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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제1차(산행완료)/백두대간 산행 자료

백두대간 제20-2차 마구령에서 도래기재까지의 문헌 발췌 내용

by 칠갑산 사랑 2007.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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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제20-2차 마구령에서 도래기재까지 산행에 참여하시는 산우님들에게,

 

아래글은 조선일보에서 정리하여 게재된 이 구간의 특징을 잘 표현한 글이라 생각되어 옮겨 봅니다.

많은 산행 자료로 활용해 주시길 바람니다.

 

백두대간 대장정-선달산,
마구령~갈곶산~박달령~도래기재

[조선일보. 2006. 03. 16]

참나무숲 침묵에서 봄 기다리는 법을 배우라
월간산 한필석기자

소백과 태백 사이. 이른바 양백지간(兩白之間)의 남쪽 들머리인 고치(古峙)에 선다.

이 ‘옛 고개’에서 남동쪽 950m봉으로 향하는 대간길은 아주 가파르다.

바람은, 막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팽팽한 탄력을 볼때기에 그대로 전해온다.

텅 빈 참나무 숲의 의연한 침묵이 묘한 행복감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마치 참나무가 되기라도 한 것처럼.

1097m봉을 지나면서 대간은 길게 허리를 낮춰 고갯길 하나를 연다.

마구령(810m)이다.

고갯길 남쪽은 영주시와 봉화군으로 연결되고, 북쪽은 단양군과 영월군으로 이어진다.

옛날에는 장사꾼들이 말을 몰고 다녔다 하는데 지금 고개를 넘는 건 바람과 대간꾼밖에 없다.

갈곶산(966m)에서는 거의 정북으로 허리를 비튼다.

반대쪽으로 가지줄기에 봉황산(819m)이 맺혀 있다.

이 산의 남서쪽 기슭에 앉은 절이 무량수전으로 널리 알려진 부석사다.

선달산(1236m) 오름길은 선달(先達)처럼 걸어야 한다.

비록 아직 벼슬길로 나가지 않은 신분이긴 하지만, 과거 급제는 한 몸인데 어찌 종종걸음을 칠 것인가.

서서히 키를 높이면 둥두렷한 자태의 봉우리가 눈에 걸린다.

딱 선달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모습이다.

정승, 판서격인 태백산과 소백산에 견주어도 그렇다.

선달산에서 박달령(970m)까지는 편안한 내리막길이다.

멀리 태백산과 함백산의 웅자가 한눈에 들어온다.

말 그대로 크게 밝은 형국이다.

선달산에서 바라본 옥돌봉은 박달령 산령각 지붕 바로 뒤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는 시각적 느낌과 판이하다.

작은 한 봉우리를 넘으면 그만큼 옥돌봉은 뒤로 물러나고 또 한 봉우리가 나타난다.

옥돌봉(1242m) 정상에서 도래기재를 향하는 1시간 남짓 내리막길은 소박하면서도 우아하다.

진달래와 철쭉 같은 관목 옆으로 군데군데 특급의 금강송이 서 있다.

대간이 차츰 강원도 심산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몇 년 전까지도 상당히 을씨년스러웠던 도래기재(780m)의 절개면에는 나무계단이 놓여 있다.

고갯마루 위로는 생태이동통로가 산허리를 잇고 있다.

생태에 대한 배려가 과거에 비할 정도가 아니어서 미더운 모습이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도로에 의한 생태 단절보다 이동해야 할 동물들의 개체가 절대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데 있음을 우리 모두가 자각해야 할 것 같다.

소백과 태백의 위엄과 달리 은둔자의 매력을 지닌 양백지간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겨울 참나무숲의 침묵에서 어떻게 봄을 기다려야 하는지를 배우라.’

문화
한국의 산은 한국의 문화사상적 원형이 오롯이 퇴적되어 있는 현장이다.

지식고고학적으로 그 텍스트를 발굴해보면 겉으로는 조선시대의 유교 문화와 삼국 및 고려시대의 불교 문화적 층서가 드러나지만, 더 깊숙한 곳에서는 선도(仙道) 문화의 원형질이 비로소 처녀지를 드러낸다.


백두대간의 소백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선달산(仙達山) 역시 겨레의 선도문화가 산 이름의 화석으로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부석사의 창건 설화에서 드러나듯이 선도의 흔적이 보이는 역사적 현장이다.

선달산 북사면에 있는 김삿갓 묘의 주인공인 김병연 역시 선달의 피가 흐르고 있다.

선달이라는 산 이름에 관해 두 가지의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달(達)’을 높은 지형, 즉 산으로 보아 선산(仙山)으로 볼 수 있고, 또 하나는 ‘배달’의 ‘달’로 풀이하여 선도를 실천하는 배달(겨레)의 산으로 볼 수도 있다.

문헌고찰
선달산(先達山·1236m) 구간 서쪽에 자리한 고치령(古峙嶺·770m)은 동국여지승람 영천군 산천조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등에 의하면, ‘관적령(串赤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고치령의 소리 옮김 표기로서, 같은 이름이라 생각된다.

串의 음 ‘곶’과, 赤의 일음(一音) ‘치’로 소리옮김한 곶치령→고치령으로 보인다.

고치령 고갯마루 남쪽 아래 산신각은 단종과 금성대군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 건립된 것이라 한다.

마구령(馬駒嶺·820m)은 동국여지승람 영천군 산천조와 대동여지도 14쪽에 의하면 본래 이름이 마아령(馬兒嶺)이다.

현재 잘못 불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감사합니다.

 

백두대간 산행대장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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