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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맥산행(완료)/무성지맥(금북·완)

무성지맥 분기점에서 유구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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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충청남도 천안시와 공주시 무성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9년 02월 09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아침까지 흐리고 함박눈이 내린 후 아침부터 하루종일 맑았지만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와 추웠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영하 12도에서 영하 0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갈재고개(618번 2차선 포장도로)-540.7 무명봉(벌목봉)-무성지맥 분기점 이정표(태화산정상, 각흘재 칠갑산, 광덕사 곡두터널)-태화산

                천자봉(646.3봉, 정상석과 삼각점) 이정표-천상의 문-송전탑-옥녀봉(623.8봉)-벤취쉼터 이정표-소나무 조림지-581.9봉-490.9봉-501.1

                무명봉-소나무 조림지-629번 2차선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516.7 무명봉-525.6봉-538.1봉-밭 경작지-529.3봉-497.8봉-국사봉 갈림

                삼거리-국사봉(590.8봉, 정상석과 삼각점, 바위)-갈림삼거리 복귀-481.8 무명봉-395.7 무명봉-절개지-기름재(604번 2차선 포장도로, 유룡리

                이정석)-이동통신탑-396.8 무명봉-461.8 무명봉(간식)-471.8봉-459.8 무명봉-갈미봉(515.6봉, 삼각점, 헬기장)-안전목책과 로프-464.8봉-

                고성리 갈림 이정표(무성산 5.6 Km, 갈미봉 1.1 Km, 고성리 0.8 Km)-477.1봉-거대 참나무(서낭당 ?)-비포장 임도-능선진입-소나무 조림지-

                516.1 삼각점봉-쌍달리와 월가리 갈림삼거리 이정표-안전목책과 로프-전망데크-봉화대터-578.6봉(구학봉?)-무성산등산로종합안내판-

                604.6봉(묘지들)-한천리마을회관 갈림삼거리 이정표-604.7봉-벤취 전망대-무성산성터-인조대왕묘지-무성산(614.0봉, 정상석과 삼각점)-

                무인산불감시카메라-폐헬기장-무성산성 안내판(돌탑들)-홀길동굴 갈림삼거리 이정표-572.2봉-헬기장-헬기장-407.8 무명봉-벤취쉼터2-

                비포장임도-333.8 삼각점봉(전의446)-마을회관 갈림삼거리 이정표-335.6봉-357.8 바위무명봉-375.1봉-346.9봉-307.8 무명봉-

                갈미봉(311.3봉)-309.4 삼각점봉(전의318)-밤나무 과수원-47번 송전탑-무명안부-마을상수도 취수원-이동통신탑-당진영덕고속도로

                통과(지하통로)-접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 통과(지하통로)-67.8 무명봉-밭 경작지-폐가 비포장임도-엄나무 군락지-질마고개(32번과

                34번 2차선과 4차선 포장도로 통과)-엘크사슴목장-민가-밤나무 과수원-172.7봉-채죽산 갈림삼거리-채죽산(170봉)-갈림삼거리 복귀-

                무명안부-120.2봉-밤나무 과수원-무명봉-밤나무 과수원-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밤나무 과수원-89.8 무명봉-웅진대교 아래 1차선 포장도로-

                논산천안고속도로 위 웅진대교 통과-금강 이정판-비포장 임도-유구천과 금강 합수점-무성지맥 산행종료-평목리 마을도로-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35.07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트랙 : 20190209 무성지맥 분기점-합수점.gpx

산행시간 : 세번의 간식먹는 시간 이외에는 추위에 꾸준하게 걸어 진행하여 12간 20분 (05시 55부터 18시 15분까)

교통편 및 숙박 : 갈때 - 2/8 22:30 경부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아산온천가는 22:30 임시버스로 아산온천터미널까지 이동 (7,100.-)

                                   2/9 00:30 아산온천랜드 찜질방에서 1박 (12,000.-)

                                         05:00 터미널 옆 김밥나라에서 청국장으로 아침 해결 (6,000.-)

                                         05:20 택시로 산행들머리인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 618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재고개까지 이동 (27,000.-)

                         올때 - 2/9 18:30 논산천안간 고속도로의 웅진대교 아래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 도로에서 택시로 공주 찜질방으로 이동 (7,000.-)

                                         19:00 공주시 행복 찜질방에서 샤워 (7,000.-)

                                         19:50 우시장 국밥집에서 소머리국밥 특과 소주 한병으로 저녁 해결 (14,000.-)

                                         08:30 공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경무고속버스터미널 행 고속버스로 귀경 (9,000.-)

무성지맥이란 ??? 

무성지맥은 금북정맥이 차령고개를 넘어 곡두고개와 갈개고개 사이의 646미터봉에서 남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570미터봉에서 서남방향으로 법화산, 철승산 줄기를 떨구고 629번 도로인 문안달고개를 지나 국사봉(590.6봉) 어깨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604번도로인 기름재를 지나 갈미봉(515.2봉)에서 다시 방향을 남쪽으로 틀어 홍길동성이 있는 무성산(613.6봉)으로 이어간다.

무성산에서 영천고개를 지나 또다른 갈미봉(309.2봉)에 이르기 바로전에 서남으로 약산(277.9봉) 줄기를 떨구고 갈미봉(309.2봉)에서 계속 남동진하여 대전당진 고속도로와 공주서천 고속도로를 지나 채죽산(170봉), 부엉산을 일구고 금강에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0.3 Km되는 산줄기를 무성지맥이라 부른다.




강하게 불어오는 찬바람과 올 들어 가장 추웠던 날 새벽에 함박눈의 축하를 받으며 또 하나의 무성지맥 산행을 완주한 행복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신산경표의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어느곳에서도 올바른 정의를 내리지 못하였기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생활의 안정을 찾으며 그동안 중단된 지맥 산행을 본격적으로 진행하기로 하고 속도를 내 보는데 이번주에는 공주를 지나는 무성지맥을 생각해 보지만 두번에 끊어 진행하기가 애매하여 한방에 끝내는 산행을 계획해 본다.

하지만 오랜 침묵을 깨고 다시 예전에 몸 담았던 온누리산악회에 몇번인가 나가 옛 산친구들과 회포를 풀다보니 어려움이 많아 가능하면 이 산객이 진행하는 모든 산행도 설령 참여하는 산우가 없어 홀로 진행한다 해도 정식 공지를 올려 함께했으면 하는 부탁이 있어 가능하면 정식 공지를 올려 진행을 해 보지만 워낙 긴 장거리 산행에 다른 산우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산줄기 이어가기 산행이 되다보니 역시나 참여인원은 거의 없다.

더욱이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진행의 어려움이 예상되고 지난 주 걸었던 노성지맥보다는 산세도 크고 높이도 높아 하루에 모두 끝내기가 만만치 않겠다는 걱정도 앞섰던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어두워지기 전 유구천이 금강에 합류되는 합수점에서 추억 한장 남길 수 있어 좋았던 기억으로 남겨 본다.


이번 산행에서는 선택에 관한 많은 생각을 하였던 시간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인생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었고 삶을 바꿀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두어번 있었는데 조금 아쉬움은 남지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큰 어려움 없이 살아 왔음에 차선의 선택은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 본다.

하지만 지나간 과거보다 앞으로 있을 선택은 이제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갈수도 있는 선택이 될 것이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 최선의 선택이 되어 남아 있는 인생에서도 후회없는 삶이길 바래 봐던 무성지맥 산행길이었다.


이곳 무성지맥 산행을 하기 전 많은 산행자료들을 찾아 보고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읽어보니 이곳 무성지맥이라는 산줄기 이름을 낳게 한 무성산까지 진행하는 것이 문제로서 이곳만 통과하면 나머지 구간은 조금 여유를 가지고 진행해도 될 것 같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실제 산행을 진행하다 보니 이 무성산 지나 고속도로를 통과 한 이후가 더욱 난해하고 진행하기 어려웠었다는 기억이다.

새벽에 내린 짧은 함박눈으로 낙엽 위에 쌓인 눈으로 인해 너무 미끄러워 생각보다 산행속도가 늦어지고 강한 찬바람이 불고 기온마저 올 들어 가장 추울만큼 떨어져 고생하며 이곳 무성산까지 왔지만 그래도 오르막 등로에서는 등줄기와 이마에 흐르는 굵은 땀방울을 닦으며 진행하다 보니 방충의까지 벗어 던지고 편안한 산행 복장이 되었지만 얼굴 표정만큼은 춥고 힘들어 주름만 늘어 난 시간이기도 하였다.


지난 밤 아산온천고속버스터미널에 날이 바뀐 후 도착하여 사전에 알아 둔 버스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아산건강랜드 찜질방으로 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붐비지만 워낙 넓고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어 편안하게 쉬기에는 어려움이 없다.

생각보다 잘 자고 일찍 일어나 터미널 근처의 김밥나라에서 청국장 한그릇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이용해 산행 들머리인 갈재고개로 가니 다행이 지리를 잘 아는 택시기사에 이 산객이 준비해온 T Map으로 아주 편안하게 들머리에 도착을 했는데 그때부터 사락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하여 걱정이 앞서는 시간이다.

택시 기사님에게 부탁해 사진 한장 남기고 산행 준비를 하는데 택시기사님이 걱정이 되는지 뒤돌아가지 못하고 한동안 걱정하는 목소리로 건강하게 산행하라며 응원을 해주고 떠난다.

이곳 갈재고개는 산경표에서는 금북정맥으로 그리고 신산경표에서는 호서정맥으로 명명된 산줄기인데 오래 전 걸었던 기억이 전혀 없어 산행후기를 읽어 보니 이제서야 희미한 기억들이 조금씩 그 조각들을 맞추며 되살아 난다.

이곳 갈재고개에 대한 자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도로 표지판을 보니 공주시 유구읍과 천안시 광덕면을 이어주는 고갯마루인 듯 보인다.

 

생각보다 강한 찬바람과 낮아진 기온으로 인해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는데도 땀이 나지 않아 조금은 빠르게 걸어 진행을 해 본다.

잠시 후 잘 관리된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등로 우측의 문금리쪽 강아지들이 이방인의 출현에 새벽잠을 깨우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빠르게 걸어 오르니 벌목 후 낙엽송을 식재한 봉우리에 도착을 해 뜨거워진 온 몸을 찬바람에 맞겨본다.

다시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드디어 등줄기에 땀방울이 맺힐쯤 무성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해 그곳에 세워진 이정표 하나를 사진에 담으며 멀고도 긴 무성지맥 산행을 시작해 보는 시간이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얼마나 춥고 찬지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더 이상 지체하지 못하고 본격적으로 태화산정상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해 본다.

 

무성지맥 분기점을 출발해 얼마 가지 않았는데 갑자기 작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한쪽에 작은 정상석이 보이는데 670미터의 태화산 천자봉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그 정상석 뒤로는 삼각점이 박혀 있고 살펴보니 흐릿하지만 전의316이라는 3등 산각점이다.

이곳은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산 이름은 없고 단지 삼각점봉으로 해발고도는 646.3미터로 표기된 봉우리인데 어느 누가 왜 태화산 천자봉이란 정상석을 세웠는지 의아하고 궁금하기만 하다.

 

어렵게 사진 몇장 남기고 그곳 646.3봉을 출발하려는데 진행 방향으로 이정표가 서 있고 살펴보니 가야 할 방향으로 천상의 문이 50미터 거리이고 신비의샘이 200미터 전방에 있다는 표기가 보여 사진 한잔 더 남겨 본다.

너무나 차갑게 불어 오는 강풍에 온몸이 움추러 들고 손과 얼굴은 얼어가는 듯 시라려 오기까지 하는데 어디 바람을 피할 장소도 없어 그냥 빠르게 걸어 본다.

잠시 후 천상의 문이라는 이정판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데 천상의 문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이문을 통과하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인다니 오늘도 무성지맥 산줄기에서 이 산객이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을 보면서 무탈한 완주를 빌어 보는 시간이다.


천상의 문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낙엽이 발목까지 덮고 그 위에 싸라기 눈이 조금씩 내리면서 이 산객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한다.

조심하며 무명 안부로 내려 가 통과하고 다시 오르니 거대한 송전탑이 서 있는데 어두운 밤이라 번호 식별은 불가능하다.

송전탑을 지나 평이한 능선 등로를 따르니 금새 봉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에는 이곳을 옥녀봉이라 설명된 설명판이 보인다.

설명판을 읽어 보니 전설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이곳에서 가야금을 타던 선녀가 옥처럼 아름다워 옥녀봉이라 불린다는데 이 말은 이곳이 공식적인 옥녀봉은 아니라는 의미로서 단지 전설로 유래된 듯한 봉우리로서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623.8봉으로 기록되어 있는 봉우리이다.


옥녀봉이라 설명되어 있는 623.8봉을 지나 계속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벤취쉼터 2개와 이정표가 보여 살펴보니 지나온 방향으로 금북정맥(갈재)와 그 아래 영마봉이라는 이정표가 보이는데 영마봉은 또 어디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억새들이 자랐다 말라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보이고 잠시 서걱거리는 억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시간도 가져본다.

이제 진행방향으로 약간의 여명이 밝아오기 시작하고 어둠속에 산줄기가 실루엣으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속도를 높이니 벌목 후 소나무가 식재된 조림지를 지나 518.9봉에 도착을 하니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닉을 사용하는 이경일님이 띠지에 이곳이 518.9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여전히 어둠속 세상이지만 그 두께가 점점 얇아지면서 밝지 않은 인간의 두 눈으로도 세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약간은 미끄러운 낙엽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나뭇가지 사이로 잠시 후 올라야 할 마루금이 조금씩 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잠시 후 거대한 소나무들과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지나 묘지들이 보이는 등로를 통과하니 갑자가 눈이 굵어지며 함박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늘 가지고 다니던 체인젠도 없이 올라온 무성지맥 산행이기에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가니 지도상 490.9봉에 도착을 하니 몇장의 선답자들 띠지가 반갑게 맞이해 준다.

계속 이어지는 부드러운 낙엽 등로를 따르니 두어개의 무명봉을 넘고 묘지지대를 지나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대부분 좌측 능선을 타고 62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문안달고개 방향으로 걸어 내려가다 앞을 보니 이제부터 걸어 진행해야 할 마루금 우측 저 멀리 국사봉도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으로 조망을 살피며 조심해 내려가니 눈은 더욱 굵어지고 등로에 하얀 눈이 쌓이기 시작하는데 심적으로 많은 걱정을 하면서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안동권씨 합장묘가 나타나고 곧이어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 있는 등로를 지나 629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문안달고개에 도착을 한다.

문안달고개는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 산성리와 유구읍 동해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명칭유래는 문안달고개를 문달안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정안면 산성리에는 문달안이라는 자연 마을이 있으며 이는 마을을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고 그 안쪽에 자리하여 마을에 문이 달린 것 같다고 하고 문을 닫아 놓은 것처럼 조용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달안고개라는 이름은 바로 이 마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이곳은 공주시의 북부 지역으로 400미터 이상의 산지가 둘러싸고 있으며 호상편마암으로 구성되어 있고 북쪽의 정안천과 남쪽의 마곡천의 계곡 상류부에 해당되며 주변으로 밤나무 군락이 산재해 있다.

문안달고개는 유구면이나 사곡면에서 정안면으로 가는 길에 있으며 유구면 쪽에서는 터미널사거리에서 지방도 604번을 타고 정안 방면으로 가다가 부곡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약 5 Km 정도 가면 도착한다.

사곡면에서는 지방도 629번을 타고 마곡사 방면으로 약 15 Km 정도 이고 정안면에서는 주유소 사거리에서 유구 방면으로 지방도 604번을 타고 약 10 Km 정도 가면 나온다.

생각보다 차량 통행은 없어 여유롭게 사진을 찍으며 그 문안달고개를 통과하여 밤나무 과수원으로 오르는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니 급경사 오르막 등로 양쪽으로 짧은 잣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고 그곳을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공주시답게 다시 밤나무 과수원을 조성하려는지 거대한 벌목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리는 눈이 더욱 커지고 등로에 조금씩 쌓이기 시작하며 진행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어 오늘 중 무성지맥 완주나 가능할지 조금씩 조바심을 내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그렇게 무명봉 두어개를 넘으니 지도상 525.6봉에 도착을 해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본다.


활엽수 낙엽이 두껍게 깔려 있는 등로를 따르니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듣기 좋지만 내리는 눈으로 인해 여간 미끄럽지 않다.

다리에 힘을 주고 조금 더 걸어가니 지도상 538.1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독도는 우리땅의 이경일님이 띠지에 정성스럽게 이곳이 538.1봉임을 알려주고 있다.

잠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지난 가을 수확을 끝낸 고추밭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그 밭 고랑 사이를 통해 진행하며 우측으로 흐르는 무성지맥 산줄기도 함께 살펴 본다.


밭 경작지를 통과하니 다시 비포장 임도같은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편안하게 걸어가니 등로는 다시 능선으로 바뀌면서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다.

내린 눈이 등산화를 덮으며 약간은 젖어오기 시작하고 그렇게 몇개의 올망졸망한 봉우리들을 넘어 걸어가니 지도상 529.3봉에 도착을 해 선답자들의 띠지에 적혀있는 해발고도를 맞춰가며 올바르게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해 본다.

진행하다 보니 이곳은 준.희 선생님의 산패를 단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어 선생님이 아직 이곳은 들리지 못하였음을 직감해 본다.

하기사 이곳 무성지맥은 원래 신산경표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가 나중에 기준을 30 Km 이상으로 결정하면서 새로 편입된 지맥이다 보니 산패를 볼 수 없음이 조금은 아쉽기는 하다.

 

거대한 참나무들이 도열하듯 줄지어 늘어선 채 지나가는 이 산객을 호위하듯 살펴주지만 내리는 눈으로 인해 체인젠 없이 진행하는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썩어가는 거대한 참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497.8봉을 지나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다시 무명봉을 넘고 계속 이어지는 두꺼운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점점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잠시 후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이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우측 직진으로는 멀지 않은 곳에 590.8미터의 삼각점이 박혀있는 국사봉 갈림삼거리이기에 직진의 국사봉을 잠시 다녀오기로 하지만 이곳에서도 잠시 머뭇거리며 선택을 강요 받는다.

다녀올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를 두고 잠시 머뭇거렸지만 오늘이 아니면 다시 찾기 힘들 것 같은 국사봉이기에 곧바로 직진의 국사봉으로 오른다.


생각보다 가파른 오르막 등로에 약간 쌓여 있는 눈으로 인해 한발자국 오르면 두발자국 미끄러진 형국이라 어쩔 수 없이 스틱을 꺼내 사용하며 조심해 오르니 그나마 오를 수 있었다.

그렇게 등줄기에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오르니 거대한 치성바위 같은 바위가 보이고 그 앞에 작은 정상석과 삼각점이 보여 어렵게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하지만 이곳 유룡리에 있는 국사봉에 대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그 유래는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조심하며 그 국사봉을 내려 와 갈림삼거리에서 이제는 우측 방향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이 미끄러워 여간 어렵지 않다.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몇개를 넘으니 등로는 이제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고 솔갈비가 떨어져 있어 활엽수 낙엽보다는 진행이 훨씬 수월하다.

다시 나타나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간간히 소나무와 잣나무들이 보이더니 저 멀리 강아지 울음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살펴보니 등로 좌측 앞으로 민가와 공터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 604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기름재가 빤히 내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려가는 등로가 잘려져 절개지로 변해 너무나 힘들게 그 절개지를 내려가고 드디어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철문이 열려있고 도로 좌측으로는 커다란 유룡리라는 이정석이 서 있다.

이곳 기름재는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동해리와 사곡면 부곡리를 잇는 고개로서 명칭유래는 조선시대 사곡면의 가장 큰 절인 상원골 마곡사에서 사용하던 기름을 이고 넘나들던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 남쪽으로 부곡리와 유룡리가 있 고개를 넘어 북쪽으로는 유구읍 동해리가 이어져 있는 고개로서 주변은 온통 첩첩산중이나 기름재 가까운 거리에 지방도 604호선 아스팔트 도로가 개설되었다.

강아지들의 열렬한 환호와 환영을 받으며 그 기름재 도로를 건너 민가 우측으로 나 있는 절개지로 오르며 산줄기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기름재를 통과한 후 좌측에 민가를 두고 절개지를 어렵게 오르니 이동통신탑이 보이고 등로는 다시 부드러운 활엽수 낙엽 등로가 이어지는데 고도를 서서히 높히기 시작한다.

잠시 후 벌목된 등로 좌우측으로 억새가 자랐다 말라있는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그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 뒷쪽으로 국사봉에서 걸어 내려온 무성지맥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바로 아래에는 방금 전 넘었던 기름재 604번 2차선 포장도로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다시 잡목들이 빼곡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참나무에 페인트 칠이 되어 있는 419.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이제부터 평ㅇ이한 활엽수 등로를 따라 누그러진 날씨속에 산행의 재미를 느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평이하게 진행하니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바람이 잦아 든 461.7봉 아래 햇살이 비추는 곳에 앉아 준비한 빵과 음료 그리고 과일로 아점을 해결하고 출발한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이 매서워 다시 방풍의를 꺼내 입고 진행하니 얼마 가지 않아 471.8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번에는 남양주의 금곡님이 이곳 띠지에 이곳이 471.8봉임을 알려주고 있어 잠시 안부 한번 묻고 출발한다.


그 봉우리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에 활엽수 낙엽이 깔려 있는 듯 아ㅣ름답게 펼쳐져 있어 부담없이 걸어 본다.

다시 이어지는 도열한 참나무 사이를 따라 빠르게 진행하니 Y자형 소나무가 보이는 459.8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이어지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금새 깃대가 나탄더니 넓은 헬기장으로 이뤄진 갈미봉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을 감상하며 잠시 쉬었다 출발하기로 한다.

갈미봉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유룡리와 정안면 월산리 및 고성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서 유점산이라고도 하며 해발고도는 515.6미터이다.

갈미봉이라는 명칭은 봉우리의 형상이 갈모(비 올 때 갓 위에 덧씌우는 기름종이로 만든 고깔 모양의 가리개)와 비슷한 데서 유래되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의 유룡리와 정안면의 월산리 및 고성리에 걸쳐 있으며 연결된 산지는 사곡면과 정안면의 경계를 이루며 봉우리 남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이 고성리를 흘러 정안천으로 흘러들고 북동쪽으로 흐르는 하천은 월산리를 흘러 정안천으로 흘러들며 동쪽으로 흐르는 한천은 유룡리를 흘러 마곡천으로 유입된다.

기온이 차갑고 바람이 세게 불어 춥지만 그렇기에 미세먼지 없이 오랫만에 제대로 된 조망을 즐겨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제일 먼저 등로 좌측 뒷쪽을 살펴보니 올망졸망한 공주와 세종의 산군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오래 전 홀로 걸었던 금북정맥 산줄기들이 옛 추억을 들려주며 다시 한번 더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있다.

좌측 끝자락으로 광덕산과 망경산 그리고 태화산은 보일듯 말듯 나뭇가지에 가려 애간장을 태우고 논산천안간 고속도로를 찾아 보지만 밝지 않은 인간의 두눈으로 찾아내기란 쉽지 않은 풍경이다.


동쪽으로는 남쪽으로 내려왔다 올라간 금북정맥의 국사봉 쪽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로는 정안면의 작은 마을이 회색빛 건물들을 모아 놓고 한가롭게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선사하고 있다.

그 근처로 지나갈 논산천안간 고속도로를 찾아 보지만 역시나 도로는 잘 인식하기 힘들다.

그 정안면 뒷쪽으로는 조만간 오르려고 계획중인 전월지맥 산줄기가 부드러운 능선으로 다가오지만 그곳을 타고 넘으면서 또 알마나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 완주가 가능할지 궁금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눈을 동남쪽으로 돌리니 바로 눈 앞에 거대한 정안저수지가 빤히 내려다 보이고 그 뒤로 전월지맥에서 가지를 친 무명의 산줄기에 솟아 있는 천태산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눈길을 잡는다.

지맥 산행을 완주하기 전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들리기 어려운 의당면의 천태산이기에 그 모습만 가슴속 깊이 간직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몇일동안 계속되는 미세먼지로 인해 제대로 된 조망 구경하기가 어려웠는데 오늘은 추위를 준 대신 이런 멋진 조망을 주었으니 만족하고 갈미봉을 출발한다.


낡은 이정표를 살펴보고 삼각점을 사진에 담은 후 헬기장을 출발하니 충남 공주시의 그린나래가 이정판을 나뭇가지에 매달아 놨는데 해발고도가 다른 표시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평이한 참나무 낙엽이 푹신한 등로가 열리고 봉우리 같지 않은 은선길에 464.8봉을 만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들의 띠지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봉우리를 지나 이어지는 부드러운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무성산과 갈미봉 방향만 표기가 된 이정표가 서 있고 등로는 다시 활엽수 낙엽이 쌓여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어 주의하며 내려가 본다.

잠시 후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그 옆에 보이는 이정표도 살펴본 후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고성리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인다.

고성리는 충청남도 공주시 정안면에 있는 리로서 산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고 평평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으로 정안천이 흘러가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고잿골, 안수골, 양달 마을 등이 있는데 고잿골 마을은 고성리 초입에 있는 마을로 고재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지명이며 안수골 마을은 질울 서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안심사가 있다 해서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양달 마을은 질울 양달 쪽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양달 마을이라 불린다.

이정표를 지나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금새 477.1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다시 나타나는 이정표를 지나 앞으로 자주 만나게 되는 국가지점번호판을 살펴보며 걸어가니 등로는 좌측의 463 무명봉을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등로로 우회하고 있다.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 있는 무명안부를 지나 무명봉으로 올랐다 내려가니 등로에는 지금까지 별로 보이지 않던 소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끔 커다란 바위들도 산재되어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 시작한다.

잠시 후 커다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서낭당(?)이었을 것 같은 안부를 지나 진행을 이어가니 금새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해 좌측으로 걸어가니 임도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는 갈림삼거리 중앙으로 나 있는 능선을 따라 진행하게 된다.


임도 삼거리 갈림길 정중앙으로 나 있는 능선을 타고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벌목 후 소나무를 심어 놓은 조림지가 나타나는데 몇년이 지났는지 소나무들이 제법 자라고 있다.

잠시 후 방향만 알려주는 이정표를 지나 우측으로 빙 돌아가며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뒤로 지금까지 걸어 온 무성지맥 마루금이 시우 ㅓㄴ하게 펼쳐져 있고 그 풍경을 살펴보며 여유를 가지고 올라 본다.

우측으로 갈미봉이 우뚝 솟아 잇고 그 좌측으로는 국사봉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주위 풍경과 지나온 무성지맥 마루금을 살펴보며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걸어 오르니 정상부 좌측 넘어 삼각점이 박혀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살펴보니 전의447로서 4등 삼각점이다.

삼각점을 사진에 담고 아쉬운 마음에 다시 한번 더 주위를 둘러보며 오늘 걸어 온 마루금의 봉우리 이름을 하나 둘 불러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햇살이 머리 위로 떠오르며 새벽보다는 기온이 조금 올랐고 내리던 함박눈도 그쳐 산행하기에는 좋지만 여전히 찬바람이 강하게 불어 와 잠시 지체하는 사이 흐르던 땀이 식으면서 한기를 느끼기에 곧바로 출발한다.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몇발자국 앞으로 진행하니 등로 옆으로 바위가 나타나고 그 바위 옆으로 바라보는 진행 방향의 조망 역시 환상적이기에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살펴본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사눌기 저 끝자락에 오늘 최고봉이자 무성지맥이라는 이름을 탄생하게 한 무성산이 빼꼼히 보이기 시작하고 저 무성산까지만 진행을 하면 나머지 오늘 산행은 거저 먹기라고 오판하기 시작하면서 막판에 너무나 힘든 산행을 자초하게 되었다.

보기에 무난하고 부드럽게 이어주는 능선이기에 부담없이 다시 출발한다.


다시 잡목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국가지점번호판이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고 잠시 후 좌측으로 쌍달리와 월가리 하산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만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무성산포토존이 200미터 거리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 온다.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커다란 바위가 등로 좌측에 서 있고 우측에는 안전목책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구간에 들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나무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올라가 들려보니 등로 좌측으로 평정리의 평정저수지와 마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추억 하나 만들고 뒤돌아 나와 무성산으로 향한다.


전망데크를 지나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우측으로 무너진 성벽흔적들이 나타나고 잠시 그곳으로 올라가 살펴보니 이곳이 옛날 봉화대터였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한양으로 소식을 전하던 중요한 역활을 하던 봉화대였을 이곳도 방치되어 무너져 이제는 그 흔적조차 사라지고 있으니 아쉬움이 큰 봉화대터이다.


봉화대터를 지나 좌측으로 꺽어 진행을 이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단단한 박달나무 같이 생긴 활엽수가 하늘 높은 줄모르게 쭉쭉 뻗어 있어 잠시 쉬어 본다.

 약간의 고사목들과 바위들이 등로 주위에 방치되어 있는 낙엽 등로를 따르니 서래야 박건석님이 구학봉이라는 종이코팅지를 달아 놓은 578.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들의 띠지들이 걸려있고 이경일님이 띠지에 해발고도 표시를 해 놨다.

바위가 있는 그 578.6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솔갈비가 아름다운 내리막 등로를 따라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등로 옆으로 무성산 등산로 종합안내도가 서 있는데 이곳 안내판에도 당진거사의 낙서가 크게 씌여 있어 산행을 즐기는 한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이다.

최근 충청남도 지맥 산줄기를 산행하면서 선답자들이 무례함을 지적했던 당진거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참으로 이해 불가능한 인사가 산에 오르고 있는 듯 싶다.

모두를 욕먹이는 낙서는 하지 말고 사진만 가지고 갈 것을 당부한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묘지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604.6봉에 도착을 하고 그 묘지 마당에 자리를 펴고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준비한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며 잠시 쉬어 간다.


한동안 묘지마당에서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 쉬다보니 바람도 잦아들어 자꾸만 늘어지고 있어 재빨리 배낭 챙겨 출발을 서두른다.

묘지를 따라 내려가니 홍길동성까지 1.4 Km 거리가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만나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지만 나중에 귀가하여 자료를 찾다보니 무성산성을 홍길동성으로도 불린다는 사실을 알고는 이해가 되었다.

벤취쉼터가 있는 한천리마을회관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통과하고 연이어 나타나는 이정표들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높낮이가 거의 없는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무선이동통신탑이 서 있는 604.7봉에 도착을 한다.


벤취쉼터와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는 곳을 지나니 곧바로 등로 우측으로 멋진 조망이 터지고 바쁜 일정속에서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주위 풍경을 살피며 쉬어 간다.

유구읍쪽 좁고 긴 산촌과 농촌마을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홀로 외롭게 걸었던 금북정맥 산줄기도 하늘 아래 조금씩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

저 산줄기를 걸으며 살아계신 어머님 집에 들려 어리광도 부리며 따뜻한 밥을 얻어 먹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부모님 두분 모두 하늘나라로 떠나시고 시골 고향집은 비어 있으니 세월무상이 아쉽기만 하다.


유구 넘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산객의 고행을 찾아 보지만 역시나 거리가 있어 고향땅까지는 무리인 듯 싶어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출발한다.

다시 정상 등로로 복귀하여 진행하니 드디어 무너졌지만 흔적은 뚜렷하게 남아 있는 무성산성 일명 홍길동성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그 무너진 성벽을 통과해 진행하니 잠시 부드러운 억새 능선이 나타나더니 금새 몇기의 묘지들이 잘 정돈된 무성산 직전 묘지지대에 도착을 한다.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마지막 묘지 앞에 비석 하나가 눈길을 잡는데 인조대왕이란 글자가 보이고 뒷면에는 후손들의 족보가 보이는데 살펴보니 인조대왕의 후손들 묘지인 듯 싶다.


인조대왕이란 비석을 살펴보고 몇발자국 오르니 드디어 무성산 정상에 도착을 해 정상석에 입맞춤을 하고 추억 몇장 남겨 본다.

무성산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우성면과 정안면 및 사곡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614미터이며 지명은 문헌에 따라 서로 다르게 나타난다.

여지도서와 신증여지승람 및 동국여지지에는 무성산()으로 조선지형도에는 다른 한자인 무성산()으로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는 무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무성산에는 홍길동과 관련된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는데 고려 시대에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에서 조선 세조 때 홍길동이 웅거하면서 탐관오리들과 토호들을 못살게 했다는 내용과 또 다른 내용으로는 옛날 이 산속에 홍길동이 그의 모친과 누님을 모시고 살았는데 하루는 남매간에 내기를 하여 길동은 쇠신을 신고서 송아지를 이끌고 한양까지 갔다 오기로 하고 누님은 산봉우리에 성을 쌓기로 하고 누구든지 빠른 사람이 이기는데 만일 경쟁에서 지면 죽이기로 했으며 내기의 결과 누나가 성을 다 쌓고 돌 하나만 올려 놓으면 되는 순간에 길동이는 이미 한양에서 돌아와서 누님은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고 하는 전설이 그것이다.

전설이 사실이던 아니던 이런 전설이 있다는 것은 이곳 무성산이 그만큼 민초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컸다는 방증이기에 전설은 전설대로 받아 들이면 될 것이다.


무성산에서 추억을 남기고 주위를 둘러보니 잡목들과 나무들이 가려 조망이 전혀 없기에 다시 출발하니 무인산불감시카메라를 지나 억새가 무성하게 자란 헬기장이 나타난다.

헬기장을 지나자마자 등로 옆에는 무성산성에 대한 설명판과 함께 국가지점번호판도 서 있다.

무성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한천리의 무성산 정상부에 있는 산성으로서 마을에서는 홍길동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하여 홍길동성이라고도 하고 연성이라고도 한다.

둘레는 525미터에 높이는 4미터이며 평면은 장방형이고 서벽은 산 정상부에 가까운 반면에 동벽은 훨씬 낮은 지점을 지나는데 다른 산성과는 달리 성벽의 굴곡이 거의 없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성벽 안팎을 쌓아올리는 협축식으로 축조되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이 완전히 붕괴된 상태이며 다만 능선 정상부를 지나는 서벽은 비교적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편이고 면석도 남아 있어 축성법을 살펴볼 수 있다.

성문은 흔적만 남아 있고 건물지도 평탄한 터만 남아 있으며 관련 유물도 거의 찾아볼 수 없어 축성 시기를 알 수 없다.

조금 더 세심하게 잘 관리되는 산성과 유적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아쉬운 마음으로 산성을 출발한다.


무성산성 해설판을 지나니 등로 우측 위로 몇개의 작은 돌탑들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금새 등로 좌측 아래로 100미터 거리에 홍길동굴이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가보고 싶지만 무너져 내려 잘 구분도 안된다는 선답자의 소식에 포기하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간다.
홍길동굴이 등로 좌측 아래 100미터 거리에 있다는데 어느 산님의 후기를 읽어 보니 무너져 확인이 어렵다고 되어 있어 다녀오는 것을 포기하고 글로서 대신해 본다.
홍길동이 우두머리로 활동하던 활빈당은 충청도 일대에서 활동했다고 하는데 전설에는 무성산 홍길동 산성 아래에 있는 홍길동 굴이라고도 하며 또 한 전설에 의하면 홍길동의 어머니가 홍길동과 그 누이를 데리고 무성산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힘이 장사였던 홍길동 누이와 홍길동이 내기를 하였는데 홍길동은 길들이지 않은 송아지를 끌고 한양(지금의 서울)을 갔다 오고 그 누이는 무성산의 정상에 성을 쌓기로 해서 이기는 사람이 끝까지 더 큰 장사로 인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런 내기를 벌인 남매를 보는 홍길동의 어머니는 며칠 만에 성을 거의 다 쌓아가는 딸이 이기면 아들인 길동이가 낙담하여 남자답게 세상을 살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에 딸에게 펄펄 끓인 팥죽을 주었는데 성곽을 거의 다 쌓고 마지막으로 남쪽 성문 지붕을 덮을 큰 바위를 지고 산을 오르던 딸은 잘 식지 않는 팥죽을 후 후 불어가면서 식혀 먹고 있는 사이에 홍길동이 도착했다는 것이다.
지금도 홍길동 굴 아래에 있는 사각진 바윗돌이 그 때 홍길동의 누이가 성문 덮개로 쓰기 위해 지고 올라가던 바위라고 해서 성채바위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사곡 유룡리의 홍길동 말발자국 전설, 우성 옥성리의 홍길동 누이 성문바위 전설, 유구 백교리의 홍길동 굴 전설 등 등 공주에는 홍길동에 관련된 전설이 매우 많다.
이렇게 공주와 홍길동의 인연이 만들어진 것은 바로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 균이 1607년에 공주목사로 재임한 사실에 연유한다.
다시 말하면 서얼철폐와 만민평등 사상을 지녔던 허 균이 공주목사로 재임할 때 무성산을 활빈당 본거지로 상정한 홍길동전을 구상한 후에 강릉의 누이 집에서 소설을 완성했다고 보는 견해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한천리 입구에 가면 홍길동 마을이라는 표지가 눈길을 끄는데 아쉽게도 무성산에 있는 홍길동 산성은 홍길동 누이가 쌓았다는 돌을 가지고 누군가가 탑을 쌓아 놓기도 하는 등 산성이 훼손된 흔적이 발견되기도 한다.
홍길동굴 이정표를 지나 커다란 바위를 넘으니 커다란 바위와 소나무들이 보이는 572.2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긴다.

바위가 있던 572.2봉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억새가 무성하게 자라난 헬기장이 다시 나타나고 그 헬기장을 통과하니 커다란 소나무 사이로 오솔길 같은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콧노래를 부르며 조금은 편안한 등로를 예상하고 걸어가니 또 다른 헬기장이 나타나는데 이곳 역시 억새가 자랐다 말라죽은 모습으로 남아 있다.

두개의 헬기장을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커다란 참나무 사이로 제법 큰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으로는 또 다른 산줄기가 벌목된 모습으로 계속 함께 걸어 내려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367.8 무명봉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고 출발한다.


잘 발달된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하니 제법 많이 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이제 20 Km도 걷지 못하고 있어 조금씩 걱정도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한동안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넓은 비포장 임도에 도착을 하고 등로는 그 임도를 가로질러 다시 능선으로 접어들며 산행은 이어진다.

하지만 이곳부터 MTB 코스로 개발이 되었는지 대부분 등로는 넓은 비포장 임도처럼 나 있지만 군데군데 바퀴에 상처나고 패여 진행에 어려움도 느낀다.


비포장 임도에서 능선으로 들어가며 뒤돌아 보니 방금 전 내려온 무성산 줄기가 맑게 비추는 태양열로 밝게 빛나고 그 모습에 사진 한장 더 남기고 다시 능선으로 진입한다.

넓은 MTB 등로를 타고 다시 가파르게 걸어 오르니 해발고도는 333.8미터이지만 마음적으로 이미 문제가 있는지 지금까지 걸어 진행했던 거리보다 훨씬 힘들게 느껴진다.

역시 산행은 산의 높낮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산행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중요하며 어떤 선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산행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전의446이라는 삼각점이 박혀있어 저 멀리 무성산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지도를 보니 이제부터 300미터 높이의 등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는데 당진영덕고속도로와 논산천안고속도로가 지나는 곳까지 진행을 하면 오늘 산행도 막바지에 도착한다는 느낌으로 걸어 본다.

MTB 바퀴로 인한 패여진 넓은 비포장 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남사면은 벌써 따뜻한 햇살에 얼었던 등로가 녹으면서 조심스런 걸음걸이를 요구하고 있다.

한동안 걸어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마을회관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고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335.6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한다.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커다란 바위가 나타나고 바위봉을 지나 내려가니 금새 375.1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선답자들의 띠지가 걸려 있어 잠시 인사 한번 나눠본다.

모두가 산행을 하면서 자주 접하는 띠지들이다 보니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눈 듯한 착각에 빠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야하는지 아니면 잠시 쉬어가야 하는지 직진인지 아니면 돌아가야 하는지 늘 선택을 강요당하고 선택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인생이기에 경험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하며 조언을 얻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제부터 나는 어떤 선택으로 어느 길로 가야하는지 많은 생각과 번뇌를 해보는 시간이다 보니 비우러 왔다가 머릿속만 더 복잡한 시간이 되었다.


다시 자연 그대로의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패인 등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MTB 등로와 만나 그 등로를 따르고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여 다시 오르니 등로 옆 나뭇가지에 지나온 방향으로 과수원과 진행해야 할 방향으로 정문이란 방향표시와 함께 이정판이 보인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갑자기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좌측으로 조금 올라 346.9봉이 있어 들렸다 다시 내려 와 이제는 진행 방향의 좌측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야 하는 곳이다.


그 346.9봉을 들려 사진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나와 넓은 MTB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너무나 좋게 열려있어 약간의 속도를 내보고 잠시 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르니 금새 다시 우측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MTB 등로와 합쳐져 그 등로를 따른다.

멋진 소나무 등로를 잠시 따라 오르니 331.8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세종평화의동산이라는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공주의 고층 빌딩들과 마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등로 좌측으로 펼쳐진 공주쪽 풍경을 감상하며 진행하니 갑자기 멋진 잣나무 터널을 만나 짧은 시간 힐링도 해 보고 나즈막한 안부를 넘어 가파르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오솔길처럼 부드러운 등로가 열려있다.

잠시 후 307.7 무명봉에 도착을 해 긴 호흡 한번 해보고 다시 진행을 이어가니 부드러운 등로가 피로를 풀어주듯 길게 이어지고 있다.

등로 좌측 뒤로 거대한 건축물이 보이지만 용도를 알 수 없고 그렇게 오르니 헬기장으로 이뤄진 갈미봉과는 다른 또 하나의 갈미봉인 311.3봉을 지나자마자 전의318이라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 309.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나 더 남겨 본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 나타나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라 조금은 지루할 정도로 길게 이어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장군산 지나 마지막 한구간만 남겨 놓고 있는 관암지맥 산줄기들이 이 산객을 부르고 있다.

우측으로 보여야 할 계룡산을 찾아 보지만 잡목들에 가려 아직 계룡산까지는 찾지 못하였지만 유성과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관암지맥 산줄기를 찾아 본 것만으로도 얼굴에 미소가 번지는 시간이었다.

저 남아 있는 관암지맥 마지막 구간은 또 어떤 선택으로 언제 들릴 수 있을지 스스로도 궁금해지는 시간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큰 높낮이 차이가 없는 소나무와 잡목 등로를 타고 빠르게 걸어 전진하니 약간의 잡목들이 저항해 오고 곧이어 자작나무 군락지도 지나는데 살펴보니 이곳은 키 작은 관목들이 등로를 채우고 있다.

잠시 더 빠르게 그 관목지대를 통과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등로 좌측으로 거대한 밤나무 과수원이 시작되는데 역시 이곳이 공주임을 실감하게 하는 풍경이다.

좌측에 밤나무 과수원을 두고 우측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진행 방향 저 멀리 드디어 계룡산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그 풍경에 반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쉬어 간다.


이제 등로 좌측 밤나무 과수원 넘어로는 공주시와 우성면쪽 마을들이 비산비야를 이루며 삶의 터전을 일군 풍경이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그 공주와 우성면 쪽 마을 뒤 저 멀리에는 세종시의 아파트들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며 오늘 산행도 그리 멀리 남아있지 않음을 알려주고 있어 힘을 내 본다.

하지만 선택이 늘 올바른 것은 아니기에 이런 잘못된 생각이 체력적으로 힘들게 만들고 나즈막한 동네 뒷산을 오르는데 600미터가 넘는 산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게 오르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고 말았으니 이 또한 살아가며 여전히 배우고 알아야 할 것들 중 하나일 것이다.


등로 좌측 아래에 거대한 밤나무 과수원을 두고 진행 방향 앞 저 멀리에는 계룡산을 바라보며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걸어가니 이제서야 제대로 된 조망과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모바일폰을 꺼내 사진까지 담아보는 여유를 부려 본다.

잠시 후 닥쳐올 고통과 체력적인 괴로움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이 시간을 즐기는 시간이었다.

이제서야 논산천안간 고속도로와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도 내려다 보이고 그렇게 비포장 임도와 능선을 바꿔 갈아타며 진행을 이어가니 드디어 밤나무 과수원ㅇ 끝나는 지점에 도착을 하고 잠시 뒤돌아 보니 지나 온 밤나무 과수원 단지 좌측으로 이어진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능선으로 들어가려는데 등로 옆으로 47번 송전탑이 보이고 소나무가 도열해 있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당진영덕고속도로가 지척으로 다가와 있고 진행 방향 저 멀리 더욱 뚜렷하게 계룡산이 다가와 있다.

오솔길 같은 등로를 따라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량들의 소음이 가깝게 들리더니 작은 밤나무 과수원을 하나 더 통과한 후 마을 상수원 취수원을 지나 고속도로 옆 시멘트 포장도로에 안착을 한다.

당진영덕고속도로(고속국도 제30호선)는 충청남도 당진시를 기점으로 경상북도 영덕군을 종점으로 하는 대한민국 고속도로이다.

2007년 11월 28일에 충청북도 청원군과 경상북도 상주시를 연결하는 청원상주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2009년 5월 28일에는 충청남도 당진군과 대전광역시를 1시간으로 연결하는 당진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었다가 2009년 12월 18일부터 경상북도 상주시와 영덕군을 잇는 상주영덕고속도로가 착공되어 2016년 12월 26일에 개통되었다.

이제 당진영덕고속도로를 우측에 두고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지하통로를 통해 고속도로를 통과하러 내려간다.


당진영덕간 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도로 좌측 위로는 고속도로 접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우측의 우성농산에서 기르는 강아지 두마리가 온동네를 시끄럽게 만들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도로 좌측으로 이제는 논산천안간고속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지하통로 도로가 나타난다.

논산천안고속도로(고속국도 제25호선의 일부)는 충청남도 논산시를 기점으로 천안시를 종점으로 하여 남북을 잇는 대한민국 고속도로이다.

고속국도 제25호선의 일부이며 논산 쪽에서는 호남고속도로 및 호남고속도로지선과 연결되고 천안 쪽에서는 경부고속도로와 연결되며 운영은 민자 사업자인 천안논산고속도로가 맡고 있고 통행요금은 다른 노선과는 따로 지불한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를 지하도로로 통과한 후 우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걸어 오르며 어려운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능선으로 들기 직전 진주강공 묘지들을 지나 오르니 약간의 잡목들과 가시나무의 저항이 있지만 견딜만 하다.

하지만 나즈막한 67.8봉을 오르는데 약간의 급경사가 있어 지금까지 진행하던 시간보다 더 힘들게 오르고 그 정상에 올라 선답자들의 띠지를 확인하며 긴 한숨을 내쉰다.

약간의 잡목을 헤치며 걸어 진행을 하니 갑자기 강아지 울부짓는 소리가 들리면서 밭 경작지가 나타나고 그 밭 가장자리를 따라 좌측으로 높게 솟아 있는 연미산을 올라야 한다는 착각속에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본다.


밭 경작지 넘어 보이는 뾰족봉을 향해 걸어가니 밭 경작지 가장자리에서 다행스럽게도 연미산이 있는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타고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 두개가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이 되고 있다.

여름날 지독하게 무성하게 자랐던 잡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등로를 찾아 조심하며 걸어 내려가니 보기에는 완만한 앞쪽의 172.7봉과 뒷쪽의 채죽산이 만만하게 올려다 보이고 웃으면서 내려가 보지만 결국 오르면서 오늘 산행 중 최고의 난이도를 경험하게 된다.

 

고개숙인 잡풀지대를 지나 내려가니 폐가 뒷쪽의 비포장 임도로 등로는 이어지고 잠시 후 가시가 달린 엄나무 군락지를 통과하여 다시 묘지가 보이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내려가니 절개지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돌아 거대한 축사를 우측에 두고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질마고개에 도착을 해 조심하며 그 도로를 건너간다.

질마고개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우성면 도천리와 옥성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길마고개 또는 길마티라고도 부른다.

고개의 남쪽 옥성리에는 길마고개와 채죽산 등의 마을이 있고 북쪽 도천리에는 해포와 도고머리 등의 마을이 있으며 또한 이 고개의 남쪽 옥성리에는 채죽산(170미터)이 있고 동쪽 신웅리에는 연미산과 연미치가 있다.

지명과 관련하여 다양한 유래가 전하는데 고개 모양이 짐을 실으려고 소의 등에 얹는 안장인 길마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과 예전에 장사들이 길마를 벗어두고 갔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 또는 말이 끄는 수레의 바퀴 자국이 두 개 남아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길마삼거리쪽으로 돌아 올라 다시 나타나는 도로를 건너 엘트사슴목장이 있는 도로 윗쪽으로 어렵게 오르며 마지막 힘을 내 본다.


길마고개를 통과한 후 어렵게 엘크사슴목장 옆으로 이어진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니 강아지 한마리가 격하게 환영해주고 그 목장이 있는 민가를 지나 오르니 다시 우측으로 밤나무 과수원이 이어지는데 그 밤나무 과수원 한가운데를 통해 마지막 남아 있는 힘을 짜 낸다.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는지 아니면 산이 낮다고 너무 쉽게 봐서 그런지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들게 오르니 드디어 밤나무 과수원을 지나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오르며 뒤돌아 보니 저 멀리 무성산에서부터 이곳으로 이어진 무성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이어지며 달려오고 있는 풍경이 가슴속에 남는다.


짧지만 코가 땅에 닿을 듯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잡목을 헤치며 오르니 온몸은 몽둥이로 맞은 듯 아파오고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나고 있다.

너무나 힘들게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을 하니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바람에 나풀거리고 살펴보니 띠지에 이곳이 172.7봉임을 알리는 표식을 해 뒀다.

목례를 올리고 다시 그 172.7봉을 지나 진짜 마지막 봉우리인 채죽산으로 향하는 두 다리가 더욱 무거워진 느낌이다.

지난 주 걸었던 노성지맥과는 차원이 다른 산의 높이이자 거리이다.


무명봉을 지나 잡목을 헤치며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금강이 바로 발아래로 와 있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좌측 앞으로 잠시 시원한 조망이 펼쳐져 있는데 살펴보니 저 멀리 계룡산이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마루금은 다시 묘지 우측 등을 따라 이어지고 묘지지대를 지나 다시 활엽수 낙엽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등로는 좌측으로 진행되지만 직진의 채죽산을 다녀와야 하기에 직진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약간의 허기를 느끼며 등로에 보이는 거대한 바위암릉을 좌우측으로 우회하며 조심스럽게 걸어 오르니 드디어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채죽산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더 남겨 본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의 평목리에 있는 산으로 해발 170미터이며 명칭은 죽산현감을 지낸 채씨의 묘가 있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지질은 북쪽으로부터 흑운모화강암과 안산암질암 및 역암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역암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남쪽의 산등성이가 끝나는 곳에 부엉산이 있으며 바로 금강으로 이어진다.

서쪽에는 넓은 충적평야인 우성농조들이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풍수지리상 연미산과 함께 계룡산 유구와 마곡의 관문 역할을 하는 산이라고 한다.

북쪽으로 연미터널이 조성되어 32번국도가 지나가기 전까지 연미산과 채죽산 사이의 연미고개가 교통로로 이용되었고 서쪽으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가 지나간다.

마지막 봉우리인 채죽산을 사진에 담고 내려오다 너무나 허기가 져 푹신한 낙엽 위에 배낭 내려 남아 있는 간식과 과일로 허기를 달랜 후 식수 한모금으로 목마름을 달래니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이 되었다.


간식까지 먹은 후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내려가 보지만 아직도 합수점까지는 멀게만 느껴지기에 마지막 남은 힘을 짜 내 내려가니 이제는 등로 우측으로 유구천이 보이고 잡목 가지 사이 저 멀리 유구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도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는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지나 다시 오르니 진짜 마지막 봉우리인 120.2봉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도 선답자들의 표식에 사진 한장 더 남긴 후 마지막 인사를 하고 출발한다.


소나무가 보이는 등로를 잠시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 밤나무 과수원이 다시 나타나고 그 등로를 타고 조금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 유구천과 그 넘어 우성면쪽 비닐하우스와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유구천은 충청남도 공주시의 유구읍과 신풍면 및 사곡면 그리고 우성면을 흐르는 하천이며 지명은 유구읍 일대를 흐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공주승람에 의하면 이 하천은 유구읍 천방산(479미터봉)에서 발원하여 우성면 옥성리 일대에서 금강에 유입되고 있으며 이 하천에는 여러 지류들이 유입되고 있는데 유구읍에서 금천과 덕곡천 및 명곡천 그리고 고현천이 유입되고 신풍면에서 대룡천이 유입되며 사곡면에서 마곡천과 계실천이 그리고 우성면에서 방흥천이 각각 유입되고 있다.

하천 연변에는 크고 작은 충적지들이 형성되어 있는데 유구읍 일대의 신영들과 사곡면 일대의 화월들 그리고 단평리와 우성면 일대의 우성농조들 등은 규모가 큰 충적지로서 벼농사가 성하다.

진행 방향 저 멀리 합수점이 보이는데 그 거리는 왜 이리 좁혀지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시간이었다.


밤나무 과수원이 끝나는 지점에서 등로는 다시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지독한 잡목들을 헤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잡목 사이 저 멀리 합수점이 뚜렷히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잡목의 저항을 뿌리치고 내려가니 팔뚝에 마지막 훈장 하나를 선물하고 잠시 후 또 다시 나타나는 거대한 밤나무 과수원 가운데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1차선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평목리 도로에 도착을 한다

그 도로를 건너 다시 나타나는 밤나무 과수원을 타고 나즈막한 능선으로 오르니 길었던 하루해가 서서히 서산으로 기울어져 간다.

  

잠시 능선에서 좌측 능선을 따라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금강에 세워진 공주보가 빤히 내려다 보인다.

공주보는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동과 우성면 평목리를 잇는 금강에 설치된 다기능보로서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한 4대강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부설되었다. SK건설에 의해 2009년 10월에 착공하여 총 공사비 2081억원이 투입되었으며 2011년 10월 22일 개방행사가 열린 이후 2012년 8월 준공 완료 그해 10월 22일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보의  길이 280미터에 높이 7미터이며 폭 11.5미터이고 유역면적은 7,701 Km2이고 수위조절 효과를 높이기 위해 수문형 가동보(승강식 수문) 3문, 복합형 가동보(전도식 수문) 3문, 콘크리트 중력식 고정보 2문으로 건설되었다. 

보에 설치된 권양기실에는 백제의 중흥을 이끈 무령왕을 상징하는 봉황과 여의주를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

또한 공주보에는 3000 Kw를 생산하는 소수력발전소가 설치되어 있고 보의 교각에는 낙하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최상단에는 사람과 차량의 통행이 가능한 공도교가 총연장 465m, 폭 11.5m로 개설되어 있으며, 보의 주변 일대에는 생태공원과 자전거도로가 조성되어 있다.

앞으로는 제발 국민만 보고 사업을 추진하는 정부가 되길 간절히 바랬던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제 등로 좌측으로 밤나무 과수원을 두고 그 아래 평목리 마을을 내려다 보며 천천히 걸어 진행을 이어가니 마지막 89.8미터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도 잠시 선택의 고민을 해 보지만 결국 마지막 부엉산은 들리지 않고 곧바로 합수점으로 진행하기로 한다.

쓰러진 나무토막이 정상을 지키고 우측으로는 천안논산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어 차량들이 속도를 내고 있다.

이제 웅진대교 우측으로 유구천과 금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빤히 내려다 보이고 오늘 산행도 정말 마지막이라는 느낌으로 마지막 능선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 본다.

 

마지막 봉우리를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금새 평목리 마을의 1차선 포장도로 위에 도착을 하는데 그 도로 위로는 천안논산간고속도로인 웅진대교가 버티고 서 있다.

웅진대교는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평목리와 공주시 봉정동을 연결하는 다리로서 봉정동에서 방아달산(159.6미터봉)을 지나고 우성면 도천리에서 부엉산을 지나기 때문에 금강과 지방도 651번에서 고도가 높은 곳에 건설되었다.

웅진대교는 금강의 다른 교량들과는 달리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 상에 건설된 다리로 부여와 금남 간 지방도 651번인 백제큰길 위를 교차하지 않고 고가 도로 상태로 지난다.

일 때문에 지방을 내려가면서 수없이 통과했던 웅진대교였는데 이렇게 지맥 산행을 하면서 그 대교 아래에서 올려다 보는 기분이 남다르게 다가온다.


그 웅진대교를 우측 위에 두고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우측으로 축사 건물도 보이고 드디어 마지막 금강이 지척으로 다가오며 금강이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그곳에서 우측으로 열려있는 철조망을 통해 억새와 갈대밭 사이로 나 있는 비포장 임도를 타고 합수점으로 걸어가니 벌써 서산으로 기울어져 가던 햇살은 산 뒤로 숨어 붉은 기운만 강물에 띄우고 우측 유구천과 좌측 금강이 만나 직진의 앞으로 흐르는 합수점에 도착을 해 길고도 멀었던 무성지맥 산행을 마무리 해 본다. 

금강은 전라북도 장수군 장수읍에서 발원하여 서해의 군산만으로 유입하는 한국 6대 하천의 하나로서 유역면적은 9885 Km2이고 유로연장 401 Km로 남한에서는 한강과 낙동강 다음으로 큰 강이다.

본류는 구리향천과 정자천 등의 지류들과 합류하여 북쪽으로 흐르다가 전라북도 북동부에서 남대천과 봉황천과 합류하고 충청북도에서 송천과 보청천과 합류한 뒤 다시 충청남도 부강에 이르러 미호천과 합류하고 공주와 부여 등 백제의 고도를 지나 강경에 이르러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도계를 이루며 서해로 흘러들어간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강은 공주에 이르러서는 웅진강으로 부여에서는 백마강으로 하류에서는 고성진강 등으로 불린다고 기록되어 있다.
소백산맥에서 노령산맥이 갈라지는 상류지역은 높이 1000미터이상의 산들이 진안고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덕유산(1594미터)과 백운산(1279미터) 등 험준한 산들을 깎아 흐르는 많은 지류들은 감입곡류하면서 무주구천동과 영동의 양산팔경같이 아름다운 계곡을 이룬다.
중류와 하류는 금산분지와 보은분지 및 청주분지 그리고 대전분지 등 분지들과 미호평야와 논산평야 등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어 일찍이 우리 민족의 정착지 중 하나였고 백제문화의 본고장이었다.
하류지역은 서해안의 계속적인 침강으로 익곡이 발달하여 하구가 넓고 깊기 때문에 하항의 발달과 내륙수운 이용에 유리하다.

원래 금강은 호남평야의 젖줄로서 백제시대에는 수도를 끼고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었으며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는 수로가 되기도 하였다.


그 합수점에서 어렵게 홀로 추억 몇장 남기고 무성지맥 산행을 마무리한 후 다시 평목리 1차선 포장도로쪽으로 걸어 나오며 공주 콜택시로 전화를 하니 위치를 잘 모른다며 기사님에게 전화를 부탁하겠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끊긴지 약 1분 지나 기사님에게 전화가 오는데 바로 근처라며 금새 도착을 한다.

택시로 공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가장 가까운 행복목욕탕에서 깨끗하게 샤워 후 옷을 갈아입고 고속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추천 받은 우시장국밥집에서 국밥 한그릇에 소주 한병을 시켜 게눈 감추듯 마신 후 이른 고속버스를 이용해 귀가하니 밤 10시 30여분이 지나고 있다.

 




이렇게 또 하나의 지맥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한 후 기분 좋게 서울로 올라오니 또 하루가 저물며 어제 저녁에 고심했던 선택은 이 산객의 선택이 올았음을 느꼈던 시간이었다.

이제 60여개의 지맥을 완주하였으니 아직도 100여개의 지맥 산행이 남아 있고 급하지 않게 운동삼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신산경표 상 지맥인 162개도 모두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해 본다.

늘 최선을 다한 선택을 생각하지만 인생사 그렇게 쉽지 않기에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 혜안을 갖기를 다시 한번 생각 해 본 무성지맥에서의 시간이었다.


다음은 울산이나 부산으로 내려갔으면 좋겠지만 오랫동안 함께 산행한 산악회가 있으니 정기산행에 참여해 즐기고 일요알 하루는 다시 맥 산행에 들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산행 후기를 정리한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20190209 무성지맥 분기점-합수점.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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