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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맥산행(완료)/낙동정맥(완료)

낙동정맥 제12차 블랫재에서 시티재까지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1.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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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북 포항시와 영천시 그리고 경주시의 낙동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1년 08월 26일과 27일 (무박 2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과 오전까지 짙은 안개와 구름 후 점심부터 따가운 햇살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20도에서 영상 26도

산행인원 : 칠갑산 포함 3450온누리산악회 낙동정맥 종주대 14명

산행코스 : 도일리 중도일-블랫재-421.2봉-상안국사 갈림길-돌탑봉(운주산 갈림 삼거리)-

               헬기장-운주산(806.4봉)-운주산 0.2 Km 이정표-돌탑봉 복귀-안국사 갈림길-

               식탁바위-임도(산판도로)-617봉-580 돌탑봉-621.4봉-6.25전사자 발굴유해현장-

               대구포항간고속도로터널-이리재(921번 지방도로)-614.9봉(봉좌산 갈림길)-

               봉좌산-연내마을 하산길-옥산서원 갈림길-임도-배티재((570.7봉)-도덕산 갈림길-

               도덕산-너덜지대-임도-오룡고개(2차선 지방도로)-바위지대368.4봉-407봉-

               옛무덤(310봉)-삼성산 갈림길-삼성산-삼각점(월성이씨무덤)-330봉-금동지안부-

               349.8봉-벌목지-시티재(안강휴게소, 24번 지방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3.90m (정맥구간 22.90 Km 및 접속구간 01.00 Km 중도일에서 블랫재까지)

산행시간 : 안개와 흐린 날씨로 꾸준하게 10시간 20분 

               (04시 10분부터 14시 30분까지)

 

낙동정맥이란 ???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바다를 가르는 한반도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천의봉(매봉산,1303봉)으로 솟아 오르기 전 1145봉 직전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태백 백병산(1259봉), 통고산(1067봉), 울진 백암산(1004봉), 청송 주왕산(720봉), 경주 덕석산(829봉), 울산 가지산(1240봉), 신불산(1209봉), 부산 금정산(802봉)을 지나 백양산(642봉)을 넘어 낙동간 하구인 다대포 몰운대에서 끝나는 약 397 Km의 산줄기를 낙동정맥이라 한다.

낙동정맥 중에서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으로 그 높이는 1259미터이다.

 

 

천년고도인 경주를 향하는 길목에서 6.25 전쟁의 비극을 생각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정맥 산행을 진행해 무탈하게 맥 잇기 산행을 다녀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정맥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바빠진 일정으로 인해 제대로 된 산행 한번 못하고 2주일 동안 먹고 마시고 다녔더니 조금은 부담이 되면서 걱정이 되는 구간으로 다가온다.

특히나 많은 종주대들이 추석 전 벌초와 일이 바빠 빠지게 되니 더욱 많은 걱정이 앞서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풍운 고문님의 합류로 그나마 위안을 삼아 본다.

또 하나의 변수는 날씨였는데 전국적으로 내린다는 비가 다행이도 산행지에는 구름만 많이 끼고 비는 내리지 않는다니 고마운 일이다.

어렵게 25인승 차량과 산행 후 빠가사리 매운탕으로 뒷풀이를 결정하고 나니 조금은 줄어 든 부담감으로 다시 먼 길을 떠나는 시간이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어렵게 마지막 349.8봉을 넘자 바로 발 밑으로 넓게 펼쳐진 벌목지 넘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안강휴게소의 시티재가 내려다 보이고 그 넘어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호국봉과 길게 이어진 낙동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올려다 보인다.

하지만 쉽게 생각했던 내리막 등로가 벌목지대로 변하며 등로를 막아 놓아 정상적인 등로를 찾지 못하고 많은 시간 소비하며 어렵게 마지막 날머리로 내려오며 긴 한숨을 내쉬어 본다.

또 이렇게 멀고도 길었던 시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다.

 

지난 구간 몇명의 선두 종주대가 예상치 못한 알바로 인해 걱정을 하며 오랜시간 지냈던 오늘 산행 들머리를 찾아 가는 시간 역시 쉽지 않다.

버스 기사가 바뀌고 또 다시 25인승 버스를 타고 진행하다 보니 예약 되였던 마을 트럭은 취소되고 도일리의 중도일 마을을 가로질러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힘들게 오르니 좌측으로 급격히 꺽어지는 갈림 삼거리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버스를 돌려 보내고 산행 준비 후 천천히 불랫재로 오른다.

풀숲에 내려 앉은 이슬이 물방울이 되어 시멘트 도로를 적시고 있지만 생각보다 좋은 산행 조건에 기분 좋은 새벽 시간이다.

10여분 시멘트 임도와 비포장 임도를 갈아 타며 완만한 도로를 오르니 지난 구간 날머리였던 블랫재에 도착해 사자상을 만나려 하지만 키큰 잡풀들로 인해 포기하고 후미를 기다려 새벽 4시 10여분 드디어 가파른 짧은 절개지를 타고 오르며 낙동정맥 제12구간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잠시 낙동정맥 종주대에게 중요하게 다가 온 도일리의 마을 이름 유래에 대해 잠시 알아 보는 시간을 가져 본다.

도일리 상도일은 지금부터 약400년전 이곳에 안부자가 살았다.

또 이 마을은 경주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으로서 한양으로 가는 손님은 안부자집에서 머물렀다.

도일리 중도일은 약 150년 전에 최씨가 개척했다하며 신당은 약 150년전에 남상봉이라는 선비가 개척했다.

이 마을은 조선 말까지 경주군에 속했던 것을 1910년 행정구역 개편시 영천군에 속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땐 몰랐는데 점점 고도를 높이며 오르니 짙어지는 안개가 종주대의 몸을 감싸며 시작부터 많은 땀방울을 요구한다.

등로는 완만한 오르막으로 진행되면서 등로 우측으로는 방금전 미니 버스로 어렵게 올라온 도일리 마을의 불빛이 반짝이고 좌측으로는 포항의 가안리와 구지리쪽 마을에서 또한 붉은 불빛이 흘러 나오고 있다.

380봉을 넘자 나즈막한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더니 다시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더 진행 후 땀방울을 닦으며 후미를 확인한 후 조금은 더 가파라진 마루금을 타고 오르니 421.2봉을 지나 또 다시 등로는 짧은 내리막 등로로 내려갔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온 몸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선답자들 산행 후기에서 봤던 바위 옆 멋진 소나무 한그루를 만나지만 어둠속이라 그저 인사만 나눈다.

 

멋진 소나무를 지나 고도를 높이니 생각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오기 시작하고 600미터쯤 되는 장소에 도착해 잠시 후미 기다리며 물 한모금 마셔 본다.

다시 계속되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블랫재에서 산행 시작 후 1시간 30여분만에 등로 좌측으로 상안국사 하산 갈림 삼거리에 도착해 이정표를 담아 본다.

지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있는 안국사를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을사조약 이후 1906년 영천과 포항 지역의 의병 1천여 명이 참가해 창설한 의병부대인 산남의진의 활동 근거지가 된 안국사는 일본군의 방화와 파괴로 1908년 무렵에 초토화됐다.

이후 안국사는 폐사가 되고 그 터는 방치되다가 지금은 농경지가 돼있고 무속 행위도 행해지고 있다.

사적지 훼손이 심하고 시민들과 문화재 당국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에 아쉬운 문화재 보호가 아닐까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상안국사 터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떠나 다시 급격하게 가파라지는 등로를 타고 많은 땀방울을 흘리니 드디어 운주산 갈림 삼거리에 서 있는 돌탑을 만나고 그곳에 배낭을 두고 운주산으로 향한다.

몇명 되지도 않는 종주대이지만 안개로 인해 높은 습도와 아직까지는 시원하게 불어 주지 않는 바람으로 인해 아주 제한된 인원만이 운주산으로 향한다.

운주산에 들렸다 내려오며 살펴보니 이곳에 배낭을 두는 것이 아니라 운주산 0.2 Km 이정표가 서 있는 삼거리에 배낭을 두고 올랐다 내려와 배낭을 회수하는 것이 맞을 듯 싶다.

 

배낭을 돌탑봉에 내려 놓고 스틱에 의존해 운주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나 가볍다.

잠시 내려가듯 이어지던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오르막 등로로 변하더니 운주산 가기 직전 넓은 헬기장 하나가 보인다.

살펴보니 아직도 제법 쓸만한 모양의 시멘트가 제대로 남아 있는 헬기장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다시 완만한 등로를 타고 오르니 금새 운주산 정상이다.

정상 직전에 운주산이란 큰 이정표가 서 있고 그 아래에 운주산 유래가 적혀 있으며 그 정상에는 세개의 정상석이 모두 하늘을 향해 누워있고 그 한가운데에 사작형의 정상석 하나가 제대로 된 모양으로 서 있다.

운주산 유래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산을 멀리서 보면 항상 구름을 받치고 있는 기둥같이 보인다 하여 운주산이라 한다.

산세가 험준하여 임진왜란때는 김백암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아 항전하였고 1910년대에는 산남의진 항일의병활동의 근거지로 알려져 산 아래에 있던 안국사가 일제에 의한 방화로 불타 없어졌다.

운주산 중턱에는 박쥐구멍이라 불리는 굴이 있는데 한꺼번에 100여명이 들어 갈 수 있어 임진왜란과 6.25전쟁 때는 주민 피난처로 사용되기도 했다.

많은 사연과 안타까운 역사를 간직한 산이 되어 버린 운주산에서 함께한 종주대가 모여 간단히 미니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한동안 운주산 정상에서 머물다 다시 내려오며 살펴보니 중간에 운주산 정상 0.2 Km란 이정표가 서 있고 등로 우측으로 갈라지는 등로 하나가 보인다.

아마도 이곳까지 배낭을 메고 올랐다 벗어 놓고 내려오며 회수해 진행하는 것이 돌탑봉에 배낭을 놓고 진행하는 것보다 좋을 듯 싶다.

이곳에서도 역시 상안국사로 내려가는 길이 있고 거리가 1.5 Km란 이정표가 눈길을 잡는다.

 

다시 돌탑봉으로 뒤돌아 올라 내려 놓았던 배낭을 메고 짧지만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선두로 내려가던 종주대가 갈라지는 삼거리 등로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다.

살펴보니 등로 우측으로 확실한 길이 하나 나 있고 그쪽으로 많은 정맥 띠지들이 붙어 있어 그곳으로 진행하려고 우왕좌왕했던 것이다.

살펴보니 우측 등로는 방금 전 운주산 정상에서 내려오며 봤던 운주산 정상 0.2 Km 이정표로 향하는 등로로서 정상으로 올랐다 이곳으로 내려오는 등로라 추측되는 시간이였다.

그곳에서 좌측의 정상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나뭇가지에 상안국사로 내려가는 이정표 하나가 붙어 있다.

 

이제부터 영천소방소에서 세워둔 이정목이 일정한 간격으로 종주대의 앞길을 잘 인도하고 있다.

다시 철쭉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하니 식탁바위가 보이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다시 출발한다.

핵가족으로 이뤄진 4인용 식탁으로 조금은 작게 보이는 식탁바위였다.

 

식탁바위를 지나 다시 한동안 잡목 사이를 진행하니 폐허가 되어가는 617봉의 산판도로가 나타나지만 이미 그곳은 잡목과 잡풀들에 점령 당해 산판도로인 줄도 모르게 진행하는 곳이 되였다.

다만 그곳에는 키 큰 나무들이 없어 민둥의 짧은 등로로 이어지기에 무슨 특별한 곳인가 하고 다시 한번 지도를 보게끔 만드는 그런 곳이였다.

그곳 사라지는 산판도로를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월성최씨 묘지를 지나 서서히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그곳을 오르니 역시 돌탑 하나가 서 있는 돌탑봉에 도착한다.

살펴보니 이곳이 621.4봉 직전의 무명 돌탑봉이였다.

 

돌탑봉을 지나니 종주대들이 진행하지 않고 기다리고 등로 위 평편한 곳에서 아침 식사를 즐긴 후 진행하자는 의견에 안개 자욱한 그곳에서 우리들만의 식탁을 차려 본다.

30여분간 맛난 식사를 마치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621.4봉을 지나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주위에 많은 구덩이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6.25전사자유해발굴Line이란 띠가 걸려 있어 그 치욜했던 낙동강 전투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였다.

 

일명 기계 안강 전투의 처절했던 시간을 뒤돌아 본다.

기계 안강전투는 1950년 8월 9일부터 9월 22일까지 기계와 안강 그리고 포항과 경주 북부 일원에서 국군 1군단 예하 수도사단이 북한군 유격부대인 766부대로 증강된 12사단의 남진을 저지한 방어전투다.  
1950년 7월 말까지 지연작전을 수행하던 국군과 유엔군은 8월 1일을 기해 낙동강에서 최초로 좌우가 연결된 방어선을 편성했다.

이때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던 국군 1군단은 북한군 주력이 안동-의성-영천 접근로에 투입될 것으로 판단하고 예하 8사단과 수도사단을 의성과 길안 일대에 각각 배치했다.

이 무렵 북한군은 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에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기 전에 신속한 추격작전으로 이를 돌파한다는 계획을 수립하고 8월 5일을 전후해 낙동강 일대의 모든 전선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일명 북한군의 8월 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이로 인해 마산~왜관~영덕에 이르는 국군과 유엔군의 방어선 곳곳에서 돌파구가 형성되는 위기가 발생했다.

특히 길안 일대의 수도사단 방어진지가 급속하게 와해되면서 청송~기계 축선이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됐다.

북한군 12사단은 이 공백지대를 통해 저항 없이 남하해 8월 9일 기계를 점령했다.

북한군의 기계 점령은 중동부전선에 최고의 위기를 조성했다.

북한군이 기계 바로 남쪽의 안강-경주로 침투할 경우 국군의 방어선은 동서로 양분돼 대구와 포항이 위태롭게 되고 나아가 부산 방어를 위한 차후 방어선 편성도 어렵게 되어 수습할 수 없는 국면에 빠질 수도 있었다.

이에 육군본부는 8월 9일 대구에서 신편 중이던 25연대를 안강 지역에 급파하고 뒤이어 기계, 포항지구의 방어임무를 위해 포항지구전투사령부를 급편했다.

이때부터 기계-안강 일대에서는 국군이 공세로 전환하기 전인 9월 22일까지 40여 일간에 걸쳐 피아간에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지게 됐다.

그 전투 기간중에 수많은 전사자들이 생겼고 아직까지도 그곳에 묻혀 있는 국군장병들과 북한군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곳이 되였다. 

말 없이 조용히 등로를 타고 진행은 했지만 가슴에서 올라오는 참을 수 없는 묵직한 답답함이 한동안 이 작은 산객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잡목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오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 부터 강렬한 차량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바로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소음이였다.

가끔 나뭇잎 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보이더니 그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자 마자 등로 좌측인 영천쪽으로 시원하게 뻗어 간 대구포항간 고속도로가 눈 앞에 펼쳐진다.

 

대구포항간 고속도로 터널을 지나자 마자 다시 곧바로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 와 921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이리재에 도착한다.

이리재는 포항쪽 기계면 봉계리와 영천쪽 임고면 수성리를 연결하는 고갯마루로 921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2차선 포장도로이다.
고갯마루 위에는 영천시 임고면을 알리는 표지판 뒤로 삼각형모양의 천장산(694.8미터)이 우뚝하게 보이고 등로는 도로를 가로질러 높은 콘크리트 옹벽으로 올라 능선으로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어렵게 시멘트 옹벽을 넘어 다시 조금은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한동안 진행한다.

진행하다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저 멀리 천장산이 잡목 사이로 우뚝 솟아 있고 그 주위로 제법 높이를 자랑하는 산줄기들이 이어져 있다.

조금은 완만한 등로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도 약간의 조망이 터지지만 역시 높은 고도의 장소에는 안개가 덮어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능선을 지나 등로 우측을 바라보니 깊은 골짜기 위 저 멀리 진행해야 할 마루금을 안개가 덮고 있고 보이는 아랫쪽에는 짧은 너덜이 보이기도 한다.

 

조금은 힘이 들어 바위가 있는 능선에 앉아 물 한모금 마시며 쉬고 있으니 모든 종주대들이 선두 후미 없이 촘촘히 붙어 올라오고 이 산객을 지나쳐 계속 오른다.

이곳에서 마지막 후미를 기다려 모두 올려 보내고 마지막으로 후미를 모시고 오르니 봉좌산 삼거리에서 떠들석한 종주대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그곳으로 오르니 시원한 캔맥주를 건네 준다.

캔 맥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살펴보니 두명의 종주대가 봉좌산으로 올랐지만 금새 뒤돌아 내려온다.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하나 없기에 봉좌산 삼거리 갈림길에서 뒤돌아 내려온듯 하다.

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보이는 것 하나 없는 오늘은 참기로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 후기에는 봉좌산에서의 조망이 환상이라 읽었던 기억에 올라보려 노력해 봤지만 짙은 안개로 보이는 것 하나 없기에 포기했는데 산행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많은 회후가 밀려 온다.

봉좌산(600미터)은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와 경주시 안강읍의 경계에 위치해 있으며 한티재쪽에서 내려오는 낙동정맥이 운주산 옆을 지나 이리재로 내려선 후 도덕산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상에서 약 700미터 정도 벗어나 있는 산이다.

낙동정맥은 계속 이어져 안강과 기계면의 경계를 가르며 어래산으로 이어진다.
봉좌산 꼭대기에는 봉좌암이라는 봉황 모양의 바위가 있고 포항시내에서 가까운 관계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봉좌암 암봉 위에 서면 주변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둘러보는 맛이 시원하다.

대부분 산행들머리를 봉계리 치동마을로 들어서지만 자옥산~도덕산~봉좌산~어래산을 잇는 아기자기한 능선코스도 권할 만하다.

다음 구간부터는 조금 힘들더라도 가까이에 위치해 있는 산들은 꼭 들렸다 내려오기로 해 본다.

 

봉좌산 갈림 삼거리에서 모여 시원한 캔 맥주로 목마름을 달랜 후 아쉬운 마음을 남겨둔 채 등로 우측으로 나 있는 정상 등로를 타고 계속 진행한다.

20여분 진행하니 갑자기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그곳에 멋진 팔각정이 서 있다.

그 팔각정 옆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니 연내마을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다.

 

남동쪽으로 이어지던 등로는 이제 남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남으로 내려가고 그 마루금을 타고 한동안 별 특징없이 걸어 본다.

잡목들이 무성해 주위 조망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마루금을 타고 한시간 가까이 걸어가니 다시 팔각정 하나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수성기점 2.5 Km 지점이란 이정석이 서 있고 그 옆에는 옥산서원 하산 갈림 이정표도 보인다.

영천이 아주 가깝게 자리하고 있음도 이정표를 통해 알 수 있는 곳이다.

지도를 보니 배티재는 이곳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570.7봉을 지나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있지만 실질적인 배티재는 바로 이곳이라 알고 있기에 잠시 배티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찾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사진 몇장 담은 후 넓은 임도를 타고 좌측으로 10여미터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임도 좌측 능선으로 나 있다.

그 능선으로 들어 가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무심으로 걸어 본다.

한동안 걷다가 등로 우측을 보니 안개속에 잠겨 있는 천장산이 아주 가깝게 바라다 보인다.

 

오를 수는 없었지만 그 기세가 너무나 당당하였기에 돌아 와 찾아 보니 천장산 역시 멋진 산이였다.

천장산(694.8미터)은 영천시 고경면과 임고면을 경계로 솟은 산으로 주변 가까이로 지역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운주산, 도덕산, 봉좌산이 있어 다소 소외된 편이다.
포항땅을 벗어난 낙동정맥이 도덕산 못미쳐에서 짧게 곁가지를 틀어 영천과 경주땅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천장산을 솟아 올린 후 단맥을 이어 임고면과 고경면을 경계 지으며 임고천으로 잦아든다.
천장산은 주변에서 볼 때 마치 독립봉처럼 뾰족하게 솟아 있어 어디에서 보든 당당한 산세를 자랑한다.

산의 모양세에 맞게 어느쪽에서 오르더라도 한 바탕 가파른 된비알을 극복해야 한다.

아직은 천장산만을 목적으로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편이라 주능선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뚜렷한 등산로가 발달되지 않은 편이다. 

 

                   

조금씩 햇살이 구름을 뚫고 환하게 비추니 대지가 다시 달궈지고 그 열기를 온 몸에 받으며 된비알 오르막을 오르니 참으로 고통스런 시간이다.

그래도 한발 두발 열심히 걸어 오르니 570.7봉에 오르고 그곳에서부터는 앞으로 올라야 할 도덕산 갈림 삼거리봉과 도덕산이 시원하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보는 것과는 달리 참으로 고통스런 오르막 등로가 끝도 없이 펼쳐진 마의 구간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등로 우측으로는 웅장한 독립 산으로 다가오는 천장산이 계속 그 머리에 하얀 안개를 이고 당당하게 서 있다.

제법 고도가 높음을 알려주려는 듯 하니면 주위에 고봉이 없어 그 당당함을 알리려는듯 늘 그렇게 그 꼭대기에는 하얀 안개를 이고 있다.

천장산 정상에는 삼각점만 고스락을 지키고 있고 잡목에 가려 있는 편이지만 정상 인근의 조망대에 서면 도덕산, 자옥산, 봉좌산, 어래산을 비롯한 주변의 올망졸망한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오고 향로봉~비학산 너머의 동해바다와 포항시가지까지 가시권 안으로 들어온다.

정상 남서쪽 조망터에선 운주산, 기룡산, 보현산, 면봉산은 물론 멀리 대구 팔공산까지 꼽아 볼 수 있다.
산행 들머리는 정상 북서쪽 아래 수성리쪽 천장사와 남쪽 삼포리, 배티재쪽을 들 수 있다.

언젠가는 한번쯤 들릴 수 있는 기회가 있을련지...

 

570.7봉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잡목이 우거진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좌측 봉우리로 이어지는 등로가 아닌 우측 사면 등로가 잡목 사이로 나 있다.

힘들고 고달픈 오르막 산행의 끝자락에서 만난 우회 등로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는 순간이다.

그렇게 멋진 등로를 타고 진행하면서도 혹시나 몰라 배티재를 찾아 보지만 그 어느곳에도 임도로 된 배티재를 찾을 수 없어 방금 전 지나온 임도가 배티재가 맞다는 확신을 해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시 한동안 진행하니 한두개의 바위들이 등로 옆에 서 있고 조금 더 올라가니 등로 우측에 붉은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바위를 지나 등로 좌측에도 거대한 바위 하나가 서 있는 지역을 지난다.

그곳 바위 지대를 지나 후미로 올라 오는 종주대 한분을 기다렸다 함께 조금 더 오르니 저 멀리 많은 종주대들의 목소리가 들려 온다.

그곳에 가니 모든 종주대들이 모여 잠시 쉬면서 도덕산을 올라 갈 생각을 않고 있다.

아직도 하얀 안개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기에 올라 가 봐도 조망 하나 없어 모두가 지친 몸으로 올라가기를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한명의 종주대가 240미터 되는 거리를 다녀 와 사진 한장 남겼다.

 

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산행할 땐 힘들고 지쳐 육신 하나 움직이기 어려워 가까이 있는 정상을 지나쳐 오지만 지나고 나면 늘 이렇게 아쉬운 마음만 노정을 하고 있으니 앞으로는 꼭 정상은 들렸다 내려오기로 해 본다.

도덕산은 자옥산과 이웃해 있으며 낙동정맥이 해안가를 타고 줄곳 남하하다가 이곳 도덕산에 와서는 그 기세를 누그러 뜨리고 내륙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지점이기도 하며 경주시 안강읍과 영천시 고경면의 경계에 자리한 해발 702.6미터의 아담한 산이다.
산세가 그리 빼어나지는 못하지만 산자락으로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흥건하여 반드시 한 번은 올라야 할 산이다.

국보 40호인 정혜사지 13층석탑이며 조선시대 영남오현의 한 분이신 회재 이언적(1491~1553)선생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세우고 기거하신 독락당(보물 413호)과 계정의 즐비한 고목과 중국주엽나무(천연기념물115호)며 명필 한석봉과 퇴계 이황 그리고 아계 이산해 선생들의 친필 현판글씨며 선조 5년(1572년)에 이언적선생을 제향하기 위해서 세운 옥산서원(사적154호)과 그곳에 보관중인 보물524호인 정덕계유사마방목, 525호인 보물 삼국사기, 526호인 해동명적 등 약 230종의 2197권의 책이며, 최근에 세웠으나 먼 훗날 명소로 남게 될 염불종의 총본산인 대가람 대흥사등 자락자락에 둘러보아야 할 곳이 수두룩하다.
정상의 넓은 반석들에 올라서면 안강벌판과 포항 그리고 멀리 동해바다 및 호미곶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지역 산꾼들이 간간이 찾고 낙동정맥을 찾는 이들을 가끔 만날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자료를 찾아 보는 순간 더욱 더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나는 시간이다

 

이제 도덕산 갈림 삼거리에서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우측 등로를 타고 내려가는 하산 등로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길이였다.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며 작은 자갈들이 깔려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다.

작은 돌들이 많아 자꾸만 굴러 내려가며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들에게 큰 위험을 줄 수 있는 그런 등로를 아주 조심하며 천천히 진행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제법 넓은 너덜지대가 잡목 사이로 보인다.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너덜지대로 들어가니 시원한 조망이 열리며 등로 우측의 천장산 정상에도 이제 하얀 안개가 거의 벗어진 시원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천장산을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는 대구포항간고속도로가 지나지만 나즈막한 산들에 막혀 보이지 않고 가슴으로 외쳐보는 영천이 그곳에서 보일 듯 다가온다.

가까이에는 산으로 둘러 쌓인 삼포리 마을이 한가롭게 앉아 있다.

삼포리는 영천시 고경면의 마을로서 1750년경 김씨와 최씨 양씨가 개척 당시 월성이라 하다가 1900년경 상계, 수홍 및 월성 3개 부락을 합쳐 한 마을을 형성하였다 하여 삼포라 부르게 되였다고 전해지는 마을이다.

태백산맥의 최하단인 천장산 기슭에 자리 잡은 산촌마을로 북으로는 천장산을 경계로 임고면 수성리와 접하고 있다.

 

남동으로 진행되던 등로는 도덕산 갈림 삼거리에서 다시 서쪽으로 크게 방향을 틀어 진행되다 너덜지대에서 바라보니 남서쪽 저 멀리 나즈막한 야산 뒤로 거대한 회색 도시속 아파트 단지들이 줄지어 늘어 선 영천도 가깝게 보인다.

처음에는 저곳이 포항이라 생각했는데 지도와 나침판을 놓고 정치를 해 보니 방향이 남서쪽으로 그곳에는 영천과 대구쪽으로 이어지는 방향이다.

그 좌측 저 멀리 나즈막한 산줄기를 타고 앞으로 진행해야 할 낙동정맥 마루금이 아름답다.

 

그곳 너덜지대에서 한동안 주위 조망을 둘러 본 후 이제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하여 내려갈 시간이다.

너덜지대를 빠져 나오기 직전 잠시 너덜지대를 바라보며 몇장의 사진을 남겨 본다.

설악산 황철봉 구간만큼은 아니지만 이곳 지방의 산들도 제법 많은 너덜지대가 분포하고 있어 조금은 궁금증이 나타난다.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내려가는 마루금도 역시 제법 가파른 위험한 마루금의 연속이다.

 

너덜지대에서의 조망이 너무 좋아 한동안 머물다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해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 온다.

제법 거칠은 칡넝쿨과 잡목들 그리고 잡풀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있지만 추석 명절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인지 묘지에 벌초를 온 후손들이 그나마 그 복잡한 등로의 잡목들을 많이 제거해 줘 편안하게 내려온다.

그러다 잠시 뒤돌아 보니 도덕산 삼거리봉과 그 우측으로 도덕산 정상이 아직도 안개속에 잠겨있다.  

 

잠시 더 칡넝쿨을 헤치며 내려가니 앞에서 진행하던 종주대들이 사진도 찍으며 여유를 부리고 있다.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오룡고개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시원한 맥주와 식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그렇게 내려가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뒤돌아 보니 이제는 저 멀리 잘록하게 들어간 배티재가 보이고 그 우측으로는 도덕산이 그리고 좌측 능선으로는 천장산과 이어져 있다.

이제부터 조금은 따가운 햇살이 구름을 뚫고 비추며 종주대의 갈길 바쁜 발목을 잡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잡풀이 무성한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갑자기 등로 좌측에 밭이 보이고 경계에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다.

들깨며 고추밭이 한가로운 농촌 풍경을 종주대의 가슴에 남기며 천천히 걸어 내려가니 예초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고 잠시 뒤 추석 명절을 대비해 벌초를 하기 위해 가족 모두가 산소에 올라 와 벌초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 산객도 시골에 내려가 벌초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산에만 들어 있으니 언제 내려가 벌초를 끝낼 수 있을지...

이제부터 제법 잘 정돈된 넓은 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잘 정리된 묘지를 지나 다시 임도와 만나 짧게 진행하니 금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오룡고개에 도착한다.

 

약속된 버스가 아직 보이지 않아 기사님에게 전화를 하니 시원한 식수와 맥주를 준비해 올라오고 있다는 전언을 받는다.

모두 모여 갈증을 풀고 무거운 짐은 모두 차에 남겨둔 채 조금은 가벼운 마음과 배낭을 메고 다시 도로 건너 전봇대 옆 밭 가장자리를 타고 오르며 마지막 투혼을 불사른다.

오랫만에 동참하신 고문님만 이곳에서 버스에 탑승해 탈출하고 나머지 종주대는 모두 이곳에서 다시 출발하는데 하지만 이곳부터 날이 개면서 뜨거운 햇살이 종주대 머리 위에 떠 마지막 오르막 등로에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하고 있다.

 

참고로 오룡고개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첨부되어 있다.

오룡리는 경북 영천시 고경면에 위치한 마을로서 이 마을의 역사를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때 달성 서씨가 처음으로 이 마을을 개척하였다 전한다.

지형이 용처럼 생겼다 해서 미룡이라 했는데 일제때에 강제로 미농으로 고쳐 부르다가 행정구역 개편시 오룡으로 불리어졌으며 그 오룡리에 있는 고개라 하여 오룡고개라 불리게 되였다는 설명이다.

이 오룡고개는 오룡리와 삼포리를 이어주는 2차선 포장도로이다. 

 

능선으로 오르는 오르막 등로에는 왜 그리 바람 한점 없는지, 온 몸에선 다시 샤워를 하듯 굵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등로를 적시고 있다.

참으로 어렵게 368.4봉을 오르니 등로는 미로속을 헤매이듯 칡넝쿨이 등로를 완전히 집어 삼키고 있다.

어렵게 그 넝쿨을 뚫고 진행하니 금새 407봉을 넘어 다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그곳에 묘지같기는 한데 모양이 다른 원형의 둥근 봉분 하나만 서 있는 옛무덤을 지나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진입한다.

 

무거운 짐은 모두 차에 두고 쌕에 음료수와 과일만 담아 올랐는데도 마지막 521.5봉 오르막 등로는 괴로움과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도 두어번의 휴식을 취하고 후미를 모시고 천천히 오르니 무전기에서는 선두에서 들려오는 길 안내 소리가 들리더니 삼성산 갈림길에서 정상 등로를 알려달라는 SOS 구조가 들린다.

지도를 꺼내 정상 등로를 알려 주고 한동안 오르니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끝이나고 등로는 우측의 사면길로 우회 등로가 나 있다.

그 완만한 우회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용도를 알 수 없는 굴 하나가 등로 좌측에 있어 담아 본다.

 

다시 완만한 오르막 우회 등로를 타고 천천히 오르니 종주대들의 이야기 소리가 들리고 삼성산 갈림 삼거리에 많은 종주대들이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그곳에서 시원한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고 삼성산을 들리려 했지만 단 한명의 종주대만 급하게 다녀오고 체력적인 부담으로 인해 모두 포기하고 우측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는 정상 정맥 등로를 타고 진행하기로 한다.

이곳 삼성산 역시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들리지 못한 것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 그런 시간이다.

 

직접 오르지는 못했지만 아쉬운 마음에 종주대가 담아 온 사진을 대신해 본다.

서울 관악산 옆에 있는 삼성산은 수도 없이 올랐지만 이곳 영천과 경주의 경계에 있는 삼성산은 언제 다시 오를 수 있는 기회나 있을련지...

삼성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었다.

안강에서 영천방면 국도를 따라 시티재(안강휴게소) 오르막 길을 달리다 보면 오른쪽 건너로 큼직한 팔작지붕 모양을 한 산봉이 바로 삼성산이다.

흔히 시티재 뒷산이라고도 하고 일설에 의하면 세 선녀가 내려왔다고 하여 삼성산이란 이름이 전한다.

삼성산은 영천시 고경면 오룡리와 경주시 안강읍 강교리 그리고 하곡리의 경계에 면한 산으로 도덕산 옆구리를 지난 낙동정맥이 본격적인 경주땅으로 입성하는 길목에서 북동쪽으로 약 700~800m 물러나 앉은 산이다.
정상부는 작은 바윗돌에 정상을 알리는 표석이 있지만 수목에 가려 이렇다 할 조망은 보이지 못하는 편이지만 찾는 이가 적은 관계로 때묻지 않은 산이다.

정상 오르는 들머리로는 오룡고개나 시티재에서 낙동정맥 마루금을 따라 접근하는 것이 쉽고, 강교리(너더리) 쪽에서도 오를 수 있다. 어느 쪽으로 오르든 정상부에 이르기 위해선 한 차례 급경사를 극복해야 하므로 높이에 비해 그리 만만하게 볼 수만은 없는 산이다.

그곳 삼성산 갈림길에서 보통이라면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지만 이곳은 특이하게도 삼성산 갈림 삼거리를 지나서도 계속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지고 있다.

10여미터 더 올라 진행하니 잘 가꿔진 월성이씨 묘지와 비석이 서 있고 그 묘지를 지나자 마자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사실이지만 분명 그곳 특별한 봉우리도 아닌 곳에 삼각점 하나가 박혀 있다는 것은 사실이였다.

 

삼각점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등로는 이제 좌측으로 반 원형을 그리며 완만한 내리막 길로 이어져 있다.

잠시 내려가니 잡목 사이로 등로 우측의 영천시 임고쪽 마을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 오고 그 마을 저 멀리 영천의 올망졸망한 산그리메가 푸른 들판과 어울려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날씨가 뜨거워 산행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안개로 인해 아쉬웠던 오전 시간을 보전이라도 해 주려는듯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다시 계속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 지나기 직전 좌측으로 전망대가 나타나고 잠시 들리니 방금 전 지나온 삼성산 갈림봉과 삼성산이 시원하게 조망되고 있다.

한동안 머물며 많은 사진 남기고 다시 천천히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묘지 한기를 지나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나즈막한 안부를 지났다 마지막 349.8봉만 넘으면 오늘 산행도 마무리가 되겠지만 그곳을 오르기 위해 또 얼마나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인지 두렵기도 한 시간이다.

 

내리막 등로를 타고 계속 내려가니 다시 짧게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 정상에 오르니 많은 종주대가 쉬면서 남아 있는 마지막 간식과 음료를 마시고 있다.

한동안 쉬었다 다시 진행하니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고 안부로 내려갔다 이제 마지막 349.8봉에 오르니 칡넝쿨이 등로를 막고 어렵게 진행하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 정상을 고개 숙여 어렵게 진행하니 폐 헬기장의 흔적이 나타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계속 전진해 본다.

 

마지막 봉우리인 349.8봉을 넘자마자 잘 가꿔진 묘지 하나가 등로 우측에 보이고 벌초된 그곳으로 가니 앞으로 내려가야 할 안강 휴게소인 시티재와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호국봉 우측 아래에 거대한 공원묘지처럼 보이는 묘지들과 건물들도 보인다.

잠시 넋을 놓고 조망을 즐기며 많은 사진을 남기고 다시 진행하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등로가 사라져 버린다.

먼저 내려간 선두와 교신을 해 보지만 선두 역시 등로가 사라져 어렵게 내려간 듯 정확한 등로를 알려 주지 못한다.

내려다 보니 무조건 안강 휴게소 건물쪽으로 내려가야 될 것 같아 벌목지 한가운데를 타고 내려가니 벌목된 나무들이 제멋대로 쓰러져 진행에 무척 애를 먹는다.

 

그래도 내려가며 보이는 조망은 모두 사진으로 담아 본다.

내려가다 등로 좌측으로 경주 안강읍 감교리로 이어지는 24번 지방도로가 시원하게 뻗어 있고 그 위를 달리는 차량들도 여유롭게 달리고 있다.

그 도로 우측으로는 다음 구간 올라야 할 호국봉과 이어진 마루금이 저 멀리 끝도 없이 이어져 있고 구름과 맞닿아 있는 산줄기를 타고 경주의 산줄기들도 넘실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렇게 어렵게 벌목지를 내려 와 뒤돌아 보니 벌목지와 우측의 나무 사이 경계를 타고 등로가 열려져 있어야 하는데 벌목을 하면서 그 등로가 사라졌기에 어려움을 겪는듯 보인다.

잘 살펴보니 위 사진에서 좌측의 나무가 있는 곳과 벌목지의 경계를 타고 내려오면 쉽게 이곳 시티재로 내려 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휴게소로 내려가는 등로에는 넓은 임도가 나 있고 그 임도는 바로 저 위 벌목지 좌측으로 이어지는 듯 보인다.

 

어렵게 벌목지를 통과 해 드디어 안강 휴게소로 내려가니 오랫만에 동참해 주신 풍운고문님께서 시원한 맥주를 사 놓고 기다렸다 하나씩 나눠 주신다.

뼈속까지 시원한 캔 맥주 하나에 이 세상 행복이란 행복을 모두 즐긴 후 마지막 후미를 기다려 짐 정리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미니 버스를 이용해 안강 휴게소, 즉 시티재를 떠난다.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다음 구간 산행 들머리도 확인하지 못하고 떠나는 마음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원래 안강은 무인 하천 지역이었으나 칠평천 유수의 변천으로 민가가 형성되었고 신라 경덕왕때 주민의 평안함을 염원하는 뜻에서 안강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시티재는 1918일제가 발행한 지형도를 보면 한자로 시령현이라 적혀있고 그 옆에 일본어 가타카나로 시티테라 부기해 놓았다.

당시에도 사람들이 시티재라 했던 모양인지 소리 나는대로 표기를 한 것이다.

시령형의 시자는 섶시 또는 검불나무시자로서 왜소한 잡목이 많았던 고개이였음을 의미한다.

고개 이름 뒤에 붙어 있는 령이나 현 그리고 재는 모두 고갯마루를 의미하는 동일한 뜻이니 시티재는 시티고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지방 행정관청에서 여현(숫돌고개)이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또 경주의 땅에 들어 가 그곳 지명 하나를 공부하는 시간을 가져 본다.

 

다시 미니버스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로 이용했던 도일리로 이동해 예약된 농원에서 빠가사리 매운탕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식당 앞 시호천에서 아쉽지만 간단히 샤워를 하고 복숭아와 사과 과수원 사이를 통해 찾아간 농원의 젊은 부부가 준비해 준 빠가사리 매운탕은 이 산객이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느 매운탕 보다 맛나고 행복한 식사였다.

모두 행복한 마음으로 식사를 마치고 다시 포항을 떠나는 마음은 아쉬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이제 낙동정맥도 잠시 숨고르기를 하면서 억새로 유명한 영남알프스 구간을 두어 구간 먼저 오른 후 정상 산행 구간으로 복귀해 내년 초에 마무리가 될 것이다.

다음 구간부터는 좀 큰 차를 이용해 편안하게 함께 다녀 올 수 있는 시간이길 바라며 환상의 영남알프스 억새를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