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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맥과 중요 지맥 산행(완료)/금남기맥(호남·완)

금남기맥(금강정맥) 제1구간 작은싸리재에서 말골재까지 산행후기

by 칠갑산 사랑 2015.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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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전라북도 완주군의 금남기맥(금강정맥) 마루금 일대

산행날자 2015년 05월 01일 (목요 무박 금요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 종일 맑았으나 약간의 박무와 초여름 같은 무더위로 고생을 했던 날씨

산행온도 영상 12도에서 영상 27도

산행인원 : 3450온누리산악회 금남기맥 종주대 총 5명

산행코스 : 작은싸리재-금만봉(금남기맥 분기봉, 740봉)-바위봉-헬기장-널바위-산죽지대-민둥등로-왕사봉(718.3봉)-28번 송전탑-칼바위전망대-

                 암릉등로-암봉 우회-682 암봉 전망대-암봉 전망대-일출-암릉등로-칠백이고지(700.8봉, 무인산불감시카메라)-헬기장-칼바위 능선-

                 암릉등로-써레봉 전망 바위-585봉-암릉전망대-암릉등로-선녀남봉(665봉, 돌탑)-선녀봉 갈림 공삼거리 공터-전망바위-성터흔적-바위

                 무명봉-용계재(비포장 임도와 사각정)-벌목등로-불명산 우회등로-화암사 갈림삼거리-화암사 방향으로 짧은 알바-불명산(480봉 돌탑)-

                 암릉 우회-조망처-산죽등로-무명묘지봉(445봉)-화암사 갈림 삼거리-녹슨 안테나봉-화암사 갈림 삼거리-시루봉(427.6봉 삼각점)-

                 장선리재 비포장 임도-암릉등로-392 암봉-암릉등로-칼바위 등로-미륵산 동봉(465봉, 능바위산)-낙엽 안부-암릉등로-미륵산

                 서봉(476.4봉, 능바위산)-급경사 내리막 등로-자갈등로-무명묘지-소나무 등로-말골재(17번 2차선 지방도로)-산행종료-경천저수지

                 산수장가든-붕어찜 매식-귀경

산행거리 : 약 18.53 Km (스마트 폰의 GPX 기준)

산행시간 : 초여름 같은 무더위에 어렵게 진행하며 09시간 13 (03시 50부터 13시 03분까지)

교통편 : 자가용 이용

금남기맥(금강정맥)이란 ???

금남기맥(금강정맥)이란 백두대간이 덕유산을 지나 백운산에 내려서기 전에 영취산에서 장안산, 신무산, 팔공산, 성수산 및 마이산을 거쳐 진안과 전주 사이의 모래재고개 위 조약봉(주줄산 또는 주화산)에서 두줄기로 갈라진다.
한줄기는 남서쪽 만덕산으로 해서 내장산, 추월산, 무등산, 제암산, 존제산, 조계산과 백운산등 전라남북도를 휘돌아서 섬진강하구의 망덕산까지 이어지는 호남정맥이고 또 한줄기는 북진하여 연석산, 운장산, 장군봉을 지나서 싸리재와 봉수대 사이의 싸리재 분기봉에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진다.
한줄기는 북진하여 인대산, 대둔산, 계룡산을 지나서 부여 부소산에서 맥을 다하는 산경표의 금남정맥이고 또 한줄기는 서진하여 왕사봉을 거쳐 칠백이고지, 시루봉, 장재봉, 작봉산, 천호산, 미륵산, 함라산, 망해산, 고봉산을 지나 장계산에서 서해바다로 잠긴다.

이산줄기를 보통은 금남기맥 혹은 원 금남정맥이라고 부르는데 신산경표는 조약봉 분기봉에서 군산의 장계산까지 가는 산줄기를 

금강정맥이라고 부르고 싸리재 분기봉에서 부여의 부소산까지를 금남정맥이라고  부른다.
거리는 조약봉에서 부소산 조룡대까지나 군산의 장계산까지나 신기하게도 같은 도상거리로 131.4 Km이다

그렇게 이름지어진 이유는 정맥은 강을 구획하는 경계가 되고 맥이 바다에 닿아야 하는데 신산경표의 금남정맥은 이 모두를 충족하지 못하니 온전히 금강의 남쪽과 만경강의 북쪽 울타리를 이루고 이 줄기를 금강정맥이라고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산줄기이기에 걸어가면서 그 의미를 새겨보고 실제 마루금을 살펴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다양한 이름으로 논란이 있는 산줄기에서 일찍 찾아 온 초여름 무더위로 산행에 어려움을 겪으며 중간에 탈출했던 아쉬웠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홀로 마음 내키는대로 발길 닿는대로 진행을 하면 가정 좋겠지만 같이 산행을 즐기는 산친 몇명이 함께 진행하자고 마음이 맞아 오랫동안 남겨놨던 금남기맥 즉 말도 많고 이름도 많은 금강정맥 산행을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원래 2일 저녁에 서울에서 출발해 3일인 일요일 산행을 해야 되지만 많은 산친구들이 노동절인 5월1일 휴식을 취한다는 소식에 4월30일 밤 12시에 서울에서 출발해 작은싸리재에서 말목재까지 조금 긴 거리이지만 모두 산행을 잘 하는 친구들이기에 무리하면서도 진행하기로 하고 출발을 해 보는 시간이다.

다만 산행 들머리에서 작은싸리재까지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까 고민하는데 마침 함께 진행하는 산친구 한명의 고향이 이곳 근처이기에 그 산친구의 지인이 운전하는 픽업트럭을 이용해 새벽 일찍 작은싸리재로 오르기로 하니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시작하는 마루금 잇기 산행이 벌써 1대간 9정맥을 지나 9기맥 완주가 목전이니 참으로 긴 세월동안 꾸준히도 산에 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기분 뿌듯한 시간이기도 하였다.

다만 이 산행이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길 바라며 완주 후에도 늘 산을 그리워하며 산이 보여준 모습 그대로 함께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살아가는 삶이길 바래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새벽 2시 40여분에 오늘 산행 날머리인 말목재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애마를 목장 한쪽에 잘 주차시킨 후 픽업 트럭을 기다리니 새벽 3시에 드디어 픽업트럭이 오고 그 트럭에 올라 구절양장인 꾸불한 도로를 타고 어렵고 힘들게 도착한 작은싸리재에서 시간을 보니 트럭으로도 근 1시간 가깝게 걸려 어렵게 오른 산행들머리이다.

산행 준비 후 산행을 시작해 초반에는 별무리 없이 진행을 하였지만 일출이 되고 낮기온이 오르면서 초여름을 방불케 하는 무더위가 결국 발목을 잡아 말골재에서 산행을 접기로 한다.

산행 막바지로 접어들어 장선리재를 힘들게 지나 오르다 395 암봉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살펴보는 시간은 참으로 행복한 시간으로 남겨진다.

바로 발 아래에 장선리재가 숨어있고 그 넘어 427.7봉을 넘으면 불명산이 우뚝하고 그곳 넘어 저 멀리 우측으로 싸리봉을 분기한 선녀남봉과 그 끝자락에금남기맥 일명 금강정맥 분기봉인 금만봉이 우뚝 솟아 있다.

힘들고 어렵게 진행하였지만 이런 황홀한 풍경 한장면으로 그동안의 피로가 사라지고 새로운 활력이 충전되는 시간은 아니였을까 기억해 보는 지금도 황홀한 시간이기도 하다.

다만 몸 관리 잘해 말목재까지 진행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았지만 함께하는 산친구들이 무더위에 지쳐 너무 무리가 될 것 같아 말골재에서 마무리를 하였는데 때로는 이렇게 욕심을 버리면 편안해 질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 시간이었다.

 

새벽 12시에 사당역에서 애마를 이용해 출발하여 탄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달려가니 말목재로 가는 지방도로 위에는 자욱한 안개가 드리워져 오늘 하루 산행의 어려움을 예고하는 듯 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이른 시간인 새벽 3시쯤 오늘 산행 날머리로 예상하고 있는 말목재에 도착해 산행 준비 후 애마를 주차시키고 있으니 종주대원과 잘 알고 있는 포터트럭 주인이 트럭을 몰고 나타나고 5명 모두 트럭에 올라 어렵고 힘들게 꼬부랑 도로를 이리저리 흔들며 작은싸리재에 도착을 한다.

트럭으로도 거의 1시간 가까이 걸린 거리를 달려 왔으니 생각보다 먼 거리였던 모양이다.

새벽 3시 40여분에 도착한 작은 싸리재는 몇 년전 금남기맥 산행을 하면서 지났던 기억이 있어 잠시 둘러 보지만 어둠속에 서 있기에 그때의 기억이 단편적으로 이어졌다 끊어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곳으로 올라온 계곡이 운주계곡인데 여름이면 가족들과 두어번 들렸던 곳이기에 어두운 밤길에도 그 추억이 생각나 잠시 상념에 잠겨 보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이곳 작은싸리재는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와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 중리마을을 잇는 고개로 완주와 진안의 5일 장을 보러 많은 보부상들이 넘나들던 길이다.

 

작은 싸리재에서 산행 준비 후 잘 정비된 5명의 종주대가 이동통신 안테나가 있는 반대편 능선을 타고 가파른 능선으로 오르며 멀고도 먼 금강기맥 즉 금남기맥 첫구간을 시작해 본다.

능선으로 오르자마자 임산물 불법채취 금지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그 플랭카드를 지나 오르니 가파른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오르니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봉을 오르니 더욱 가파라지는 오르막 등로엔 키 작은 산죽 등로가 나타나더니 금새 금강기맥 또는 금강정맥 또는 금남기맥이 분기하는 싸리봉인 금만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씩 남겨 본다.

이곳 싸리재는 전라북도 진안군의 주천면대불리에 소재한 고개로서 군의 주천면 대불리 웃진등(윗진등)과 서북쪽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사이의 재로 높고 가파르며 싸리나무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이웃한 북동쪽 능선에 작은 싸리재가 있으며 이 봉우리에는 태평봉수대(지방기념물 제36호)가 남아 있는데 봉수대가 산 정상부에 있으며 1595년(선조 28)에 태평산성과 전주감영에 신호를 보냈다고 한다.

해동지도1872년지방지도(용담)에 유령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후에 축령으로 변음된 것은 싸리나무라는 의미의 자를 으로 잘못 읽은 것으로 추정된다.

준비한 것은 없지만 마음속으로 금강정맥, 금강기맥 또는 금남기맥 산행도 아무 사고 없이 무탈하게 이끌어 달라고 산신령에게 제를 지내보는 시간이다.

 

변변한 이정석과 이정판 하나 없는 정맥과 기맥 분기봉인 금만봉 일명 싸리재에서 좌측의 금남정맥 마루금을 버리고 우측 금남기맥 마루금을 타고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 본다.

잠시 오르니 바위봉이 나타나고 다시 낙엽깔린 등로를 따라 한동안 평이하게 걸어가니 또 다른 바위봉인 싸리봉에 도착을 해 아쉬운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 보지만 어둠속에 묻혀있는 등로이기에 그저 마음속으로만 둘러 볼 뿐이다.

이제 낙엽진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갔다 안부 지나 다시 오르기를 두어번 더 진행하니 갑자기 키 큰 산죽터널이 나타나고 그 산죽 마루금을 타고 완만하게 내려가 본다.

 

잠시 산죽 등로를 따르니 좁은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를 지나 바위지대를 통과하니 갑자기 어두운 하늘이 열리면서 민둥의 등로가 나타난다.

한동안 그 민둥의 오르막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잡목이 우거진 능선으로 접어 들고 곧이어 삼각점이 박혀있는 해발고도 718.3봉의 왕사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씩 남겨 본다.

아직도 어둠속 세상이니 삼각점과 왕사봉이란 이정판을 제외하곤 보이는 것이 없어 곧바로 마루금을 타고 맥 잇기 산행을 이어가 본다.

 

왕사봉을 지나 다시 잡목과 산죽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더니 눈 앞에 멋진 산그리메의 실루엣이 나타난다.

바로 옆으로는 송전탑이 거대하게 높아 보이는데 살펴보니 등로 우측의 고당골 넘어 금남정맥의 성재봉(태평봉수대)에서 좌측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마루금이 여명의 빛을 받아 희미한 실루엣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잠시 희미한 실루엣을 구경한 후 28번 송전탑을 지나고 잡목이 우거진 진달래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우측으로 직벽의 절벽이 있는 능선 바위 등로가 나타나는데 그 우측으로 금남정맥 마루금이 조금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 오기 시작한다.

 

여명의 빛을 받아 등로 우측의 고당골을 지나 금남정맥 마루금을 올려다 보며 걸어가니 위험해 보이는 바위 암릉의 칼바위 등로를 따라 다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이 산객에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의 불빛이 바위 암릉을 지나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가며 흔들리는 불빛이 묘한 매력으로 다가 온다.

잠시 그 흔들리는 불빛을 더 감상한 후 이 산객도 우측에 절벽을 두고 앞서 진행하는 종주대를 따라 본다.

 

칼바위 능선을 지나 바위 암릉으로 오르니 암릉 사이로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들이 눈에 들어 와 사진 몇장에 남겨 본다.

그렇게 암릉을 지나 오르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 무명봉을 넘어 등로 우측으로 보이는 멋진 금남정맥 마루금을 살펴 본다.

그곳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는데 그 암봉 좌측으로 우회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우회 등로를 이용해 어렵게 그 거대한 전망바위로 오르니 지나온 금남기맥과 등로 우측의 금남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우측으로 방금 전 지나온 왕사봉 지난 송전탑이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 저 멀리 성재봉인 태평봉수대의 높은 봉우리도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며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벌써 허기지는 배를 간식으로 채우며 잠시 더 주위 조망을 살펴보니 등로 뒷쪽인 남동쪽으로 오늘 새벽 우리 종주대가 걸어 온 금강정맥 마루금이 멀어지고 그 우측으로 금남정맥의 성재봉에서 이어지는 마루금 역시 아름답게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금남정맥 마루금 아래에는 고당골이 깊게 내려다 보이고 등로 좌측으로는 전북 완주군 동상면 대아리 방향의 은천계곡이 보이지만 그 아래 보여야 할 대아저수지는 보이질 않는다.

동상면 대아리는 일제시대에 저수지를 막기 위하여 마을을 이 곳으로 옮겨 새로이 붙인 이름으로 원래는 대실이었으나 이 대실은 현재 대아 저수지 속에 잠겨 있으며 대실은 큰 골짜기라는 의미에서 큰골의 한자 표기로서 현재 대아리는 은천, 산천, 음수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은천은 원천이 바뀌어진 듯하는데 은천은 대아저수지로 흘러들어오는 물의 상류가 시작되는 마을이며 따라서 깊은 골짜기 속에 있기 때문에 숨은 내라는 의미가 한자로 그렇게 표기된 듯하다.
산천은 산내라고 불렀던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산내는 곧 산과 물이 흐르는 시내가 있다는 의미도 있다.
음수는 이 마을 뒷산에 갈마음수혈의 명당이 있다는 풍수지리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아름다운 조망과 풍경에 한참을 머물며 쉬어가는 시간이다.

 

등로 우측 앞으로는 오늘 새벽 어렵게 포터 트럭을 타고 작은 싸리재로 올라 온 운주계곡이 제법 깊은 모습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다.

여름이면 두어번 가족들과 들렸던 곳이기에 낯설지는 않지만 어둠속에 오르다 보니 지금 내려다 봐도 새로운 계곡처럼 다가 온다.

그 운주계곡 저 멀리 보여야 할 대둔산과 계룡산쪽을 살펴 보지만 기온이 올라가며 박무로 인해 시야가 매우 제한적이다.

운주계곡 좌측으로는 올라야 할 금강정맥 마루금이 보일듯 말듯 애간장을 태우며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렇게 한동안 그 전망바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배낭 메고 출발을 하는데 이제 등로 우측의 금남정맥 마루금 위로 붉게 하늘이 물들어 오고 있지만 일출이 시작되려면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할 듯 보여 전망바위를 떠난다.

잠시 철쭉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등로를 타고 여유롭게 걸어 진행을 하니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평이한 등로로 이어진다.

그러다 다시 나타나는 바위봉은 좌측 우회 등로로 이어지지만 우측 바위봉으로 오르니 이제 우측 금남정맥 마루금 위에는 더욱 붉게 물들어 오는 하늘이 이제 조만간 일출이 시작될 것 같은 그런 분위기이다.

 

약간의 박무로 인해 벌써 올랐어야 할 일출이 아직도 시작되지 못하기에 다시 천천히 출발을 하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눈길은 자꾸만 우측으로 돌아간다.

낙엽깔린 등로를 따라 미끄러지지 않토록 주의하며 걸어가니 등로는 큰 고도차이 없이 어르락 내리락 진행이 되고 등로 옆에 곱게 피어 있는 철쭉이 새롭게 시작하는 맥 잇기 산행의 어려움을 달래주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큰 어려움 없이 진행하다 보니 갑자기 활엽수 나뭇가지 사이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고 좁은 시야각에도 불구하고 잠시 연두빛 나뭇잎이 없는 곳에서 아쉬운 아침 일출을 맞이해 본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오르니 더욱 둥글게 떠 오른 태양이 새로 태어난 연두빛 잎사귀를 뚫고 아름답게 떠 올라 잠시 발걸음 멈추고 다시 담아 본다.

다른곳과 달리 소나무는 거의 보이지 않는 활엽수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이제 간간히 등로 위에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후 좌측으로 운암산 갈림 삼거리를 지나지만 특이한 표식이 없어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해발고도 700.8미터인 칠백이고지 이정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그 스텐레스 스틸 이정판 옆에는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보인다.

칠백이고지는 전라북도 완주군의 고산면과 운주면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00.8미터이다.

왕사봉과 운암산 등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있으며 고산천과 장선천은 만경강과 금강의 분수계를 이루는데 칠백이고지란 지명은 산의 고도에서 유래되었다.

실제 산의 높이는 700.8미터이지만 702고지로 부르며 산의 북쪽인 충남 지역에는 한국전쟁 당시의 전투를 기념하기 위한 육백고지전승탑이 있다.

 

칠백이고지를 지나자마자 억새가 자랐던 넓은 공터를 지나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른다.

낙엽 깔린 참으로 부드러운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에 갑자기 거대한 역암이 나타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시멘트를 섞어 놓은듯 아니면 자갈과 모래가 섞여 있다가 돌이 된듯한 그런 모양이다.

예전에 이곳도 바다였다가 융기되어 산이 되었는지도 모를 그런 바위의 형상이다.

 

다시 등로를 타고 걸어가다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고산면 소향리쪽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고 그 앞쪽으로는 봉수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고산면 소향리는 본래 고산군 동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병합에 따라 소향리 대향리 운하리 운룡리 신상리 오룡리와 북하면의 용암리를 병합하고 소향리라 하여 전주군 삼기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고산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안남은 그 지세가 기러기가 남쪽을 향하여 날아가는 듯 해서 생긴 이름이라 하고 장덕은 오룡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상은 용암 위쪽에 새로 생겼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고 가사는 안남 남쪽에 있는 마을이며 오룡은 안남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앞 내에서 5마리의 용이 등천하였다 하고 용암에는 용바우가 있다.

그곳을 지나 계솟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앞에 거대한 칼바위가 나타나고 그 칼바위를 조심하며 통과해 진행을 해 본다.

 

그 칼바위 능선을 지나 오르니 여전히 등로 위엔 많은 바위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 진행하니 다시 등로는 낙엽진 부드러운 등로로 변하고 있다.

큰 고도차이 없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봉수대산 가는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지만 이곳 역시 잘 분간이 안되는 갈림 삼거리이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진행하니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등로 좌측 저 앞으로 아름다운 암봉이 줄지어 달리고 있는 써래봉 능선이 멋지게 조망되기 시작한다.

시간이 충분하고 홀로 걷는 시간이라면 한번쯤 다녀오고 싶은 곳이지만 오늘은 가야 할 거리가 제법 먼 길이기에 그저 눈으로만 그 아름다움을 확인해 본다.

 

등로 좌측으로는 경천면 경천리 마을 계곡이 내려다 보이고 그 경천계곡을 가우데 두고 좌측은 봉수대산이 우측으로는 써래봉이 우뚝하다.

그 경천리 골짜기 저 멀리에는 하얀 안개가 밀려 와 그 아래 보여야 할 마을을 하얀 안개속의 미지의 세계로 숨기고 있다.

경천리는 본래 고산군 운동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경천리 오북리 대석리 죽림리 성가리 오봉리를 병합하고 경천리라 하여 운동하면에 편입했다가 1935년 운주면에 편입한 마을로서 1966 10 26일 운주면에 경천출장소를 설치하고 1989 4 1일 운주면의 3개리(용복리, 가천리, 경천리)를 편입하여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생각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조금씩 발걸음이 느려지고 있다.

 

그렇게 그곳 바위 전망대에서 봉수대산과 써래봉을 조망하며 걸어가니 585봉에 도착을 하는데 앞서 진행하던 종주대 한명이 그 봉우리 정상에 누워 잠시 솟아지는 잠을 달래고 있다.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하다 허기가 지기 시작하고 적당한 장소를 물색해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하기로 한다.

생각보다 무더운 날씨에 조금씩 말목재까지 진행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시작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585봉 지나 다시 나타나는 암봉을 넘으니 방금 전 지나 온 585봉이 바로 지척에서 멀어지기 시작하고 등로 좌측 뒤 저 멀리 호남알프스의 운장산과 연석산 자락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오래 전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있던 계절에 홀로 오르며 고생도 했지만 그 아름다운 등로에 반해 다시 한번 들리겠다고 약속해 놓고 아직 들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산줄기를 바라 본다.

등로 좌측 바로 앞에는 여전히 봉수대산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앞으로 한번쯤 다시 내려와 여유롭게 저 봉수대산을 오르며 오늘을 추억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또 다시 나타나는 바위 등로를 따라 오르니 앞으로 올라야 할 써래봉 능선으로 이어지는 금강정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다가오고 있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에 있는 해발고도 660미터의 산으로 변화무쌍한 암릉지대에서 만끽하는 산행의 진수 써레봉은 노령산맥의 제1고봉인 운장산을 정점으로 한 진안 고원지대의 서북쪽과 대둔산의 남서쪽으로 뻗은 자락에 이루어진 숨은 산이다.

이 때문에 본래의 아름다운 절경에도 불구하고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써레는 농기구의 하나로 이 산의 끝이 뾰족뾰족한 써레발 같다하여 써레봉이라 불린다.

산행의 기점이 되는 구제마을에서 신흥마을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흥골 계곡은 맑은 물과 수려한 주변환경이 서로 어울려 여름철 피서지로 각광 받기 시작하였고 가을의 단풍 또한 아름다운 곳이다.

써레봉 정상의 변화무쌍한 암릉지대의 험하고 스릴이 넘치는 등산코스는 흥분과 함께 산행의 진수를 맛보고도 남는다. 주변에 대둔산, 천등산, 선야봉, 봉수대산 등이 빽빽이 둘러서 있고 멀리에는 운장산, 연석산, 금산의 진악산까지 첩첩산중을 이루고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곡선을 가진 금남기맥 마루금이다.

 

가야 할 써레봉 갈림봉까지의 아름다운 금강정맥 마루금을 조망한 후 나타나는 또 다른 암릉을 넘으니 일렬로 줄지어 늘어선 멋진 활엽수 등로가 이어진다.

등로 좌측 앞으로 계속 나타나는 써레봉을 조망하며 걸어 진행하니 작은 돌탑봉이 있는 선녀남봉인 665봉에 도착을 한다.

등로 좌측으로 써레벙의 암봉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이 이 산객의 마음을 사로 잡지만 오늘은 포기하고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출발을 해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써레봉의 암봉이다.

이곳 역시 언젠가는 꼭 한번 더 올라 앞으로 있을 선녀봉과 연계해 한번 더 올라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 시간이 되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너무 아름다운 써레봉의 암봉이다.

 

다시 써레봉 갈림 삼거리를 지나 아름다운 철쭉꽃을 바라보며 걸어 진행하니 등로는 부드러운 등로로 변해 있다.

예쁜 철쭉꽃을 친구 삼아 걸어가니 선녀봉 갈림 직전 무명봉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우측 우회 등로로 이어진다.

잠시 그 무명봉으로 올라보니 소나무와 철쭉나무가 정상을 차지하고 있어 조망이 없기에 다시 내려 와 선녀봉 갈림 분기봉으로 걸어간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가니 넓은 공터 위에 잡목이 자라고 있는 곳에 작은 돌탑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우측으로 선녀봉 가는 갈림 삼거리이지만 어느곳에서도 아무 표식이 없어 아쉽기만 하다.

이 선녀봉은 나무꾼이 선녀탕에서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 슬그머니 옷을 감춘 것이 인연이 되어 선녀와 백년해로하고 아이까지 낳아 서로 사랑하고 행복한 생활을 해오다가 어느날 선녀의 옷을 그 아내에게 내어 주었더니 그 옷을 입고 하늘나라로 날아가 버렸다는 나무꾼과 선녀의 애달픈 사연을 담은 설화의 본고향인 완주에 있는 해발고도 665.9미터의 산이다.

완주군 운주면 고당리 용계천의 호젓한 계곡의 선녀탕과 선녀봉이 바로 이 주인공의 보금자리였다.

이 산은 바로 서쪽의 숲속의 빈터라고 불리는 내궁동계곡 건너편 금당리의 선녀봉(666봉)과 마주보고 있는 고당리의 선녀봉으로 봉우리의 생김새가 마치 처녀가 잉태한 모습과 같다하여 선녀봉이라고도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하늘과 땅밖에는 보이지 않은 이곳 두메산골이기에 과연 선녀와 나무꾼이 만나 오붓하게 사랑을 속삭일만도 한 곳이다.

 협곡지대라 홍수가 날 때 소 장수가 소를 몰고 이곳을 지나다가 소가 그만 계곡 소(연못)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자 괴물이 나타나 소를 잡아 먹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선녀봉은 운주에서 용계원과 활골을 거쳐 고당리로 가는 도중 탄형성으로 갈라지는 3거리 못 미치는 곳에 위치하여 길 건너 북쪽의 천등산, 서쪽의 대궁동계곡 건너의 금당 선녀봉, 동남쪽의 선야봉, 남쪽의 칠백이고지 등 사방 높은 산으로 둘러 싸인 비좁은 곳으로 암벽 사이로 흐르는 시원한 계곡물과 함께 오염되지 않은 주위의 환경이 뛰어나게 아름다우며 이곳은 등산보다는 가을단풍의 경승지로서의 탐방객이 더 많이 몰려든다.

꼭 한번 들려 선녀와 나뭇꾼에 관한 이야기도 다시 한번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본다.

 

선녀봉 갈림 삼거리 공터에서 잠시 쉬며 종주대를 기다리니 금새 모두 모여 이제 다 함께 좌측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해 본다.

잠시 내려가다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어렵게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저 멀리 용계재로 이어지는 평이한 등로가 보이고 그 끝자락에 용계재 지나 우뚝 솟아 있는 불명산이 생각보다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올라와야 한다며 벌써 종주대에게 겁을 주고 있다.

이제 등로 우측으로는 천등산과 대둔산이 아련히 다가오고 그곳에서의 추억 역시 아스라히 떠 오르기 시작을 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등로 우측의 천등산을 다시 한번 바라 본다.

몇 년 전 겨울 하얀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천등산에 올랐다 무척 고생하며 그 정상은 가지도 못하고 내려온 안타까웠던 시간을 생각해 본다.

천등산은 해발고도 707미터의 산으로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산인데 완주군 운주면의 대표적인 산은 대둔산이다.

대전과 전주를 잇는 17번 도로를 사이에 두고 대둔산 남쪽에 솟아 있는 천등산은 산의 규모나 생김새에서 대둔산의비교가 되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사람이 붐비고 코스가 속속들이 알려져 속세의 때가 진하게 묻은 대둔산이고 보면 천등산의 호젓함과 깔끔함은 찾는 이들에게 독특한 산행경험을 준다.

더구나 정상일대의 능선은 암릉이어서 조망도 좋고 암릉타는 맛도 각별하여 산행시간 동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등 천등산의 매력은 한두가지가 아닌데 산의 둥그스럼한 모습과는 달리 곳곳에 너덜지대와 단애가 있는 천등산은 그래서 화끈한 산으로의 인상을 오래 남긴다.

하산지점인 산북리위쪽 대둔산 상가지역에는 대둔산 온천이 있어서 온천산행을 겸할 수 있는 것도 천등산의 매력이다.
천등산은 대체로 동서로 뻗어 있는 산이기에 따라서 산행코스도 동서로 이어지고 있다.

전주방향인 서쪽의 장선리에서 동쪽으로 산행하여 정상에 온 뒤 약간 남북 능선을 타다가 다시 동서능선으로 들어서서 하산하면 산북리 고산촌이다.

고산촌에서 대둔산 온천은 5 Km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조만간 다시 한번 그 정상에 올라 이곳 금남기맥 마루금을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래 본다.

 

그렇게 주위 풍경을 즐기며 내려가다 등로 좌측을 보니 이제 저 멀리 멀어져 가는 써레봉의 삼형제 바위가 봄으로도 당당하게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나 온 등뒤로는 방금 전 내려온 선녀봉 갈림봉과 써레봉 갈림봉이 저 멀리 강렬한 햇살을 받아 희미하게 멀어지고 있다.

그 옆 바위 전망대에서 다시 한번 시원하게 조망되는 천등산도 바라 본다.

 

참으로 아름다운 써레봉 삼형제 바위이다.

이곳 기맥 산행만 아니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한번쯤 다녀오고 싶었던 써레봉이기에 아쉬움이 더욱 크다.

다음에 반드시 내려 와 저 삼형제 바위를 오르며 이곳 금강정맥 마루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그 기회가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이겠지만 말이다.

 

다시 그 전망바위를 지나니 바위 너덜길이 짧게 이어지고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낙엽속에 주의를 해 본다.

내려갔다 오르니 바위에 둘러쌓인 소나무 한그루가 치열한 삶의 현장을 보여주고 무명봉을 지나 다시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계속해 본다.

그렇게 한동안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용계재 넘어 올라야 할 불명산이 드높게만 다가온다.

 

다시 평이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또 다른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 부드럽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금새 사각정자가 서 있는 비포장 임도의 용계재에 도착을 해 잠시 사각정자에서 쉬어 가기로 한다.

용계재는 완주군 운주면 금당리와 경천면 가천리를 이어주는 비포장 임도인데 사람 왕래는 많지 않은듯 하지만 임산물을 나르기 위한 목적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는 고개처럼 보인다.

 

용계재에서 잠시 쉰 후 다시 불명산으로 오르기 위해 간벌된 지역을 타고 오르는데 벌써 머리 위에서 솟아지는 햇살이 뜨거워 여간 어렵지 않다.

잠시 더 오르다 등로 우측을 보니 그곳에 경천면 가천리의 마을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그 뒤 저 멀리 선녀봉 줄기가 다음에 다시 만나자 인사를 건네고 있다.

본래 고산군 운동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천리 오상리 만석리 구재리 요동 동향동 시우동 묵방리를 병합하여 가천리라하여 운동하면에 편입했다가 1935년 운주면에 편입돤 마을이다.

1966 10 26일 운주면에 경천출장소를 설치하고 1989 4 1일 운주면의 3개리(용복리, 가천리, 경천리)를 편입하여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구재는 구마하전혈이 있어 아홉 재상이 나올 터라 하고 교항에는 앞내에 다리가 있었으며 신흥은 옆에 신흥사라는 절이 있었다.
원가천는 가천리의 지명을 취한 마을로 법정 리명과 구분하기 위하여 원을 덧붙였고 요골은 옆골의 변한 말이고 신그렝이는 신을 걸어 놓고 팔았다 한다.

동향동은 욧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시우동은 욧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주막뜸에는 주막이 있다.

 

그렇게 다시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간벌된 오르막 등로를 오르니 굵은 땀방울이 등로로 쉴새없이 떨어지고 그렇게 오르다 힘이 들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뒤돌아 보니 그곳에 환상의 풍경이 펼쳐져 있다.

방금 전 올라오기 시작한 용계재가 저 아래 산자락에 숨어 있고 그 넘어 선녀남봉으로 이어지는 지나온 금강정맥 마루금이 너무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아 잇고 그 좌우측으로 써레봉과 선녀봉이 호위하듯 서 있다.

 

그렇게 조금 더 오르니 벌목지대가 끝이나고 잡목속으로 들어가니 그나마 조금은 살 것 같다는 느낌이다.

계속 가파른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등로가 좌측 사면 등로로 이어지고 아무 생각없이 그 등로를 따르니 불명산 정상이 아닌 좌측 안부로 오르게 된다.

그 안부에서 다른 종주대 한명과 함께 올라 홀로 배낭 밧어 놓고 불명산 정상을 올랐다 사진 몇장 남기고 다시 내려온다.

원 등로는 불명산으로 올랐다 그 불명산 정상을 넘어 진행을 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없이 도착한 안부에서 불명산 정상을 넘지 않고 직진의 화암사 방향이 정상 기맥 등로로 생각하고 진행했기에 잠시 후 약간의 알바를 경험하게 된다.

 

화암사가는 안부에서 나머지 종주대를 기다렸다 잠시 더 휴식을 취하고 화암사 방향으로 내려가니 키 작은 산죽 등로가 펼쳐져 있고 뚜렷한 등로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뒤 따르던 종주대들이 소리를 치며 다시 올라오라 이야기를 전한다.

이제서야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닭고 트랙을 살펴보니 정상 등로는 불명산 정상으로 이어져야 하는 등로이다.

에구 힘들게 내려갔던 등로를 다시 올라 결국 불명산을 두번 오르는 시간이 되었다.

불명산은 전주에서 17번 국도를 대둔산 방향으로 25 Km쯤 가다가 용복리 주유소에서 오른쪽으로 꺾어서 동상골을 지나 4.5 Km를 달려 주차장에서 오를 수 있다.

심산유곡을 방불케하는 불명산은 시루봉을 중심으로 장선리재와 용계재사이에 반달형태로 여러개의 산봉우리를 이루고 울창한 숲속에 쌓인 남쪽산기슭에는 천년고찰 화암사를 안고 있다.

주차장에서 15분 쯤 오르면 철계단길과 폭폭, 암벽들이 조화를 이루어 찾는 이를 반긴다.

큰비가 내린 후에는 20m 높이에서 내려꽂히는 큰 폭포와 여기저기 작은 폭포들이 생겨나며 협곡은 정오에 햇빛이 들다가 바로 그늘지는데 여름엔 시원한 피서지로 이름나 있다.

불명산 초입에서부터 사시사철 풍경이 다른데 봄철은 개나리와 산벚꽃, 여름에는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녹음, 가을엔 온산이 붉게 물든 만산홍엽이, 겨울에는 은백의 설경이 산행의 백미를 느끼게 한다.

무더위에 참으로 어렵게 진행하는 금강기맥 첫 구간이 되고 있다.

 

불명산 정상에서 추억 한장 다시 남기고 바위를 넘어가니 거대한 암봉이 앞을 가로막아 우측으로 우회하며 그 암봉을 넘어 간다.

그 암봉을 넘어 내려가다 잠시 잡목이 사라진 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아직도 가야 할 마루금이 저 멀리 멀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초록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산천이 있어 그 고통을 감내하며 걸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다.

 

멋진 조망을 즐긴 후 다시 진행을 하니 산죽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나즈막한 언덕을 올라 완만하게 걸어가니 묘지터였다가 이장을 했는지 공터같은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겨 본다.

다시 출발해 진행하다 지도를 살펴보니 이곳이 445봉으로서 흙묘라 되어 있는데 보기에는 묘지가 이장이 되었는지 묘지 같은 모습은 아닌듯 하다.

그 흙묘를 지나 진행하니 다시 연두빛 활엽수가 새잎을 피우 아름다운 등로를 만들고 있다.

 

445봉 흙묘를 지나 아름다운 활엽수 등로를 따르니 다시 내려갔다 완만하게 올라 무명봉을 통과한다.

약간의 바위들이 산재해 있는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하산길 300미터와 출입금지 안내판이 바닥에 떨어져 있고 계속 내려가니 녹음이 우거지는 등로 앞 저 멀리 앞으로 올라야 할 427.6미터 전망봉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옆에 녹슨 안테나가 있는 봉에서 잠시 쉬면서 부족한 식수를 위해 운주 택시에 전화를 해 말골재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진행하기로 한다.

잠시 물 한모금 더 마시고 내려가니 등로 좌측으로 화암사 하산 갈림 삼거리가 나타나고 그 하산 방향을 사진에 담고 계속 걸어 내려가 본다.

 

잠시 내려갔다 다시 오르니 바위봉이 나타나고 그 바위봉을 넘어 평이하게 진행한다.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새로운 잎새가 돋아나며 조망이 없어 조금은 지루함을 느낄쯤 갑자기 하늘이 열리면서 시루봉이란 봉우리에 삼각점이 나타난다.

삼각점에는 해발고도 423미터라 적혀있지만 지도상에는 427.6봉이라 되어 있는 시루봉에서 잠시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을 한다.

 

그곳 시루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니 낙엽 등로가 나타나고 무명봉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다시 이어지고 있다.

아름다운 등로를 따라 무심으로 걸어가니 한동안 더 내리막 등로가 이어지더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조망 하나없이 걷기 좋은 등로를 따르니 바로 눈 앞에 올려다 보이는 무명봉은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을 해 보는 시간이다.

 

우측 우회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등로 바로 앞으로 비포장 임도가 나타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드디어 장선리재이다.

장선리재는 완주군 운주면에 있는 장선리란 마을에서 유래된 듯한 이름으로 넓은 비포장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장선리는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상장리 주장리 거척리 마치리 덕동 용평리를 병합하고 장선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되었는데 1935년 면명이 운주면으로 바뀌었다

원장선(중장-바깥장선과 상장-안장선)은 이의 명칭을 취한 으뜸 마을이고 중장 상장 등은 장선을 위치에 따라 구분한 마을이며 덕동의 덕은 터 또는 언덕의 고어다.

가척리(가자리)뒤에 있는 장선리재가 마치 자로 그은 것처럼 곧아서 생긴 이름이라고도 하고 가재형국이라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월당(월촌-당재, 재실뜸)은 월촌과 당치에서 한 자씩 취한 분리된 이름으로 월촌은 들 가운데 떨어져 있어 건너뜸이고 당치에는 전에 당집이 있었다.

뒷산 기슭에 부여서씨의 재실이 있어 재실뜸이라고도 한다.

중촌(용평)은 장선리 가운데에 있는데 들 가운데 있어 벌뜸이라고도 하며 장이 선다.

내촌(안뜸)운주장터 동쪽 안에 있는 마을을 부르는 이름이다.

 

장선리재 비포장임도를 가로질러 보이는 능선을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평이한 등로가 열리더니 가끔씩 바위 구간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힘들게 오르니 잠시 잡목 사이로 등로 우측의 천등산이 아주 가깝게 보이고 그 앞에 장선리 마을이 고요하게 내려다 보인다.

천등산은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에 있는 해발고도 707미터의 산으로 대둔산도립공원 공원관리부서에서 관리를 하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주군 운주면에서 산북리와 배티재를 넘어 금산으로 빠지는 17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북쪽이 대둔산이고 남쪽이 천등산인데 행정구역상 전북 완주군 운주면 장선리와 산북리에 위치하고 있다.

후백제를 세우기 위해 견훤이 돌을 쌓아 전주성을 치려는데 연못속에서 용이 닭 우는 소리를 내니 산신이 환한 빛을 발하여 앞길을 밝히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데서 그 이름 천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천등산은 대둔산 못지 않은 기암절벽을 자랑하는 한편 짙은 숲이 어우러진 돔형의 암릉으로 구성된 산이며 예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져온 대둔산의 명성과 그늘에 가려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근에는 천등산이 산행의 최적지로 등산객들에게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의 산악인들이 찾고 있는 산이다.

산은 온통 큰 덩치의 골산으로 이루어지고 계곡과 계곡에는 절벽과 폭포 그리고 바위사이를 뚫고 나오는 소나무들로 하나의 거대한 산수화 작품이 가득한데 특히 가을엔 암봉과 암벽사이의 단풍으로 겨울엔 흰눈에 덮인 거대한 은빛 바위와 계곡에 활짝 핀 설화 등으로 길손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어려운 중에도 멋진 풍경을 바라볼 수 있음에 감사한 시간이다.

 

천등산과 장선리 마을을 구경하며 오르니 온 몸에선 다시 굵은 땀방울이 쉴새 없이 등로를 적시고 있다.

그렇게 잠시 더 오르니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더니 바위가 산재한 등로도 보인다.

잠시 산재된 바위지대를 지나니 눈 앞에 거대한 암봉이 가로막고 주의해 그 암봉을 오르니 거대한 바위 전망대 역활을 하고 있다.

그곳 전망바위에서 잠시 지나 온 금강정맥 마루금을 뒤돌아 보니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는데 저 멀리 써레봉과 그 갈림봉에서 이곳 전망바위까지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등로 좌측으로는 경천면 가천리와 경천리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한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가천리는 본래 고산군 운동하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가천리 오상리 만석리 구재리 요동 동향동 시우동 묵방리를 병합하여 가천리라하여 운동하면에 편입했다가 1935년 운주면에 편입된 마을이다.

1966 10 26일 운주면에 경천출장소를 설치하고 1989 4 1일 운주면의 3개리(용복리, 가천리, 경천리)를 편입하여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신흥골 구재는 구마하전혈이 있어 아홉 재상이 나올 터라 하고 교항에는 앞내에 다리가 있었으며 신흥은 옆에 신흥사라는 절이 있었다.
원가천은
천리의 지명을 취한 마을로 법정 리명과 구분하기 위하여 을 덧붙였다. 

요골은 옆골의 변한 말이고 신그렝이는 신을 걸어 놓고 팔았다 하며 동향동은 욧골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시우동은 욧골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주막뜸에는 주막이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 이름이고 유래이다.

 

등로 우측의 천등산과 대둔산도 구경하며 잠시 휴식을 취하지만 뒤따라 오던 종주대가 보이지 않아 이제부터 홀로 조금은 빠르게 진행을 해 본다.

그 전망바위를 지나 다시 평이하게 걸어가니 무명봉이 나타나고 선답자들의 띠지가 많이도 걸려있다.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철쭉꽃이 반겨주고 이제부터 칼바위 능선같은 험악한 바위 능선이 기다리며 산행 속도를 현저히 줄이고 있다.

 

거대한 칼바위 암봉을 닮아 있는 등로를 타고 걸어 진행을 하니 등로 좌측으로는 천길 낭떨어지 같은 그런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소나무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 한번 지나온 금남기맥 마루금을 살펴 본다.

바로 밑에 장선리재를 지나 가파르게 솟아 오른 불명산이 우뚝하며 용계재로 내려 앉았다 다시 완만하게 올라 저 멀리 써레봉과 성제봉이 멀리 올려다 보인다.

 

다시 이어지는 칼바위 능선을 타고 조심스럽게 천천히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마루금이 펼쳐져 있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조금씩 변해가는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 보며 걸어가니 커다란 바위능선이 계속 이어지고 등로 좌측으로도 여전히 천길 낭떨어지가 이어지고 있다.

잠시 더 진행하다 등로 좌측 앞을 살펴보니 475봉에서 등로 좌측으로 갈라져 자세를 낮추는 아름다운 등로 하나가 눈길을 사로 잡는데 지도를 살펴봐도 어느 능선인지 이름조차 없다.

계속 이어지는 바위 능선을 타고 진행하니 소나무봉을 지나 낙엽이 수북한 안부를 지나 다시 바위 등로를 타고 가파르게 오른다.

잠시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오르니 봉우리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에는 해발고도 465미터의 능바위산과 미륵산동봉이란 종이코팅지가 나뭇가지에 달려 있다.

능바위산(476.4봉) 일명 능암산은 완주군 경천면 가천리에 있는 산으로 전주에서 대둔산을 가다 보면 석장마을 뒤로 커다란 암봉이 눈에 띈다.

능바위산의 우뚝 솟은 바위들은 옛날 농의 채처럼 켜켜이 포개져 절벽의 층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농처럼 생긴 바위라는 뜻에서 농바위라 불렀으며 이것이 능바위로 바뀐듯 하단다.
476.4미터의 능바위산은 두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고 능암산과 미륵산 및 와룡산이라고도 불리며 대동 금남정맥을 이어주는데 특히 서쪽과 남쪽은 천길 낭떠러지며 바위들을 켜켜이 쌓은 것처럼 보여 신기하다.

특히 이 바위들 사이에 자라는 노송과 나무들은 능바위산의 색다른 면을 보여준다. 
두 암봉 가운데 서쪽 봉우리가 주봉이며 사방 어느 쪽에서 올라도 매우 험하고 가파르고 또한 서봉과 동봉 사이는 깊은 잘록이를 이루고 있어 두봉우리 사이를 오르내리는 것도 상당히 힘이 든다.

 

그 능바위산 또는 미륵산 동봉을 지나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이제부터 올라야 할 서쪽 암봉이 바로 코 앞에 나타나고 금새 낙엽이 깊이 쌓인 바위 안부에 도착을 해 그 안부를 지나 다시 바위 능선을 타고 어렵게 올라 본다.

바위를 타고 다시 많은 땀방울을 흘리다 보니 어느새 반대 암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잠시 방금 전 지나온 능바위산 또는 미륵산동봉을 살펴보니 바위봉우리에 연두빛 자연이 채색되어 너무나 아름답게 다가온다.

 

등로 좌측 저 멀리 장선리재를 지나 구제리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인다.

본래 고산군 운동상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구제리 백석리 수치리 수청리를 병합하고 구제리라 하여 운선면에 편입됨. 1935년에는 면명을 운주면이라 한다.

수청은 앞 냇물이 맑아 생긴 이름이라 하고, 빼재는 수청에서 충남으로 넘어가는 고개 이름으로 고개에 뾰족한 바위가 솟아 있어 빼재라 한다.

원구제(구더리, 귀덕리) 또는 묵방리(먹뱅이. 먹방리)의 백석 구제 마을을 구덕리라고도 한다.

덕은 터라는 말이니 구덕은 옛터의 뜻이고 이곳에 예전 운제현 자리이므로 그래서 생긴 이름일 것이다. 차도개기는 부근에 차돌이 많아 생긴 이름이고 묵방리에는 전에 먹을 만드는 먹방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잠시 등로 좌측을 살펴보니 남쪽으로 흐르는 나즈막한 산줄기 지나 저 멀리 힘들게 두번이아 올랐던 불명산이 벌써 저 멀리 멀어지고 있다.

 

지나온 능바위산 또는 미륵산 서봉을 바라보고 좌측 저 멀리 금강정맥도 살펴보며 천천히 진행을 하니 연전히 등로는 바위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그 바위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오르니 금새 해발고도 476.4미터인 능바위산 또는 미륵산 서봉에 도착해 흐르는 땀방울 식히며 후미를 기다리는 동안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이제 내려가면 말골재이니 말목재까지 언제 갈 수 있을지 조금은 걱정이 되는 시간이기에 가다가 힘이 들면 말골재에서 산행을 중단하는 것도 고려를 해 본다.

 

먼저 등로 남쪽에 솟아 있는 바위 전망대로 올라 그쪽 방향을 살펴보니 남서쪽으로 말골재와 이어지는 17번 지방도로와 구제리가 아름답게 내려다 보이고 그 지방도로 좌측 저 멀리 봉수대산이 아련히 멀어져 있다.

그 봉수대산 좌측으로는 쎄레봉이 톱날형태로 올려다 보이고 그 좌측으로는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금강정맥 마루금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약간의 박무로 인해 시원한 조망이 없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위 풍경을 살펴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물 한모금 마시며 준비한 과일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고 있으니 종주대가 도착을 하는데 모두가 말골재에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하자고 해 제일 후미를 남겨두고 홀로 빠르게 먼저 내려가 애마를 회수해 오기로 한다.

등로는 진행 방향으로 미륵산서봉 정상 직전 우측의 가파른 내리막 등로로 내려가며 이어가야 하기에 길주의 구간이기도 하다.

낙엽 깔린 미끄러운 급경사 내리막 등로를 타고 아주 조심하며 내려가니 바로 아래 말골재에서 산행을 종료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발걸음도 가볍다.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라 낙엽에 미끄러지지 않토록 주의하며 내려가니 두 다리에 전해오는 무게감이 남다르고 잠시 더 내려가 자갈 너덜길을 지나니 등로가 완만해지며 진행하기에 어려움이 사라진다.

이제 여유를 가지고 우거진 잡목을 헤치고 내려가니 무명 묘지를 지나 멋진 소나무들이 반겨주는 아름다운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을 하는 시간이다.

이제 소나무와 잡목이 함께 공존하는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벌써 차량소음이 들리기 시작하고 오늘 산행 날머리인 말골재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인지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평이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등로 옆에 파란 철조망이 묻혀있고 그 구간을 지나자 마자 17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말골재에 도착을 한다.

말골재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과 경천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17번 2차선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고갯마루로서 고개 정상부는 왕복 6차선이 깔려있다.

미륵산 서봉에서 내려오며 운주택시를 불렀기에 말골재에 도착을 해 배낭 정리하며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다보니 금새 택시가 도착을 하고 그 택시를 타고 말목재로 가 애마를 회수 해 다시 말골재로 뒤돌아 오니 50여분이 걸렸다.

나머지 종주대들이 모두 내려 와 그늘에서 쉬고 있어 모두 태우고 경천저수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이곳에서 유명한 붕어찜으로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말골재에서 경천면을 지나 경천저수지 방향으로 올라가니 이곳 근처가 고향인 인연님이 자주 들렸다는 산수장가든에서 붕어찜을 시켜 놓고 샤워장으로 이동해 차가운 지하수로 샤워를 하니 이제사 온 몸의 기운이 다시 돌아 오며 높아진 기온으로 힘들게 진행한 하루가 마무리 된다.

시원하게 샤워 후 경천저수지가 보이는 야외에서 맛난 붕어찜으로 허기를 달래며 원기를 보충하니 이 세상 모두가 내 것이 되었고 남부럽지 않았던 시간이 되었다.

 

하루의 어려움을 달래며 맛있게 식사를 즐겼던 완주의 명물 붕어찜이다.

붕어 자체보다도 함께 삶아 먹는 씨래기가 더욱 맛있게 느껴졌던 식사로서 생각보다는 좋았다는 생각이다.

요즈음 기맥 산행 완주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비슬지맥까지 오르다 보니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아직까지 몸에는 큰 이상이 없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대동금강정맥 첫 구간 산행의 완주를 자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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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