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맥산행(완료)/영암지맥(금오.완)

영암지맥 제1구간 분기점에서 다람쥐재까지 산행후기

칠갑산 사랑 2021. 11. 16.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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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김천시와 성주군 및 칠곡군의 영암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일자 :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새벽에 짙은 안개와 추위가 있었으나 오전부터 맑고 박무로 시야간 제한되었고 약간은 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하 02도에서 영상 16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김천시 남면 월명2동 상릉길 시멘트 포장도로(사과 과수원과 축사)-상릉길 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로프 오르막 등로-563 산불감시초소봉(금오지맥 접속)-552 영암지맥 분기점 봉-도드람양돈서비스-머루고개(부상길 1차선 포장도로)-370.4봉(이정판)-이동통신탑-운봉고개(운봉길 2차선 포장도로)-묘지들-원형철조망-무명 묘지들-561.3 삼각점봉 갈림삼거리-561.3 삼각점봉(이정판, 판독불가 삼각점)-갈림삼거리 복귀-원형철조망-무명 묘지들-472.7봉(이정판)-435 잡목 무명봉-미륵암 갈림삼거리-급경사 내리막 등로-시멘트 포장도로-905번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LIG 넥스원-명성정경 버스정류장(갈림삼거리)-월명교(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 통과)-월명리(성모의집) 버스정류장(월명성모의집 갈림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천주교 대구대교구 월명성모의집(월명성모의집 버스정류장)-시멘트 포장도로-신거리재(능선진입, 인공수로)-313 노거수와 무명묘지봉-447.8 바위지대 조망-623 참나무 무명봉-631봉(이정판)-전망바위-현위치 이정목 8(732봉)-바위암릉-영암산 북봉(784.7봉, 이정판) 이정표(영암산정상 400 m, 보손지 2.0 Km, 부상리 2.4 Km)-바위로프구간-암릉로프구간-무명안부-781 무명바위봉-로프등로-영암산(791.7봉, 정상석2개, 이정목7, 영암산 등산로 종합안내도, 벤취쉼터1)-계단 3개-안전목책과 로프등로-위험구간 우회등산로 안내판-암릉로프구간-위험구간 안내판 이정표(보손지 2.75 Km, 영암산정상 350 m)-쓰러진 이정표(영암산 등산로입구 2.08 Km, 영암산 등산로정상 0.39 Km)-사각탁자와 구급함 및 이정목 6, 이정표(선석산 서진산정상 2.2 Km, 영암산정상 0.6 Km, 보손지 2.5 Km)-536봉(이정판, 벤취쉼터2)-무명안부(벤취쉼터2) 이정표 1(선석산정상 2.21 Km, 영암산 등산로정상 1.09 Km, 영암산 등산로입구 1.38 Km)과 이정표2(서진산 선석산정상 1.7 Km, 영암산정상 1.1 Km, 보손지 2.2 Km)-세종대왕자태실 갈림삼거리 이정표(선석산정상 1.6 Km, 영암산정상 1.2 Km, 세종대왕자태실 2.7 Km)-561.6 잡목무명봉-돌목재 이정표(선석산정상 0.99 Km와 불광교 2.80 Km, 영암산 2.30 Km, 입구 1.47 Km)-전망바위-선석산(742.3봉, 정상석, 판독불가 삼각점, 이정목5, 안내판) 이정표1(입구 2.48 Km, 불광교 1.78 Km)와 이정표2(비룡산정상 2.5 Km, 시묘산정상 3.7 Km, 영암산정상 2.8 Km)-이정표(불광교 1.70 Km, 선석산정상 0.10 Km와 입구 2.56 Km)-용바위 안내판-이정목 4-태봉바위 안내판과 벤취쉼터1-구급함과 이정표(비룡산 1.85 Km, 불광교 1.16 Km, 선석산정상 0.63 Km와 입구 3.09 Km)-635.5 노거수2 무명봉-비룡산 갈림삼거리(벤취쉼터2) 이정표(비룡산정상 1.1 Km, 각산리 대흥사 1.4 Km, 서진산 선석산정상 1.4 Km)-대흥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비룡산 758 m, 대흥사 1.7 Km, 서진산 선석산 2.0 Km)-541.2봉(큰 소나무들)-벤취쉼터2와 이정표(비룡산정상 300 m, 각산리 대흥사 1.2 Km, 서진산 선석산정상 2.2 Km)-이정표(비룡산정상 0.25 Km, 서진산 선석산 2.25 Km, 남계리 구화사 0.6 Km)-바위암릉과 돌탑-비룡산(579.4봉, 정상석2개, 산불감시초소, 벤취쉼터2)-갈림삼거리 복귀-길주의(좌측, 금곡띠지)-길주의(우측, J3띠지)-430.3봉(띠지들)-바위암릉구간-379.4 삼각점봉(442 재설 건설부 삼각점, 띠지들)-336.5 무명봉(길주의, 우측)-비포장임도-전주이씨 가족묘지들-비포장임도-능선진입-지경재(지산로 2차선 포장도로)-묵은 밭경작지와 묘지들-삼광사-삼광사 추모공원-능선진입-잡목 바위등로-365.5 무명봉-381.2봉(이정판)-암릉우회등로-가시잡목등로-322봉(띠지들)-가시잡풀등로-질매재(비포장임도)-잡목봉(339.4봉)-가시잡목등로-봉화대터인 457 무명봉(띠지들)-억새등로-봉화재-각산(봉화산 468.1봉, 정상석, 왜관21 삼각점)-벤취쉼터2 이정표(대성사방향 0.6 Km와 용각리방향 1.7 Km, 봉화산정상 50 m, 유월리방향 2.1 Km)-능선진입(느티나무와 잡풀지대)-난해한 아카시아나무 등로-무명안부-길주의(금곡, 우측)-352 무명봉(거대 참나무)-가시잡목 등로-363봉(이정판)-230 간벌목 무명봉-아카시아나무 등로-203 무명띠지봉-느린골고개(비포장임도 안부)-161 무명봉-188.4봉(월암봉?)-237 참나무 무명봉-221.1 삼각점봉(이정판, 왜관410 삼각점)-잡풀등로-멧돼지 방지 철망통과-도로진입 방지 철망통과-주산로 2차선 포장도로-잡풀 절개지 하산-33번 가야로 4차선 포장도로 도착-유월교차로-가야로 진입 1차선 포장도로-다람쥐재(유월식당)-산행종료

산행거리 : 28.05 Km (김천시 남면 월명2동 상릉마을회관에서 영암지맥 분기점 찍고 다람쥐재까지)

산행트랙 :

20211113 영암지맥 제1구간 분기점-다람쥐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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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12시간 23분 (05시 02분부터 17시 26분까지)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1시 00분 산행 들머리인 김천시 남면 월명2동 상릉마을회관을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4시 30분 상릉마을회관에 도착했으나 주차 공간이 없어 사과 과수원과 축사 옆 공터에 애마 주차

                            05시 02분 다람쥐재까지 진행을 위해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 시작

                    올때 - 17시 26분 어둡기 전에 다람쥐재에 도착해 영암지맥 첫 구간 산행 종료

                            17시 30분 사전 예약한 초전택시를 타고 월명2동 상릉마을회관으로 출발 (054-932-1799, 010-2587-6109, 30900.-원)

                            18시 40분 월명리에서 애마 회수 해 왜관 텐 모텔 투숙(45,000.-원)

                            19시 20분 모텔 근처 순대국밥 식당에서 정식순대로 저녁 해결 후 이른 취침 (13,000.-원)

영암지맥이란 ???
영암지맥은 백두대간 대덕산(1290.9봉)에서 남쪽으로 분기한 수도지맥이 18.1 Km를 내려가 수도산(1317봉)에서 동북으로 금오지맥을 분기하고 금오지맥은 다시 47.6 Km를 동진하여 금오산에 이르기전 능밭재 북쪽 400미터 지점인 약 550미터 봉에서 남동방향으로 다시 한 가지를 쳐 영암산(785봉), 선석산(742봉), 비룡산(579봉), 각산(468봉)을 지나 백천이 낙동강에 합수하는 성주군 선남면 선원리 선원교 아래 백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는 지점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5.3 Km 되는  산줄기로 백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비룡산까지 들리면서도 어둡기 전에 계획된 다람쥐재에 도착해 기분 좋게 새로운 산줄기와 만나 즐겼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영암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상북도 김천시와 성주군 및 칠곡군 그리고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 네이버의 지식백과와 다음의 백과사전 및 산림청과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예전과 달리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나는 시간이면 설레임보다는 걱정과 고민이 많은 것은 그만큼 많은 산줄기를 찾아 걸으며 예기치 못한 상황들과 마주치고 또 계획했던 루트와 시간에 맞춰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한달동안 금오지맥과 그 지맥에서 가지친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이곳 김천과 구미 및 성주 그리고 칠곡군으로 이어지는 중부 내륙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도 이번의 영암지맥 산행이 마지막 여정이 될 듯 싶은데 이번에는 또 어떤 인연들을 만나고 어떤 즐거움이 생길지 궁금해 하면서 어둠속에 새로운 세상을 만나러 가는 시간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

선답자들의 산행후기를 검토하면 실제 도상거리보다 길게 걸은 거리가 우선 눈에 들어오고 영암산만 극복하면 특별히 어려운 구간은 없는 듯 한데 계절적 요인에 따라 가시잡목과 잡풀들로 인한 산행 거리와 시간 차이가 있을 수 있기에 첫날 구간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월명2동 상릉마을회관 근처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어둠이 짙게 내려 앉아 있는 새벽 시간에 출발해 가능하면 다람쥐재에서 첫날 산행을 마무리하고 다음날 조금 이른 시간에 귀경할 수 있기를 희망하며 배낭도 가볍게 마음은 더욱 가볍게 준비해 보는 영암지맥 산행이다.

 

짙은 어둠이 내려 앉은 새벽 시간에 마을 강아지들의 환대를 받으며 금오지맥 마루금에 접속을 해 분기점을 확인하고 낙엽이 수북히 쌓여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진행하니 머루고개와 운봉고개 지나 561.3 삼각점봉에서 오랫만에 일출을 감상하고 다시 가파른 낙엽 내리막 등로를 따라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월명성모의집 옆으로 나 있는 들머리로 올라가니 초반부터 온 몸을 타고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등로를 적시고 그렇게 한고비 넘어 도상 영암산으로 표기된 784.7미터의 영암산 북봉 지나 바위암릉을 따르니 드디어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 받게 만든 영암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방팔방으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에 취해 보는 시간이다.

제일 먼저 남동쪽에서 남쪽 방향을 살펴보니 잠시 후 만나야 할 선석산이 부드러운 능선을 길게 펼쳐 보이며 반겨주고 그 우측으로 내일 걸어 마무리를 해야 할 영암지맥 산줄기 전체가 한눈에 들어 오는데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백천과 성주참와용 비닐하우스가 하늘에 떠 있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수정처럼 빛나고 있다.

 

진행 방향을 살펴보고 이제 눈을 북쪽으로 돌리니 방금 전 어렵게 타고 넘어 온 바위암봉이 분재 소나무와 함께 환상을 노래하고 그 좌측 뒤로 도상 영암산이라 표기된 784.7미터의 영암산 북봉이 솟아 있으며 그 뒤 저 멀리 얼마 전 힘들게 만났던 금오지맥의 주산인 금오산이 높고 드넓은 품을 펼쳐 보이며 주위 산군들을 호령하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좌측 뒤 저 멀리로는 금오지맥 상 돌탑이 많아 방송에도 출현을 했던 제석봉이 뾰족하게 보이고 금오산 우측 아래로는 효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오래 전 남겼던 추억을 소환하고 있어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려 본다.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가슴시리도록 아름답고 멋진 풍경이기에 잠시 더 멍 때리며 조망을 즐기고 많은 영상들을 가슴속 깊이 간직해 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일찍 내려가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쪽잠을 자면서 산행 들머리인 김천시 남면 월명2동 상릉마을회관에 도착을 하니 주차할 공간이 없어 마을을 두어번 돌아 다니다 결국 마을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마을회관 좌측의 사과 과수원과 축사가 있는 곳으로 올라 진행을 하기로 한다.

이곳 월명동 또는 월명리(경북 김천시 남면 월명리 상릉마을)는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는 리인데 조선 말 개령군 남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섶밭과 운봉(雲峰) 및 동릉(東陵)이 통합되어 김천군 남면 월명동으로 개편되었다. 1949년 금릉군 남면 월명동으로 개칭하였고 1971년 신전이 월명1동으로 운봉과 상릉 및 하릉이 월명2동으로 분동되었다. 1988년 동(洞)을 리로 바꾸어 월명리가 되었고 1995년 김천시 남면 월명리가 되었다.

월명1리 섶밭 앞에 남북지(南北池)가 있고 영암산과 금오산이 마을을 양쪽에서 에워싸고 있으며 월명2리의 운봉과 상릉 및 하릉은 성주군과 경계를 이루는 산간 오지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한 도둑이 김천에서 소를 훔쳐 고개를 넘어가는데 밤새도록 걸어도 미륵불 주위만 맴돌게 되어 화가 난 도둑이 도끼로 미륵불을 내리쳐 왼팔이 떨어지면서 도둑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는데 이 도둑을 묻은 도둑묘라고 전해지는 봉분이 근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1999년 미륵암에서 나당연합군으로 백제 정벌에 참여했던 당나라 시(柴) 장군의 비가 출토됨에 따라 미륵암이 신라 때 창건된 사찰임이 확인되었다.

자연마을 중 상릉과 하릉은 통칭하여 동릉이라고 하는데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 동쪽에 큰 무덤이 있어 동릉이라 하고 무덤 위쪽 마을을 상릉, 아래쪽 마을을 하릉이라 하였다.

의령 여씨 여종록(余宗綠)이 영조 때 선산에서 상릉으로 입향한 이래 집성을 이루어 왔으며 풍수지리상 상릉과 하릉이 떠나가는 배의 형국인지라 마을을 세울 때 한 도사가 마을의 상중하에 돛대를 상징하는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다고 한다.

근년에 두 그루가 잘려 나가고 하릉의 나무마저 2002년 태풍으로 가지가 잘려 나가자 마을 주민들이 부러진 나뭇가지로 장승을 만들어 마을 입구에 세웠다.

 

 

지방을 다니다 보면 마을회관에 앞마당이 있어 애마 한두대 정도는 주차가 가능했는데 이곳 월명2동 상릉마을회관 앞에는 주차 공간이 없어 상릉마을을 두어바퀴 돌아 보지만 역시나 적당한 주차 공간을 찾지 못해 결국 좋은 등로가 있는 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하지 못하고 마을회관 남쪽인 사과 과수원과 축사가 있는 곳 옆으로 공터가 있어 그곳에 애마를 주차시키고 산행 준비 후 출발하는 시간이 새벽 5시를 막 넘기는 시간이다.

오늘 날머리를 지경재로 하면 날이 밝은 시간에 시작해도 느긋하게 어둠이 내리기 전 산행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일 산행 후 귀경길이 일요일 오후이기에 오늘 가능하면 다람쥐재까지 진행하고 싶어 조금 이른 시간에 출발하면서도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좌측에 사과 과수원을 두고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끝까지 올라가니 무성한 잡풀 위에 이슬이 내려 앉아 있는 비포장임도가 이어지고 그 ㅡㅌ자락에 묘지가 나타나는데 그 묘지 주위로는 동물들의 진입을 방지할 수 있는 철망이 설치되어 있다.

 

그 묘지를 지나니 선답자들은 좌측 계곡 방향으로 진행을 해 능밭재를 지나 금오지맥 마루금에 접속을 했는데 지도를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능선을 타고 가파르게 오르니 떨어진 낙엽이 쌓여 있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초반부터 진을 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동안 걸어 오르니 능밭재를 좌측에 두고 마을에서 올라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잠시 후 굵은 로프가 설치된 우측 상릉마을회관 방향ㅇ서 올라오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좌측으로 가파르게 오르니 금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금오지맥 마루금에 접속을 한다.

금오지맥 산행을 하면서 이곳을 지난지 얼마 되지 않아 기억이 뚜렷하기에 잠시 흐르는 땀방울을 닦으며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니 어둠이 너무 짙어 주위 풍경은 흐릿한 실루엣으로 다가오는데 사진으로 남기기엔 너무 빛이 약하다.

 

초반 상릉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만 해도 한기가 느껴져 방풍의를 입고 시작을 했지만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다 보니 온 몸은 이미 흥건하게 젖어 있고 능선에서 불어 오는 새벽 바람이 춥기는 커녕 시원한 느낌으로 상쾌하기만 하다.

금오산과 영암산 그리고 잠시 후 걸어 만나야 할 561.3 삼각점봉이 희미한 실루엣으로 방향만 감지되는 산불감시초소를 지나 우측인 북동 방향으로 키 작은 잡목들을 헤치며 잠시 더 걸어 진행하니 금새 영암지맥 분기점이란 이정판이 걸려있는 곳에 도착을 해 어둠속에 어렵게 사진 몇장 남기고 곧바로 직진 방향인 북쪽으로 이어지는 금오지맥 마루금을 버리고 우측인 동쪽으로 가파르게 내려가는 영암지맥 마루금을 따라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시작해 본다.

 

영암지맥 분기점을 지나 가파른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어둠속에서도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 지나 물 웅덩이가 나타나는데 날씨가 추워지며 멧돼지들도 이용을 하지 않는 듯 조용하기만 하다.

계속 내려가니 묘지 2기 지나 좌측으로 환한 불빛이 보이면서 축사의 분뇨 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 지도를 보니 좌측 불이 밝은 곳은 도드람 양돈서비스라는 거대 축사가 있어 나는 냄새였다.

잠시 후 철조망이 설치된 묘지 2기를 조심스럽게 통과한 후 평이하게 걸어 진행하니 철조망이 쳐져 있는 사이로 좁은 공간이 보이고 그곳으로 내려가니 1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머루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의 부상리와 우측의 월명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머루고개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머루고개를 건너 다시 능선으로 오르니 통나무 오르막 계단이 나타나고 잠시 후 계단이 끝나고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낙엽에는 물기가 흥건히 앉아 있어 안개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영암산 정상으로 오르며 살펴보니 어젯밤 약간의 눈이 내린 후 녹아 생긴 물기임을 알게 되었다.

계속 이어지는 평이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남동에서 남쪽 방향으로 휘어져 이어지고 봉우리 같지 않는 능선 상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370.4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붙어 있는 370.4봉 지나 내려가니 다시 통나무 계단이 나타나고 곧이어 이동통신탑 지나 성산이씨 묘지도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니 또 다시 몇기의 묘지들이 나타나고 그 묘지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내려가니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운봉고개에 도착을 하는데 운봉고개는 공식적인 이름은 아니고 이곳 지명이 월명리 운봉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처럼 보인다.

운봉고개(운봉길 2차선 포장도로, 큰 느티나무)는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 월명리에 있는 자연마을 중 한곳인 운봉마을에 있는 고개로서 운봉은 백운산과 금오산 중간에 있는 마을로 지대가 높아 구름이 쉬어서 넘어가며 마을이 구름에 덮여 햇볕을 잘 볼 수 없다고 하여 운봉이라고 했다.

 

운봉고개 건너 우측으로 보이는 거대한 느티나무 앞으로 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니 잡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는 묵은 밭 경작지처럼 보이는 공터가 나타나고 그 공터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묘지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좌우측에서는 민가에서 기르는 강아지들이 새벽 정적을 깨우고 있어 괜시리 주민들에게 미안해지는 시간이다.

잠시 후 아카시아나무와 잡목들이 간벌된 지대를 어렵게 통과하니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부터 원형철조망이 이어지는데 좌측으로 약초재배지가 있는 듯 보인다.

원형 철조망을 좌측에 두고 완만하게 이어지는 낙엽 등로를 따라 오르니 갑자기 모바일 폰에 문제가 생겨 업데이트가 시작되고 5분여 기다렸다 어렵게 복구해 기능을 확인하고 오르니 묘지들이 나타나고 원형 철조망은 계속 따라 온다. 

다시 무 명묘지 몇기 지나 낙엽 등로를 오르니 원형철조망이 좌측으로 흘러 내려가고 지도를 보니 직진 방향으로 561.3 삼각점봉이 빤히 올려다 보여 잠시 올라가 맨발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 앞에서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삼각점을 확인해 보니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다.

 

삼각점봉에서 추억을 남기고 내려가려다 올라 온 등로 좌측인 동쪽을 보니 잠시 후 올라가 만나야 할 영암산 우측 뒤 저 멀리 선석산 위로 오랫만에 깨끗한 일출이 떠 올라 잠시 더 기다렸다 사진에 담고 다람쥐재까지 어둡기 전 무탈하게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소원도 빌어 본다.

처음에는 영암산 위로 생각을 했는데 영암산 쌍봉은 좌측으로 솟아 있고 막 해가 떠 오르고 있는 봉우리는 지도 상 선석산이 맞다.

날씨가 좋다면 아침마다 늘 보는 하루해이지만 온 몸에 굵은 땀방울 흘리고 산상에 올라 바라보는 오늘같은 일출은 왜 그리 긍정적인 희망을 주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이 박혀있고 맨발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은 561.3봉에서 기대하지 못했던 선석산 정상으로 떠 오른 환상의 일출을 사진에 담고 가슴속 깊이 간직하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올랐던 낙엽 등로를 타고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다시 원형 철조망에 검정 천막이 걸려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올라 온 좌측 등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를 따라 내려가며 산행을 이어간다.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몇장이 걸려있는 갈림삼거리를 지나 이어지는 미끄러운 낙엽등로를 따르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랐다 말라있고 그 위에 활엽수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는 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묘지 뒤 저 멀리 북동쪽으로는 이제 막 떠 오른 햇살이 따스하게 비추고 있는 금오지맥의 주산인 금오산이 너무나 아름다운 자태로 솟아 있다.

그 금오산 정상 위로는 구름 한조각이 떠 오른 햇살에 붉게 물든 모습으로 이 산객의 발걸음을 붙잡는데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 아쉬움을 남기고 발걸음을 옮긴다.

 

묘지지대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며 금오산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 내려가니 묘지들이 끝이 나고 아름다운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데 등로에는 여전히 솔갈비 대신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부드러운 등로를 타고 걸어 내려가며 잊 등로 우측인 동쪽을 보니 여전히 영암산 쌍봉 뒷쪽으로 붉게 타오르듯 물들고 있는 하늘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사진에 영암산 자태를 담으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억새 능선이 나타나고 곧이어 등로 좌측 나뭇가지 사이로 ㅇ호늘 새벽에 올랐다 내려 온 금오지맥과 영암지맥 분기점 그리고 월명리 마을이 환상의 모습으로 펼쳐져 있어 잠시 사진에 담고 진행을 이어간다.

 

월명리 상릉마을과 영암지맥 분기점 지나 우측으로 머루고개와 운봉고개 그리고 이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흐름을 확인하고 다시 부드러운 소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르니 준희님이 걸어 놓은 이정판이 걸려있는 472.7봉에 도착을 해 잠시 숨을 고르며 추억 몇장 남겨 본다.

이제 동쪽으로 진행되던 등로는 이곳 472.7봉에서 우측인 남동 방향으로 휘어져 이어지는데 등로는 여전히 부드럽지만 키 작은 잡목들이 조금 더 많아 보이는 마루금이다.

 

이정판이 붙어 있는 472.7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휘어져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곧이어 잡풀이 무성했던 무명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를 지나니 다시 잡목들이 무성해지기 시작하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 두그루와 그 주위로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잡목이 우거진 무명봉 지나 다시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하고 완만하게 오르니 굵은 소나무와 잡목들이 보이는 좁은 공터봉에 도착을 하는데 살펴보니 좌우측 모두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지도롤 확인해 보니 우측은 미륵암으로 우회하는 우회로이고 좌측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원 마루금처럼 보인다.

 

좌측으로 내려가니 경사도가 가파르고 낙엽이 깔려있으며 가끔은 사면치기 하듯 이어지고 있어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내려가다 보니 좌측 앞으로는 여전히 금어ㅗ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고 사진에 담으며 내려가니 진행 방향으로는 영암산도 나뭇가지 사이로 삐죽히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한동안 조심하며 내려가니 경사도가 완만해지기 시작하고 무명묘지 지나 웅덩이들이 보이는 지점을 통과하니 다시 잡목들이 우거진 무명묘지가 보인다.

그곳에서 금오산을 다시 한번 더 조망하고 잡목과 잡풀들이 약간 우거져 있는 지점을 관통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905번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지나 온 방향을 올려다 보니 LIG 넥스원 회사 넘어 저 멀리 방금 전 내려 온 갈림삼거리와 그 우측으로 472.7봉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905번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좌측으로 내려가니 도로 좌측으로 버스정류장 지나 지하통로를 통해 월명교를 통과하는데 머리 위로는 45번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도로이다.

그 고속도로를 통과한 후 좌측으로 보니 월명리 성모의집이란 버스정류장이 보이고 우측으로는 고속도로와 나란히 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보이고 그 도로 방향으로는 월명성모의집과 신일이란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다.

여전히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며 남동쪽을 살펴보니 묵은 밭 경작지 넘어 월명성모의집 건물 뒷쪽으로 이제부터 걸어 올라야 할 영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계속 이어지는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르니 천주교 대구대교구 월명성모의집이란 커다란 표지석이 서 이는 성모의집 입구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월명성모의집이란 버스정류장도 보인다.

그 성모의집 정문을 지나 우측을 보니 중부내륙고속도로 건너 방금 전 내려 온 갈림삼거리봉이 빤히 올려다 보이고 등산로입구라는 플랭카드가 붙어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오르다 뒤돌아 보니 이곳까지 걸어 올라 온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 우측으로 월명성모의집 건물들이 보이고 그 뒤 저 멀리 금오산이 봄으로도 당당하게 나무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지나 온 도로와 월명성모의집 건물들 그리고 금오산을 조망하고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가파르게 오르니 우측으로 도로 추락 방지 기둥들이 보이는 좌측 능선 방향으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신거리고개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살펴보니 원 신거리고개는 중부고속도로 건너기 전 반대쪽에 있었지만 도로가 생기고 공장들이 들어서며 그 존재감이 사라지고 편의상 이곳을 신거리고개로 부르고 있는 듯 보인다.

신거리 고갯길은 김천시의 동남단에 해당하며 옛날부터 김천과 성주 간 주도로였으며 현재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데 월명리 고분은 이 고갯길 옆에 위치한 하릉마을 당산나무 아래에 있었다고 한다.

 

신거리고개라고 불리는 지점에서 직진으로 올라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우 측으로 올려 보내고 좌측 잡풀들이 우거진 능선으로 들어가니 인공 시멘트 수로가 나타나고 그곳을 건너 오르니 낙엽이 쌓여 있는 무명묘지 지나 점점 경사도가 가파라지더니 한발자국 오르면 한발자국 다시 뒤로 밀리는 등로가 이어지고 있다.

한바탕 가파른 오르막 등로를 타고 무명묘지 한기를 다시 통과하니 조금은 평이한 활엽수 등로가 나타나고 잠시 숨을 고르며 평이하게 진행하니 등로 좌측으로 금오산이 여전히 아름답게 따라오고 있다.

다시 가파라지기 시작하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뒤로 지나 온 마루금이 보이고 북서 방향으로는 금오지맥 마루금의 부상고개 방향이 나즈막한 안부 모습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풍경을 사진에 담고 오르니 바위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잠시 소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소나무 가지에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는 631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몇장 더 남겨 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봉우리를 지나 잡목이 조금 더 빼곡한 등로를 헤치며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오르니 해발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멋진 조망과 풍경들이 펼쳐져 있어 자꾸만 발목을 잡는다.

제일 먼저 등로 우측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제일 가장자리 방향으로 높게 솟아 있는 가야산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두리봉과 단지봉 지나 수도산이 보이고 사진 중앙 우측 앞으로는 빌무산에서 글씨산과 연봉산 및 염속봉산으로 이어지는 금오지맥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빌무산에서 우측으로 가제산과 고당산 지나 백마산으로 이어지는 금오지맥 마루금을 살펴본 후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잡목 등로를 따르니 등로에는 바위들이 깔려있듯 나타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등로 우측 옆으로 전망바위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등로 으측을 살펴보니 방금 전 봤던 풍경과 유사하지만 모습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다가 온다.

바로 앞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뒤 끝자락에 가야산이 솟아 있으며 그 우측으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마루금과 그 앞으로 독용산과 우측 옆으로 삼방산이 보이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빌무산 지나 백마산까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한동안 발걸음 멈추고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전망바위에서 우측으로 수도지맥과 금오지맥을 살펴보고 남동 방향을 살펴보니 지도에는 791.7봉으로 표기된 영암산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가 살짝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멋진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고 추억에 담은 후 조금 더 오르니 선석과 영암이란 이정목 8번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 낙엽 안부를 통과하니 바위 낙엽 등로를 지나 도상 784.7미터의 영암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정상에는 영암산(북봉)이란 이정판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이정표도 보인다.

영암산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사료에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조선지형도에는 영암산이 아닌 발암산(鉢巖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영암산은 바우암산이라는 별칭도 지니고 있다.

발암산과 바우암산은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고 한편 산 정상 주변에 방울을 닮은 바위가 있어 영암(鈴岩)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

이곳 영암산 북봉은 좌측인 동쪽으로 보손리 하산 갈림 이정표가 서 있는데 보손리까지는 2.0 Km 거리이다.

 

영암산 북봉은 주위에 참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 조망은 별로 없기에 나뭇가지 사이로 남동쪽으로 솟아 있는 선삭산만 살짝 살펴보고 진행하니 짧은 바위암벽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 로프구간을 올라 진행 방향을 보니 남쪽으로 바위무명봉과 영암산 정상인 791.7봉이 쌍봉의 모습으로 바로 지척에 솟아 있고 그 좌측인 남동쪽 뒤 저 멀리로는 영암산 이후 만나야 할 선석산이 생각보다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 모습이 환상으로 다가 온다.

그 영암산과 선석산 가운데 저 멀리로는 각산 일명 봉화산과 도고산 지나 백천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점 방향도 보이는데 강 부근에는 엷은 안개인지 박무가 드리워져 있어 조금은 이쉬움도 남긴다.

 

이제 영암산 정상 우측 뒤인 남쪽과 남서 방향을 보니 중부내륙고속도로와 초전명 들판 넘어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 방향으로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비맥 마루금이 하늘금을 그리며 달려가고 있어 한참을 살펴보고 추억을 더듬어 본다.

이제 눈을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금오산 아래로 환상적인 구미시가 드넓게 펼쳐져 있고 그 우측 아래로 천생산과 유학산 줄기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흐르는 팔공지맥 산줄기는 박무속에 흐릿하기만 하다.

일 때문에 몇번인가 내려왔고 산행 때문에도 들렸던 구미시를 바라보며 금오란 단어가 연관되어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금오라 함은 태양의 이명(異名)으로 태양 속에 발 세 개가 달린 까마귀가 있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이므로 가상적 형체를 상징하고 있더라도 떠오르는 햇살처럼 금빛 찬란한 실체인 것이 분명하다.

경북  구미시와 김천시의 분수령을 이루는 금오산(975m)은 이러한 의미를 안고 있으므로 실제의 까마귀가 아닌 가상속의 까마귀에 연유한 것이며 이 이름은 역사 발전 과정에서 산성(山城)과 서원(書院)에 붙여짐으로써 금오산성과 금오서원은 이 고장을 대표하는 유적지가 되었다.

여기에 연유하여 금오산 줄기의 끝이면서 금오서원이 있는 장소를 내세워 오산(烏山)이란 땅 이름이 나타나고 있다.

구미공단이 들어서고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오산은 도립공원으로 조성되고 관광지로 탈바꿈하고 있고 따라서 호수와 호텔 등 관광유원지에 금오의 지명이 붙여지고 있을 뿐 아니라 대학의 명칭에까지 등장함으로써 금오는 이제 명실상부하게 금빛 찬란한 까마귀의 실체로 부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구미시를 확인하고 그 우측인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많은 추억을 남겼던 가산과 팔공산 능선이 확실하게 보이고 그 좌측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 산줄기도 산세를 낮추며 희미하게 눈에 들어 온다.

다시 남쪽과 남동쪽을 살펴보니 잠시 후 올라 만나야 할 영암산과 그 좌측 뒤 저 멀리 선석산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바위암벽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조심스럽게 진행을 한다.

잔시 후 양쪽에 바위벽이 있는 안부로 내려가 다시 눈 앞에 보이는 바위를 타고 올라 무명바위봉에 도착하고 그곳을 지나니 활엽수 낙엽 위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미끄러지지 않토록 천천히 오르니 낙엽 사이로 눈이 남아 있어 지금까지 활엽수 낙엽에 쌓여 있던 물기는 바로 눈이 녹은 물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북쪽으로 방금 전 넘어 온 784.7미터인 영암산 북봉 우측 뒤 저 멀리 4주 연속으로 바라보게 된 금오산이 여전히 그 위용을 자랑하며 봄으로도 당당하게 솟아 있다.

 

북쪽으로 영암산 북봉과 금오산을 확인하고 눈을 북서 방향으로 돌리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영암지맥 분기점에서 이곳 영안산까지 이어지는 전 구간이 한눈에 들어 오고 월명성모의집이 있던 사진 가운데 부근으로는 회사 건물들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모습이 뚜렷하게 내려다 보인다.

그 영암지맥 바로 뒷쪽으로는 지난 달 걸었던 금오지맥 마루금이 우측 부상고개로 이어지는 모습도 보이고 그 뒤 저 멀리로는 김천시와 그 좌측 뒤로 백두대간의 황학산이 우뚝 솟아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한몸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영암산 정상 직전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남서쪽을 살펴보니 좌측 끝자락으로 가야산이 여전히 아름답게 솟아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 우측 위로 수도지맥의 주산이자 금오지맥 분기점이 있는 수도산이 흐릿하게 솟아 있고 그 우측 앞으로 금오지맥 상 삼방산과 그 뒤로 백두대간의 대덕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그 삼방산 우측 앞으로는 염속산에서 연봉산과 글씨산 지나 빌무산으로 이어지고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백마산과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영암지맥 산줄기까지 시원하게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으로 다아 본다.

 

기대보다 더 멋지고 황홀하게 펼쳐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감상하고 알고 있는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몇 발자국 더 오르니 커다란 바위 지나 영암산 등산로 종합안내도와 선석과 영암 이정목7이 세워져 있고 그 우측 옆으로는 영암산이란 작은 정상석과 커다란 정상석 두개가 서 있어 커다란 정상석 앞에서 추억 몇장 남겨 본다.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보손리와 김천시 남면, 성주군 초전면의 경계에 있는 영암산은 높이 784m인 영암산 북봉이지만 조금 더 높은 고도를 가지고 있는 이곳 791.7미터봉을 실질적인 정상으로 대접하고 있는 듯 보이는 일명 방울암산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 보손리 서부와 김천시 남면 남부 및 성주군 초전면 북부에 걸쳐 있는 영암산은 옛날 천지가 개벽하여 육지가 물바다로 변했는데 이 산 정상만 방울만큼 물 위로 솟아 있었다는 전설에서 이름이 유래하였다.

서쪽에는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나고 북동쪽에는 4번 국도와 경부선·경부고속철도가 나란히 지나가며 남동쪽으로 서진산(西鎭山, 742m 일명 선석산)과 비룡산(飛龍山, 578m)이 능선을 따라 이어진다.

골짜기 아래 경호천(鏡湖川)이 흘러 보손지와 중리지 등의 저수지가 형성되어 있고 정상부는 가파른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오르기 쉽게 철계단을 연결해놓았다.

 

지도에는 지나 온 784.7미터의 영암산 북봉을 영암산이라 표기하였고 이곳 실질적인 영암산 전상인 791.7미터봉은 해발고도 표기만 해 놔 헷깔리기만 하다.

그 영암산 정상에서 제일 먼저 북쪽을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바위암봉에 멋진 소나무가 분재처럼 솟아 있고 그 좌측 바로 뒤로 784.7미터인 영암산 북봉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금오산 전경이 한눈에 들어 오는데 그 금오산 좌측 뒤로도 금오지맥 상 제석봉까지 시원하게 보인다.

몇 주 전 힘들게 만났던 산줄기이고 금오산이기에 바라보는 눈길에 추억이 묻어나는 시간이다.

 

이제 눈을 반대편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 뒷편으로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두루봉과 단지봉 지나 수도산이 아련하게 솟아 있다.

그 우측 앞으로 삼방산 그리고 겹친 모습으로 대덕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염속산으로 이어지는 금오지맥 마루금이 벌써 고운 추억이 되어가는 지난달 걸었던 추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그 금오지맥 산줄기 좌측 앞으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길게 펴쳐져 있고 그 고속도로 좌측 옆으로는 성주군 초전면 들판에 거대한 참외용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어 이곳 성주가 참외의 고장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가야산을 사진 우측 가장자리에 두고 바로 앞쪽으로는 영암지맥 마루금 우측으로 543.2미터의 검안산 지나 초전면 방향으로 흘러 내려가는 산줄기 뒷쪽으로 거대한 비닐하우스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로 하얀 백천이 좌측 낙동강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풍경도 눈에 들어오며 좌측 끝자락으로 내일 만나야 할 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도 살짝 흐름을 보여주고 있어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사진에 담고 합수점 뒷쪽을 살펴보니 지난 주 칠봉지맥 산행을 진행하며 살펴 본 비슬지맥과 비슬산이 솟아 있어 조금 더 확인하고 추억을 꺼내 보는 시간도 가져 본다.

 

이제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선석산과 그 우측 뒤로 이어지는 각산 일명 봉화산과 도고산 그리고 그 끝자락에 백천 합수점이 보이는데 다만 비룡산은 선석산 뒤로 숨어 보여주지 않아 아쉬움도 남긴다.

그 합수점 뒤 저 멀리로는 비슬지맥과 청룡지맥이 지나는 비슬산이 거리감이 있어 흐릿하지만 확실학 그 존재감을 알리고 있어 잠시 더 눈길을 주며 추억을 더듬어 본다.

 

이제 눈을 남동에서 동쪽 방향을 살펴보니 우측 가장자리에 선석산을 두고 좌측 뒤 저 멀리 소학산과 자봉산 뒤 황학산 그리고 가산으로 이어지는 조만간 다시 만나야 할 황학지맥 산줄기가 확실하게 펼쳐져 있고 그 뒤 하늘금과 맞닿아 있는 모습으로 봄으로도 당당하게 존재감을 알리고 있는 팔공산의 거대한 산줄기가 그 옛날 추억들을 들려주고 있어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고 많은 사진과 추억으로 남겨 본다.

그 팔공산 좌측 뒤로 혹시나 하고 보현산과 먄봉산을 찾아 보지만 워낙 거리감이 있고 약간의 박무가 껴 있어 그런지 보현산까지는 무리이다.

 

영암산 정상에서 사방팔방 일망무제로 펼쳐진 환상의 조망과 풍경들을 살펴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주고 많은 사진과 추억으로 담은 후 아쉬운 발걸음을 돌려 남동쪽으로 보이는 선석산을 바라보며 바위를 내려가니 벤취쉼터 하나가 나타나고 곧이어 가파른 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있다.

첫번째 계단을 내려가니 연달아 두반째와 세번째 계단이 나타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을 살펴보니 선석산 우측 뒤로 400미터급 무명봉과 각산 일명 봉화산 그리고 끝자락으로 도고산이 보이고 그 우측 옆으로는 하얀 백천이 낙동강으로 흘러 내려가는 풍경이 환상으로 다가온다.

 

많은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그 계단을 내려가니 안전목책과 로프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위험구간 우회등로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살펴보니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릉이 서 있어 그 암릉 우측으로 길게 우회해야 하는 우회등로로서 그 안내판이 서 있어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로프지대 지나 보손지로 내려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다시 바위암릉 구간이 끝이나는 지점에 위험구간 우회 안내판이 서 있어 사진에 담고 진행하니 통나무 계단 지나 쓰러진 이정표도 보이고 곧이어 사각탁자와 이정목6 및 구급함 그리고 선석산까지 2.2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데 선석산은 서진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지 선석산보다는 서진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사각탁자와 구급함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는 곳을 지나 내려가니 활엽수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선답자들이 많이 지나지는 않았는지 등로가 다른 지맥길과는 달리 뚜렷하지는 않다.

그곳에서 뒤돌아 보니 참나무 가지 사이로 방금 전 내려 온 영암산 정상부가 올려다 보이고 사진에 담고 전진하니 벤취쉼터 2개와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는 536봉에 도착을 해 추억 한장 남긴다.

 

그 봉우리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등로는 다시 활엽수에서 소나무로 변경되어 있고 낙엽 역시 바스락거리는 활엽수보다 솔갈비가 푹신하게 깔려있어 편안하게 진행된다.

다시 나타나는 통나무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벤취쉼터 2개와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우측으로 영암산 산행 들머리가 있다는 표시와 함께 진행해야 할 선석산까지 2.21 Km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반갑기만 하다.

 

그 벤취쉼터와 이정표가 서 있는 안부를 지나 오르니 몇 발자국 지나자마자 좌측으로 보손지 하산 갈림 이정표가 또 서 있고 선석산까지 거리를 확인해 보니 1.7 Km 거리로 많이 축소되어 있어 완전히 다른 거리 표시로 헷깔리기만 하다.

이상한 이정표 2개를 지나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얼마 지나지 않아 우측으로 세종대왕자태실로 갈 수 있는 이정표가 다시 보여 태실을 찾아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보인다.

세종대왕자태실은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동에 있는 조선시대 세종대왕 왕자들의 태실로서 사적 제444호이고 전열은 11기와 후열은 8기로 되었고 태실 앞에는 각각 왕자의 태비가 세워져 있는데 대부분 세종 20년(1438)에서부터 세종 24년(1442)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이 중에는 비석이 마멸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것이 많으며 판독할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은 평원대군, 영응대군, 의창군 등의 태비이나 1977년 12월 이곳을 보수 및 정화하면서 금성대군, 화의군, 단종 등의 태실로 추정되는 자리에서 토기, 태호, 분청인화문 대접, 분청상감연화문 뚜껑 1식과 명기가 있는 지석 2점 등이 출토되어 현재 경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세종대왕자태실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이 깔려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빛바랜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는 벗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무명봉에 도착을 한다.

그 무명봉 지나 계속 진행하니 다시 나즈막한 안부 지나 오르고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안부 같지 않은 고개에 도착을 해 살펴보니 지도에는 이곳을 돌목재라 하였다.

돌목재는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신계리와 김천시 증산면 장전리를 잇는 고개로서 가야산에서 뻗어 나와 두리봉, 불기령, 형제봉, 독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부에 위치한 고개가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와 칠곡군 북삼면 보손리를 이어주는 이곳 돌목재와 관련된 자료는 보이지 않는데 현지를 가보니 이곳 역시 뚜렷한 안부로 보이지 않는 능선 상 고개처럼 보이는 곳이다.

 

안부 같지 않은 돌목재 안부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불광교 가는 이정표가 서 있는 우측으로는 산행 기점이 있는 방향과 거리 표시도 나타난다.

그 이정표를 지나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길라잡이 노릇을 해 주고 있어 고마운 마음을 남기고 계속 올라 전진하니 좌측으로 성화봉송을 하는 모양을 닮은 듯 보이는 특이한 바위 하나가 눈길을 잡는다.

그 바위 뒤 저 멀리로는 나뭇가지 사이로 금오산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오르니 좌측으로 바위들이 보여 그곳으로 가 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영암산 정상과 우측 뒤 저 멀리 금오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아 본다.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며 선석산과 금오산을 확인하고 계속 이어지는 활엽수 낙엽 등로를 타고 오르니 보이지 않던 국가지점번호판들이 나타나고 곧이어 안내판과 이정표들 그리고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는 선석산 정상에 도착한다.

선석산(禪石山, 742.1m, 이정표의 서진산)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북삼읍 보손리와 약목면 남계리 및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742m이고 북쪽으로 영암산과 남동쪽으로 비룡산과 연결된다. 

선석산의 서남쪽에는 사적 제444호로 지정된 성주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과 선석사(禪石寺)가 있으며 선석사는 신라 말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로 원래 지금 위치보다 서쪽에 신광사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다가 고려시대 공민왕 때 현 위치로 이전했다 하는데 그때 절터에서 큰 바위가 나와서 터를 닦는다는 의미를 가진 선(禪) 자를 넣어 선석사라 개칭하였다고 한다. 

선석산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인데 이 책의 성주목조에 선석산은 주 북쪽 28리에 있고 세조의 태를 봉안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선석산의 이름은 선석사의 사찰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선석산은 서진산(棲鎭山) 또는 누진산(樓鎭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서진산은 한자로 서진산(西鎭山)이라고도 표기하며 이 이름은 서쪽을 진호하는 산이어서 붙여진 것이라고 하며 1872년지방지도에는 서진산(棲鎭山)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선석산 또는 서진산이라 불려지는 정상에 오르니 나뭇가지들로 막혀 조망은 거의 없는데 정상에 서 있는 두개의 이정표에 등로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나즈막한 371미터의 시묘산이란 특이한 이름의 산이 보여 찾아 보지만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시묘란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자식이 탈상을 할 때까지 묘지 서쪽에 여막을 짓고 상주가 3년 동안 머무는 상례의식을 말하는데 여묘(廬墓) 또는 거려(居廬)라고도 하는데 이런 자식이 이곳 시묘산에서 있어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보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또한 이곳 시묘산 언저리에는 신유 장군 유적이 있는데 조선 효종 때의 장군인 신유(1619~1680)를 모신 사당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제한된 조망속에 시묘산을 살펴보고 북서쪽을 살펴보니 나뭇가지 사이로 방금 전 다녀 온 영암산 쌍봉이 지척이지만 제법 멀어진 모습으로 보이고 북쪽으로는 금오산이 군계일학의 모습으로 주위 산군들을 내려다 보며 호령하듯 서 있다.

아쉬움에 정상부를 다시 한번 더 사진으로 남기고 천천히 출발하니 불광교 가는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등로 좌측인 동쪽과 북동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선석산에서 나뭇가지에 막혀 잘 보이지 않던 시묘산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 칠곡군 북삼읍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아직도 들려보지 못한 북삼읍이기에 자료를 찾아보니 북삼읍은 경상북도 칠곡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읍으로서 남쪽으로 약목면이 북쪽으로 구미시와 이웃하고 있고 서쪽은 금오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에는 낙동강이 흐른다.

금오산 남사면에서 발원한 경호천이 읍을 동서로 관통해 흐르고 낮고 평평한 충적지를 형성하였으며 북삼읍은 주민의 대부분이 구미시로 통근하는 등 구미시의 배후지역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북삼읍은 조선 후기 인동도호부 소속의 북삼면(北三面)이었으며 1914년 칠곡군으로 편입되면서 인근의 읍내면(邑內面)과 약목면(若木面) 및 선산군(善山郡)의 일부를 병합하였다.

북삼면은 2003년 북삼읍으로 승격하였으며 읍소재지인 인평리를 비롯하여 6개 리를 관할하고 있다.

북삼읍에 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여지도서에 북삼면(北三面)은 관아에서 30리 거리에 있다 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고 해동지도에는 약목면과 하천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이루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시묘산과 북삼읍을 조망하고 사진에 담은 후 잠시 더 완만하게 이어지는 소나무 등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용바위란 안내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 보니 선석산(해발 742미터)에서 가장 웅비하고 바위의 형상이 용의 머리를 연상시켰다 하여 옛부터 용바위라 부르고 있다는데 실제 용바위가 어디에 있는지는 나타나지 않아 모르겠다.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과 가야산이 손에 잡힐 듯이 한눈에 보이는 이 바위에 앉아 있노라면 온 세상이 발아래 펼쳐져 모든 것이 내품에 안기듯 하다는데 이 글을 읽어보면 안내판 바로 뒷쪽으로 서 있는 바위가 아닐까 생각되는 내용이다.

이 바위를 한바퀴 돌아서 계곡을 따라서 하산길에 천년의 고찰 선석사에서 들려오는 독경소리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선석사의 돌탑 쌓기에 동참하면 한가시 소원을 들어준다는 설도 있다는데 이 내용을 보면 선석사와 관련이 있는 듯 보이기도 하다.

 

용바위 안내판을 읽어보고 바위 뒷쪽인 남서쪽으로 펼쳐진 풍경들을 살펴보니 저 멀리 사진 정중앙부로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고 그 앞으로는 넓은 초전면 들판과 백천이 흐르는 모습이 내려다 보이고 발 아래 가까운 곳으로는 선석사와 그 바로 아래 인촌지가 보이는데 그 인촌지 우측 앞으로 있어야 할 세종대왕자태실은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선석사는 경북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누진산 남서쪽 기슭에 있는 절로서 직지사의 말사이며 692년에 신라의 의상이 창건하여 신광사(神光寺)라 하고 1361년에 나옹(懶翁)이 다시 짓고 선석사라 하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1684년에 혜묵(惠默)이 다시 짓었으며 1804년에 보수와 증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용바위와 선석사 그리고 인촌지와 가야산을 살펴보고 등로 좌측으로는 여전히 빤히 내려다 보이는 시묘산과 북삼읍을 조망하며 완만하게 활엽수 낙엽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갑자기 소나무와 솔갈비 등로로 바뀌고 곧이어 선석과 영암 이정목4번을 만나 통과한다.

그 이정목을 지나자마자 벤취쉼터 하나가 나타나는데 사람이 웃는 모습을 형상화한 캐릭터가 웃음을 자아낸다.

그 벤취쉼터 옆으로는 태봉바위라는 안내판이 서 있어 잠시 읽어보니 이 자리에서 태봉자리를 살펴보았다는 설이 있어 태봉바위라 불려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해발 740미터에 위치한 이 바위 앞은 영남의 영산 가야산과 천연 고찰인 선삭사와의 사이를 두고 세계의 명물 성주참외의 비닐하우스 단지가 호수처럼 장관이다.

또한 섹에서 유일한 세종대왕자태실이 수양대군을 비롯한 세종의 직서 18왕자와 왕손 단종의 태를 안장한 태봉이 그 명당을 자랑하고 있어 유래의 역사를 더해주고 있다는 내용으로 안내판이 채워져 있다.

 

그 태봉바위 안내판을 읽어 보고 주위를 둘러보지만 바위가 보이지 않아 곧바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소나무 등로를 따르니 비룡산까지 1.85 Km 남아 있고 우측으로 불광교로 갈 수 있다는 이정표와 구급함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그 구급함을 지나 좌측으로 더 휘어져 진행하니 약간의 바위 무명봉 넘어 나즈막한 안부를 통과하고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 뒤로 방금 전 만나고 내려 온 선석산 줄기가 나뭇가지 위로 빤히 올려다 보이기 시작한다.

선석산 줄기를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전진하니 커다란 참나무와 소나무 한그루씩 보이는 평이한 등로와 만나 마음 편히 진행을 이어가 본다.

 

활엽수 낙엽이 마르면서 바스락 거리는 리듬감을 주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주위로 잡목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잠시 조심하며 진행하니 눈 앞으로 좁은 공터에 이정표와 함께 벤취쉼터 2개가 설치된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배낭 내리고 시원한 물 한모금 마시고 지도를 살펴보니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제법 멀리 떨어진 579.4미터의 비룡산 갈림삼거리이다.

잠시 고민하며 시간을 보니 이제 오전 11시 50여분을 넘기고 있어 배낭 벗어 놓고 빠르게 다녀오면 어둠이 깔리기 전 다람쥐재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 곧바로 갈림삼거리 좌측으로 몇 발자국 걸어 가 커다란 나무 뒤에 배낭을 숨기고 비룡산으로 향한다.

 

이정표에 나타난 비룡산까지의 거리가 1.1 Km이니 왕복을 하면 2.2 Km로서 약 40여분 정도 걸리면 다녀오지 않을까 ㅇ상을 하며 조금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니 등로 좌측 앞으로 541.2봉이 빤히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활엽수들이 보이는 부드러운 등로가 길게 펼쳐져 있어 마음과 함께 발걸음도 경쾌하게 옮긴다.

나즈막한 안부 지나 무명봉으로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541.2봉이 정면으로 보이고 곧이어 완만하게 내려가 짧은 가시잡목 구간을 통과하니 이제 등로 좌측 뒤로 방금 전 내려 온 선석산 정상에서 이곳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펼쳐져 있다.

사진에 담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소나무 몇그루들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541.2봉에 도착을 하는데 아무리 찾아 봐도 이정판은 물론 그 흔한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 봉우리 지나 바위를 통과하니 다시 멋진 소나무 등로가 큰 고도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길게 펼쳐져 있고 중간 중간에 두어개의 이정표를 지나 등로 좌측을 보니 선석산과 그 우측 뒤로 금오산이 여전히 아름답게 보이고 있다.

사진에 담으며 우측으로 각산리(대흥사) 하산 갈림삼거리와 좌측으로 남계리(구화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빠르게 걸으며 좌측으로 선석산과 금오산 그리고 구미시를 살펴보며 진행하니 바위암릉 지대가 나타나고 곧이어 돌탑 지나 아담한 정상석 2개와 산불감시초소 및 벤취쉼터가 보이는 579.4미터의 비룡산 정상에 도착을 한다.

비룡산(579.4 m)은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와 기산면 각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579.4m이고 서북쪽의 영암산에서 선석산을 거쳐 이어지는 산줄기에 위치하며 비룡산에서 다시 남쪽으로 지경재를 거쳐 각산으로 이어진다.

산의 북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두만천으로 흘러가며 남쪽 사면에서 발원한 계류들은 서원천을 이루는데 북쪽의 두만천 골짜기에는 조선시대 무장인 신유(申瀏, 1619∼1680) 장군 유적지(도 기념물 제38호)가 있으며 산의 북쪽에는 귀신사와 남쪽에는 대흥사라는 사찰이 있다.

비룡산은 조선시대 사료에 등장하지 않고 조선지형도에 처음 기재되어 있으며 비룡산의 이름은 산의 모양이 용이 날아가는 것 같다고 붙여졌다고 한다.

 

비룡산 정상에서의 조망 역시 뛰어나기에 지금까지 영암산과 선석산을 거쳐 진행하면서 담았던 풍경과 비슷한 풍경을 제외한 사진들 몇장을 더 준비해 본다.

제일 먼저 북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지척으로 선석산이 올려다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금오산이 보이는데 그 사이에 있어야 할 영암산은 바로 앞 선석산에 막혀 보이지 않는다.

이제 눈을 정북 방향으로 돌리니 좌측 뒤로 금오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아래 사진 중앙부로 낮아진 효자봉 능선 우측으로 박정희대통령 생가가 있는 구미시로 이어지는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금오산 우측으로 구미시내가 전부 내려다 보이고 그 우측으로 황학지맥 산줄기들도 보이는데 저 산줄기는 또 언제나 걸어 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잠시 더 비룡산 정상에 머물며 많은 사진들을 담고 다시 돌탑이 보이는 바위암릉으로 내려가니 진행 방향인 북서 방향으로 이곳 비룡산에서 선석산으로 이어지는 영암지맥 마루금과 선석산 정상부가 빤히 올려다 보인다.

 

돌탑이 있는 바위암릉에서 이제 등로 좌측인 남서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좌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각산 일명 봉화산이 솟아 있고 우측 잘록한 부분으로 삼광추모공원과 지경재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흐름이 눈에 들어오며 우측 뒤 저 멀리로는 여전히 가야산에서 수도지맥 마루금을 그리며 두루봉과 단지봉 지나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하늘금 아래 길게 펼쳐져 있는데 수도산까지마ㅣㄴ 보이고 그 뒤 대덕산 방향은 박무인지 아니면 앞의 높은 산줄기들 때문에 막혀서 그런지 더 이상은 보이지 않는다.

 

기대하지 못했던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들과 조망들을 감상하고 많은 사진을 남긴 후 진행한 등로를 따라 빠르게 갈림삼거리 방향으로 뒤돌아 가니 두개의 각기 다른 이정표와 541.2봉 지나 우측 사면 등로가 발달되어 있는 무명봉을 우회 통과하려는데 좌측 무명봉 정상에 이정표가 있어 올라가 보니 좌측 방향으로 대흥사 1.7 Km 거리란 표기가 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 각산리 대흥사는 최근에 새로 창간된지 얼마되지 않은 사찰로서 부도가 잘 알려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사찰이다.

 

마지막 대흥사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부드러운 활엽수 등로를 타고 빠르게 갈림삼거리로 되돌아 와 배낭을 회수하니 정확히 12시 30여분이 지나고 있어 40여분만에 왕복 2.2 Km 거리의 비룡산을 무탈하게 잘 다녀왔다.

물 한모금 더 마시고 배낭울 둘러메고 이제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이곳 역시 굵은 참나무와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수북히 쌓여 있는 낙엽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커다란 바위들도 가끔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부드러운 등로를 따르니 뚜렷한 등로는 우측 직진 방향으로 나 있는데 좌측 내리막 등로 방향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이곳에서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 잡목들과 바위들이 보이는 내리막 등로로 이어가야 할 길주의 지점이다.

 

좌측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초반부엔 잡목들이 성가시게 굴더니 다시 잡목들이 사라지고 굵은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이 바스락 거리기 시작하는 부드러운 등로로 바뀌고 있다.

한동안 진행하니 등로는 서진하다 다시 한번 좌측인 남쪽으로 크게 꺽여 진행해야 할 길주의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그곳 역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이 걸려 있어 길라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 조금만 주의를 하면 길 잃을 염려는 없는 곳이다.

남쪽으로 걸어 내려가니 우거진 잡풀들이 덮고 있는 무명묘지 한기 지나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다시 글씨를 읽을 수 없는 묘비가 있는 묘지 한기를 더 통과하니 검정 천으로 덮혀 있는 묘지 한기가 보이는 무명안부도 통과한다.

그 무명묘지가 있는 안부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굵은 참나무에 선답자의 산행 띠지가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등로는 다시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을 해야 하는 지점이다.

 

길주의 지점을 지나니 잠시 소나무 등로를 타고 나즈막한 안부 지나 오르는데 갑자기 잡목들이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고 제법 큰 바위들도 등로상에 널부러져 있어 좌우측 사면 등로를 따라 오른다.

조금 더 진행하니 참나무 가지에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도상 430.3봉으로서 몇장의 선답자 띠지에는 고도 표시가 되어 있지만 찾는 이정판은 보이지 않아 조금은 아쉬움도 남는다.

많은 띠지들이 걸려있는 430.3봉에서 등로는 다시 남서에서 방동으로 바뀌어 진행하게 된다.

 

이제 도상에 표기된 봉우리에 이정판이 없으면 왠지 서운하게 생각될 정도로 이정판 찾는 재미도 있는데 이곳은 걸려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작업은 해 놓은 듯 한데 누군가 떼어 냈다는 의미인지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선답자들이 띠지에 고도 표시를 해 주니 후답자 입장에서는 조금은 편안하게 진행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봉우리에서 좌측인 남동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갑자기 바위암릉 구간이 나타나고 이리저리 피하고 가운데를 넘어 전진하니 판독불가인 삼각점이 박혀있고 선답자들 산행 띠지들과 그 띠지에 고도 표시가 되어 있는 379.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한다.

나중에 확인을 해 보니 이곳 판독이 불가능한 삼각점은 442재설에 건설부 삼각점으로서 오래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삼각점봉에서 등로는 다시 한번 크게 좌측으로 꺽어 진행되는데 남쪽에서 덩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된다.

잠시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굵은 참나무와 고사목 하나 그리고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살펴보니 이곳 무명봉에서 등로는 다시 우측인 남쪽으로 꺽어 진행을 해야 하는 길주의 지점이다.

뚜렷한 소나무 등로 아래 잡목들이 자라고 있는 마루금을 타고 조금은 빠르게 내려가니 비포장임도가 나타나고 그 임도 건너 능선으로 들어가 진행하니 전주이씨 가족묘지들이 나타나는데 그 정상부에서 진행 방향인 좌측 앞을 보니 지경재 넘어 잠시 후 만나야 할 각산 일명 봉화산이 저 멀리 솟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 온다.

 

많은 비문들이 세워져 있는 전주이씨 가족묘지를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특이할 것 없는 평이한 임도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우측에서 내려오는 또 다른 비포장임도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에서는 개가 잦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한다.

지도를 보니 좌측은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이고 우측은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로서 각기 다른 군을 가지고 있는 경계 능선이다.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빠르게 걸어 내려가니 마루금은 다시 좌측으로 흘러 내려가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 넓은 능선으로 진입하며 이어지고 있어 길주의 지점이다.

 

우측 능선으로 진행하니 소나무 등로가 열리는가 싶더니 금새 비문이 흙에 묻혀 있는 묘지 안부에 도착을 하고 사진에 담고 안부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언덕 넘어 곧바로 지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지경재에 도착을 하는데 도로 건너편으로는 삼광사와 추모공원이 이어지는 곳이다.

지경재(지산로 2차선 포장도로)는 좌측의 경북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와 우측의 성주군 월항면 지방리를 이어주는 지산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고갯마루를 말하는데 이곳 지경재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도로를 타고 우측으로 조금더 걸어가면 좌측으로 삼광사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도로 건너 묵은 밭 경작지를 타고 곧바로 산행을 이어간다.

 

묵은 밭 경작지 같은 곳을 지나니 비문들이 세워져 있는 묘지지대가 나타나고 조금 더 전진하니 삼광사에서 쌓아 놓은 높은 돌담이 앞을 가로막아 어쩔 수 없이 그 돌담을 타고 오르니 우측 지경재쪽 지산로 2차선 포장도로에서 올라 오는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추모공원 표지석 지나 오르니 우측으로 삼광사극락전이란 건물과 함께 커다란 불상이 서 있는 삼광사 앞에 도착을 한다.

삼광사나 삼광사 추모공원에 관한 자료는 보이지 않고 이곳 지명인 지방리를 찾아 보니 지방리는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리로서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농촌마을이고 서진산(742m)에서 각산(468m)으로 뻗은 산등성이 중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두 개의 자연부락 즉 지산(池山)마을과 모방(茅方)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두 부락의 글자를 한 자씩 따서 지방리(池方里)라는 이름이 붙었다.

 

삼광사 극락전 건물을 우측에 두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올라 다시 좌측으로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짧은 절개지가 나타난다.

마루금은 그 절개지를 타고 적당한 곳으로 오르며 진행되는데 그 능선으로 오르기 전 좌측을 보니 건물 지붕 위 저 멀리 방금 전 이 산객이 걸어 온 마루금 끝자락의 선석산과 우측 가장 뾰족한 비룡산이 아름다운 능선을 이루며 파란 하늘에 떠 있는 하얀 흰구름 아래 환상의 모습으로 다가 온다.

 

지나 온 영암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좌측 하늘추모관 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그 건물 뒷편으로 오르며 우측을 보니 많은 망자들의 무덤들이 보이는데 특이하게도 묘지마다 키 작은 향나무가 심어져 있다.

이제 오후 1시 45분 여를 지나고 있어 다람쥐재까지 등로가 나쁘다고 해도 너무 늦지 않을 시간에 도착이 가능할 것 같다는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오고 우측 절개지를 타고 올라 이리저리 방향만 보고 진행하니 희미한 등로가 살아나기 시작한다.

잡목들을 헤치며 가파른 급경사 오르막 등로를 따라 힘겹게 진행하니 경사도가 조금은 완만해지기 시작하고 굵은 참나뭉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를 확인하고 다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우거졌던 잡풀들이 계절릐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숨이 죽어 있는 곳을 지나 바위지대를 통과하니 굵은 참나무에 준희님이 이정판을 걸어 놓고 그 주변으로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381.2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을 남겨 본다.

 

정상에서 잠시 추억을 남기고 출발하니 등로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 어젯밤 하루 짧게 머물렀던 칠곡군 왜관읍이 생각보다 크게 내려다 보이고 그 좌측 뒤로는 낙동강 건너 조만간 걸어야 할 황학지맥 마루금이 부르는 듯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왜관읍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며오며 이름은 너무나 많이 들어 본 고장이지만 직접 들려 하룻밤 묵은 것은 처음이기에 자료를 찾아 보니 경상북도 칠곡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으로 북쪽으로 석적읍과 남쪽으로 대구광역시 달성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왜관읍은 북쪽과 동쪽이 작오산과 기반산 및 자봉산, 장원봉 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막혀 있고 서쪽에는 낙동강이 흐르며 서북쪽 산지에서 발원하여 낙동강으로 유입하는 하천 유역에는 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이곳에 시가지와 공단이 조성되어 있다.

왜관은 과거에 낙동강 수운의 항구였으며 현재는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여러 개의 국도와 지방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다. 이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일본인을 위한 왜관이 설치되었고 현재는 미군 보급기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칠곡군청이 자리한 칠곡군의 중심지이다. 왜관읍 소재지는 왜관리이며 석전리와 매원리 등 9개 리를 관할하고 있고 조선시대 파며방(巴旀坊)이었으며 여지도서에 관아에서 60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파며라는 이름은 왜관읍 중부에 있는 파산(巴山)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도 파며면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신구대조는 파미면(巴彌面)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1914년에 파미면에 노곡면(蘆谷面)을 합쳐 왜관면이 되었다.

왜관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 이곳에 있었던 왜관(倭館)에서 유래하였으며 1905년 경부선철도를 부설하고 이곳에 역을 설치하면서 왜관역이라 이름붙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왜관면은 1949년 읍으로 승격하였다.

 

동쪽으로 왜관읍 방향을 확인하고 눈을 남동쪽으로 돌리니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부드러운 각산 능선이 펼쳐져 있고 늦가을 막바지 단풍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기에는 충분할 정도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각산 우측 뒤로는 마루금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331.7미터의 영취산이 보이는데 그 좌측으로 보여야 할 347.5미터의 도고산은 각산 뒤로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그 영취산 뒤로 보여야 할 백천 합수점 역시 산줄기에 막혀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그 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커다란 산군들이 있어 찾아 보니 바로 비슬산으로서 지난 주 칠봉지맥 산행을 하면서 가깝게 다ㅣ가 와 있던 비슬산이 이제 멀리 떨어져 분간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흐릿하기만 하다.

 

잠시 더 우측 방향인 지난주 걸었던 나지막한 칠봉지맥 산줄기도 나뭇가지 사이로 확인하고 전진하니 거대한 바위암릉이 앞을 가로막아 우회하며 그 암릉을 통과한다.

암릉을 통과한 후 뒤돌아 보니 바위가 화강암인지 각이 져 있는 상태로 서 있어 특이한 모습으로 다가오고 헷깔리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는 등로를 찾아 잡목들을 헤치며 진행하니 선답자의 산행 띠지 한장이 반겨 준다.

그곳을 지나자마자 지독한 가시덤불이 완전히 앞을 가로막아 난감하기만 한데 물 한모금 마시며 살펴보니 눈 앞의 가시덤불만 통과하면 그래도 지나다닌 선답자들의 희미한 등로가 보여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아 조심스럽게 가시덤불을 통과하며 진행 방향을 보니 저 멀리 각산이 조금 더 가깝게 다가 와 있다.

 

지독한 가시덤불을 헤치고 밟으며 힘들게 너어가다 등로 우측 앞을 보니 거대한 성주 참외 비닐하우스 단지와 백천 지나 저 멀리 흐릿하게 가야산이 우뚝 솟아 있고 어렵게 사진에 담고 계속 가시덤불을 넘으니 드디어 가시덤불 구간이 끝이나고 커다란 참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어 확인해 보니 바로 322봉으로 사진 몇장 남겨 본다.

 

그 322봉 지나 여전히 지저분한 잡목 등로를 따라 낙엽을 밟으며 전진하니 지독한ㅇ 잡목과 칡넝굴 넘어 잠시 후 만나야 할 각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 와 있고 계속 이어지는 잡풀과 가시 등로를 헤치며 전진하다 보니 손과 발에 오랫만에 생채기를 내면서 고통에 신음도 해 보는 시간이다.

어렵게 이어지는 가시잡풀 등로를 헤치며 진행하다 등로 우측 앞으로 약간의 조망이 터져 살펴보니 월항면의 참외 비닐하우스와 성주읍 방향 지나 저 멀리 가야산이 솟아 있는데 거리감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주위에 높은 산이 없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높게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그 가야산 우측으로는 수도산으로 이어지는 수도지맥 마루금이 장쾌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한동안 계속되는 가시잡풀 지대를 힘들게 통과하니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굵은 참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로 이어지고 잠시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오르니 비포장임도가 보이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질매재라고 불리는 고갯마루이다.

질매재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있는 질매재마을에 있는 고개라서 붙여진 이름으로 질매재마을은 지형이 갈마처럼 생긴 고개 밑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고 각산리는 내각(內角) 마을과 봉산(鳳山) 마을의 끝 글자를 따서 각산(角山)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제는 이 산객처럼 산행을 위해 찾는 민초들 이외에는 찾는이 하나 없을 것 같은 질매재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등로는 다시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능선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 난감하기만 하다.

 

능선으로 진입하니 지독한 가시잡목들이 앞을 가로막고 우측으로 잠시 우회하며 힘들게 통과하니 커다란 바위 몇개가 군락들을 이루며 나타나고 그 바위들을 지나 오르니 다시 짧은 참나무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참나무 등로를 지나 오르니 지독한 가시잡목과 칡넝굴이 어우러져 등로 자체가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확인해 보니 옆으로 우회하며 지나 올라 정상 등로로 복귀하여 등로 좌측인 북쪽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었던 선석산과 좌측의 영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우측 나뭇가지 방향으로 비룡산이 숨어 있다.

선석산 우측 뒤로는 금오산이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있어 잠시 확인하고 몇장의 사진에 담으며 힘들게 통과한 가시잡목에 대한 고통을 잊는다.

 

극심한 고통을 뒤로 하고 지나 온 방향으로 아름답게 펼쳐진 마루금을 확인한 후 다시 전진하니 옛날 성터였는지 무너진 돌들이 널려있고 조심하며 그 돌들을 밟으며 오르니 굵은 참나무에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봉우리에 도착을 한다.

지도를 보니 457봉으로 표기된 곳으로 이정판이나 선답자들 띠지에 고도 표시도 되어 있지 않아 몇번이나 더 확인한 후 사진에 담고 다시 천천히 출발하니 극심했던 경사도가 완화되며 평이한 등로가 열린다.

자료를 찾아보니 자세한 내용은 보이지 않는데 이곳 각산에 봉화대터가 있어 그것과 관련이 있는 무너진 돌들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도상 457봉을 지나 평이한 활엽수 등로를 따라 천천히 진행을 하니 철없는 철쭉꽃이 이제서야 만개를 하였는데 이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낼려고 이제서야 꽃망울을 피웠는지 앞날이 걱정되고 잠시 후 억새 밭을 짧게 통과하니 법광님 띠지가 보이는데 이곳을 봉화재라 하였다.

자료를 찾아보니 각산과 가까운 기산면 봉산리에 조선시대 봉수대가 있었다는 자료가 보이고 아마도 그 봉수대와 관련된 지명이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칠곡 각산 봉수대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 봉산리 봉화산(烽火山:468.3m) 정상에 있는 조선시대 봉수대로서 전국에서 서울의 목멱산(木覓山:남산)까지 이어지는 5개 봉화로 가운데 경상도와 충청도 내륙을 거치는 제2거 봉화로의 간봉(間烽)에 속하였으며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이천리에 있는 마천산봉수대(馬川山烽燧臺)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으로 4 Km 떨어진 박집산봉수대(朴執山烽燧臺)에 전달하였다.

현재는 봉수대의 일부인 석축의 흔적만 남아 있으며 연대(煙臺)나 다른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는다.

 

봉화재라는 지점을 지나 남쪽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낙엽 등로를 따르니 금새 커다란 봉화산이란 정상석이 서 있는 각산에 도착을 하는데 왜 각산을 봉화산이라고 했을까 궁금한데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조선시대 봉화터 때문에 이곳 지자체에서 봉화산으로 정상석을 세운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각산(角山, 468.1m, 왜관21 삼각점)은 경상북도 성주군의 월항면 용각리와 칠곡군 기산면 각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69m이고 북쪽으로 지경재를 거쳐 선석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 다람쥐재를 거쳐 영취산으로 연결되며 산의 북쪽에서 발원한 계류는 서원천으로 남쪽에서 발원한 계류는 백천으로 흘러간다. 

각산은 조선시대 봉화대가 있던 산이며 지금은 북서쪽 기슭에 경북과학대학이 자리 잡고 있다. 

각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 기록되어 있는데 관아의 북쪽 20리에 있고 남쪽으로 성주 성산 봉수의 신호를 받으며 또 남쪽으로 대구 마천산 봉수의 신호를 받아서 북쪽으로 인동 박집산 봉수에 신호를 보내는데 25리 거리이다 라고 각산 봉수에 대해 서술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지도에는 각산봉(角山峰)이라는 이름과 함께 봉수대가 묘사되어 있다.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며 잠시 배낭 내려 간식을 먹고 허기를 달랜 후 물 한모금 더 바시고 출발하기로 한다.

 

봉화산이란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는 각산 정상에서 약간의 간식으로 허기를 달랜 후 출발하자마자 벤취쉼터 2개와 이정표가 보이는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사진에 담은 후 좌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야 하는 등로를 찾아 보는데 등로가 보이지 않는다.

좌측으로 나 있는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조금 더 전진하니 우거졌던 잡풀들이 굵은 느티나무까지 감싸고 올랐던 모습이 보이는 곳에서 무조건 잡풀들을 헤치며 좌측 아래로 내려가며 좌측을 보니 원 마루금에 우거졌던 잡풀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풍경이 대단하다.

 

우거진 잡풀들을 헤치며 어렵게 마루금을 찾아 진행하니 이곳 역시 제법 굵은 아카시아나무와 잡목들 그리고 잡풀들이 혼재되어 있고 등로에는 썩어가는 고사목들이 나뒹굴고 있어 진행이 쉽지 않다.

이리저리 헤치며 진행하니 다시 지독했던 잡풀들이 우거졌던 장소가 나타나고 조심하며 통과하니 고사목 지대를 넘어 드디어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잡목들이 우거진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동쪽으로 조금 더 걸어 오르니 금곡님 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에 도착을 하고 그곳에서 등로는 남동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된다.

 

어렵고 힘든 등로를 지나 조금 더 우측 아래로 내려가니 무명묘지 한기 지나 굵은 활엽수가 보이는 무명안부도 통과하고 굵은 참나무 한그루와 잡목들이 보이는 무명봉도 넘는다.

도상 352봉으로 표기된 곳으로 오르지만 선답자들 산행 띠지 한장 보이지 않고 청다래 가시나무만 정상을 지키고 있어 사진에 담고 넘어가니 다시 지독하게 우거졌던 잡풀과 바위지대를 차례로 통과한 후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는 363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겨 본다.

 

그 363봉에서 분면 우측으로 크게 꺽어 진행해야 된다고 지도로 확인해 놓고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따라 잠시 내려가다 소득도 없는 알바임을 알아 차리고 다시 뒤돌아 올라 와 좌측 등로를 찾아 보니 등로가 전혀 보이지도 않고 초입에 선답자들 산행 띠지 이후에는 보이지도 않아 방향만 보고 진행한다.

남쪽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찾아 내려가니 잠시 후 흐릿한 등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잘려진 나뭇토막들이 널부러져 있는 무명봉 지나 굵은 아카시아나무 등로를 통과하니 무명묘지 한기가 보인다.

그 묘지 지나 여전히 보이는 아카시아나무 등로를 타고 오르니 관목의 나뭇가지에 흰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203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진행을 이어간다.

 

봉우리 지나 아카시아 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등로를 따르니 비석이 세워진 묘지들이 보이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어 묘지 위에 제법 굵은 나무들이 자라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는 모습들도 자주 보인다.

다시 나타나는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 봉분이 파헤쳐진 비문을 읽을 수 없는 묘지를 통과하니 갑자기 깊은 골짜기 같은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를 보니 느린골고개라는 안부이다.

느린골고개는 좌측의 경북 칠곡군 기산면 영리와 우측의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느린골고개 지나 능선으로 오르니 오래되어 빛바랜 맨발님의 붉은색 띠지 한장이 걸려있는 161봉에 도착을 하고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던 등로는 이제 남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된다.

잡목들이 앞을 가로막는 등로를 헤치며 힘들게 내려가니 다시 참나무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무명묘지들을 지나 우거졌던 잡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등로를 따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는 188.4봉에 도착을 하는데 어느 선답자의 산행 띠지에는 이곳을 월암봉이란 이름으로 적어 놨으나 신뢰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 188.4봉을 지나 잡풀들이 무성한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진행 방향 좌측 앞 아카시아 나뭇가지 사이로 부드러운 능선 등로가 올려다 보이고 지도로 확인해 보니 다람쥐재 넘어 내일 새벽에 올라야 할 288.91ㅗㅇ 지나 좌측으로 이어지는 영암지맥 마지막 구간 들머리쪽 능선이다.

이제 오늘 산행 날머리인 다람쥐재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지도를 확인해 보니 조금만 더 힘을 내면 금새 도착이 가능할 곳이기에 예약한 택시에 언제 전화를 할지 고민하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진행방향을 조망하고 산줄기의 흐름을 확인한 다음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ㅏ르니 가지가 3개인 참나무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237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출발하니 금새 왜관410이란 4등 삼각점이 박혀 있고 221.1미터봉임을 알리는 준희님 이정판이 걸려있는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마지막 물 한모금 더 마시고 진행을 이어간다.

이제 다람쥐재가 멀지 않았는지 빠르게 달리는 차량 굉음들이 귓전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 삼각점봉을 지나면서 사전 예약을 한 초전택시에 전화를 하니 15분 이내로 유월공단 앞 식당 도로에서 기다리겠다고 연락이 와 마음 편히 내려간다.

잡목 사이로 내일 새벽에 올라야 할 마루금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지독하게 우거졌던 잡풀 숲을 조심스럽게 통과하니 멧돼지 목욕탕 지나 뚜렷한 등로가 열리는데 그 등로를 계속 타고 가면 어뚱한 우측 길로 빠질 것 같아 무조건 방향을 보고 좌측 주산로 2차선 포장도로 방향으로 내려가니 지독한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져 장난이 아니다.

잠시 후 멧돼지들의 출입을 방지하기 위한 철망이 높게 세워져 있고 이리저리 통과할 방법을 찾아 보지만 방법이 없어 작은 나뭇가지가 자라고 있는 곳을 통해 어렵게 그 철망을 통과한다.

 

철망을 지나 다시 나타나는 지독한 잡목과 잡풀들을 헤치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또 다른 철망이 나타나는데 다행스럽게도 하단부 한쪽이 열려있어 개구멍을 통과하듯 쉽게 통가해 높은 옹벽을 내려가니 주산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ㅇ서도 잠시 방향 감각을 잃고 좌우측으로 왔다리 갔다리 헤매다가 택시기사님 전화를 받고서야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갈 수 있었다. 

좌측으로 내려가면 영리마을인데 영리는 경상북도 칠곡군 기산면에 있는 리로서 봉화산을 뒤로 한 평지에 자리한 마을이고 경지가 넓게 분포하는 농촌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영동, 감나무징이, 대평, 양지펀, 음지펀마을 등이 있는데 영동마을은 영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감나무징이마을은 감나무가 무성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대평마을은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는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양지펀마을은 볕이 잘 드는 양지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며 음지펀마을은 음지쪽이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주산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우측인 서쪽으로 내려가니 도로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곳 좌측 아래로 신설된 33번 가야로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이곳에서 마음만 급해 빨리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냥 주천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랐으면 편했을 것을 잡풀들이 우거진 절개지 경사면을 타고 어렵게 내려가며 내일 새벽에 진행을 해야 할 마루금을 살펴보니 33번 가야로 4차선 도로 건너 유월공단의 공장 건물 앞쪽으로 진행하면 될 것 같음을 다시 한번 더 확인하며 내려간다.

 

드디어 어렵게 33번 가야로 4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해 우측 유월리 방향으로 진행했으면 좋았는데 좌우측으로 왔다리 갔다리 잠시 헷깔려 하다가 지도로 확인하고 우측 유월교차로 방향으로 진행하며 마지막 발걸음을 옮긴다.

택시는 벌써 와 유월식당 앞 도로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연락이 와 철망을 넘는다고 늦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하고 우측 유월교차로 방향으로 33번 가야로를 빠져 나가니 저 멀리 택시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유월리는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에 있는 리로서 들이 넓게 펼쳐져 있어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며 유촌리, 월암리, 암포리 등을 병합하면서 유촌과 월암의 이름을 따 유월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버들리, 서원, 월암, 광산마을 등이 있는데 버들리마을은 유월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앞에 버드나무 숲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서원마을은 덕암서원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월암마을은 달맞이를 하던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광산마을은 회석을 캐던 광산이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하지만 지금은 유월공단이 들어서 농촌의 풍경은 많이 사라지고 도시의 공단같은 모습으로 천지개벽을 한 마을이기도 하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이어지는 1차선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드디어 택시가 보이고 우측 인공 개울을 건너 또 다른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드디어 유월식당 앞 도로에 도착을 하고 힘들었던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는데 원래 다람쥐재는 도로 건너 고갯마루가 맞을 듯 싶은데 도로가 새로 나고 공단이 들어서며 옛 모습이 사라져 이곳 또는 33번 가야로를 통과한 후 유월공단이라는 커다란 입간판이 서 있는 곳을 편의상 다람쥐재로 부르는 듯 보이다.

다람쥐재(33번 가야로 4차선 포장도로, 월항면 경계판과 유월 교차로 표지판) 역시 느린골고개와 마찬가지로 좌측의 경북 칠곡군 기산면 영리와 우측의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를 이어주는 고개이지만 자료를 찾아봐도 보이는 자료는 없다.

다만 이곳 다람쥐재를 옛 지도에는 월암현(月岩峴) 또는 달음티재로 표기하고 있는데 바로 우측 아래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에 월암마을이란 자연마을이 있고 또한 성주 월항면이나 칠곡 기산면에서도 이 고개를 달암재로 소개를 하고 있어 월암고개를 찾아 보니 다람쥐재와는 완전히 다른 내용들이 보여 소개를 해 본다.

월암고개는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리와 칠곡군 기산면 행정리를 잇는 고개로서 영취산에서 도고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의 안부에 위치한 고개이고 문화천의 분수계 역할을 한다.

이 고개는 성주의 동북쪽 관문에 해당하고 예로부터 성주와 칠곡을 연결하였으며 지금도 33번 국도가 통과하고 있다.

월암고개는 대동여지도에 월암현(月岩峴)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이 지도에는 성주에서 월암고개를 넘어 동안역(東安驛)을 거치고 다시 낙동강을 건너 인동까지 가는 도로가 그려져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고개의 이름이 월현암(月峴巖)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다람티주막(月峴酒幕)이 인근에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월암이라는 이름은 고개 남쪽의 산봉우리인 달암산(月岩山)에서 유래하였는데 달암산은 이 산의 바위 위로 달이 떠올라서 붙여졌다는 설과 이 산에 달 모양의 바위가 있어서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조금 일찍 도착한 초전택시를 타고 월명리로 돌아가며 이런저런 세상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상릉마을회관 앞에 도착을 하고 택시비를 정산하고 택시를 돌려 보낸 후 조금 더 걸어 새벽 어둠속에 주차시킨 애마를 찾아 고민하다 오늘은 왜관으로 들어가 하룻밤 묵고 내일 새벽 일찍 산행을 하기로 하는데 주말이라 추가 요금이 붙어 모텔비가 비싸 조금은 아쉬움도 남지만 어짜피 잠자리만큼은 편안하게 진행하자 마음먹었기에 부담없이 왜관으로 출발한다.

새벽 조금 이른 시간에 시작을 하면서도 어둡기 전에 다람쥐재까지 산행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지만 계절이 변하면서 식수의 량도 줄이고 홀로 가벼운 빵 한조각과 육포를 가지고 진행하다 보니 배낭 무게가 줄어 생각보다 일찍 마무리를 할 수 있어 기분 좋게 모텔로 향한다.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산행 완주 후 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에서 영암지맥 산행을 마무리하고 막히지 않은 시간에 조금 일찍 귀가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