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 : 전라북도 완주군과 익산시 그리고 충청남도 논산시의 대동금강기맥(금남기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 2015년 05월 16일 (금요 무박 토요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부터 아침까지 짙은 안개로 조망이 전혀 없었으나 아침 이후로 안개가 걷힌 후 맑고 바람이 불었던 산행하기 좋았던 날씨
산행온도 : 영상 06도에서 영상 25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금남기맥 종주대 총 5명
산행코스 : 말골재(17번 4차선 지방도로)-비포장 임도-능선진입-된비알 오르막 등로-바위 구간-장재봉 갈림 삼거리-수재 이정표(장재봉 1.0 Km, 남당산 2.9 Km, 쌍계사 5.8 Km, 수곡사 0.5 Km)-내리막 로프구간-오르막 로프구간-370봉-내리막 로프구간-벌목지대-남당산(376봉)-445.5봉(큰남당산)-뱀 검정천막-이정표(장재봉 5.36 Km와 남당산 1.6 Km, 쌍계사 2.27 Km, 경천방면)-이정표(장재봉 5.5 Km와 남당산 1.46 Km, 쌍계사 2.13 Km, 가야곡방면)-380봉 우회-360봉-쌍계사 갈림 이정표(쌍계사 입구 1.85 Km, 쌍계사 0.7 Km, 가야곡 삼전리와 작봉산 1.05 Km)-무명묘지 1기-비포장 임도 이정표(쌍계사 입구 2.17 Km, 가야곡 삼전리와 작봉산 0.73 Km, 화산 승치리)-능선진입-소나무 등로-360봉-작봉산(419.6봉) 이정표(쌍계사 입구 2.9 Km, 가야곡 삼전리, 화산 승치리)-소나무 등로-380봉-내리막 로프구간-안부-오르막 로프구간-깃대봉(395봉)-아침식사-이정표(쌍계사 입구 5.79 Km와 작봉산 2.89 Km, 가야곡 삼전리, 화산 춘산리)-420봉-까치봉(456봉)-내리막 로프구간-안부-400봉-바위 너덜구간-380봉-내리막 로프구간-벌목지대-무명묘지1기-밤나무과수원-말목재(643번 2차선 지방도로)-석천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축사-석천교회-능선진입-벌목지대-키작은 돌탑-450봉-옥녀봉(411.7봉) 삼각점과 해월연안이공묘지-잡목지대-63번 송전탑-범머리재(육국부사관학교장경고판)-육군훈련소장 경고판과 철조망-성태산 함박봉(403봉)-간식타임-함박재-벌목지대-소룡고개(15번 2차선 지방도로)-썩은 벤취구간-돌담-사각정자-371.3봉(성태봉) 삼각점과 묘지1기-돌담-소나무 군락지-벌목지대-안부-소나무 군락지-바위지대-내리막 로프구간-고내곡재(1차선 시멘트포장도로)-비포장 임도-능선진입-안부-잡목과 가시덤불지대-350봉-350봉-누항재(천호터널)-산행종료
산행거리 : 약 21.98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짙은 안개와 초여름 같은 무더위에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며 09시간 33분 (03시 00분부터 12시 33분까지)
교통편 : 애마 이용
금남기맥(금강정맥)이란 ???
금남기맥(금강정맥)이란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지나 백운산에 내려서기 전에 영취산에서 장안산, 신무산, 팔공산, 성수산 및 마이산을 거쳐 진안과 전주 사이의 모래재고개 위 조약봉(주줄산 또는 주화산)에서 두줄기로 갈라진다.
한줄기는 남서쪽 만덕산으로 해서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제암산, 존제산, 조계산과 백운산등 전라남북도를 휘돌아서 섬진강하구의 망덕산까지 이어지는 호남정맥이고 또 한줄기는 북진하여 연석산, 운장산, 장군봉을 지나서 싸리재와 봉수대 사이의 싸리재 분기봉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줄기는 북진하여 인대산, 대둔산, 계룡산을 지나서 부여 부소산에서 맥을 다하는 산경표의 금남정맥이고 또 한줄기는 서진하여 왕사봉을 거쳐 칠백이고지, 시루봉, 장재봉, 작봉산, 천호산, 미륵산, 함라산, 망해산, 고봉산을 지나 장계산에서 서해바다로 잠긴다.
이산줄기를 보통은 금남기맥 혹은 원 금남정맥이라고 부르는데 신산경표는 조약봉 분기봉에서 군산의 장계산까지 가는 산줄기를
금강정맥이라고 부르고 싸리재 분기봉에서 부여의 부소산까지를 금남정맥이라고 부른다.
거리는 조약봉에서 부소산 조룡대까지나 군산의 장계산까지나 신기하게도 같은 도상거리로 131.4 Km이다
그렇게 이름지어진 이유는 정맥은 강을 구획하는 경계가 되고 맥이 바다에 닿아야 하는데 신산경표의 금남정맥은 이 모두를 충족하지 못하니 온전히 금강의 남쪽과 만경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고 이 줄기를 금강정맥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산줄기이기에 걸어가면서 그 의미를 새겨보고 실제 마루금을 살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짙은 안개속에 빨래판 같은 능선을 타고 어려웠지만 즐기며 조금은 빠르게 이어간 마루금에서 멋진 추억을 남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기온이 올라가면서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시간도 점점 힘이들고 어렵지만 중단할 수 없기에 오늘도 배낭에 많은 식수를 준비하고 산행지를 향해 어둠속를 뚫고 출발한다.
하지만 산행지로 다가갈수록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산행을 하기도 전부터 어려운 난관에 봉착을 하고 생각보다 늦은 새벽 2시 50여분에 어렵게 완주군 운주면의 말골재에 도착을 해 산행 준비 후 이슬이 맺혀있는 등로를 타고 길고도 힘든 산행을 시작해 본다.
오늘 하루도 아무 사고없이 무탈하게 계획되었 있는 누항재까지 산행 할 수 있기를 마음속에 빌어 보는 시간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되었다.
까치와 관련되어 있는 지명들인 작봉산과 까치울재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넓은 공터에 잡목이 우거진 까치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까치봉 정상 역시 까치는 보이지 않고 우거진 잡목이 조망을 방해하며 잠시 쉬어가라 말을 전해주는 듯 하다.
한껏 기대를 하고 올랐는데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어 아쉽기에 우측(북쪽)으로 나 있는 통박산 가는 등로를 찾아 보고 지도상으로 확인한 후 다시 까치봉을 출발해 본다.
이곳 까치봉에서 통박산으로 진행하면 논산시 가야곡면과 양촌면을 가르며 이어져 가는 산줄기가 된다.
이곳에서 우측 삼재와 통박산 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남서쪽의 말목재로 내려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는 얼굴엔 벌써 뜨거운 하루 햇살에 고단함이 밀려오는 듯 하다.
잘 짜여진 대동금강기맥 종주대 5명이 다시 어둠과 안개속을 헤치며 어렵게 도착한 지난 구간 산행 날머리인 말골재에 도착을 하니 새벽 2시 50여분을 지나는데 아직도 이곳 고갯마루엔 짙은 안개가 자욱하다.애마를 산행 들머리인 잡풀이 자욱한 비포장 임도 앞에 잘 주차를 시킨 후 산행 준비 후 그 비포장 임도를 타고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이 새벽 3시이다.
이곳 말골재는 전북 완주군 경천면과 운주면을 잇는 17번 국도상의 고개로 말골재는 옛날 천등산부근 마을에서 애기장수가 탄생했는데 그가 훗날 집안에 액운을 갖다 주고 대를 끊어 놓을 애라고 하여 그 부모가 그를 무거운 돌로 눌러 죽였다 한다.
그런데 그가 죽고 나서 3일이 지난 뒤 갑자기 용마 1필이 나타나더니 울부짖으며 애기장수를 사방으로 찾아 다니며 돌아다니다가 결국은 이 고개에 떨어져 죽었다 하여 마골치(말골재)라고 불리어 지는 전설이 전해지는 고개이다.
산행 종료 후 애마를 회수하기 위해 다시 이곳에 들려야 하기에 잠시 더 주위를 둘러보고 종주대 뒤를 따라 임도를 따르다 우측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며 또 한구간 산행을 시작해 본다.
잡목을 헤치고 잠시 오르니 등로는 더욱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코가 등로에 닿을 듯 그렇게 오르니 자욱한 안개속에 벌써 등줄기와 이마에선 굵은 땀방울이 흐르며 등로를 적시고 있다.
그렇게 20분여 빡쎄게 오르니 눈 앞에 거대한 암봉들이 나타나고 그 암봉을 조심하며 오르니 드디어 바위들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장재봉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아직도 세사은 짙은 안개와 어둠속에 묻혀 보이는 것이 전혀 없기에 아쉽지만 장재봉은 포기하고 이곳 갈림 삼거리 바위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 후 출발 하기로 한다.
이번에 들리지 못하면 언제 다시 올라 돌아볼지 모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꼭 가보고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으니 자료라도 찾아 장재봉을 알아 본다.
장재봉(487.3봉)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임화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특별한 명칭유래는 찾을 수 없었으며 봉우재라고 불렸는데 봉우재라는 명칭은 보통 봉화와 관련 있는 산에 붙는 경우가 많다.
장재봉의 기반암은 옥천층 군오태산 규암층에 해당하며 주로 규암과 역질규암으로 이루어져 있고 봉우리의 주변은 산지가 대부분이며 논산시의 서쪽과 같은 평지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쪽에 남북 방향으로 흐르는 장재천에 의해 북쪽에 비교적 넓은 곡저평야가 펼쳐져 있다.
장재봉은 논산 시가지로부터 남쪽에 위치해 있는 산으로 논산시와 완주군의 경계이자 충청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로 이용되는 산지이다.
강과 산 그리고 능선과 같은 지형 경관들은 지방과 지역 및 행정구역 등의 경계가 되곤 하는데 장재봉 역시 인근의 까치봉과 작봉산 등과 함께 행정구역의 경계로서 이용되고 있다.
대체로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나 동쪽과 서쪽 및 북쪽에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에 양촌리, 채광리, 임화리 등의 마을들이 입지하여 있다.
봉우리의 북서쪽에는 임화저수지가 위치해 있고 남쪽으로는 국도 17호선이 동서로 달리며 동쪽에 지방도 697호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장재봉 갈림 삼거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 낸 후 다시 아쉬운 눈길을 장재봉에 보낸 후 좌측 내리막 등로를 따라 대동금강기맥 마루금을 따르니 등로 위엔 푹신한 낙엽이 깔려 있고 그 아래 바위들이 산재해 있어 내려가는 길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그렇게 조심하며 잠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수재라고 불려지는 안부 사거리에 도착을 해 그곳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사진에 담아 본다.
수재에 관한 자료를 찾다보니 운주면 구제리는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제리 백석리 수치리 수청리를 병합하고 구제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에는 면명을 운주면이라 하였다.
수청은 수치라고도 하는 마을로서 앞 냇물이 맑아 생긴 이름이라 하고 빼재는 수청에서 충남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고개에 뾰족한 바위가 솟아 있어 빼재라 한다.
이정표를 보니 쌍계사와 수곡사란 이름이 보이는 것을 보니 해발고도와 달리 제법 크고 알려진 암자들이 있는 산임을 알 수 있다.
수재를 지나 다시 자욱한 안개를 뚫고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더니 로프구간이 나타난다.
한동안 그 로프를 옆에 두고 오르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다시 나타나는 로프구간을 타고 오르니 잡풀과 잡목이 우거진 작은 무명봉 지나 두 갈래 가지를 가지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370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봉우리 지나 안부를 통고하고 다시 나타나는 로프구간을 오르니 멋진 소나무들이 보이지만 어둠과 안개속에 보이지 않고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지대라 생각되지만 여전히 확인이 잘 되지 않는다.
다만 지도를 살펴보니 안부 지나 차돌바위가 있다고 되어 있는데 어둠 때문인지 아니면 안개 때문인지 그 차돌바위는 구경도 못하고 지나쳤기에 잠시 구제리의 차돌바위를 찾아 본다.
원구제(구더리, 귀덕리)마을은 묵방리(먹뱅이. 먹방리)라고도 하는데 백석 구제 마을을 구덕리라고도 한다.
덕은 터라는 말이니 구덕은 옛터의 뜻이고 이곳에 예전 운제현 자리이므로 그로부터 생긴 이름일 것으로 생각되며 차도개기는 부근에 차돌이 많아 생긴 이름으로 묵방리에는 전에 먹을 만드는 먹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벌목지대에 서 있는 곳을 따라 어둠과 안개속을 걸어가니 등로는 이제 완만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오르니 이제 짙은 안개속에서도 여명이 밝아 오는지 주위 사물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하고 곧이어 잡풀이 정상을 차지하고 있는 작봉산 정상에 도착해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다시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남당산은 임화리에 있는 산으로 임화리는 전라북도 고산군 운북면의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교리, 백촌리, 계동리, 무수동, 상고리, 하고리, 구만리와 은진군 가야곡면의 석서리, 양촌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임화리라 하고 논산군 양촌면에 편입하였다.
행정구역은 임화 1, 2, 3, 4리로 되어 있으며 자연마을은 계동, 노가티(봉황리), 무수리, 벌말(평촌), 빈골(빈곡), 빼재, 상고(상고리, 고산임화), 새터(신교리), 잣정이(백촌리)등이 있으며 3열녀가 배출된 열녀의 고장이기도 하다.
남당산(376봉)은 밤아니재 동쪽에 있는 산으로 옛날 전라도 고산땅이었다 하여 고산 임화라 부르는데 임화리 위쪽에 있는 마을로 상고라고도 부르는 마을 위쪽에 있는 산이기도 하다.
남당산 정상에는 잡풀이 우거져 있는데 그 한가운데에 불을 피운 흔적이 있다.
이제 서서히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하고 그곳 남당산 정상에서 우측 등로를 버리고 좌측 마루금을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그렇게 큰 오르내림 없이 등로는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눈 앞에 돌로 만든 성터인지 아니면 집터 같은 풍경이 눈에 들어 오고 다가 가 보니 중앙에는 함몰되어 있고 그 가운데에 나무 하나가 자라고 있으며 그 주위에 돌담으로 쌓은듯한 풍경이다.
그 한쪽에는 남당산과 큰남당산이란 이정판이 붙어 있고 해발고도는 446미터로 되어 있다.
지도를 살펴보니 무명봉에 햅잘고도는 445.5미터로 되어 있어 조금은 헷깔리기만 한데 정확한 고증을 한 후 이정판을 달아 놨기를 바랄 뿐이다.
445.5봉을 지나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우측으로는 검정 천막이 설치되어 있는데 무슨 용도인지 찾아 보니 가을철 뱀을 잡기 위한 천막이라니 괜시리 이곳을 지나는 이 산객이 부끄러운 시간이다.
이제는 이런 목적의 천막은 보지 않기를 바라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곳을 지나 계솟 내려가니 경천과 임화리 갈림 사거리 안부를 지나는데 살펴보니 밤아니재 고개이다.
밤아니재는 해발고도 높이 375미터의 고개로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과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의 경계를 이루는데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낮에도 밤과 같이 어둡고 침침하다고 하여 밤아니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북서쪽으로 고려시대의 사찰인 쌍계사가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남당산에 이어지고 서쪽에는 작봉산과 까치울재가 있다.
밤아니재를 지나 좌측의 무명봉을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걸어가 본다.그렇게 한동안 걸어가니 쌍계사 갈림 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쌍계사 방향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오르막 사면 등로를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이곳 논산시 양촌의 쌍계사는 언제 세웠는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현재 남아있는 유적으로 미루어 보면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 영조 15년(1739)에 세운 비가 남아있어 그 당시 절을 고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절의 중심 법당이라 할 수 있는 대웅전은 건축 형식으로 보면 조선 후기 건물로 1972년 보수공사가 있었고 1973년에 단청을 다시 하였는데 규모는 앞면 5칸에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고 정면의 문은 앞면 5칸을 모두 같은 간격으로 2짝씩 달아 문살에 화려한 꽃새김을 하고 있으며 꽃무늬는 연꽃과 모란을 비롯해 6가지 무늬로 새겨 색을 칠하였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 솜씨를 엿보게 한다.
건물 안쪽은 우물 정자 모양의 천장으로 꾸몄으며 석가여래삼존불을 모신 불단 위쪽으로 불상마다 지붕 모형의 닫집을 만들어 엄숙한 분위기를 더해 주고 있으며 예술 가치가 높은 문살 조각을 볼 수 있고 조선 후기 건축사 연구에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어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
시간이 허락되면 한번쯤 들려 그 풍경을 둘러보고 그 역사적 가치도 보면 좋은데 조금은 아쉬움이 있는 시간이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정상이 함몰된 360이라 생각되는 무명봉을 지나고 무명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른다.
그렇게 평이하게 진행을 하니 다시 쌍계사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이제 쌍계사까지 700미터 남아 있다는 거리 표시가 눈에 들어 온다.
선답자들 몇명은 이곳에서 산행을 마치고 쌍계사 방향으로 내려가 쌍계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산행을 마무리한 후기가 있어 부러운 시간이기도 하다.
쌍계사 갈림 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전진하니 무명묘지 한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른다.
평이하지만 지루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 조금씩 짙은 안개가 걷히면서 주위 사물이 조금 더 멀리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드넓은 비포장 임도가 끝나는 곳 우측에 이정표가 서 있는 장소에 도착을 한다.
이곳에서도 우측으로 쌍계사로 하산 할 수 있는 표시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그 임도를 지나자마자 우측 끝에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능선으로 오르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나타나고 그 등로 좌측으로는 방금 전 지나온 비포장 임도가 따라오고 있다.한동안 진행하니 다시 등로가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어렵게 무명봉에 도착을 해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360봉이라 생각되는 봉우리이다.
이 360봉에서 등로는 좌측으로 크게 꺽여 평이하게 진행되고 다시 한동안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걸어 본다.
그렇게 평이하게 걸어가니 다시 등로가 된비알로 바뀌고 군 교통호 같은 곳을 지나자마자 논산 309란 삼각점이 있는 작봉산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까치와 관련이 있는 작봉산(419.6봉)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중산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승치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쌍계사 중건비에 따르면 절 남쪽의 작봉산과 남당산은 동서로 이어져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데 작봉산 자락의 북쪽에 전망이 트인 넓은 대지가 형성되었고 그곳에 쌍계사가 위치하며 따라서 쌍계사는 작봉산의 북쪽 기슭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다고 기록되었다.
그러나 조선 문헌에는 쌍계사가 불명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작봉산의 옛 지명이 불명산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강이나 산 및 능선과 같은 여러 지형경관들은 지방과 지역 그리고 행정구역 등의 경계가 되는데 작봉산 역시 까치봉과 남당산 등과 함께 행정구역의 경계로 이용되고 있다.
산의 주변은 모두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넓은 평야를 찾을 수 없으며 좁은 곡저평야가 산의 남북에 위치해 있다. 곡저평야를 따라 기타 도로와 마을들이 들어서 있다.
작봉산의 북쪽 골짜기에는 고려 초기에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보물 제218호)을 건조한 혜명이 창건한 쌍계사가 위치해 있으며 쌍계사의 경내에는 보물 제408호로 지정된 쌍계사 대웅전과 중건비와 9기의 부도 등이 있다.
작봉산 정상의 이정표를 보니 화산 승치리와 가야곡 삼전리란 방향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 마을들은 전라북도 완주군과 충청남도 논산시를 가리키니 도 경계를 따라 산행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봉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단체 사진을 담은 후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잠시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짙은 안개가 사라지며 아침 햇살이 나타나더니 다시 그 안개속으로 숨어 버린다.
그렇게 안부를 지나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함몰된 정상에 소나무 한그루 자라고 있는 380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을 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 대동금강기맥 마루금의 봉우리들은 하나 같이 함몰된 형태의 봉우리로 되어 있는데 그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380봉을 지나 다시 진행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안개가 살짝 벗겨지더니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화산면 승치리의 승치산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처음에는 승치산이 까치봉이라 착각을 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잠시 안개가 엷어진 틈을 타 지나온 등로를 살펴보니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지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잡목이 무성한 산하의 경계를 타고 진행을 하고 있다.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260봉이라 생각되는 곳을 지나 좌측에 무명봉을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로프 구간이 나타나며 등로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가파른 로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안부가 나타나고 그 안부를 지나 진행하며 지도를 살펴봐도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무묭 안부이다.
그 무명 안부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등로는 다시 좌측에 무명봉을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진행된다.
그 사면 등로를 지나니 등로는 너무나 아름다운 소나무와 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는 일직선의 마루금으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을 하니 낙엽 깔린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고 그곳에도 어김없이 로프가 설치된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변하고 있다.
그렇게 다시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코가 땅에 닿을 듯 굵은 땀방울을 흘리니 군 교통호 같은 시설이 나타나더이 금새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공터에 도착해 아침식사를 준비하는데 한쪽 나뭇가지에 해발고도 395미터의 깃대봉이란 띠지가 보인다.
지도를 살펴보니 395봉이 보이지 않아 조금은 의심이 되는 깃대봉이지만 확인할 길이 없으니 아쉽기만 하지만 그래도 허기를 달래기엔 좋은 정상 공터이기에 쉬어가며 맛난 아침 식사를 해 본다.
해발고도 395미터의 깃대봉 정상에서 든든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맥 잇기를 진행하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게만 느껴진다.
초록으로 변한 활엽수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곳 역시 멋진 마루금이 이어지고 아침식사 후부터 안개도 조금씩 사라지며 기온도 산행하기 좋고 바람까지 불어주니 새벽 안개속에 많은 땀을 흘리며 진행하던 시간보다 더 좋은 조건이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 무명봉을 지나 평이하게 걸어가니 안부에 이정표가 서 있는 까치울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까치울재는 충청남도 논산시의 가야곡면 삼전리 까치울 마을에서 전북 완주군 화산면 춘산리 작동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고개 부근에 까치봉이 있는 곳이고 까치봉 서쪽 사면에 까치울 마을이 위치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이곳으로 피신했던 어느 학자가 아들을 고을에 보내 정황을 살피게 하였는데 산봉우리 쪽에서 까치가 떼를 지어 울면 아들이 무사히 돌아온 것으로 알고 나가 반겼다고 한다.
이후부터 산봉우리를 까치봉이라 부르고 고개를 까치울재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논산군지(1976)에 의하면 옛날에는 도적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고 하며 한국전쟁 때는 공비들이 은거하였던 고개라고 전한다.
지금은 이렇게 맥 잇기 산행을 위해 들리는 산객들만 지나는 볼품없는 까치울재이지만 예전 교통이 발달하기 전까지는 이곳 민초들에게 아주 중요한 고갯길로 남아 있었을 곳이기에 다시 한번 가슴속에 그 풍경을 담아 본다.
까치울재 안부에는 좌측으로 화산 춘산리라는 이정표와 가야곡 삼전리라는 이정표가 보여 춘산리를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화산면 춘산리는 본래 고산군 운서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덕동 작동 예곡리를 병합하고 춘산리라 하여 화산면에 편입된 마을로서 예곡 일명 여수개는 뒷산을 예봉산이라 하고 그에 여수고개(여우고개)가 있는데 그 밑의 마을이다.
덕동 일명 작동(깐치울) 또는 아래뜸은 덕골의 덕은 터 또는 언덕의 옛말이고 깐치울에는 까치가 많이 서식했으며 아래뜸은 덕동 동남쪽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까치울재 안부를 지나 오르니 한동안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지나 평이하게 이어지더니 짧은 잡목 구간을 지나 해발고도 456미터인 까치봉 정상에 도착을 해 잠시 쉬어 간다.
작치라고도 불려지는 까치울고개를 지나 다시 가파르게 오르니 까치가 많이 산다는 까치봉(456봉)에 도착을 하는데 까치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고 잡목이 우거진 평평한 분지의 한쪽 나무에 까치봉이란 이정판이 붙어 있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한껏 기대를 하고 올랐는데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전혀 없어 아쉽기에 우측(북쪽)으로 나 있는 통박산 가는 등로를 찾아 보고 지도상으로 확인한 후 다시 까치봉을 출발해 본다.
이곳 까치봉에서 통박산으로 진행하면 논산시 가야곡면과 양촌면을 가르며 이어져 가는 산줄기가 된다.
전국의 많은 까치봉과 마찬가지로 까치와 관련된 지명으로 알려져 있기에 잠시 쉬면서 전해오는 이야기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까치봉 정상도 제법 넓은 공터인데 일부는 벌써 잡목이 우거져 공터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어 있고 그 공터 한가운데에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어 그 나뭇가지에 수많은 선답자들의 띠지와 이정판이 달려 있다.
물 한모금 마시고 우측의 통박산 가는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는 정상적인 마루금을 찾아 진행을 하니 이곳도 역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한동안 걸어 내려가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나타나고 우측에 무명봉을 두고 좌측으로 사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나즈막한 안부를 지난다.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멋진 소나무 몇그루가 산객의 발길을 붙잡고 지도를 살펴보니 400봉쯤 되는 곳으로 그 봉우리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짧은 바위 너덜구간을 지나 좁은 공터가 있는 380봉에 도착을 한다.
그 좁은 공터가 있는 380봉을 지나 바위 구간을 통과하니 또 다시 가파른 내리막 등로에 로프가 설치되어 잇고 조심스럽게 그 로프를 따라 내려가 평이한 등로를 따른다.
280봉이라 생각되는 무명봉을 지나 안부를 통과하니 등로 좌측으로 조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 끝자락으로 지나온 대동금강기맥 마루금이 살짝 보이고 그 우측으로 춘산리 마을이 조용히 내려다 보인다.
짙은 안개로 인해 조망 한번 구경하지 못하다 처음 만나는 조망이기에 몇장의 사진을 남기며 멋진 추억을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잠시 조망을 즐기며 진행을 하니 눈 앞에 벌목 구간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좌측의 벌목지역과 우측의 잡목 구간 경계를 따라 진행하도록 되어 있다.
벌목된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뒤덮어 진행에 어려움이 있지만 조심스럽게 진행을 하고 계속 이어지는 등로 좌측의 춘산리와 운곡리를 내려다 보며 편안하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한동안 그렇게 벌목지대를 따라 능선으로 오른 후 뒤돌아 보니 방금 전 지나온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저 멀리 올려다 보이는 까치봉을 뒤돌아 보며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벌목지대에서 능선으로 이어지고 짧은 잣나무 구간을 지나 무명묘지 한기를 넘으니 또 다시 몇기의 잘 정리된 묘지지대를 지난다.그 묘지들을 지나니 멋진 소나무가 펼쳐지고 너무나 아름다운 밤나무과수원 아래 초록으로 펼쳐진 둥글래 밭을 지나 643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는 말목재에 도착을 한다.
말목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삼전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고개 아래에 만목리 또는 말목이라는 마을이 있어 이에 근거하여 말목재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개 북쪽을 지나 남에서 북쪽 방향의 골짜기가 있어서 왕암천이 흐르고 있고 이 하천에 의해 형성된 곡저평야가 위치해 있다.
논산시 남쪽에 위치한 동에서 서쪽 방향의 산릉에 해당하며 함박재에서 범허리재 지나 까치봉(456봉) 구간에 있는 고개로 충청남도의 논산시와 전라북도 완주군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고개의 북쪽으로 삼전리와 왕암호가 있고 이 곡저평야에서 대부분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으며 말목재는 논산시와 전라북도 완주군을 이어주는 지방도 643호선이 지나고 있고 이를 중심으로 기타 도로가 각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제1구간 산행 시 애마를 이곳 말목재에 주차를 시켜 놓고 산행을 하다 말골재에서 마무리한 후 애마 회수를 위해 다시 찾았던 곳이기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말목재이다.
말목재에는 석천이라는 버스 정류장과 한우를 비육하는 큰 축사 건물이 있으며 그 축사를 좌측에 두고 우측에 보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운곡리 마을쪽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가니 석천교회가 눈 앞에 올려다 보인다.
그 석천교회 옆 수돗가에서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내고 축사 끝자락의 그늘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체력을 보충해 본다.
점점 뜨거워지는 기온에 지열까지 더해지며 산행에 어려움을 느끼지만 중단할 수 없기에 다시 석천교회 앞 곱게 피어난 철쭉꽃 앞에서 단체 사진 한장 남기고 그 석천교회 우측 능선을 타고 다시 맥 잇기 산행을 이어 가 본다.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이제 등로 좌측으로는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뒤 저 멀리 방금 전 올라 온 운곡리의 마을 건물들과 축사가 내려다 보인다.
등로 좌측 골짜기 건너에는 이름모를 산줄기 하나가 지나는데 처음에는 그쪽 산줄기를 타고 다시 수평으로 진행될 것 같아 그곳으로 조금 짧게 오르고 싶은 욕망도 있었지만 잘 참고 정상 등로를 따라 올랐는데 바대 방향으로 올랐으면 무척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잠시 더 올라 작은 돌탑을 지나 한동안 오르니 이제 등뒤로 지나온 마루금의 까치봉까지 시원하게 조망되고 조금 더 걸어 오르니 벌목지대 위 저 멀리 옥녀봉 전위봉인 450봉이 올려다 보인다.
다시 뜨거운 태양열을 받으며 벌목지대를 타고 오르다 잠시 뒤돌아 보니 오늘 종주대가 걸어 온 대동금강기맥 마루금이 저 멀리 희미하지만 시원하게 조망되고 잠시 발걸음 멈추고 그 산줄기를 살펴 본다.
저 멀리 까치봉이 우뚝하고 그 까치봉 지나 400봉과 380봉이 우측으로 약간 흐르며 산객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다.
그 대동금강기맥 마루금 우측으로는 춘산리로 이어지는 이름 모를 산줄기가 가지를 쳐 내려가고 있다.
이제 옥녀봉 전위봉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오니 등로 또한 더욱 가파라지기 시작하고 잡목 숲으로 들기 전 아쉬움에 뒤돌아 보며 지나온 마루금을 다시 한번 살펴 보기도 한다.
그렇게 진행해 벌목 구간을 지나 숲으로 들어가니 공기가 시원해지며 다시 약간의 산들바람이 불어 와 산행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늘 숲을 따라 조금 더 오르니 커다란 활엽수 한그루가 서 있는 봉우리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나뭇가지에는 이곳이 옥녀봉 아님이란 팻말이 붙어 있어 웃으며 사진 한장 남겨 본다.
지도를 살펴보니 옥녀봉 전위봉인 450봉인데 옥녀봉보다도 후ㅏㄹ씬 높으면서도 옥녀봉 전위봉이란 이름을 얻게 된 사연이 궁금해진다.
옥녀봉 전위봉인 450봉은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갔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 진행을 하니 삼각점이 있는 해발고도 411.7미터인 옥녀봉 정상에 도착을 한다.
이곳 옥녀봉(411.7봉)은 산봉우리가 마치 옥녀처럼 단정하다 하며 옛날 선녀들이 여기에 내려와 놀다 가곤 했다고 하는데 논산시 가야곡면과 완주군 화산면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으로 왕암천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옥녀봉 장상 역시 잡목들로 인해 조망이 없기에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하니 해월연안이공 묘지가 보이고 그 묘지를 지나 평이한 푸른 숲속으로 걸어 진행을 한다.
참으로 평이하지만 아름다운 등로를 타고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보니 등로는 갑자기 잡목지대가 펼쳐진다.
봄이 온지 얼마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잡목들과 가시넝쿨들이 자라면서 등로는 잡목지대가 자주 나타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 잡목 지대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운산리와 그 운산리 우측 저 멀리 오늘 진행해야 할 기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화산면 운산리는 본래 고산군 운서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호리 하호리 누항리 밀파리 검단리를 병합하고 산위에 구름이 자주 낌으로 운산리라 하여 화산면에 편입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밀파 일명 밀파실 또는 검단이를 또 옥련동이라 하는 것은 북쪽에 옥련암이란 암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에 짙은 안개로 인해 걱정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람도 불어 주고 안개가 걷히며 가끔 이런 멋진 풍경까지 선물을 하니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는 종주 산행이다.
이제 운산리 마을에도 모내기가 가까워졌는지 논을 써래질 하고 모판에 덮혀있는 비날하우스가 정겹게 다가오는 시간이다.
잠시 더 잡목이 우거진 등로를 따라 어렵게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 앞으로 이제부터 진행해야 할 마루금이 잡목속에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을 하니 63번 송전탑을 만나 그 밑으로 통과를 해 보는 시간이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범허리재인데 이 송전탑이 생기면서 고갯마루인지도 모르게 지나칠 수 있는 고갯마루로 변해있다.
범허리재는 충청남도 논산시의 가야곡면 삼전리 말목 마을에서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돔박골로 넘어가는 고개로서 서쪽으로 함박봉이 있고 동쪽으로 옥녀봉이 소재한다.
옛날 이 고개는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가는 큰길이 통과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고 하는데 전설에 의하면 이 고개에 집채만한 호랑이 한 마리가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져가자 길손들이 끊겼고 주변의 주막들도 문을 닫아야만 했다.
이 소문을 듣고 석성 지방에 살던 황포수라는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는 어느 날 밤 호랑이를 발견하고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을 맞은 호랑이는 곧바로 쓰러지지 않고 황포수와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결국 황포수가 다시 쏜 총에 맞고 호랑이는 그 자리에 쓰러졌는데 그때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내려치고 억수 같은 비가 내려 쏟더니 이 고개의 지형을 마치 호랑이 허리처럼 바꾸어 놓았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고개이기도 하다.
그 송전탑을 지나니 등로는 다시 방화선 같이 넓은 등로로 이어지고 육군부사관학교장이 설치한 많은 경고판과 산불방지 플랭카드 그리고 등로 우측으로 철조망이 나타난다.
박격포 피탄지 경고판과 고폭탄 사격장 경고판이 교대로 나타나며 등로 우측에 보이는 철조망에 연속으로 걸려있다.
그렇게 그 철보망을 따라 진행하며 산불난 지역이라 지도에 보여 찾아 보지만 이제 그 불난 흔적은 사라졌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철조망을 타고 잠시 걸어가니 나무벤취가 있는 함박봉에 도착을 하고 배낭 내려 잠시 쉬어가며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함박봉에 대한 자료를 찾아 보니 자세히는 나와있지 않고 함박재에 관한 자료만 잘 찾을 수 있었다.
함박봉은 산봉우리의 형상이 작약 꽃처럼 보여서 붙여진 명칭으로 함박재의 이름도 여기서 유래하였다.
함박봉(403봉)은 충남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 소재에 있는 봉우리로서 조선시대 함박현 마을의 가장 높은 산으로서 함박봉(산)으로 일컬어졌으며 동남쪽 10여 Km 지점에 옥녀봉(410봉)이 있다.
옥녀는 단정한 처녀로서 모든 처녀의 귀감이 된 여인이며 남쪽은 전라북도 완주군이고 북쪽은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재로 경계를 이룬다.
함박봉 동쪽에 있는 높은 고개가 함박재(고개)이다.
이곳 함박봉 지나 조망이 있는 능선에 앉아 남아 있는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잠시 더 휴식을 취하고 출발을 한다.
함박봉 지난 능선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진행해야 할 능선을 살펴보니 저 멀리 함박재와 소룡고개를 지나 우뚝 솟아 있는 371.3봉도 올려다 보인다.
잠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운산리 마을과 그 우측으로 고내곡재로 이어지는 마루금 넘어 다음 구간 올라야 할 천호산이 올려다 보인다.
서쪽으로 진행되던 마루금이 이제부터 한동안 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이어지고 천호산 지나 용화산에서 다시 마루금은 서쪽을 향해 달려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조망을 즐기며 잠시 더 잡목 사이를 걸어 진행을 하니 고개로서의 역활이 다했는지 알아볼 수도 없을만큼 사라져가는 함박재를 지난다.함박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소룡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서 함박재 위에 위치한 함박봉(403봉)은 산 봉우리가 작약 꽃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고 여기에서 고개 이름도 함박재로 불리게 되었다
함박재의 서쪽 능선으로는 소릉재에 이어지며 그 남쪽으로 고내곡재에 이어지고 있고 동쪽으로는 범허리재와 옥녀봉(411.7봉)에 이어지고 있다.
북쪽에 우둠저수지를 비롯한 인근의 소규모 곡저평야가 있을 뿐 넓은 경지나 큰 마을이 들어설 만한 평야가 없다.
함박재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대로 내려가 살펴보니 운산리를 통해 소룡고개로 올라오는 1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아름답게 이어져 있다.
운산리 마을을 내려다 보고 그 벌목지대를 올라 와 정상 마루금으로 복귀를 하는데 진행 방향으로는 이제 소룡고개 지나 올라야 할 371.3봉이 가깝게 올려다 보인다.
저곳을 선답자중 누군가 성태봉이라 적어 놨는데 고증을 통해 맞는 봉우리 이름을 찾아 적어 놨기를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정확한 고증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국토지리원에 나와 있는 봉우리 높이만 적어 놔도 충분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의견이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조망하며 천천히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니 금새 방금 전 벌목지대에서 내려다 봤던 15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소룡고개에 도착을 한다.
철조망 좌측 끝자락을 통해 시멘트 옹벽을 내려서서 도로를 건너 건너편 비포장 임도로 이어지는 곳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소룡고개는 충청남도 논산시의 연무읍 소룡리와 전북 완주군 화산면 운산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15번 지방도로가 통과하며 북서쪽에 함박재가 위치하며 남쪽으로는 고내곡재가 있다.
소룡고개라는 지명은 고개 아래에 있는 소룡리라는 마을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소룡리 부근에는 이무기가 집을 짓고 사는 용굴이 있었는데 천운이 되면 푸른 빛의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고 이 때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했다고 한다.
진실이던 아니던 고향의 고개마다 많은 전설과 유래가 남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보존하고 지켜져야 할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소룡고개에서 애마 회수 문제를 고민하고 있는데 함께 산행을 하는 종주대 한명이 고향이 이곳 근처라며 지인분을 통해 픽업 트럭으로 진행하기로 하니 산행 후 시간을 30여분 이상 벌게 되어 조금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완만하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등로 주위에 기이하게 생긴 철목이 박혀있어 이상하게 생각을 하며 진행을 하는데 계속 나타나는 같은 모양의 쇠 철목을 자세히 살펴보니 옛날에 벤취를 만들었는데 너무 오래되었는지 나무가 썩어 사라지고 그 하부에 있던 쇠막대만 남아 썩고 있는 상태이다.
예전에는 많은 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었다는 생각이지만 이제는 이렇게 맥 잇기를 위해 오르는 산객들만 찾는 한적한 곳이 되어 많은 것들이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눈 앞에 돌담이 나타나고 그 돌담 위를 통해 진행을 한다.
성터인지 아니면 예전에 사람이 살던 집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상부를 중심으로 제법 넓은 지역에 돌담으로 둘러쳐져 있어 지도를 살펴 보지만 지도에도 특별한 내용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산행 후 자료를 찾아 보니 선답자중 한명이 이곳 성터를 백제 8대 고종왕의 셋째 딸인 매화공주와 연관된 이야기를 전하는데 내용은 이 공주의 문무가 출중하고 지혜도 남달라 신라와 전쟁을 할 때 신라를 방해하기 위해 용장을 인솔하고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대기한 곳이라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인 의견고 집터 보다는 예전 성터같다는 생각이지만 그 역사적인 내용까지는 찾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 시간이기도 하다.
성터를 올라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사각정자 하나가 서 있는데 조망도 좋지 못하고 관리도 되지 않는 이곳에 무슨 이유로 사각정자가 세워져 있는지 의아한 생각만 드는 장소이다.
그 사각정자를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서래야 박건석님이 이곳을 성태봉이라 적어 놓은 해발고도 371.3봉에 도착을 한다.
한쪽에는 삼각점이 박혀 있는데 잡목이 너무 우거져 삼각점은 찾지도 못하고 안내판만 사진에 담은 후 잠시 쉬어 본다.
성태봉(371.3봉)은 완주군 화산면과 논산시 연무읍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옛 성의 흔적(태)이 남아 있어서 성태봉이라고 부르며 성태봉 서쪽 황하리 사람들은 이 성이 삼국시대에 백제의 고성이라고 전해진다고 알려져 있다.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배낭 둘러메고 내려가니 의녕남공한대옥지묘라는 비석이 보이는데 정작 묘지는 관리가 되지 않아 잡풀이 무성하다.
그 묘지를 지나 내려가니 다시 무너진 성터같은 돌담이 나타나고 그 돌담을 건너 내려가니 멋진 소나무 군락지가 펼쳐져 있다.
큰 높낮이도 없는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타고 걸어가니 다시 활엽수 군락지가 보이고 푸르른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진행한다.
그렇게 한동안 파란 등로를 타고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다시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그 벌목지대 지나 운산리 금평마을이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화산면 운산리는 본래 고산군 운서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호리 하호리 누항리 밀파리 검단리를 병합하고 산위에 구름이 자주 낌으로 운산리라 하여 화산면에 편입된 마을로서 4개의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금평은 장재(장재울)라고도 하는데 금평은 뒷산에 옥녀직금혈이 있다 하여 생긴 이름이고 장재에는 옛날 장자(갑부)가 살았다고 한다
상호는 일명 호두(범머리) 또는 돔박골이라 하는데 상호는 범머리를 위치에 따라 상하로 구분한 명칭으로 범머리는 뒷산이 범의 형국이라 하며 돔박골은 범머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한쪽에는 기묘하게 생긴 건물도 내려다 보이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모르겠다.
뜨거운 벌목지대를 지나 다시 능선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바람이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주고 평이한 등로를 타고 한동안 걸어 본다.
잡목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르고 비포장 임도를 만나자마자 새로 식재된 듯한 잣나무 몇 그루를 지나 묘지를 만들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갈림 비포장 임도에서 좌측 임도를 버리고 우측 임도를 따라 꺽자마자 다시 좌측 능선으로 들어가며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다시 멋진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좌측으로 묘지를 지나니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해 등로 좌측으로 멋진 잣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바위봉이 보이고 곧이어 절개지 밑으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내곡재가 내려다 보이는데 그곳에는 택시 하나가 올라와 있고 몇명이 쑥을 듣느라 정신이 없다.
그 고내곡재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가 도로 우측의 성황당 직전 우측으로 고내리의 고내곡재와 그 뒤 저 멀리 연무읍 연무대쪽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한번쯤 들렸을 논산훈련소가 저 멀리 보이기에 오래된 옛 추억을 더듬으며 그곳 논산훈련소를 바라본다.
1951년 11월 1일 논산에서 창설되어 이듬해인 1952년 2월 1일부터 입소자들에 대한 훈련을 실시한 육군 제2훈련소가 육군훈련소의 모체로서 제2훈련소의 설치는 당시 제주도에 있던 육군 제1훈련소가 지리적 여건으로 인해 신병훈련 장소로 부적합함은 물론 내륙에 위치한 각종 병과학교들과의 연계를 원활하게 할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논산시 연무읍 일대에서 창설된 육군 제2훈련소는 창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친필휘호로 연무대라고 명명하여 국민들에게는 연무대라는 명칭으로 널리 알려지기도 했으며 창설 당시 14000여 명의 수용 규모로 시작한 제2훈련소는 계속해서 규모를 확장해 갔으며 1953년 11월까지 제23·25·26·27·28·29·30연대 등 총 7개의 교육연대를 보유하게 되었다.
1955년 12월 31일 제주도의 제1훈련소가 해체되면서 논산의 제2훈련소는 전 육군의 단일 신병훈련소가 되어 신병 양성의 요람이 되었는데 1999년 2월 1일 육군훈련소로 부대명칭이 개편되었고 창설 초기에는 병기와 병참 등 주로 특별병과 훈련을 실시하였으나 제1훈련소 해체 후에는 보병·포병 등 전투병과 훈련에 주력하였다.
1960년 이후 각 사단에 신병교육대가 설치되면서 군사기초교육만을 담당하다가 1979년부터는 특기병 위주로 군사기초교육을 실시하였다.
현재는 현역병과 부사관후보생을 대상으로 하는 현역 5주과정과 공익근무요원, 산업기능요원, 공증보건의사, 징병전담국제협력의사, 전문연구요원, 공익법무, 공익수의사 등 보충역 편입자 및 의무경찰, 의무소방 등 전환복무요원을 대상으로 하는 보충역 4주과정의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역병 교육은 3단계로 구분하여 실시되고 있는데 제1단계에서는 군인기본자세 확립 2단계에서는 야외종합훈련을 비롯한 기초 전투기술 숙달 제3단계에서는 군인화 완성을 목표로 진행되며 보충역 교육은 군인 기본자세 확립, 기초 전투기술 숙달, 전시 임무 수행 능력 배양 등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현재 육군훈련소의 규모는 주둔지와 훈련장을 합쳐 6322722 ㎡에 이르는데 이는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109개에 해당하는 것이다.
연무쪽을 배경으로 사진 한장 남기고 성황당도 살펴 본 후 고내곡재 고갯마루로 오르니 고갯마루 정상에 택시 하나가 서 있고 부부가 함께 쑥을 듣느라 정신이 없다.
조금 더 걸어 고갯마루를 지나니 도로 우측으로 잡풀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가 보이고 그곳을 통해 오르며 산행은 이어진다.
도로표지판에는 고내곡로라 되어 있고 그 옆에는 화련천개통기념이란 콘크리트이정석이 서 있다.
고내곡재는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고내리와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성재 또는 고내골재라고도 부른다.
옛날에는 산적들이 웅거하여 이 고개를 넘어가는 행인들을 괴롭히기도 했다고 한다
고개의 북쪽은 소릉재와 함박재(340봉)로 이어지며 이 능선은 서쪽의 성삼재와 화산봉(166.4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고개는 논산시와 완주군을 연결하지만 주요 도로는 지나지 않고 기타 도로가 고개를 관통하여 완주군 화산면을 통과하는 지방도 740호선에 이어지고 있으며 고개 서쪽에는 고내곡이 있는데 이곳에 고내곡저수지가 있다.
쑥을 듣고 있는 부부와 잠시 이야기 나눈 후 도로 우측의 잡풀이 무성한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오르니 등로는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그냥 비포장 임도를 타고 올라 파평윤씨 묘지에서 우측 능선으로 올라도 될 것 같다.
주능선으로 올라 잠시 더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운산리와 운산리 반대편의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러고 보니 말목재 지나서부터 계속 등로 좌측의 운산리를 내려다 보며 진행하는 금강기맥 산행이 되고 있다.
다시 초록빛 등로를 타고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가니 소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무명봉을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는 소나무 군락지를 따라 내려가 본다.
무명봉을 좌측에 두고 우측 사면 등로를 타고 진행하니 다시 한동안 평이한 등로가 열리더니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살펴보니 땅바닥에 증산봉이란 종이코팅지가 떨어져 있는데 집에 돌아 와 찾아 보니 어느 선답자의 산행기와 등산지도에 이곳이 증산봉으로 해발고도는 약 365미터이다.
증산봉이란 해발고도 365미터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완만하게 내려가고 나즈막한 안부를 지나 잡목과 싸우다 보니 또 다른 큰 안부를 통과하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아무 표식도 없는 안부이다.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등로 찾기도 힘든 마루금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이제부터는 가시줄기가 온몸에 생채기를 내면서 진행을 강하게 방해하고 있다.
그렇게 진행하니 다시 많은 선답자들의 띠지가 달려있는 해발고도 325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어느 지도에는 태백이산이라 되어 있다.
하지만 그 태백이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그 이름이나 유래에 관한 자료는 찾지 못해 아쉽기만 하다.
그곳 태백이산이라 생각되는 325봉을 지나 이제 완만하게 내려가니 등로는 여전히 잡목으로 인해 진행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게 잠시 더 내려가니 드디어 오늘 산행 날머리인 누항재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오래된 시멘트 포장도로인데 이제는 그 도로로서의 기능은 많이 사라지고 있는 듯 하다.
누항재는 익산시 여산면 태성리에 있는 고개로서 1914년 전동, 현천리, 신사리, 덕곡리, 화산리, 노동, 태성리, 관동, 누동의 각 일부로 구성되어 있다.
여산군 천동면에 속했을 때에는 대성리였는데 뒤에 대자를 약자인 태로 쓰게 되자 태성리로 읽게 되었다.
누항(시어목 또는 세목)은 1972년 성치(성잿골)와 합쳤다가 분리된 마을로 누항은 시어목의 한문자 표기고 시어목은 물이 새어(시어) 들어가는 목(좁은 부분)이라는 말이다.
천호산 북쪽 근처에 지형이 삿갓을 뒤집어 놓은 듯한 곳이 있는데 비가 오면 물이 그 속으로 흘러 들어감으로(천호동굴 속으로) 시어목이라 했다.
성치에는 나백전 때 쌓았다는 천호성이 있어 성잿골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이곳에서 남아 있는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목마름을 해결한 후 먼저 와 있는 지인의 포터 트럭에 배낭을 올려 놓고 단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음 구간 올라야 할 마루금을 살펴 본 후 그 포터 트럭을 타고 산행 들머리에 서 있는 애마를 회수하기 위해 말골재로 뒤돌아 간다.
포터 트럭을 타고 말골재로 뒤돌아 가며 차장 밖을 살펴보니 제1구간 때 걸으며 올라보고 싶어 아쉬워했던 써레봉 줄기가 아름답게 눈에 들어 온다.
생각보다 강렬한 암봉의 능선이 이 산객의 숨어 있는 산행 본능을 부르고 조만간 다시 한번 내려 와 저 써레봉과 선애봉을 함께 돌아 보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래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가까이 있을 때 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마루금의 모습에 역시 산은 멀리서 바라보는 모습이 참으로 진짜 모습은 아닐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생각보다 쉽게 5명 모두 그 포터 트럭을 타고 산행 들머리인 말골재로 뒤돌아 와 배낭을 정리하고 사진 한장 남긴 후 오늘 새벽 짙은 안개와 어둠속에 힘들게 올랐던 장재봉 갈림봉과 장재봉을 올려다 본다.
생각보다 너무 가파른 오르막 등로로 인해 지금 올려다 보는 시간에도 가쁜 숨결이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렇게 오늘 하루 대동금강기맥 제2구간 산행을 마무리하고 운주계곡 쪽으로 가 소금끼와 땀을 닦아 내고 지인이 알고 있는 여산의 초원식당에서 쌈밥으로 맛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여유롭게 귀경을 하니 적당한 시간에 집으로 돌아 와 또 한구간 대동금강기맥 산행을 무탈하게 마무리함을 자축해 보는 시간이다.
다음 제3구간부터는 오늘보다 더 무더운 시간에 진행을 해야 하기에 조금 일찍 산행을 시작해 무더운 시간을 피해 산행을 마무리 할 수 있기를 바라며 6월 초를 기다려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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