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맥산행(완료)/삼태지맥(호미.완)

삼태지맥 제1구간 토함산 솔밭가든 갈림삼거리 분기점에서 무룡고개까지 산행후기

칠갑산 사랑 2022. 10. 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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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지 : 경상북도 경주시와 울산시의 삼태지맥 마루금 일대

산행번호 제155-1번째 지맥산행

산행일자 : 2022년 10월 02일 (일요일 당일 산행)

산행날씨 : 하루종일 흐렸다 맑기를 반복하고 약간의 박무가 있었으며 무더위를 느꼈던 산행날씨

산행온도 : 영상 14도에서 영상 28도

산행인원 : 칠갑산 나 홀로

산행코스 : 토함산목장과 토함산 솔밭가든 갈림삼거리(경주시 문무대왕면 장항리, 불국로 2차선 포장도로, 토함산 솔밭가든 이정판)-시멘트 포장도로(불국로, 토함산 솔밭가든 갈림삼거리)-토함산솔밭가든-삼태지맥 분기점(굵은 소나무와 잡목봉)-삼태지맥 분기점 이정판-불국로 시멘트 포장도로-불국로 2차선 포장도로-경주 풍력발전시설단지 능선진입-폐 시멘트 포장도로-불국로 2차선 포장도로-경주풍력단지 팔각정과 주차장(관사 건물)-경주풍력발전(주) ESS 건물-조항산(596.2미터) 갈림사거리 이정표(동해바다로 산악레저스포츠길 시점 0.95 Km, 입실방면, 석굴암방면)-불국로 시멘트 포장도로-풍력단지와 억새도로-한전TRS이동중계국(중계탑)-조양산(562.2봉 정상석)-영양남공 묘지-무명묘지-시멘트 포장도로(산불감시초소)-갈림삼거리(우측 비포장임도)-539 무명봉(산불예방 띠지와 전봇대)-547.7 무명봉(불탄 밑등과 송전탑)-갈림삼거리(우측 묵은 비포장임도)-562.4 삼각점봉(이정판, 울산303 삼각점, 무명묘지2기)-벌목가지와 잡풀등로-566.2 무명봉(무영객님 띠지)-무명묘지-고사목 등로-무명묘지2-묘지지대-33번 송전탑-506.6봉(띠지들)-무명묘지-꺽인 나뭇가지 등로-청안이공 묘지-굵은 소나무와 잡목혼재 등로-무명묘지-길주의 지점(무한도전 진강산님 띠지, 우측)-외동고개 철망 탈출(개구멍)-외동고개(14번 외남로 2차선 포장도로, 이스트힐 컨트리클럽, 404.7 수준점)-능선진입-안동권공 부부묘지-무명안부-낙엽송 군락지-무명봉(인천조은산악회 띠지)-522.6봉(금곡님 띠지)-잡풀 조망처-시멘트 포장도로(풍력발전단지)-비포장임도-잡목과 잡풀등로-526.1봉(굵은 참나무와 잡목봉)-시멘트 포장도로-32번과 39번 송전탑-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650.2봉(이정판)-경주풍력발전2단계 전망대-나무계단-시멘트 포장도로(경주풍력발전 안내판)-비포장임도-능선진입(마우나오션리조트 등산로 안내판) 이정표(삼태봉 1.6 Km, 마우나 오션)-무명묘지-진달래군락지 이정표-무명안부-이정표(삼태봉 1.0 Km와 관문성 3.1 Km, 원원사 3.8 Km)-통나무계단-벤취쉼터2-646.8봉(이정판)-갈림삼거리 이정표(정상석, 삼태봉 0.6 Km, 백일산 원원사지 2.1 Km)-647.3봉(629미터 삼태봉 이정목, 바위와 작은돌탑)-갈림삼거리 이정표(삼태봉 0.4 Km, 원원사 4.4 Km, 양남면)-안부 이정표(삼태봉 0.3 Km와 관문성 2.6 Km, 백일산 원원사지 2.4 Km)-벤취쉼터2-통나무계단-삼태봉(630봉, 정상석, 울산21 삼각점) 이정표(관문성 3.5 Km, 마우나오션리조트 콘도북편D코스)-갈림삼거리 이정표(관문성 3.4 Km, 삼태봉 0.12 Km, 허브캐슬 1.96 Km)-갈림삼거리 이정표(관문성 3.0 Km, 삼태봉 0.5 Km, 마우나로션리조트 콘도북편C코스 0.1 Km)-공터 무명봉-청주한공 묘지3-바위 무명봉-608.1봉(폐 헬기장, 독도님 띠지)-바위무명봉-마우나오션리조트 테니스장B코스 갈림삼거리 이정표(관문성 1.9 Km, 삼태봉 1.5 Km, 마우나오션리조트 타니스장B코스 0.6 Km)-전망바위-바위암봉(우회)-전망바위-능선진입-잡목등로-뚜렷한 등로-무너진 성터(관문성?)-583.5봉(이정판)-뚜렷한 등로복귀-갈림삼거리(좌측)-이정판(삼태봉 2.9 Km)-관문성 설명판(무너진 관문성 흔적)-이정판(삼태봉 3.0 Km)-관문성 조망-관문성 설명판-갈림삼거리(좌측 주차장과 코오롱몰, 마루금은 직진)-잡풀등로-시멘트 포장도로(삼봉사 표지석)-기령(기백이재,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 자매집 간이매점에서 잔치국수로 점심식사)-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 이정표(이화초등학교 3.8 Km)-갈림삼거리(좌측 비포장임도)-약초재배지(농막과 철망 및 그물망)-비포장임도와 벌목더미-잡목등로-달성서공 부부묘지-시멘트 포장도로-신흥사 갈림삼거리(신흥사 이정판, 천마산 등산안내도, 동대산 테마임도) 이정표(동대산정상 4.1 Km와 무룡정자고개 14.0 Km, 신흥사 1.7 Km)-단풍나무 넓은 비포장임도-시멘트 포장도로-신흥재(신흥재 표지석, 사각정자) 이정표(무룡정자고개 13.5 Km, 기령재 0.9 Km, 마동재 1 Km, 평해사와 청룡암 2.2 Km )-비포장임도-이정표(마동재 740 m와 무룡정자고개 13.1 Km, 신흥재 210 m)-파군산(526봉 정상석) 이정표(마동재 1.0 Km와 무룡정자고개 12.7 Km, 신흥재 0.6 Km, 신흥사)-능선진입-벤취쉼터4-525.4봉(이정판)-시멘트 포장도로-보리수나무 이정판(대안동 산 222-2, 20 m)-비포장임도-학성이씨 봉안당-마동재 갈림삼거리(다음재, 444미터, 사각정자, 장승들)-5번과 6번 송전탑-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공터, 2003임도시설 매곡에서 대안시설)-능선진입-416.4봉(이정판)-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잡목능선진입-431봉(이정판)-뚜렷한 등로-비포장임도-작은돌탑-우음재(비포장임도)-동대산(446.7봉, 447미터 큰재정상석, 전망대, 울산67 지적삼각점, 팔각정자, 무인산불감시카메라)-소구부리재(446.7봉, 큰재 또는 장재, 돌탑2, 육각정자, 동대산 전망대) 이정표(동대산임도와 무룡정자고개 10.2 Km, 신흥재 3.1 Km, 동대산숲길 대안임도 삼거리 1.8 Km)-능선진입-무인항공통신탑-444.8 삼각점봉(이정판, 삼각점 소실)-사각쉼터와 이정표(동대산정상 0.3 Km)-시멘트 포장도로-갈림삼거리(돌탑, 사각쉼터) 이정표(대안임도삼거리 0.8 Km와 무룡산정상 11.6 Km, 무룡정자고개 9.7 Km, 동대산정상 0.5 Km, 홍골저수지 1.7 Km와 송정저수지 3.1 Km)-비포장임도-431봉 갈림삼거리(무제등과 무제산 설명판, 사각탁자) 이정표(동대산정상 1.0 Km, 홈골못 1.3 Km, 대안임도삼거리 무룡산 0.9 Km, 동대산임도 동대산정상 0.5 Km)-능선진입-431봉(굵은 참나무들과 잡목봉)-갈림삼거리(무제등과 무제산 설명판) 복귀-우측 능선등로-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삼거리 이정표(대안임도삼거리와 무룡 정자고개 9.4 Km, 기령재 5.3 Km, 동대산정상)-저승재(밸방재, 배배랑재, 베베랑재) 설명판과 사각쉼터-능선진입-무명봉(굵은 참나무)-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무룡정자고개 8.95 Km, 동대산숲길 동대산정상 1.3 Km와 대안마을 7.1 Km, 기령재 5.7 Km)-돌탑2와 사각탁자2-대안임도 삼거리(시멘트 포장도로, 좌측) 이정표(무룡정자고개 8.9 Km와 대안마을 7.1 Km, 동대산 1.3 Km)-사각쉼터-능선진입-402.8봉(이정판)-무명안부-422.2봉(무영객님 띠지과 선답자 띠지들)-참나무와 잡목등로-시멘트 포장도로(사각쉼터)-능선진입-무명묘지2-무명봉(선답자 띠지들)-시멘트 포장도로-비포장임도-능선진입-무명묘지(좌측 비포장임도)-벤취쉼터2-371.6봉(이정판)-347.9 삼각점봉(해오름봉, 이정판과 정상판, 울산429 삼각점)-달현재(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비포장임도 갈림사거리(벤취쉼터4) 이정표(무룡산정상, 무룡정자고개 4.9 Km, 동대산 5.3 Km)-능선진입-무명묘지-337.9봉(이정판)-통나무계단-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 이정표(무룡산정상 2.5 Km, 무룡산 숲길 동대산정상 6.03 Km, 동대산정상 6.0 Km)-비포장임도-능선 갈림삼거리 이정표(무룡산정상, 무룡정자고개 4.1 Km, 동대산정상 6.1 Km)-능선진입-사각쉼터2-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사각쉼터) 이정표(무룡산정상 2.0 Km, 동대산정상 6.44 Km, 무룡산숲길 동대산정상 6.5 Km)-시멘트 포장도로-능선진입 갈림삼거리 이정표(무룡산정상 1.6 Km, 동대산정상 6.9 Km, 무룡산숲길 무룡산정상 1.56 Km)-능선진입-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우측)-비포장임도 갈림삼거리(단풍산길 표지석, 돌탑, 병영초등학교장 안내판) 이정표1(무룡산정상, 동대산)와 이정표2(무룡산 1.5 Km, 동대산 7 Km)-통나무계단-사각쉼터-나무계단-무룡산 진달래 군락지 안내판과 벤취쉼터 이정표(무룡정자고개 2.0 Km, 동대산정상 8.2 Km)-억새능선-억새능선 갈림삼거리(벤취쉼터들) 이정표(무룡산정상 매봉재 0.13 Km, 동대산 숲속쉼터, 장등마을 정자해변, 강동농수산물 주말 직거래장터, 무룡사 1.2 Km)-사각정자와 방송국 송신탑들 조망-헬기장-KBS울산방송국 통신탑과 관리시설들-무룡사 갈림삼거리(무룡산 진달래 군락지 안내판) 이정표(무룡정자고개 1.9 Km, 동대산정상 8.3 Km, 무룡사 1.2 Km)-차량통제용 바리게이트2-억새마대등로-무룡산(450.7봉, 정상석, 울산69 지적삼각점전망대, 산불감시초소, 넓은공터, 방송국 송신탑)-억새능선-갈림삼거리(MBC방송국 철망) 이정표(무룡정자고개 1.3 Km, 동대산정상 8.9 Km)-MBC 방송국 건물과 송신탑(벤취쉼터들)-능선진입-울산어울길 3구간 이정목-소나무와 잡목 하산등로-갈림삼거리 안부-무명묘지-참나무 등로-칡넝굴 조망처-갈림삼거리 이정표(무룡정자고개 0.2 Km, 무룡산MBC송전탑 1.5 Km)-무룡고개(가운데고개, 무룡로 2차선 포장도로, 31번 무룡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룡터널) 이정표(약천사 2.2 Km,와 성불사 3.9 Km 및 아래율동 4.9 Km, 무룡산MBC송전탑 1.9 Km)-산행종료

산행거리 : 29.00 Km (토함산 솔밭가든 갈림삼거리에서 삼태지맥 분기점 지나 무룡고개까지)

            지맥산행 : 28.40 Km - 삼태지맥 분기점에서 무룡고개까지

            접속구간 : 00.60 Km - 토함산 솔밭가든 갈림삼거리에서 삼태지맥 분기점까지

산행트랙 :

20221002 삼태지맥 제1구간 토함산목장 분기점-무룡고개.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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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시간 : 11시간 03분 (06시 51분부터 17시 54분까지 접속구간 모두 포함하여)

교통 및 숙박편 : 갈때 - 01시 10분 삼태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무룡고개(가운데고개)를 향해 집에서 애마로 출발

                           04시 10분 건천휴게소에 도착 해 약 2시간 정도 차박하고 필요 물품 구매(36,000.-원)

                           06시 00분 삼태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구룡고개(가운데고개)에 도착 해 카카오택시 호출 (43,000.-원)

                           06시 51분 삼태지맥 제1구간 산행 들머리인 토함산 솔밭가든 갈림삼거리에 도착 해 산행 준비 후 곧바로 출발

                   올때 - 17시 54분 삼태지맥 제1구간 날머리인 무룡고개(가운데고개)에 도착 해 지맥 산행 종료하고 배낭 정리

                           18시 50분 모나리자 모텔 투숙 (40,000.-원)

                           19시 40분 모텔 근처 삼겹살 삭당에서 저녁식사 후 모텔로 복귀(38,000.-원)

삼태지맥이란 ???

삼태지맥(三台枝脈)은 낙동정맥의 백운산(892m) 북쪽에서 동쪽으로 분기해 간 호미지맥이 44.1 Km를 달려 원고개를 지나 토함산으로 가기 전 중간지점인 토함산목장에서 남쪽으로 또 다른 가지를 쳐 삼태봉, 동대산, 무룡산, 염포산, 망계산을 지나 울산광역시 동구 화암추등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0.5 Km가 되는 산줄기를 말하는데 태화강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삼태지맥 마루금의 상당 부분은 현재 풍력발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도로를 따라 진행되고 마지막 날머리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조선업체 중 한곳인 현대중공업이 차지하고 있어 어렵게 우회하며 진행을 해야 하는 특이한 산줄기이다.  

 

 

야간운전으로 피곤함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차박을 하면서 늦잠을 자 조금 늦게 산행을 시작했지만 등로가 좋아 계획대로 정상적인 시간에 무룡고개에 도착해 고운 추억을 만들었던 시간들

 

 

선답자들의 산행지도와 산행후기를 참고한 후 난해하고 어려운 마루금 잇기 산행을 무탈하게 완주하고 돌아왔기에 단 한명의 후답자라도 다시 이 산객이 걸었던 마루금을 걸으면서 산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하는 즐거운 마음으로 가능하면 마루금에 충실하게 적으려 노력하며 산행 후기를 적는다.

현존하는 맥 잇기 산행에 대한 수많은 이론과 산행 트랙이 존재하지만 이 산객은 산경표와 신산경표를 보고 맥 잇기 산행을 처음 진행하였기에 가능하면 이 산행 이론에 따라 산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산줄기의 마지막 끝부분이 물과 만나는 지점인 합수점으로 가야한다는 이론 역시 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아직 정확하게 내려진 올바른 해답이 없기 때문에 이 산객은 옛 문헌에 나타난 이론인 관아를 기준으로 설정된 산줄기를 그 끝으로 하고 문헌에 나타나지 않은 관아 이후의 산줄기는 산행을 하는 산객 각자의 기준에 맞춰 진행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또한 삼태지맥 산행을 한 후 이 산행후기를 기술하면서 경북 경주시와 울산시 및 그 주변 지자체에 수록된 지명유래와 네이버의 지식백과 그리고 다음의 백과사전, 산림청, 한국관광공사의 자료들을 참고하여 정리된 부분들이 있으며 이런 부분들이 혹시라도 지적재산권에 저촉이 되어 삭제나 변경이 필요한 경우 연락주시면 언제라도 즉시 삭제 및 수정해 드릴 수 있음도 알린다.

 

지난 주 전남 해남의 선은지맥에 들었다가 생각보다 거칠었던 가시잡목 등로로 인해 고생을 많이 했기에 이번에는 조금 수원하게 진행이 가능한 경주와 울산에 걸쳐 이어지는 삼태지맥을 선택해 보는데 가시잡목으로 인한 고생은 덜했지만 도로를 따라 걷다 보니 발바닥에 불이난 듯 통증이 생겨 결코 쉬운 지맥 산행은 없는 것 같았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모임과 술자리가 늘어나고 식탐이 많은 산객에게 몸 관리가 쉽지 않은 계절까지 겹치면서 연휴 첫날 천안에서 친구들 모임에 참석했다 잠도 자지 못하고 산행지로 내려가며 휴게소에서 차박으로 쪽잠을 자다보니 산행보다 가고오는 시간과 불편한 잠자리가 더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좋은 등로에 가끔 보여주는 환상의 풍경과 조망이 있어 그래도 조금은 편안하게 또 새로운 산줄기 하나와 고운 인연을 만든 시간으로 만족했던 산행이었다.

 

벌써 7년이 지난 2015년 2월 추운 겨울철에 호미지맥 산행을 하면서 어둠속에 걸려있던 준희 선생님의 삼태지맥분기점이란 이정판을 사진에 담았던 추억을 떠 올리며 날이 완전히 밝은 시간에 다시 삼태지맥 마루금을 따라 새로운 산행을 하기 위해 같은 장소에 도착하니 조각 나 흩어졌던 추억들이 다시 되살아나고 도로 따라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거대한 풍력발전단지들이 길라잡이 노릇을 하듯 마루금을 따라 이어지고 있다.

시멘트 포장도로와 짧은 능선 지나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넓은 주차장과 팔각정이 보이는 경주풍력발전 안내판이 보이는 곳으로 오르는 도로에서 지나 온 방향인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산행을 시작한 토함산 솔밭가든과 목장 방향으로 두기의 풍력발전기가 보이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엷은 안개를 드리운 호미지맥의 토함산이 솟아 있는데 지금까지 두어번 만났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 우측으로 펼쳐진 호미지맥 마루금도 살펴보는 시간은 과거로의 추억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살펴본 시간이었다.

 

풍력발전단지를 따라 도로와 임도를 타고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가시잡목으로부터는 해방이 되었지만 발바닥에 전해지는 통증으로 결코 쉽지 않은 산행임을 느끼며 쉬엄쉬엄 외동고개로 내려가는데 도롯가에 설치된 철망으로 인해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과 칡넝굴 속에 갇혀 온 몸에 많은 생채기를 만들고서야 힘들게 개구멍을 통해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외동고개 이후로 올망졸망 이어지는 도로와 임도 그리고 능선을 번갈아 타고 진행하여 이 산줄기의 이름을 부여받게 만든 삼태봉에 오르니 많은 주민들이 쉬고 있어 사진 몇장 남기고 출발해 기령에서 따뜻한 잔치국수 한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니 대접 받는 기분으로 호사스런 산행이란 기분까지 들게 만든다.

다시 동대산 지나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무룡산에 오르니 일망무제로 펼쳐진 풍경과 조망들이 발목을 붙잡아 잠시 망중한을 즐기며 보이는 이름들을 불러본다.

지나 온 방향인 북쪽으로 가을 억새가 하얗게 피어난 뒤 저 멀리 오늘 이 산객이 삼태지맥이란 이름으로 걸어 온 산줄기가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울산에서 경주시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파트와 산업단지의 공장들이 길게 펼쳐져 있어 살펴보지만 드리워진 박무로 인해 조금은 아쉬움도 남긴다.

 

내일 진행해야 할 남쪽 방향으로는 거대한 방송국 송신탑 지나 마지막 삼태지맥 마루금이 길게 동해바다를 향해 뻗어 있고 그 바로 우측으로는 울산의 거대한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 해양사업부가 마루금을 따라 형성되어 이는데 그 공장들에게 젖줄같은 물을 대주는 태화강이 길게 이어지며 거대한 공업도시를 만들어 놓은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하늘엔 검은 먹구름이 밀려오며 조금 이른 어둠을 재촉하고 있어 발걸음이 빨라지지만 이제 하산길만 남아 있기 때문인지 마음은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주위 풍경을 즐기며 쉬어가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금요일 날 저녁에 내려갔으면 좋았는데 오랫만에 친구들과 천안에서 토요일 저녁에 모임이 잡혀 토요일 하루를 쉬고 오후에 천안으로 내려 가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 후 새벽 1시가 넘어 울산시 무룡고개 일명 가운데고개로 내려가니 도중에 눈꺼풀이 내려 앉아 2시간 가까이 차박으로 잠을 청하고 달리니 결국 무룡고개에 예상보다 한시간이나 늦은 새벽 6시가 다 되어 도착을 해 산행 준비를 하면서 카카오택시를 콜하니 금새 잡힌다.

아침식사도 못하고 빵하나로 허기를 달랜 후 도착한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토함산솔밭가든 앞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니 일출이 되었고 날이 훤하게 밝아 오랫만에 밝은 햇살을 받으며 산행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이곳 토함산 솔밭가든은 호미지맥 산행을 하면서 2015년 2월에 지났으니 벌써 7년하고도 8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잠시 주위 풍경을 사진에 담으며 옛 추억을 떠올리니 그때 함께 산하를 누볐던 산친구들은 모두 어디에서 잘들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지만 산을 좋아하는 산꾼들이다 보니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기대를 하면서 또 새로운 산줄기를 찾아 떠나는 시간은 늘 하던대로 조금은 비장하기만 하다.

토함산 솔밭가든이란 커다란 입간판 뒤로 잠시 후 만나야 할 삼태지맥 마루금을 따라 경주 풍력발전기들이 설치된 풍경이 이국적으로 보인다.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불국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 토함산 솔밭가든으로 들어가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고 좌측 도로를 타고 걸어가니 곧바로 도로 우측으로 낙엽송 가로수 넘어 토함산 솔밭가든 건물들이 보이는데 7년 전 풍경과 특별히 달라진 부분이 없어 옛 추억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잠시 후 도로 좌측으로 벌목 후 나무를 식재한 조림지가 펼쳐지고 그 뒤로 경주 풍력발전기들이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데 생각보다 소음이 커 놀라는 시간인데 주위 주민들로부터 민원은 없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잠시 후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우측으로 묘지로 갈 수 있는 비포장임도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인데 우측 도롯가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삼태지맥분기점이란 이정판은 7년 전 걸렸던 모습과 위치가 달라져 있어 살펴보고 우측 묘지 방향으로 올라 실질적인 삼태지맥 분기점에 도착을 하니 굵은 소나무 사이로 관목의 잡목들이 보이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보여 사진 한장 남기고 이틀간 걸어야 할 새로운 삼태지맥 산행을 시작한다.

 

굵은 소나무들과 관목의 활엽수들 사이로 약간의 잡목들과 잡풀들이 보이는 실질적인 삼태지맥 분기점에서 사진 몇장 남기고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도 화인한 후 다시 묘지들을 지나 내려가니 방금 전 올라 온 비포장임도와 만나 내려가니 불국로 시멘트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 굵은 소나무에 준희 섢생님이 걸어 둔 삼태지맥분기점이란 이정판이 걸려있어 그곳에서도 몇장의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불국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완만하게 오르며 이틀간 걸어야 할 삼태지맥 산행을 알린다.

오래 전 호미지맥 산행을 하면서 바다 건너 멀리 바라보기만 하며 저 마루금과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던 시절을 회상해 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 삼태지맥을 걸을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동쪽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니 도로 양쪽으로는 지지목이 있는 은행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사진에 담으며 걸어가니 도로는 우측으로 휘어지며 남동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가며 도로 좌측을 보니 지척으로 토함산 목장과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석굴암 뒤로 솟아 있는 토함산이 엷은 안개띠를 두르고 아름답게 솟아 있고 그 우측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 마루금이 잠시 옛추억을 더듬게 만들고 있다.

잠시 후 드높은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곳에서 잠시 도로 좌측의 북동 방향을 살펴보니 토함산자연휴양림 지나 경주장항리사지로 이어지는 탑정천이 흐르고 그 아래 저 멀리 경주허브랜드 뒤로 방금 전 택시를 타고 오르며 봤던 한국수력원자력 건물이 특이한 모스으로 보여 사진에 담고 그 좌측인 북쪽과 북북서 방향을 보니 토함산목장 건물 뒤 저 멀리 여전히 안개속에 얼굴만 내밀고 있는 토함산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고 지나온 마루금과 토함산 우측으로 펼쳐진 호미지맥 마루금도 확인해 본다.

 

지나 온 방향으로 토함산목장과 건물들 그리고 그 뒤 저 멀리 엷은 안개띠를 두르고 있는 토함산을 살펴보고 사진에 담으며 진행하니 이제 등로 좌측인 동쪽 방향으로도 멋진 산줄기 하나가 펼쳐져 있어 지도를 살펴보니 596.2미터의 조항산과 그 줄기로서 그 산줄기 앞 골짜기에는 토함산자연휴양림이 길게 펼쳐진 모습도 눈에 들어 오는데 저 경주시의 조항산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는 자료가 없어 아쉽기만 하다.

다만 다른 지역의 조항산들 대부분이 새의 목처럼 생겨 부르게 되었다는데 저 경주시의 조항산은 이곳에서 보기에 새의 목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 조항산 줄기 위로 막 떠오른 태양이 보여 오늘 하루도 더위로 쉽지 않겠다 생각했지만 구름이 낀 흐린 날씨로 덕을 좀 봤다.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며 도로 좌측 뒤와 옆으로 펼쳐진 토함산과 조항산 줄기를 확인하다 보니 그 가운데로 깊은 골짜기가 길게 내려다 보이고 그 한가운데 저 멀리 특이하게 생긴 건물이 눈에 들어 와 지도로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 아침에 택시를 타고 오르며 기사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한국수력원자력 건물이다.

전력구조개편에 따라 2001년 한국전력공사로부터 독립된 한국수력원자력은 국내 유일의 원자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여기에서 생산되는 전기뿐만 아니라 태양광발전과 풍력발전 등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공사에 판매하고 있는데 본사는 경상북도 경주에 있고 현재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가장 뜨거운 뉴스를 생산하는 회사 중 한곳이 되었다.

 

그렇게 한동안 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 오르니 진행 방향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굉음을 울리며 돌아가고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 곳 우측으로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초지지대에 설치된 풍력발전기 옆으로 나 있는 직선 등로를 따라 진행을 이어간다.

은행나무들이 조림되어 있는 초지지대로 오르니 지금까지 봤던 풍경 및 조망과 비숫한 모습들이 보이고 곧이어 우측 묵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전진하니 다시 묵은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그 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내려가니 다시 1차선 포장도로와 만나 우측으로 진행하고 잠시 더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으로 주차장과 팔각정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차박을 한 사람들이 제법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차박을 즐기는 주차장을 지나 팔각정 앞 끝자락에 도착을 하니 경주풍력발전 안내판이 서 있어 확인해 보니 풍력발전기에 대한 상세한 자료들이 보인다.

그 주차장을 지나니 좌측으로 건물 한동이 나타나고 살펴보니 풍력단지를 관리하는 사무동 같이 보이는데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다.

이제 눈앞으로 보이는 드높은 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며 걸어가니 도로 좌측 아래로 또 다른 풍력발전기 관리 건물이 보이는데 방금 전 만났던 건물은 관리인이 생활하는 사택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그 관리 건물을 지나니 이제 시멘트 포장도로 갈림사거리가 나타나고 마루금은 좌측으로 휘어지는 가운데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되는데 우측 옆으로 이정표가 보여 확인해 보니 진행 방향으로는 거리표시 없이 입실방면이란 방향표시만 보인다.

 

이정표에서 석굴암이란 단어를 만나니 반갑기만 하고 이제부터 입실방면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구절초가 벌써 가을이 왔음을 알리기 시작하고 조금 더 언덕으로 오르니 이제 도로 양쪽으로 하얀 억새가 펴 하늘거리며 반겨주는데 오랫만에 만나는 작은 억새 군락지에 마음을 빼앗겨 보는 시간이다.

잠시 더 올라 둔덕에서 도로 좌측 뒤로 북쪽을 살펴보니 방금 전 지나 온 삼태지맥 상 풍력단지 관리건물과 주차장 넘어 조금 더 선명하게 드러난 토함산과 그 토함산 우측 뒤로 이어지는 희미한 호미지맥 마루금이 다시 한번 이 산객의 마을을 흔들고 있고 그 우측으로 한수원이 있는 장항리 골짜기 지나 우측으로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계절의 변화를 실감시키는 구절초와 억새들 사이로 지나온 마루금과 토함산 및 호미지맥 산줄기를 확인하고 조금 더 억새 군락지 사이로 나 있는 도로를 따르니 도로 주위로 세워진 많은 풍력발전기들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펼쳐져 있고 그렇게 조금 더 걸어가니 이제 도로 옆으로 전봇대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진행 방향 저 멀리 능선 위로 높게 솟아 있는 이동통신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도로는 억새 군락지를 지나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능선으로 이어지고 그렇게 잠시 더 전진하니 높은 통신탑은 한국TRS 이동중계국이란 안내판이 붙어 있다.

그 이동중계국을 지나자마자 넓은 공터가 보이고 그 공터 한쪽 뒤로 커다란 조양산 정상석이 서 있는데 해발고도가 562.2미터로 표기된 곳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표기가 없지만 다음지도에는 해발고도 없이 조양산 표기만 되어 있다.

이곳 조양산 역시 보이는 자료가 전혀 없는데 좌측의 경주시 양남면 효동리와 우측의 외동읍 개곡리의 경계지점에 솟아 있는 산이다.

 

조양산 정상석이 세워진 넓은 공터를 지나 둔덕으로 오르니 많은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반겨주고 발 아래 곱게 피어 있는 구절초를 조심하며 굵은 소나무 아래 키 작은 관목의 활엽수들과 잡목들 사이로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잘 관리되고 있는 영양남공 묘지와 무명묘지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옆 나뭇가지 사이로 산불감시초소가 세워져 있는데 주위 풍경이 보이지 않는 이런 곳에 왜 산불감시초소를 세웠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아마도 산불감시보다는 산으로 진입하는 차량들을 통제하기 위한 목적의 초소가 아닐까 생각되는 모습을 사진에 담고 도로 따라 우측으로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도로 ㅏ라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다시 우측으로 개설된지 오래되지 않은 듯한 비포장임도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황토흙이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오르며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경주풍력발전사에서 걸어 둔 산불예방이란 띠지가 걸려있는 539 무명봉을 지나고 이어지는 전봇대 지나 높은 송전탑이 보이는 547.7 무명봉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비포장임도를 따라 무명봉을 넘고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니 임도 옆으로 전봇대가 이어지고 나즈막한 무명안부를 통과 해 다시 언덕으로 오른다.

둔덕을 넘으니 공사하면서 사용했던 자재들과 생활 쓰레기들이 보이고 조금 더 전진하며 진행 방향인 남쪽을 보니 마루금을 따라 길게 설치된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일렬로 쭉 늘어 선 풍경이 인상적으로 다가오지만 청정 에너지를 얻기 위해 사라지는 산림 역시 만만치 않으니 정말 청정 에너지가 맞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잠시 후 잘려진 소나무 거지들이 널부러져 있는 지점을 지나니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지금까지 걸어 온 황톳빛 임도는 좌측으로 가고 마루금은 우측 직진 방향의 묵은 비포장임도로 이어진다.

 

우측 직진의 비포장임도를 따라 오르니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고 임도 우측 지나 온 방향으로 거대한 풍력발전기들이 펼쳐져 있는데 그 뒤로 이제 안개가 완전히 사라진 토함산이 뚜렷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묵은 잡풀 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오르니 임도 좌우측으로는 제법 굵은 소나무들도 보이는데 바닷바람이 세서 그런지 키는 강원도쪽 소나무보다 훨씬 작다는 느낌으로 진행하니 점점 더 잡목들이 많이 보이더니 갑자기 잘 관리되고 있는 듯 보이는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난다.

그 묘지 우측 옆 굵은 활엽수 위에 준희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그 아래 울산303이란 삼각점이 박혀이는 도상 562.4 삼각점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도상 562.4 삼각점봉에서 추억을 남기고 무명묘지 2기를 지나 다시 남쪽으로 진행하니 굵은 고사목들이 등로에 어지럽게 쓰러져 있어 진행에 주의가 필요하고 곧이어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참나무 아래 잡풀들이 우거져 있는 완만한 등로가 펼쳐지는데 그 잡풀들과 등로 위에는 지난 여름 강력한 태풍이 불었을 때 부러진 작은 나뭇가지들이 마치 솔갈비가 떨어져 쌓여 있는 듯 널려있다.

잠시 후 무명객님의 띠지 한장이 걸려있어 살펴보니 566.2봉으로 표기를 해 놔 지도를 확인해 보니 아무 표식도 없는 무명봉으로서 어느 지도에 표기된 높이인지 궁금하기만 하다.

그곳 무명봉 지나 한동안 더 굵은 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과 잡풀들이 보이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쓰러진 굵은 고사목들을 통과하니 무명묘지 2기가 다시 보인다.

그곳 지나 약간은 어지러운 등로를 따라 진행하니 잡풀지대에 넓은 식흔들이 펼쳐져 있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많은 묘지들이 보이는 작은 공동묘지 같은 곳으로 등로가 이어지고 있어 묘비 앞에서 배낭 내려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진행을 이어간다.

 

오늘은 시간이 늦어 아침도 못먹고 진행을 하다보니 금새 호기가 지고 체력도 달리는 것 같아 조금 일찍 빵과 과일로 당을 보충하고 물 한모금 마시고 묘지지대를 내려가니 잡풀 등로 지나 33번 송전탑을 만나고 다시 널부러져 있는 고사목들을 피해 전진하니 잠시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 아래 약간의 키 작은 잡풀들만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한다.

그렇게 잠시 더 진행하니 굵은 소나무 옆으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걸려있고 그 앞으로 부러진 굵은 고사목 주위로도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도상 506.6봉이다.

이곳에서 등로는 좌측인 동쪽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며 진행되기에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

 

도상 506.6봉 지나 잡풀이 무성한 무명묘지 한기를 지나니 지난 태풍 때 강풍으로 부러진 커다란 나뭇가지들이 등로를 막고 있어 어렵게 유격훈련 하듯 통과하고 다시 약간의 가시잡목들을 뚫고 전진하니 청안이공 묘지도 나타난다.

그 묘지지나 잡목과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 위에 쓰러진 거대한 소나무들이 진행을 어렵게 만들고 조심하며 전진하니 굵은 나무들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평이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그 위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걸쳐있어 여간 거추장스럽지 않다.

잠시 후 다시 김해김공 묘지2기 지나 무명묘지들을 통과하니 무한도전클럽의 진강산님 띠지가 걸려있어 살펴보니 등로는 직진의 뚜렷한 등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크게 꺽여 내려가야 할 길주의 지점으로 이제 외동고개가 멀지 않았음을 직감해 보는 시간이다.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보이는 곳에서 우측으로 크게 꺽어 내려가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곧이어 바로 발 아래 도로를 지나는 차량들의 소음이 크게 들리면서 외동고개를 지나는 14번 외남로 2차선 포장도로와 이스트힐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2차선 포장도로가 만나는 갈림삼거리가 바로 발 아래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는데 이곳부터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과 칡넝굴로 인해 삼태지맥 산행 중 가장 힘들게 고생하며 진행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과 칡넝굴들이 뒤돞고 있는 등로를 따라 14번 외남로 2차선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지만 앞을 가로막는 높고 튼튼한 철망으로 인해 내려갈 수 없기에 좌우측을 살펴보지만 어느곳으로 가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선답자들의 산행 트랙을 확인하니 대부분 우측으로 진행을 했기에 따르기로 한다.

하지만 계절적인 요인으로 인해 한발자국 전진하기도 힘든데 좌측 철망을 살펴보면 도저히 넘을 수도 없도 통과도 불가능하니 무조건 가시잡목과 칡넝굴을 뚫고 다시 온 몸에 생채기를 만들면서 너무나 힘들게 진행하니 15미터쯤 진행한 지점 좌측으로 철망 하단부가 약간 들려 있어 무조건 스틱과 배낭을 먼저 통과시키고 낮은 포복으로 힘들께 빠져 나가니 양보라는 도로표지판과 천년옻칠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지점이다.

완전 거지꼴이 되어 조심하며 외남로 도로를 건너 좌측으로 오르니 지하도로 내려가기 직전 우측의 전봇대에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비포장임도가 보여 그곳에서 잠시 물 한모금 마시고 쉬고 있으니 등산객 한분이 도로를 따라 올라 와 이 산객과 같은 방향으로 진행을 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네 주민으로서 맥 삲ㅇ과는 관계없이 건강을 위해 자주 오른다는 소식이다.

이곳 외동고개(14번 외남로 2차선 포장도로, 이스트힐 골프장)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고개로서 지명 이름을 차용해 외동고개로 부르는 듯 보이는데 외동읍은 경상북도 경주시의 가장 동남쪽에 위치한 읍으로 북쪽은 불국동과 월성동, 동쪽은 양북면과 양남면, 서쪽은 내남면과 울산광역시의 두동면, 남쪽은 울산광역시 북구와 접해 있고 형산강의 지류인 남천과 울산광역시로 흘러가는 동천의 최상류에 있는 넓은 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울산광역시에 가까워 공단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증가하면서 외동읍으로 승격되었다.

동경잡기에 도음방도에서 하신까지가 외방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의 외동읍보다는 범위가 좁고 해동지도(경주)에 조선 후기 사료에 외방면으로 기록되어 있다.

1905년에 동쪽 방향의 면 중 바깥쪽에 있다는 뜻의 외동면으로 이름을 바꾸며 1989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는데 2011년 현재 입실리와 모화리, 석계리, 녹동리 등 17개의 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너무나 힘들게 외동고개로 내려 와 도로 건너 진입로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다른 등산객을 만나 앞서거니 뒷서거니 진행하는데 우측 비포장임도로 들어서자마자 봇대가 서 있는 곳에서 비포장임도를 우측으로 버리고 좌측으로 뚜렷하게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잠시 가파르게 오르니 안동권공 부부묘지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나즈막한 잡풀 안부를 넘어 다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잣나무 등로가 이어지더니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는 무명묘지 한기도 다시 통과한다.

다시 조금 더 잡목들을 헤치며 오르니 갑자기 우측에서 올라오는 뚜렷한 좋은 등로를 만나 편안하게 진행하고 잠시 후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조금 더 진행하니 작은 자갈너덜길을 지나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522.6봉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판은 보이지 않는다.

 

잡목들이 우거져 있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 몇장이 걸려있는 도상 522.6봉 지나 조금 더 전진하니 등로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경주풍력발전단지 안내판 지난 이정표에서 만났던 입실리 지나 외동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뒤 저 멀리 묵장산에서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 몇장의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지만 박무로 인해 시야가 제한되어 아쉽기만 하다.

입실리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리로서 비교적 고도가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고 평탄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 북쪽으로 입실천이 흐르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입실 마을 등이 있는데 입실 마을은 신라때 불국사와 모화리의 원원사 사이에 작은 절 78개가 있어 절과 절 사이의 통로로 마치 복도와 같이 만들었다.

불국사에 들어간 사람은 미리이곳의 작은절로 들어와 삭발을 하고 마을을 가다듬었다는데 불도(道)를 닦으러 오는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오는 문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등로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입실마을과 외동읍 방향을 살펴보고 그 뒤로 높게 솟아 흐르는 호미지맥 마루금도 확인한 후 나무들이 사라지고 키가 큰 잡풀들이 우거진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이제 등로 우측 앞인 남쪽과 남사 방향을 살펴보니 삼태지맥 마루금을 따라 길게 설치된 많은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일부는 바람이 없는지 돌아가지 않아 어떻게 전기 생산없이 운영되는지 의아하기만 하다.

진행 방향으로 풍력발전기들을 확인하고 잡풀이 우거진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등로 바로 옆으로는 쇠로 만들어진 전봇대가 이어지는데 가까운 곳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지 기계 소음도 들리기 시작해 궁금증을 가지고 내려가는 시간이다.

 

계속 이어지는 잡풀 옆으로 전봇대가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갑자기 등로 좌측으로 절개지가 나타나고 그 절개지 아래로 풍력발전기 한기와 그 옆으로 발전기들을 관리하기 위한 커다란 창고형 건물 그리고 트럭 한대와 몇명의 작업자들이 보이는데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각 풍력발전기 사이의 시멘트 포장도로 가장자리로 자라는 잡목과 잡풀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한듯 보인다.

풍경을 사진에 담고 잡목들이 우거진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드디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는데 그 포장도로 위에는 깍은 잡목과 잡풀들이 남아 있어 방금 전 작업자들이 작업을 한 흔적들이 보이고 진행 방향인 우측으로는 길게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많은 풍력발전기들이 일렬로 멀리까지 펼쳐져 있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한동안 풍력발전기들을 점검하기 위한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편안하게 진행을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구름이 껴 있어 강렬한 햇살이 비추지 않아 진행에 도움을 받는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안부 지나 비포장임도로 바뀌고 다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언덕으로 오르는데 언덕 좌측 위로 잡목들이 우거지고 굵은 나무들이 일부 보이는 봉우리가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도상 526.1봉인데 그 진입로부터 지독하게 우거진 가시잡목과 잡풀들로 인해 진입 자체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도 그냥 포기할 수 없어 좌측 지독하게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너무나 힘들게 오르니 굵은 참나무 주위로 우거진 잡목들이 보이고 그 옆으로 홀대모 방장이신 에이원님의 띠지가 걸려있는 도상 526.1봉에 도착을 하는데 에이원님 띠지 이외에는 이정판이나 다른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도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가시잡목이 우거진 도상 526.1봉 정상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내려가는 등로 역시 잡목들로 우거져 진행에 어려움을 느낀다.

잠시 그 526.1봉을 다녀오는 사이 함께 진행하던 등산객 한분은 이미 보이지도 않게 저 멀리 걸어 가 이제부터는 함께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어렵게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다 등로 우측인 북쪽을 보니 오늘 산행을 시작한 장항리 마을 뒤로 토함산이 솟아 있고 그 우측 뒤로 호미지맥 마루금이 이어지며 우측 앞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삼태지맥 마루금이 박무속에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장항리는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있는 리로서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전형적인 산촌 마을이며 평탄한 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으나 수원이 부족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억새와 장항 마을 등이 있는데 억새 마을은 전에 억새밭이 무성했었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장항 마을은 마을 앞산의 지형이 노루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노루목 또는 장항이라 이름 붙여지게 되었다.

 

도상 526.1봉을 내려오며 지나 온 북쪽으로 삼태지맥과 호미지맥 마루금을 살펴보고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내려 와 좌측인 남쪽 방향으로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옆으로는 드높은 송전탑이 서 있는데 32번과 39번이라는 두개의 숫자가 달려있는 송전탑이다.

송전탑을 지나 오르다 뒤돌아 보니 길게 설치된 풍력발전기들이 이제 지나 온 방향으로 훨씬 더 많아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도 두개의 풍력발전기가 더 올려다 보여 사진에 담으며 천천히 걸어 오르니 발바닥에 불이 난 듯 약간의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잠시 후 차량 통제용 콘이 세워진 언덕 위로 올라 비포장임도로 바뀌는 등로를 따르니 짧은 비포장임도 지나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있다.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측 옆으로 봉우리가 올려다 보여 지도를 확인해 보니 무명봉으로서 진입로에는 잡목들이 우거져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그냥 마음 편히 도로를 따라 오른다.

잠시 후 언덕 위로 오르니 차량 통제용 콘이 서 있고 그곳을 지나니 짧은 비포장임도가 보이고 그 임도를 지나니 등로는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이어지는데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곳 우측 굵은 나무들과 잡목들이 혼재되어 있는 방향으로 650.2봉으로 오르는 능선진입로가 보여 능선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능선으로 오르니 초반에는 굵은 활엽수 아래 우거진 잡목들이 발목을 붙잡지만 그곳을 빠져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진다.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가지치기한 나뭇더미들이 보이고 곧이어 급경사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우회하는 등로도 보여 좌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이정표가 보이는 도상 650.2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는데 이정판에 누군가 봉서산이란 글자를 남겨 놨는데 아무리 찾아도 봉서산이란 자료는 보이지 않아 어디에서 왔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650.2봉을 지나 남쪽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나무데크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경주풍력발전 2단계람 안내판이 서 있어 살펴보니 이스트홀 골프장 남쪽으로 발전기 9기가 설치된 곳으로 준공 후 20년 동안 운영된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곳에서 등로 좌측인 북쪽을 보니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삼태지맥 마루금 위로 설치된 많은 풍력발전기들이 길게 펼쳐져 있고 좌측 가장 먼 곳으로 희미한 토함산이 보이고 그 우측 앞으로는 조양산과 조항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우측으로 길게 이어지는데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385.1미터인 우산이 나즈막하게 솟아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전망대 우측 앞으로는 이제부터 걸어 내려가야 할 나무계단이 비포장임도로 이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그 우측 뒤 저 멀리 풍력발전기 한기 넘어 희미하게 호미지맥 마루금들이 머리만 내밀고 있는 모습도 보이는데 너무 제한적이라 분간하기도 힘들다.

좌우측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좀ㅇ들을 살피고 사진에 담은 후 나무계단을 타고 내려가니 다시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경주풍력발전 안내판이 다시 보인다.

그 비포장임도를 타고 우측으로 평이하게 걸어가니 다시 눈 앞으로 거대한 풍력발전기 한기가 보이는 곳 우측으로 마우나오션리조트 등산로 안내판과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 능선 방향으로 삼태봉까지 1.6 Km 거리임을 알리는 방향과 거리 표시가 보여 사진 한장남기고 우측 삼태봉 방향으로 산행을 이어간다.

 

이제 좌측 직진으로 이어지는 마리나오션리조트로 갈 수 있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 삼태봉 방향의 능선으로 진입하니 관목의 소나무와 참나무 아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고 그 잡목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는데 그 주위로 몇장의 선답자들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렇게 한동안 뚜렷한 등로를 따라 조금은 빠르게 걸어가니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지나 오르니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이 펼쳐져 있어 잠시 발걸음 멈추고 사진에 담으며 그 이름들을 찾아 본다.

경주시 남양면 골짜기가 길게 저 멀리 읍천항으로 이어지고 그 읍천항 주위로는 제법 높은 아파트 단지들도 보이는데 그 읍천항 좌측으로 요즈음 가장 많은 뉴스를 생산해 내고 있는 월성원자력발전소도 있는데 거리감이 있고 나무들에 막혀 잘 분간되지 않는데 우측으로는 제법 높은 산줄기가 펼쳐져 있어 지도를 찾아 보니 이름이 보이는 산줄기가 아닌 나즈막한 무명의 산줄기이다.

 

등로 좌측인 동쪽으로 예기치 못한 환상의 조망을 즐기고 다시 진행하니 진달래 군락지라는 이정판이 서 있고 굵은 참나무 아래 활엽수 낙엽들이 쌓여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는 너무 잘 나 있어 마음까지 편안하다.

잠시 후 잘려 쓰러진 소나무 가지들이 말라가는 무명안부 지나 선답자의 산행띠지가 걸려 있는 무명봉을 넘으니 이제 삼태봉까지 1.0 Km거리에 관문성까지는 3.1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가 보이는 이정표가 서 이는데 진행한 방향으로는 처음 들어 보는 원원사에서 3.8 Km 걸어 온 거리라는 표시도 보인다.

경주 원원사지터는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사찰터로서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봉서산(鳳棲山) 기슭에 있는 원원사는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開祖) 명랑(明郎)이 세운 사천왕사(四天王寺)와 금광사(金光寺)와 함께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 문두루비법(文豆婁祕法 : 神印宗)의 중심 도량(道場)이었던 유서깊은 절이다.

원원사는 밀교의 후계자들인 안혜(安惠)와 낭융(朗融) 등과 김유신(金庾信)과 김의원(金義元) 및 김술종(金述宗) 등이 함께 뜻을 모아 국가의 평화를 기원하기 위하여 세웠다고 하며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축대를 비롯하여 금당지(金堂址) 등의 건물터, 석등과 부도 등 많은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특히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사천왕(四天王)이 새겨진 동과 서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높은 조각수준을 알려주는 수작이며 아울러 원원사의 당시 품격을 알게 한다.

이 동과 서 삼층석탑은 1931년에 복원된 것으로 보아 원원사는 조선 말기까지도 법등(法燈)이 끊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원사란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통나무 오르막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그 계단을 오르니 굵은 소나무 지나 다시 관목의 활엽수 등로가 이어지는데 이곳은 벌써 가을이 짙어가는지 나뭇잎들이 단풍으로 변하며 노란 등로로 변화시키고 있다.

조금 더 가을 정취를 느끼며 진행하니 벤취쉼터 2개가 나타나고 그곳에 배낭을 내려 준비한 빵과 과일로 허기를 달래고 음료수 한모금으로 갈증까지 해결하고 다시 출발하니 어느 순간 등로가 사라지고 관목의 활엽수들이 무질서하게 자라고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가 나타나 방향만 보고 오르니 준희 선생님이 이정판을 걸어 둔 도상 646.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음지도를 확인해 보니 관문산이란 표시가 보인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646.8봉에서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남쪽으로 진행하니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뚜렷한 내리막 등로가 열리고 곧이어 등로 우측 나뭇가지 사이로 경주시 외동읍 황금들판과 마을들이 보이는데 시야가 좁아 아쉬움을 남기고 계속 전진하니 갑자기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데 살펴보니 삼태봉은 우측 등로인데 좌측 오르막 등로로는 정상석이란 글씨가 보여 궁금증이 생겨 좌측 정상석 방향으로 올라가 본다.

잠시 오르니 바위 뒤로 아담한 삼태봉이란 이정목이 서 있고 금강판도 보이는데 해발고도가 629미터로 표기된 봉우리인데 지도에는 아무 표시가 없는 무명봉이다.

 

해발고도 629미터인 삼태봉 이정목이 서 있는 봉우리를 지나 남서 방향으로 내려가니 잡목등로가 이어지는데 잡목 사이로 등로가 보여 진행에는 어려움이 없는데 잠시 후 좌측으로 양남면으로 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도 서 있다.

양남면은 경상북도 경주시의 동남쪽 동해변에 위치한 면으로 북쪽으로는 문무대왕면, 서쪽으로는 외동면, 남쪽으로는 울산광역시의 북구, 동쪽으로는 동해에 접해 있다.

삼국유사에 탈해왕이 계림 동쪽 하서지촌의 아진포에 도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세주에는 일연이 살던 시절에도 상서지와 하서지의 마을 이름이 남아 있다고 나오고 동일 문헌 금산가리촌의 영역에 상서지(웃섯골), 하서지(아랫섯골), 내아가 기록되어 있다.

하서지는 현재의 양남면 하서리 일대를, 내아는 나아리 일대를 가리키고 동경잡기에는 현재의 양남면과 문무대왕면 및 감포읍 지역이 동해변(東海邊)이라는 1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해동지도(경주)에도 동해남도면(東海南道面) 1개로 나온다.

여지도서(경주)와 호구총수(경주)에는 현재의 양남면과 문무대왕면 지역이 합해져 동해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 계속 동일한 이름으로 나온다.

1906년 장기군의 양남면으로 편제되었다가 1914년 경주군의 양남면으로 다시 이관되었다가 2011년 현재 하서리와 수렴리, 신서리, 서동리 등 15개의 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영남면 갈림삼거리를 지나 뚜렷한 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전진하니 삼태봉까지 0.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를 지나니 다시 관목의 활엽수 등로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고 잠시 후 벤취쉼터 2개가 나타나 잠시 쉬고 있는데 어디에선가 엠프를 크게 켜 놓고 노래를 하고 있어 가까운 곳에 유원지가 있는지 아니면 식당이 있는지 궁금해하며 걸어가니 등로 좌측 옆 공터에 나이 든 아저씨 한명이 노래 연습을 하는지 혼자 엠프를 켜 놓고 다양한 트로트 노래들을 부르고 있다.

그 소음을 피해 조금 빠르게 걸어가니 통나무 오르막 계단이 나타나고 한동안 그 통나무 계단을 오르니 울산21이란 삼각점과 아담한 정상석이 세워져 있는 630미터의 삼태봉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주위를 살펴보니 많은 주민들이 올라 와 쉬면서 음식들을 먹고 있어 정상부와 이정표를 사진에 담고 곧바로 출발한다.

삼태봉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와 양남면 신대리의 접경지대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29m이고 남서쪽으로 7번 국도와 북동쪽으로 904번 지방도로가 지나간다.

산 정상에서부터 중턱까지 신대리성(新垈里城)이 조성되어 있고 산 아래쪽에는 관문성(關門城:사적 제48호)이 있으며 북쪽 산기슭에는 원원사지(遠願寺址:사적 제46호)가 있고 신대리성 동쪽에 마우나오션리조트가 있다.

 

관문성까지 3.5 Km 거리라는 이정표를 확인하고 남쪽으로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에 허브캐슬 지나 석굴암까지 5시간이라는 작은 이정판이 보이고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고속도로 같은 등로가 펼쳐져 있어 이곳 삼태봉이 동내ㅔ 주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산임을 느끼게 한다.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갈림삼거리에 이정표가 서 있는데 우측으로 허브랜드로 갈 수 이는 갈림삼거리로서 좌측의 관문성 방향으로 진행한다.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등로 좌측으로 마우나오션리조트 콘도북편C코스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어 사진 한장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갈림삼거리 이정표를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갑자기 나무들이 사라지고 키가 작은 잡풀들과 싸리나무들만 보이는 좁은 공터가 나타나는데 내려 쬐는 태양열이 뜨겁게 온 몸을 덥히기 시작해 곧바로 그늘속으로 숨듯 진행을 이어간다.

공터를 지나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는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곧이어 청주한공 묘지3기가 나타나고 이어지는 관목의 참나무 등로를 따라 오르니 바위 무명봉들이 나타난다.

바위 무명봉 지나 참나무 등로를 따르니 다시 바위 무명봉이 나타나고 그곳을 통과하니 평이한 참나무 등로 지나 완만하게 오르니 잡풀들이 보이는 헬기장이 도착을 하는데 우측 관목에 선답자의 산행띠지 한장이 걸려 있는 도상 608.1봉인데 산답자들의 산행후기에서 봤던 선생님의 이정판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찾아 보지만 소실이 되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폐헬기장이 되어버린 608.1봉 지나 굵은 참나무와 약간의 잡풀 사이로 뚜력하게 나 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굵은 소나무와 바위들이 보이는 무명봉을 통과하고 이어지는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진다.

그렇게 조금 더 빠르게 걸어가니 삼태봉이 경주시와 울산시 주민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인지 알려주기라도 하듯 오르고 내려가는 주민들과 자주 마주치고 인사 나누기 바쁘게 진행되는 시간이기도 하다.

잠시 후 등로 좌측으로 마우나오션리조트 테니스장 B코스 내려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한쪽으로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이제 삼태봉에서 1.5 Km 지나왔고 관문성까지 1.9 Km 남아 있다는 방향과 거리표시를 확인하고 곧바로 출발한다.

마우나오션리조트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기에 찾아보니 천년 고도 경주 동대산 기슭 210만 평의 광활한 부지 위 자리한 마우나오션리조트는 실내 및 야외 물놀이장, 스파, 사우나, 골프장 등의 복합시설을 갖춘 가족 중심의 휴양형 리조트라는 설명이 보인다.

 

갈림삼거리 지나 조믁 더 완만하게 이어지는 반잘거리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등로 우측으로 조망처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들어 가 흐르는 땀방울 닦으며 살펴보니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이 펼쳐져 있는데 약간의 박무가 껴 있어 아쉬움도 남기지만 이렇게 풍경을 즐길 수 있어 감사한 시간이기도 하다.

제일 먼저 북서 방향을 보니 바로 좌측 발 아래 경주시 외동읍의 모화중소기업단지가 펼쳐져 있고 우측 중앙부로는 모화저수지 지나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좁은 들판 곳곳으로 마을과 많은 산업단지들이 곳곳으로 펼쳐져 있어 이 산객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던 경주시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과 인상으로 남겨지는 시간이다.

저수지 뒤로 봉수산이 보이고 그 뒤로 마석산과 좌측 뒷쪽으로 묵장산과 치술령 방향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 마루금이 생각보다 가깝게 흐르는데 그 사이 저 먼 곳으로 희미한 산둘기와 봉우리가 펼쳐져 이어 지도로 확인해 보니 그 옛날 화랑들이 훈련을 하였고 김유신이 칼로 바위를 쪼갰다는 단석산과 낙동정맥 마루금이기에 잠시 더 상세히 살펴보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이제 눈을 돌려 서쪽을 살펴보니 모화중소기업단지가 바로 발 아래로 펼쳐져 있고 그 좌측 뒤로 경주외동 사랑으로 부영1단지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지고 그 주위로 다시 많은 공장지대들이 펼쳐져 있어 많은 사진에 담아 본다.

그렇게 경주시의 가장 남쪽인 울산시와의 경계부를 살펴보고 그 마을 뒷쪽을 보니 우측 가장 먼 곳으로 낙동정맥의 단석산이 희미하게 눈에 들어오고 좌측 중앙부에서 남쪽 방향으로는 호미지맥의 좌측 칠술영에서 우측의 묵방상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데 오래 전 저 산줄기를 걸으면서는 이곳 삼태지맥이란 이름으로 다시 걷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시절이었다.

 

등로 우측의 전망바위로 올라 잠시 아름다운 경주시 가장 남쪽과 울산시의 가장 북쪽 경계지점의 산업단지와 민가들 그리고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판들을 확인하고 물 한모금으로 갈증을 달랜 후 다시 등로로 복귀해 편안하게 진행하니 여전히 많은 주민들이 등산을 즐기며 거친 숨소리를 토해내고 있다.

잠시 완만하게 이어지는 뚜렷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눈 앞으로 거대한 바위암릉이 나타나는데 등로는 암릉 우측으로 우회하며 통과하도록 되어 있어 사진에 담다 보니 암각이 그려져 있는데 시간이 오래되었는지 선명하지는 못한데 그 앞에 주민들이 쉬고 있어 어렵게 사진 한장 남기고 우회하며 통과한다.

 

바위암릉을 우회해 다시 뚜렷하지만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르막 등로로 진행하니 등로 우측으로 다시 조망처가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경주시와 울산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업단지들과 민가 마을들 그리고 그 주위에 황금빛으로 변해가는 들판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그 뒤로 호미지맥의 치술령과 묵방산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마루금이 다시 옛 추억을 들려 주는데 그때 전국의 산하를 함께 누볐던 산친구들은 이제 모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한 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등로 우측으로 멋진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며 나즈막한 무명안부 지나 다시 오르니 여전히 많은 동네 주민들이 교행하며 지나고 약간의 바위 너덕길처럼 보이는 오르막 등로를 따르다 보니 등로 좌측 잡목 능선 위로 도상 583.5봉이 보여 뚜렷한 등로를 우측 직진으로 버리고 좌측 잡목 능선으로 오르니 많은 거미줄들이 온 몸을 휘감기 시작하고 곧이어 또 다른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그 등로를 건너 다시 완만하게 오르니 관목의 활엽수들 사이로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보이는 곳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표가 걸려있는 도상 583.5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물 한모금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583.5봉 지나 우측으로 뚜렷한 등로를 따르니 다시 이 봉우리로 오르기 전 헤어졌던 뚜렷한 등로와 만나 진행하는데 많은 등산객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어 조심스럽지만 외부에서의 마스크 착용이 풀리면서 예전보다는 자유로워졌지만 여전히 마음의 벽까지는 허물지 못한 듯 보인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553.8 무명봉에 도착을 하는데 좌우측으로 갈리는 갈림삼거리로서 뚜렷한 산책로 같은 등로는 우측으로 길게 우회하며 진행되는데 좌측 언덕 넘어로도 직선의 등로가 있는 듯 보여 좌측의 언덕 넘어 직선의 등로를 따르기로 한다.

 

언덕 넘어 뚜렷한 참나무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우회하는 뚜렷한 등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 지나 좌측으로 등로가 이어지는데 등로 옆 참나무 가지에 삼태봉까지 2.9 Km 거리라는 작은 이정판이 걸려 있어 사진에 담고 좌특으로 진행한다.

이정판을 지나자마자 등로 우측으로 무너진 후 복원하지 못하고 있는 나즈막한 돌담들이 길게 펼쳐지는데 지도에는 옛성으로만 표기된 곳으로 잠시 후 만나야 할 관문성의 성터처럼 보이는 곳이다.

관문산은 동해를 따라 경주에서 울산에 걸쳐 있는 산으로 경주에서 불국사역을 지나 입실을 거쳐 울산에 들어가는 경계에 신라시대의 관문이 있었다.

관문산의 이름은 이로 인해서 생겼으며 여기를 기점으로 천리장성의 별명이 있는 관문산성이 축조되어 산의 능선을 따라 연연 수십리에 이르고 있는데 관문산은 이와 같이 서라벌을 바다에서 오는 적을 방어하는데 중요한 자리에 있는 것이다.

산에 오르면 동해의 푸른파도가 바로 눈앞에 전개되고 옛날의 군사적 의의는 고사하고 등산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며 지금은 산 일대에 큰 목장이 있어 관광에 또 하나의 흥미를 더해 주는 것 같다.

관문산의 북쪽 산을 별도로 나누어서 남봉을 사성산 또는 사영산이라고 하고 북봉을 봉서산이라고 하며 신라 때의 명찰 원원사는 이들 산 밑에 있다.

삼국유사에서 성을 쌓은 연대를 개원 10년이라 하면서 당시의 왕을 효성왕이라고 한 것은 잘못된 일로서 개원은 당 현종의 연호이며 그 10년은 성덕왕 21년에 해당하며 삼국사기의 기록과 일치한다.

33대 성덕왕은 나라를 잘 다스려 태평 세월을 노래하면서도 국방에 대비함을 소홀히 하지 않아 이 관문성에 만리장성을 축조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경주와 울산의 경계를 이루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에 속하는 관문산에는 지금도 산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경주부근에서 남아 있는 산성 가운데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벽, 성문, 창지 등을 잘 볼 수 있다.

산성에서 바라보는 전망 또한 웅대하며 동해로부터 오는 왜적의 행동을 관찰하는 최적의 장소일 것이며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서 축조했다는 축조 목적에 가장 합당한 장소임을 알 수 있다.

 

등로 우측으로 계속 이어지는 무너진 성터 흔적인 돌담을 따르니 내려갈수록 돌담은 더욱 또렷하고 높게 드러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관문성이라는 해설판이 세워져 있어 잠시 읽어 보고 내려가니 삼태봉까지 3.0 Km 거리라는 작은 이정판이 다시 보이고 곧이어 무너진 성터 입구가 보이는데 그 우측 위로 제법 제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성터 흔적이 보여 잠시 올라 조망을 살펴보니 우측으로 호미지맥 남쪽으로 독립된 무명산줄기를 이루고 있는 국수봉과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좌측 뒤 멀리 희미하게 남암지맥의 문수산과 주산인 남암산이 봉긋 솟아 있으며 그 좌측 사진 정중앙 방향으로는 용천북지맥 상 대운산 줄기가 눈길을 잡으며 옛 추억을 들려준다.

바로 앞 무명봉 넘어로는 드디어 경주시를 지나 울산시의 북구에 펼쳐진 거대한 아파트단지들이 내려다 보이고 그 옆으로 동천이 좌측인 동해로 흘러 저 멀리 좌측 중간부분으로 태화강과 합류하는 모습도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그 관문성 위에서 울산시내와 울산시 주변을 지나는 낙동정맥과 남암지맥 및 용천북지맥 등을 살펴보며 그 이름들을 불러 준 후 남쪽을 보니 오늘과 내일까지 걸어 만나야 할 삼태지맥 마루금이 실게 펼쳐진 모습도 살짝 눈에 들어 와 사진에 담고 내려 와 다시 남동 방향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르니 관문성 입구가 나타나고 그곳을 빠져 내려가니 관문성 설명판이 서 있다.

관문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와 울산광역시 울주군 범서읍 두산리 사이에 있는 산성으로 722년(신라 성덕왕 21) 10월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다.

산과 산을 연결하여 길게 축조한 특수 양식의 산성으로 삼국유사에 각간 원진이 3만 9262명의 인부를 동원하여 쌓았고 길이가 6792보 5척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가로 약 50츠에 세로 30cm의 잘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았다.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보면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관문성을 축조한 것이 확실하며 673년(문무왕 13) 9월에 축조한 북형산성과 함께 경주에 침입하는 길목인 영일만과 울산만에 상륙한 왜적을 방어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반월성의 둘레는 1023보인데 관문성은 6792보 5척이나 되어 신라의 만리장성이라고 불리고 현재는 성문터로 보이는 석축과 창고지 및 병사지가 몇몇 남아 있을 뿐이다.

남산성과 관문성의 석벽을 비교해 보면 관문성의 축성술이 훨씬 발달되어 있는데 울산과 경주를 나누는 관문성(일명 만리성)의 동쪽 끝자락 가까이에 가면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돌들을 정연하게 쌓은 멋진 성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성은 행정구역 상 남쪽과 동쪽의 일부가 울산에 나머지는 경주에 걸쳐 있기 때문에 울산사람들은 깃발고개(기령)에 위치했다고 하여 깃발산성의 이두식 한자 표기인 기박산성이라 부르고 경주는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에 걸쳐 있다하여 신대리 산성이라고 명명하곤 한다.

산행이 아니라면 알 수도 없었을 것이고 방문하는 것은 더욱 더 어려웠을 관문성을 통과하며 또 새로운 역사를 배워 본 시간으로 기억된다.

 

관문성 입구를 지나 안내판을 읽어 본 후 내려가니 뚜렷한 참나무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더 진행하니 많은 주민들이 내려가고 있어 속도를 조절하며 천천히 진행한다.

잠시 후 참나무들이 사라지고 하늘이 열리면서 강렬한 태양열이 온 몸을 휘감으며 굵은 땀방울이 쉴새없이 흘러 등로를 적시고 있어 재빨리 그 민둥의 등로를 지나 내려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좌측으로는 넓은 주차장과 카페가 자리하고 있는데 등로는 우측의 직진 등로로 이어지고 있다.

약간의 잡풀들이 보이는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그곳을 지나 다시 보이는 잡풀지대를 통과하니 삼봉사라고 하는 커다란 표지석이 서 있는 주차장과 카페로 들어갈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고 곧이어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갈림삼거리로 걸어가니 도로 우측으로 포장마차들이 보이는 기현 또는 기령이라는 고개에 도착을 해 지나온 방향을 뒤돌아 보며 사진 한장 남긴다.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로 내려서서 남쪽으로 내려가니 갈림삼거리 도로표지판이 나타나는데 직진으로는 농소가는 방향이 좌측으로는 양남 방향이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기령 또는 기현으로 표시되는 고개로서 경주시의 남쪽 끝자락과 울산시의 북쪽 끝자락의 경계지역이기도 하다.

이곳 기령 또는 기현이라는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는 기박산성의병역사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기박산성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방금 전 지나 온 관문성과는 또 다른 산성으로도 알려져 있는 자료도 보이는데 또 어느 자료에서는 관련성이 있는 자료들이 다음과 같이 보인다.

기박산성(깃발산성, 울산 어울길)은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과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에 걸쳐 있는 조선시대 산성이며 관문성과 연관된 성으로 이후 고려 말 조선 전기에까지 이어서 사용된 것이며 산성이 축성된 이유는 주로 왜로부터의 침탈을 막기 위한 것이다.

울산은 왜와 가장 가깝다는 지정학적 요인 때문에 왜에 대한 방비가 대단히 중요하였고 따라서 관문성과 함께 기박산성도 왜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판단된다.

고려 말에서 조선 전기까지 이곳에 경상좌병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곳의 좌병영은 1417년에 지금의 울산광역시 중구 병영성 자리로 옮겼다.

조선 말기인 1871년에는 경상좌병사 윤선응(尹善應)이 남문을 새로 설치하고 성곽 일부를 수축하였는데 중산동 기박산성은 함월산성, 신흥산성, 기박산성, 신대리성 등으로 불린다.

중산동 기박산성은 울산광역시 북구 중산동 산 11번지 관문성의 동쪽 대점과 기령 사이의 산 정상부 해발 고도 502~583m 범위에 위치한다.

중산동 기박산성은 3개의 작은 봉우리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지도상 전체 길이는 1,767m, 면적은 124,117㎡이며 가장 잔존 상태가 좋은 구간은 최대 높이 3.2m 정도로 성벽이 남아 있다.

석축 기법과 성내의 유물로 보아 7세기 후반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고 체성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동쪽 성벽(조선시대 남문지-동문지)의 경우 상단부와 하단부의 축조 양식이 판이하게 다른데 하단부의 경우 150㎝ 높이의 8, 9단까지는 길이 35~55㎝, 높이 30~40㎝의 다듬은 석재를 눕혀서 가지런히 쌓았는데 가장 하단은 10㎝ 정도, 그 상부는 5~10㎝ 들여쌓기 하였다.

상단부 195㎝ 높이에는 20~60㎝ 크기의 할석을 정형성 없이 쌓아서 조악한 축조 수법을 보여준다.

중산동 기박산성의 성곽 유구로는 체성과 문지 5개소, 배수구 3개소, 건물지 14개소(추정 조망대 포함), 집수지 1개소, 명문석 10개, 조망대 등이 있다.

1995년에 영남대학교 문화인류학과에서 지표 조사를 했고, 2015년부터 2016년에 걸쳐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에서 측량 및 현장 정밀 조사를 수행했다.

중산동 기박산성은 울산의 임진왜란사 연구에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유적이며 기박산성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당시의 항일 활동에 대한 재조명을 위해서 학술대회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앞으로 기박산성에 대한 연구는 울산의 임진왜란사 연구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기령 또는 기현이라는 고갯마루는 경주시와 울산시의 경계지점으로 도로 우측인 서쪽으로 몇개의 포장마차들이 보이는데 살펴보니 대부분 등산객들을 대상으로 판매되는 간단한 음식들과 탁배기 및 안부를 파는 음식점들로서 첫번째 포장마차인 자매집으로 들어 가 따뜻한 잔치국수 한그릇을 비우고 커피 한잔까지 마신 후 빈 물통 하나를 채워 나오니 오랫만에 산행 중 제대로 된 점심식사를 한 것 같아 기분 좋게 출발하는 시간이다.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니 도로 좌측 화장실 옆으로 이화초등학교까지 3.8 Km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조금 더 기박산성의병역사복원이 보이는 곳 좌측으로 작은 자갈들이 깔려있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 지도와 트랙을 확인해 보니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며 진행하는 것이 조금 더 원마루금과 맞는 듯 보여 들어가 보지만 금새 약초재배지 철망에 막혀 고생을 하게 되었는데 차라리 기박산성의병역사공원으로 내려가 공원을 구경하고 좌측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것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 본 시간이다.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 좌측으로 비포장임도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동남로를 우측으로 보내고 좌측 비포장임도로 들어가자마자 다시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곳에서 잠시 헷깔려 우왕좌왕하다 작은 자갈들이 깔려 있는 우측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좌측 능선 위로 보이는 비포장임도를 따르니 갑자기 최근에 설치된 듯한 높은 철망이 앞을 가로 막아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해 보여 잠시 그 철망을 따라 좌측으로 돌아가니 철망이 끝이나며 벌목된 능선이 나타나는데 그곳은 다행이 철망이 아닌 그물망으로 되어 있고 높이도 낮아 조심스럽게 그 그물망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농막이 보이는데 이곳은 최근에 새로 건설된 농막으로 약초를 재배하기 위해 개간된 재배지로 보이는데 마침 주인장이 없어 조심스럽게 진행을 이어간다.

 

약초 재배지로 판단되는 작은 농막을 지나 벌목들을 쌓아 둔 옆으로 가시잡목들이 우거진 장소를 넘어 걸어가니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사이로 관목의 활엽수들이 우거지고 거미줄이 촘촘히 걸려있어 진행에 어려움을 느끼는 시간이다.

어렵게 그곳을 빠져 나가니 잠시 뚜렷한 등로가 보이더니 바위들과 굵은 소나무들이 보이는 곳에서부터 등로가 사라져 우측으로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가니 달성서공 부부묘지 지나 우측 동남로 4차선 포장도로에서 분기되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잠시 걸어가니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직진 방향으로는 신흥사 가는 방향이 우측으로는 이 산객이 지금부터 걸어 만나야 할 동대산과 무룡고개로 갈 수 있는 방향과 거리가 표시된 지점으로 많은 자가용들이 주차되어 있고 주민들이 운동을 즐기는 모습이 자주 눈에 들어 온다.

신흥사는 신라 선덕여왕 4년(635)에 명랑조사가 세웠던 건흥사였다고 하며 신라가 관문성을 쌓는 동안 승병 100여 명이 이 절에 기거하였다고도 한다.

임진왜란 때 신흥사의 승려들은 기박산성의 울산 의병과 함께 적과 싸웠는데 당시 왜적의 방화로 법당과 승방이 모두 불타버렸으며 그후 인조 24년(1646) 경상좌병마사 이급이 다시 절을 세워 비로소 신흥사라고 하였다.

이와 더불어 고종 8년(1871) 경상좌병마사 윤선응이 신흥사에 진을 설치하고 보루를 쌓아 신흥별장(新興別將)이라는 별장을 두었다는 기록과 1872년에 제작된 신흥산성도(新興山城圖)에 신흥사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보면 신흥사의 호국성(護國性)은 신라 이래 줄곧 이어져 오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9호로 지정되어 있는 신흥사 구(舊) 대웅전은 웅진전으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을 뿐만 아니라 위치도 현재의 대웅전 자리에서 구(舊) 삼성각 터로 옮겨진 특이한 이력도 가지고 있다.

요약하면 신라 때부터 호국 사찰이었던 신흥사는 임진왜란 때도 왜적과 싸웠고 전쟁 과정에 불 타 새로(新) 지었으며(興) 그래서 신흥사로 불리게 되었다.

다시 건축한 대웅전 말고 본래 있던 대웅전은 문화재자료 9호로 웅진전이 신흥사의 임진왜란 관련 역사는 울산의 충의정신 편찬위원회가 2005년에 펴낸 울산의 충의정신이 잘 설명해 주는데 이 책 54쪽에는 신흥사에는 대웅전 밑에 신성루라는 건물이 있고 이 건물 터는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승병을 지휘 감독했던 군사령부의 건물이 있던 장소로서 현재 이 건물에는 신성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병마절도사를 지냈던 이상국이 직접 쓴 것이라면서 신흥사는 임란 때 울산 지역 일대에 있었던 승병을 지휘했던 군사령부의 역할을 했다 라고 말한다.

이 책은 또 승병 훈련은 절터 앞쪽 정상에 있는 기박산성에서 이루어졌고 임란이 일어난 지 약 한 달 뒤인 1592년(선조 25) 5월 15일에 신흥사 스님 지운이 승군 100여 명을 동원해 사찰 양식 300섬을 기박산성으로 실어 갔으며 이 양은 이곳에 있는 군인들의 한 달분 식량이었다고 기록에 남아 있다 라고 전해 준다.

이곳에서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동대산과 무령고개 방향으로 나 있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삼태지맥 산행을 이어가는데 동대산과 무룡고개는 몇번인가 들었던 이름들이라 친숙한데 이곳이 아닌 다른 산줄기 산행에서 들었던 이름들이라 잠시 기억하며 진행하는 시간이다.

 

우측인 남쪽으로 출발하자마자 동대산 테마임도라는 조형물이 보이고 그곳을 지나니 드넓은 비포장임도 양쪽으로 제법 울창한 단풍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데 어느 단풍나무의 단풍잎들은 벌써 울긋불긋 변색을 시도하고 있어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바ㅟ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큰 고도차이도 없이 걷기도 편안한 비포장임도를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단풍나무들의 잎들을 살펴보며 속도를 높이니 이곳 역시 주민들의 산책로로 손색이 없기에 많은 동네 주민들이 걷고 자전거도 타면서 건강을 지키는 모습들이 보이고 곧이어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꾸니느가 싶더니 또 다시 임도와 도로가 번갈아 나타난다.

그렇게 한동안 편안하게 걸어가니 사각쉼터와 이정표 및 표지석이 서 있는 444미터의 동대산 신흥재라는 곳에 도착을 해 물 한모금 마시며 쉬어간다.

신흥재는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에 있는 고개로서 신흥재라는 명칭은 신라시대인 673년(문무왕 13) 명랑이 창건한 신흥사가 대안동에 있어서 붙은 것으로 보인다.

동대산(해발 446.7미터) 산지 내에 있는 신흥재는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과 대안동을 이어 주는 고개로 해발 444미터 지점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 신흥사 위 낙서암에서 동대산맥을 넘어 매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신흥재 서쪽 매곡동 너머 울산의 젖줄인 태화강(太和江)의 제1지류인 동천강이 흐르고 동쪽으로는 신명천이 대안천(大安川)과 합류하여 동해(東海)로 흘러들고 있다.
신흥재를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이 위치하고 동쪽으로는 대안동이 자리 잡고 있으며 대안동에 있는 함월산(含月山)에 신흥사가 있다.

남쪽으로는 동대산맥과 줄기를 이어 가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삼태봉과 연결되어 있고 우측으로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신대리의 마우나오션컨트리클럽이 조성되어 있다.

신흥재 바로 북쪽에는 기백이재가 있는데 이 고개로 매곡로가 가설되어 매곡동에서 마우나오션리조트로 자동차 통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신흥재 지나 계속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여전히 울창한 단풍나무들이 반겨주고 조그씩 변색되며 계절을 변화를 알려주는 호젓하게 걸어가니 비포장임도로 바뀌면서 언덕 위에 도착을 하는데 임도 옆에는 신흥재에서 210미터 올라 왔다는 이정표가 보이고 다시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는 마루금을 따라 꾸준히 걸어 오르니 도로가 비포장임도로 바뀌는 곳 좌측 옆으로 이정표와 526미터의 파군산이라는 커다란 정상석이 서 있어 지도를 확인해 보니 아무 표시도 없는 지점으로 그곳 좌측 옆으로 525.4봉만 표기된 곳이다.

원래 파군산은 황해남도 강령군 광천리의 서남쪽에 있는 산으로 이 산의 이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황해남도 강령군에 있는 산이 왜 이곳 울산시에 다시 환생하여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며 그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어 아쉽기만 한데 이곳 파군산에 관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강성한 기세와 인자한 정치로 이름을 떨치는 고려에 국토를 바치고 항복할 결심을 다졌는데 자기 의견을 신하들에게 이야기하자 그들 속에서는 의견이 분분하였다.

경순왕의 아들은 충신들의 의사와 민심을 수습하여 힘껏 싸우다 망한다면 할 수 없더라도 어찌 천년의 역사를 가진 신라의 이름과 전통을 하루아침에 그냥 허물겠습니까 하며 견결히 반대하였다.

경순왕은 고립되고 위급한 형세에 처해 있고 원체 강하지도 못한 주제에 나에게 덕까지도 없으니 무고한 백성을 참혹하게 죽이고 산천을 불태우는 짓은 차마 하지 못하겠다고 하고는 곧 시랑 김봉휴를 시켜 고려의 태조 왕건에게 항복할 의사를 알리게 하였다.

이렇게 신라는 고려의 강대함에 위압되고 자기의 약함을 한탄하여 스스로 고려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에 경순왕의 아들은 아버지를 원망하던 끝에 드디어 파군(임금의 아들로서 군으로 봉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을 결심한 후 개골산(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이곳에서 살았다고 하는데 이때부터 파군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표기가 없지만 현대의 다음지도를 확인하니 파군산이란 이름으로 표시가 되어 있어 사진에 담고 비포장임도를 벗어나 좌측으로 진입하니 등로 좌측으로 벤취쉼4개가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니 잡목과 잡풀들이 나타나며 등로 자체가 사라진다.

이 산객처럼 산줄기 잇기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로 들어 와 확인하지 않을 정상이기에 당연할 수 있지만 그래도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도 보이는 그 잡풀 능선을 헤치며 조금 더 걸어가니 굵은 참나무 위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525.4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뒤돌아 나오는데 나오는 등로 역시 등로가 사라지고 잡풀들이 보이는 마루금이다.

 

그렇게 도상 525.4봉을 들려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다시 우측의 사라진 잡풀 등로를 만들어 내려가니 방금 전 파군산 이정석에서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 좌측으로 걸어가니 도로가 갈지자로 왔다리 갔다리 몇번이나 휘돌아 내려가니 도로 옆으로 안전목책과 콘크리트 옹벽들이 보인다.

잠시 후 도로 우측으로 지금까지 봤던 묘지 중 가장 큰 왕릉 수준의 묘지들이 보여 살펴보니 학성이공 묘지로서 통정대부를 지낸 분의 묘지이다.

그 묘지를 지나니 도로 좌측으로 대안동 보리수나무까지 20미터 거리라는 이정판이 서 있는데 유명한 보리수인지 궁금은 하지만 통과하니 별 특징없는 비포장임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가니 사각쉼터와 장승 및 444미터의 동대산 마동재라는 오석의 표지석이 서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해 다시 물 한모금 마시며 짧은 휴식 후 진행을 이어가는데 지도를 보면 다음재로 표기된 안부인데 표지석에는 마동재로 적혀 있어 의아한 마음이다.

다음재나 마동재란 자료가 전혀 보이지 않아 이 다음재가 있는 마을인 매곡동을 찾아보니 매곡동은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으로서 1765년(영조 41)에는 신기리(新基里)라 하였으며 1894년(고종 31) 신지동(新只洞)과 마동(麻洞) 및 괴정동(槐亭洞)으로 나뉘었고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합쳐져 매곡리가 된 뒤 1997년 울산시의 광역시 승격에 따라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이 되었는데 행정동은 농소1동이다.

동 이름은 풍수지리설의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 지세에서 유래하고 괴정과 신기, 마동, 깃대바우, 마봉(馬峰), 신흥재(新興嶺), 섯갓 등의 옛지명이 전하고 동쪽에 동대산(東大山:일명 봉서산)이 솟아 있다.

이 가운데 괴정마을은 마을의 느티나무가 좋은 정자 구실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동대산은 매곡동과 대안동에 걸쳐 있으며 울산공업단지가 들어선 지역이다.

울산시의 매곡동을 찾다보니 마동이라는 자연마을 이름이 보이고 그 이름을 차용해 붙여진 고갯마루 이름이 아닐까 추측해 보는 고개이다.

 

다음재 또는 마동재라는 고개의 사각쉼터에서 물 한모금 마시고 우측의 마동마을로 향하는 샛길도 사진에 담고 출발하니 도로 우측으로 5번과 6번이란 숫자가 함께 붙어 있는 송전탑 지나 다시 한동안 임도와 도로가 이어지더니 매곡과 재안지구의 임도 표지석 지나 임도 좌측 위로 도상 416.4봉이 보여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좌측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활엽수 아래 활엽수 낙엽들만 보이고 잡목과 잡풀들이 사라져 편안하게 오른다.

그렇게 잠시 더 완만하게 거어 오르니 굴곡진 굵은 참나무 위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416.4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다시 우측으로 내려가 방금 전 헤어진 비포장임도로 내려가 진행을 이어간다.

 

다시 만난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한동안 큰 고도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걸어가니 도로와 임도 좌우측으로는 여전히 굵은 활엽수와 단풍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그늘을 만들어 주니 태양열을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가니 임도 우측으로 도상 431봉이 보이기 시작해 오르니 선답자들의 산행 띠지들이 걸려있던 작은 나뭇가지가 꺽여 땅바닥에 나뒹굴고 이어 재생시켜 놓고 잡목들을 헤치며 조금 걸어 올라 이정판을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아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곳을 사진에 담고 조금 더 살펴보니 이정판이 걸려있던 작은 나뭇가지가 꺽여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어 다시 재생시켜 굵고 단단한 나뭇가지에 걸어두고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기고 그 431봉을 지나 우거진 잡목들을 헤치며 내려간다.

 

도상 431봉 지나 다시 우거진 접목들을 헤치며 남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지그까지와는 달리 소로의 뚜렷한 등로와 만나 그 등로를 타고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이정표의 방향표시가 떨어져 나간 이정목만 달랑 서 있는 방금 전 헤어진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고 그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임도 옆으로 작은 돌탑들이 보이고 곧이어 나즈막한 안부에 도착을 하는데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꾸;는 지점으로 지도에는 이곳을 우음재로 표기된 안부이다.

우음재는 울산광역시 북구 매곡동에 있는 고개로서 동대산(東大山, 446.7m)의 북쪽 산기슭에 자리 잡은 고개이며 동대산의 정상으로 오르는 고갯길인데 동대산을 끼고 울산광역시 북구의 매곡동, 호계동, 대안동이 형성되어 있다.

동쪽으로는 동대산 산줄기가 바다 끝으로 이어져 있고 울산의 동해(東海) 앞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으며 서쪽으로는 울산광역시 북구 호계동 시가지가 자리 잡고 있고 남쪽으로는 동화산(東華山)과 무룡산(舞龍山) 산자락과 산맥을 이어 가고 있는데 동대산과 삼태봉 사이의 해발 400m 에서 500m 지점에 습지가 형성되어 있다.

임산도로(林産道路)가 잘 나 있고 정상부에는 헬기장이 있으며 반대편으로 포토 존이 마련되어 있어 하늘 끝자락에 서서 담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멋진 곳이다.

사방으로 겹겹이 쌓인 산맥들이 한 폭의 수묵화를 떠올리게 하고 헬기장 바로 옆으로 조성된 동대산해맞이터는 하늘과 통하는 곳이라 하여 동해의 일출을 볼 수 있어 새해맞이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이다.

 

그 우음재 안부 지나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우측으로 팔각정자와 넓은 잔디밭이 보이고 많은 주민들이 보여 들어가 보니 전망대와 울산67이란 지적삼각점 그리고 큰재정상과 동대산이라는 글씨가 양쪽에 적혀 있는 447미터의 동대산 정상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상으로는 조금 더 진행된 장소인 해발 446.7봉을 동대산이라 하였다.

동대산(동악정 정자, 매곡동과 호미지맥 조망)은 울산광역시의 북구 매곡동과 호계동 및 대안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47m이며 울산읍치의 동쪽에 있는 큰 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 동대산(東大山)은 고을 동쪽 25리에 있고 효성점(曉星岾)은 동대산의 남쪽 지류이며 남목천(南木川)은 고을 동쪽 30리에 있고 물 근원은 동대산(東大山)에서 나왔으며 파련암포(波連巖浦)와 합해서 바다로 유입한다.

열암사(裂巖寺)는 동대산 남쪽에 있고 백련암(白蓮菴)은 동대산 서쪽에 있다 라는 기록에서 계속 지명이 등장한다.

해동지도(울산) 등 군현지도에도 빠짐없이 수록하고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무리롱산(無里籠山)에서 남쪽으로 뻗은 줄기가 남목천(南木川)과 어풍대(御風坮) 사이에 4개의 봉우리로 묘사하고 있다.

 

동대산과 큰재정상이라는 정상석이 세워진 잔디 방향으로 들어가니 우측 옆으로 나무데크로 이뤄진 전망대가 보이고 많은 주민들이 조망을 즐기고 있어 잠시 들어가 살펴보니 서쪽으로 울산시 북구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펼쳐져 있고 그 좌측으로는 구획 정리가 잘 된 마을처럼 또 다른 단독민가들이 자리잡은 모습들이 인상적으로 내려다 보인다.

그 울산시 북구 마을 뒷쪽으로는 아름다운 산줄기들이 겹쳐 보이는데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는 호미지맥의 묵방산과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선명하게 보이고 그 좌측인 사진 가운데로는 울주군의 532.5미터의 연화산이 돋보이고 그 뒤 저 먼곳으로는 희미하게 낙동정맥의 문복산과 고헌산 지나 좌측으로 영남알프스를 이루고 있는 가지산과 능동산 지나 신불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이제 눈을 좌측인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동천을 따라 형성된 울산의 시가지가 좌측 저 멀리 태화강을 만나면서 더욱 휘황찬란하게 발전된 모습들이 보이는데 그 울산시 서쪽을 병풍처럼 둘러치고 있는 거대한 낙동정맥 마루금이 희미하게 펼쳐진 모습도 아쉬움속에 펼쳐져 있다.

그러다 사진 우측 뒤로 솟아 있는 봉우리 하나가 눈에 들어 와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남암지맥 상 문수산으로 그 문수산 좌측 조금 뒤로 보이는 남암산은 흐릿해 보일듯 말듯 솟아 있고 그 좌측 뒤로는 낙동정맥의 정족산과 천성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옛 추억을 들려주며 환상의 모습이지만 거리감도 있고 약간의 박무가 껴 있어 아쉬움도 남기는 시간이다.

 

이제 넓은 잔디밭을 중심으로 동대산과 큰재정상이라는 아담한 정상석과 지적삼각점 그리고 팔각정과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긴 후 빠져 나와 비포장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가니 임도 좌측으로 화장실과 무인산불감시카메라가 보이고 그곳을 지나자마자 커다란 돌탑과 벤취쉼터들 그리고 전망대가 보이는데 그 전망대로 오르기 직전 우측 옆으로 소구부리재(큰재, 장재)라는 설명판이 보여 사진에 담으며 자료를 찾아 보고 설명판을 읽어 본다.

소구부리재(큰재, 장재)라는 이곳의 고개(재) 이름이 재미있는데 호계동 수성마을 홈골에서 강동동 우음과 대안으로 넘어가는 재로서 재가 너무 험하여 옛날 소등에 나무와 풀을 베어 싣고 오르내릴 때 소가 구른다 하여 소구부리재 또는 큰산(동대산)이라 하여 큰재 또는장재라고도 부른다.

 

소구부리재라는 설명판을 읽어보고 그 옆으로 보이는 나무계단을 타고 올라 전망대로 오르니 이제는 울산시 북구의 동쪽 방향이 보이는데 서쪽과는 완전히 다르게 산림이 우거진 무명의 산줄기와 탕근산이 펼쳐져 있고 가운데 저 멀리 동해바다에 접해있는 곳에 고층의 빌딩들 머리가 보이기 시작해 살펴보니 울산시 북구 산하동의 고층 아파트 단지들로서 바로 동해 바닷가에 접해 있는 건물들이다.

그 좌측인 북쪽으로는 경주시 양남면의 산줄기들과 약간의 건물들 머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고 다시 뒤돌아 내려오기 전 전망대 안전목책 위에 설치한 동대산이라는 시그니처가 눈길을 잡아 추억 한장 더 남기는데 지도를 확인해 보니 이곳이 진짜 446.7미터의 동대산으로 표시된 전망대로서 이제 산행을 이어가기 위해 천천히 그 전방대를 내려 온다.

 

내려오기 전 진행 방향인 우측의 남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 능선에 막혀 삼태지맥 마루금은 보이지 않고 잠시 후 만나게 될 무인항공안테나의 높은 탑만 보이고 있어 아쉬움도 남긴다.

울산시 북구의 동해바다 방향으로 펼쳐진 나즈막한 산줄기들과 동해바다에 접해있는 고층 빌딩들의 머리들만 살짝 확인하고 동대산 정상 전망대를 내려 와 육각정자와 소구부리재 설명판을 지나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따라 남쪽 방향으로 진행하니 다시 커다란 돌탑과 이정표가 나타난다.

한동안 더 그 비포장임도를 따라 걸어가니 임도 좌측 잡목능선이 나타나고 그곳으로 올라 잠시 올려다 보니 무인항공안테나가 올려다 보이고 곧이어 가시잡목 지나 뚜렷한 등로가 보이고 많은 가지들이 보이는 참나무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444.8봉에 도착을 하는데 삼각점은 소실되었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삼각점이 소실된 도상 444.8봉을 지나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내리막 등로를 따라 전진하니 동대산 정상에서 0.3 Km 지나왔다는 이정표와 사각쉼터가 설치된 지점 지나 다시 넓은 시멘트 포장도로를 만나 좌측으로 걸어 내려가니 도로 우측 앞 저 멀리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삼태지맥 상 431봉과 그곳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올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사진에 담으며 조금 더 걸어 내려가니 사각쉼터에서 주민 한분이 쉬고 있고 그 앞으로 커다란 돌탑과 갈림삼거리가 보이는데 그 갈림삼거리 가운데에는 이정표도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의 431봉을 잠시 다녀 와 진행하기로 하고 좌측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갈림삼거리에서 우측홈골저수지와 송정박상진호수공원 방향으로 이어지는 넓은 비포장임도를 타고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이곳은 임도 옆으로 굵은 벗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시 우거진 단풍나무 군락지를 지나 무제등과 무제산에 대한 설명판과 사각쉼터 및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해 잠시 휴식하며 물 한모금 마시고 우측인 서쪽 방향으로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도상 431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무제등과 무제산은 가뭄에 무룡산 산신에게 무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울산시 호계동 수성마을 옴골저수지 위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무제등이고 창평동 차일마을에서도 바탕제를 거쳐 무제등으로 오를 수 있다.

 

무제등과 무제산에 대한 설명판이 보이는 옆 사각쉼터에서 배낭 내려 음료수 한모금과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다시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서쪽 방향으로 걸어가니 우측으로 관목의 참나무들이 보이는 곳에서 임도를 좌측으로 버리고 우측 잡목능선으로 들어가니 거미줄 지나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들이 보이고 그 앞으로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는 도상 431봉에 도착을 하는데 국토지리원 지도에는 431봉으로 표기되어 있지만 다음지도에는 무제산으로 표기된 산으로 이정판은 물론 선답자들의 산행띠지 한장 보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기고 사진 몇장 담은 후 다시 무제등과 무제산 설명판이 보이는 곳으로 뒤돌아 내려간다.

 

사각탁자에서 잠시 쉬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한번 더 무제등과 무제산에 대한 설응급상황시 명판을 읽다 보이 그 옆 굵은 소나무에 응급상황시 위치판이 보이는데 동대산 13이란 표시가 보여 사진에 담고 이제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내리막 등로를 따라 산행을 이어간다.

잠시 후 쓰러져 등로를 막고 있는 굵은 고사목 지나 계속 가파르게 이어지는 굵은 참나무와 소나무 아래 잡목들 사이로 보이는 가파른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다시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서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을 하고 우측으로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사각탁자와 저승재에 대한 설명판이 서 있는 곳에 도착을 하는데 지도에는 아무 표시도 없는 곳으로 저승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저승재는 안부 무룡산의 한 날개라하여 날개뱅이에서 북쪽으로 진입하여 강동동의 우음과 아홉사리로 넘어가는 재를 말하는데 비탈길이 험난하고 벽(벼름박)과 같고 떨어지면 저승간다 하여 저승재라고 한다.

 

저승재 지나 다시 도로 우측으로 보이는 능선 방향으로 진입할 수 있는 등로가 보이고 그곳으로 오르니 식흔들이 어지럽게 널려있고 계속 이어지는 뚜렷한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굵은 참나무가 보이는 무명봉 넘어 다시 평이하고 완만한 내ㅣ막 등로를 따르니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우측으로 걸어 오르니 우측으로 사각나무탁자가 보이고 곧이어 좌측으로 커다란 돌탑2개와 나무탁자가 설치된 모습이 보이고 진행 방향 앞으로는 갈림삼거리가 나타나는데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이정표를 살펴보니 대안임도삼거리로서 우측으로는 무룡고개로 가는 방향이 좌측으로는 대안마을까지 7.1 Km 란 거리와 방향 표시가 보이는데 처음에는 우측으로 무룡고개 방향으로 진행하려 했으나 자세히 보니 좌측 대안마을 방향이 맞는 마루금으로 우측 무룡고개 방향은 살길이 아닌 마을 동네길를 통해 무룡고개로 갈 수 있는 도로였다.

대안동은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으로서 1455년(세조 1)에는 대한리(大閑里)라 불렀고 정조 때는 상대안리(上大安里)와 하대안리로 나뉘었으며 영조 때는 구암리에 속하였다.

1810년(순조 10)과 1867년(고종 4)에는 대안리라 불렀고 1894년(고종 31)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대안동이 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경상북도 양남면(陽南面) 신대동(新垈洞) 일부를 합하여 대안리가 되었다.

1997년 울산시의 광역시 승격에 따라 울산광역시 북구 대안동이 되었으며 행정동은 강동동이다.

신안(新安)과 어전(於田) 및 갈밭구지이 그리고 우음이 등의 옛마을과 닭기미산(鷄彌山)과 파군산(破軍山), 동대산 등의 산 다음밝골(多音泊谷)과 아홉사리 등의 골짜기와 저승재가 있다.

어전마을은 원래 경상북도 양남면에 속한 마을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대안리에 흡수된 지역인데 닭기미산은 산세가 닭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고 저승재는 고개가 매우 험하므로 떨어지면 죽어서 저승에 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적으로는 1904년(고종 41)에 내린 제망녀정려각이 전하고 문화재로는 대안동신흥사구대웅전(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9)이 있다.

 

대안임도 삼거리에서 좌측 시멘트 포장도로를 타고 대안마을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도로 좌우측으로 관목의 홀엽수 위로 칡넝굴들이 우거져 있는데 누군가 잘 정리를 한 흔적들이 보여 아직도 관리가 되고 있는 도로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사각탁자가 나타나고 곧이어 도로 우측으로 돌담이 보이기 시작하는 곳 우측 위로 올라가야 하는데 가시잡목들이 우거져 능선으로의 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래도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져 올라가는 곳 우측 돌담 넘어 뚜렷한 등로가 열리고 그곳으로 오르니 경사도가 점점 급해지며 키가 작은 가시넝굴들이 우거져 등산바지를 뚫고 들어오는 통증이 심해지기 시작하고 그렇게 잠시 더 걸어 오르니 굵은 참나무 위에 준희 선생님이 걸어 둔 이정판이 보이는 도상 402.8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402.8봉 지나 넓은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르니 활엽수 낙엽이 푹신하게 깔려있는 완만한 내리막 등로로 이어지고 곧이어 무명안부 지나 오르니 묘지 지나 약간의 잡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잠시 후 관목의 참나무 등로 지나 다시 등로 양쪽으로 키 작은 잡목과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곧이어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422.2봉으로 오를 수 있는 오르막 등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마루금이 뚜렷하게 내려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좌측 오르막 등로를 따라 오르니 다녀간 선답자들이 많지 않은지 가시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지기 시작하고 정상에 도착을 하니 자주 만났던 선답자들 띠지 몇장이 걸려있고 금곡님과 무영객님의 산행띠지에는 고도를 적어 놔 이곳이 422.2봉임을 알게 해 놨다.

 

선답자들의 산행띠지들이 걸려있는 도상 422.2봉에서 사진 한장 남기고 다시 갈림삼거리로 뒤돌아 내려 와 이제 남쪽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는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관목의 참나무 아래 키작은 잡목과 잡풀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과 ㅓㄱ인 나뭇가지들이 등로 위에 떨어져 말라가고 있는 모습들도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잠시 더 걸어 내려가니 조금 더 굵은 참나무와 관목의 활엽수들 아래 가시잡목과 잡풀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이어지고 한동안 더 내려가니 칡넝굴까지 보이더니 다시 방금 전 헤어졌던 시멘트 포장도로와 만나는데 이곳에서는 그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보이는 묘지 방향으로 진행이 이어진다.

이곳은 울산시 북구 무룡동과 창평동의 경계지점으로창평동의 제일 남쪽이자 무룡동의 제일 북쪽 경계로서 창평동은 울산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으로 명칭유래를 보면 창평(倉坪)은 마을에 창고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오창들 또는 창들이라 하는 원지(院旨)에 있는 마을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창평동(倉坪洞)은 1469년(예종 1)에는 자골리(自谷里)로 불렀고 1729년(영조 5)에는 차일리라고 하였으며 1765년(영조 41)에는 차일리와 원지리로 나뉘었다.

1804년(순조 4)에는 차일과 원지였다가 1867년(고종 31) 차동, 차서, 원지의 3개 마을로 갈라졌다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이를 합한 후 창평리로 하고 농동면과 농서면을 통합한 울산군 농소면의 관할에 두었다.

1962년 6월 울산군이 울주군으로 개칭되어 울주군 농소면 창평리가 되었다가 1991년 울주군이 울산군으로 개칭되었고 1995년 1월 울산시와 울산군이 통합되며 기존 울산군 지역을 관할하는 울주구가 신설되어 울주구 농소면 창평리가 되었으며 같은 해 3월 농소면이 농소읍으로 승격되었다.

1997년 7월 15일 울산광역시 출범과 함께 농소읍이 신설된 북구에 편입되어 행정동인 농소1동, 농소2동, 농소3동으로 개편되었고 창평리는 농소1동 관할의 울산광역시 북구 창평동이 되었다.북쪽은 호계동, 동쪽은 대안동과 무룡동, 서쪽은 상안동과 시례동, 남쪽은 송정동과 접하고 서쪽 경계로 동천강이 흐르고 남쪽 경계로 송정천이 흐른다.

동쪽으로 동대산 능선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도덕골저수지와 목동지, 갈등못, 원지저수지, 남골저수지, 도덕골, 밸방재, 칼등만디, 오창들 등이 있다.

 

울산시 북구 창평동과 무룡리의 경계지점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건너 묘지가 보이는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갔다 오르니 무명묘지 2기가 나타나고 그 묘지 뒤로 오르니 생각보다 뚜렷한 등로가 나 있다.

잠시 후 포항 산꾼들의 산행띠지와 안동막가의 산행띠지 2장이 걸려있는 무명봉 넘어 다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방금 전 통과한 시멘트 포장도로와 다시 만나 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걸어가니 다시 도로를 비포장임도로 바뀌기 시작한다.

잠시 후 비포장임도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를 수 있는 등로가 나타나고 살펴보니 무룡동과 송정동의 경계지점으로 계속 비포장임도로 진행을 해도 되지만 지도를 보니 잠시 후 능선 상 371.6봉을 그냥 지나칠 수 있기 때문에 몸은 피곤하지만 산행 후 후회하지 않기 위해 우측 능선 방향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참나무 아래 잡풀들이 우거져 있고 그 우거진 잡풀 사이로 뚜렷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는데 오르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참나무들이 보이는 무명봉 넘어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는데 잡풀들이 제거된 무명묘지가 보이는 곳 좌측으로 방금 전 헤어진 시멘트 포장도로가 바로 옆으로 지나고 있는 지점이다.

그곳 안부 지나 다시 오르막 등로를 타고 걸어 오르니 콘크리트 사각탁자가 보이고 고사목으로 변한 굵은 소나무들 지나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371.6봉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 남긴다.

 

도상 371.6봉을 지나 출발하자마자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그 묘지 지나 완만하게 내려가니 참나무 등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그렇게 쳥이한 등로를 타고 전진하니 갑자기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고 해오름봉이란 정상판이 보이는 나무 아래 울산429란 삼각점이 박혀있는 347.9봉에 도착하는데 지도를 살펴보니 아무 표시도 없는 무명봉인데 왜 이런 이름과 고도 표시가 되어 있고 삼각점까지 박혀 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 보지만 해오름봉과 347.9봉에 관한 자료를 찾지 못해 아쉬움만 남는데 여러가지 궁금증만 남기고 그 해오름산이란 347.9 삼각점봉을 출발해 진행을 서두른다.

 

정상판과 이정판 및 삼각점이 박혀 있는 347.9 삼각점봉을 지나 솔잎들이 말라가진 관목의 소나무 아래 잡풀들이 우거진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눈 앞으로 칡넝굴들이 우거진 지점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진행 방향인 남쪽 나뭇가지 사이로 이제부터 걸어 만나야 할 337.9봉 지나 우측 뒤 저 멀리 방송국 통신탑들이 설치된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인 무룡산이 살짝 보이기 시작해 몇장의 사진에 담고 내려가니 아음이 편안해지며 오늘 산행도 그 끝자락이 보이는 듯 하다.

 

해오름봉에서 내려오며 진행 방향인 남쪽으로 펼쳐진 337.9봉과 무룡산을 살펴보고 계속 이어지는 굵은 소나무 아래 잡풀들이 우거진 사이로 뚜렷하게 나 있는 등로를 타고 내려가니 다시 넓은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자도에는 달현재로 표기된 장소로서 좌측에서 주민 한분이 운동을 하면서 걸어 오르고 있어 인사 나누고 먼저 보낸 후 사진 몇장 더 남기고 우측인 남쪽 방향으로 임도를 타고 산행을 이어간다.

달현재에 관한 자료를 찾아 보지만 보이지 않고 달현재가 속한 송정동에 달현재에 관한 단어가 나타날 뿐이라 송정동을 찾아보니 송정동은 울산광역시 북구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명칭유래를 보면 송정(松亭)은 대리(大里)의 서남쪽에 있던 돈대에서 유래한 이름이고 지금은 철도가 놓이면서 분단되었으나 이 돈대에 큰 노송들이 많이 우거져 정자와 같은 구실을 하였으므로 소나무 정자라는 의미로 송정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송정동(松亭洞)은 1729년(영조 5)에는 농소면의 송정방(松亭坊)이었다가 1765년(영조 41) 송정리와 지당리, 정조(正祖) 때와 1867년(고종 4), 1894년(고종 31)에는 송정리, 지당리, 덕동리로 나누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이 3개 마을에 원지동과 화산동의 일부를 합한 후 송정리로 하고 농동면과 농서면을 통합한 울산군 농소면의 관할에 두었다.

1962년 6월 울산시에 편입되어 병영출장소 관할이 되었다가 1972년 10월 31개 행정동을 개편할 때 화봉동과 송정동을 합하여 송정동을 설치하였으나 1976년 4월 병영출장소가 폐지되었다.

1985년 7월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울산시 중구 송정동이 되었다가 1997년 7월 울산광역시 출범과 함께 신설된 북구에 편입되어 울산광역시 북구 송정동이 되었다.

북쪽은 창평동, 동쪽은 무룡동, 남쪽은 화봉동, 서쪽은 시례동 및 중구 장현동과 접하고 북쪽 경계로 송정천이 흐르는데 서쪽 경계로 흐르는 동천강과 합쳐지며 송정들, 도덕골, 달현재 등이 있다.

 

달현재 안부 지나 계속 이어지는 비포장임도를 따라 완만하게 걸어 전진하니 등로는 다시 좌측 직진으로 가는 비포장임도를 버리고 우측 뚜렷한 능선으로 오르며 진행된다.

편안하게 이어지는 능선 등로를 따르니 다시 벤취쉼터 4개가 설치된 공터를 지나 방금 전 헤어진 비포장임도를 다시 만나는데 임도 건너 능선 방향으로도 뚜렷한 등로가 보이는데 그 옆으로는 우측 임도 방향으로 무룡고개까지 4.9 km 남아 있다는 거리와 방향 표시가 반가운 시간이다.

그곳에서 도로 건너 능선으로 진입하며 이정표를 보니 무룡산정상이란 방향표시만 보이고 거리 표시는 없는 이정표로서 그곳을 지나 오르니 등로는 생각보다 뚜렷하게 나 있다.

잠시 후 무명묘지를 지나 우측 사면 등로처럼 나 있는 뚜렷한 등로를 타고 부드럽게 오르니 오느 순간 등로 옆 관목의 활엽수에 준희 선생님의 이정판이 걸려있는 337.9봉에 도착을 하고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한다.

 

이정판이 걸려있는 도상 337.9봉 지나 우거진 잡목 사이로 뚜렷하게 정리된 통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다시 방금 전 헤어진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는데 이제 무룡산까지 2.5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세워져 있어 사진에 담는 동안 주민이 산책을 즐기는 모습도 눈에 들어 온다.

그곳에서 비포장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걸어가며 산행을 이어가는데 무룡고개까지 4.1 Km 거리라는 이정표가 서 있는 지점에서 다시 좌측의 능선 방향으로 무룡산정ㅅㅇ 가는 방향을 따라 능선으로 오르며 산행을 이어가게 된다.

 

좌측 무룡산정상 방향으로 나 있는 뚜렷한 능선으로 진입하니 굵은 소나무와 관목의 활엽수 아래 잡목과 잡풀들이 우거진 사이로 뚜렷한 오르막 등로가 이어지고 그렇게 둔덕 넘어 조금 더 부드럽게 걸어 오르니 등로 좌측으로 사각탁자 하나가 나타나더니 금새 등로 옆으로도 사각탁자 하나가 더 설치되어 있다.

그 사각탁자 2개를 지나 굵은 소나무와 잡목등로를 따라 평이하게 전진하니 또 다시 방금 전 헤어진 넓은 비포장임도와 만나 무룡산정상까지 2.0 Km 남아 이다는 좌측 방향으로 임도를 타고 진행을 이어간다.

사각탁자 지나 비포장임도가 시멘트 포장도로로 바뀌고 잠시 후 도로 좌측 능선 방향으로 원 마루금이 보이지만 금새 다시 도로로 내려오기에 마음 편히 도로를 타고 전진하니 좌측에서 내려오는 등로 하산로를 지나자마자 다시 등로 좌측으로 무룡산 숲길을 통해 무룡산정상으로 오를 수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좌측 나무다리 건너 능선으로 오르며 본격적인 무룡산 정상으로 진행을 이어간다.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니 이곳 역시 굵은 소나무 아래 관목의 활엽수들이 보이고 그 아래 키작은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사이로 뚜렷한 등로가 열리는데 무룡산이 생각보다 울산 주민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지 등로는 잘 정리되어 있다.

그렇게 한동안 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다시 굵은 땀방울들이 등로를 적시기 시작하고 다시 만나는 갈림삼거리 비포장임도에서는 좌측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완만하게 걸어 오른다.

잠시 후 둔덕 넘어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진행 방향 앞쪽으로 무룡고개 정상의 방송국 통신탑들이 지척으로 다가 와 있고 다시 갈림삼거리의 비포장임도에 도착을 하는데 이정표와 커다란 돌탑 지나 현대자동차회사에서 세운 단푼산길이라는 커다란 표지석이 반겨주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한다.

 

이제 동대산에서 7 Km 지나왔고 진행 방향으로 무룡산까지 1.5 Km 남아 있다는 이정펴 옆으로 나 있는 통나무 계단을 타고 능선으로 오르니 굵은 소나무 아래 사각탁자가 보이는데 벌써 산속의 공기가 차가워지며 주민들은 보이지 않는다.

사각탁자를 지나자마자 사각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그 계단이 끝나면서 잠시 평이한 비포장임도 같은 등로를 따라 완만하게 오르니 다시 사각나무 계단이 길게 이어지고 있다.

한동안 그 사각나무 계단을 지나 조금 더 걸어 오르니 이정표와 무룡산 진달래 군락지 설명판과 시멘트 벤취쉼터 2개가 보이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고 배낭 내려 남아 있는 사과 하나와 물을 마시고 좌측의 직진 등로를 따라 무룡산정상부로 향한다.

 

갈림삼거리 지나 조금 더 완만하게 걸어 오르니 갑자기 억새 능선이 펼쳐지고 그 억새능선을 따라 무심으로 걸어 오르니 헬기장 같은 넓은 공터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하얀 억새꽃이 만개하여 미풍에도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인상적인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잠시 더 그 공터를 지나 끝까지 걸어가니 등로 좌측으로 벤취쉼터들이 보이고 그 끝자락에 비포장임도가 지나는 갈림삼거리 이정표에 도착을 하는데 좌측으로 장등마을과 무량사로 갈 수 있는 지점으로 무룡산 정상은 우측 등로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신현동 장등마을은 울산광역시 북구에 있는 동으로 1729년(영조 5)에는 장등리(長登里)라 하였으며 정조 때는 장등리와 구남리(龜南里), 1867년(고종 4)에는 장등리와 구남리 및 신전리(新田里), 1894년(고종 31)에는 장등동과 구남동 및 신전동으로 이루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3개 동을 합하여 신현리가 된 뒤 1997년 울산시의 광역시 승격에 따라 울산광역시 북구 신현동이 되었고 행정동은 강동동이며 동 이름은 신전동의 신과 장등을 뜻하는 현(峴)을 따서 붙인 것이다.

장등과 불매골, 쟁명골, 장등말릉, 양지, 구남, 못안(池內) 등의 옛마을과 밀양산 및 무재등 등의 산이 있다.

불매골은 철을 녹인 곳, 쟁명골(長命谷)은 장수하는 거북처럼 생긴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무재등에는 가뭄에 무룡산의 산신에게 기우제를 지내던 제당터가 있었다.

 

장등마을과 무량사 갈림삼거리를 지나 우측으로 걸어가니 억새가 우거진 헬기장 지나 진행 방향으로 여러방송국의 통신탑들이 솟아 있으며 우측으로는 이곳을 거친 자 조국을 지키리라는 커다란 표지석도 보인다.

그곳을 지나니 등로 좌측으로 녹슨 철망이 펼쳐지는데 그 철망에는 KBS 울산방송국에서 난시청 해소를 위한 시설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이고 우측으로 돌아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다시 우측에서 오는 등로와 만나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이곳 역시 무룡산 진달래 군락지 안내판과 이정표 및 시멘트 벤취쉼터가 보이는데 방금 전 헤어진 갈림 삼거리에서 우측 시멘트 벤취쉼터 방향으로 올랐으면 만나는 갈림삼거리이다.

 

갈림삼거리 지나 녹슨 철망을 좌측에 두고 우거진 억새능선을 따라 뚜렷하게 나 있는 완만한 오르막 등로를 따르니 차량 통제용 바리게이트가 2개 연속으로 설치되어 있고 그곳을 통과하니 승용차가 올라 와 있는 넓은 공터의 갈림삼거리 지나 야재마대가 깔려 있는 우측 능선으로 오르니 넓은 공터에 정상석과 울산69이라는 지적삼각점이 박혀있고 서쪽 방향으로 산불감시초소와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는 무룡산 정상에 도착을 해 사진과 추억 한장남긴다.

무룡산(451봉)은 울산광역시의 북구 연암동과 화봉동 및 신현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해발고도는 451m이고 동대산과 염포산으로 이어지는 산정의 하나로 현재는 무룡산(舞龍山)으로 부르는데 주민들은 매봉산(買峰山)으로 부르고 있고 울산의 진산으로 산에서 바라본 울산공단 야경은 울산 12경에 지정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 무리용산(無里龍山) 고을 동쪽 24리에 있는데 진산(鎭山)이다 라는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고 광여도(울산) 등의 군현지도에는 무리룡산(無里龍山)으로 조선지도(울산)에는 두무룡산(豆無龍山)으로 청구도에는 두무룡산(頭無龍山)으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

대동여지도와 대동지지에는 무리롱산(無里籠山)으로 기록되어 있고 대동여지도에는 울산읍치의 북서쪽 방향으로 어련천 동쪽에 위치하며 경주에서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 줄기가 봉서산을 지나 무리롱산으로 이어져 5개의 봉우리로 묘사되어 있다.

무룡산에서 무리(無里)는 물(水)을 의미하는데 무리룡산은 물룡산으로 이는 주룡산(主龍山)에 물을 빌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무룡산은 기우제의 옛말인 무우제(舞雩祭)의 무(舞)자와 용(龍)자가 합쳐진 이름으로 주룡산의 무제를 지내는 산이라는 의미로 근대에 와서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일설에는 무룡산을 무릉산이라 하였으며 동화산과 무릉산 사이의 계곡을 무릉도원이라고 불렀다고 하고 무릉도원은 도원서당이 있었던 곳이어서 서당골이라고 불렀으며 근처에 있었던 절 이름도 무릉암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잠시 무룡산 정상에 머무는 동안 몇명의 가족단위 주민들이 올라 와 일몰과 야경을 구경하기 위해 기다리기도 하고 추억 한장 남기고 곧바로 내려가기도 하면서 이곳이 이 산객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울산시민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음을 느꼈던 시간이다.

사진과 추억을 남기고 서쪽 방향으로 보이는 전망대 위로 가 주위 풍경을 살펴보며 그 이름을 불러주는 시간은 그저 환상의 시간 그 자체였다.

제알 먼저 북서 방향을 살펴보니 사진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오늘 이 산객이 걸어 온 삼태지맥 마루금이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길게 펼쳐져 있고 그 바로 좌측 아래로는 경주시 외동읍에서 울산시 북구로 이어지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와 산업단지들이 동천을 따라 길게 형성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 온다.

그 마을과 산업단지 뒷쪽으로는 오늘 하루 종일 바라보며 걸었던 호미지맥 상 묵방산과 치술령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정상에 박무인지 구름을 쓰고 벌써 그 아름다운 모습을 숨기기 시작한다.

 

이제 전망대 바로 위에서 서쪽을 살펴보니 바로 앞으로 나즈막한 무명산줄기가 남북으로 길게 펼쳐져 있고 그 산줄기를 지나자마자 거대하게 펼쳐진 울산시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그 아파트 단지 뒷쪽으로는 남암지맥의 문수산과 남암산이 사진 우측 가장자리 방향으로 흐미하게 보이고 그 뒷쪽 가장 먼곳으로는 구름속에 하루해가 저물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바로 아래로 몇번인가 만났던 낙동정맥과 영남알프스를 이루고 있는 우측의 가지산과 능동산에서 간월산과 신불산 지나 좌측 가장 가장자리 방향으로 영축산 방향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산줄기가 하늘금인지 산줄기인지 분간하기 힘들게 길게 펼쳐진 모습도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서쪽으로 환상의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오래된 기억을 소환하며 영남알프스와 낙동정맥 마루금도 확인한 후 눈을 남서 방향으로 돌리니 드디어 거대한 울산광역시의 중심부인 산업단지 지나 번화가가 내려다 보이기 시작하고 바로 알 아래 앞으로는 드넓은 미포조선과 현대중공업이 태화강을 따라 길게 펼쳐진 모습이 환상으로 다가 와 있다. 

울산광역시는 태화강을 중심으로 시가지가 형성되었고 방어진, 염포, 장생포항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왔으며 서쪽으로는 경상남도 밀양시, 경상북도 청도군,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경상남도 양산시, 북쪽으로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접하고 있다.

태백산맥이 남북으로 종주하여 고헌산, 가지산, 신불산, 운문산 등의 준령이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고 태화강 하류에는 현재 신시가지로 변한 삼산평야가 있었으며 경주 방면인 북에서 내려온 동천은 태화강과 합류하여 울산만으로 흐르고 있다.

울산만에는 국가 수출 1위 항만인 울산항이 자리 잡고 있으며 울산본항, 미포항, 장생포항, 울산신항, 방어진항, 정자항 등이 있는데 이들 항만을 중심으로 해안지역은 공업용수가 풍부하고 지반이 경암질로 되어 있어 공장건설은 물론 산업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천혜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지난 1995년 울산시와 군이 통합되어 면적이 1,061.54㎢이며 도농복합도시에 걸맞은 도시공간을 조성하여 도시와 농촌이 균형적으로 발전하는 환경친화적 도시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경부고속국도 등 3개의 고속국도와 5개의 일반국도, 철도, 항공, 항만 등 사통팔달의 교통망 확보로 산업의 물류경쟁력을 강화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이러한 지리적 여건으로 울산은 지난 50년 가까이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해 온 세계적 산업도시이며 고속철도 역사 개통에 이어 앞으로 20선석의 신항만을 울산항에 추가 건설하여 21세기 국제무역도시로 발돋움하는 한편 새로운 항만경제권을 형성해 나갈 계획이다.

울산지역은 세계적 문화유산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등 이름난 문화재들이 곳곳에 분포되어 있고 영남알프스로 유명한 가지산에서 신불산과 간월산 및 진하와 일산 해수욕장, 강동과 주전 해변, 대왕암 공원 등 산악과 해안이 공존하는 천혜의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동북아 대륙에서 가장 해가 먼저 떠오르는 간절곶은 일출의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울산대공원, 울산체육공원, 태화강 십리대숲 등 도심 공원들은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죽음의 강에서 생명의 강으로 부활한 태화강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조성하여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울산광역시의 중심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제 눈을 남쪽으로 돌리니 방송국 통신탑 우측으로 길게 펼쳐진 삼태지맥 마루금이 우측의 태화강을 따라 그 끝자락까지 이어지는 풍경이 보이고 그 끝자락에 드디어 희미하게 태화강이 동해바다에 합류하는 화암추등대가 있는 곳이 보일듯 말듯 보이고 있다.

내일 하루 더 걸으며 만나야 할 마루금과 고운 추억을 남겨야 할 지점들이기에 조금 더 세심하게 살펴보고 태화강을 확인해 본다.

태화강은 울산광역시를 서에서 동으로 관통하면서 동해로 흘러가는 강으로 한 줄기는 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백운산(白雲山) 탑골샘에서 발원해 구량천(九良川)과 반곡천(盤谷川) 등을 합류하고 대곡천(大谷川)이라고 불리며 사연호(泗淵湖)를 이루며 다른 한 줄기는 상북면 덕현리에서 동류하는 물줄기가 언양을 지나면서 범서읍 사연리에서 합류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시내를 관통하여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에서 발원한 동천(東川)을 합하면서 울산만에 유입한다.

하천 이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울산시 태화동에 세웠다는 태화사(太和寺) 앞으로 흐르기 때문에 태화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울산)에는 성 서남쪽에 강이 있으니 이것이 대화강(大和江)이고 길이가 6에서 7리나 되며 강물이 넘실넘실하여 만경이 한결 같이 푸르고 붉은 언덕과 푸른 벽의 그림자는 마치 거울 속에 거꾸러지는 것이 고호두(顧虎頭)의 감자(甘蔗) 먹는 것과 같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지도서(울산)에는 태화강(太和江)은 태화루 아래에 있다 라고 읍지에 빠지지 않고 모두 수록하고 있다.

언양을 비롯한 서부 지역에서는 이 강을 남천이라고 일컫고 범서면 일대에서는 굴화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언양)에는 남천(南川) 현의 남쪽으로 1리에 있으며 물의 근원은 석남산에서 나와서 울산군(蔚山郡) 대화진(大和津)으로 흘러 들어간다 라고 되어 있으며 각종 용수의 공급을 위해 강유역에 사연댐과 대암댐 등이 건설되어 있다.

 

한동안 더 그 무룡산 정상에 머물며 많은 풍경과 조망들을 즐기고 사진과 추억을 남긴 후 전망대 앞으로 이어지는 억새 사이로 뚜렷한 등로를 따라 걸어가니 등로 우측으로는 여전히 아름다운 가대한 울산광역시와 낙동정맥 마루금이 자꾸만 눈길을 사로 잡는다.

잠시 후 관목의 활엽수와 잡목들이 하늘을 막아주는 그늘을 만드는 등로가 이어지고 잠시 후 무룡고개까지 1.3 Km 남아 있다는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해 사진 한장 남기는데 이곳 역시 울산시민들이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녹슨 철망을 따라 조금 더 걸어 전진하니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곧이어 갈림삼거리에 도착을 하는데 우측으로는 mbc 울산방송국 건물과 송신탑이 솟아 있고 주위로는 사각탁자와 벤취쉼터들이 설치되어 있는 훈증더미 및 위험목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는 공터에 도착을 해 mbc 건물을 사진에 담아 본다.

 

mbc 방송국 앞 갈림삼거리에서 직진의 남쪽 방향으로 보이는 굵은 소나무 한그루 아래 잡풀들이 우거진 좁은 등로가 보이는 방향으로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울산어울길 3구간이라는 이정목이 보여 찾아 보니 어울길 3구간(무룡정자고개에서 기령재)는 역사탐방코스로서 울산의 진산(鎭山, 지역을 지키는 산)인 무룡산을 지나 울산시와 경북 경주시 경계에 있는 동대산까지 가는 코스이며 무룡산 정상까지는 2구간이 끝나는 무룡고개에서 임도를 따라 가는 코스와 화봉동 화봉교회 옆에서 출발하는 코스 등 크게 두 가지다.

무룡고개에서는 30분, 화봉교회에서는 1시간 10분가량 소요되는 무룡산 정상(해발 452m)에 서면 사방이 확 트여 동해와 울산 시가지 전체를 볼 수 있는데 이곳에서 보는 야경이 울산 12경 중 하나로 선정됐을 정도로 경치가 빼어나다.

정상에는 1968년 한국 최초의 국제통화시설인 스캐터(Scatter, 전파를 바다를 향해 발사하는 방식) 통신용 안테나(지름 19m)가 설치돼 있는데 한국과 일본 하마다(濱田)까지 거리(270km)가 가장 가까워 이곳에 설치했다.

1991년 3월 해저 광케이블을 통한 국제통화가 일반화되면서 운영이 중단된 이후 KT가 통신유적으로 보존하고 있다.

그 이정목 지나 계속 완만하게 걸어 내려가니 굵은 소나무가 듬성듬성 서 있고 그 아래 관목의 활엽수들과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데 무룡산 등산로는 모두 정비를 한 듯 뚜렷하게 나 있어 진행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렇게 한동안 더 걸어 내려가니 등로 우측으로 하산할 수 있는 갈림삼거리 안부를 지나 마지막 산행을 이어가는데 이제 서서히 땅거미가 지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갈림삼거리의 무명안부 지나 잠시 더 걸어 전진하니 잡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무명묘지가 나타나고 이제는 등로 양쪽으로 굵은 참나무가 산객을 호휘하듯 일렬로 서 있어 기분 좋게 걸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게 한동안 더 비슷한 풍경의 완만한 내리막 등로를 따르니 굵은 고사목이 쓰러져 있는 지점 지나 칡넝굴이 우거져 있는 지점에 도착을 하는데 잠시 등로 우측으로 멋진 조망이 열려 살펴보니 우측으로 태화강과 울산광역시가 보이고 중앙부로 내일 걸어야 할 삼태지맥 마지막 구간이 길게 태화강을 따라 흘러가는 모습도 인상적으로 보인다.

 

울산광역시와 태화강 그리고 남아 있는 삼태지맥 마루금을 나목 방향과 남서 방향으로 살펴보고 사진에 담은 후 다시 내려가니 드디어 가파른 내리막 등로가 끝이나고 평이한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혼재되어 있는 넓은 등로를 따르니 갈림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곳에서 정상 등로인 좌측의 희미한 마루금을 확인하고서도 우측의 등로를 따라 잠시 알바 후 뒤돌아 와 무룡고개 방향으로 진행하며 마지막 발걸음을 재촉한다.

오늘은 일찍 산행을 마친다고 해도 할 일이 없어 조금은 산행 속도를 맞춰 진행하다 보니 어둠이 내리기 직전 좋은 시간에 산행 날머리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 좋게 진행하는 시간이기도 하는데 다만 구름이 많아 기대했던 일몰을 볼 수 없어 아쉽기만 하다.

 

마지막 이정표를 지나 잠시 더 고사목들이 흩어져 있는 평이한 등로를 따라 내려가니 금새 무룡로 4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무룡터널 위를 지나 무룡로 2차선 포장도로가 지나는 가운데고개 일명 무룡고개에 도착을 해 주위 풍경과 내아ㅣㄹ 새벽에 산행을 시작해야 할 들머리를 사진에 담으며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 한다.

가운데고개(무릉고개, 정자고개)는 울산광역시 북구 연암동과 어물동 및 신현동으로 이어지는 고개를 말하고 명칭 유래를 보면 가운데고개는 가분데고개 또는 왕거령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옛날 하상면과 강동면의 가운데 위치하여 가운데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신라시대 임금이 이 재를 넘어갔다고 하여 왕거령이라고도 부른다고 전해진다.

울산광역시 북구 신현동 구남마을에서 구남저수지 옆을 지나 어물동을 거쳐 연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고 가운데고개를 중심으로 서쪽으로 산지가 발달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우가산(牛家山)의 낮은 산지를 지나 바로 동해가 펼쳐진다.

무룡산(舞龍山)을 가로질러 지나는 고개를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커다란 노목들이 자라고 있으며 구남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구남저수지 옆으로 고갯길이 나 있다.

서쪽에는 염포동의 염포산(鹽浦山)을 시작으로 새바지산, 무룡산, 동대산(東大山), 관문산에 이어 경주의 토함산까지 산맥을 이어간다.

가운데고개는 강동 지역과 울산 읍내를 연결하는 주요 고개 중 하나로 경상북도 경주시 감포읍에서 울산으로 이어지는 무룡로라는 신작로가 1930년대 가운데고개를 넘어 개설되었으며 이때 원래의 선형(線形)이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그 잔형(殘形)이 일정 구간에 많이 남아 있다.

지방도에서 국도로 승격한 무룡로는 무룡산 자락을 돌아 굽이가 많아서 초기에는 사고도 많아 흔히 아흔아홉 구비길이라 하였고 무룡로 구간의 정상 부근이다.

현재 가운데고개 정상에는 무룡고개라는 이정표가 걸려 있으며 2006년에 새로운 국도제31호선이 생기면서 정상부에 무룡터널이 건설되고 많은 차량들이 국도제31호선을 이용하게 되어 무룡로 고갯길은 차량 통행이 줄어들었고 더불어 산행을 즐기는 등산객들 사이에서 많이 이용되고 있다.

고갯길을 사이에 두고 양옆으로 커다란 노목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 산행의 운치가 좋은 편이다.

산행을 마무리하고 스틱을 접으며 주차해 둔 애마로 가 배낭을 정리하다 보니 나무 아래 주차된 애마의 차창에 많은 새들이 뱌=ㅐ설물들로 지저분하게 해 놔 간단히 지우고 인터넷으로 울산시의 모나리자 모텔을 예약해 곧바로 모텔로 출발하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오늘 산행은 대부분 시멘트 포장도로와 넓은 비포장임도로 이뤄져 있어 편안하게 진행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발바닥에 무리가 가면서 통증을 유발시켜 생각보다 어렵게 진행을 했지만 외동고개 하산 등로를 제외하면 그렇게 고도편차가 심하지 않아 계절과 관계 없이 진행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마루금 중 하나로 보였다.

어둠이 내리기 전 무령고개 일명 가운데고개에서 무탈하게 하루 산행을 마무리하고 막히는 도로를 타고 모나리자 모텔로 들어 가 샤워를 하다 보니 온 몸에 생채기가 심해 다시 통증이 전해지고 조심스럽게 약을 바르고 근처의 삼겹살 식당으로 가 2인분을 게눈 감추듯 먹은 후 다시 모텔로 뒤돌아 와 사진만 정리하고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 세상 모르게 단잠에 빠지며 또 하루를 마감하게 되었다.

남아 있는 내일 하루도 무탈하게 즐기는 산행이길 바라며 이제 내일 산행이 끝나면 울산으로는 언제 다시 내려와야 될지 기약도 없기에 데왕암이라도 들렸다 올라가면 좋겠지만 시간이 애매하면 곧바로 귀가할 수 있으니 조금은 시간적인 여유가 아쉬운 산행이기도 하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칠갑산