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남도 해남군의 화원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2년 04월 17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았으나 기온이 올라 초여름 무더위로 많은 땀을 흘리며 고생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03도에서 영상 21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화봉재(한주광로와 화봉길 2차선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화봉마을 표지석, 도로표지판)-찔레가시 능선진입-무명묘지-개활지(편백나무 조림지)-길주의(174 무명봉, 독도님 띠지, 우측)-인지고개(95미터, 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 농막과 폐채석장)-능선진입(키작은 소나무와 싸리잡목)-콘크리트 수로-억새능선-165.8봉(이정판)-무명안부-219.3봉(이정판, 반바지님의 초봉골산 종이코팅지)-잡목등로-232.8봉(이정판)-221.7미터 육덕산 갈림삼거리 무명봉(산불조심 띠지)-송전탑-214.3 무명봉(굵은 참나무와 바위들)-무명안부-후포재(145미터, 종이코팅 이정판, 사동고개, 동물이동통로, 노송리길 2차선 포장도로 통과)-능선진입-164 무명봉(묵언 띠지)-가마고개(175미터, 종이코팅 이정판)-211.2 무명공터(굵은 소나무)-운거산(318봉, 이정판, 무인산불감시카메라)-7번 송전탑-294.4 고사목 무명봉-송전탑-비포장임도 안부-송전탑-299.2 무명봉(띠지)-산죽등로-10번 송전탑-315.9 무명봉(금곡 띠지)-무명안부-325.7 삼각점봉(325.9미터 이정판, 화원11 삼각점)-너럭바위-송전탑-지독한 잡목등로-전망바위-12번 송전탑-산죽등로-249.8봉(이정판)-233.3 무명봉(등걸)-급경사 내리막 등로-산죽등로-229봉(이정판, 227.4미터의 진등산 종이코팅판)-214.7 무명봉(띠지)-217.8 무명봉(띠지들)-비포장임도-잡목 능선진입-금굴산(223.1봉, 이정판)-201.5 무명봉(띠지)-길주의(붉은띠지, 우측)-무명안부(띠지)-92.3 무명봉(노간주나무와 띠지)-전망바위-당포재(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비포장임도-거대한 채석장-비포장임도 능선진입-갈림삼거리 이정표(매봉산정상 0.56 Km, 매봉산입구 0.44 Km)-바위암릉-바위들-매봉산(247.7봉, 이정판, 부서진 전망데크) 이정표(매계잔등 3.0 Km와 수류미등대 4.4 Km, 매봉산입구 1.0 Km)-급경사 내리막 로프등로-준희님 응원판-좌측 조망-멧돼지 흔적 무명안부-녹슨철조망-동백나무터널-전망바위-203.8봉(이정판)-매계잔등고개 공터안부(매월리) 이정표(수류미등대 1.4 Km, 매봉산정상 3.0 Km)--식물식재 등로-214.8 자갈 조망처-바위암릉 조망-246.3봉(이정판, 매월봉)-산죽등로-로프하산등로-시누대터널 등로-무명안부-로프등로-깃대봉(231.1봉, 이정판, 목포448 삼각점)-전망바위-길주의(좌측)-통나무계단-터널공사장 절개지-803 매봉길 비포장도로-목포구등대(803번 매봉길 2차선 포장도로)-목포구등대-인공구조물들과 안내판-산행종료
산행거리 : 18.68 Km (봉화재에서 목포구등대 앞까지)
산행트랙 :
산행시간 : 08시간 06분 (05시 47분부터 13시 54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4시 00분 여관에서 기상 해 샤워 후 어젯밤 편의점에서 구매한 누룽지와 햇반 및 김치로 아침해결
04시 37분 산행 날머리인 목포구등대를 향해 봄호텔에서 출발
05시 21분 목포구등대 앞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 준비하고 예약한 화원택시가 도착해 봉화재로 출발
05시 40분 산행 들머리인 봉화재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산행 시작(010-3613-2300, 20,000.-원)
올때 - 13시 54분 목포구등대와 주차장에 도착해 산행종료
13시 55분 근처 화장실에서 세면하고 옷 단장
14시 05분 주차장에서 애마로 집을 향해 출발
화원지맥이란 ???
화원지맥은 땅끝기맥 첨봉(352봉)에서 서북으로 가지를 쳐 화원반도를 떠받들고 목포앞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83.5 Km되는 산줄기로 영암호와 금호호의 남쪽 분수령이 된다.
덕음산(덕룡산, 327 봉) , 만대산(493봉), 금강산(488봉), 역마산(308.3봉), 성산(146봉), 형제봉(143.1봉), 국사봉(174봉), 옥매산(174봉), 일성산(335.1봉), 운거산(318봉), 금굴산(228봉), 깃대봉(229.3봉)을 지나며 이 산줄기의 이름은 반도를 지나는 특성을 살려 화원지맥이라 칭한다.
너무 덥지 않은 좋은 계절에 가시잡목으로 가장 악명이 높아 심적으로 접근하기 힘들었던 지맥 산행을 마무리하며 희열과 아쉬움을 동시에 느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화원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전남 해남군과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및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어제 화원지맥 제3구간을 조금 길게 진행하여 화봉재에서 마무리했기에 약간의 여유가 있지만 일요일 오후에 3일 연속 산행 후 귀가하는 도로 사정을 감안해 평소와 다름없이 일찍 산행을 진행하기로 한다.
어제 산행 날머리에서 가장 가깝다고 생각한 문내면 시내에 있는 봄호텔에서 묵으면서 전날 편의점에서 구매한 누룽지와 햇반 그리고 김치로 호텔방에서 든든하게 아침식사까지 마치고 산행 날머리인 목포구등대 앞 마지막 포장도로까지 이동하는데 생각보다 거리가 멀고 도로가 넓지 않아 어둠속에 조심해 달리다 보니 시간에 제법 걸려 목적지에 도착을 해 애마를 주차시키고 잠시 산행 준비하고 있으니 예약한 택시가 도착을 하고 반갑게 인사하고 택시를 이용해 봉화재에 도착을 하니 여명이 밝아와 몇장의 사진을 담고 곧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등로는 최근에 워낙 많은 선답자들이 다녀가서 그런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고 진행하면서 바위암릉이 많아 주위 풍경과 조망도 아름다워 사진과 추억을 남기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린 듯 싶다.
마음적으로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던 진도지맥과 화원지맥도 오늘로서 모두 마무리가 되니 다음부터는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남아 있는 지맥 산행에 나설 수 있기를 희망도 해 본 시간이었다.
이른 오후시간에 목포구등대 앞에서 4구간으로 나워 진행한 화원지맥도 무사히 완주하고 곧바로 귀가해 가족들과 소맥 몇잔으로 자축하며 어렵고 힘들었던 3일간의 산행을 마무리하였다.
초반부에 지독한 가시잡목속에 힘들게 진행을 하면서 오늘은 또 얼마나 걸릴지 기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 등로가 좋아지며 등로로 인한 어려움은 크게 느끼지 못하였다.
처음으로 제법 빠쎄게 오른 운거산에서는 약간의 박무로 아쉬움을 남기고 금굴산까지 생각보다 좋은 등로를 따라 멋진 풍경을 친구삼아 큰 어려움 없이 잘 진행을 하니 이곳 역시 나무들에 막혀 조망은 전혀 없다.
당시 당포재 지나 거대한 채석장이 있는 매봉산을 넘으며 아름다운 풍경들을 즐기고 246.3봉 직전 전망바위에 올라 뒤돌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었던 마루금이 완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바로 우측 앞으로 거대한 채석장이 있는 매봉산 지나 좌측 뒤로 금굴산 그리고 좌측 뒤 멀리 멋진 산군을 이루고 있는 운거산까지 생각보다 시원한 풍경들이 보인다.
지나 온 멋진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246.3봉 넘어 산죽과 잡목 그리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마지막 깃대봉을 통과하니 드디어 어지러운 잡목 등로가 이어지는데 생각보다 걸을만 하고 마지막 통나무계단 직전에서 좌측으로 돌아 내려가니 드디어 새벽에 애마를 주차시킨 803번 매봉길 2차선 포장도로 마지막 지점이 내려다 보이고 우측 옆으로는 날머리인 목포구등대와 그 뒤로 사달도와 달리도의 금성산 및 사재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오늘 산행도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목포구등대 앞 도로 옆에는 터널공사가 진행중이고 그 공사중인 터널 앞 목포구등대 위에서 등대를 배경으로 멋진 추억과 사진을 남기며 4구간으로 나눠 진행한 화원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아무 사고없이 안전하게 가시잡목을 뚫고 완주한 화원지맥 마무리를 자축하며 다음주부터는 또 어디로 갈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시간이다.
어제 저녁에 잠시 들렸던 화봉재에서 화원지맥 전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다시 도착해 주위 풍경들을 사진에 담고 산행 들머리를 찾아 가는 시간이 시원하면서도 아쉬움이 밀려오는 것은 아마도 진행하면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본다.
도로 좌측으로 화봉마을로 가는 화살표가 보이는 표지석과 그 뒤로 도로표지판이 보이는 방햐 우측 저 멀리 전봇대가 산행 들머리로서 아마도 오늘 이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곳 화봉재에 들릴 기회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듯 느껴진다.
화봉재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화봉리에 있는 고개로서 화봉리(花峰里)의 명칭 유래는 마을 뒷산인 화봉산(花峯山, 165.3m)에서 마을 이름을 따왔는데 화봉산은 꽃봉우리 형국으로 사시사철 꽃이 피고 향기가 가득하여 화봉(花峯)이라 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화봉리(花峯里), 초동리(草洞里), 역양리(力陽里)를 통합하여 화원면에 편입되었으며 이 중 초동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장서면에 속한 마을로 나오는데 현재 화봉마을과 초동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화봉마을은 원마을, 용창골, 역양리, 안골, 벗등, 작은 여구지 등 여러 개의 작은 동네로 이루어져 있으며 화봉마을에는 바닷물을 불로 때서 소금을 만드는 화렴터가 있었다.
서쪽으로 바다 건너 신안의 장산도와 자라도 및 우도가 마주 보이고 화봉리는 화봉산(165.3m)과 역양산(力陽山) 아래에 있으며 동북쪽에 화봉제가 자리한다.
원마루금은 도로를 내면서 직벽의 절개지가 생겨 진행이 불가능 하기에 화봉재 갈림삼거리에서 북쪽으로 한주광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우측으로 전봇대와 도로가 굽어 있다는 도로 표지판이 보이는 곳의 콘크리트 옹벽을 넘어 오르니 하얀 찔레꽃이 지천으로 피어 있고 무명묘지를 지나 주능선으로 오르며 마지막 산행을 이어간다.
남도 특유의 거친 활엽수와 덩굴식물들이 등로를 뒤덮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하고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갑자기 개활지가 펼쳐지고 그 개활지를 따라 오르다 잠시 동쪽을 뒤돌아 보니 신덕리의 뱀골재가 내려다 보이는데 물안개가 피어 오르고 그 우측 뒤로 어제 넘었던 정상판이 세조각으로 잘려져 있는 270.8미터의 호출산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아래 신덕저수지 방향에서도 엷은 물안개가 피어 오르며 환상의 풍경을 선물하고 있고 그 좌측 옆 하늘은 이제 일출이 시작되려는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개활지를 따라 끝자락으로 오르다 보니 벌목 후 어린 편백나무들을 식재한 조림지로서 우측 아래로는 몇기의 묘지들도 내려다 보여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덩굴식물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올라가니 관목과 키 작은 잡목 사이로 덩굴식물들이 뒤엉켜 속도가 전혀 나질 않고 이리저리 좁은 공간의 등로를 찾아 어렵게 진행을 이어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174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서 등로는 우측인 동쪽으로 크게 꺽여 이어지지만 북쪽으로 조금 더 높은 봉우리가 올려다 보여 올라가 보니 이곳 역시 아무 표식도 없이 잡목 위로 덩굴식물들이 우거져 있는 무명봉이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와 진행 방향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크게 꺽어 진행을 이어간다.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보이는 갈림삼거리에서 동쪽 방향으로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들 사이로 관목의 단단한 활엽수들 그리고 그 사이로 뒤엉켜 있는 덩굴식물들이 난해한 등로를 만들며 등로 자체를 사라지게 만들고 있어 어렵게 희미한 선답자의 흔적을 찾아 보지만 트랙도 모두 제각각이라 방향만 보고 어렵게 내려가니 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돌 건너 콘테이너 박스엔 사람이 살고 있는지 강아지 한마리가 이방인의 출현에 울부짖고 있어 달래며 우측 마루금 방향으로 걸어가니 하얀 목련꽃이 화사하게 피어있는 나무에 반바지님이 95미터의 인지고개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놨다.
인지고개는 인지리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처럼 보이며 인지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명칭 유래를 보면 인지마을은 본래 장수마을과 한 마을이었다가 분리되었는데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라는 의미에서 인지(仁智)라 하였다고 한다.
인지리는 본래 장서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서면의 인지리, 장수리, 예의리를 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로 개설되었다.
예전에 인지리와 장수리는 공수개라 부르는 한 마을이었다고 전해지는데 공수개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나온 공수포리(公須浦里)와 같은 마을로서 개와 포(浦)가 같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마을회관 서북쪽에 밀물과 썰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선창이 있어서 접안 시설 없이 밀물 때면 배가 들어와서 사람과 짐을 실었다고 한다.
이곳이 공수포구인 것으로 보이나 간척으로 없어졌으며 현재 인지리는 인지마을과 장수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인지마을은 1555년 밀양박씨 박동길(朴東吉)이 왜구의 침입을 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고 장수마을은 1267년경 초계추씨 추형수(秋亨壽)가 삼별초의 난을 피하여 제주로 갔다가 다시 피난와서 정착하였다고 전한다.
입향조 추씨가 100세까지 장수하고 마을에 장수하는 사람이 많아 장수(長壽)라 부르다가 끝 글자를 물 수(水)로 바꿔 장수(長水)라 하였다고 한다.
자연환경으로는 남동쪽에 초봉골산이 있고 북쪽에 연중제가 자리하며 인지리(仁智里)는 북쪽으로 후산리, 동쪽으로 신덕리, 남쪽으로 화봉리, 서쪽으로 주광리와 접하고 있다.
인지고개 지나 시멘트 수로가 보이는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등로 좌측을 보니 예전에 채석장이었는지 드넓은 잡풀초지 뒤로 높은 절개지가 보이고 등로 앞으로는 식재된 듯한 소나무들이 자라면서 등로를 막고 좌측 절개지 방향으로는 키가 큰 싸리나무들이 사정없이 얼굴을 강타하고 있어 진퇴양난이다.
지독하게 우거진 소나무와 싸리나무들로 너무나 힘들게 오르면서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다녀 온 무명봉과 좌측으로는 콘테이너 박스 뒤로 인지제와 인지리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데 기온이 오르는 계절로 변하다 보니 저수지마다 물안개가 피어 오르며 또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다시 이리저리 싸리나무와 소나무들을 헤치며 힘들게 올라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개활지 좌측으로 어제 넘었던 176.1봉이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지만 화ㅣ봉리란 마을 이름을 만들게 한 165.3미터의 화봉산이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어 잠시 지도로 확인하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남쪽으로 어제 넘어 온 마루금과 화봉산을 살펴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이제 앞으로 진행조차 하기 힘든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과 소나무들이 앞을 가로막아 그 가운데로 나 있는 시멘트 수로를 잠시 따라 올라 보지만 그곳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힘들게 오르다 보니 가끔 보이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이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고 오르니 갑자기 키가 크고 빛이 바랜 억새지대가 짧게 나타나고 곧이어 지독한 소나무와 싸리나무 지대를 빠져 나가 굵은 참나무 위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165.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165.8봉을 통과하니 남도 특유의 단단한 관목의 활엽수와 참나무들 사이로 덩굴식물들이 휘감아 자라고 있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덩굴 줄기로 어려운 상황을 맞이했던 경험이 있어 긴장을 하며 전진하니 덩굴식물들이 뒤엉켜 있는 무명안부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48 무명봉도 통과한다.
무명봉을 지나니 잠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더니 방향을 북동 방향으로 바꾸면서 꾸준히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한동안 그렇게 걸어 오르니 굵은 고사목들이 등로에 쓰러져 있고 덩굴식물들이 굵은 나무들을 휘감아 오르며 정글같은 느낌을 주는 등로로 걸어가니 굵은 나무에 준희님이 219.3봉이란 이정판과 반바지님이 초봉골산이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둔 봉우리 정상에 도착을 한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219.3봉으로 포ㅛ기되어 있지만 최근의 다음지도에는 초봉골산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봉우리로서 초봉골산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고 단지 위치를 확인해 보니 초봉골산(219.3m)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인지리 남쪽이자 화원면 신덕리 북쪽 경계에 솟아 있는 나즈막한 산 봉우리이다라는 자료만 보일 뿐이다.
초봉골산이란 219.3봉 지나 바위너덜 위로 덩굴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조심스런 등로를 따르니 잡목들이 많이 사라지고 덩굴식물들도 잘 보이지 않는 평이한 등로에 봄이 오는 연두빛이 물들고 있어 긴 숨을 들이 마시며 잠시 남도의 봄을 온 몸으로 느껴본다.
한동안 편안하게 봄이 오는 풍경을 즐기다 보니 다시 쓰러진 고사목 위로 덩굴식물들이 뒤덮어 진행에 어려운 등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는데 굵은 나뭇가지 상단부는 아직 겨울인지 아니면 죽어 이는지 회색빛으로 남아 있고 그 아래 등로에는 이제 봄을 지나 여름으로 달려가는 푸른빛이 뒤덮기 시작한다.
무명안부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굵은 참나무 아래 미끄러운 활엽수 낙엽들을 밟으며 오르니 굵은 참나무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32.8봉에 도착을 해 추억과 사진을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232.8봉을 지나니 이재부터 등로에는 붉은색의 커다란 산불조심이란 띠지들이 촘촘하게 걸려있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데 아마도 한전에서 걸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보며 믿으면 안된다고 몇번이나 되뇌이며 진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더 쓰러진 굵은 고사목 위로 파란 덩굴식물들이 뒤덮고 있는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옛날 집터였는지 나즈막한 돌담과 공터가 보이고 한동안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는데 그 정상부에 산불조심이란 붉은 띠지가 걸려있는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239.7미터의 육덕산 갈림삼거리로서 마음 같아서는 다녀오고 싶었는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그냥 높이만 표기되어 있어 아쉬움만 남기고 북쪽으로 크게 꺽어 마루금 산행을 진행한다.
육덕산 갈림삼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살짝 내려가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덩굴식물들이 우거진 등로를 따르니 우측으로 높은 송전탑이 보이는데 번호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지금과는 달리 지독한 잡목들이 우거져 등로를 막아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고 잠시 후 굵은 참나무와 바위들이 보이는 214.3 무명봉을 넘으니 여전히 잡목 아래 쓰러진 고사목들이 널부러져 있는 난해한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잡목들이 우거진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쓰러진 고사목 조각들을 피해 어렵게 걸어가니 갑자기 눈 앞으로 요상하게 생긴 동물이동통로가 나타나고 그 이래 노송리길이란 2차선 포장도로가 내려다 보이는데 동물이동토로로 내려가는 길이 절개지로서 동물은 단 한마리도 지나다닐 것 같지 않은 흉물스런 전시행정의 표본퍼럼 되어 있다.
공사를 했으면 그 목적에 맞게 마무리를 잘 했으면 좋르련만 그저 경제적 이익만 챙기고 기 기능은 전혀 하지 못하도록 해 놓은 모습에 부아가 치밀어 오르지만 어찌할 수 없으니 우측 나무들이 보이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 짧은 절개지를 뛰어 내리니 관목의 참나무에 반바지님이 145미터의 후포재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놨다.
후포재(사동고개)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후포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후포는 후산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뒤에 포가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고 또한 이곳을 사동고개라고도 불리는데 사동고개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 곳인 사동마을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사동은 절이 있었던 것에서 연유된 지명이며 이 곳엔 판동사 삼존불이 있다.
어렵게 절개지를 내려 와 잡풀들만 보이는 동물이동통로를 통해 노송리길 2차선 포장도로를 통과한 후 다시 보이는 절개지를 오르기 전 지나 온 방향을 살펴보니 후포재 동물이동통로 좌측 뒤 저 멀리 송전탑이 보이는 방금 전 지나 온 마루금이 아름다운 연두빛 봄을 알리며 펼쳐져 있다.
탁상 행정의 전형같은 후포재를 지나 좌측의 절개지 우측으로 나 있는 가파른 오르막 잡목 등로를 따라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64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 올라 만나야 할 운거산 정상부로 이어지는 연두빛 속에 알록달록한 봄빛을 느끼며 진행하니 금새 굵은 벗나무에 반바지님이 175미터의 가마고개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둔 가마고개에 도착을 한다.
가마고개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에 있는 고개로서 좌측의 후산리와의 경계에 있는데 좌우측으로 뚜렷한 흔적이 남아 있는데 현재는 고개로서의 기능은 사라진 듯 보이고 지명유래에 관한 자료도 보이지 않는다.
뚜렷한 안부의 모습이 보이는 가마고개인데 이제는 그 기능을 상실한 듯 지나다닌 흔적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고갯마루이다.
가마고개를 지나 우거진 잡목 사이로 희미하게 나 있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굵은 소나무가 서 있는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를 지나니 굵은 참나무 아래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 지나 다시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약간의 잡목지대를 지나 다시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곧이어 높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서 있는 운거산 정상아 올려다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그 카메라 보호를 위해 설치된 철망에는 준희님이 정상판과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18미터의 운거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긴다.
운거산(318m)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금평리와 영호리 및 후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명칭 유래를 보면 운거산(雲居山)은 항상 산이 구름 속에 잠겨 있다 하여 붙여졌다.
땅끝에서 뻗어 내린 화원지맥에 속하고 청룡천과 후산천의 발원지이며 산자락에 수백 년 묵은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2011년 8월 26일 해남 서동사 동백나무와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245호로 지정되었고 운거산의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일성산층이며 대표암상은 적색 이암, 사암, 역암, 응회암이다.
산자락에는 통일신라 시기에 창건하였다는 서동사(瑞洞寺)가 있는데 서동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로 운거산 기슭에 있고 서동사의 자세한 연혁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1980년대 초 현 대웅전의 지붕 보수 시 발견된 서동사중수상량문(1870)과 서동사중수서(1870) 현판 기록을 통해 개략적인 연혁을 파악할 수 있다.
해남 서동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서동사 대웅전에 있는 조선시대의 목조 불상이고 2011년 6월 21일 보물 제1715호로 지정되었으며 지금은 화원면 청룡리와 노송리로 넘어가는 간지재에 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1993년 목포공항을 향하던 B737-500 항공기가 해남 운거산에 추락하여 66명이 숨지고 44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고가 있었으며 이 사고는 아시아나항공의 최초이자 최대 인명 피해 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운거산 정상은 높이와 위치에 비해 나무들에 가려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하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7번 송전탑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생각보다 멋진 조망처이다.
제일 먼저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325.7 삼각점봉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가니 249.8봉 지나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229미터의 진등산이 보이고 그 좌측으로 후산리 가마마을 뒤로 솟아 있는 마루금에서 벗어난 지추산 뒤로 금골산이 보일듯 보이지 않게 보이고 그 바로 뒤로 247.7미터의 매봉산 우측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화원지맥이란 산줄기를 따라 마무리를 해야 할 마지막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북동쪽을 살펴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10번 송전탑이 서 있는 무명봉 좌측 뒤로 325.7삼각점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바다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뒤로 목포와 영산기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우달산이 뚜렷한 모습으로 존재감을 알려오는데 옆기와 두어번 올라 좋은 추억을 남겼기에 아직도 그 기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곳이다.
그 우측으로는 지맥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지만 한번쯤 오르고 싶은 지령산이 우뚝한데 저곳에 올라 만들 좋은 추억은 언제나 가능할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동쪽으로 돌리니 좌측 독립적으로 솟아 있는 지령산이 보이는데 저 지령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니 태안의 지령산에 관한 자료는 많은데 해남의 지령산에 관한 자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우측으로 금호방조제와 금호갑문 지나 금호도가 보이고 바로 우측 앞으로는 무명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오는데 저 무명봉은 마루금에서 약간 떨어져 있어 이 산객이 만나지 못한 봉우리였다.
어제 산행중에도 계속 봤던 금호도는 전라남도 해남군 산이면에 속하였던 섬으로 산이면 상공리 북서쪽 2 Km 지점이자 허사도(許沙島) 남쪽 6 Km 지점에 있으며 명칭 유래를 보면 옛 이름은 목화를 생산하여 돈을 묶는다는 뜻의 속금이었고 1920년경 금호라 불러야 무한한 발전과 부흥을 이룩할 수 있다 하여 개칭하였다.
금호는 섬 주위를 둘러싼 바다의 경치가 비단자락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우며 물결이 호수처럼 잔잔함을 의미한다.
중앙의 금성산(錦城山, 186m) 동 사면과 북동 사면의 산록부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루고 있어 대부분의 농경지가 이곳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 해안은 암석해안으로 수로를 끼고 있으나 북동쪽 해안과 북쪽의 만입지(灣入地)에는 사질해안과 넓은 간석지가 발달하고 있으며 북동쪽의 만(灣)을 막고 있던 섬은 방조제로 연결되어 종래의 만이 농경지와 염전으로 이용되고 있다.
5백 년 전까지도 무인도였고 조선 초기까지 무안현 문내방에 속하였다가 1450년(세종 32) 관제 개편에 따라 현이 폐지되고 군이 되면서 해남군 화원방에 속하다가 1906년산이면에 편입되었다.
1989년 12월 착공된 금호방조제가 1996년에 준공되면서부터 육지화가 되어 섬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한동안 북서에서 북쪽 그리고 동쩍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그 7번 송전탑을 출발하려다 진행 방향으로 송전탑이 설치되어 있는 300.2 무명봉과 그 좌측 바로 뒤로 솟아 있는 325.7 삼각점봉 방향을 살펴보니 그 우측 능선 방향으로 거대하게 잘린 채석장의 절개지가 보이는데 실제 산행을 하다 보니 저 채석장 절개지와는 관계가 없이 진행이 되었다.
내려가니 생각보다 좋은 내리막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약간의 자갈 너덜길을 지나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고사목과 잡목들이 보이는 294.4 무명봉 넘어 등로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이 보인다.
그곳을 지나 한동안 뚜렷하게 나 있는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등로를 따르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등로 위에는 두깝게 깔려 있는 활엽수 낙엽들이 보인다.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가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약간의 잡목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좌측으로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따르다 뒤돌아 보니 바로 앞으로 방금 전 걸어 지나 온 번호를 알 수 없는 송전탑 지나 좌측 위로 7번 송전탑과 운거산이 마치 한몸처럼 붙어 있듯 올려다 보이는데 저 산줄기 좌측 능선 방향으로도 채석장이 있었는지 깊게 잘려있는 절개지가 보기와는 달리 안타까운 풍경으로 이 산객의 눈에 들어 온다.
지나 온 방향으로 마루금을 확인하고 사진에 담은 후 이어지는 잡목 오르 막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가지가 많은 관목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299.2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에 담으며 확인하고 다시 출발하니 키 작은 산죽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한동안 키 작은 산죽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산죽이 사라지고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으로 올라 계속 이어가니 10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그 10번 송전탑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15.9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평이하게 내려가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평이한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지독한 자복 등로가 나타난다.
그 잡목지대를 지나 여전히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준희님의 325.9봉이란 이정판이 걸려있고 화원11이란 흔치 않은 1등 산각점이 박혀있는 325.7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 및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나뭇가지에 가려 풍경과 조망은 전혀 없어 곧바로 출발한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좌측인 북서 방향으로 잡목 등로를 따르니 너락바위가 나타나고 곧이어 좌측으로 반호를 확인할 수 없는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을 지나자마자 등로는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로 가득 차 있어 한발 전진하기도 어려워 이리저리 진행해야 할 등로를 찾아 보지만 쉽지 않아 좁은 공간을 찾아 막무가내로 잡목을 뚫어 보지만 쉽지 않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드디어 자복들이 조금은 줄어들며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보이고 그곳 지나 뒤돌아 보니 지독한 잡목 위로 지나온 송잔탑봉 지나 좌측 뒤 점 멀리 운거산 방향의 절개지로 잘린 능선도 보이기 시작한다.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 위로 지나 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눈을 돌려 동쪽을 살펴보니 지령산이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영암호 입구에 영암방조제가 마치 다리처럼 내려다 보인다.
그 좌측 뒤로는 흑석지맥의 소아산과 대아산이 보여 지도를 펴 놓고 다시 한번 더 확인해 보니 정확히 맞고 그 좌측 옆으로는 목포와 영산기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유달산도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영암호로 통하는 바닷길에는 많은 배들이 떠 있어 이곳이 남해 바닷가임을 알리고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바닷물이 새롭게 내려다 보인다.
너럭바위에서 등로 우측인 동쪽으로 지령산과 흑석지맥 그리고 영산기맥의 마루금을 확인하고 몇 발자국 더 좌측으로 걸어가니 그곳에 또 다른 마당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이제는 등로 좌측인 서쪽을 보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화원지맥의 마루금 상 진등산과 우측 뒤로 금굴산 지나 우측 뒤 가장 먼곳으로 247.7미터의 매봉산이 나뭇가지 뒤로 수줍은 듯 숨어 있는 모습까지 보인다.
그 마루금 뒤로는 남해바다 건너 장산도와 안좌도의 무명 산줄기들이 마치 띠처럼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이제 눈을 남쪽과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좌측 뒤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넘어 온 운거산이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어제 넘어 온 호출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도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 우측으로 돌아가며 초봉골산과 매봉산 우측 옆으로 무명 산줄기가 이어지고 그 앞으로는 후지산 마을이 평화로우면서도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너럭바위와 전망바위에서 등로 좌우측으로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을 즐기고 많은 사진에 담으며 알고 있는 이름들을 불러 준 후 우거진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12번 송전탑이 다시 나타난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관목의 참나무 아래 키 작은 산죽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산죽 밑으로는 가끔 쓰러진 고사목들이 밟혀 진행에 주의가 필요한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 위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49.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 보지만 나뭇가지들에 막혀 보이는 것이 없기에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49.8 잡목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관목의 활엽수 사이로 키 작은 잡목들이 보이지만 희미한 등로가 나 있어 진행에는 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등로가 이어진다.
진행 방향으로는 잡목들 사이로 잠시 후 만나야 할 229미터의 진등산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계속 전진하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굵고 관목의 참나무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 여유롭게 걸어 본다.
잠시 후 나무 밑둥이 보이는 무명의 잡목봉 넘어 다시 급하게 걸어 내려가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고 그곳을 통과하자마자 산죽지대가 나타나는데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좌측으로 약간 우회하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상 아무 표식도 없는 곳에 신선님이 229봉이란 이정판을 걸어 놨고 반바지님이 227.4미터의 진등산이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둔 봉우리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진등산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월호리에 솟아있는 산으로 월호리는 동남으로 금평리와 후산리를 연결하는 해발 300m의 운거산이 걸쳐 있으며 동으로 구림과 마산리 경계에 해발 205m의 천관산이 있다.
농업이 주를 이루는 지역이고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하리, 화동리, 당호리, 억수리 일부를 병합하였는데 이때 월하와 당호의 이름을 각각 한글자씩 따서 월호리라 이름 지었다.
자연마을은 월하(다라리), 수동, 당포가 있는데 월하(다라리)는 월호리에서 으뜸가는 마을이고 수동마을에는 해남윤씨 동족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당포는 불당터가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산객이 소지하고 있는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무명봉인데 229미터의 진등산이란 이정판과 종이코팅지가 붙어 있어 자료를 찾아 보니 자세한 자료는 보이지 않고 월호리에 관한 자료들만 보인다.
진등산이란 봉우리 역시 잡목들에 막혀 풍경과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쓰러진 고사목들 위로 잡목들이 우거진 희미한 등로가 이어져 힘든 산행을 이어간다.
한동안 더 잡목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등로에 쌓여 있는 무명봉 넘어 계속 이어지는 잡목 등로를 따르니 다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217.8 잡목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무명봉 지나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약간의 잡목 등로를 따라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진행하니 파란 잎들이 피어나며 등로를 숨기듯 막고 있어 길찾기에 주의가 필요한 지점들도 통과한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잡목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우측으로 관목의 참나무들이 뚜렷하고 그 사이로 연두빛 잡목들이 제멋대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으며 전진하니 갑자기 눈 앞으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나타나며 잡목들이 사라져 버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편안한 산행을 이어간다.
이곳이 정말 화원지맥이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좋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타고 한동안 여유롭게 걸어가니 다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곳에서 능선으로 진입되는데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는 아니지만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어 진행하기에 어려움은 전혀 없다.
그렇게 한동안 뚜렷한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남녘 특유의 단단한 횔엽수들이 자주 보이고 너럭바위 지나 관목의 참나무에 준희님이 정상판을 걸어 둔 223.1미터의 금굴산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잡목들에 막혀 조망이 전혀 없어 아쉬움 속에 배낭 내려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출발한다.
다만 이곳 해남의 금굴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자료가 없는데 태안에 있는 같은 한자의 금골산에 관한 자료가 보여 찾아 보니 금을 캐낸 산이란 의미라는데 이곳 역시 같은 의미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금굴산 정상에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북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지만 여전히 뚜렷한 등로가 보여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다.
잠시 후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201.5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관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평이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전진하니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직진 방향으로 잠시 등로가 사라진 곳에 좌측으로 잘 발달된 등로가 보여 짧게 알바하고 올라 와 살펴보니 직진의 진행 방향 잡목 사이로 붉은 띠지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도 보이는데 갈림삼거리에서는 놓치기 쉬운 지점처럼 보이는 곳이다.
등로는 다시 북쪽에서 북서 방향으로 바뀌어 이어지고 짧은 동백나무 터널을 통과하니 이제 지기 시작하는 분홍빛 진달래꽃잎들이 등로위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괴롭히던 잡목들이 갑자기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편안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보이는 곳에서 잡목들이 보이고 좌측으로 사면치기 하듯 완만하게 오르는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노간주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92.3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해발고도가 너무 낮아 지도를 확인해 보니 잠시 후 만나게 될 당포재로 ㄴ려가는 길목의 무명봉이기에 고도가 낮아진 지점이다.
노간주나무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지나 잠시 더 북쪽 방향으로 진행하다 등로가 좌측인 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조금 더 완만하게 내려가니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잠시 진행 방향인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당포재 넘어 만나야 할 247.7미터의 매봉산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는데 그 우측 사면은 이미 거대한 채석장으로 변해 흉물스럽게 파헤쳐져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지금도 진행중이니 시간이 지나 더 깊게 파들어가면 저 매봉산 정상부나 제대로 남아 있기나 할련지 오래 전 육백지맥의 안항산을 통과하며 정상부가 완전히 사라진 모습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새롭게 떠 오르는 시간이다.
매봉산을 확인하고 눈을 우측인 북동 방향으로 돌리니 바로 발 아래 월호리 들판이 보이고 그 뒤로 매월리 마을과 들판 넘어 바다가 펼쳐져 있는데 우측 옆으로 영산기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목포의 유달산을 찾아 보지만 우측 산자락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매월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 리로서 화원면 가장 끝자락에 있는 지역이며 남쪽 방향을 뺀 나머지는 해안가와 접해있다.
매월리란 지명은 행정 구역 폐합 당시 부동, 양화리, 월내리, 매계를 병합하였는데 이때 매계와 월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지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부동, 굴바우, 달안, 매계, 솔안, 양화리가 있으며 매계는 매화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여졌다.
이제 눈을 좌측인 서쪽으로 돌리니 후산리의 좁고 작은 들판 넘어 바다가 접해있고 그 바다 저 멀리로는 좌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나즈막한 산줄기처럼 보이는 섬들이 있어 찾아 보니 좌측부터 장산도와 자라도 지나 우측 방향으로 안좌도가 마치 좁고 길게 펼쳐진 모습으로 눈에 들어 온다.
후산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속하는 리로서 서(西)로 해안가와 접하고 있고 논과 들이 많은 지역으로 주산업은 농업이며 주변 지역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후포, 은덕, 가마, 송촌, 질마가 있는데 가마는 마을에 가마재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후포는 후산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뒤에 포가 있다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송촌은 소나무가 많이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전망바위에서 진행 방향으로 매곡산과 그 좌우측으로 펼쳐진 해안가 마을들과 섬들을 확인하고 출발하니 뚜렷한 등로가 열려있고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을 살펴보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관광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당포재에 도착을 하는데 왜 당포재일까 궁금해 자료를 찾아 보지만 당포재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후산리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에 있는 법정리로서 명칭 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후상리(厚上里)와 후하리(厚下里)에서 후(厚)를 따와서 지은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면의 온득리(溫得里), 후상리(厚上里), 후하리(厚下里), 가마리(加馬里), 질마리(叱馬里)를 통합하여 해남군 화원면 후산리로 개설되었는데 이 중 온득리, 후상리, 후하리는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기록된 장서면의 온득리, 상후포리, 하후포리와 같은 마을이다.
이들 마을은 1912년에 편찬된 구한국지방행정구역명칭일람에 장동면에 속한 것으로 보아 어떤 시점에 장서면에서 장동면으로 편입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마을 이름도 후상리와 후하리로 바꾼 것으로 보이며 온득리는 1925년 이후에 온덕마을로 바뀌었다.
현재 후산리(厚山里)는 후포마을, 온덕마을, 송촌마을, 가마마을, 질마마을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후포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지후(崔知厚)가 해남 연동에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고 온덕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동식(崔同植)이 이주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무안박씨가 최초 입향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송촌마을은 1636년 병자호란을 피하여 여산송씨 송철(宋哲)이 입향하여 정착하였다고 전하고 가마마을은 1866년경 경주김씨 김문학(金文學)이 정착하였다고 전하며 그 후 밀양박씨, 여산송씨 등이 들어왔다고 전한다.
질마마을은 1875년경 여산송씨 송백원(宋白元)이 들어와 살았다고 전하고 온덕마을은 1670년경 경주최씨 최동식(崔同植)이 이주하여 정착함으로써 마을을 이루었다고 전하며 무안박씨가 최초로 입향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동남쪽 금평리와 연결하여 운거산(雲居山, 300m)이 접하고 있고 서쪽의 바다 건너로 신안의 안좌도와 팔금도가 멀리 보인다.
후산리(厚山里)는 북쪽으로 매월리, 월호리, 동쪽으로 영호리, 남쪽으로 인지리, 신덕리, 서쪽으로 바다와 접하고 있다.
당포재를 건너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생각보다 너무 편안하게 걸어 오르니 임도 좌우측으로 나뭇가지들이 잘려있고 찟겨 있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 와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언덕을 넘어가니 당포재 내려오기 전 전망바위에서 봤던 거대한 채석장이 펼쳐지고 그 채석장 좌측 가장자리로 매봉산 오름 등로가 열려있다.
제법 넓게 펼쳐진 채석장을 우측에 두고 좌측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하며 걸어가다 등로 우측인 북동쪽을 살펴보니 채석장 뒤로 월호리와 매월리 들판과 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구림리의 해안가 나즈막한 무명의 산줄기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보여야 할 흑석지맥의 대아산과 소아산 그리고 목포를 지나는 영산기맥의 마지막 봉우리는 유달산은 앞 능선 뒤로 숨어 보이지 않는다.
등로 우측으로 채석장과 마을들 그리고 좁고 긴 들판들을 확인하며 걸어 전진하니 오전 11시 10여분이 지나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강렬한 열기가 벌써 여름이 온 듯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하며 굵은 땀방울이 등로를 적시기 시작한다.
등로 우측 뒤로는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구림리 마을의 무명 봉우리들 뒤로 큰봉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마루금을 찾아 보지만 앞 능선에 막혀 보이지 않아 다음을 기약하며 전진하니 이제 안부 지나 진행 방향으로 매봉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온 몸에 굵은 땀방울로 샤워를 하듯 뜨거운 태양빛을 머리에 받으며 채석장 가장자리를 따라 어렵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채석장 최상단부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능선으로 들기 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힘들게 걸어 오른 채석장 지나 당포재 뒤로 금굴산이 보이고 그 좌측 뒤 저 멀리 송전탑이 서 있는 325.7 삼각점봉이 우뚝하고 그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뾰족하게 송곳처럼 솟아 있는 지령산이 한눈에 들어 온다.
잠시 더 지나 온 마루금과 지령산을 확인하고 몇장의 사진에 담고 뜨거운 열기에 재빨리 채석장 상단부를 지나 그늘진 능선으로 들어가니 넓은 비포장임도가 펼쳐져 있어 편안하게 진행한다.
키 작은 잡풀들이 보이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걸어 들어가니 몇발자국 지나지 않아 우측 능선 방향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 능선 방향으로 매봉산정상까지 0.56 Km 거리임을 알리고 있어 조금 더 힘을 내 본다.
잠시 우측의 매봉산 방향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여전히 금굴산과 325.7 삼각점봉 그리고 지령산이 좌측 방향으로 돌아가며 보이고 그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큰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바짝 다가 와 있어 사진에 담고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갈림삼거리에 서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약간의 바위 등로가 보이고 다시 평이하고 뚜렷한 등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경사도가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다시 바위 등로를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이정표와 나무 전망대가 올려다 보이는 매봉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이제 산행 날머리인 수류미등대까지 4.4 Km 거리임을 알리고 있다.
매봉산(247.7m)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솟아 있는 산으로 매월리는 서쪽 서하바다 건너로 신안 팔금과 안좌도가 보이고 북쪽으로 목포 달리도가 마주 보이며 남서쪽에 매봉산(247.7m)이 북쪽에 깃대봉(231.1m)이 있다.
화원반도의 가장 끝자락 바닷가에 있어서 목포의 유달산이 마주 보이며 예전에는 배를 타고 바닷길로 목포에 다녔다.
이정표 지나 좌측의 나무 전망데크로 오르니 오래되어 방치되었는지 부분적으로 훼손되어 보수가 필요해 보이고 계단도 일부 파손되어 사고 위험이 있어 보여 지자체의 각별한 관리가 요구되는 상태이다.
조심하며 나무 전망데크 좌측 끝자락으로 가 남쪽과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후산리 해안가를 따라 저 멀리 파인비치골프장이 비다쪽으로 길게 빠져 나온 반도 방향으로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시하도라는 작은 섬도 내려다 보인다.
그 뒤 저 멀리 바다 끝자락으로 희미하지만 길게 펼쳐진 육지가 보이는데 진도와 장산도 그리고 그 가운데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서쪽으로는 바다 건너 안좌도가 펼쳐져 있는데 그 안좌도에는 제법 높은 산즐도 있는지 봉우리들도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안좌도는 목포로부터 22.9 Km의 지점(동경 126°08′,북위 34°34′)에 있고 신안군 14개 읍면의 중앙에 위치한 도서면으로 김환기 화가의 고향으로 유명한데 안좌도는 안창도의 안과 기좌도의 좌를 합하여 안좌도라 칭하였으며 유인도 10개와 무인도 53개로 형성되었고 해안선은 91.4 Km에 이르고 있다.
높은 산이 많고 넓은 평야는 없으나 간석지를 막아 염전과 해태양식 등의 어업소득으로 주민소득은 높은 편이며 안좌도와 팔금도는 연도교(신안 제 1교)로 연결되어 같은 생활권이 된 지 이미 오래인데 색다른 정취를 맛볼 수 있는 가볼 만한 곳이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리, 안좌가 낳은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 1913∼1974) 선생의 작품 명제인데 수화선생은 1934년 일본에서 대학을 다니며 추상미술 운동에 참여하였고 1936년 귀국하여 3∼4년 동안 고향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46∼1949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 대학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이 때 신사실파(新寫實派)를 조직하여 새로운 창작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선생은 동양의 직관과 서양의 논리를 결합한 한국적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실현시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서양 화가로서 한국 추상화의 개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나라 화단의 거목이었고 한국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현재 안좌도 읍동리에는 1910년 백두산에서 자란 나무를 이 곳까지 운반하여 건축한 북방식 ㄱ자형으로 만든 기와집인 생가(도지정 지방 기념물)가 잘 보전되어 있어 찾아오는 미술학도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안좌도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고인돌)가 잘 보존되어 있는데 방월리 일대의 지석묘는 도지정 지방문화재자료로 역사 학도들이 즐겨 찾고 있으며 형식은 바둑판형의 남방식으로 원래 7기가 있어 칠성바위라 불렀다고 전해지나 현재는 4기가 남아있다.
무덤안에서는 주로 돌칼, 민무늬토기,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안좌도에는 6개 곳에 55기의 지석묘가 남아있다.
안좌도의 특산물로는 김이 유명하며 신안군을 제외한 다른 지역처럼 부유식 방법이 아니고 지주를 세워 양식하는 방법인데 간만의 차로 물이 들고 날 때 햇볕을 쬐므로 약을 할 필요가 없어 공해가 없고 맛이 좋다.
흔히 파란 파래가 없는 검정색이 짙은 김을 육지에서는 상품으로 잘못 알고 있는데 안좌의 김을 비롯한 신안군의 김들은 약을 하지 않아 약간의 파래가 섞여 있으며 이 김들이 가장 맛있고 무공해 김이다.
안좌의 또다른 특산물로는 크고 작은 규모의 양식장에서 길러내는 대하(큰 새우)가 있고 민물낚시로는 신촌지가 좋은데 붕어, 잉어, 민물장어가 난다.
바다 낚시도 잘 되는데 유명포인트로는 북지, 도래도, 요력도, 우목도, 반월도 등이 있고 감성돔, 농어, 숭어가 잘 잡히며 사치도 또한 낚시가 잘 된다.
안좌도 본섬에는 모래사장이 없으며 부속섬인 사치도 웃섬에는 조그맣고 아늑한 해수욕장이 있어 한적한 피서를 즐기려는 사람들에게는 제격이다.
많이 훼손된 나무 전망데크에서 좌측의 바다와 신안 방향의 섬들을 살펴보고 매봉산 정상석이나 이정판을 찾아 보지만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전망데크를 내려 와 좌측인 북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 우측 굵은 참나무 위에 희준님이 247.7미터의 매봉 정상판을 걸어 놨다.
이곳에서 오늘까지 4회에 걸쳐 진행하는 화원지맥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화원반도를 찾아보니 화원반도는 전라남도 서남쪽 해남반도와 무안반도 사이에서 황해로 돌출한 반도를 말하는데 북쪽은 목포, 서쪽은 신안군의 많은 섬들, 남쪽은 울돌목을 사이에 두고 진도와 접하며 해남읍에서 반도의 서북단 월내까지 약 90 Km에 이른다.
행정적으로는 해남군의 마산면과 황산면, 산이면, 문내면 그리고 화원면으로 구성되고 반도 북쪽에 일성산(日星山, 335m)이 있는데 반도내에는 농업용수의 공급을 위하여 각 곳에 저수지를 개발하고 해안선을 따라 간석지를 간척하였으며 연중 어로작업이 가능하여 새우와 갈치, 김, 굴 등이 어획된다.
주민들의 생업은 반농반어이나 주로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반도의 남단 우수영(右水營)과 진도 사이인 울돌목에는 시속 9노트의 빠른 연안류가 흐르고 있는데 이를 이용하여 이순신(李舜臣)이 왜적을 크게 물리친 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매봉산을 지나 뚜렷한 등로를 따라 조금 더 걸어가니 굵은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진행하니 로프가 끝이나며 평이한 등로가 보이는데 여전히 등로에는 잡목이 제거되어 있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옆 굵은 벗나무에 준희님이 걸어 둔 응원판이 보이는데 대부분 급경사 오르막 등로에 걸어 놔 힘겹게 오르다 잠시 심호흡 한번 하면서 쉬어가라고 걸어 놨었는데 이곳은 특이하게 내리막 등로에 걸려있어 눈길을 잡는다.
준희님의 응원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열려 살펴보니 서쪽으로 신안군의 안좌도와 팔금도 및 암태도로 이어지는 커다란 섬들이 마치 하나의 줄기로 이어진 듯 길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사진에 담고 진행 방향을 보니 하얀 산벗꽃 넘어 203.8봉과 246.3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 높은 안테나가 보여 처음에는 깃대봉이 아닐까 생각해 봤는데 지도 상 깃대봉은 북쪽 방향으로 있어 높은 안테나가 보이는 봉우리는 마루금에서 벗어난 별도의 봉우리로 보인다.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좌측의 화원면 매월리와 우측의 월호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무명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안부 한가운데엔 멧돼지들이 몸을 문질러 죽어가는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잡는다.
멧돼지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무명안부 지나 회색의 굵은 활엽수 사이로 초록빛이 무성해진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굵은 활엽수 가지를 휘감아 오르는 덩굴식물들이 파란 잎이 무성해진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뚜렷하고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고 간간히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이 등로가 맞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더 진행하니 등로는 이제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고 녹색의 녹음이 점점 우거지며 여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데 가는 겨울이 아쉬운 듯 푸른잎이 무성한 동백나무 터널이 짧게 보이기 시작한다.
짧은 동백나무 터널을 지나 잠시 평이하고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 바위 위로 안전철봉이 설치되어 있는 전망대가 보여 잠시 올라가 보니 등로 좌측으로 바다 건너 신안군의 많은 섬들이 여전히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제한된 풍경과 조망을 사진에 담고 그 전망대를 내려 와 여전히 뚜렷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03.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03.8봉 지나 여전히 많은 관목들이 등로 주위를 채우고 잡목들은 상당 부분 제거된 마루금을 따라 편안하게 걸어 내려가니 어느 순간 진행 방향 위로 둥그런 봉우리가 눈 앞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그 정상 위로 드높은 안테나가 솟아 있어 처음에는 그곳이 깃대봉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지도를 확인해 보니 깃대봉은 저 봉이리 넘어서도 한참을 더 진행해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깃대봉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야 하기 때문에 저 오르막 등로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궁금해지지만 그 위로 보이는 연두빛 생명과 초록으로 변해가는 계절의 변화가 더욱 가슴을 들뜨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진행 방향으로 올려다 보이는 봉우리를 살펴보며 계속 내려가니 바위 사면 등로가 이어지더니 잠시 평이한 등로로 변하고 그 평이한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드넓은 공터에 우거졌다 말라있는 잡풀들이 보이고 좌측으로 이정표가 서 있는 매계잔등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매계잔등고개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속하는 고개로서 매월리는 화원면 가장 끝자락에 있는 지역이고 남쪽 방향을 뺀 나머지는 해안가와 접해있다.
매월리란 지명은 행정 구역 폐합 당시 부동, 양화리, 월내리, 매계를 병합하였는데 이때 매계와 월내의 이름을 따서 붙여지 것이다.
자연마을로는 부동, 굴바우, 달안, 매계, 솔안, 양화리가 있는데 매계는 매화나무가 많아서 이름 붙여졌다.
이제 수류미등대까지 1.4 Km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반갑고 매계잔등 이정표 아래 보이는 민가 한채와 바다가 환상을 노래하고 있다.
이름도 생소한 매계잔등고개의 공터를 지나 잡목들이 제거된 뚜렷한 등로로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키 작은 동백나무와 다른 활엽수들이 식재되어 있어 편안하게 오르지만 그늘이 없어 강렬하게 내려 쬐는 태양빛이 부담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조금 더 뚜렷한 등로 양쪽으로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고 각 나무마다 연두빛 봄이 피어나며 힘든 몸을 위로해 주고 있는 듯 하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다 뒤돌아 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203.8봉이 보이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 한그루와 복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214.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등로 좌측으로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잠시 쉬면서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먼저 북쪽을 살펴보니 매월리 월래마을이 내려다 보이고 바다 건너 저 멀리 신안군 압해읍 송공리의 234.1미터의 송공산이 솟아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 북쪽에서 서쪽 지나 남쪽 방향으로 돌아가며 살펴보니 방금 전 봤던 압해읍 송공산 좌측으로 암태도와 팔금도 및 안좌도가 차례로 보이기 시작하고 남서 방향으로는 장산도 지나 상태도와 하태도도 보이는데 저 섬들은 오래 전 가족들과 가거도를 가면서 유람선이 접알 할 수 없기에 어선배가 접근해 주민들을 태우고 상태도로 돌아가는 풍경을 목격한 곳이라 기억이 새롭기만 하다.
바로 앞 바닷가에는 전복인지 아니면 다시마를 키우는지 모를 양식장이 내려다 보이는데 이상 기온이 오르면서 피해나 없는지 걱정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다 방향을 살펴보며 각 섬들을 확인하고 다시 지나 온 방향을 뒤돌아 보니 지나온 마루금이 펼쳐져 있는데 바로 앞 나뭇가지들에 막혀 조망이 터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으로 그 조망처를 지나 여전히 뚜렷한 등로를 따라 계속 오르니 커다란 바위암릉이 연속적으로 펼쳐져 있고 그 뒤 정상부 뒤로는 드높은 안테나가 올려다 보이는데 그쪽 방향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사진으로 담는 것으로 만족한다.
바위암릉으로 올라 뒤돌아 보니 드디어 지나온 방향으로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이름들을 불러 본다.
바로 앞 우측으로 203.8봉 지나 뾰족하게 솟아 있는 247.7미터의 매봉산 정상부가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으며 그 좌측으로 휘돌아 가며 금굴산과 325.7 삼각점봉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바위암릉을 따라 오르면서 서쪽부터 남쪽 지나 동쪽 방향으로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들이 연이어 터져 산행 속도가 전혀 나질 않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걸어 오르니 다시 약간의 드릅나무 군락지에 도착을 하는데 주민이 1차로 수확한 주위 다른 나뭇가지로 약간의 드릅들이 보여 잠시 쉬면서 드릅을 채취하는데 귀가해 올 들어 처음으로 야생 드릅에 삼겹살로 소맥 몇잔으로 멋진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한주먹 정도의 드릅을 채취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246.3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나뭇가지에 막혀 조망은 전혀 없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246.3봉 역시 조망이 전혀 없기에 정상부만 사진에 담고 방향을 동쪽에서 북쪽 방향으로 꺽어 출발하자마자 우측 나뭇가지에 박건석님은 매월봉이란 종이코팅지를 걸어 놨는데 아마도 매월리에 있는 봉우리라 자의적으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하며 천천히 내려가니 우거진 잡목 사이로 키가 작은 산죽들이 빼곡하게 자라는데 다행스럽게도 진행해야 할 등로는 뚜렷하게 보인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진행 방향 저 멀리 잡목 사이로 드디어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231.1미터의 깃대봉이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에는 자갈 너덜길도 보이는데 등로는 좌측 사면 등로를 트래버스하듯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더 그 우거진 잡목과 산죽 등로를 따라 어렵게 내려가니 갑자기 잡목들이 사라지고 진행 방향인 북동 방향으로 잠시 후 올라야 할 화원지맥 마지막 봉우리인 231.1미터의 삼각점이 박혀 있는 깃대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로 마루금에서 벗어난 176.6봉도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바다 건너 목포시가지와 영산기맥의 마지막 봉우리인 유달산도 보이기 시작해 잠시 더 머물며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산죽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깃대봉 산사면에 피어난 꽃처럼 연두빛으로 새롭게 탄생하는 나무들과 화려하지 않아 더욱 아름다운 산벗꽃들이 산객의 마음을 완전히 빼앗고 있다.
진행 방향으로 깃대봉과 목포시 유달산까지 확인한 후 다시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다 등로 우측인 동쪽과 남동 방향을 내려다 보니 바닷가에 매월리 들판 지나 해남화원농공단지와 화원조선산업단지의 거대한 크래인이 보이는 대한조선 공사장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바다 건너 좌측 가장자리부터 영산기맥의 유달산과 중앙부로 흑석지맥의 대아산과 소아산도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풍경과 조망에 잠시 더 발걸음 멈추고 몇장의 사진을 더 남기고 지도로 확인까지 한후 계속 이어지는 산죽 등로를 따라 내려간다.
조망을 즐기고 내려가니 굵은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여전히 등로를 숨기고 있는 산죽등로를 따르니 어느 순간 산죽이 사라지고 굵은 소나무 사이로 뚜렷한 등로로 변하는데 경사도도 많이 완화되어 있다.
이제 제법 굵고 많은 동백나무 등로를 따라 편안하게 걸어 전진하니 눈 앞으로 시누대 군락지가 나타나고 진행이 불가능하기에 시누대 군락지를 우측에 두고 좌측으로 우회하듯 진행하니 막바지에 좁은 공간이 보이는 시누대 터널로 이뤄진 무명안부에 도착을 한다.
시누대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활엽수를 휘감고 오르는 덩굴식물들 옆으로 바이들이 보이는 바위 무명봉 넘어 갑자기 굵은 소나무 사이로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가 짧게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활엽수와 그 아래 약간의 잡목 사이로 뚜렷한 오르막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잠시 후 다시 굵은 로프가 설치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로프 등로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동백나무 묘목이 식재되어 있는 188.6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오르니 금새 정상부에 삼각점이 박혀 있는 깃대봉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부에는 키 작은 잡풀들만 있어 이정판이나 정상판 또는 정상석을 찾아 보지만 박혀있는 삼각점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부에 박혀있는 목포448이란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어렵게 추억까지 남긴 후 이제 북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수많은 띠지들이 걸려있고 우측 관목 가지에는 준희님이 231.1미터의 깃대봉이란 정상판을 걸어 놔 그곳에서 잠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깃대봉(231.1m)은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의 화원반도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서 깃대봉(해발 231m)에서 바라보면 목포시 달리도(達里島)와 외달도를 대하고 북동쪽으로 산이(山二)반도에 의해 양분된 해남만에 면하며 남서쪽으로 명량(鳴梁)해협을 끼고 진도와 대한다.
깃대봉 정상을 출발하니 다시 약간의 잡목 등로가 이어지더니 금새 관목의 나무들이 줄지어 늘어 선 평이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잠시 후 짧은 억새 능선 지나 관목의 활엽수 사이로 분홍빛 진달래꽃들이 지고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철봉이 설치된 조망처가 나타나 그곳으로 올라 북쪽을 살펴보니 좌측 뒤 저 멀리 압해읍 송공리의 송공산이 보이고 사진 정중앙부로는 외달도가 그 우측으로는 달리도와 율도로 이어지는 섬들이 마치 육지처럼 첩첩히 겹쳐진 모습으로 펼쳐져 있다.
다시 좌측인 서쪽 방향으로 신안군의 수많은 섬들을 잠시 더 살펴보며 많은 사진에 담고 그 전망대를 내려 와 내리막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고사목이 보이고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무명안부 지나 굵은 소나무 위를 휘감고 올라간 덩굴식물들이 보이는 143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곳을 지나 한동안 평이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보이고 그곳에서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직진으로 내려가다 보니 등로가 희미해져 다시 살펴본 후 짧은 알바 후 되돌아 올라 와 마지막 통나무 계단을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좌측인 서쪽으로 크게 꺽어 진행하니 등로는 다시 북서 방향으로 휘어지는데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는 통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진다.
통나무계단 주변으로는 화사하게 피었다 지고 있는 진달래꽃과 막 피어나기 시작하는 철쭉 그리고 연산홍이 아름답고 사진에 담으며 가파르게 내려가니 신안군의 섬들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더니 금새 발 아래로 새벽에 애마를 주차시킨 803번 매봉길 2차선 포장도로와 카페 건물 우측 아래로 화장실과 그 뒤로 주차장 및 전망데크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우측 목포구등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가시잡목들을 헤치며 짧게 걸어가니 짧은 절개지가 나타나고 비포장도로 우측 끝자락으로는 터널공사가 진행 중이고 직진 방향으로는 드디어 목포구등대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목포구등대는 전라남도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있는 1908년에 건립된 등대로서 1908년 황성신보(皇城新報)에는 해남 구 목포구 등대에 관한 기사가 있다.
기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목포의 일본인 마쓰우치 쓰루타로우(升內鶴太郞) 씨가 목포 근해 연안 항로를 경영하더니 금번 목포에서 추자도를 경유하여 제주도 조천에 당도하는 항로와 목포에서 진도, 완도, 장흥군 해창에 도달하는 항로, 목포에서 지도 법성포에 도달하는 항로, 목포에서 지도 법성포를 경유하여 줄포 군산에 당도하는 항로를 경영하여 연한도서의 항로를 개설할 계획인데 매년 3만 원을 보조하라고 농상공부(農商工部)에 청원하였다 라고 적혀 있다.
해남 구 목포구 등대는 원형 평면에 등롱부가 등명기를 받칠 수 있도록 2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면 출입구 포치(porch)는 상부 캐노피가 원형 아치형으로 돌출되어 있는 특이한 양식이다.
돔형의 지붕 위에는 풍향계가 있고 등대의 지붕과 손잡이 등이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며 운영 당시 등질은 석유등을 사용하는 백색 부동광에 광달거리는 8해리(약 15㎞) 정도였다.
전체적인 비례가 조화되고 외형이 아름다워 이후 우리나라 등대 건축의 기본적인 전형이 되었고 2003년 새로 건립한 등탑의 구조는 백색원형 철근콘크리트조로 사다리가 나선형으로 설치되어 있으며 범선 형태로 높이는 36.5m이고 등고는 평균 해수면으로부터 37m에 이른다.
해남 구 목포구 등대는 대한제국시기의 대표적인 등대이자 우리나라 등대들의 기본적인 전형이 되었다.
전체적인 비례와 아름다운 외형을 가진 등대로 근대 건축 기술이 집약되어 있어 우리나라 등대 건축사에 좋은 자료가 된다.
또한 목포와 진도권에 있는 6개의 유인등대(당사도, 가사도, 하조도, 홍도, 소흑산도, 목포구) 가운데 배를 타지 않고 차량으로 탐방할 수 있는 유일한 등대이다.
해남 지역의 뱃사람들과 섬사람들에게는 육지로 통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였으며 목포항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목포구등대 앞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비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니 드디어 주차장 우측 앞으로 다양한 인공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어 사진에 담으며 4회에 걸쳐 어렵게 진행한 화원지맥 전구간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하며 자축하는 시간이다.
해남군 화원면 매월리에 목포구등대와 낙조 전망대가 있는데 바다 건너 달리도와 외달도, 장좌도와 율도 너머로 해가 떨어지는 모습은 절경중의 하나이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가 다소곳한데 목포와 해남을 상징하는 삼학도와 강강술래 조형물도 등대와 어우러지고 이국적인 바다 풍경을 배경으로 한 오시아노 캠핑장도 살뜰하다.
마지막으로 나무 전망데크에서 인공 조형물들을 살펴보고 많은 사진에 담은 후 출발에 앞서 목포구등대를 배경으로 사진 한장 더 남기다 보니 등대 뒤 저 멀리 바다 건너 달리도가 보이는데 달리도에도 제법 높은 산들이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좌측으로는 139.6미터의 사재산이 우측으로는 139.5미터의 금성산이 우뚝하다.
마지막으로 저 목포구등대를 배경으로 고운 추억 한장 남기고 화실실에서 세면을 하고 땀을 씻어 낸 후 곧바로 애마를 몰아 귀가하니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하루를 마감하였다.
지난주부터 시작해 2주가 조금 지난 기간에 총 4회로 나눠 악명 높은 해남의 화원지맥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그 사이 진도에 들려 마지막 구간까지 마무리하고 나니 마음의 짐을 덜어 낸 듯 개운하기만 하다.
이제 가시잡목들로 악명 높은 지맥들은 거의 모두 진행을 했고 장거리 산행도 덕산지맥만 마무리하고 나면 큰 어려움 없이 나머지 지맥 산행도 완주가 될 예정이다.
다음주에는 일요일에 집안 행사가 있어 조금 일찍 영천으로 내려가 편안한 기룡지맥을 마무리하고 일요일 집안일을 마무리하며 또 한주를 보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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