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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 및 종주산행/호남알프스(완료)

호남 알프스 (구봉산, 운장산, 연석산) 산행 후기

by 칠갑산 사랑 2008.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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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호남 알프스(구봉산과 운장산 그리고 연석산) 종주 산행

소재지 : 전북 진안군 주천면과 정천면 그리고 전북 완주군 동상면 일대

산행일자 : 2008년 1월 12일 (토요일)

날씨 : 새벽에 비와 진눈개비, 오전에 눈, 오후에 맑았으나 박무

온도 : 영하 4도에서 영상 3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전북 진안군 주천면 윗왕명 마을 구봉산 주차장-안부-쉼터-제 1봉과 제2봉 사이 735봉 삼거리-제2봉-제3봉-제4봉-쉼터-제5봉-제6봉-제7봉과 제8봉은 우회-쉼터-돗내미재 (천황암 갈림길)-산죽밭-협곡 오르막-구봉산 정상(1002봉, 제9봉)-865봉-자루목재 사거리-복두봉(1018봉)-1087봉-각우목재-915봉-운장산 동봉(1124봉)-운장산 상봉인 중봉(1126봉)-상여바위-피암목재 갈림길-운장산 서봉(1123봉)-안부 사거리-만항재-연석산 정상(928봉)-금남정맥 분기점-마당바위-병풍바위 갈림길-베틀바위-연석사-전북 완주군 동상면 사봉 연동마을

산행거리 : 약 18 Km(도상거리)

산행시간 : 약 11시간(구봉산과 복두봉에서의 러쎌로 많은 시간 소요 및 알바 1 시간 이상)

교통이용 : 갈때-운전수 딸린 자가용

             올때-전주 콜택시 (25,000원, 전주에서 고속버스로 대전까지 이동)

 

 

너무나 많이 내린 눈과 러쎌로 힘들었지만 환상의 설국에서 설화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눈 하루

 

 

주말에 예정된 대전행, 어느 산을 다녀올까 고민하다 대전 근교 산은 모두 가 보았기에 산꾼들에게 조금씩 이름이 회자되고 있는 호남에서 가장 험준하면서도 아름답다고 소문난 호남 알프스 종주 계획을 세워 본다. 다만 송광사에서 부터 시작하는 호남 알프스 최장 종주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루에 다녀 올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해 본다.

 

윗양명 마을 앞에 위치한 구봉산 주차장에서 새벽에 바라본 눈 내리는 구봉산 원경

인터넷에 들어가 자료 준비하고 종주 산행 후기를 꼼꼼히 체크하면서 다녀올 3산(구봉산, 운장산 그리고 연석산)에 대한 개별 자료도 하나 둘 준비해 본다.다만 한가지 눈 내린 겨울에 그 먼  산행을 홀로 한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이고 고민이지만 이왕 세워 놓은 계획을 포기할 수 없어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다시 전날부터 내리는 비와 눈 예보로 인해 마음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만 간다.

 

구봉산 정상에서 바라 본 운해속의 산행 들머리 윗양명 마을과 지방도로 그리고 눈 덮힌 산하들 

1월 11일 금요일 저녁, 좀 일찍 대전으로 내려가 간단히 반주 한잔 한 다음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5시 기상하여 산행에 필요한 식사와 간식 그리고 필수 품목 챙겨 운전수 태워 진안으로 향한다.비는 구적구적 내리고 과연 산행은 가능할지 고민이지만 라디오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영동지방의 폭설 상황을 전해 들으며 경험상 고산지대에 오르면 비 대신 눈이 올것이란 예상으로 그냥 출발한다.

 

용담댐 지나 운일암반일암과 구봉산 갈림길 이정표  

자가용으로 출발하는 교통편도 확인하였으나 도착하여 확인해 보니 인터넷에 올린 그 분의 교통편은 남쪽에서 올라오는 길이였기에 대전에서 내려가는 본인에게는 불필요하게 많은 거리를 주행한 것 같다.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무주 IC에서 나와 진안으로 진입하였으나 도로변 이정표를 보니 금산이 바로 코앞이라 대전에서 금산을 지나 진안으로 이어지는 725번 지방도로를 통해 내려 왔다면 최소 한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었으리란 예상이다.

아무튼 날씨가 좋았으면 더 일찍 내려가 구봉산 정상에서 떠 오르는 일출을 생각했지만 일기가 불순하고 더군다나 홀로하는 산행이기에 날이 밝은 후 오르기로 마음먹으니 이제 들머리로 가는 길이 편해진다.가는길에 보니 평지엔 비가 내리지만 약간 높은 고갯마루를 지날때는 진눈개비가 내리고 구봉산이 가까워 올수록 눈의 비율이 높아진다.

 

구봉산 주차장에 서 있던 운장산, 구봉산 등산로 안내도

용담댐을 돌아 운일암반일암과 갈리는 삼거리에 세워진 구봉산 이정표를 따라 조금 더 주행하니 어둠속에 넓은 구봉산 주차장에 자가용 한대만 달랑 세워져 있다. 이 시간 아침 7시 36분, 아직도 밖은 어둠에 묻혀있고 잠시 생각해 본다. 저분도 산행을 위해 새벽같이 이곳으로 달려 왔을까 생각했지만 다른 목적으로 오신듯 잠시 후 등로엔 하얀 신세계가 펼쳐져 있고 아무 흔적도 발견할 수 없으며 이 산객만 외로이 그 흰 세상에 발자욱 남기고 있다.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뒤돌아 본 윗양명 마을 입구쪽 임도 길과 민가들

주차장에서 들머리 찾기 어려워 여명이 밝아오는 아침에 잠시 주차장에서 애마를 몰고 나와 들머리 찾아 헤매는데 동네 아주머니 두분이 나오시길래 물어 봤더니 친절하게 답해 주시며 이런 굿은날에 무엇이 그리 좋아 산에 오르냐며 안전 산행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으신다. 고마운 분들이다. 

이곳에서 잠시 더 머물며 눈 내리는 아침, 밝아오는 여명에 더욱 멋진 실루엣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구봉산 원경을 간신히 한장 찍은 후 애마를 돌려 보내고 힘차게 포장된 윗양명마을의 넓은 임도를 따라 7시 50분 산행을 시작한다.

 

임도 따라 오르다 양명교를 건너 이 띠지들이 나풀거리는 지점에서 우측 능선으로 진입

집 몇채가 주위에 있고 양명 다리를 건너 다시 민가쪽으로 직진하여 진행하니 우측 묘지있는 급경사 오르막쪽으로 많은 띠지들이 비에 젖어 흐느적 거리며 방향을 알려준다.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오르자 이내 낙엽에 쌓여 있는 확실한 등로가 보이며 진눈개비에 젖은 돌 계단이 반긴다.

 

능선길 초입에 낙엽 쌓여 있는 돌 계단

이곳에서 잠시 쉬며 우비등 비에 대비해 완전무장한 산행복장을 모두 치우고 눈 산행에 대비한 간편 차림으로 가볍게 갈아 입는다. 다만 이곳에서 귀마개를 잃어 버려 이날 하루 많은 고생은 하였지만.

조금 더 오르자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눈이 등로에 가득 쌓여 있고 온세상을 밝게 비추는 듯 하다. 하지만 지난번 내린 눈이 따뜻한 날씨에 녹으면서 그 위에 오늘 내리는 눈이 덮혀 등로는 무척 미끄럽다. 안전에 온 신경을 쓰며 조심하여 오르니 더욱 진한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처음 맞이하는 눈 쌓인 나무 의자가 반겼던 쉼터

약 30여분 올라 처음 벤취3개가 놓여 있는 쉼터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 취하며 조망해 보지만 내리는 눈과 앞을 분간하기 조차 힘든 안개가 질투하듯 온세상 감추고 단지 희미하게 앞으로 진행해야 될 좁은 등로만 보여주고 있다.

 

오를수록 설국의 설화가 환상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다시 발걸음 재촉하여 오르자 이제부터 환상의 설화가 피어나며 종주 산행을 위해 오른 마음 바쁜 산객의 발걸음을 자꾸만 붙잡기 시작한다. 그저 환상이란 단어와 신비스럽기까지 하다는 감정뿐 무심의 마음으로 새하얀 순백색의 등로 위에 나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오르는 기분이란 너무나 황홀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설화와 산하에 그저 감사하는 마음뿐

8시 30여분 제1봉과 제2봉 사이의 첫 삼거리에 도착하여 온세상을 시시각각 변해 놓고 있는 눈과 아름다운 구봉산의 절묘한 조화를 음미하며 흐르는 땀을 닦아 본다. 이곳에서 잠시 안개가 걷힌 틈을 타 바라보니 우측으로 제1봉이 서 있고 좌측으로 가야 할 제2봉이 보인다.

 

눈 덮힌 봉우리 정상에 서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마음을 흔든다

오늘은 조망이 없고 눈이 내려 위험하다는 생각에 제1봉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작은 돌탑이 있는 제2봉을 로프에 기댄채 오른다. 여기에서 물에 약한 디카를 애인 다루듯 조심하며 몇장의 사진을 추억으로 남기고 산행 들머리인 주차장과 마을의 풍경도 담아 본 후 이제부터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해 본다.

 

눈 내리는 날 위험한 로프 암릉 구간을 지나지만 마음만은 최고이다

다시 로프를 타고 잠시 내렸다가 다시 가파른 길을 로프에 몸을 의지한채 오르니 곧바로 제3봉이 기다리고 뒤돌아 올라온 제2봉을 바라보니 박무에 모습만 희미하게 윤곽을 보여줄 뿐이다. 다시 로프 암릉길을 조심하여 내려가니 설국의 아름다움이 발길 붙잡고 그 비경을 뿌리치고 다시 암릉을 타고 오르니 갈림길이 나온다.

 

이 시간에만 보고 찍어 남길 수 있는 비경중의 비경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 상양명 주차장에서 1.5 Km 올랐고 구봉산 정상까지 1.2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고 사진 한장 남긴채 철봉과 로프가 달려 있는 눈 덮힌 암릉 구간을 조심하며 오르니 제4봉이다. 그 암릉 구간을 넘자 환상의 설화가 등로 양쪽에 펼쳐져 있고 가운데 등로엔 나만을 위한 하얀 양탄자가 깔려 있다.

 

설화 터널에 하얀 양탄자를 깔아 놓아 푹신한 등로, 미지의 신세계가 펼쳐진다

어렵게 올라왔지만 보이는 광경만으로도 행복하고 만족감이 밀려 온다. 그렇다고 여기에서 주저 앉아 있을 수 없기에 수북히 쌓여 있는 하얀 눈 위에 발자국 남기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본다.

 

두번째 나무의자 쉼터

다시 갈길 재촉하여 제4봉을 내려오자 나무의자 세개가 눈에 덮힌 채 주인을 기다리는 쓸쓸한 풍경을 만들고 있다. 눈을 치울 생각도 없이 잠시 의자에 앉아 영화나 사진에서 봐왔던 멋진 장면을 생각하곤 홀로 하는 산행의 묘미와 함께 아쉬움을 남겨 본다.

 

바위 사이에 자란 잡목 가지위에 피어난 예쁜 설화

다시 눈 내리는 등로를 따라 조심해 진행하니 날등으로 이뤄진 제5봉과 이정표가 보기에도 아찔한 위용을 보이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하여 제6봉까지 넘으니 안부에 닿는다. 너무나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머리 가득 하얀 눈을 이고 한폭의 풍경화를 그리고 그 옆 절벽엔 또 다른 잡목 위에 이 세상 최고의 설화를 만들어 나풀거리고 있다.

 

바위 틈으로 끊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소나무 솔잎 위에도 흰 세상이 열리고

또한 절벽에 매달려 끊어질듯 이어져 가는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도 애처로이 지나는 산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잠시 마음주어 사랑도 해 본다.

 

제7봉과 제8봉을 우회하기 위해 좌측으로 조금 내려가자 하얀 세상이 열리고 

다시 깍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암릉의 제7봉과 제8봉을 남쪽 사면에 세워진 철봉과 로프를 타고 조심하여 넘으니 다시 멋들어진 소나무들이 잘생긴 모습으로 설경에서 맛볼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건네준다.

 

혼자 보고 감상하기에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던 순간들

이제 위험한 암릉길이 잠시 끝나고 키 작은 산죽들이 양 어깨에 무거운 눈송이 이고 양쪽에 도열하여 지나는 산객이 움직일때 마다 축포를 쏘듯 한아름의 눈 다발을 뿌려대고 있다.

 

아직은 소담하게 다가오는 눈내린 산죽 길

아직까지는 산죽에서 뿌려주는 이런 축포가 기분을 업시켜 주지만 잠시 후부터 이것이 오늘 산행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다. 너무나 소담스럽고 아름다워 종주 산행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가끔 잊어버릴 정도로 신비롭고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구봉산 오름길에 가장 위험했던 직벽 빙판 계곡 길

조금 더 진행하니 천황암(저수지)으로 내려가는 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고 자세히 살펴보니 상양명 주차장에서 2.3 Km올라왔고 구봉산 정상까지는 0.5 Km 남았다는 표시이다. 이제보니 이곳이 돗내미재, 일명 칼크미재라고도 불리우는 고개로서 좌측으로는 천황암을 거쳐 다시 상양명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하산길이고 우측으로는 절벽을 타고 구봉산 정상인 제9봉으로 이어지는 등로이다.

 

계곡 오름길에 석순처럼 자라 직벽 바위에 붙어 버린 거대한 고드름

계속 이어지는 100여 미터 산죽밭을 지나니 좌측에 거대한 암봉을 두고 가파른 된비알이 시작된다. 거대한 암벽 전체가 고드름을 매달아 빙벽을 이루고 한쪽에선 동굴속의 석주와도 같은 거대한 고드름 기둥이 솟구쳐 있으며 그 사이로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가까이 가 살펴보니 고드름 속이 비어 있고 그속으로 눈이 녹아 흐르는 소리가 귓전에 울리면서 갑자기 고독감과 외로움이 밀려온다. 거대한 자연 앞에 너무나 작아진 내 모습에 잠시 놀란다.

 

직벽 마지막 구간까지 이어진 위험했던 로프 구간

발끝엔 이제 눈이 아닌 빙판을 이루고 올라가야 할 위쪽을 바라보니 굵은 로프 하나가 눈에 덮힌채 단단한 나무 줄기형상으로 허공에 떠 있다. 문든 왜 이런 날씨에 이런 곳을 올라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또 다른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목덜미에 식은 땀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손에 잡은 로프에 힘이 가해진다.

 

구봉산 정상 직전 삼거리 갈림길에 서 있던 이정표

무척 위험하고 지루한 직벽의 오르막을 오르자 능선길이 나타나며 좀 더 진행하자 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다. 상양명과 구봉산 정상 그리고 복두봉으로 이어지는 종주길을 가리키는 이정표이다. 20여미터 더 올라 드디어 구봉산 정상인 천황봉에 닿는다.

 

눈 덮힌 구봉산 정상 풍경

이 시간 10시 24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 앞으로 좀 더 속도를 내야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부터 고난과 고생의 연속되리라 그 누가 상상이나 했으며 멋들어지고 정취 있게만 보아 왔던 산죽이 그렇게나 미워지리라 또 그 누가 생각이나 했으리.

 

구봉산 정상에서 셀프 디카 작동시켜 간신히 사진 한장 남기고

정상에 오르자 인적도 자취도 흔적도 없이 외롭게 작은 이정석이 넓은 정상 한가운데 덩그런히 눈속에 파뭍혀 있고 북쪽과 서쪽으로 두개의 의자가 기다리는 주인대신 소리없이 쌓여가는 많은 눈을 주인삼아 그 빈공간을 채우고 있다.

간신히 셀프 디카를 작동시켜 인물 사진 한장 건지고 남쪽을 바라보니 올라온 상양명 마을과 지방도로만이 흐미하게 그 윤곽만을 보이고 있고 그 외 보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구봉산 정상에서 바라본 지난 온 능선상에 핀 설화

안타까운 마음에 자료를 찾아 보니 청명한 날씨에 이곳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 가야 할 복두봉과 운장산이 시원스럽게 펼쳐져 있고 동북쪽으론 아름다운 용담호와 그 너머 덕유산 자락의 백두대간 마루금이 시원스레 이어져 있으리란 설명이다.

 

조망을 대신해 마음을 달래주던 설화 

또한 남동쪽으로는 옥녀봉과 금남호남정맥을 이루고 있는 부귀산과 그 너머 지리산의 반야봉과 천황봉이 가물거린다는 자료에 그저 아쉬움만 토로하고 있다. 잠시 파아란 하늘이 열리면서 덕유산 자락 위로 맑은 하늘이 나타나지만 그 아래 운해에 숨어 있는 장쾌한 덕유산 자락은 전혀 보여줄 기미가 없다. 다만 지나 온 구봉산 자락에 피어 있는 환상의 설화가 조금은 아쉬운 마음에 위안을 주고 있다.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며 

잠시 휴식 취한 후 북쪽에 서 있는 이정표 한장과 상양명 방향의 운해를 디카에 담고 올랐던 길 뒤돌아 내려가 새하얀 설국의 설화에 취해 어떻게 산행을 했는지 조차 가물거리는 시간을 만들어 본다. 눈길 주는 곳이 천국이요 마음을 주는 곳마다 사랑이 피어나는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을 받으며 혼자 그 길을 걷고 있음이 다시 안타까움으로 변한다.

 

서서히 눈에 쌓여 있는 산죽이 산행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10시 44분, 구봉산 정상에서 0.3 Km 지나왔고 복두봉까지 2.4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다시 키 작은 산죽밭에 피어 있는 설화를 털어내며 온몸을 적시니 어느새 다시 0.3 Km를 더 지났다는 이정표가 고드름을 매달고 찬바람을 이겨내고 있다. 온 세상이 하얀게 변해 버린 순수한 세계에서 내마음에 남아 있는 조그만 욕심과 사심을 버리고 깨끗하게 씻으려 노력해 보지만 얼마나 지속될지.

 

 

이제 11시가 넘으며 다시 나타나는 산죽 밭 오름길에서 준비한 간식과 빵으로 허기 때우고 완만한 능선 오르자 하얀 산죽 밭에 산객이 지나 온 등로만이 파아란 잎새를 나풀거리며 그 무거운 눈 털어냈다고 고마워 하는 듯 하다. 능선에 오르자 다 떨어져 나간 이정표가 하나 서 있지만 그 마저도 오래된 나무 위에 적어 놓아 겨울 모진 풍파에 할퀴고 썩어 들어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하기 힘들다.

 

알바하며 얻은 최고의 선물 설화 2

많은 띠지들이 붙어 있어 아무 생각없이 확실하게 나 있는 좌측 등로를 따라 갔다가 40여분 알바 후 다시 제자리로 뒤돌아 와 종주 길을 잘 찾았지만 다시 한번 우매한 본인을 책망해 본다. 갈림길에서 준비한 지도 한장 아니 산행기 한번 확인했어도 불필요한 시간 낭비는 없었을 것을.

하지만 그 예기치 못한 알바로 인해 천상천하에 잊지 못할 설국의 설화와 사랑을 나눴으니 아마도 그 설화와의 사랑을 위해 잠시 알바를 자청하지나 않았을까 자위도 해 본다. 이제 쌓여 있는 눈이 발목을 지나 무릎 근처까지 빠지고 그 길을 럿쎌하며 진행하려니 힘은 두배가 아니라 열배로 더 들고 체력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

 

솔잎에 피어난 설화도 찍어 보고

다시 조금 전 봤던 이정표에 뒤돌아 와 물 한모금 마시고 있으려니 아뿔사 이번 산행엔 식수를 너무 적게 가져온 느낌이다. 산행 하기 전 아침에 음료수 한병 사들고 올라 온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그냥 올라왔기에 가져온 식수는 단지 500 미리 리터, 뜨거운 물 1리터와 복분자 원액 200미리를 가져는 왔지만 왠지 불안하다. 정 식수가 모자르면 뜨거운 물에 눈을 녹여 마시기로 하고 다시 옳바른 길 찾아 빠르게 진행해 본다.

 

눈 덮힌 산죽 통로를 뚫고

하지만 등로에 서 있는 소나무와 솔잎에 쌓여 있는 눈이 다시 갈길 자제시키고 눈 앞에 가야 할 길에 쌓여 있는 상처 하나 없는 눈길이 다시 산객의 속도를 줄이고 있다. 그래도 빠르게 전진하니 복두봉 1.0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시간은 이제 11시 50여분을 지나고 있다.

서서히 종주에 대한 회의가 들면서 마음은 급해지지만 환상의 설화와 등로를 가득 메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밭이 바쁜 마음을 자제 시키는 형국이다. 이제부터 산죽에 쌓여 있는 눈과의 전쟁이다.

 

이런 산죽 밭도 뚫고

우비를 쓰고 방수 방풍의를 입었지만 점점 키가 커져가는 산죽에 쌓여 있던 눈들이 지날때마다 한움큼씩 떨어져 몸속으로 파고 들고 차가운 기운을 느낄 겨를도 없이 시야를 가리면서 등로 자체를 열어주지 않고 있다. 평소 같으면 금새 지났을 산죽 지대를 눈을 털고 등로를 찾아 조금씩 진행하다 보니 하염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너무 힘들어 눈 위에 누워 셀프 디카로 한장 추억을 만들고

너무나 힘들어 잠시 산죽 밭이 끝나는 지점에서 셀프 디카를 작동시켜 사진 한장 찍어 보지만 눈이 녹아 흐르는 빗물에 젖어 들고 찬바람에 자꾸만 밧데리에 이상 신호가 들어 온다. 밧데리를 빼내 건조된 손수건으로 닦고 몸속에 넣어 따뜻하게 만든 후 간신히 사진 한장 건지고 평탄한 길을 걷는가 싶으면 어김없이 이제는 내 키보다도 더 큰 산죽밭이 눈 내린 종주길의 어려움을 제대로 알려 주고 있다. 

 

나무 벤취 쪽에서 바라 본 눈에 쌓여 있는 복두봉 정상 전경

콧바람의 강도는 세어지고 발걸음은 달라붙는 눈덩이와 �아지는 눈송이들로 인해 모래주머니 찬 기분으로 체력 저하가 심각함을 감지한다. 그래도 해 왔던 산행의 구력으로 밀어 붙히니 어느새 복두봉 정상이다.

눈이 소복히 쌓여 있는 바위 위에 찬바람 이기며 작은 정상 이정표가 외롭게 서 있고 조심하며 올라 입맞춤 한 후 그 바로 아래 바라보니 조용히 나뭇가지에 걸려 있는 태극기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정상에서 바라 본 이정표 및 벤취

이곳도 역시 정상 이정표 바로 아래 공터에 산객이 쉴 수 있도록 이정표 옆에 의자가 놓여 있고 그 위엔 어김없이 하얀 눈이 소복히 쌓여 있어 모진 한겨울 찬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이곳에서도 단지 아쉬움이 잇다면 환상의 조망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자료를 찾아 보니 북으로는 운일암반일암 계곡을 감싸고 있는 명도봉과 명덕봉이 멀리 대둔산과 함께 보이고 동으로는 무주 적상산이 아련하단다. 적상산에서 오른쪽으로 아홉개의 봉우리가 연꽃 모양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지나온 구봉산과 그 너머로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백두대간 덕유산 마루금이 신기루처럼 산객의 시선을 끌었으리라.

 

조망대신 산객의 마음을 흔들고 있던 태극기

남으로는 직벽에 가까운 내림길을 시작으로 원시림에 가까운 갈거계곡 건너 섬바위 능선을 넘고 옥녀봉과 부귀산 만덕산 줄기를 타고 금남호남정맥의 산릉들이 일렁이는 파도처럼 시원스럽게 놓여 잇으리라. 서쪽으로는 가야 할 운장산 능선이 꿈틀거리는 용의 등처럼 힘차게 이어진다는데 보이는 것이 없기에 안개속의 미로처럼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첫번째 만난 임도에서 뒤돌아 보면서 찍은 내려온 나무 계단

이곳에서 우측 낭떨어지 같은 하산길은 원시림을 이루고 있으며 여름철 피서 산행지로 각광을 받을만한 갈거리 계곡이고 좌측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내려오니 이곳에서 부터는 산행하기 좋은 하산길이다. 산죽도 많지 않고 오르막도 없기에 20여분만에 운장산, 구봉산 등산로 안내도가 서 있는 첫번째 임도에 내려 선다.

 

첫번째 임도에서 찍은 등산 안내도

잘 정비된 나무 계단 타고 내려오니 많은 이정표가 달려 있으나 이 역시 오래된 나무에 새겨진 글씨라 알아 보기 쉽지 않아 지자체의 관심이 필요로 하는 산객의 마음만 남겨 둔다. 이 넓은 임도에도 지나간 흔적 없이 흰눈만 쌓여 있고 물 한모금 마신 후 임도 따라 우측으로 약 50여 미터 내려가니 다시 나무 계단을 타고 운장산으로 향하는 산행 들머리가 잘 정비되어 있다. 

 

이 길 지나오기 직전 저 큰 나무 근처에서 좌측으로 90도 꺽어 진행해야

이곳부터는 산죽대신 무릎까지 빠지는 등로에 쌓여 있는 깊은 눈밭으로 완만한 오르막 능선길이 체력을 잡아 먹고 간신히 무명봉을 넘자 가꾸지 않아 다 허물어지는 묘 한기 옆에 아름다운 소나무 한 그루가 눈을 맞아 멋드러진 자태를 뽐내고 서 있다. 

길을 잘못 들은지도 모르고 이곳에서 잠시 휴식 취한 후 넓은 모래밭 위에 쌓여 있는 눈길의 신기한 촉감을 느끼며 눈덮힌 송림속으로 들어가니 이름모를 산새들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정겨운 겨울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얼마를 걸어 내려갔을까, 기분이 이상하고 등로가 희미해져 다시 뒤돌아 올라와 휴식 취했던 묘지를 지나 무명봉에 오르자 띠지 하나가 오라오던 길 좌측으로 나풀거리고 있다.

 

알바중인줄도 모르고 저 소나무 옆에서 여유자적 쉬고 있었으니 ㅎㅎㅎ

아뿔사, 임도에서 올라오며 럿쎌하느라 힘이 빠졌는지 우측으로 90도 꺽이는 등로도 확인 못하고 그냥 지나쳐 묘지 앞에서 휴식을 취했던 것이다. 다시 이곳에서 약 30여분 알바로 시간 보내고 정상적인 종주길 찾아 빠르게 내리막길 내려간다. 하지만 조금 못가 다시 산죽이 발길 붙잡고 지난번 내린 눈이 얼어붙어 칼처럼 날카로운 산죽잎을 조심하며 진행하니 하염없이 시간만 잘도 잡아 먹고 있다.

 

바위 너덜로 이뤄진 1087봉에서 잠시 휴식 취하며

얼마를 올랐을까, 힘에 부치고 다리에 힘이 빠졌다고 생각되는 시기에 무명봉이 나타나며 바위 너덜 정상을 이루고 있다. 가운데엔 묘지인지 오뚝한 봉이 하나 있고 그 옆 바위에 걸터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해 본다. 아마 이곳이 1087봉 정상인 듯 한데 주위에 보이는 것이 없기에 확신을 할 수는 없다.

 

묘 한기 직전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 잡목 위에 피어난 설화

그러고 보니 오늘 구봉산과 복두봉에 오르는 산객은 없는가 본다.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까지 단 한명의 산객도 만나지 못하고 발자국 하나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하기사 이 눈구덩이 속에 산에 미치지 않고서야 제정신으로 오를 사람이 그 누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서운한 마음은 서운한 마음이다.

우거진 산죽 밭을 헤치고 내려가자 이번엔 칼날 바위 등로가 나타나고 이곳이 정말 종주길이 맞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위험하다 느껴지는 구간이다. 지도를 꺼내 살펴보니 분명 맞는 길이며 자세히 살펴보니 띠지들이 나풀거린다.

 

평소 같으면 전망 바위 구실을 하겠지만 눈내린 오늘은 위험 암릉 구간이다

조심하며 사진 몇장 남기고 미끄러운 바위를 통과하자 밀림을 지나는 짐승의 모습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산죽 밑을 기어 통과하니 넓은 공터가 나오면서 다시 묘 한기가 서 있다.

그 묘를 지나 등로 찾기조차 힘든 산죽밭으로 다시 기어 들어가 조금 진행하자 갑자기 하늘이 보이면서 자연의 눈과 산죽 그리고 잡목이 빗어낸 이 세상 최고의 설경이 펼쳐져 있다.

 

지날 때 너무 힘든 산죽길이지만 지나기전엔 이렇게 아름다운 모습이다

지나가면 그 멋진 설경을 파괴하는 것 같아 지나 가기가 미안할 정도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물에 젖어 있는 디카를 조심하여 꺼내 간신히 몇장의 작품을 건지고 그곳을 지나 한없이 이어지는 산죽 내리막 길을 내려간다.

 

복두봉과 운장산을 경계 짓는 눈 내리는 각우목재

오후 2시 30분, 드디어 구봉산과 복두봉 산행의 종료를 알리고 운장산으로 접어드는 각우목재 임도에 내려 선 것이다. 처음 산행 할때의 예상 시간을 약 3시간 이상 넘긴 시간이다. 이곳에서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남아 있던 간식과 과일로 허기 달래고 사진 몇장 남긴 후 임도 따라 우측으로 약 20여 미터 내려간 곳에 나 있는 운장산 들머리로 발길을 돌린다.

 

복두봉에서 각우목재로 내려오던 하산길

이곳에서 잠시 많은 갈등을 하기도 해 본다. 머리에서는 자꾸만 각우목재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다음 기회에 다시 와 남아 있는 구간을 살펴보자 하지만 몸과 발길은 자꾸만 운장산 들머리로 향했던 것이다. 이곳에서 10여분 휴식 후 다시 가파른 된비알 올라 운장산을 향해 GO GO를 외쳐 본다.

 

각우목재에서 운장산 동봉 오름길에도 이런 산죽밭은 계속 이어지고

이제 목구멍에서도 헉헉 바람소리 세어지고 콧물인지 빗물인지 비릿한 물기가 자꾸만 입술을 적시고 있다. 정말이지 힘든 오르막 된비알 올라 능선에 닿자 여러 갈래의 가지를 사방으로 뻣어내린 소나무 가지 사이로 시원한 바람이 불며 운장산 동봉이 박무속에 희미한 실루엣을 보여주고 있다.

 

능선에 올라 늦은 점심을 먹으며 찍은 희미한 운장산 동봉 원경

오후 3시 5분, 새벽에 일어나 정성스럽게 준비해준 옆지기의 점심으로 이 세상 최고의 시간을 가지며 식사 도중 바람의 흔들림에 보였다 사라지는 지나온 마루금과 올라야 할 운장산 동봉을 사진에 담아 본다. 하지만 다시 생각지도 못했던 산죽이 온몸 적시며 발길 더디게 만들고 작은 무명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동봉이 눈앞에 다가서지만 이곳에서 다시 한번 종주의 갈림길인 빙벽이란 복병을 만난다.

 

운장산 동봉 오름길에 뒤돌아 본 1087봉에서 각우목재로 이어진 마루금

보기에도 아찔하고 무리하게 오르기엔 너무나 위험해 보이는 구간, 가느다란 로프 하나 의지하여 오르기엔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그곳이기에 조심하여 가까이 가 보니 그 로프도 나무나 바위가 아닌 얼음 덩어리에 임시로 매달아 놓은 것이다. 잠시 고민하다 몇번이나 확인한 후 조심하여 오르기로 결정한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평범햇을 암벽 암릉 구간이 빙벽을 이루며 겨울 산행의 예기치 못한 어려움을 몸소 알려주는 듯 하다. 온 신경 집중하며 그 난관을 극복하자 천상의 세계가 반갑게 맞이해 주고 잠시 엷어지는 박무를 틈타 사진 몇장 구한다.

 

동봉 오름길 빙벽 암릉 구간을 지나 바라본 남쪽 마을 전경

다시 능선길 따라 오르니 내처사동으로 하산하는 갈림길이 나오고 운장산 0.7 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서 있다. 이 이정표를 보니 동봉이 100여 미터 전방인가 보다. 동봉에서 중봉가지의 거리가 0.6 Km이니 말이다. 동봉이 바로 눈 앞이기에 이 이정표의 표식은 아마도 중봉을 뜻하며 이곳에서 동봉까지는 0.1 Km 남았음을 알수 있다.

 

내처사동 하산로 갈림길 이정표, 이곳부터 많은 발자국과 등로의 길이 뚜렷이 나 있다

이곳에서 부터는 등로에 많은 발자국이 남아 있고 등로 양편에 서 있는 키 작은 산죽은 앞서 달려간 산객들이 털어 놓은 눈으로 새파란 잎새 본래의 모습으로 싱그럽게 지친 이 산객을 맞이해 주고 있다.

 

운장산 동봉 이정석

눈 앞에 우뚝 솟아 있는 동봉에 오르니 시간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다. 이곳에서 약 30초간 처음으로 반짝이는 햇살을 받으며 이정석과 운무에 쌓여 있는 지나 온 마루금과 가야 할 중봉과 서봉을 바라 본다. 정상에서 약 5분 여 휴식 취하며 지나온 길과 가야할 길을 잠시 상념에 잠겨 본다.

 

운장산 동봉에서 바라 본 가야 할 중봉과 서봉이 안개속에 숨어 있다

오늘은 조망을 주지 않는 대신 환상의 설국에서만 피어나는 신비스런 설화로 아쉬움 달래주려나 보다고 생각하고 다시 확실하게 나 있는 등로 따라 이제부터 정말 빠르게 진행하니 금새 운장산 정상이며 상봉인 중봉에 안착한다. 오후 4시 25분.

 

운장산 상봉인 중봉의 삼각점과 벤취

금남정맥에 자리잡은 최고의 전망대이자 진안고원에 우뚝 솟아 있는 운장산, 하지만 보이는 것이 없기에 아쉬움만 커지고 있다.북두칠성의 전설이 담겨 있는 칠성대를 지나 주출산에서 운장산으로 산 이름의 변경을 초래한 송익필이 은거 했다는 유래를 간직하고 있는 오성대가 있으나 자세히 살펴 볼 수 없는 운해가 야속하기까지 하다.

또한 북으로 대둔산과 계룡산이 동으로는 덕유산 국립공원의 장쾌한 백두대간 마루금이 남으로는 진안의 명산인 마이산이 보인다는데 서봉에 도착하면 어두워져 오는 날씨와 운해로 인해 더욱 시야가 좁아질 듯 하여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날씨가 좋았다면 저 넘어 백두대간 마루금이 이어지고 있는 장쾌한 덕유산 자락이 보일텐데

이곳에는 삼각점과 작은 정상 이정표가 있고 또한 나무 의자 두개가 양편으로 앉아 있다. 배낭 내려 잠시 휴식 취하며 동봉에서 내려온 마루금 따라 사진을 찍고 가야할 서봉과 마루금 그리고 정상 옆에 서 있는 중계탑을 디카에 담은 후 다시 출발하여 암릉과 암벽으로 이뤄진 가파른 서봉에 도착하니 오후 4시 44분이다. 오성대를 찾아 보지만 아쉽게도 운해에 파묵혀 있어 확인이 어렵다.

 

운장산 서봉에 있던 벤취, 이 앞쪽으로 피암목재 및 내처사동으로 하산하는 등로가 있고 저 벤취 뒤로 연석산으로 이어지는 종주 코스가 있다

피암목재와 내처사동 하산길을 알리는 이정표를 뒤로 하고 묘 한기를 넘으니 병아리 형태의 바위가 서봉 앞을 지키고 그 바위를 뒤로하여 암릉 오르니 서봉 이정석이 반갑게 맞이해 주고 사진 한장 남긴 후 뒤돌아 내려 와 나무 의자 뒤로 나 있는 연석산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확인해 본다.

 

운장산 서봉 이정석

이곳에서도 잠시 갈등하며 준비한 지도를 꺼내 시간 체크해 보니 내처사동으로 탈출할 경우 1시간 30분 정도 걸리고 연석산을 거쳐 연동마을까지는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리리란 예상이다. 한시간을 더 산행하여 종주를 완주하자는 마음이 앞섰기에 주저 없이 연석산으로 이어진 나무의자 뒤로 나 있는 등로를 타고 이제부터 가파른 하산길을 서두른다.

 

칠갑산이 이름 붙힌 서봉 앞 병아리 바위

하지만 가파른 하산길이 더욱 무섭고 힘들줄이야. 키큰 산죽이 나무 등로 양편에 무거운 눈을 이고 산객의 발걸음에 맞춰 한움큼의 눈덩이를 날려 길 막고 또한 너무나 가파른 내리막에 눈과 얼음이 뒤덤벅이 되어 있어 천길 낭떨어지 모양으로 전혀 속도를 낼 수가 없다. 그래도 조심하며 급경사 내리막과 산죽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하자 저 멀리 밑에서 올라오는 두명의 산객을 처음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그분들은 송광사에서 시작하여 밤 12시 경 구봉산을 넘는다니 처음 내가 하고자 했던 호남 알프스 최장 종주를 눈 내린 오늘 타는 것이다. 너무나 부럽고 진한 두분 친구의 우정에 감동하면서 서로에게 지나 온 등로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고 조심 당부하며 무사 완주를 빌어 준 후 헤어져 어두워져 오는 등로를 하염없이 걸어 본다.

 

연석산 오름길 암릉 위에 자라고 있던 소나무 한 그루

이곳은 구봉산과 복두봉에 비해 눈도 적게 내렸고 많은 산우님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럿쎌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기에 체력이 많이 소진된 시점이지만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본다. 

오후 5시 20여분, 그래도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다른 산우님들의 산행기에서 봤던 소나무도 찍고 바위틈에 자라고 있는 잡목들도 구경하며 등로도 확인하니 다시 파아란 빛을 띠고 있는 산죽이 이제껏 봐왔던 본래의 모습 그대로 반겨준다. 가끔 후레쉬에 의존하여 설화도 담고 솔잎에 덮혀 있는 눈송이도 담아 보며 약간의 여유를 뒤찾아 본다.

 

오늘 마지막 봉인 연석산 이정표가 어둠속에 빛나고

다시 완만한 등로 따라 마지막 힘 솟아내니 드디어 오늘 마지막 봉인 연석산 정상이다. 이 시간 오후 5시 50분.잠시 쉬며 사진 찍고 어두워져 오는 하루를 마감하며 남아 있는 과일 비우고 재빨리 하산길로 접어 든다.

다만 해발 1000여 미터에 달하는 높이와 동으로 전주와 맞닿을 정도로 우뚝 솟아 오른 형세 그리고 정상에서의 뛰어난 조망으로 각광 받고 있으며 금남정맥을 잇는 주요 기점으로 더욱 사랑 받아 온 산이기에 어둠속에 묻혀 있는 연석산 정상에서의 하산길이 아쉬움을 남긴다.언제 다시 한번 좋은 날씨에 올라 연석산의 진면목을 바라 보리라 마음 먹어 본다.

 

연석산 정상에서 봤던 마지막 산죽 위 눈송이들

북릉과 남릉 두 갈래의 길중에 좀 더 짧은 남릉길을 택해 약 200여미터 내려오자 금남정맥 갈림길이 나타나고 이정표를 확인한 후 우측으로 지루한 하산길을 헤드렌턴 불빛에 의지하며 내려오니 계곡 물소리가 좌측에서 들리고 잠시 다가가 물 한모금 마신 후 모든 것 잊고 하산만을 생각해 본다.

지루한 마지막 바위 너덜길을 원없이 내려오니 서서히 불빛이 보이며 우측으로 연석사 불빛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몇마리의 강아지가 낯선 산객의 발자국 소리에 시끄럽게 짓어대고 평온한 밤공기를 가르자 가슴이 답답해져 오며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왜 아름다운 산사에서 이런 강아지를 길러 조용한 풍경소리 대신 시끄러운 소리로 대신할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며 마지막 임도 따라 내려오니 연석산 등산로 종합안내란 이정표가 서 있는 연동마을에 무사히 안착한다. 

 

연동마을로 다 내려와 서 있던 연석산 등산로 종합 안내판

이 시간 오후 6시 54분, 알바 포함하여 정확히 11시간의 어렵고도 힘든 산행을 마감하며 추워지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 재빨리 옷 갈아 입고 동네 아저씨에게 전주나 진안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해 보나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한다.

전화를 이용하여 전주 콜택시에 부탁하여 택시를 부르고 잠시 할머니 혼자 지키고 있는 연석산 슈퍼에 들려 막걸리 한잔 마시고 전주로 들어 와 저녁 9시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대전으로 귀가하니 밤 10시 30분이다.

 

정성스럽게 점심 준비해 주고 운전까지 해준 옆지기에게 감사하며

새벽 5시 30분에 출발하여 밤 10시 30분까지 총 17시간 동안 길고도 힘들었던 하루를 마감하며 뿌듯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니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일요일 아침 햇살이 조용히 아침 잠을 깨운다. 

언제 다시 산우님들 모시고 좀 더 좋은 날씨에 멋들어진 호남 알프스 종주를 꿈꾸며 길었지만 아름다운 설화와 사랑에 빠졌던 하루를 추억으로 접어 둔다.

 

2008년 1월 12일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