려다 앞을 보니 올라야 할 백운봉 자락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높지는 않지만 완만하게 올라야 할 백운봉 자락의 빛깔은 나즈막한 인간 세상의 빛보다는 그 변화가 느림을 바라보며 아침 일출을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한기가 밀려 오기에 조금은 빠르게 오르막을 타고 전진하니 다시 온몸에 열기가 돌아오고 등줄기에선 다시 땀방울이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등로 우측으로는 남해바다 건너 달마산과 땅끝이 가슴속 깊이 남겨지고 조만간 올라 이곳 백운봉 자락을 바라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조금 오르니 이제 등로는 무성한 산죽 등로로 변하는데 산죽의 키가 크지 않아 진행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다.

다른 모든 식물들이 그 잎새귀를 떨구고 갈색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는 동안 산죽만이 그 푸르른 잎을 흔들며 자태를 뽐내는 모습에서 인생의 한 단면을 본다.

 

다시 동백나무 군락지를 지나 키 작은 산죽밭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대야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백운봉까지는 이제 200미터 남아 있다는 이정표이다.

등로 좌측으로 고래같은 큰 바위를 지나 철계단을 타고 오르니 금새 601미터의 백운봉 암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일찍 도착한 5개봉 종주대원들이 머물며 사진을 담고 있어 반가운 조우를 한다.

백운봉 또는 백운산은 전국에 많은 삼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있고 그 의미는 정상부에 하얀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는 의미인데 이곳 완도의 백운봉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 생각을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뜻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정상부는 완전 암봉으로 이뤄져 있으며 그 정상에도 사각 바위가 차지하고 있는 특히한 봉우리로 각인되는 장소이다.

 

정상에서 많은 산우님들 사진을 담아 주고 정상 좌측의 병풍바위까지 담은 후 내려 와 끝자락으로 자리를 옮기니 그곳에서 바라보는 남동쪽의 상황봉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너무나 환상으로 다가온다.

하느재 임도로 가라 앉았던 마루금은 다시 서서히 고도를 높혀 오르며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지맥조우대를 이끌고 올라야 할 마루금이기도 하기에 그 산줄기 하나 하나를 가슴속에 남기며 읽어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대문리저수지와 남해바다를 지나 조만간 올라야 할 달마산의 첨봉과 그 좌측으로 땅끝마을이 눈에 들어 온다.

조각으로는 몇번 올랐고 좋은 추억을 남겼던 산이고 마을들이지만 이렇게 그 옆동네에서 바라보는 그리고 조만간 다시 산줄기를 이어 가기 위해 올라야 할 마루금이기에 오늘의 이 풍경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 기억될 것이다.

이제 지맥종주대와 5개봉 종주대 모두 하나가 되어 즐기고 사진도 담으며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을 향해 천천히 출발을 하는 시간이다.

 

백운봉 정상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 다시 배낭 둘러메고 남쪽으로 나 있는 넓은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즐겨 본다.

다만 이곳에서부터 잠시 5개산 종주대와 함께 걸어가는 시간이기에 그 산행길이가 길어지고 오손도손 이야기하는 시간도 더욱 정겹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내려가니 뚜렷한 등로 주위에는 굵은 동백나무들이 자라며 남도의 정취를 한껏 알려주고 그 나무들 사이로 불어 오는 바닷바람이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식혀주는 시간이다.

내려가며 진행하면서도 또 다시 많은 사진을 남기며 조금이라도 더 남도의 풍경을 가슴에 추억으로 담아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주위 동백나무를 즐기고 시원하게 불어 오는 바닷바람에 고마움을 전할 쯤 넓은 헬기장 하나를 통과하고 다시 키 작은 산죽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가파른 내리막이지만 그렇게 느껴지지 않은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백운봉에서 1.5 Km 내려왔고 이제 상황봉까지 2.0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 하나가 쓰러져 있고 그 옆에 또 다른 이정표 하나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단체 사진 한장 남기기로 한다.

하지만 고도표와 산행거리를 확인해 보면 백운봉에서 상황봉까지의 도상거리는 약 2.5 Km로서 이곳에 남겨진 3.5 Km란 거리 표시는 잘못된 표기는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어렵게 단체 산행 사진 몇장 남기고 이제부터 지맥 종주대들은 조금 속도를 내 5개종주대와 이별을 고한다.

 

단체 사진 몇장 남기고 이제 조금은 빨리 진행을 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 등로를 타고 오르는 시간은 큰 어려움이 없다.

더욱이 처음 시작할 때 등로조차 없었던 산길과 비교를 해 보면 이곳 등로는 뚜렷하고 넓어 고속도로와 비교해도 속색이 없을만큼 진행이 편안하다.

그렇게 다시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으로 수목원위치도가 서 있고 그 뒷쪽에 나무 목재로 된 2층 전망대가 눈에 들어 온다.

지도와 자료를 살펴보니 제1전망대로서 정상에 올라도 좋은 조망이 없다기에 지맥 종주대는 그대로 통과해 하느재로 진행하기로 하고 후미대장에서 무전으로 연락을 한 후 빠르게 진행을 한다.

 

이제 돌계단으로 된 내리막 등로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완도수목원 종합안내도와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의 하느재에 도착을 해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후미를 기다려 본다.

하느재는 완도의 동부사람과 서부사람들이 만나던 고개로서 교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지금 군외면의 일부지역 사람들이 모두 이길을 통해 완도와 연결이 됐던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있는 고개마루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완도수목원이고 우측으로 내려서면 대수골이 나오며 상황봉은 비포장 임도를 건너 바대편의 직진 능선느오 들어가며 진행을 해야 한다.

대야리1구 대수골은 마을 위의 큰산 아래 원시림 거목이 많아 숯을 굽던

곳이란 뜻으로 대야리1구는 1655년 효종때 인동장씨와 김해김씨 및 함안조씨 등이 당쟁을 피해 이곳에 입주하였으며 원래는 내면에 속해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내외면이 남북으로 분계되자 군외면으로 자원하여 소속되어 이 마을 대야리에 있던 면소는 군내리로 옮겨졌다.

신라 청해진 당시에 청빈관이 있었던 곳으로 청빈리가 와전되어 청비리 또는 청천리로 불리어 오다가 1855년 가리포진이 독진으로 승격되어 대수골과 합하여 면소를 두면서 대야소라고 하였다가 군외면으로 편입되면서 대야리가 되었다.

잠시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임도 건너 반대편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 능선으로 들어가니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동백나무 군락지가 형성되어 있고 등로는 서서히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기 시작한다.

잠시 오르니 철계단이 나타나고 그 계단을 오르니 산죽 등로로 바뀌면서 등로는 더욱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이어진다.

앞에 산우님 한분을 두고 꾸준한 속도로 제법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계속 오르니 또 다른 철계단이 나타나더니 그 우측에는 암봉이 좌측에는 나무전망데크가 보인다.

이곳에서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후미를 기다리며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하려다 현위치 안내판을 보니 제2전망대란 글씨에 상황봉까지는 1.3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나무 전망대에서 방금 지나온 정북 방향을 올려다 보니 나즈막한 하느재 넘어 완만하게 이어진 백운봉 정상이 바로 눈 앞에 나타나고 그 우측 능선을 따라 송전탑이 있는 477봉이 또한 우뚝하다.

그 능선 저 멀리 희미하게 남녁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 건너에는 땅끝기맥 산줄기도 희미하게 다가온다.

이제 산하는 갈색에서 연두빛 봄옷으로 갈아입기 바쁜 시간이 된듯 부지런을 떨고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완도수목원과 대문리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남해바다 건너편으로는 달마산과 해남 땅끝으로 이어지는 땅끝기맥이 희미한 박무속에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대문리는 조선시대 선조대에 신창표씨 형제와 김해김씨 및 밀양박씨가 입주하여 마을을 이루었던 대산리 주민들이 바닷가로 분가하여 와서 마을이 형성 되었는데 옛날에는 초전리라 하였으며 둠벙치와 합하여 신리라고 하였었다.

1896년 완도군이 설군되면서 대산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산리의 일부와 갈문리 화학동을 합하여 대눔리 라고 하였고 1914 면계 변경으로 신정리에 있던 면사무소를 이곳으로 이전 하였으나 면 중심지로 옮겨야 한다는 동부 주민들의 여론에 따라 1917년 현 면사무소 자리인 옛 원집터로 이전 하였다.

마을 뒷산에 성터가 있고 말을 키워 제주에서 서울로 공물을 수송할때 이곳에서 초전을 조성하여 임시 사육 하였는데 초전리라고 하는 지명의 유래는 여기에서 연유하였고 주위 경치가 아름다워 시인묵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쉬어간 곳 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내려다 보는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다워 한동안 조망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대야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뒷쪽으로 남해바다 위에 고마도와 사후도가 박무속에 아름답다.

도마도는 완도군 군외면 불목리에 속한 섬으로서 조선시대 숙종 때에 김해김씨와 이씨 및 조씨 등이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고마진이 설치되었으나 선박의 출항과 입항이 불편하여 진이 강진 마량으로 옮겨가면서 마도진의 옛이름이라 하여 고마도라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이름의 유래에 관한 또 하나의 설은 신라시대 장보고가 군마를 길렀다 하여 고마도라 칭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사후도는 면소재지인 원동리에서 동쪽으로 8.1 Km 지점인 강진만 내에 있는데 본래는 사조도였으나 이 섬이 완도를 중심으로 왼쪽에 있는 딸도의 오른쪽에 있다 하여 사위도라는 뜻으로 사후도라 불렀으며 1600년대에 박씨와 양씨가 처음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최고지점의 높이는 58미터로 경사가 완만한 구릉지이며 중앙 저지대에 농경지와 취락이 분포하며 해안선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간석지가 넓게 발달해 있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며 비가 많은데 주민은 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며 농산물로는 고구마, 보리, 콩, 쌀, 마늘 등이 약간씩 생산된다.

또한 최근에는 유자 재배가 활발하여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으나 아직은 규모가 작으며 연근해에서는 멸치를 비롯하여 농어, 장어, 낙지, 바지락 등이 잡히며 김, 미역, 굴, 톳 등의 양식이 이루어진다.

능선을 따라 우마차로와 소로가 나 있으며 육지와는 나룻배로 왕래한다.

언젠가는 두개의 섬 모두에 들어가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과 벗삼아 지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그렇게 제2전망대에서 쉬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조망을 즐긴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산죽 등로를 딸 상황봉으로 향한다.

잠시 오르니 등로 양쪽에 바위가 지키고 있는듯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사진 한장 남기고 통과하니 이제 상황봉 정상이 잡목 사이로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산죽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바다를 막은 긴 방조제가 내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내려온 거대한 암봉의 백운산 정상부가 점점 멀어지며 그 위용을 잃고 있다.

 

수호신같은 바위를 통과해 잡목 사이로 보이는 산황봉을 올려다 보며 전진하니 다시 거대한 암봉이 등로를 가로막고 좌측으로 우회하여 돌아가라 손짓한다.

그 암릉을 우회하며 걸어가니 등로 옆에 완전히 지지 않은 얼레지가 반겨주기에 허리를 굽혀 인사하고 조심스럽게 사진에 담아 본다.

아침 일찍 업진봉에 오르면서 만났던 얼레지였지만 계절이 너무 일러 모두 일찍 폈다 진 이후였기에 제대로 된 얼레지꽃 한송이 보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온전한 형태의 한송이를 만나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얼레지의 꽃의 키는 약 30 Cm 정도이고 비늘줄기를 가지며 잎은 2장으로 마주보는 것처럼 달리는데 잎가장자리는 밋밋하나 주름이 지기도 하며 잎에 무늬가 생기기도 한다.

4월경 잎 사이에서 나온 꽃자루 위에 보라색 꽃 1송이가 아래를 향해 피는데 꽃잎은 6장으로 뒤로 젖혀지며 안쪽에 진한 자주색의 W자형 무늬가 있고 수술은 6개이고 암술은 1개이지만 암술머리는 3갈래로 나누어진다.

열매는 삭과로 익는데 봄철에 어린잎을 나물로 먹으며 초가을에 비늘줄기를 캐서 쪄먹거나 이질이나 구토 치료에 쓰고 강장제로 사용한다.

숲속의 나무그늘에서 자라는데 나무에 잎이 나오기 전에 꽃이 피었다가 잎이 나올 무렵에 열매를 맺고 죽기 때문에 봄을 알리는 식물로 알려져 있다.

참으로 예쁜 얼레지꽃을 올해 들어 처음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다.

 

그렇게 어렵게 얼레지 꽃을 사진에 담으며 암봉을 우회해 통과하니 이제 등로 주위엔 연분홍 진달래꽃이 만개해 있어 함께 진행하는 산우님들을 세워 놓고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해발고도가 높아서인지 빛깔도 고운 진달래꽃을 담고 바닥에 피어난 황금색 제비꽃도 담으며 진행을 하니 금새 완도의 최고봉인 산황봉 정상에 도착을 해 무인산불감시 카메라와 봉수대 그리고 정상석을 차례로 사진에 담아 본다.

잠시 기다렸다 차례로 올라 오는 산우님들 사진을 담아 본 후 주위 풍경을 조망하는 시간이다.

완도군은 전라남도의 서남쪽 끝에 있는 크고 작은 유인도와 무인도 200여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 가장 큰 섬이 완도읍인데 신라시대의 장보고, 조선시대의 이순신 장군, 윤선도 등 역사적 인물들의 유적뿐만 아니라 천혜의 경승과 풍광이 도처에 자리잡고 있다.
섬 이름은 빙그레 웃을 완자와 섬 도자를 써서 고향을 생각하면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특히 완도 주봉(해발 644봉)을  품고 있는 상황봉은 동백나무로 빽빽하여 흰구름에 잠긴 동백꽃이 절경을 이루며 정상에 오르면  남해의 다도해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곳은 난류의 영향을 받아 겨울이 짧고 그다지 춥지 않아 갖가지 아열대식물이 자라고 있어 나무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정도리 구계등이 유명하며 완도에서 다리를 건너 갈 수 있는 국민관광지 신지도해수욕장도 여름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상황봉(644.1봉)은 완도 최고봉답게 백운봉(600봉), 숙승봉(435봉) 등 거물급 봉우리를 거느리고 섬 중앙에 우뚝 솟아있으며 이들 굵직한 봉우리 외에도 업진봉, 쉼봉 등 완도의 거대한 등줄기를 형성하는 여러 봉우리를 합쳐 오봉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완도는 관광명소인 보길도나 청산도 등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곳이며 제주도 뱃길의 시작점이기도 하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완도를 다른 섬으로 진입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곳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나 하지만 완도도 적지 않은 볼거리와 명소가 산재한 관광지로서의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다도해해상 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정도리 구계동 몽돌해변, 난대림을 테마로 한 완도수목원,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상록활엽수림 빼곡한 주도 등 구석구석 찾아보면 우리가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으며 등산인들에게 완도는 상황봉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산이다.
현재 완도 상황봉 주변에는 5개 등산로가 개척되어 있으며 산행기점은 대야리와 죽청리, 화흥리, 불목리 등 4곳으로 모든 산길은 정점인 상황봉과 백운봉으로 이어진다.

 

상황봉 정상에서 내려다 보는 완도지맥 마루금이 환상이다.

삼밭재 지나 462봉이 우뚝 솟아 있고 한동안 오르막 내리막 하다보면 386봉을 지나 서망봉에 도착을 할 것이다.

그 서망봉을 지나 완도중학교를 통과하면 남망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동망봉으로 향하는 산우 한명과 헤어져 나머지 종주대는 대구두를 향해 마지막 발걸음을 할 것이다.

늘 이런 마음다운 풍경과 조망을 보고 싶어 마루금이 물속으로 빠지는 방향으로 걷는 것을 고집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이곳에서 저 보이지 않는 대구두까지의 산행 거리가 족히 13여 m가 남아 있으니 결코 만만한 거리가 아닐 것이다.

 

상황봉에서 완도지맥 우측의 정남향을 내려다 보니 아주 가까운 곳에 암봉으로 이뤄진 심봉이 우뚝하고 대구미로 향하는 짧은 산줄기가 다음에는 그곳에서 만나자며 손을 흔들고 있다.

참으로 아름답고 멋진 완도 종주인데 날씨가 받혀주지 않고 기온도 오르다 보니 생각만큼 조망이 없어 다음에는 한겨울 찬바람이 불어오면 다시 한번 꼭 내려와 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그때엔 꼭 저 심봉을 타고 내려가는 등로로 걸어 볼 생각이다.

 

한동안 상황봉 정상에서 많은 사진을 남기고 좋은 추억을 만든 후 이제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서 있는 좌측인 동쪽 능선을 따라 산죽밭으로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등로 우측 가까이에는 버려진 작은 콘테이너 박스가 보이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암봉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측에 나타나는 암봉을 잡목 사이로 조망하며 진행하니 갑자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잘 살펴보니 우측으로 급하게 꺽여 내려가는 등로가 지맥 등로처럼 보인다.

하지만 확신이 없기에 종주대를 잠시 삼거리에 머물게 한 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암봉을 우회하니 여전히 보여야 할 철계단이 보이지 않아 다른 등로를 타 보기로 하고 올라가니 기다리던 종주대들이 이쪽 등로가 맞다며 내려오고 있다.

아직도 확신은 들지 않지만 스마트 폰의 GPS 기능을 사용하는 산우가 맞다기에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암릉 바로 아래 부근에 그렇게 보고 싶어했던 철계단이 내려다 보여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 본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드넓은 완도 방조제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 방조제엔 어떤 작물을 심었는지 모두 파란색이 뒤덮고 있다.

아마돟 마늘이나 양파를 재배하고 있는 방조제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알 수는 없다.

약간의 바위지대를 조심해 내려가니 급경사 내리막 등로에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쉽게 내려가고 그 계단을 내려가니 갑자기 통천문인지 아니면 석문 같은 돌문이 나타나 그 중앙을 따라 통과하며 진행한다.

뒤따르는 산우님들 사진 몇장 남겨 드리고 다시 앞으로 진행을 한다.

 

석문인지 통천문인지 모를 문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멋진 암봉 하나가 서 있는데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서도 늘 봤던 바위이기에 쉽게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이다.

모양을 보면 긴 주먹쥔 손 모양 같기도 하고 빌딩 같기도 한데 딱히 맞는 이름을 떠올릴 수는 없다.

그 바위 밑으로 가 많은 산우님들이 사진을 남기는 사이 선두는 다시 후미가 도착하는 것을 확인하곤 출발을 서두른다.

바위 우측 옆으로는 죽청리저수지가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는 신지도와 연결되는 신지대교도 내려다 보인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고 멋진 바위 아래에서 추억도 만든 후 내려가니 철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암릉들이 줄지어 나타난다.

잡목으로 인해 선명한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기기묘묘한 모양을 한 바위들로 인해 산행이 지루하지는 않다.

그렇게 키 작은 산죽과 바위가 혼재된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바위 옆으로 또 다른 철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 좌측으로 대포인지 거북인지 모를 모양을 한 바위도 보인다.

각기 다른 모습과 풍경으로 지나는 산객의 친구가 되어 주니 고달픈 종주 산행길에서도 그 즐거움이 배가 되는 시간이다.

 

대포인지 거북인지 모를 바위를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이정표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인 삼밭재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등로 좌측으로 관음사약수터 하산 등로 표시가 되어 있고 진행 방향으로는 도암리 등산로와 죽청리LPG 입구란 글씨가 선명한데 거리 표시가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왜 삼밧재 또는 삼밭재라 하는지 자료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조금은 아쉬운 곳이기도 하다.

잠시 배낭 내려 쉬고 있는데 5개봉 종주를 하는 산우님들이 이제 막 상황봉 전상에 도착해 이곳 삼밭재를 내려다 보며 지맥 종주대를 알아 보곤 무전기로 소식을 전해 온다.

잠시 수다를 떨고 이제 갈길이 머니 다시 출발을 서둘러 본다.

 

 

삼밭재를 통과해 능선으로 들어가니 제법 굵은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종주대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준다.

잠시 더 그 멋진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걸어가니 금새 동백나무가 사라지며 조금씩 가파라지는 오르막 된비알이 나타나는데 이제 막 순한 새잎이 돋아나며 등로 주위는 완전히 연두빛 산하로 변해가고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자연의 빛깔이기에 가파르게 오르는 오르막 등로이지만 조금은 그 자연을 즐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앞서 조금은 빠르게 치고 오르니 산우님들 모습이 저 멀리 사라지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피어나는 연두빛 자연을 음미하는 시간은 너무나 귀하고 힐링까지 되는 시간이 되였다.

 

연두빛 몽울들이 터져 봄을 알리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잠시 순한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앞을 바라보니 새생명이 탄생하는 경외로운 풍경이 등로 전체에서 펼쳐지고 있다.

조금은 발걸음을 속도를 늦추고 그 자연이 말하는 소리를 듣다보니 어느새 등로 좌측으로 죽청리쪽 마을이 다가오고 등뒤로는 방금 전 지나 온 완도의 최고봉인 상황봉과 그 좌측으로 심봉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이렇게 종주 산행도 좋지만 이런 아름다운 섬에 들어 와서는 자연 자체를 즐기는 시간도 좋으련만 그 무슨 욕심이 그리 많아 달리기 하듯 걸어야 하는지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하다.

다음에 내려 와서는 느림의 미학을 생각하며 세월을 낚듯 그렇게 걸어 보는 시간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다시 동백나무와 그 아래에 깔려 있는 키 작은 산죽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이제부터 등로엔 각시붓꽃이 제법 보이기 시작하고 그 옆에는 수줍은 현호색과 빛깔이 제각각인 제비꽃이 산객의 발걸음을 늦춘다.

다시 뒤돌아 보면 상황봉이 점점 멀어지며 한눈에 보여지고 등로 우측으로는 아름다운 마을을 끼고 완도 방조제가 거대한 물결을 막고 잔잔하게 펼쳐져 있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즐기며 걸어가니 오르막 등로가 끝이나며 등로엔 콘크리트 블록들이 자리하고 있어 처음에는 폐헬기장인지 몰라 살펴보니 그냥 등로에 깔려 있는 콘크리트 블록들이다.

그 콘크리트 블록 등로를 지나니 이제부터 완전히 동백나무 숲을 이루고 있는 군락지를 따라 한동안 무아의 세계를 걷게 된다.

바로 뒤따르는 오늘 처음 만나는 산우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사진 몇장 남기다 보니 종주 산행에서는 쉽게 맛볼 수 없는 여유를 느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곳 동백나무 군락지가 있는 곳 좌측이 462봉은 아닐까 생각되는데 마침 그 봉우리는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게 되니 아쉽기만 하다.

한동안 그 멋진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무심으로 걷다 보니 다시 동백나무가 사라지며 등로에는 키 작은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완도 방조제가 더욱 가깝게 다가와 있고 등 뒤로는 지나온 상황봉에서 462봉 지나 이곳 386봉으로 이어지는 지맥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 오는 전망바위에 선다.

조금 더 걸어 가니 등로 옆에 상황봉에서 1.6 Km 지나 왔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거리상으로 약간은 미심쩍은 표시같다는 느낌이다.

지나 온 지맥 마루금을 바라보는 조망 역시 참으로 아름답기만 하다.

 

왜 그리 길에 펼쳐진 산그리메가 좋고 산줄기가 물속으로 사라지는 풍경이 좋은지 설명 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 내가 걸어 왔던 길이 있고 또 앞으로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이 있기에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늘 마무리가 되면 그 마무리부터 새로움이 시작되니 끝이 곧 시작이란 명언을 들추지 않더라도 오늘처럼 이렇게 가슴에 담고 그 담은 가슴으로 느끼면 족한 시간일 것이다.

다시 산죽의 키가 조금씩 더 커지는 등로를 따라 걸으면서도 눈은 등로 우측의 남해바다를 향하고 있으니 질리지 않는 바다의 풍경이다.

그렇게 무심으로 걸어가니 뚜렷한 등로가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옆에는 도암리와 염수동LPG충전소 갈림 글자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폐 군초소처럼 보이는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서 있다.

이곳에서 등로는 우측으로 90도 꺽어 도암리 방향이기에 후미를 기다렸다 함께 진행하기로 한다.

 

후미를 기다렸다 함께 우측 도암리 방향으로 내려가니 이제 잡목도 많이 사라지고 키 작은 잡풀들이 등로를 채우고 있어 산행에는 참으로 좋은 등로가 펼쳐져 있다.

등로 우측으로는 드넓은 완도 방조제와 들판이 펼쳐져 있고 진행방향으로는 완도지맥 들머리와 남망봉의 철탑 그리고 완도타워가 희미하게 다가와 있으며 그 마루금 좌측으로는 완도읍도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의 바위가 있는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긴 후 내려가 다시 꿈결같은 등로를 따라 걸어 본다.

가깝게 보이는 완도타워이지만 저곳에 도착하기까지는 또 얼마만큼의 시간과 거리를 걸어야 도착할 수 있을지 짐작도 하기 싫기에 그저 아무 생각없이 무심으로 걸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시 연두빛 봄이 오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간이 제법 굵은 동백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고 등로에는 잎이 더 파란고 넓은 산죽이 걸을때마다 사각거리며 장단을 맞춰주고 있다.

다시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등로를 채우는 지역을 따라 걸어가니 부드럽던 등로 위에 간간히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바위를 지나 오르니 등로 옆에 소위 개복숭아꽃이 활짝 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살며시 다가가 사진 한장 남기고 도화와도 이별을 고한다.

 

걷다보면 등로 우측에는 여전히 완도방조제와 파란 들판이 따라오고 그 방조제 좌측으로는 나즈막한 정주산이 바다를 품고 유혹하고 있다.

앞으로 보니 이제 올라야 할 나즈막한 봉우리가 바로 눈 앞으로 다가와 있고 그 능선으로 오르는 등로엔 화려하지는 않지만 순수하면서도 순백의 봄꽃들이 피어 화려한 꽃들보다 더 깊은 아름다움으로 가슴에 남겨진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바위들이 등로에 박혀 있는 조망처에 도착을 하고 그곳 바위 앞에서 잠시 쉬며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 본다.

앞으로 올라야 할 나즈막한 봉우리가 예쁘게 다가온다.

 

앞으로 가야 할 마루금과 완도읍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다시 한번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 배낭을 비운 후 출발을 하니 다시 동백나무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옆 동백나무에 붉은 동백꽃 몇송이가 이 산객을 빤히 처다보며 이래도 그냥 갈것이냐며 유혹하기에 지나치지 못하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동백은 때때로 줄기 밑동에서 많은 가지들이 나와 관목처럼 자라기도 하는데 수피는 회색빛이 도는 갈색이며 미끈하다.

잎은 가죽처럼 두껍고 어긋나며 앞면은 광택이 나는 짙은 초록색이나 뒷면은 노란색이 섞여 있는 초록색이며 잎가장자리에는 끝이 뭉툭한 톱니들이 있다.

꽃은 빨간색이며 겨울에 1송이씩 잎겨드랑이나 가지끝에 피는데 꽃잎은 5-7장이지만 꽃잎의 아래쪽은 서로 감싸고 있으며 꽃받침잎은 5장이다.

수술은 많고 기둥처럼 동그랗게 모여 있으며 수술대는 흰색, 꽃밥은 노란색이고 암술대는 3갈래로 갈라졌다.

열매는 삭과로 가을에 구형으로 익으며 3갈래로 벌어지는데 그속에는 진한 갈색의 씨가 들어 있다.

꽃의 밑에서 화밀이 많이 나오며 동박새가 이것을 먹는 틈에 꽃가루받이가 일어나므로 대표적인 조매화이다.

한국과 일본 및 타이완,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 및 중부 이남의 바닷가에서만 볼 수 있는데 바닷가를 따라 서해안 어청도까지 동쪽으로는 울릉도까지 올라와 자란다.

특히 울산광역시 온산읍 방도리에 있는 목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어 동백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 섬의 상록수림은 천연기념물 제6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대청면 대청리의 동백나무숲은 동백나무의 북한계선으로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의 백련사 동백나무숲은 제151호로,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의 동백나무숲은 제169호로, 전라남도 고창군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제 184호로, 경상남도 거제시 학동리의 동백나무숲은 제 233호로 각기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으며 전라남도 여수시의 오동도 또한 동백나무숲으로 잘 알려져 있다.

대나무·소나무·매화나무를 세한삼우라 하듯이 다른 식물이 모두 지고 난 겨울에 피는 동백꽃을 추운 겨울에도 정답게 만날 수 있는 친구에 빗대어 세한지우라고 부르기도 한다.

분재로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데 생장속도는 느리지만 그늘지고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잘 자라고 줄기에서 가지가 나오므로 가지치기를 많이 해도 잘 견딘다. 공해나 소금기에도 강하다.

옛날에는 동백나무 씨에서 기름을 짜서 등잔기름·머릿기름 또는 약용으로 쓰기도 했다.

이밖에 혼례식 상에서 동백나무를 대나무와 함께 자기항아리에 꽂아 부부가 함께 오래 살기를 기원하기도 했다.

 

붉은 동백꽃을 사진에 담고 계속 진행을 하니 이정표 하나가 나타나는데 살펴보니 화흥임도 0.2 Km와 맑은산흙염소 0.4 Km 방향과 거리 및 염수골과 도암리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이정표를 지나 다시 도액꽃을 바라보며 전진하니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곳에는 간벌된 나무들이 가지런히 치워져 있어 산행에는 전혀 어렵지 않다.

그렇게 잠시 오르니 갑자기 나즈막한 봉우리 한곳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데 살펴보지만 고도와 위치는 전혀 적혀있지 않는 삼각점이다.

 

잡목과 잡풀로 뒤덮혀 있는 삼각점을 담은 후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앞으로 가야 할 지맥 마루금 좌측으로 가용리 마을과 남해바다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가용리마을은 현종대에 나주정씨가 처음으로 입주하고 그후 양성이씨, 남평문씨, 밀양박씨등이 이주해 형성된 마을로서 마을유래는 대가용리 앞산(진중매산)의 형상이 용같이 길고 쭉 뻗어서 가용리라 하였는데 후세들이 쓰기 쉽게 바꾸어 가용리로 칭하였고 1916년 대가용리와 소가용리를 합하여 가용리라 했다가 1926년 다시 소가용리로 구분하였다.

다시 진행해야 할 완도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니 저 멀리 두개의 탑이 우뚝하고 그 우측으로는 중도리와 망석리 마을이 예쁘게 자리하고 있다.

완도 전체가 연두빛으로 갈아입으며 제대로 된 봄맞이에 한창인듯 보인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계절에 좋아하는 빛깔을 바라보니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가야 하는 길이기에 다시 등로를 타고 걸어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이제 신지도로 이어지는 신지대교가 아주 가깝게 다가와 있고 언젠가는 한번 들려보리라 마음먹으며 걷다보니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오르다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철쭉이 활짝 피어있고 올해 들어 처음보는 철쭉에 몇장의 사진을 담아 본다.

철쭉꽃의 키는 2에서 5 미터이고 어린 가지에는 선모가 있으나 자라면서 없어지며 회갈색으로 되며 잎은 어긋나지만 가지 끝에서는 모여난 듯 달리는데 잎은 길이가 5에서 10 Cm 정도인 넓은 난형으로 끝은 둔하고 밑은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연한 홍색의 꽃은 잎과 같이 5월 무렵 3에서 7개씩 가지 끝에 피고 꽃잎은 5개가 합쳐 깔때기 모양을 이루는데 지름이 5에서 8 Cm이며 열매는 길이가 1.5 Cm 정도 되는 선모가 있는 타원형의 삭과 10월에 익는다.

흰꽃이 피는 것을 흰철쭉이라 하고 이외에 같은 속에는 갈색 털과 꽃대에 점성이 있고 잎이 피침형인 산철쭉과 이와 비슷하지만 점성이 없고 꽃이 잎보다 먼저 피는 진달래를 비롯하여 10여 종이 있다.

정원에 관상용으로 심거나 잎과 꽃을 강장제, 이뇨제, 건위제 등으로 사용한다.

 

아름다운 철쭉속에 산우님을 잠시 세우고 사진도 찍어 드리며 오르니 바위 전망대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쉬며 후미가 올라 올 때까지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등로 우측 앞으로는 드넓은 들판과 완도 방조제 그리고 그 옆으로 나즈막한 정주산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또 다른 산줄기 하나가 완도지맥과 나란히 달려가며 남해바다로 빠지고 있다.

그 산줄기와 완도지맥 사이에 중도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전망바위 바로 아래에는 많은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어 이색적인 풍경을 선사하기도 한다.

한동안 산우님들 사진도 담아 드리며 즐기는 사이 후미가 도착을 하고 선두는 다시 앞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 앞으로 진행하다 앞을 보니 진행해야 할 완도지맥 마루금이 너무나 아름답게 이어져 있어 다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서망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높낮이를 교대로 산객의 마음을 교란하고 서망봉을 지나 높은 이동통신탑이 있는 남망봉이 가운데에 우뚝하며 그 좌측 끝자락에 동망봉쪽 완도타워가 아름다운 완도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 산객이 걸어 진행해야 할 완도지맥 남쪽 끝자락인 대구두는 동망봉 줄기 뒤에 숨어 보여주질 않고 있다.

변해가는 자연의 빛깔이 참으로 예쁘고 멋지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 보는 시간이다.

 

그 바위전망대를 지나 전진하니 금새 소가용리 갈림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이제 도암리까지는 1.1 m가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도 보인다.

원래 가용리로 했었던 마을이름이였는데 1926년 소가용리와 대가용리를 나누면서 다시 소가용리란 이름으로 불려지게 된 마을이다.

다시 철쭉이 피어있는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지나 갑자기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를 건넌 지점에 이정표 하나가 서 있다.

편백숲 갈림 이정표로서 이곳 이정표는 거리 표시 없이 그저 방향 표시만 되어 있다.

이곳에서 지맥 종주대 중 한명이 산행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암리에서 탈출을 논의해 보지만 조금만 더 진행해 보겠다는 이야기에 먼저 도암리 도로로 진행을 해 본다.

 

이제 제법 산행거리도 길어지고 기온도 오르기 시작하며 종주대의 발길을 잡지만 아직까지는 모두 완주 할 수 있으리란 믿음을 가지고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다시 멋진 등로를 타고 큰 어려움 없이 전진하니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넘어 등로 좌측으로 전망쉼터가 0.25 m 전방에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지만 그곳은 포기하고 0.6 Km 남아 있는 도암리 방향으로 그냥 진행을 한다.

다시 나타나는 나즈막한 봉우리 하나를 더 넘자 앞으로 올라야 할 177봉이 앞으로 보이고 바로 전방에는 도암리 도로로 내려가는 잘룩한 안부가 보이기 시작한다.

다시 간벌된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갑자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지형상 직진을 해야 될 것 같아 간벌된 나무 사이를 피하며 진행을 하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간벌되고 도암리 도로로 내려 설 때 절개지이기에 우측으로 크게 꺽어 우회 등로가 나 있었던 것이다.

그곳 갈림 삼거리를 지나자 다시 많은 각시붓꽃이 등로 옆에 피어 있고 어렵게 사진에 담아 본다.

각시붓꽃은 전국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습지나 건조지역을 가리지 않는 토양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식물로서 꽃이 필 때의 높이가 한 뼘 남짓한 보라색의 각시붓꽃이 피면 키가 크지도 않으면서 대단히 아름다우며 하천변, 공원, 가로화단, 습지 등 비교적 식재범위가 넓다.
관리 요령은 추위나 더위에 강하므로 키우기에 대단히 수월하지만 비옥한 토양이 좋고 여름철 꽃이 진 후 잎이 마르는 등 약간 지저분해 졌을때 짧게 적심을 하면 새 잎이 돋아나 가을까지 잎을 볼 수 있다.
식물체 활용법으로는 한방에서 꽃과 뿌리를 활용하는데 인후염에 효력이 있고 피멍을 풀어주고 종기를 낫게 하며 지혈작용이 있어서 토혈, 코피, 자궁출혈에 쓰인다.

 

간벌되어 어지럽게 흩어진 나뭇가지를 헤치고 어렵게 진행을 하니 갑자기 짧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를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도암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하지만 많은 종주대가 보이지 않아 살펴보니 등로 좌우측으로 나 있는 우회 등로를 타고 좌우측으로 내려온 것이다.

기다렸다 모두 만나 다시 고갯마루 정중앙에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절개지를 올라 177봉으로 향한다.

도암리는 조선 선조대 임진왜란 후 노씨와 설씨가 처음으로 이주하여 왔으나 현재 거주치 않고 240여 년전 중분리에서 김해김씨가 분가하여 거주하였으며 그 후 진주강씨, 전주이씨가 이주하여 살면서 마을이 형성되였다.

지명유래는 상하마을 중앙에 용과 거북모양을 닮은 바위가 있고 용과 거북을 보호하는 앞산과 뒷산에 바위가 많고 중도, 정도, 화흥, 가용리등의 길의 중심지라 하여 도암리로 칭하게 되었는데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도 남아 있다.

마을입구에 암산바위가 있는데 옛부터 이 바위에서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바위제를 지내왔다하며 비가 오지 않을때는 지금도 바위제를 지내고 있다고 전해진다.

 

      

앞서 몇명의 산우님들이 먼저 오르고 뒤따르는데 등로는 봉우리 방향이 아닌 좌측 사면 등로를 따르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이곳에서 독도를 하며 정리를 해 보니 방금 전 도암리 도로로 내려올 때 정중앙 능선을 고집하였는데 우측 갈림 우회 등로를 따랐으면 도암리 고갯마루가 아닌 우측 하단부로 내려가 그곳에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서망산 방향으로 진행하였으면 좋았을 것을 고갯마루에서 오르다 보니 잠시 헷깔렸던 것이다.

무조건 등로도 없는 산길을 타고 중앙의 봉우리 방향으로 치고 오르니 우측 서망산 오름 들머리 이정표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타고 오르며 진행을 하게 된다.

이곳부터는 고속도로 수준의 뚜렷한 등로를 따라 177봉으로 진행을 해 본다.

 

이제 막 깊은 겨울잠에서 깨어나 연두빛 봄으로 변해가며 봄을 재촉하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본다.

그저 무심으로 두발만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듯 보이지만 머릿속과 온 몸에선 봄이 오는 연두빛과 냄새를 느끼며 그렇게 즐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안 고속도로 같은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봉우리 직전에 통정대부를 지낸 김공과 부인 합장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정상부로 이어지지 못하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우회하도록 되어 있다.

잠시 우회해 진행하니 다시 뚜렷한 등로를 만나 진행하고 곧이어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우측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90도 꺽어 내리막 등로가 지맥 등로인데 살펴보니 이곳이 바로 177봉쯤 되어 보이는 곳이다.

 

후미에게 177봉에서 길주의 하라는 무전을 날리고 다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곳 역시 등로가 잘 관리되어 고속도로 수준이다.

잘 정비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가까운 곳에서 차량들이 지나다니는 굉음이 귓전을 울리고 다시 해송이 등로 주위를 차지한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77번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완도읍이 평온하게 내려다 보인다.

잠시 77번 포장도로로 이어지는 절개지를 피해 우측 등로로 내려가니 뜻하지 않은 삼각점 하나가 눈에 들어 오는데 왜 이런 삼각점이 이곳에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절개지를 피해 우측으로 77번 도로쪽으로 내려가니 등로 우측에는 비닐하우스와 민가가 보이지만 선답자들이 그토록 원망을 했던 강아지의 울부짖음은 볼 수가 없어 다행이다.

도로로 내려서서 앞을 보니 저 멀리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300미터 전방에 갈림삼거리에서 좌측은 완도항과 완도군청으로 가는 방향이고 우측 77번 포장도로를 따르면 당인리와 화흥포항으로 가는 방향 표시가 되어 있다.

내려 가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의 완도읍 방향으로 고갯마루를 넘어 걸어가는데 생각보다 차량들 통행이 많아 조심해야 할 소가용리 고갯마루처럼 보인다.

후미까지 조심시키며 천천히 진행을 해 본다.

 

소가용리 고갯마루를 넘어 완도읍 방향으로 가니 도로 우측으로 서망산 등산로 안내판이 서 있고 화살표로 인도를 해 준다.

완도 해조류박람회가 오늘부터 이곳 완도에서 시작되어 무척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왔기에 읍내가 무척 북적거린다는 소식에 약간은 걱정이 되지만 별 일 없을 것으로 믿고 진행을 해 본다.

통나무 계단을 타고 조금 더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인 완도읍 방향으로 현대아파트 방향 표시가 그리고 우측으로는 서망산 1.0 Km란 방향과 거리 표시가 있는 이정표를 만나 서망산 방향으로 진행을 해 본다.

그곳을 지나니 다시 우측 갈림 등로에 호번정 가는길이란 안내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77번 소가용리 고갯마루를 지나 오르니 넓은 수렛길 같은 등로 양쪽으로는 개량된 붉은 키작은 철쭉길이 열려 있고 그 길을 따라 걸어가니 그늘 하나 없는 등로 위에선 뜨거운 태양빛이 그늘이 그립게 만들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조금 더 진행해 등로 좌측에 있는 벤취 쉼터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후미에서 두명의 산우님이 탈출을 한다는 소식에 잠시 마음이 무겁지만 저녁식사를 위해 예약한 식당이 멀지 않기에 그곳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후미까지 도착해 다시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서망산으로 오른다.

붉은 철쭉 꽃 길을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넓은 공터와 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해 오르니 또 다른 암릉이 등로 좌측을 차지하고 있는데 그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가야 할 완도지맥 끝자락과 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완도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이 산객의 답답했던 가슴을 뻥 뚫어 준다.

 

등로 우측으로는 망석리와 남해바다가 시원하게 조망되고 바로 발 밑으로는 내려가야 할 완도중학교 옆 신흥사 오르는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우측 앞으로는 2차선 포장도로 건너 신흥사 뒷편에 남망봉의 높은 이동통신탑이 우뚝하고 좌측 끝자락엔 동망봉의 완도타워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진행을 하니 등로 우측에 벤취 쉼터가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꽃밭 같은 등로를 지나 금새 호번정 정자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은 공사중인지 출입금지가 되어 있어 아쉽기만 하다.

서망산 정상에 세워진 팔각정이 바로 호번정(湖藩亭)인데 그 팔각정자 앞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되어 있다.
난중일기(1596년) 8월 23일조에 이순신 장군이 이정충 부장을 대동하고 망산에 올라 좌우를 살펴본 즉, 적이 다니는 길과 모든 섬을 모두 다 헤아릴 수 있는
과연 한반도 요충의 땅으로 국방의 요새로다라고 극찬하여 그 훗날 정유재란 때 고금도에 삼도수군 본영을 세워 군비를 정비하여 노량대첩에서 왜구를 섬멸하고 임진왜란을 대첩으로 이끈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완도를 호남의 울타리, 국방의 요새지로 규명한 역사적 의미가 담긴 삼망산정에 그 사연을 기념코자 호번정(湖藩亭)이라 명명하였다.
3월 29일 완도읍 서망산

설명판처럼 일망무제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이 일품인데 그에 더해 식재된 개량 철쭉이 붉게 만개를 하였으니 이보다 더 좋을수는 없는 시간이다.

 

호번정에서 속속 도착하는 산우님들 사진을 남겨 드리고 그 팔각정 우측의 돌탑을 돌아 호번정 뒤로 오르니 그곳에도 환상의 풍경들이 숨어 있다.

동쪽인 등로 좌측으로는 완도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데 몇번인가 완도를 지났으면서도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은 처음인듯 하다.

완도는 해남군 북평면 남창리 해안에서 남쪽으로 약 2.5 Km 지점에 있는데 육지와는 달도를 사이에 두고 남창교와 완도교로 연결되었으며 주위에는 고마도, 사후도, 백일도, 흑일도, 동화도, 신지도가 있다.

신라시대인 829년(흥덕왕 3) 완도읍 죽청리에 청해진이 설치되었으며 고려시대에 동과 서 지역이 각각 강진현과 해남현에 속했다가 조선시대인 1521년에는 현재 읍소재지인 군내리에 가리포진이 설치되었고 1896년 완도군의 신설로 군내면이 되었다가 1922년 완도면으로 개칭 1943년에는 읍으로 승격했으며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내면의 대야리를 포함하면서 섬의 북부는 군외면 남부는 완도읍으로 관할구역이 나누어졌다.

섬 중앙의 상황봉(644미터)이 최고봉이며 북쪽에는 숙승봉(432미터), 백운봉(601미터) 등 기복이 심한 산들이 솟아 있고 남동쪽에는 100미터 내외의 구릉과 평지가 있으며 북부일대의 해안은 비교적 단조로우며 간석지가 펼쳐져 있고 남쪽해안은 큰 만과 돌출부가 이어져 있으며 해식애가 발달했다.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며 비가 많은 해양성기후이고 온대활엽수가 자라며 남단에는 팽나무, 동백나무 등 상록수림이 자라고 특히 완도항만 내의 주도에서 자생하는 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28호)이 있다.

농산물로 쌀, 보리, 고구마, 마늘, 밀감, 유채 등이 생산되며 주민은 대부분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는데 연근해에서는 고등어, 도미, 삼치, 갈치, 멸치, 장어 등이 잡히며 김, 미역, 굴 등의 양식이 활발한데 양식된 김은 맛이 좋고 생산량이 많아 전국으로 출하된다.

취락은 섬의 중심지인 남동쪽 완도읍 군내리와 북쪽 군외면 원동리를 비롯해 해안가 곳곳에 분포해 있는데 완도교와 남창교를 지나 해남과 연결되는 국도가 동쪽 해안을 따라 나 있다.

남동쪽에 있는 완도항은 연안도서의 생활필수품 수송기항지이며 제주도의 관광지원항이고 일부 남쪽 해안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법화암, 구계등, 청해진지 등의 관광명소를 비롯한 해안일대의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관광지로 유명하다.

내려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북서쪽으로는 상황봉에서 이곳 서망산으로 이어진 장쾌한 완도지맥이 멋지게 펼쳐져 있다.

인간의 간사함이 묻어나는 시간으로서 지나 온 등로는 왜이리 모두 아름답고 멋지게만 느껴지는지 모를 일이다.

아마도 한발 두발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힘들고 고통스럽게 걸어 진행했던 마루금이기에 더욱 애틋하고 자랑스럽게 바라보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하지만 역시 지나온 등로는 다시 되돌아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련지 모를 일이기도 하다.

언제 다시 이곳에 다시 올라 저 상황봉을 올려다 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을지 기약이 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가슴속 깊이 이 풍경과 조망을 간직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떠나기 아쉬워 다시 한번 상황봉에서 흘러 내려온 완도지맥 그 마루금 우측으로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는 완도읍내 그리고 연육교로 이어진 신지도를 바라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철쭉 꽃길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우회등산로(체육공원) 이정표가 서 있고 벤취 쉼터를 지나 현대아파트에서 1.0 Km 지나 왔고 군립도서관까지 0.7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 돌탑 위에 봉수대란 정상석이 서 있는 서망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서망산은 높이 172미터로 완도읍에는 작은 동산이 3개가 있는데 완도의 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서망봉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완도읍 전경이 조망되며 저 멀리 바다위에 건설된 연륙교는 완도와 신지면을 연결하는 신지대교로서 2005년 12월 준공되어 농수산물 유통 효율화 등 교통편익 개선과 더불어 남부권 최고 휴양지인 신지명사십리 해수욕장까지 차량으로 10분 정도 소요된다.
신지면의 남북으로 뻗은 상산(높이 324미터)은 명사십리 해수욕장뒤편에 위치하여 명사십리 등산코스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고 산책로가 완만하여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산이며 낮지만 바다와 고금도 등 완도의 섬들을 관망하기에 최적의 위치에 있다.

또한 여름에 등산계획을 한다면 해수욕장을 경유하여 가족들과 최고의 추억을 만들 수 있다.

한동안 머물며 후미가 도착할 때까지 주위 조망을 즐겨 본다.

 

서망산 정상에서 주위 조망을 즐긴 후 바로 발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완도중학교 옆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찾아 보지만 이곳 역시 산행 초반부의 239봉 오르는 등로와 마찬가지로 등로 자체가 없다.

다행인 것은 날이 밝아 내려가야 할 정확한 위치와 목표지점을 보면서 내려 갈 수 있기에 조금은 난해한 등로라 해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다른 부분이다.

잠시 진행 방향을 바라보니 완도중학교의 드넓은 인조 잔디장이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완도시내의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옥들이 제법 도심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우측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완도지맥 마지막 줄기가 비산비야를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완주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내려가 보는 시간이지만 과연 바램대로 완주 후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실 수 있을련지...

 

이곳 서망산 정상에서도 두어명의 종주대가 먼저 하산을 하고 나머지 종주대를 이끌고 서망산 봉수대 정상석을 둘러쌓고 있는 돌담을 돌아 완도중학교 인조 잔디장과 건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 푸른밭과 2차선 도로를 목표로 천천히 내려가 본다.

민둥의 급경사면에 나무를 식재한 흔적이 있지만 생각보다 가파른 경사도에 약간은 위험함을 느끼며 모두 조심시킨다.

한발 두발 조심하며 내려가니 뒤따르는 산우님들 입에서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보기보다 쉽지 않은 내리막 등로 산행이다.

그래도 모두 무탈하게 내려가 종주대 키보다 더 웃자란 억새밭에 몸을 맡기고 즐거운 추억도 담아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조심하며 내려가니 도로쪽으로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거대한 콘크리트 도랑이 길을 막는가 하면 잡풀들이 자랐다 말라있는 밭둑이 종주대의 진행을 가로막으며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고 있다.

그렇게 밭둑을 타고 완도중학교를 좌측에 두고 내려가니 드디어 4차선 청해진남로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도로 따라 걸어 간다.

완도중학교를 좌측에 두고 우측에는 청해진남로를 따라 걸어가니 저 멀리 우측으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삼거리 가운데엔 대한불교조계종 산하 신흥사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다.

좌측의 4차선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신흥사 들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막 도로를 오르니 다시 도로 우측으로 갈림 시멘트 도로가 나타나고 그 삼거리 한가운데엔 묘지들이 보인다.

그곳 삼거리에서 우측 콘크리트 포장 도로를 버리고 좌측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방금 전 올랐다 내려온 호번정의 팔각정과 서망산 정상부가 보이고 그 아래로 어렵게 내려온 비등로 내리막 급경사길도 그대로이고 그 우측으로는 완도중학교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다시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정상 등로가 열려 있지만 오늘은 그냥 도로를 따라 남망산으로 오르기로 한다.

 

계속 1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다시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신흥사 가는 도로이고 우측이 남망산으로 오르는 방향 이정표가 서 있다.

이곳 갈림 삼거리에서 함께하는 종주대에게 식수 보충이 필요하느냐 물어 보니 남아 있는 식수로 가능 할 것 같다는 의견에 신흥사는 포기하고 남망산으로 곧장 오르기로 한다.

이제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변한 남망산 가는 도로를 타고 오르니 거대한 통신탑 하나가 도로 좌측으로 보이고 그쪽 방향의 콘크리트 임도 앞에는 좌측 진행방향으로 동망산일출공원과 지나온 방향으로 완도중학교란 이정표가 서 있다.

그 이정표를 무시하고 계속 1차선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오르니 그 끝자락에 높고 거대한 이동통신 탑이 서 있다.

그곳 통신탑 앞 콘크리트 포장도로 위에서 남아 있는 과일과 빵 등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마지막 힘을 내 보기로 한다.

 

 

한동안 쉬면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이동통신탑 우측의 콘크리트 벽 옆을 통해 진행하니 그 통신탑을 좌측에 두고 반바퀴 돌아 오르듯 올라 드디어 산불감시초소와 돌탑 정가운데에 서 있는 봉수대 정상석이 있는 남망산에 오른다.

이곳 남망산은 생각보다 조망이 없다.

KT 통신탑과 잡목들 그리고 군초소라 생각되는 콘크리트 건물과 그 건물을 둘러친 철조망 등으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정상부의 풍경을 사진에 몇장 남기고 이제 마지막 산행길을 재촉해 본다.

다만 이곳 남망봉이나 남망산에 대한 상세 자료를 찾지 못하니 그것이 아쉬울 뿐이다.

 

남망산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주의 광케이블매설지역이란 안내판이 계속 뒤따라 오고 이제 등로는 키 큰 소나무 몇그루와 크게 자랐다 말라 버린 억새들 그리고 그 아래 수줍게 피어난 철쭉 등로로 바뀌면서 새로운 풍경을 전해 준다.

잠시 더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이제 진행해야 할 마지막 완도지맥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끝자락에 대구두의 남녘 바다도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림잡아도 저 끝자락까지 가자면 최소 한시간 이상 거려야 하는데 지금 시간을 보니 오후 3시 30여분이 가까워지고 있다.

참으로 난감한 고민에 빠져 있는데 고민도 잠시 아쉽지만 식사 후 서울 복귀 시간을 생각해 오늘은 이곳 망남리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하고 버스 기사님과 통화 후 일정을 변경한다.

개인적으로 가깝게 보이는 대구두를 앞에 놓고 그곳을 오르지 못한 채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깝게 느껴지지만 남아 있는 구간은 다음에 여행겸 내려 와 오르면 될 것이다.

 

다시 조금 더 내려가니 파란 잎을 흔들거리며 동백나무가 반겨주고 그곳에서 직진의 동망봉 가는 등로와 우측으로 90도 꺽어 내려가는 대구두 가는 등로 갈림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처음부터 동망봉으로 가려고 했던 산우님 한분을 보내 드리고 그래도 아쉬워 대구두 방향으로 내려가니 묘지가 나타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구두까지 가지 못할바엔 차라리 동망봉 방향으로 내려가 동망봉이라도 사진에 담고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기로 한다.

다시 갈림 삼거리 등로로 뒤돌아 올라 와 가야 할 동망봉  마루금을 사진에 담은 후 내려가니 버스 기사에게서 전화가 오고 바로 망남리 표지석 앞에 기다리고 있을 예정이라고 소식을 전한다.

잠시 동망봉 방향으로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종주대 버스가 나타나고 그 버스를 보는 순간 종주대 모두는 더 이상 산행에 대한 의지가 꺽이며 이곳 망남리 표지석에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2차선 포장도로가 있는 망남리 표지석에서 먼저 동망봉으로 출발한 산우를 불러 함께 산행을 마무리하고 배낭을 정리해 본다.

망남리 표지석 바로 뒤에는 노란 유채밭이 있어 여산우님들이 다시 많은 추억을 만들고 그렇게 그곳에서 삲행을 마무리하며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하루의 길었던 시간을 갈무리 한다.

이곳 망남리는 이조말(1805년) 완도군 청산면 상서리에 거주하던 임두남씨가 목포와 여수등을 목화 장사 차 배를 타고 항해하던 중 심한 풍랑으로 배가 파손되어 표류하다가 본 낭기미(현 망남리) 해안으로 밀려 정착하게 되어 대를 이어 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였으며 마을 유래는 당초본랑기미라고 불렀으나 1951년 망남산을 중심으로 맨 남쪽에 위치하여 망남산을 바라보는 형상이라 해서 망남리로 개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곳 망남리 마을에도 어김없이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데 마을 뒷산이 마치 부엉이 머리모양과 같아 부엉이 바위라고 불리우고 있으며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있으면 산울림이 마치 부엉이 울음처럼 들려 중추절에는 부엉이 바위에 바위제를 지내 왔다는 전설이 바로 그것이다.

 

5개봉 종주를 일찍 마친 산우님들은 몽돌해수욕장을 둘러보고 그곳 근처에서 대중버스를 이용해 완도시내의 수협수산시장으로 오기로 했다는데 거리가 멀어 걱정이 된다.

아닌게 아니라 몇몇 산우님들은 버스 기사에 대한 불평불만이 대단하고 그것을 뒤로하고 어렵게 예약한 수협 수산시장내 88호점에 들어 준비한 회로 식사를 하려는데 미리 준비한 주류는 반입이 금지란 말에 이 산객도 폭발직전까지 갔다가 어렵게 참고 불편한 식사를 시작하는데 회 양은 왜 또 이리 적은지 그저 아쉽기만 하다.

정상적인 돈으로 예약을 했으면 최소한 먹는 것으로 장난은 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산행이 아닌 기타 다른 사연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불편한 시간이 되는 것이 안타깝고 아쉽기만 하다.

알고 보니 오늘부터 이곳 완도에서는 해초축제가 열리고 그 축제로 인해 너무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시내 교통이 통제되어 불편하고 더욱이 많은 여행객들이 찾다 보니 처음 약속한 것보다 양도 적도 불친절한 완도의 뒷풀이가 되고 말았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모두 만족할 수 없기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지만 만족하지 못한 산우님들이 있었다면 이 지면을 빌어 미안한 마음 전해 드리며 진정한 산행과 여행은 이런 불편함까지도 즐길 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 시간이다.

 

함께해준 종주대 여러분 고생 많이 하셨고 다음에는 더 좋은 산행 공지와 조금은 덜 불편한 먹거리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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